2024-04-23

알라딘: 영성 없는 진보 김상봉

알라딘: 영성 없는 진보 김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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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nam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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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없는 진보>> 그리고...

최근 책 소개가 이어지네요. 이번에는 얼마 전 출판사로부터 받은 전남대 철학과 김상봉 교수의 <<영성 없는 진보: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생각함>>(온뜰, 2024)이라는 책입니다. 온뜰 출판사 편집자 박예찬 님이 이 책을 편집하면서 제 생각이 났다고 하며 한 권 보내주었습니다.
이 책에서 김 교수님은 오늘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하고 그 위기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 분석한 다음 그 처방법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김 교수님에 의하면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한국 정치가 “영성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믿음이 병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성이란 무엇인가? 김교수님은 그것이 “나와 전체가 하나라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상을 전체로 고찰할 때” ‘조선적 영성’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나와 전체의 합일에 대한 믿음”으로, 한국에서 원효의 ‘일심(一心)’에서부터 퇴계의 ‘천인합일(天人合一)’이나 수운의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에 이르가까지 일관되게 이어져 내려온 한국 사상 전체의 본질적 특성이었다는 것입니다.

짧게는 해방 이후, 길게는 동학 농민 혁명 이래, 이 나라의 진보적 정치 활동이란 “전체를 위한 자기 희생”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도 수 많은 사람이 전체의 선을 위해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독재에 맞서 싸운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전태일이라 할 수 있지만 전태일 뿐 아니라 3.1 운동, 5.18에 참석한 이들도 모두 전체와 내가 하나라는 믿음에 기초한 자기 희생을 바탕으로 한 운동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오면서 이런 믿음이 증발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어디에서도 나와 세계가 하나라는 믿음도, 그 믿음에 근거하여 전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정신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근원이라고 봅니다. 이렇게 되면 “정치는 나를 던져 세계를 구하겠다는 열정이 아니라, 단지 권력을 쟁취하고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욕망의 경연장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나와 전체가 하나라는 믿음을 회복할 수 있는가? 

김 교수에 의하면 그것은 그야말로 지난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런 믿음은 믿음이기 때문에 종교적 영역이지만 현재 역사 의식도 없이 오로지 개인의 안녕과 구원만을 강조하는 재래 종교에서는 이런 믿음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낡은 종교가 물러가고 새로운 믿음, 그리고 그 믿음에 뿌리를 둔 새로운 영성이 도래할 때만 우리가 처한 전면적 불의가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고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도 아니고 부처를 믿는 것도 아니라,” 

오로지 “믿음을 믿는 것”(117쪽) 뿐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참된 믿음”이고 이런 믿음이 최제우와 한용운과 전태일 등 선구자들이 보여준 믿음이며 이들이 믿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래하는 새로운 하나님일 것”이라고 책을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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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니 다빈치 코드의 저자 Dan Brown이 쓴 Origin이라는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한국어로도 <<오리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는데, 종교학 전공자인 제가 보기 가장 흥미로우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큰 소설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이 소설 때문에 이 소설의 배경이 된 스페인을 방문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이 소설에 심취되었더랬습니다.

소설 끝 부근에 가면 주인공 Langdon이 커쉬라는 제자가 제작한 인류의 근원을 파헤칠 중요한 컴퓨터 프로그램의 비밀번호를 찾기 위해 바르셀로나의 성가족성당(Sagrada Familia Basilica)으로 가서 지하에 펼쳐진 영국의 신비주의자면서 화가인 William Blake의 시(詩)에서 “The dark religions are departed and sweet science reigns”(어두운 종교는 떠나가고 감미로운 과학이 지배한다)는 문구를 발견하고 그것이 바로 password라 알게 됩니다. (제가 지금 한국어 번역을 가지고 있지 않아 영어로 된 것을 인용하는데, 한국어 번역본에 나온 번역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 후 이 성당을 담당하고 있던 Beña 신부와의 대화가 나옵니다. 베나 신부가 블레이크의 시에서 “어두운 종교”라는 구절이 마음에 걸린다고 하며, 블레이크가 종교들을 어두운 것, 악의적인 것, 심지어 악한 것으로 본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하자, 랭돈 왈, “그것은 일반적 오해입니다. 사실 블레이크는 깊이 영성적인 인물로 18세기 영국의 건조하고 속좁은 기독교를 훨씬 넘어서 윤리적으로 앞서간 분”이라고 하면서 

그에 의하면 종교에 두 가지가 있는데, 
  • 그 하나는 창조적인 사고를 억누르는 어둡고 독선적인 종교요, 
  • 다른 하나는 내면을 들여다 보는 내성(內省, introspection)과 창조성을 권장하는 밝고 확장적인 종교라는 것입니다
  • .(the dark, dogmatic religions that oppressed creative thinking, and 
  • the light, expansive religions that encouraged introspection and creativity. 

제가 말하는 ‘표층종교’와 ‘심층종교’와 맞먹는 생각 같습니다.) 

랭돈은 이어서 블레이크의 결론을 쉽게 표현하면 “감미로운 과학이 어두운 종교들을 추방해 주므로 개명된 종교들이 번창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Sweet science will banish the dark religions so the enlightened religions can flourish.’”라는 말이라고 일러줍니다. 

그러자 베냐 신부는 “교수님 감사합니다. 교수님은 제가 가지고 있던 거북한 윤리적 딜렘마에서 저를 벗어나게 해 주셨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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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교수도 어두운 종교는 떠나고 감미로운 과학이 열어놓은 공간에 새로운 종교가 도래할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짧은 이 책을 통해 오늘 한국 정치의 현주소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평소 심층종교의 특색 중 하나가 나와 우주, 그리고 나와 이웃이 모두 하나라는 만유일체(萬有一體)를 강조하는 것이라 주장하는데, 김상봉 교수가 이와 같은 맥락의 이론을 펼치는 것이 반가워 이 책을 즐겨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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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다리: 출판사 사장이 정모세, 편집자가 박예찬인 것을 보면 모태 기독교인들인 것 같고 책이 나온 곳도 IVP인데 어찌 이런 진보적인 책을 출판하게 되었는지 사뭇 흥미롭네요. 이들도 어둡고 독선적인 기독교에서 밝고 확장적인 기독교를 택하게 된 것인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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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없는 진보 -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생각함  | 사유의 뜰 1
김상봉 (지은이)온뜰202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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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es Point : 6,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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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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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없는 진보 -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생각함



책소개
철학은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위기의 근저에 놓인 정신적 상황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철학자 김상봉이 이 책을 통해 드러내는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은 정치가 ‘비판에만 몰두하여 형성에 실패했다는 것’과 ‘영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영성 없는 진보』는 한국 근현대사와 항쟁 역사의 맥을 짚고, 민주주의의 실패가 반복되는 이유를 진단한다. 정확한 진단은 정확한 해답을 낳는다. 저자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사랑, 나와 전체가 하나라는 믿음, 즉 ‘영성’의 회복을 역설한다. 냉철함과 열정이 서린 이 책은 낯설지만 강렬하고, 불편하지만 묵직한 메시지로 위기에 처한 한국 사회에 당도했다.


목차


참된 믿음을 기다리며

1.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인가?
2. 비판과 형성 사이에서
3. 정치 민주화와 경제 민주화 사이에서
4. 교육의 실패와 정신의 빈곤
5. 혁명과 영성―전태일과 서준식의 경우
6. 촛불과 태극기 사이에서
7. 새로운 믿음을 기다림


참고문헌


책속에서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오늘날 우리는 어디서도 나와 세계가 하나라는 믿음도, 그 믿음에 근거하여 전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정신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바로 이런 믿음의 실종에서 비롯된다. 왜냐하면 나와 세계가 하나라는 믿음을 잃어버리고 나면, 정치는 나를 던져 세계를 구하겠다는 열정이 아니라, 단지 권력을 쟁취하고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욕망의 경연장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참된 믿음을 기다리며 접기
우리가 사는 나라를 바로 우리 자신이,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옥으로 만들어, 이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집단적 자살을 향해 치닫고 있는 지금, 이성의 언어만으로는 결코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조선 왕조가 썩은 흙담처럼 무너져 가던 시절, 동학이라는 새로운 믿음의 언어가 필요했던 것처럼, 국가가 아니라 민족 자체가 소멸의 위기에 처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절망적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어떤 믿음이다.
-참된 믿음을 기다리며 접기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어느 정도 낙관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역사의 능선이 더러는 내리막을 걷는 것처럼 보여도 더 높은 봉우리를 향해 다시 전진하리라는 믿음을 굳게 지킬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부마민주항쟁이 일어난 지 반세기가 되어 가는 지금, 여전히 우리는 이런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 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에겐 이제 역사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체념과 절망만 남은 것일까?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인가? 접기
그러므로 문제는 비판이 아니라 형성이다. 낡은 것을 파괴하는 것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형성하는 데 비하면 쉽다. 한국 민주화의 역사는 불의한 국가 권력을 파괴해 온 역사이다. 그러나 불의한 권력을 타도한 용기와 열정에 비하면 새로운 나라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지혜는 모자랐던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집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망치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새 집을 짓기 위해서는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 파괴하기 위해서는 파괴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건설은 파괴와는 전혀 다른 지혜를 요구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그다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정치 민주화와 경제 민주화 사이에서 접기
사랑이란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이다.
-혁명과 영성—전태일과 서준식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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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한겨레 2024년 3월 15일자 '책&생각'



저자 및 역자소개
김상봉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독일 마인츠 대학교에서 철학, 고전문헌학, 신학을 공부하고 이마누엘 칸트의 『유작』(Opus postumum)에 대한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그리스도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에서 가르치다가 해직됐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문예아카데미 교장과 학벌없는사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재 전남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호모 에티쿠스』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이상 한길사), 『서로주체성의 이념』 『만남의 철학』(공저) 『철학의 헌정』 『네가 나라다』(이상 도서출판 길), 『굿바이 삼성』(공저)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이상 꾸리에), 『만남』(공저, 돌베개)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영성 없는 진보>,<재난공동체의 사회적 연대와 실천>,<아리스토텔레스의 신학> … 총 31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나는 이 현실적 위기의 근저에 놓인
정신적 상황을 드러내려 한다.”
사회 현상을 꿰뚫는 철학자의 시선!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반복되는 실패와 절망적 현실에 대한
철학적 진단, 통렬한 비판, 그리고 희망의 가능성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라는 목소리는 건국 이래 끊이지 않고 나왔다. 이에 대한 여러 분석과 제안이 쏟아졌지만, 그 누구도 실패가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숱한 좌절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묻게 된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오랜 시간 이 질문과 씨름해 온 철학자 김상봉은 자신의 작업을 이 얇은 책에 밀도 있게 담아냈다. 그가 말하는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은 두 가지다. 권력 타도에는 성공했지만 ‘형성’에는 실패했다는 것, 그리고 나와 세계가 하나라는 ‘믿음’(영성)이 정치에서, 특히 진보 진영에서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문제는 비판이 아니라 형성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비판과 타도의 역사였다. 1960년 4월혁명, 1979년 부마민주항쟁, 1987년 6월항쟁, 그리고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불의한 권력을 한 번도 아닌, 수차례나 몰아냈다. 이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찬란한 역사다. 하지만 불의한 권력은 항상 다시 등장했다. 왜 그런가? 왜 우리는 짧은 기쁨 후에 다시 좌절을 맛보게 되는가? 나라를 형성하는 지혜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권력을 타도하는 것이 제아무리 어렵더라도 나라를 형성하는 것보다는 쉽다. “집을 파괴하기 위해서는 망치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새 집을 짓기 위해서는 설계도가 있어야 한다. 파괴하기 위해서는 파괴하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건설은 파괴와는 전혀 다른 지혜를 요구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그다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무엇을 형성하는 데 실패했는가? 저자는 그동안 꾸준히 목소리를 낸 영역인 ‘경제 민주화’(3장)와 ‘교육’(4장)의 실패를 서술한다.

“한국 정치의 파행은 영성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지금 이 책에서 내가 말하려는 것은 다른 사람이 해 왔던 말뿐만 아니라 나 자신이 해 왔던 말과도 조금 결이 다르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해 여기서 내가 제시한 원인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것은 한국 정치의 파행은 영성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때 ‘영성’은 단순히 특정 종교에 관한 단어가 아니다. 영성이란 “나와 전체가 하나라는 믿음”이자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이성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영성만이 세계의 고통에 자신을 던질 수 있게 한다. 타인의 고통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이므로, 영성이란 사랑의 한 형태다.

그렇다면, 이것이 왜 ‘진보’의 문제인가? 저자는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저자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제목(『영성 없는 진보』)은 나의 자기반성과 성찰의 표현이다.” 평생을 진보 진영에 있었던 김상봉은 현 위기를 다른 진영의 문제라고 쉽게 비난하지 않는다. 그는 불편하고도 어려운 길을 선택한다. 또 하나는, 한국 민주주의에서 ‘타인과 세상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진보 운동의 역사이자 본령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진보의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다.

“영성이란 근원에서는 당파성을 초월한 것으로서, 사실은 진보의 문제도 아니고 보수의 문제도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고, 전체의 선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마음의 소질이다.”

한국 민주주의에, 특히 진보 진영에 ‘영성’이 없는 것이 핵심 문제라고 주장하는 김상봉의 말은 낯설고 생소하다. 그러나 본래 희망은 낯설고 생소하게 도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권력 쟁취와 타도를 끝없이 반복하는 현실을 타개할 새로운 가능성이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이 책은 바로 그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 『영성 없는 진보』는 ‘사유의 뜰’ 시리즈 첫 번째 책입니다. ‘사유의 뜰’은 인문·사회·정치를 사유하는 다채로운 공간입니다. 피상적이고 고정된 사고에서 벗어나 참신하고 선명한 관점을 제시하고, 서로 대화하며 함께 걸어갈 새로운 길을 모색합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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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있나요?



본서는 김상봉 교수께서, 현 민주주의 위기를, 진보 세력의 위기로 성찰한 후, 영성 없는 진보였기에 민주주의 위기를 마주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먼저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보 세력에 국한해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거치면서 대한민국 사회의 민주주의 역사는 시민혁명의 역사요, 이를 뒷받침한 진보 세력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즉 애초에 보수 세력은 민주주의의 진전 가운데 아무 것도 헌신한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에 위기가 닥쳐왔다는 것은 결국 진보 세력 자체가 위기를 맞이했다는 말과 다름 아니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함석헌은 3.1운동에 참여해 총칼로 무장한 일본 군경 앞에서 비무장으로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단지 용기의 발로만이 아니라, 적에게도 이성과 양심이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한다. 생사를 건 투쟁 가운데서도 보존되는 이런 믿음이야말로 영성의 발로이다. (…) 안중근이나 함석헌이 다른 민족에 대해서도 굳건히 견지했던 내가 전체와 하나이며, 적도 나의 일부라는 믿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P.105)”
이어서 진보 세력의 위기는 ‘영성의 부재’라고 진단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영성이란 무엇일까요? 앞서 인용한 문장처럼 <전체>와 <나>가 하나라는 믿음입니다. 일반적인 <나>는 곁에 있는 <너>의 고통조차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예컨대 전태일 같은 사람은) <세계>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깁니다. 세계라는 <전체>가 곧 <나>와 분리되지 않는 하나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이는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는,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긴 사람들의 분투가 있었습니다. 전태일도, 이한열도, 그리고 당시 민주주의 투사들은 대한민국 사회 민중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역사 속에서 민주주의의 진전을 일궈냈습니다.
그렇다면 달리 물어볼 수 있겠습니다. 왜 오늘날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있나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때처럼, 타자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여기는 이들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영성’의 자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타자를 향한 애틋한 사랑의 자리는 정치권력 투쟁을 위한 암투로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2022년에 개봉된 영화 <킹메이커>에 등장하는, 고 이선균 배우가 맡았던 서창대 역할을 숙고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시민들을 위해 일어났지만, 시민들을 위해서는 선거에 이겨야만 하고, 따라서 이를 위해서 결국 시민들을 개 돼지 취급하는 그의 면모는, 오늘날 ‘영성’이 사라진 진보 세력의 민낯입니다.
분량은 짧지만 충분히 곱씹을만한 문장들과 논리 전개가 넘쳐납니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민주주의’와 ‘공화국’ 사이의 간극에 대해 지적한 세 번째 챕터의 내용입니다. 모든 국민이 주권을 행사한다는 의미를 담은 체제가 민주주의입니다. 각자 한 표씩 행사할 수 있으니까요. 반면 국가가 모든 국민의 이익, 즉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공화국입니다. 민주주의는 “By the people”이라면, 공화국은 “For the people”겠지요. 현 대한민국 사회는 민주주의가 공화국으로 이어지지 못해 오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정부에 시끌벅적했던 부동산 담론, 코로나 자영업 담론, 그리고 오늘날 간협 혹은 의협과의 팽팽한 대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각자 한 표씩 행사하는데, 막상 이익은 누군가가 더 누리고 있는 현실 때문에 민주주의의 위기가 초래했다고 볼 수 있지요.

현 정국에 관심이 한 풀 꺾여버린 이들에게 본서를 권합니다. 또한 정치현실 속에서 분노에만 사로잡히는 분들께도 권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신앙언어가, 구체적인 역사 현실 속에서 어떻게 새롭게 변주되는지를 마주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새삼 생각도 많아지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근래에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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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허한다윗 2024-03-18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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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정치의 현실에 대한 반성


김상봉 교수님의 <영성 없는 진보>는 진보 정치의 현실에 대한 반성이면서, 현실 기독교에 대한 책망으로 들린다. 진보 정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된 원인을 김상봉 교수는 영성의 부재에서 찾는다. 영성은, 역사에 대한 믿음, 세계 전체와 내가 하나라라는 믿음이다.
김상봉 교수님의 주장에 따르면, 이 땅의 진보 정치 활동이 '전체를 위한 자기 희생'을 이어갈 수 있었던 힘은 영성이었다. 전태일에겐 나와 세계는 하나였고,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었다. 그 시절의 많은 젊은이들에게도 타인의 고통은 곧 자기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역사와 전체가 나와 하나라는 믿음이 사라졌다. 우리 사회의 믿음이 병들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도 진보 정치에 당연한 영성을 더이상 공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영성, 깊은 영성에 뿌리 내린 정치인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길을 열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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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terry 2024-03-25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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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의 영성(靈性)-1
김상봉 교수의 <영성 없는 진보>를 읽으며.
(부제; 한국 민주주의 위기를 생각함)
영성이 무엇인지 다양한 갈래의 뜻이 있겠지만 주로 다음의 뜻이 아닐까?
'영성이란 신을 향한 갈망이고 신과 일치하려는 노력이고 종교의 이유이고 목적이다.'-(길희성. 2021. 영적 휴머니즘. 아카넷)
나는 여태 종교를 글로만 만났지 몸으로 만나지 않았다. 때문에 종교적인 영성을 체험하지 않아 그 개념이 알쏭달쏭하다.
살아가면서 고귀하고 높고 선한 그 무엇을 추구하는 수준 높은 의식일까.
유교 문화에서 말하는 덕성 또는 도덕성도 영성일까.
불교의 가장 오래된 경전 '숫타니파다'를 읽어보면 붓다의 일생에는 종교의 신화가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문학적인 비유는 있을지라도.
붓다는 돌아가시기 전 자신의 열반에 통곡하며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남기셨다고 한다.
“나는 내가 어디서 온 지 모른다. 지금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다.
제자들아, 살아있는 동안 게으르지 말고 열심히 정진하여라.”

기독교, 이슬람과 더불어 인류 최대 종교인 불교 창시자의 소박한 말씀에서는 종교적인 어떤 영성도 엿볼 수 없었다.
죽어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살면서 착하고 부지런하라는 당부를 요즘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게 영성일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든다.
호찌민은 1945년 사회주의 독립정부를 소련의 도움없이 세웠지만, 미국의 도움을 받은 프랑스가 다시 침공하여 1954년까지 프랑스와 전쟁을 치렀다. 베트남이 승리를 했지만 미국은 베트남을 남북으로 갈랐다.
1955년부터 베트남 북쪽에 호찌민의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섰다. 사회주의에 환호하는 젊은이들이 프랑스 제국주의 앞잡이 역할로 베트남 인민을 착취한 가톨릭을 박해했다. 맑스를 따르는 완장을 찬 젊은이들에겐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도자 호찌민은 이런 성급한 젊은이들에게 간곡하게 당부했다.
“종교란 인간의 마음 가운데 가장 깊이 있는 감정이다.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이 지점에서 ‘인간의 마음 가운데 가장 깊이 있는 감정’을 내 나름대로 영성으로 해석해도 될까?
호 아저씨가 젊은이들에게 ‘종교를 함부로 거들지 마라!’라고 한 당부는 인간 본성에는 신을 향한 또는 신에게 의지하려는 갈망이 있으니 그 감정을 억누르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
이 갈망을 억누르면 땅 속 깊숙히 뜨거운 마그마가 거대한 화염을 하늘 높이 뿜어 올리듯 갈망이 언젠가 폭발하리라고 보았을까?
막내인 나는 6형제 중 맏이인 누나와 15살 차이가 났다. 어머니가 6대 맏이인 아버지에게 시집왔을 때 식솔이 40명 가까이 있었고, 제사만 매달 1번 이상 지냈다. 어머니는 불교신자였지만 누나를 제사지내지 않는 단출한 기독교 집안 2형제 차남에게 시집보냈다.
내가 6살 쯤, 시집 가 독실한 신자가 된 누나는 내 고사리 손을 잡아 교회로 데려갔지만 어린 나이에도 교회 규범이 내 체질에 맞지 않다고 느껴 몇 번 따라가다가 그만뒀다.
나는 자라면서 인습, 관습을 싫어했다. 어머니가 평생 고생하시는 걸 보고 남존여비를 싫어했다. 교육자 아버지의 엄한 말씀 때문에 권위적인 체제를 싫어했다. 누나 따라 간 교회에서 요구하는 형식과 절차를 왠지 싫어했다.
고등학교에서 세계사와 사회 과목에 재미를 느끼면서 인간과 인류에게는 보편적인 상식이 있다는 걸 알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유신을 맞았고, 역사와 사회에서 배운 ‘이성’의 지식으로 박정희 유신이 내세운 ‘한국적 민주주의’란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대학에서는 이영희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같은 책을 보며 이성의 논리에 이끌렸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프랑스를 분열시킨 '드레퓌스 사건'에서 에밀 졸라가 보인 진실을 향한 지성의 행군은 평생 내 의식에 피와 살이 되었다.
한편 뜻밖에 신입생 때 기독교개론을 강제적으로 배워야 하는 기독교 계통 대학에서 목사이자 민중신학을 개척한 서남동 교수를 만났다. 2개월 남짓 강의하시다가 1975년 5월 우리 헌법 사상 가장 악랄했던 법인 긴급조치9호로 해직당하셨다. 강의 동안 뚜렷하게 배우지는 않았지만 해직당한 뒤 치열하게 독재에 맞선 그 분의 삶에서 종교적 믿음에 어떤 숭고한 힘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해직당하고 유신에 저항하다 감옥에 가고, 광주 518때 내란죄에 엮여 다시 감옥 살다가, 미국으로 추방당하고, 건강 악화로 귀국 후 곧바로 눈을 감으셨다. 서남동 교수가 개척해서 남긴 민중신학의 개념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
누나의 기독교와 서남동의 기독교는 차원이 전혀 달랐다.
누나의 기독교는 무당과 한 치도 다를 바 없는 기복 신앙이었다.
서남동 교수의 민중신학을 들여다 보다가 20세기 최대 지성인이자 천재신학자라 일컫는 본회퍼(Dietrich Bonhoeffer:1906~1945)를 알게됐다. 본회퍼는 히틀러 암살을 계획하다 체포되어 사형당한 반나치운동의 상징인 인물이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자 본회퍼의 저항 정신을 따랐던 몰트만(Moltmanm; 1926~)이 희망의 신학을 개척했다. 희망의 신학이 남미로 가서는 해방신학, 아시아에서는 서남동의 민중신학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악랄한 유신이 종말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던 시대에 서남동과 본회퍼의 기독교 저항정신에서 나는 장엄한 빛을 보았고 베토벤 교향곡 합창의 ‘환의의 송가’가 들리는 듯 했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 분들에게 닥친 고난의 역경을 이겨낸 힘이 영성이 아니었을까?
솔직히 서남동과 본회퍼가 보인 기독교 영성의 본질을 나는 체질화‧내면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영성을 깊게 파고 들어 이해하지 않고 이성(理性)만이 세상 모순의 유일한 해결책이라 최근까지 생각하고 있다.
전태일을 깊게 만나기 전까지는 영성을 진지하게 파고들지 않고 대충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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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14년 김상봉 교수를 처음 만났다. 김상봉 교수는 일찍 베트남 사회과학원의 초빙교수로 있으면서 베트남을 정기적으로 방문했다. 나는 ‘왜 호찌민인가’란 책을 갓 출간했을 때였다. 베트남을 매개로 한 필연적 만남이었을까?
김상봉 교수와 필연적 인연은 이 뿐 아니다. 전태일에 관심 또한 일치했다. 김상봉 교수는 전태일을 철학적 수준에서 고찰하는 내가 아는 유일한 철학자다. 더욱이 518 정신을 깊이 있는 철학으로 끌어 올린 <철학의 헌정>이란 2015년 낸 책을 보며 내 존경심은 더해 갔다.
작년 11월 25일, 거창 고택에서 열리는 인문학 교실에서 ‘영성 없는 진보’란 강의를 들었다. 한국 민주주의 위기 원인과 전태일의 영성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강의는 지금 내가 품고 있는 답답한 의문의 안개를 단숨에 걷어버리는 찬란한 빛이었다.
그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책 <영성 없는 진보>가 2024년 2월에 나왔다. '타는 목마름'의 심정이었던 답답함에 이 책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었다.
구름 위를 바라보기도 하지만 땅위의 사물을 구체적으로 응시하는 철학자 김상봉이 말하는 영성이란 무엇인지 살펴보고, 이 영성을 바탕으로 앞으로 우리시대 가장 소중한 인물인 전태일을 깊이, 깊이 들여다보며 글을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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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내 페이스북 글이 길다고 충고한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짧게 쓸 생각이 없다.
요즈음 손에 쥐고 있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글씨가 작고 빡빡한데다가 쪽수가 729쪽이다.
쇼펜하우어가 1819년 이 책 500권을 출간했지만 살아있을 때 200권도 채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1860년 죽기 전 스스로 나머지 책을 다 불살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 니체, 프로이드를 비롯한 여러 사상가에 큰 영향을 끼쳐 20세기 철학 풍조에 어마어마하게 큰 바람을 일으켰다.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생전에 200여 권도 팔리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쇼펜하우어와 니체 같은 수준의 저술가란 말은 결코 아니다. 나를 쇼펜하우어나 니체에 비유해 '해운대 백사장의 모래 한 알 불과'하다 할지라도 내게는 극찬이다.
내가 쓴 책들은 몇 년이 가도 초판이 그대로 남아 있고, 자비로 출간한 책이 팔리지 않아 일찍 절판했다. <왜 호찌민인가>가 그렇다. 나온 지 11년이 넘었지만 너무나 드물게 이 책을 찾는 사람이 있다. 이럴 때 나는 아주, 아주, 아주 만족한다.
2023년 12월 5일 페이스북에 베트남 스님의 1963년 분신을 다룬 <소신공양>이란 제목으로 원고지 70매 분량의 글을 썼다. 이 주제를 다룬 글이 국내에는 없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인가, 좋아요가 417개, 댓글이 51개였다. 무엇보다 공유가 198개나 달렸다. 공유 글을 포함하면 수천 명이 읽었다고 본다.
2015년 베트남 참전 군인의 고백을 쓴 글은 공유만 무려 750여 개 달했다. 긴 글이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읽어 주어 고맙기 그지없었다.
재치 있고 유익하지만 잊기 쉬운 소소한 글보다(그렇게 쓸 재주도 없지만), 무언가 새로운 인식이나 정보를 제공하는 글을 쓰는 걸 나는 보람으로 삼았다. 비록 소수이지만 읽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용기 내어 계속 긴 글을 쓰겠다.
앞으로 김상봉 교수의 철학적 ‘영성’이란 개념을 사용하여 ‘우리사회 진보 세력’과 ‘전태일’을 깊이 들여다보려 한다.
페이스북은 내 사유방식을 공개하는 생각의 일기장이다. 댓글에는 격려도 있고 비난도 있다. 내 실력에 글에 허점이 수두룩 많을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한다. 그래서 이런 유익한 댓글을 포함하여 글을 일기처럼 쌓아 이를 바탕으로 <왜 전태일인가>를 더욱 풍부하게 다시 쓸 예정이다.
긴 글을 읽고 충고를 주시는 분들을 고맙게 생각하면서 전태일 정신을 파고드는데 힘쓰겠다.
칸트를 전공한 철학자 김상봉 교수를 내가 만날 수 있다는 점은 내 인생에서 크나큰 복이다.
김상봉은 칸트에게서 철학을 배운 학자가 아니라 ‘철학함’을 배운 학자이다.
전공인 독일 철학 지식을 현란하게 소개하기 보다는 우리 시대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어떻게 철학적으로 성찰해야 하는 가를 강조하는 교육자다.
<영성 없는 진보>는 얇아 읽기 쉬울뿐더러, 진보 세력이 괴멸되고 극단적인 수구정권이 들어선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성찰을 담은 책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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