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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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쇠락하는 산업도시와 한국 경제에 켜진 경고등
양승훈 (지은이) 부키 2024-03-28



9.6
100자평 2편
리뷰 9편
세일즈포인트 7,150
사회과학 주간 13위
432쪽
책소개
‘대한민국의 산업 수도, 지역내총생산 전국 1위의 부자 도시, 중산층 노동자 도시’라는 수식어가 붙는 도시. 지난 60여 년간 동아시아에서 가장 발전한 산업도시가 바로 울산이다.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는 제조업 위기론 속 울산이 직면한 딜레마에서 출발해 4차 산업혁명과 기후 위기라는 퍼펙트 스톰을 마주한 주식회사 대한민국호의 앞날을 논쟁적으로 살펴보는 대담한 기획이다.

2019년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로 ‘조선소 출신 산업사회학자’로 주목받으며 한국사회학회 학술상과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을 수상한 양승훈의 5년 만의 신작. 화두는 울산-제조업-대한민국으로 확장되었고, 이로써 치열한 논쟁의 장이 열리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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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프롤로그: 산업도시 울산, 어디로 가는가

1부 울산은 어떻게 산업 수도가 되었나
1장 산업도시 울산, 기로에 서다
2장 미라클 울산, 울산 산업 60년 약사

2부 대한민국 제조업의 심장 박동이 꺼져 간다
3장 한국 경제의 특수성과 제조업
4장 제조업 발전의 중심에서 말단 생산기지로 추락하는 울산
5장 울산 노동자가 국민의 눈에서 사라진 이유
6장 정규직을 뽑지 않는 엔지니어의 공장
7장 생산성 동맹의 파열, 하청 구조로 연명하는 울산

3부 산업 가부장제의 그림자와 중산층의 꿈
8장 청년이 떠나는 생산도시
9장 생산 도시를 기피하는 여성
10장 노동자 중산층 사회의 꿈은 폐기해도 좋은가

4부 산업도시와 대한민국의 미래
11장 디트로이트와 피츠버그, 두 도시 이야기
12장 RE100과 굴뚝 산업의 미래
13장 메가시티론, 무엇이 문제인가
14장 생산도시와 대한민국의 미래
에필로그: 다시, 산업도시 울산의 꿈을 위하여
부록: 연구조사 방법론 및 연구 참여자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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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9
울산을 향한 질문은 결국 1970년대 형성해 놓은 중화학공업 위주의 수출주도 산업이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하는 불안을 담고 있다. 혁신이나 기술경제학 연구자들은 습관처럼 ‘추격형 경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의 제조업은 간단히 요약하자면 일본의 생산 하청기지로 출발해서 불하받은 부품과 완제품을 분해하고 결합하며 모방했고, 미국과 유럽에서 유학한 엔지니어들의 지도하에 도면을 베끼고 개선해 나가면서 성장했다. 더불어 노동자의 숙련도를 높이기보다는 독일이나 일본의 로봇이나 NC 선반 가공 같은 장비로 생산성을 높이면서 세계 최고의 제조업 생산성을 확보했다. 그 사이 유럽은 장비와 노동력이 노후화됐고 미국은 제조업을 등한시했으며 일본은 불황 속에서 설비투자의 여력이 없었다.

P.20
대한민국의 산업 수도,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1위의 부자 도시, 중산층 노동자 도시 등이 울산을 수식하는 말이다. 울산은 이른바 ‘3대 산업’으로 불리는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이 확고하게 자리 잡으며 각각의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또 동남권(부산·울산·경남) 제조업의 축이자 포항으로부터 동해안을 타고 내려가 남해안을 지나 여수까지 이어지는 남동임해공업지역의 중심 지역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몇 년 지나서 2030년이 된다면 울산의 모습은 어떻게 기록될까? 부자 도시, 노동자 도시, 산업 수도라는 말이 그때도 통할까?

P.45
정부의 공식 기록을 볼 때 산업도시 울산의 시작은 1962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산업화 이후 60년 만에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교역량을 자랑하는 ‘30-50 클럽 국가’*(일인당 GDP 3만 달러, 인구 수 5000만 명)에 도달하는 동안 울산은 60년 동안 동아시아에서 가장 발전한 산업도시 중 하나로 성장했다.

P.48
이처럼 울산은 이케다에 의해 일제 강점기 태평양전쟁을 위한 공업 도시이자 석유 비축기지로서 설계됐다. 울산은 ‘공업항, 어항, 연락항, 무역항, 공항’의 다섯 가지 키워드로 분류됐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 엮으면 일본의 태평양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로서 울산의 역할이 중시됐음을 알 수 있다.

P.64
여기서 현대중공업의 성공을 보는 세 번째 시각이 도출된다. 즉 중공업 안팎의 여러 사람이 이루어 낸 성공이라는 견해다. 이역만리 스코틀랜드까지 찾아가서 선박 건조 기술을 익혀 오고, 일본에 건너가 도면 작성법과 설계 기술을 배우기 위해 끊임없이 일본인 엔지니어들에게 묻고 되묻고 다시 확인한 이들의 공로다. 유럽식과 일본식 선박 건조 기술을 혼합해서 그 나름의 현대중공업 스타일의 건조 기술로 창안해 낸 엔지니어들의 노고가 있었다는 뜻이다. 또 고소(높은 곳) 작업에 꼭 필요한 발판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현장에서 밧줄에 몸을 의지하여 작업했던 노동자들의 헌신도 있었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나 일할 곳을 찾아야만 했던 1970~1990년대의 젊은이들이 현대중공업의 성공을 일궈 낸 또 하나의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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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P.192mailbird
사측은 그저 노동자와 전면전을 피하면서 설비를 자동화하고 정보통신장비를 늘리고 조직을 재편하면서 생산 합리화를 수행했다. 노동조합은 생산 합리화에 따라 생산속도가 빨라지는것만 문제 삼았다. 하지만 생산 합리화가 기대하는 결과는 지난장에서 살펴봤던 노동자의 숙련이 필요 없는 작업장이다. 숙련이 사라진 작업장만 가득한 지역을 무엇이라 하겠는가. 이런 산업도시는 그저 제품만 찍어 내고 연구개발이나 현장의 혁신이 벌어지지 않는 단순한 ‘생산도시‘라 불러야 한다.

P.200mailbird
노동자의 숙련과 회사의 처우를 교환하는 생산성동맹은 이미 와해된 상태였다. 정규직이라는 안전판이 없는 상황에서 생산직 노동자는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떠나고 쫓겨났다.

P.208mailbird
산업 가부장제라는 말은 낯선 말이고, 기존의 가부장제와는 좀 다른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다. 산업 가부장제는 특정 산업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서의 불균등한 성별 분업 구조가 만들어 내는 가부장제를 의미한다. 한편에서는 전통적 가부장제가 여성의 고학력화와 화이트칼라 및 전문직 노동시장 참여를통한 ‘맞벌이 모델‘로 무너지고 있다. 그에 비해 앞서 설명한 공간 분업과 국가의 공간 계획으로 조성된 산업지구에 역사적으로 누적된 가부장제가 바로 산업 가부장제라 할 수 있다.

P.221mailbird
그러나 청년층의 고용 상황을 보면 ‘미래‘가 없음을 더욱더 직감할수 있다. 연령대별로 수도권(서울,경기)이나 동남권(부산, 경남)의 다른도시와 비교했을 때 울산의 40대 고용률은 견조한 수준이다. 30대도210tec비교적 괜찮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울산의 20~29세 청년 고용률은 20년 동안 계속 하락해 왔다. 청년들에게 적절한 일자리가 생기지 않으며 미래 전망이 불투명한 것이다(도표 3.7 참조).

P.229mailbird
따라서 울산의 일자리 문제의 본질은 총량 부족이 아니라 화이트칼라 일자리의 부족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화이트칼라 일자리부족은 일시적인 시장 상황에 따라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4장에서 분석했던 공간 분업에 의해 점차 생산도시로 전락해 가는 울산의 경로에의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구직 수요와 구인 수요 간의 구조적 격차를 ‘구조적 미스매치‘라 부른다. 울산을 이끄는 3대 산업의 구상 기능이 계속 수도권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 기존 대기업 일자리에서 사무직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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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태 (시사인 국제팀장): 지리경제학, 노동과정론, 공학, 도시사 등 다양한 접근법으로 쉽고 흥미롭게 읽히지만 실은 무시무시한 답변을 제공한다. 이 책의 주제는 산업도시 울산이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한국의 사회·경제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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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양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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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서울리뷰오브북스 10호>,<함께 만든 기적, 꺼지지 않는 불꽃> … 총 15종 (모두보기)
양승훈 제조업과 산업도시, 기술 혁신과 엔지니어를 연구하는 사회과학자다. 마산에 소재한 경남대학교에 재직하며 사회조사방법론, 통계학, 데이터사이언스, 디지털 과학기술학을 강의한다. 학부에서 정치학을, 석사 과정에서 문화인류학을, 박사 과정에서 과학기술정책(혁신 연구)을 공부했다. 조선소에서 5년간 근무하며 관찰했던 경험을 담아 산업도시 거제와 조선 산업에 대한 이야기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2019)를 썼고, 이듬해 한국사회학회 학술상과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을 수상했다. 산업도시 울산을 살펴보며 50년 전 중화학 공업화로 형성된 한국의 주력 제조업과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이 디지털·에너지 전환, 수도권 쏠림을 딛고 생존 가능할지 고민한다. 《추월의 시대》(공저, 2021), 《문턱의 청년들》(공저, 2021)을 함께 썼고 《데이터 과학을 활용한 통계》(2023)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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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이 도시를 보라”
대한민국호의 성장 엔진이 꺼져 가는 이유

울산, 한반도의 동남쪽 해안가에 위치한 이 공업도시에는 ‘대한민국의 산업 수도, 중산층 노동자 도시’라는 여러 수식어가 붙어 있다. 울산은 지난 60여 년간 동아시아에서 가장 발전한 산업도시다. 그런데 이 도시에 쇠락의 징후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인구 115만의 울산은 여전히 외형적으로는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1위의 부자 도시이고, 수출액 기준으로 경기도와 충청남도에 이어 전국 3위의 광역시이지만, 도시의 활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지 오래다. 울산은 청년층 신규 고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장년 노동자, 퇴직자 중심의 늙은 도시가 되었다. 지역 대학은 자동차, 조선, 중화학 등 울산 3대 산업을 뒷받침할 인재 공급처 역할을 못 하고 힘을 잃고 있으며, 기술 혁신의 주역인 연구소와 엔지니어링 센터는 일찌감치 천안 이북의 수도권으로 떠났다. 또 청년과 여성이 도시를 빠져나가고 인구 감소에 직면했다. 4차 산업혁명, 기후 위기, 그린뉴딜이라는 퍼펙트 스톰이 몰려오는데, 전통 제조업을 가진 울산이 어떤 대책과 해법을 찾아야 할지 지자체, 지역 주민, 대기업, 하청과 부품 업체의 이해관계가 저마다 다르다.

기후 위기가 울산 3대 산업에 기회가 됐지만 산업 고도화와 신사업 진출의 전망을 열어 주지 않고 있다. 친환경 전기차와 수소경제는 현대자동차에 기회를 주지만 울산의 자동차 부품 생태계는 이에 대응하기에 취약한 상태이고 개선책도 뚜렷하지 않다. 자동차 부품 업계가 고용하는 5만 개의 일자리는 곧 위기에 노출될 공산이 크다. 탈탄소 전환을 요구하는 IMO의 규제는 조선 업계에 선박 수주의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고착된 노동 시장 이중 구조로 인한 원하청 간 임금 격차와 불황기의 임금 하락 문제를 풀지 못하면서 질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친환경 자동차 생태계에 필요한 정밀화학의 전환 역시 정책 역량과 기존 석유화학 산업의 보수성 때문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345쪽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는 ‘대한민국 산업 수도’ 울산의 과거와 현재를 살펴보며 미래를 모색하는 책이다. 울산의 산업 구조와 노동 시장, 사회적 관계를 면밀하게 분석하는 목적은 제조업과 수출을 기둥으로 성장해 온 한국 경제에 닥친 위기의 본질을 살피고 종합하여 대안을 모색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울산이라는 대표적 산업도시에 관한 종합 보고서인 동시에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저물어 가는 산업’으로 치부되는 제조업의 현실과 성장 동력을 잃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관한 고찰이다.
저자 양승훈은 2019년 조선소에서 5년간 일하며 관찰했던 경험을 토대로 산업도시 거제와 조선 산업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을 시도한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를 내놓았다. 이 책으로 산업 현장의 경험을 겸비한 ‘조선소 출신 산업 사회학자’로 주목받았고, 이듬해 한국사회학회 학술상과 한국출판문화상 교양 부문을 수상했다. 5년 만에 출간하는 이번 책은 거제에서 울산으로, 울산에서 대한민국으로 논의를 확장했다. 이는 단순히 공간 지리적인 확장에 그치지 않는다. 제조업 국가 한국이 현재 직면한 곤혹스러운 질문을 에두르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것이 책의 목적이다.

미라클 울산,
모두의 정성과 노력이 모인 ‘좋았던’ 시절

책의 1부는 울산이 그간 어떻게 산업 수도로 급부상했는지, 울산의 60년간 산업 역사를 돌아본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부는 1962년 1월 13일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발표하고, 같은 달 27일 울산을 특정공업지구로 결정 공포했다. 2월엔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을 거행했다. 6월엔 울산군 울산읍, 방어진읍, 대현면, 하상면, 청량면 두왕리, 범서면 무거리와 다운리, 농소면 송정리와 화봉리를 통합해 울산시 승격을 발표했다. 이후 뒤에서 다룰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이 진출하여 지금의 울산 3대 산업을 구성했다. 이러한 서사를 단순하게 이해하면 산업도시 울산의 형성이 박정희와 현대그룹이 이룬 성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근대적 산업도시 울산은 일제 강점기 혹은 그 이전부터 누적된 경로 의존과 다양한 우여곡절 속에서 탄생했다. 산업도시 울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케다 스케타다라는 인물과 제국주의 일본의 대단위 병참기지 건설 계획을 만나게 된다.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해 산업도시 울산을 구상하도록 했던 선구자는 이케다 스케타다池田佐忠라는 사람이다. 이케다는 부산 지역에서 1920~1930년대 개발 사업을 했던 인물이다. 헌병 중사 출신이라는 특별하지 않은 이력에도 동양척식회사와 정군관政軍官계와의 인연으로 빠르게 사업의 규모를 확장했다. (…) 1942년 12월, 울산개발계획이 조선총독부로부터 최종적으로 허가받았다. 1943년 5월 11일, 지금의 학성공원에서 기공식이 거행됐다. 이처럼 울산은 이케다에 의해 일제 강점기 태평양전쟁을 위한 공업 도시이자 석유 비축기지로서 설계됐다. 울산은 ‘공업항, 어항, 연락항, 무역항, 공항’의 다섯 가지 키워드로 분류됐다. 다섯 가지 키워드를 엮으면 일본의 태평양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로서 울산의 역할이 중시됐음을 알 수 있다. (…) 이케다 스케타다의 산업도시 계획은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항복하면서 70퍼센트 완공 단계에서 멈추었다. 그러나 일제가 구상했던 석유 비축기지이자 정유 공장의 흔적은 결국 산업도시 울산의 경로에 큰 영향을 끼쳤다. - 48쪽

1962년 대한석유공사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울산 정유 공장의 복구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어 1970년대에는 현대중공업의 조선소 설립이 이루어지는데, 정주영 회장이 1970년 12월 그리스 리바노스사로부터 유조선 2척 선박 수주를 먼저 따내고, 부지 조성(1971년 4월), 조선소 기공식(1972년 3월)이 그 뒤에 진행된 것은 잘 알려진 일화이다. 현대자동차의 울산공장 준공은 이보다 뒤인 1975년의 일이다. 수출주도 산업인 울산의 3대 산업은 1990년대에 들어 큰 호황을 맞는다. 조선 산업은 10년 초호황기 슈퍼사이클에 들어섰고 현대자동차는 2000년대에 오면서 ‘생산량 기준 글로벌 Top 5’로 올라섰다. 이후 2017년 서울에 1위를 빼앗기기 전까지 울산은 근 20년 동안 한국에서 일인당 GRDP 1위를 놓치지 않았다. 바로 울산의 호시절이었다.

이런 모든 점을 고려할 때 울산의 역사를 미라클이라고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우연과 필연, 기획자와 실행자 모두의 노력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 석유 비축을 위한 기지로 출발해, 그 밑천으로 정유 공장을 짓기 위해 군사정부와 기업가들의 고려로 공업센터로 지정됐다. 눈이 밝은 정부의 기술관료가 중화학 요충지로 울산을 꼽았다. 그렇지만 그걸 실제로 실행했던 1970년대의 모험 자본가 정주영의 현대가 있었고, 잠을 설치면서 눈썰미를 가지고 도면과 기술을 베껴 오던 엔지니어들이 있었다. 최종적으로 저임금을 받으며 열악한 안전 요건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며 배를 짓고 자동차를 만들어 냈던 울산의 노동자들이 있었다. 만화 《드래곤볼》의 원기옥처럼 모두의 정성이 모여 노동자 도시이자 부자 동네 울산의 기적을 써낸 것이다. - 68쪽

지식 기반 경제 시대의 도래,
제조업 강국의 깃발은 내려도 좋은 것일까

울산의 위기가 표면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호황의 한복판을 거치며 내부에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석유화학 산업은 국제 수급 사이클이 바뀔 때마다 수익이 출렁였고, 자동차는 1998년의 대규모 정리해고를 둘러싼 노사 충돌을 비롯해 크고 작은 분규에 휩싸였으며, 호황기가 끝난 조선 산업은 2010년대에 들어서 구조조정에 직면했다. 이를 전후로 제조업 전반에 대한 위기감이 우리 사회에 퍼져 나갔다.
이 책의 2부는 울산과 한국 경제가 처한 제조업 위기론의 심층 분석이다. ‘제조업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으니 지식 기반 경제로 이행해야 한다’는 진단은 과연 적절하고 타당한가? 이제 한국은 제조업 강국의 깃발을 내려도 괜찮은 시점일까? 울산과 같은 산업도시의 쇠퇴를 방치하고서도 한국은 기후 위기와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퍼펙트 스톰’을 뚫고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아갈 수 있을까?
이런 무거운 질문에 대해 우선 저자는 한국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부터 다시 환기시킨다. 한국은 제조업으로 지탱되는 국가다. 제조업 세계 5대 강국일 뿐 아니라 국민총생산의 27.1퍼센트를 제조업을 통해 번다(2020년 기준). GDP 중 제조업 비중이 한국보다 높은 국가는 아일랜드밖에 없다. 고용 관점에서 보아도 한국은 총 고용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25퍼센트로 OECD 국가 중 독일(27%)과 이탈리아(26%) 다음이다(2019년 기준).

서울이나 분당, 일산 같은 수도권 신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공장이 어디에 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는 지천이 공업 지대다. 서울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수원, 평택으로 시작하는 산업 벨트가 나온다. 수도권의 상습 정체 구간으로 악명 높은 서부간선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독산, 소하, 시흥, 안양 모두가 공단 지역이다. 4호선 도시철도를 타고 남쪽으로 평촌만 지나면 곧 군포산업단지나 안산의 반월국가산업단지까지 공단 지대가 펼쳐진다. 1호선 경인선을 탄다면? 서울만 빠져나가면 부천에 거대한 산단이 있고, 인천에 도착하면 작업복을 입고 출퇴근길에 쏟아져 나오는 남동공단과 부평 GM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을 발견할 수 있다. - 74쪽

더 중요한 것은 기술 혁신이 산업 현장과 동떨어질 수 없다는 점이다. 저자는 한국의 성장 동력이었던 제조업을 방치하고서 기술 혁신을 논하는 허망함을 경계한다. ‘제조업의 위기’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되풀이되는 ‘탈추격 혁신 담론’만 봐도 그렇다. 이 담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산업화 초부터 당시의 제조 선진국인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서 도면을 베끼거나 완제품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해 원리를 익히는 역설계 방식으로 기술을 따라잡으며 이 자리까지 왔다. 그런데 한국의 제조업이 기본설계 역량이나 원천 기술이 없다 보니 여전히 양산을 위한 사고나 소재·부품·장비(일명 소부장) 하도급 업체를 쥐어짜는 방식으로만 산업을 영위하여 혁신의 한계에 부딪힌다. 이대로라면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제조 선진국의 원천 기술을 따라잡지 못하고 중국을 위시한 개발도상국의 저렴한 원가 경쟁에 쫓기는 샌드위치 신세를 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창의적인 ‘최초의 질문’을 갖고 기본설계를 해내면서 ‘빠른 추격자fast-follower’에서 ‘최초의 선도자first mover’로 변화해야 한다는 충고가 따라붙는다.”
그러나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변하라’는 일견 공자님 말씀처럼 지당해 보이는 이 담론 역시 생각보다 현실성이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요컨대 경제지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제조업 경쟁력이나 혁신 문제에서 생산 과정, 산업과 기업 간 연결망, 그리고 지역 사회에서 제조업의 중요성을 결합해서 사고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의 제조 대기업은 ‘최초의 질문’과 함께 세계 시장에서 이미 ‘최초의 선도자’ 위치에 서 있다. 당연히 기본설계도 수행할 수 있다. 심지어 최초의 선도자 기업에 소부장을 제공하는 기업들 중 1차 협력 업체의 역량도 점차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연구개발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한민국의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도 세계 1등이다. 제조 대기업이 주도하는 경제에서 그들의 경쟁력 자체는 문제없으므로 문제제기의 방향이 틀릴 때가 많다. - 80쪽

R&D 투자율 1위 국가인 한국이 20년이 다 가도록 앵무새처럼 혁신과 선도 담론만 되뇌며 여전히 위기론을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제 문제를 내부 구조에서부터 파악해야 한다. 울산-제조업-대한민국은 세포-조직-인체처럼 상호 유기적 관계망 속에서 파악해야 비로소 총체적 진단이 가능하다. 이것이 울산을 제조업이나 한국 경제 전반과의 산업 연관관계 및 공간 지리적 분업 구조를 통해 살펴보는 문제의식의 출발점이다.

울산의 딜레마,
공간 분업과 생산성 동맹의 와해

산업 현장 내부로 깊숙이 파고들어 관찰하면 울산과 한국 제조업이 위기에 빠진 여러 원인이 있지만 저자는 이를 크게 ‘노동의 공간 분업과 생산성 동맹의 와해’로 압축한다.

그런데 1990년대를 지나면서 두 가지 층위에서 구상과 실행의 지리적 분리를 추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우선 제조 대기업은 적대적 노사관계 때문에 파업이나 다양한 쟁의에서도 생산량과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의 숙련에 의존하지 않는 체제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5장에서 상세히 설명하겠지만 1987년 이후 노사관계가 적대적으로 흐르면서 기업은 노동자와 엔지니어가 현장에서 협업하기보다, 엔지니어가 현장에서 노동자와 일상을 공유하지 않는 생산방식을 채택했다. (…) 현대자동차는 점차 IT 기반 공정 관리 기술과 NC가공 기계 도입을 극대화하여 자동화를 촉진시키고 로봇 도입을 진행했다. 노동자가 반복 작업을 덜 맡아 개개인은 편했지만 현장에서 노동자의 중요성은 점차 줄어들었다. 이른바 ‘숙련 절약형 혁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 101쪽

‘공간 분업’은 산업혁명 중심지였던 영국의 여러 도시에서 관찰된다. 일례로 근대 방직 산업과 기계 산업의 메카였던 영국 맨체스터 지역에는 원래 공장과 설계실이 함께 있었지만 20세기 중반을 거치면서 본사와 설계실이 분리되어 금융과 정치의 중심인 런던으로 향했다. 1970~1980년대의 불황과 마거릿 대처 시절의 강경한 노조 정책을 거치며 맨체스터의 공장은 점차 쇠퇴했고 본사에서는 생산 거점을 인건비가 싼 아시아나 아프리카, 인도 등으로 옮겼다. 런던에서 근무하는 엔지니어는 전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오직 최적의 이윤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구상을 세웠으나 모공장인 맨체스터 공장은 그들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와 유사한 일이 시차를 두고 울산에서도 재현되었다. 더구나 그 근저에는 노사의 뿌리 깊은 상호 불신이 자리 잡았다. 요컨대 미라클 울산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기업인, 관료, 엔지니어, 노동자, 지역민들 간 ‘생산성 동맹’이 와해된 것이다.

이에 비해 현대자동차, 좀 더 넓게는 한국의 제조 업체는 II 유형으로 생산방식이 구성됐다. 노사 간 극도의 불신이 생산직을 배제한 채 엔지니어링에 기반을 둔 혁신을 강제한 것이다. 요컨대 모듈화, 자동화, 정보통신기술의 도입 등이 노동자를 배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됐다. 모듈화를 통해 싼 하청 업체의 노동력으로 인건비를 절감하고, 자동화를 통해 노동자의 숙련을 높이기보다는 단조로운 작업 커뮤니케이션만 높이는 방식으로 생산기술의 혁신이 주도된 것이다. - 161쪽

수 차례의 강도 높은 노사 대결은 양측에 커다란 트라우마를 안기며 결과적으로 담합적 노사관계를 형성했다. 이 담합으로 울산의 대기업 노조는 높은 임금과 복리후생, 고용 안정을 얻었지만 미래 자녀 세대의 신규 고용을 잃었고, 회사는 분규를 줄였지만 노동자를 생산성 향상 파트너에서 배제하는 기조를 본격화했다. 언제부터인가 대기업 노조가 국민의 신망을 잃기 시작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울산 노동자들이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할 때나, 그 이후 1991년 골리앗 투쟁을 할 때만 해도 회사와 정부와 보수언론이 비난하더라도 노동자를 지지하는 우군이 사회 곳곳에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를 지나면서 현대자동차를 위시한 울산 대기업 노동자의 파업에 더 이상 연대의 시선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 126쪽

결과적으로 2000년대 들어 울산의 노사는 각자의 입장에서 분주히 살길을 찾았으나 그 결과로 남은 것은 생산성 동맹의 와해와 치열한 각자도생의 싸움뿐이다. 영국 맨체스터가 겪었던 쇠락의 길을 울산이 답습하고 있는 셈이다.

피츠버그와 디트로이트,
기후 위기와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까지

그렇다면 울산과 한국 제조업에 다른 길은 없는 것일까? 공간 분업과 생산성 동맹 와해, 인구 감소라는 삼중고 트릴레마 속에 영국의 맨체스터나 글래스고, 스웨덴 말뫼 등의 도시가 걸었던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저자는 해외의 여러 선발 사례들을 검토한다. 세계 최대 자동차 도시였던 디트로이트와 1970년대까지 철강 도시로 명성을 떨치던 도시 피츠버그의 사례는 흥미롭다.
GM(제너럴 모터스), 포드, 크라이슬러까지 3개 자동차 회사가 있었던 디트로이트는 1950년대에 인구 150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고, 1970년대부터 일본 자동차에 밀려 고전하다가 2009년 GM의 파산까지 겪으며 쇠락했다. 피츠버그는 철강 산업 패권을 일본(일본제철)과 한국(포스코)에게 차례로 넘겨주게 되자 1985년 기업, 시 정부, 대학 등이 함께 참여해 산업의 다각화를 위한 보고서 ‘전략 21’을 제출하고 기업의 본사와 금융, 보건 의료와 교육, 첨단 연구개발 중심지로 발전시킨다는 구상을 채택했다. 덕택에 생산직 일자리 대신에 서비스 산업과 하이테크 부문의 일자리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도시 재활성화를 40년가량 진행한 지금 피츠버그의 인구는 감소했고, 도시 전체 관점에서 인종 분리와 소득 격차는 더욱 심해졌으며, ‘노동 계급 중산층’ 모델의 해체를 막지 못했다. 반면에 디트로이트는 지금도 생산직 비율이 20퍼센트를 넘길 정도로 노동자의 기존 일자리를 지켜냈다. 하지만 세수 감소로 도시 재개발과 적절한 재구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도심이 슬럼화됐다.

디트로이트와 피츠버그의 사례가 울산에 주는 함의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주력 제조업의 위기 상황을 전환의 관점에서 적극 대응하지 않을 경우 도시 자체가 쇠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생산기지로서의 입지가 약화되는 상황일 때 재정 문제를 겪으면서 적극적으로 도시 전환에 나서지 못하고 슬럼화와 인구 유출을 겪게 됐다. 다른 하나는 도시를 고도화하더라도 단단한 중산층을 육성할 수 있는 제조업 일자리는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 3대 산업이 여전히 건재한 울산에서는 울산의 현 위치에서 대안을 찾아내야 한다. 즉 세계 1위 조선소, 세계 최대 규모의 양산이 가능한 자동차 공장, 여전히 견고한 석유화학 콤비나트가 만들어 내는 역동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304쪽

저자는 해외 선발 산업도시의 과거 사례를 넘어 앞으로 다가올 RE100, 수소경제, 기후 위기 등 새로운 글로벌 환경 변화가 울산 3대 산업과 한국 경제 전반에 미칠 영향력을 폭넓게 검토한다. 국토 균형발전의 관점에서 부산, 울산, 경남의 3개 광역을 연결하고 통합하여 수도권 쏠림에 대응하자는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 역시 신중하게 필요성을 따져 본다. 이 책의 4부는 이처럼 한국의 산업도시들과 우리나라 제조업의 앞날, 대한민국호의 미래 비전까지 당면한 과제를 시공을 넘나들며 살펴본다.
맨체스터가 일방적 쇠락, 디트로이트와 피츠버그가 하나를 얻지만 다른 하나를 잃는 저진로 전략이라면 저자는 울산과 한국 산업도시들의 ‘고진로 전략high-road strategy’을 제안한다. 최근 진행되는 미국의 제조업 부활 정책이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제조업 고용 비중이 1979년 22퍼센트에서 2019년 9퍼센트까지 하락한 미국은 정리해고가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숙련 노동자가 현장을 떠나면서 생산성이 떨어졌다. 하지만 기업은 그럴수록 노동자를 훈련시키기보다는 자동화 설비 등 생산 기술에 대한 투자를 늘려 해결하려 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제조업은 경쟁력을 잃었고 산업도시가 모인 중서부 러스트 벨트는 노동자 정리해고와 공장 철수로 황폐화되었다.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은 제조업을 부활시키며 첨단 산업의 성과를 연계시키는 전략으로 기조를 바꾸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미국의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 및 학계는 ‘제조업 재활성화Remaking America, Revitalization of the US manufacturing’를 목표로 하는 다양한 정책을 진행했다. 해외로 나간 공장을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며 국내로 복귀시키는 리쇼어링reshoring도 시작했다. 제조업의 중요성을 다시 발견했기 때문이다. 제조업은 가장 많은 이들에게 고임금을 제공할 수 있는 산업이고, 소수 민족과 저소득층으로 하여금 사회적 계층 상승(이동성)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게 하는 안정적 산업이다. (…) 더불어 첨단 산업에 기대하는 혁신 역시 제조업의 연구개발과 생산 과정을 제외하고 이해할 수는 없다. - 373쪽

울산의 고진로 전략은 먼저 울산이 가진 현재의 산업, 기술적 역량을 면밀하게 재평가하여 지속 가능한 제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것이 바탕이다. 고진로 전략은 생산성 동맹의 복원을 필수적으로 요청한다. 노동자는 높은 임금과 복리후생을 보장받고, 기업은 생산성과 혁신 역량을 보장받는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둔 산업 전략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자본과 노동 차원을 넘는 지역과 정부의 역할도 요구된다. 구상과 실행의 분리, 연구와 생산의 분리라는 공간 분업의 문제를 국토 균형 발전 및 제조업 부흥의 관점에서 정부와 지자체가 재검토하고 지원책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기적 이해관계를 넘어 정부와 지자체, 대자본과 노동조합 등 모든 주체가 국가의 미래와 산업 전망을 함께 논의하는 정치적 거버넌스의 형성이 필수이다.

21세기 기후 위기·4차 산업혁명이라는 글로벌 수준의 전환과 저출생 고령화 및 지역 소멸로 대표되는 한국 사회 미증유의 재생산 위기 속에서, 다음 세대를 위해 제조업·에너지·국토계획의 전환에 대한 열린 토론의 장이 펼쳐지길 희망한다. - 417쪽

노동자 중산층의 꿈과 산업 가부장제의 그늘,
청년이 희망을 잃는 도시 혹은 나라에 대한 진단

워낙 방대한 주제와 첨예한 논쟁거리를 가득 담은 책이기에 보도자료에서는 주로 산업사회학, 노동사회학적 논의에 초점을 두고 소개했지만,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는 젠더, 계층 이동 사다리, 지방 소멸 등 정통 사회학 고유의 주제를 중심으로 읽어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제시한다. 사회적 갈등은 구체적인 역사와 경로, 살아 숨쉬는 이해당사자들의 대립에서 발생하는데 이 구체성을 선명히 부각시킨다는 점에서도 이 책은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한 예로 책에서 울산 쇠퇴의 한 이유이자 지난 고도 성장 시대의 그늘로 지적하는 ‘산업 가부장제’의 문제를 살펴보자. 산업 가부장제는 특정 산업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서의 불균등한 성별 분업 구조가 만들어 내는 가부장제를 의미한다. 울산은 생산직 노동자 외벌이로도 중산층 수준의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노동자 중산층’의 꿈을 실현한 도시이다. 그런데 이러한 발전 경로에서 울산은 산업 가부장인 아버지들의 일자리는 지켰지만 역설적으로 그 자녀들이 들어갈 일자리는 사라졌으며, 최근 10년간 여성 고용률은 전국 최저 수준을 맴돌았다. 일반적인 가부장제의 기준으로 볼 때 보수 정서가 강하다는 대구 경북보다 여성의 노동 시장 진입에 더 냉담했던 도시가 울산이다. 많은 공단을 주축으로 짧은 역사 속에 고도성장을 이루며 가정과 사회의 급속한 변화를 경험한 한국 사회에서 산업 가부장제에 관한 저자의 논의는 젠더와 계급 계층 갈등에 대해 현실에 기반해 이해하도록 한다.
대학은 또 어떠한가. 세계적 수준의 3대 산업이 포진한 유리한 환경이지만, 산학연 협동의 모델이 될 수도 있었을 울산의 대학들은 정규직을 뽑지 않는 지역 노동 시장과 거의 대부분의 R&D 연구소가 천안 분계선 너머에 존재하는 현실에서 지방대학의 한계에 갇히고 만다. 대학을 바탕으로 주 정부의 지원과 벤처 캐피털이 결합해 첨단 산업의 성장을 선도한 실리콘밸리와 극명히 대조되는 사례이다. KTX로 두 시간이면 닿을 좁은 국토 안에서 지방 소멸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청년이 발을 붙이지 못하고 여성이 떠나는 도시는 좀 더 의미를 확장해 보면 오늘의 한국에 대한 진단이기도 하다.
각자는 열심히 달려왔는데 결과적으로 모두가 힘든 현실을 우리는 언제까지 그대로 두고 볼 것인가? 아버지가 젊은 시절 울산 용접공이었고 자신도 대학 졸업 후 조선소에서 일했던 저자는 “평범한 노동자도 중산층이 될 수 있는 사회의 꿈을 포기해도 좋은가”라는 물음을 독자들에게 던진다. 울산이라는 한 산업도시에서 출발해 각자도생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의 현실과 과제를 묵직하게 파고드는 이 문제적 저작에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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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수레 202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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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곧 산업 현황을 바로 보여주는 리트머스지 같은 도시이다. 저자는 과거의 울산부터 현재까지의 도시 성장과 쇄락이유를 잘 설명하고, 어떻게 하면 다시 젊은 도시가 될 수 있을지 처방한다. 한국이 곧 울산이다. 우리나라의 재도약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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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니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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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처가에 가면 항상 아버님은 울산의 중화학공업을 상징하는 공장지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끗하게 관리되는 태화강 대공원을 자랑스레 보여주시고는 한다. 하지만 20세기 한국경제의 성장모델이었던 중화학공업모델이 21세기에도 지속될지에 대해 저자는 의문을 표한다. 21세기 울산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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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ilbird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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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은 그저 노동자와 전면전을 피하면서 설비를 자동화하고 정보통신장비를 늘리고 조직을 재편하면서 생산 합리화를 수행했다. 노동조합은 생산 합리화에 따라 생산속도가 빨라지는것만 문제 삼았다. 하지만 생산 합리화가 기대하는 결과는 지난장에서 살펴봤던 노동자의 숙련이 필요 없는 작업장이다. 숙련이 사라진 작업장만 가득한 지역을 무엇이라 하겠는가. 이런 산업도시는 그저 제품만 찍어 내고 연구개발이나 현장의 혁신이 벌어지지 않는 단순한 ‘생산도시‘라 불러야 한다.- P192
노동자의 숙련과 회사의 처우를 교환하는 생산성동맹은 이미 와해된 상태였다. 정규직이라는 안전판이 없는 상황에서 생산직 노동자는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떠나고 쫓겨났다.- P200
산업 가부장제라는 말은 낯선 말이고, 기존의 가부장제와는 좀 다른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다. 산업 가부장제는 특정 산업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서의 불균등한 성별 분업 구조가 만들어 내는 가부장제를 의미한다. 한편에서는 전통적 가부장제가 여성의 고학력화와 화이트칼라 및 전문직 노동시장 참여를통한 ‘맞벌이 모델‘로 무너지고 있다. 그에 비해 앞서 설명한 공간 분업과 국가의 공간 계획으로 조성된 산업지구에 역사적으로 누적된 가부장제가 바로 산업 가부장제라 할 수 있다.- P208
그러나 청년층의 고용 상황을 보면 ‘미래‘가 없음을 더욱더 직감할수 있다. 연령대별로 수도권(서울,경기)이나 동남권(부산, 경남)의 다른도시와 비교했을 때 울산의 40대 고용률은 견조한 수준이다. 30대도210tec비교적 괜찮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울산의 20~29세 청년 고용률은 20년 동안 계속 하락해 왔다. 청년들에게 적절한 일자리가 생기지 않으며 미래 전망이 불투명한 것이다(도표 3.7 참조).- P221
따라서 울산의 일자리 문제의 본질은 총량 부족이 아니라 화이트칼라 일자리의 부족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화이트칼라 일자리부족은 일시적인 시장 상황에 따라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4장에서 분석했던 공간 분업에 의해 점차 생산도시로 전락해 가는 울산의 경로에의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구직 수요와 구인 수요 간의 구조적 격차를 ‘구조적 미스매치‘라 부른다. 울산을 이끄는 3대 산업의 구상 기능이 계속 수도권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 기존 대기업 일자리에서 사무직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P229
청년들은 현대중공업의 사내 하청 업체 비정규직, 현대자동차의사내 하청 아르바이트, 그 외 자동차·조선·석유화학 회사의 부품·모듈 하청 업체(N차 벤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세상 무섭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또 회사의 본공(상용직·정규직)이나 사무직으로 일하는 ‘형들‘을 보면서도 일이 고되고 늦게까지 일해 잠만 자는 모습, 벌이가 부족해 가정을 꾸리기에 빠듯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그 길을 ‘미래의 진로‘로 선택하지 않게 된다.
최근에는 쿠팡·컬리 등 e-커머스 회사의 물류센터가 양산과 김해에 크게 세워져 다양한 형태의 플랫폼 노동이 청년 세대를 유혹한다.
청년들은 공장보다 벌이가 더 좋거나, 시간을 좀 더 유연하게 쓸 수 있는 플랫폼 노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공장 노동은 점점 더 취업에서 ‘진로‘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아르바이트 후보지에서도빠지게 됐다.- P235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떠나는 것이 별스럽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산업도시 울산과 동남권의 창원과 거제에서 청년이 비전을 찾지 못해 서울로 떠나는 일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산업도시 전체의 위기를 상징한다. 수많은 청년이 서울수도권이 아니어도성실하게 일하면 살만한곳, 국가와 대자본이 수많은 노동력을 흡수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곳이 바로 울산으로 대표되는 산업도시였기 때문이다. 청년은 자신들이 배운 것을 발휘할 수 있는 대졸 일자리의 부족앞에서 울산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다. 산업도시의 미래 전망이 토대부터 흔들리고 있다.- P244
외벌이 남성 생계 부양자 경제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부터 1998년 IMF 전환기까지 잠시 ‘환상‘처럼 떠올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IMF 이후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여성이 일자리를 찾아 사회로 나왔다는 서사가 있다. 하지만 그 전에도 여성은 ‘야쿠르트 아줌마‘부터 시작한 각종 방문판매원이나 미싱사 같은 다양한 경공업 노동을 전업과 부업의 형태로 수행해 왔다. 그러다 남성 위주 정규직 화이트칼라 직군이수도권에서 늘고 산업도시에서 남성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면서 일시적으로 남자가 돈을 벌고 여성이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전업주부‘로 불렸을 따름이다. 노동사회학의 개념으로 표현하자면 다양한서비스 산업과 비공식 경제, 그리고 경공업 근처 외부 노동 시장을 계속 맴돌았던 것이 해방 이후 대다수 한국 여성의 노동 경험이었다.‘‘- P256
금융 산업의 클러스터는 서울 여의도와 강남-역삼역, 광화문을지로 반경 5킬로미터 안에 모여 있다. 미디어 산업은 서울 여의도와 상암DMC 주변에 모여 있다. IT 산업도 강남역-판교, 구로-수원 광교인근에 집결해 있다. 유통이나 무역, 항공 회사의 본사 모두 서울에 모여 있다. 전국의 실력 있는 고등학생은 42개에 달하는 서울 소재 대학으로 집결한다.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를 합치면 2500만이 넘는다. 지식의 생산, 재화의 생산, 노동력의 공급, 막대한 소비자가 있는 것이다. 서울수도권은 모든 것이 상승작용을 하며 입지의 가치를 높인다.- P261
‘여성‘ 일자리를 만들든, 기존의 고임금 일자리 중 여성이 참여할수 있도록 채용에서 차별을 철폐하든, 둘 다 진행하든지 이젠 미룰 수없는 상황이다. 최소한 상황 인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없다. 아빠들이 피땀 흘려 일한 돈으로 공부를 마친 딸들이 묻는다. "왜울산에 살아야하죠?" 이 질문에 울산은 답하지 못하고 있다.- P269
그러다가 최근 10년간 산업도시를 되살려 내는 조치에 한창이다. ‘하르츠 개혁‘, ‘슈투트가르트 협약‘, ‘산업4.0‘(이하 독일), ‘제조업 르네상스‘, ‘IRA‘(이하 미국) 등 산업 정책, 기술정책, 혁신 정책, 노사관계 정책, 지역 정책을 망라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 내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 이유는 지역에 제조업이 존속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이 된다는 점에서다. 그리고 제조업처럼 평범한 수많은 사람을 균등한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는 산업이 없기 때문이다.- P286
성평등을 고려해 전망 있고 안정적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노동시장정책, 달라진 학력 구조를 반영하는 직군 구조의 설계, 원하청 간이중노동구조가 만드는 차별의 해소라는 과제가 모두 앞에 놓였다. ‘평범한 노동자 중산층 3대‘를 이루기 위해 수면 위로 드러내야 하는 숨은가정이다.- P290
문제는 산업도시 울산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빠른 처방을 해야 할 이유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데 있다. 제조업 내에서 중화학공업의 입지가 줄어들고, 중화학공업 가치사슬 내부에서 울산 사업장의 입지가 줄어들고, 울산 사업장 내부의 노동시장 이중 구조가 더 악화되는 상황에서 산업도시 울산에 무엇을 기대하고 자금을 투여하거나 투자하겠는가. 앞선 위기에서 정부와 대기업이 자금을 지원하고 투자했던 것은 울산의 ‘중요성이 여전히 공고하고 앞으로 커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다. 제조업 관점에서 울산에 남은 것은 기존의 설비투자라는 ‘매몰비용‘과 기존의 제조업 생태계가 보유한 ‘일자리‘ 개수정도다. 뿌리기술, 혁신적인 기술 기업, 연구개발 기반 모두 울산의 취약점이다. 심지어 울산의 남성 청년이 정착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키울안정적인 일자리 전망도 없다. 물론 여성 일자리의 전망도 없다.-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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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nomics 202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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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울산에서 나고 자랐다. 울산이 고향이라 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뻔하다. 그리고 울산 출신들의 대답도 대체로 뻔하다. “노잼도시”라는 자조와 “그래도 우리 GDP가 1등(1인당 GRDP)”이라는 자부심. 많은 청년들에게 ’울산은 노잼이지만 그래도 부자인 산업도시‘ 정도로 여겨진다. 이러한 인식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과연 청년들이 떠나는 노잼도시는 산업도시는 미래에도 굳건할 것인가.” , “우리는 2030년, 2050년에도 지역 GDP 1등을 약속할 수 있을 것인가”.신간 <울산 디스토피아>의 답변은 단호하다. 울산의 미래는 어둡다. 저자 양승훈은 대우조선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사회학자이다. (전작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저자는 도시사, 경제지리, 노동•산업사회학, 면접조사 등의 틀을 통해 산업도시 울산을 정밀하게 조망한다. 구성은 구조적이고 내용은 디테일하다. 문제 진단을 넘어 개선 방향에 대한 제언도 빼놓지 않았다. 산업도시 울산의 미래에 빨간 불이 켜진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요인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기업의 구상 기능이 지역을 떠나고 있다. 엔지니어와 노동자가 현장에서 밀착하며 노동이 혁신을 이끌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고학력 엔지니어의 비중이 보다 중요해진 시대다. 이런 이유로 기업의 구상 기능은 수도권으로 떠났고, 울산은 생산기지 이하로 전락하고 있다. 둘째, 적대적 노사관계가 빚어낸 생산방식과 노동 이중구조의 문제다. 노조를 불신한 기업은 노동자의 숙련을 중시하자 않는 생산방식을 채택했다. 정규직 중심의 노조는 울타리 바깥의 노동자와 연대하거나 신규 고용을 창출하는 데 무관심하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 하청 노동이 확대되고, N차밴더 구조가 만들어졌다. 울산에선 과거와 같은 안정적인 생산적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셋째, ‘산업가부장제’로 정의되는 고용시장 문제다. 남초 산업도시인 울산에서 여성의 커리어는 매우 취약하다. 통계만 보아도 남녀 임금격차가 극심하며, 청년 대졸자가 갈 만한 사무직 일자리도 부족하다. 이런 세 가지 요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하지만 울산 사람들은 미래에 관해 ’큰‘ 위기감을 느끼진 않는다. 물론 모두가 ‘울산은 청년들이 떠날 만한 곳이고 언젠가 디트로이트처럼 될 것’이라 얘기하지만, 언젠가는 ‘언젠가’ 일뿐이다. 적어도 현시점에서 울산의 3대 주력 사업(자동차-조선업-석유화학)은 견고하며, 수출 제조업 대한민국은 그런대로 잘 나가는 중이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하듯, ”울산은 현재와 미래의 관점에서 서서히 질식하는 중“이다.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제대로 된 대안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 정치권은 부울경 메가시티나 전략적 산업정책 같은 구상에 힘을 못 쓰고, 그린벨트 풀어 산업단지 더 유치하겠다는 정도의 현상유지적 해법에 그치고 있다. 기본적으로 시민사회와 정책 생태계 전체가 위기를 돌파할 만한 해법을 찾는 데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울산 문제는 ‘저성장 - 제조업 위기- 지방소멸 - 노동 이중구조 - 초저출산’ 등으로 얽혀있는 대한민국의 구조적 위기와 맞닿아 있다. 조금만 들춰보면, 우리는 울산 문제가 한 도시만의 문제가 아닌 산업화 이래 대한민국이 걸어온 제도적 경로의 문제임을 알 수 있다. 1등 산업도시인 울산조차 무너진다는 것은 지방/비수도권 권역의 몰락을 상징한다. ‘성실히 일하면 잘 살 수 있다’는 노동계급 중산층의 약속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울산의 위기는 전환기 대한민국 경제의 위기이다.‘울산 디스토피아‘는 ’코리아 디스토피아‘의 첫 번째 에피소드다. 지금의 한국정치와 초저출산 그리고 K문화의 영광은 ‘디스토피아 시리즈의 프리퀄’ 격이다. 성장 동력은 떨어지고 양극화는 극심해지며 그 과정과 결과는 각자도생과 포퓰리즘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나라의 미래는 어디로 흐를 것인가? ‘그래서 어쩔 거냐’는 푸념을 넘어, 구조개혁과 사회적 합의를 구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할 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울산 지역사회를 넘어, 여기저기서 많이 읽히길 소망한다. ( 저자는 부울경 메가시티, 3대 제조업의 미래에 관한 얘기도 빼놓지 않고 있다. ) <울산 디스토피아>가 우리 모두의 미래에 관한 풍성한 논쟁을 만들어 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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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ah 2024-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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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GM이 떠난 빈 중소도시의 쇠퇴를 취재한 르포 《실직도시》가 출간되었었다. 한때 현대중공업과 한국지엠의 공장이 세워지며 많은 노동자들이 유입되었지만 경기의 쇠퇴와 함께 중공업이 문을 닫고 지엠이 미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며 군산은 급격하게 쇠퇴의 길을 걷는다. 기업과 공장이 사라지자 사람들도 떠나가고 남은 몇몇의 사람들만 예전의 활기를 그리워할 뿐이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4년, 이제는 다른 도시를 쓴 르포가 출간되었다. 2021년 군산에 대한 르포보다 심각하다. 2024년도에는 불안한 울산의 미래를 예측한 르포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이다. 울산이 어디인가?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석유 화학등 대기업의 제조업 시설이 한 곳에 밀집된 공간이다. 그런데 왜 저자 양승훈 교수는 '울산'을 디스토피아로 말했을까? 아직까지 전국 2위의 GDP를 기록하고 있는 울산의 미래가 불안하다고 강조하며 울산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을까? 지역 경제가 살고 비슷한 중산층들이 살아날 수 있는 해결책. 그 답을 전형적으로 갖고 있는 도시의 표본이 바로 '울산'이다. 대기업 공장 정규직으로 근무하며 높은 임금을 받으며 중산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탄탄한 제조업이 밑바탕이 되고 있었다. 평생 굳건할 건만 같았던 '울산'이 왜 불안한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2021년 출간되었던 《실직도시》가 도움이 된다. (저자는 다르다). 군산은 왜 한 순간에 쇠퇴하고 말았는가? 방준호 기자가 쓴 <실직도시>에서 군산의 역할이 바로 '지엠'의 생산기지였기 떄문이라고 말한다. 지역이 대기업 생산 기지만 가지고 성장하는 모델은 10년짜리라고 봐요. 자동차도 조선도 결국 산업 사이클이 있고, 하강기에 접어들면 의사 결정 기구 같은 핵심적인 기능이 없는 지역 생산 기지부터 잘려 나가죠. <실직도시> 중에서 군산은 미국 지엠회사의 '생산 기지'일 뿐이었다. 한때 호황기를 누릴 때에는 여러 곳에 투자를 하며 공장을 세우지만 불황기에 접어들면 가장 먼저 축소되는 부분은 '핵심 기지'가 없는 '생산 기지' 즉 공장부터 가장 먼저 철수한다. 지엠 또한 사업이 어려워지며 물건만 만들어내는 군산의 공장을 가장 먼저 철수했다.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의 저자 양승훈 교수는 왜 울산이 바로 군산과 같은 이 전철을 밟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용어를 바로 '구상과 실행의 분리'라고 말한다. 예전에는 자동차나 선박을 구상하는 엔지니어들이 현장중심주의라서 공장과 밀접한 위치에 있었다. 하지만 이제 구상하는 엔지니어가 있는 연구소는 수도권으로 옮겨오고 울산은 이제 공장만 있는 즉 '생산기지'만 덜렁 남아있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점점 수도권으로 집중되는 현실에서 공장마저 수도권으로 이전할 수 있는 현실. 이 공장마저 없게 되면 울산의 경제가 몰락하는 건 한순간임을 이미 앞선 군산의 예에서 우리는 볼 수 있다.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에서는 울산의 미래가 불안할 수 밖에 없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성, 생산직, 대기업 정규직 이 세 가지는 이제까지 울산 경제를 떠받들며 많은 노동자를 중산층으로 만들어 준 키워드였다. 공장이기에 대부분의 노동자가 남성직이며 대기업 정규직으로 생산직에서 근무하는 도시. 그들을 중산층으로 만들게 한 이 세 가지가 이제 역으로 울산의 미래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공장은 많지만 그 외 일자리가 없는 도시. 여성의 일자리가 없으니 부산이나 수도권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여성들. 대기업 정규직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이주 노동자로 대체되며 점점 좁아지는 청년 취업률. 막을 수 없는 수도권 집중 현상과 날로 변해가는 국제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울산의 현실을 암울하게 전망한다. 수도권 집중현상과 국제 추세는 막을 수 없으니 이제 울산의 쇠퇴는 막을 수 없는가? 당연히 그럴 수 없다. 하지만 문제를 안다면 답을 찾을 수 있다. 울산을 강하게 막아선 것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한다. 자신들의 리그를 강하게 지키며 정규직 자리에서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청년을 위한 정책으로 갈 수 있도록 변화하고 공장만 모아 있는 제조업 중심에서 '구상과 실행'의 공간이 함께 할 수 있는 연구 시설의 확충해야 한다고 말한다. 연구소가 떨어져 있는 생산기지는 결국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기에 지속 가능한 제조업으로 되기 위한 엔지니어링 클러스터를 만들고 부산,울산, 경남등 함께 동남권이 함께 연대해야 함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해결책은 과연 실현가능한가? 대기업들이 수도권에 집중되는 현실을 막기는 힘들다. 엔지니어링이 있는 연구소를 만드는 것 또한 대기업의 결단이 필요하다. 부산,경남, 울산등의 연대도 각 지자체의 이해 관계로 실현되기 어렵다. 지자체, 정부, 기업 모두가 함께 풀어가야 하는 이 과정은 잘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복잡하지만 지역 소멸되어 가는 이 현실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숙제임을 말한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울산'이 부러웠다. 이제 지역이 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다며 포기하는 이 시대에 지역도시의 미래를 누군가가 걱정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있기 떄문이었다. 또한 아직까지 대기업의 공장들이 굳건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나마 울산에서는 해결해나갈 미래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2021년 군산의 암울한 현실이 점점 퍼져가며 이제는 울산의 미래까지 위협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예전에 읽었던 《실직도시》를 다시 펼쳐들었다. 그리고 이 군산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웠나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우리는 이미 군산의 현실을 보았음에도 똑같은 길을 걷고 있는 울산의 현실을 보며 군산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기는 커녕 후퇴하는 한국의 현실을 보게 된다.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위기 의식. 지역이 소멸하는 걸 그대로 방치하면 우리의 사회는 더욱 큰 재난의 쓰나미로 다가올 것임을 저자는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에서 말한다.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나만 아니면 괜찮은가? 더 늦기 전에 우리 모두의 진지한 고민과 해결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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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wsc75 202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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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울산은 ‘대한민국의 산업 수도’로 불린다. 우리나라 수출 산업의 최대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어려서부터 나고 자랐던 남구는 석유화학, 동구는 중공업, 북구는 자동차 산업을 대표하는 지역을 나누고 있다. 나 역시 울산의 이런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30년 넘게 석유화학 회사에서 근무 하셨고, 와이프도 오랜기간 현대 중공업에서 근무하다 첫째를 가지고 얼마 후에 퇴사했다. 대학 동기, 선·후배들 대다수도 현재 울산에서 자동차, 중공업, 석유화학 분야에서 근무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SK이노베이션 이 세 기업이 대표하는 각 분야는 울산의 지금을 만들었고 나에게도 의미가 깊은 기업들이다.우리나라 대표적 공업도시 울산은 지난 60여 년간 동아시아에서 가장 발전한 산업도시다. 인구 115만의 울산은 오랫동안 지역내총생산(GRDP) 전국 1위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수출액 기준으로 ‘산업의 쌀’ 반도체 생산 중심 경기도와 철강, 석유화학, 현대자동차를 수출하는 충청남도에 이어 대한민국 세 번째 가는 도시이다. 하지만 도시의 활력이 내가 어릴적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라지긴 했다. 어쩌면 쇠락의 징후로 볼 수도 있다.청년층 신규 고용의 감소, 장년 노동자 증가, 퇴직자 중심의 도시, 지역 대학의 울산 3대 산업 인재 공급의 한계, 연구소와 엔지니어링 센터의 수도권 이전, 청년과 여성의 도시 이탈에 따른 인구 감소, 4차 산업혁명에 의한 제조업의 쇠퇴, 기후 위기 등 전통 제조업 중심의 울산은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이 책은 울산이 지금 모습대로 미래에도 지속 가능한가에 대해 이야기 한다. 울산이 직면한 문제들의 대책과 해법을 고민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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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anistorian 202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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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업화 시대를 견인했던 산업도시들은 ‘노동자 중산층’의 산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미래는 지속가능한가?




‘조선소 출신의 산업사회학자’로서 전작에서 산업도시 거제를 심층 탐구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산업수도’ 울산의 심층 분석에 나섰다. 저자의 문헌 연구뿐만 아니라 심층 인터뷰 조사를 통해 통찰의 날카로움을 더했다. 저자는 ‘생산성 동맹’의 와해가 야기한 비정규직의 증가와 N차 하청구조의 심화, ‘산업 가부장제’에 따른 젠더 분업의 불균형으로 인해 청년, 여성, 고학력 인구가 울산을 떠날 수밖에 없으며 울산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사실 도시계획을 공부하고 있는 평자의 입장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저자가 ‘감사의 말’에서 본인이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비판적 경제지리학’적 관점이다. 본 서평은 이에 조금 더 집중하도록 하겠다.

첫째, 저자는 도린 매시(Doreen Massey)의 ‘노동의 공간적 분업(spatial divisions of labour)’에 의거하면서, 한국도 1990년대를 지나면서 제조업의 연구개발·설계의 기능이 수도권으로 점차 이전했고 울산은 결국 ‘말단 생산기지’로 추락했다고 말한다. 비단 울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지역 불균형 실태의 한 원인을 꼬집는 중요한 비평이다.

둘째, ‘동남권 메가시티’의 가능성과 한계를 짚은 것이다. 저자는 이 프로젝트가 교통·물류망 개편이라는 공간 혁신과 산학연 연계망이라는 혁신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울산, 부산, 경남의 강점을 결합시킴으로써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을 가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지역정치의 이해관계는 이를 좌초시켰고, 울산은 현재 포항과 경주를 아우르는 ‘해오름 동맹’을 통해 자력갱생을 도모하고 있지만 저자는 이것만으로는 울산의 근원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서술한다.




저자는 ‘위기’는 또 다른 ‘기회’일 수 있기에 두 가지 측면의 대안을 제시한다. 하나는 울산시와 지역 산업계에 요청하는 전략이고, 또 하나는 국가(중앙정부)에게 기대하는 전략이다. 저자는 후자의 전략에 대해서 국가가 제조업 고도화 정책과 함께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주기를 주문한다.




현 윤석열 정부는 지역 균형발전이 곧 국정철학인 ‘자유’와 ‘공정’과 결부되는 것이라면서 ‘지방시대’의 중요성을 주창했다. 하지만, 정부가 ‘미래 먹거리’로서 적극 지원해 주기로 선포한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는 경기 남부에 입지하게 됨에 따라 ‘지방시대’의 구호는 무색해져 버렸다. 과연, 산업수도 울산은 지방소멸의 시대에서 이전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협찬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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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비상 202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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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개인적인 질문에서 시작하자.지역경제와 인구경제 이슈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울산과 지역소멸 이슈를 접할 때마다 이상함을 느낀다.
울산을 포함한 동남권 제조업 도시들의 몰락과 지역소멸 문제가 심각하다고는 하는데,
데이터를 찾아보면 통념과 다르게 나오거나 의아하게 나올 때가 많다.

먼저 울산의 이상한 점부터 이야기해보자.

1) 첫째, 울산은 비수도권에서 이상할 정도로 GRDP와 소득 수준이 높다. 그렇게 서울로 집중되서 문제라고 하는데, 울산은 GRDP나 소득 기준으로 서울과 비슷하거나 더 높다!
2) 발전한 광역시라 중소도시/군을 포함한 도 지역에 비해 남초 현상이 옅어야 하나 남초 현상이 도 지역 급으로 심각하다. (위의 첫번째 사진) 다른 대도시들은 도에서 여성을 끌어들여 남초 경향이 도에 비해 옅은 편인데, 울산은 예외이다.
3) 발전한 도시임에도,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출이 제일 심각한 축이다. (위의 두번째 사진)
4) 분명히 조선업은 위기를 넘겼다던데, 노동시장에서 들려오는 괴담들을 보면 정말 위기를 넘겼나 싶다.

더 나아가서 한국의 지역격차 문제도 사실 이상하다.지방 소멸이 어떠니 수도권-지방격차가 심각하니 하는데,
한국의 지역격차는 사실 OECD에서 제일 낮은 축이다! GRDP, 소득 어떤 기준으로 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왜 사람들은 지역소멸 문제가 생각하다고 보는 것일까.

그러던 나는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알게 되어 서평 신청을 했고, 인상깊게 잘 읽었다.
고백하자면, 예전부터 이쪽 이슈에 관심이 많았기에 들어본 이야기가 많았지만,
잘 쓰여 있어서 내용을 다시한번 포괄적으로 정리해볼 수 있었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울산을 위시한 한국의 동남권 도시들은 제조업을 발전시키는 데 성공하여 한국을 제조업 강국으로 만들고 고도성장을 일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울산은 임금이 꽤 높은 제조업 대도시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지속가능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무너지고 있다. 투쟁과 불신으로 가득한 노사관계는 탈숙련 자동화에 치중된 산업구조를 만들어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어렵게 만들었다. 대기업들은 고임금을 주지만, 이들이 사람을 안 뽑는 상황에서 원하청 관계의 악화로 남은 일자리는 저임금 하청 일자리뿐이다. 기업과 대학 간의 연계는 충분하지 못하며, 혁신을 이끌어야 할 과학기술 인력과 연구소는 죄다 수도권과 충청지역에 위치하여 현장 공장과의 괴리가 생겼다. 남초 고임금 제조업에 치중된 산업구조로 여성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는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외벌이 가족이나마 가능케 한 가부장적인 고임금 남성 외벌이 모델은 남성 제조업 일자리의 열화로 수명을 다했다. 그렇게 남녀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울산을 떠나고 있으며, 이 문제는 구조적이기에 일시적인 위기 극복 정도로 회복할 수 없다. 울산은 이대로라면 구조적인 몰락은 피할 수 없다!

GRDP/소득이 높다는 통계 이면에 숨어있는, 원하청 착취에 기인한 남성 외벌이 고임금 일자리로 겨우 지탱되어온 가부장적 가족 모델. 그 모델이 무너지는데, 여성이 취직할만한 제조업 밖 좋은 일자리는 전무한 상황.
청년들은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고 울산을 떠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위에서 언급한 울산의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GRDP/소득으로 드러나지 않는 한국 지역격차의 문제를 곱씹어볼 수 있게 되었다.

개인적인 의문을 많이 푼 것을 넘어, 전반적으로 기대를 한참 뛰어넘은 명저이다.
비수도권의 쇠락, 제조업 위기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 필독서이다.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첫째로, 울산의 구조적 문제를 매우 포괄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노사관계, 산업구조, 기술과 혁신, 국제정세, 젠더 이슈, 지역경제, 대학과 산업 등등. 뒤에서 상술했듯이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문제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개론서로서 매우 적합하다. 머리속에 큰 그림을 쉽게 그릴 수 있도록 쓰였다.

두번째로, 전반적인 경향성을 강조하면서도 경향 내부에 숨은 이질성을 놓지지 않는다. 이는 저자의 깊은 식견과 공정한 견해를 드러낸다. 세 가지 예시만 들자면
1) 울산의 일자리와 가족 형성 문제를 남성과 여성 모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
2) 울산의 대학을 단순히 지방대로 싸잡지 않으며, 과학기술 중심의 UNIST와 종합대학교인 울산대의 차이를 분명히 한다. UNIST가 성과만 보면 국내 탑 티어급 대학인데, 왜 지역에서 비판을 들으며 지역경제 혁신을 뒷받치는 데 한계가 있는지를 잘 알게 만들었다.
3) 울산을 제조업도시로 유명한 동남권의 포항/창원시와 비교하며 울산의 특수성을 부각시킨다. 그리하여 울산을 한국 제조업 도시들을 대변하는 예로 쓰면서도, 울산 특유의 분위기를 놓치지 않는다.

세번째로, 울산 더 나아가 동남권 산업도시들의 분명한 위기를 이야기하면서도, 한국 제조업의 몇몇 성취와 잠재력을 인정하여 위기 극복의 대안으로 삼으려는 멋진 태도를 보인다. 보통 이런 주제의 사회이슈 고발 책은 명료한 비판을 위해 한국을 과도하게 깎아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러한 경향의 예외이다. 한국의 눈부신 성취를 인정하며, 다음 시대를 위한 어젠다를 자신있게 내세운 책 『추월의 시대』 공저자의 후속작답다.


물론 책에 아쉬운 면모도 여럿 있었다.

첫째, 서구 선진국과 한국을 비교하면서, 경제 발전 시점의 차이에 덜 집중하였다. 이 책은 왜 한국 제조업 벨트가 유럽 도시들에 비해 숙련성이 약하며 자동화에 집중하였는지를 노사관계와 원하청 관계, 미국의 트렌드에 치중하여 서술하였다. 비록 포괄적인 분석이긴 하나, 한국은 신흥국이며 유럽은 기성 선진국이었다는 구도를 간과한 듯 하다. 유럽은 기술 수준이 낮던 시기에 산업을 발전시켰고 신흥국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한국은 기술 수준이 고도화된 뒤늦은 시기에 산업을 발전시켰고 유럽을 앞서야 했던 상황이다. 저자는 유럽의 고숙련 저자동화 경로를 따라할 수는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살짝 동경하는 듯 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유럽의 경로대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이 요소를 감안하지 않으면, 한국 입장에서 과도하게 가혹한 평가가 될 소지가 있다고 본다.

둘째, 베이비붐 세대(광의의 관점에서 1955-1974년생)의 은퇴가 울산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인구 문제는 매우 심각하고, 지역의 흥망성쇠와도 깊게 관련된 문제이다. 그런 면에서 곧 들이닥칠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언급이 부족한 건 아쉽다. 물론 이 문제에 저자가 어떤 식으로 답할지는 예상되긴 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는 커녕, 저임금 하청일자리와 자동화된 공장만 남긴다고 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 부분을 자세히 언급하지 않는 건 아쉽다. 홍춘욱은 『인구와 투자의 미래 확장판』 신간에서, 호봉제 체제를 통해 과도한 고임금을 받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가져다줄 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강조한다. 이 낙관론에 개인적으로는 100% 동의하지 않지만, 검토해볼 만한 주장은 된다고 본다. 인구 문제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셋째, 울산의 삶의 질과 인프라에 대한 언급이 부족했다. 물론 울산시의 몰락을 제조업에 집중하여 분석한 책이기에, 교통, 문화산업 등에 대한 언급이 적은 건 불가피하다. 하지만 울산 위기의 중심에 놓인, 울산 여성들이 일할 괜찮은 일자리(특히 고임금 서비스업)가 부재하다는 문제를 인프라와 무관하게 놓을 수 있을까? 많은 한국의 비수도권 거주자들은 수도권에 비해서 일자리 뿐만 아니라 인프라나 삶의 질 수준이 낮다고 불평한다. 만약에 보건, 문화 인프라가 울산에 더 지어진다면, 그 인프라는 특히 여성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개연성이 높다. 철도 등 교통 인프라를 더 지을 경우(당장 올해부터 태화강역을 지나는 중앙고속선과, 강원도 영동과 부산을 잇는 동해선이 지어질 예정이다) 동남권 벨트의 시너지 효과를 증폭시킬 수 있다. 그러나 실패로 끝났다고 결론짓는 메가시티 담론에 살짝 언급된 후 더 나아가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울산은 돈을 많이 버는 도시인데 삶의 질은 그만큼 높은지 고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구 100만을 넘었음에도 제대로 된 도시철도 하나 없는 도시가 울산이다. 그리하여 차를 끌게 반강제하는 도시 문화는 청년, 특히 여성에게 매력을 낮출 개연성이 높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훌륭한 저서이다.
이 책이 영양가 있고 포괄적인 지역경제 논의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제조업 몰락과 지역 소멸 문제는 그 자체로 사회문제이지만, 사회문제를 넘어 한국이라는 운명공동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기에.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서평단으로 선정되고 책을 지원받아 리뷰한 것입니다. 좋은 책 소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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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수레 2024-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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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 자란 곳이 부산이라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 많은 숫자가 창원, 마산, 울산, 포항으로 흩어졌다. 세상 어렵던 IMF를 지나 그래도 다들 자리잡고 가정을 꾸려나가고 이제 중년이 되었다. 그 수십년 사이에 TV를 통해 조선소 노동자들의 파업 뉴스도 보았고, 자동차 연구개발 직종으로 입사한 후배가 남양주에 자리 잡고 양재에서 일하는 다른 후배들도 늘어났다. 지방대에 정원미달과 후배들 입학 성적이 처참하게 낮아짐을 건너 듣고 놀랐었는데, 이제는 하도 뉴스에서 많이 보다보니 그러려니한다. 해결책도 해결책이지만 원인이 어떻게 되는지를 짚고 가야 처음에 꼬인 매듭을 풀수 있다고 본다. 이런 주제의 책 소식을 듣고 저자 약력을 보니 거제도 조선소 근무 경력이 눈에 띈다. 책상에 앉아서 남의 이야기를 주워모아 쓴 책이 아니란 점에서 꼼꼼히 읽게 되었다.

생산직 노동자의 숙련을 장점으로 성장한 울산의 산업은 정규 생산직을 대체하는 자동화와 모듈화 공정 개발을 통해 단순 노동자 일부만 비정규직으로도 돌아가는 프로세스를 도입하고, 연구개발직은 고급 인력 수급을 위해 수도권으로 연구소를 옮겼다는 책 초반 저자의 설명은 상당히 와닿는다. 이미 내 주변 동기들, 후배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아울러 고급인력을 배출하던 지역 대학들이 인구감소와 수도권 대학 선호에 의해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입학 학생들의 수준이 떨어지니 또 배출되는 졸업생들에게도 취업기회가 많이 줄어든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는 울산 뿐만 아니라 부산이나 대구, 광주 같은 대도시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문제점도 사람에서 출발하고 (울산의 중심 기업 오너들의 운영방식과 지역거주 근로자, 지역 대학을 다니는 학생/졸업자) 해결책도 사람을 통해서 (대학 및 연구기관과 기업의 긴밀한 협력, 시와 국가가 미래 산업 전략을 구체적으로 세워야함) 이다.

가정을 꾸리고 사는데 충분한 인프라를 제공해주기 위해 저자는 메가시티도 자세하게 설명한다. 주변 대도시들을 묶어 사람이 오고 가고, 좋은 인재들이 가정을 꾸리고 살 수 있는 공간을 이야기 한다. 한국의 산업은 중국, 베트남, 인도 등에 의해 제조업이 어려운 시기이지만 그동안 쌓아올린 노하우와 인프라는 제대로 된 정책과 방향 설정을 통해 다시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책 전반에 걸쳐 위기와 해결책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알차게 채워져있고, 꼭 울산만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우리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면서 열심히 읽게 된다. 자세한 진단을 책으로 엮어낸 저자에게 감사하며,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해결책에 의견이 모여 산업도시의 기사회생이 대한민국의 기사회생으로 이어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 출판사 지원으로 서평 작성을 말씀드립니다. 좋은 책 출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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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cher 202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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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출판사 '부키'에서 제공받았으며, 여기 외에 얼룩소 페이지에도 올라갑니다.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내 경력부터 대략 언급해야 이 리뷰 및 책을 이해하는 데 공정할 것이다. 대략 30년 전 수도권의 화학 회사 연구소에 입사해서, 10여 년 동안 울산의 공장에 수시로 출장을 다녔다. 그 후 약 10년 동안은 관계 분야의 회사에 다니면서 울산을 비롯한 전국의 연구소 및 생산 사업장에 출장을 다녔다. 내 기억으로는 업무 관계로 울산의 생산 업장에 출장을 간 것은 2017년 정도가 마지막이다. 출장 외에, 재작년엔 수 개월 정도 생산 공장에 가까운 작은 연구소에서 일할 기회가 있어서 지역 생산 입지의 분위기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이 책 대부분이 너무 익숙한 내용이라 당연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고, 그것이 한국 산업 도시의 문제라 하겠다. 나는 긴 시간 동안 산업계의 분위기 변화를 읽어 왔는데, 내가 처음 일한 업체는 현재 그리고 일하던 도중에도 그리 '잘 나가는'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책에서 언급하는 변화들을 더 심하게 겪었다 - 현장 인력의 고착화 및 노령화, 매우 적은 신규 인력 채용, 현장의 연구 능력과 know-how 상실 등등. 이제 모든 중요 결정 및 기술적 발견은 수도권 및 거기서 근무하는 인력들이 하고, 현장의 의견은 이들을 구현할 때 참고하는 이상으로는 활용되지 않는다. 내 입장에서, 이 책에서 배운 가장 재미있었던 점은 부울경 거주 젊은 세대의 의견이었다. 연령상 내가 쉽게 얻기 힘든 정보기 때문이다. 현재의 정책 및 사회 분위기를 이들이 어떻게 보는가?[1] 그리고 지역의 대학들, UNIST와 부산대, 울산대 등이 울산 현지 근무자들에게 적절한 지식을 창출하는가. 화학 공장에 근무했던 경험으로 보아, 현재 화학 공장에서 산업 엔지니어에게 필요한 지식을 이들 대학의 교수들이 대학원에서 전해 줄지는 의문이다. 대학원에서는 소위 논문을 낼 수 있는 '최첨단'의 지식이 의미가 있지, 더 이상 장비 혹은 큰 규모의 산업 설비를 운용하는 데 필요한 '올드한' 지식들이 관심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2] 책에서는 이 점을 잘 설명한다. UNIST의 논문 품질은 좋고 교수 연령도 젊으나, 이것이 주변 산업체와 적극적으로 연계되어 인력을 공급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3] 산업체 입장에서는 이들의 교육은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고급 인력에게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공장에 별반 도움이 안 되고, 어차피 공장에는 능력 있는 엔지니어를 더 배치할 유인이 별로 없다.

한국은 크기가 작고, 현대의 지상 교통 수단은 제 2의 도심인 부울경까지 가는 시간도 2시간 남짓으로 줄였다. 젊은이들에게 훨씬 재미있고, 모든 것이 다 몰려 있는 서울로 젊은 층이 모여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4]. 한국의 인구가 유지되더라도 이 경향을 바꾸기 힘들 텐데, 지방의 새 일자리는 보수가 적기 때문에 주로 외국인 노동자가 맡으므로 개선은 참 난망하다. 말만 듣다가 이를 피부로 느낀 것이 수 개월 동안 지방에서 직접 거주하면서다[5].
그런데 정부에서 이 상황을 개선할 적극적인 동기가 있는가? 안타깝게도 그다지 그렇지 못하다.
제조업 내에서 중화학공업의 입지가 줄어들고, 중화학공업 가치사슬 내부에서 울산 사업장의 입지가 줄어들고, 울산 사업장 내부의 노동 시장 이중 구조[6]가 더 악화되는 상황에서 산업도시 울산에 무엇을 기대하고 자금을 투여하거나 투자하겠는가.... 제조업 관점에서 울산에 남은 것은 기존의 설비 투자라는 '매몰 비용'과 기존의 제조업 생태계가 보유한 '일자리' 개수 정도다. 뿌리 기술, 혁신적인 기술 기업, 연구개발 기반 모두 울산의 취약점이다. 심지어 울산의 남성 청년이 정착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키울 안정적인 일자리 전망도 없다. 물론 여성 일자리의 전망도 없다. (298p)
이 환경에서 쇠락하는 도시를 어떻게 살려야 하겠는가? 피츠버그(Pittsburgh)와 디트로이트(Detroit)는 어느 도시 경제 서적에서도 주목할 사례로 잘 나오고, 특히 후자는 도시 쇠락의 본보기처럼 언급된다. 요즘에는 조금씩 되살아나는 기미가 보인다는데, 이는 특정 기업의 집중 투자 덕이 크다고 한다.
울산도 이런 기업 혹은 개인이 나오기를 기대해야 할까? 자동차 산업에 도시의 고용이 집중된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산업이 쇠락하자 심각한 위기를 아직까지 겪고 있다. 울산은 이 정도는 아니지만, 산업도시란 것 외에는 주목할 만한 업종이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그마저 위에서 설명했듯이 해당 분야의 의사 결정 기능을 거의 잃어버렸다. 몇 사례에서 보듯이, 수도권에서 결정을 내리면 얼마든지 다른 업체에게 - 해외도 포함 - 팔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군산 GM 공장처럼, 언제든지 타국의 결정에 의해 문을 닫을 수 있다.
이 책의 제안처럼 '지속 가능한 제조업 생산/엔지니어링 클러스터'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독일의 상황이 나아진 것은 단일 유로 통화의 도입 과정에서 갑자기 화폐 가치가 높아진 남동 유럽 국가들 덕이라는 말도 있지만, 독일은 그래도 하르츠 개혁 같은 일을 했다. 어차피 공장의 노조원들 대상으로는 신규 채용이 거의 없으니 기존의 고연령대 노동자[7]가 거의 퇴직하기를 기다려야 할까? 국제 산업 상황이 그 때까지 기다려 줄까? 부울경 사이의 해당 협약 시도는 몇 년 전에 실패했다고 책에서 언급한다.
솔직히 나는 별로 희망적이지 않다. 이 다양한 문제들을 끊어 낼 방법들 몇은 제안이 이미 됐지만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반기지 않는다. 노동자 이중구조 혁파 및 직무제[8]로 기업이 유연하게 사람을 새로 고용할 수 있도록 풀어놓을까? 아니면 울산 근처 대학들이 공장 운전에 필요한 경험을 쌓도록 학생들을 더 교육해야 할까? 부울경처럼 더 큰 영역에서 협약을 맺어 인재 공급? 피츠버그는 전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업종들에 투자해 도시의 큰 쇠퇴는 어느 정도 피했으나, 산업 고용 인구 비율이 심각하게 감소하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저자의 제안처럼 제조업 고도화나 AI, ICT 연계 등으로 나갈 때 현재의 산업 고용인 비율을 유지할 수 있을까? 현존하는 공장마저도 극도로 자동화를 이룬 것이 한국이라, . 조선업체는 많은 현장 인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예외일 수는 있으나, 한 번 구조조정 및 '저임금화'가 이미 일어났던 이상 여기에 정착하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도시의 성쇠는 빈번히 일어났고, 과거의 쇠퇴는 정치적인 이유 및 교통로 변화 등이 많았다[9]. 서울 인구는 현재 10년째 감소되는데 이는 주택 가격 상승이 크지만, 울산은 크게 그렇다 보기 어려운데도 인구가 몇 년째 감소 중이다. 이는 '좋은 일자리'가 없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유출되는 탓이 크다. 서울은 주변 수도권 인구가 증가하니 감소가 크게 문제가 되진 않더라도, 부울경은 전체가 인구가 감소하므로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 인구는 뭔가 획기적인 대책 없이는 앞으로 감소할 일만 남았다는 점에서, 한 손에 꼽을 만치 역내 평균 소득이 높은 울산마저 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만큼 장래가 밝다고 말할 수 없다.

漁夫

[1] 내가 재작년에 어느 연구소로 강의를 나간 일이 있는데, 강의에 들어오셨던 젊은 분과 잠시 얘기를 할 시간이 있었다. 내가 놀랐던 점은 이 분이 말씀하신 인국공 논란에 대한 관점이었다. 내가 (섣불리) 생각했던 것과는 온도 차이가 엄청났고, 현 젊은 세대가 보는 '좋은 취업 대상 기업'과 '공정'의 개념이 내 세대와 비겨 얼마나 다른지 편린을 알 수 있었다.
[2] 이는 더 이상 화학 공정 운전이 전세계뿐 아니라 한국 내에서도 hot하다 여겨지지 않는 시대 상황 때문이다. 대부분의 화학 제품들은 중국에서 매우 싼 가격으로 만들고 있을 정도로 범용 상품(commodity)이 된 지 꽤 지났다. 한 예로 폴리실리콘(다결정 고순도 Si)은 태양광 패널의 핵심 소재로, 국내에서는 OCI가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 새 중국산 저가품에 의해 입지가 위태로울 정도였다가 중국산에 대한 비관세 장벽 덕분에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link).
[3] 젊은 교수들은 실적을 쌓고 수도권 대학으로 이동한다. 그리고 산업계와 끈이 탄탄하려면 젊고 회사 경험이 없을 때 오히려 불리하다.
[4]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도 이런 얘기를 젊은이에게 직접 들었다. "서울이 재미있기는 최고다. 무조건 서울로 가서 향후 생활을 하겠다"고. 그런데 이 말을 해 준 사람은 다른 데(부울경 같은)도 아니고 가 거주지였다. 서울에서 좀 거리가 되긴 하지만...
[5] 농장 소독 방법 안내 동영상이다(link). 설명이 필요한가?
[6]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우 간격이 지속적으로 벌어진 현상. 소위 '3D'는 비정규직에게 저임금으로 시키고, 노조의 협상력을 이용해 업무 강도 및 부담이 덜한 자리는 정규직이 차지했다고 비난받는다.
[7] 고연령 현장 근무자가 연공급에 따라 많이 받는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책에서 인용했듯이 '동네 여성들 데려와도 상관없다'는 말처럼 그만큼 생산성을 못 내니 문제인 것이다. 한국은 역사적 문제 때문에 이 문제를 다양한 산업용 로봇을 들여와 대체했으며, 작업자 만 명당 로봇 수는 한국이 단연 세계 1위다(link). 사람이 적은 싱가포르는 그렇다 쳐도, 독일과 일본과 비교해도 2배가 넘는다.
[8] 대체로 특정 직무를 맡아야 연봉이 오르는 제도. 연공급은 직무 연차가 쌓이면 승진이 적더라도 연봉이 오르는데,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그와 (반대 방향으로) 대비되는 개념으로 많이 쓰인다.
[9] 로마의 인구는 AD 2세기 중반의 120~150만 부근에서, 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6~7세기에는 10만 이하, 최저 2~3만까지 내려앉고, 100만 이상으로 복귀한 것은 20세기 초반이었다. 팔미라는 동서 교역으로 번창하다가 교통로가 끊기면서 지금은 완전히 폐허만 남았다.

ps. 리뷰 쓰는 김에 편집상의 문제를 지적하자면, 논문 등 학술적 발표로 시작한 주제를 대중서로 낼 때 종종 볼 수 있는 일로, 그래프와 표를 처리한 방식이다.
* 전반적으로 표는 그래프보다 가독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요점을 말로 설명한 후 참고 문헌만 적거나 꼭 넣어야 한다면 그래프로 바꾼다. 이 책은 [무미건조하게 숫자만 들어간] 표가 상당히 많다(e.g. 224p).
* 풀 칼라로 인쇄하지 않을 경우 - 객관성이 중요한 과학 서적에서는 거의 보기 힘들다. 쓰더라도 컬러 페이지를 따로 몇 개 넣을 뿐이다 - 그래프의 선이 잘 구분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이 책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다(e.g. 175).
* 여러 자릿수의 숫자를 표시할 때 콤마를 몇 자리마다 찍어야 하는지는 아직 논란이 있다. 서양식은 세 자리, 우리 나라 방식으로는 네 자리가 적절하다. 나는 114p처럼 후자도 별 거부감이 없으나, 이 책에서는 전자가 훨씬 많다. 섞여 있는 것은 혼란스러우니 통일시켜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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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규 2024-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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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득 도시로 유명한 울산! 하지만 청년들은 울산을 떠나고 있다. 왜일까? 저자의 말처럼 울산에는 청년이 원하는 일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왜일까? 의문은 꼬리를 문다. 저자에 말처럼 울산은 우리나라 제조업 발전의 중심에서 이제 말단 생산기지로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울산의 대규모 공장에서는 대부분 정규직을 뽑지 않는다. 작년부터 현대자동차에서 뽑는 정규직 생산직은 이제 "킹산직"이라 불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울산의 청년들은 어디서 일자리를 찾아야 할까?




책에서 다루고 있듯이 현재 울산에서 뽑는 대부분의 청년 일자리는 울산의 청년의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다. 이는 단순히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추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지금 청년들이 우리나라에서 결혼하고 출산을 하고 양육을 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 되는 일자리다. 이런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 한다면, 청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과거 영광의 도시였던 울산은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어갈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울산은 기존 대기업 정규직의 고소득에 가려져 곪아가는 청년 문제가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 했다. 이 책을 계기로 곪아가는 울산의 청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고, 더 이상 늦기 전에 이에 대한 해결책은 없는지 우리 모두가 고민해볼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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