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과 폭력 - 운명이라는 환영 | 우리 시대의 이슈 총서 2
아마르티아 센 (지은이),이상환,김지현 (옮긴이)바이북스2020-11-01
원제 : Identity and Violence: The Illusion of Dest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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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마르티아 센의 『정체성과 폭력』 개정판. 코소보, 보스니아, 르완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수단 등 오늘날 전 세계에 걸친 종파적 폭력의 근저에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중요한 개념적 혼동이 있다. 이러한 세계적 갈등과 폭력은 인간에게는 선택 불가능한 하나의 독보적 정체성이 있다는 환영과 숙명론에 의해 유지된다.
자신이나 타인을 종교나 민족, 문명 등 어느 하나의 정체성에만 의거해 바라볼 때, 다양성과 다원성을 가진 인간의 존재는 끔찍하게 축소되고 만다. 아마르티아 센은 이러한 관점에서 경제적 세계화와 종교 근본주의, 테러리즘, 정치적 다문화주의, 역사적 탈식민주의 등 기존의 주제들을 재검토하고 재평가한다.
목차
프롤로그
머리말
1. 환영에 의한 폭력
경쟁하는 소속 관계의 인식 | 속박과 자유 | 타인을 설득하기 | 선택과 책임의 부정 | 문명의 감금 | 종교 연합체를 넘어서 | 무슬림과 지적 다양성 | 혼란의 불꽃
2. 정체성의 이해
정체성 무시와 합리적 바보 | 다원적 소속 관계와 사회적 맥락 | 대조적 정체성과 비대조적 정체성 | 선택과 제약 | 공동체주의적 정체성과 선택의 가능성 | 우선순위와 이성
3. 문명의 감금
단일 관점과 깊어 보이는 외양 | 문명론적 설명의 두 가지 난점 | 인도를 힌두 문명으로 보는 것에 대해 | 서구 가치에 고유성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 민주주의의 세계적 뿌리 | 서구 과학과 세계의 역사 | 엉망이 된 추상화와 불명료한 역사
4. 종교적 소속과 무슬림의 역사
종교적 정체성과 문화적 편차 | 무슬림의 관용과 다양성 | 비종교적 사항과 다양한 우선순위 | 수학과 과학, 그리고 지성사 | 다원적 정체성과 오늘날의 정치 | 테러리즘과 싸우기, 정체성 이해하기 | 테러리즘과 종교 | 무슬림 정체성의 풍부성
5. 서구와 반서구
식민화된 정신의 변증법 | 아시아적 가치와 그보다 작은 주제들 | 식민주의와 아프리카 | 근본주의와 서구 중심성
6. 문화와 포로
상상된 진실과 현실 정책 | 한국과 가나 | 일본의 경험과 공공 정책 | 넓은 틀에서의 문화 | 다문화주의와 문화적 자유 | 학교와 이성적 추론, 신앙
7. 세계화와 목소리
목소리와 진실성, 공공의 추론 | 비판과 목소리, 세계적 연대 | 지적인 연대 | 지역적인 것 대 세계적인 것 | 경제적 세계화와 불평등 | 세계적 빈곤과 세계적 공정성 | 보다 공정한 세계의 가능성 | 부작위와 작위 | 빈곤과 폭력, 그리고 부당함의 감정 | 자각과 정체성
8. 다문화주의와 자유
영국의 성취 | 다원적 단일문화주의의 문제들 | 이성의 우선순위 | 간디의 주장
9. 사유의 자유
폭력의 양성 | 고급 이론의 무딘 날 | 고립주의 환영의 형벌 | 세계적 목소리의 역할 | 가능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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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 52 심지어 “온건한 무슬림”을 광적으로 추구하는 서구인들조차도 정치적 신념의 온건함과 종교적 신앙의 온건성을 혼동한다. 정치적으로는 관용적인 사람이 (이슬람교든 다른 종교든) 종교적 신앙심은 강할 수 있다. 12세기 십자군 전쟁에서 용감하게 싸웠던 이슬람 황제 살라딘이 관용적이지 못한 유럽에서 도피한 저명한 유대인 철학자 마이모니데스에게 이집트 왕궁에 머물며 궁정의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었을 때, 살라딘의 행동에는 전혀 모순 이 없었다. 로마의 캄포데피오리 광장에서 조르다노 브루노가 이단죄로 화형당한 17세기에, 인도 무굴 제국의 제3대 황제 아크바르(그는 무슬림으로 태어나 무슬림으로 죽었다)는 아그라에서 모든 사람에게 종교적 자유를 허용하는 것을 포함해 소수자 권리를 성문화하는 제도 계획을 단행했다. 접기
P. 85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한 세기 전에 벵골어로 출판한 소설『고라』(1910)에는 ‘고라’라는 문제적 주인공이 등장한다. 고라는 그의 가족이나 친구 대부분이 벵골 도회지에 사는 것과는 달리, 낡은 힌두교 관습과 전통을 강력히 옹호하는 확고한 종교적 보수주의자의 면모를 보인다. 그렇지만 타고르는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고라를 큰 혼란에 휩싸이도록 만든다. 고라의 수양어머니가 1857년 무시무시한 반영(反英) 항쟁에서 세포이 반란군이 고라의 아일랜드인 친부모를 죽이자 자신의 인도인 가족이 고아인 그를 양자로 받아들였다고 밝힌 것이다(고라라는 이름은 “흰색”을 뜻하며, 아마도 그의 남다른 모습이 주목을 끌기는 했겠으나 확연히 구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타고르는 고라의 호전적인 보수주의를 일거에 무너뜨린다. 고라는 자신이 열렬히 옹호해 왔던 편협한 보수주의적 대의명분 덕에 전통 사원의 모든 문이 “외국 태생”인 자신에게는 닫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접기
P. 103 서구 국가들이 이라크나 다른 어떤 나라에 민주주의를 “부과할(impose)”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자주 회의가 있어왔다. 그렇지만 “부과”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는 그러한 형태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서구의 것이라는 소유적 믿음을 함의한다. 즉 민주주의가 오직 서구에서만 태동하고 발전했으며, 그래서 본질적으로 “서구” 사상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와 민주주의의 현대적 전망에 대해 철저히 오도해서 이해하는 방식이다. 접기
P. 213 사실, 유럽이 두 번째 밀레니엄 초반에 중국과 인도, 이란, 아랍 세계로부터 들어온 수학, 과학, 기술의 세계화에 저항했다면,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과학적으로 훨씬 더 가난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반대 방향이지만, 오늘날에도 동일한 사정이 적용된다. (일부 저항 운동가들이 제기하는 것처럼) 세계화는 서구의 제국주의라는 시각에서 과학과 기술의 세계화를 거부하는 것은 결국 서구의 것으로 알려진 과학과 기술의 배경에 단단히 자리 잡은 세계적(세계 여러 지역으로부터 유래한) 공헌들을 간과하는 것이며, 세계 전체가 지적으로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그러한 거부는 실제적으로 아주 어리석은 결정이 될 것이다. 만일 지난 밀레니엄 초기에 유럽이 과학과 수학에 대한 동양의 영향을 거부했더라면 치명적인 잘못이었을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세계화 현상을 (수사학적 표현에서 자주 나타나듯이) 사상과 신념의 제국주의, 또는 유럽 식민주의와 같다고 여기는 것은 치명적이고 값비싼 오류일 것이다. 접기
P. 232 오사마 빈라덴 같은 지도자들은 (아무리 최소한으로 지적한다 해도) 가난 때문에 고생한 적이 없으며 세계적 자본주의의 결실을 공유하지 못한 채 배제된다는 감정을 느낄 만한 경제적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이 유복한 지도자들이 이끄는 운동들은 전형적으로 기존의 세계 체제가 만들어낸 것으로 간주되는 부당, 부정, 굴욕의 감정에 크게 의존한다. 가난과 경제적 불평등이 당장은 테러리즘을 양성하지도 또는 테러 단체 지도자에 영향을 주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테러리스트 캠프의 보병을 충원하는 토대를 많이 만들어내는 데 일조할 수 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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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아마르티아 센 (Amartya Sen)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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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가 낳은 세계적 경제학자이자 사상가.
아시아 최초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불평등과 빈곤 연구의 대가이자 후생경제학의 거목이다. 1972년부터 인도의 자다브푸르대학과 델리대학, 영국의 옥스퍼드대학과 케임브리지대학 등을 거쳐 현재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평생을 대학에서 보내면서도 빈곤, 기아, 불평등, 복지 등 약자를 위한 현실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경제학에서 윤리와 철학의 문제를 복원하여 ‘경제학계의 양심’, ‘경제학계의 마더 테레사’로 불린다.
그의 연구 영역은 정치, 경제, 철학, 젠더, 보건 등 학문 전반... 더보기
최근작 : <정의의 아이디어>,<정체성과 폭력>,<정의의 아이디어 (양장)> … 총 199종 (모두보기)
이상환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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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 탈식민주의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현재 경북대학교 강의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사회정치철학』(공역), 『세계시민주의』(공역)가 있다.
최근작 : <탈식민주의의 얼굴들> … 총 3종 (모두보기)
김지현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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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정치미학과 탈식민주의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현재 경북대학교 강의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세계시민주의』(공역)가 있다.
최근작 : <탈식민주의의 얼굴들> … 총 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정체성의 낙인은 위험하다!
#1 후생경제학에 대한 공헌을 인정받아 1998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 1933~)이 몇 해 전 겪은 일이다. 당시 영국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 학장이던 센은 해외여행을 마치고 영국 히스로 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받던 중 출입국 관리소 직원에게 질문을 받았다. 여권 주소란에 트리니티 칼리지 학장 관사의 주소가 적힌 걸 본 직원은 센에게 ‘학장의 친구’인지 물었던 것. 자신에게 ‘자신의 친구’냐고 물은 셈이 되어 당황한 센이 잠시 머뭇거리자 직원은 영국에서 어떤 불법을 저지른 것은 아닌지 센에게 묻기 시작했다. 출입국 관리소 직원은 인도 벵골 출신이었던 센이 케임브리지의 대학 학장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2 2009년 7월에는 ‘하버드 흑인교수 체포…… 인종 차별 논란’이라는 제목의 기사들이 보도되어 우리나라에서도 잠시 화제가 되었다. 미국의 케임브리지에서 한 여성으로부터 “한 남성이 어느 집 문을 어깨로 밀면서 열려고 하고 있다”라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체포한 이는 하버드대 (흑인) 교수인 헨리 루이스 게이츠(Henry Louis Gates)였다. 게이츠가 면허증과 교수증을 제시하며 그 집이 “자신의 집”이라며 항변했음에도 경찰이 체포하자, 미국에서는 인종 차별적인 검문·수색이라며 사회적인 비난이 일었다.
두 경우 모두 피부색에 따라 타인의 ‘정체성’을 판단하고 거기에 유색인이나 외국인을 불법 체류나 범죄와 연관시키는 고정관념이 결합되어 일어난 사건이었다. 영국 공항 직원이나 미국 경찰은 이때 당사자들의 신분을 보여주는 다른 ‘정체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출신지나 피부색만이 그 사람의 유일한 정체성인 것으로 여겼다(이들이 만약 교수 신분이 아니었다면 이러한 사실이 사회적으로 드러날 일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는 타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문제가 단순한 ‘오해’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이 일들이 이른바 민주주의와 인권의 선진국이라는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이 책 『정체성과 폭력: 운명이라는 환영(Identity and Violence: The Illusion of Destiny)』은 이렇게 정체성에 대한 오해와 왜곡, 그로 인한 환영(illusion)을 다룬다.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정체성이 세계적 폭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파헤치는 책이다. 미국 W.W.노턴 출판사의 ‘우리 시대의 이슈’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2006년 출판되었는데, 아마르티아 센이 이 책을 썼으며, 공교롭게도 헨리 루이스 게이츠는 이 시리즈의 총 기획자다.
첫 출간 당시 KBS 1TV <책 읽는 밤>에 소개될 정도 주목을 받았던 『정체성과 폭력』의 개정판이 나왔다. 10년 전에서도 중요한 이슈였지만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시대의 고전을 다시 만나 보자.
여전히 유효한 8개의 논점들
아마르티아 센의 『정체성과 폭력』에서 제시하는 8개의 논점들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더욱 심각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특히 다문화는 이제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닌 시급히 닥친 현실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이 책의 주장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논점1. 세계적 폭력의 배경에는 정체성의 갈등이 있다
논점2. 우리의 정체성은 불가피하게 다원적이다
논점3.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은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다
논점4. 이슬람은 불관용의 종교인가?
① 관용의 여부로 이슬람교를 정의할 수는 없다
② 종교에 초점을 맞춘 정치적 접근은 테러리즘의 해소에 방해가 된다
논점5. 서구 세계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
① 민주주의는 서구적인 것인가?
② 아시아적 가치의 옹호도 서구 강박의 형태다
③ 테러리즘의 서구 의존성
논점6. 문화적 일반화는 위험하다
논점7. 세계화에 대한 거부보다는 공정한 분배를 생각하자
① 세계화는 서구의 저주인가?
② 경제적 세계화와 불평등, 공정성의 문제
③ 빈곤, 굴욕의 감정과 보복적 폭력의 관련성
논점8. 다문화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① 다문화주의와 다원적 단일문화주의를 구분해야 한다
② 국가를 종교나 공동체의 연합으로 바라보는 것은 위험하다
단일성의 환영에 덜 감금된 세계를 꿈꾸며
오늘날 전 세계에 걸친 종파적 폭력은 과거 못지않게 잔인하고 환원주의적이다. 센은 그 야만성의 근저에는 정체성에 대한 중요한 개념적 혼동이 있으며, 이런 개념적 혼동은 다차원적 인간을 일차원적 생물로 바꾸어 버린다고 결론짓는다. 그와 같은 대결을 획책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폭력적 목적을 위해 단일 정체성의 환영을 능란하게 양성하고 선동한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다른 교제 관계나 소속 관계도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게 된다. 따라서 센은 우리 시대에 평화와 화합을 기대할 수 있으려면 인간 정체성의 다원적 성격을 더욱 명료하게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다원성이야말로 단일의 분리 선에 의한 확고한 편 가르기에 저항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실을 인식할 때 “환영에 덜 감금된 세계”를 꿈꿀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해져 있어 우리에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성적 추론과 선택의 과정을 통해 우리의 다양한 정체성에 상대적인 우선순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삶은 단순히 운명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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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폭력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 질문에 쉽게 다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나의 단면으로 나를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하나의 단면으로만 정의한다면 다양한 문제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아니 어쩌면 커다란 곤경에 처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은 그의 저서 <정체성과 폭력>에서 누군가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정체성의 문제로 인해 극단적인 결과인 살인이라는 무서운 결과를 나을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 사례로 든 보스니아 내전이나 르완다 내전 등을 살펴보면 정체성으로 인해 어떠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인지할 수 있다.
정체성으로 인한 폭력의 문제는 다른 나라의 일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역시 이런 갈등의 모습들을 수없이 볼 수 있다. 일례로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정치 얘기를 하다 핏대를 세운 채 고성이 오가는 상황은 그리 낯선 광경이 아니다. 이 역시 정체성의 문제로 인한 폭력이 아닐까 싶다.
정체성으로 인한 폭력은 온라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로 다른 생각을 내세우다 인신공격에 해당하는 글도 거리낌 없이 던지고 도가 지나쳐 실제로 만나 폭력으로 이어진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정체성이 야기한 폭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모든 인간이 가진 다원적 정체성을 이성적으로 인정하고 상대방을 자신과 동일한 인간으로 바라볼 때 정체성으로 인한 폭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적으로 뒤숭숭한 시기이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모든 인류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포용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봐야 한다. 그것이 바로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는 첫걸음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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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ato4 2020-11-26 공감(1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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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폭력
이 책의 저자 아마르티아 센은 인도인이다. 그런 그가 영국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해외여행을 하고 입국을 하려고 했을 때 학교 관사의 주소가 적혀있는 여권을 보며 출입국관리 직원이 그가 바로 학장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학장의 지인인가, 라는 물음을 던진 것에서부터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명제를 떠올리게 되었고 이 책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참 테러가 자행되고 있을 때 미국에서는 미국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아랍계라면 무조건 테러리스트로 의심을 받아야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러한 것들이 일상적으로 보편화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인가, 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랍인이라면 모두가 무슬림이고 무슬림이라면 또 모두가 테러리스트인 것인가.
"인간의 정체성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단일의 것이라는 주장은 단지 암시적이기만 하더라도 우리의 존재를 축소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더욱 불타오르게 할 것이다. 하나의 분류 범주만 부각됨으로써 생겨나는 편가르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비현실적인 주장은 그 방안이 절대 될 수 없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오히려 저항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격렬한 분열의 선, 단 하나의 굳어진 선에 반대해 작동하며 서로를 넘나드는 정체성의 다원성에 이 혼란한 세상에서 화합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이다"(53)
인종뿐만 아니라 종교, 정치, 젠더 등에 대한 보편적인 정체성이 타당한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그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수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런 부분이 곧 평화와 화합의 장을 마련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종교이긴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정치, 문화, 역사 등 많은 부분에서 편견과 차별이 행해지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십년전에 쓰여졌다고 하는데 세상이 변화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편협해진 느낌이다.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이 자살테러를 행하고 있는 이 시대에, 그들의 신념은 과연 그 종교적 믿음으로 불변의 진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 그 누가 그렇다,라는 답을 할 수 있을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기는 하겠는데 솔직히 글이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논쟁이 될 수 있는 부분들, 보편적인 정체성 - 쉽게 말하자면 선입견 같은 것들을 보편화된 진리로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것은 알겠는데 과연 이 글이 필요한 이들에게 그러한 이야기가 받아들여질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겠지.
다른 어려운 정치적인 부분들은 모르고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저자가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문장은 한번쯤 새겨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들은 위대함을 가지고 태어나고, 어떤 이들은 위대함을 성취하며, 어떤 이들을 위대함을 억지로 떠맡는다. 아이들의 학교 교육에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삶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젊은이들에게 억지로 떠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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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ka 2020-11-26 공감(1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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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정체성과 폭력 (아마르티아 센 著, 바이북스)
“정체성과 폭력 (아마르티아 센 著, 이상환, 김지현 共譯, 바이북스, 원제 : Identity and Violence: The Illusion of Destiny)’을 읽었습니다.
저자인 아마르티아 센 (1933~)은 수리경제학 모델로 빈곤을 측정하여 그의 이름을 딴 센 지수가 있을 정도로 불평등과 빈곤 연구로 이름 높은 인도 태생의 경제학자로 1998년 아시아인 최초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명성 높은 그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학장을 지내던 시절 히드로 공항에서 출입국 관리 직원에게 질문을 받습니다. 그 직원에게는 인도 여권을 소지한 그가 학장일리가 없으니 학장과의 친분이 있는 사람이겠거니 하고 학장과 가까운 친구인지를 물어봅니다. 그가 약간 머뭇거리자 불법과의 연관성을 물어보기 시작합니다. (신변잡기를 물어본 것이 아니라 책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테러리스트와의 연관성 등을 의심한 것이겠지요) 이 경험에서 저자는 정체성 (identity)에 대한 철학적 명제를 떠올립니다.
사실 개인의 정체성은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나를 구성하는 정체성은 하나로만 규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배우자이며, 누군가의 친구이기도 하고, 진보 혹은 보수주의자이며, 이성애자 혹은 동성애자이기도 한 개인의 정체성만 해도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데 집단의 정체성은 어떠할까요?
하지만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우리는 타인의 정체성을 단일한 것으로 혹은 고립적인 것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단일한 정체성에 대한 숙명론에 대해 운명론적 환영 (the illusion of destiny)라고 하며 이러한 단일한 정체성에 대한 숙명론 혹은 믿음 (혹은 당위)가 바로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야만적 폭력을 키워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책에서 아마르티아 센은 정체성을 바라보는, 그리고 그 정체성이 키워온 폭력을 8가지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을 제안하고 있으며 이 책이 처음 출간된 지 15년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의 관점은 유효한 것으로 보입니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사람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사람의 정체성을 다면적으로 다양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모르는 사람이라는 의미는 바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단일하게 파악한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입니다. 개인이나 집단이 집단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정체성과폭력, #아마르티아센, #이상환, #김지현, #바이북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주관에 따라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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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ca.Kim 2020-11-2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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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폭력 - 아마르티아 센
'우리시대의 이슈, Issues of Our Times'는 1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W.W. 노턴 출판사에서 제작한 시리즈로써 선도적인 사상가들의 생각을 선보이고 독자들의 사고를 독력한다. <정체성과 폭력>은 '우리시대의 이슈'의 두 번째 작품으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에서는 기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유명한 '아마르티아 센'의 저작이다.
제목에 사용된 '정체성'과 '폭력'이라는 단어가 익숙하게 다가왔다. 최근 읽었던 '마크 모펫'의 <인간무리, 왜 무리지어 사는가>에서 '공동체의 정체성'이 어떻게 사회 형성에 기여하고 정체성의 차이에서 비롯된 갈등이 재앙적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상깊게 읽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다양성을 존중하라고 가르치지만 실제 사회는 '나와 다름'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인종, 민족, 언어, 종교 등 개인을 구성하는 수많은 '정체성'의 차이는 개인 간의 혹은 사회 간의 분쟁의 소지가 되곤 한다. 때문에 <정체성과 폭력>이라는 제목에 담긴 의미가 진지하고 흥미롭게 다가왔고 저자가 정체성과 폭력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전개할지에 대한 궁금해졌다.
모든 인간은 다양한 정체성 하에 살아간다. 인종, 민족, 국가, 종교, 취미, 사회적 지위 등 셀 수 없이 많은 요소들로 인간의 정체성이 표현될 수 있다. 정체성의 다양성이 파괴되거나 무시되어 호전적인 정체성이 강조될 때 폭력으로 이어지게 된다. 즉, 적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을 잘못 기술하고 그들을 유일한 정체성 만으로 평가해 혐오와 폭력을 정당화한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나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t), 인도의 힌두/무슬림 폭동 등은 단일한 정체성 만을 강조할 때 드러날 수 있는 폭력의 예시가 된다.
일부 학자들은 정체성이란 타고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근본적으로 정체성이란 선택의 영역을 포함하고 있다. 인종이나 민족은 개인이 선택할 수 없지만 종교, 취미, 직업, 사회적 지위 등은 개인의 기호와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정체성이란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한계 내에서 우선순위에 따라 끊임없이 선택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수많은 정체성 가운데 어느 것도 그 사람을 판단하는 유일한 정체성이 될 수 없다.
개인을 구성하는 정체성은 다양하고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분류 기준에 따라 능동적으로(직업 등) 정체성을 획득하거나 수동적으로(민족 등) 얻기도 한다. 소속된 공동체의 가치와 규범은 개인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친다. 경제학자 '조지 애컬로프'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게되는 경험이 그 사람의 충성심이나 가치관을 변하게 만든다고 했는데, 이러한 경험을 '충성도 필터(loyalty filter)'라고 칭했고 정체성의 선택과 우선순위의 부여도 충성도 필터에 영향을 받아 바뀔 수 있다. 정체성은 제한된 범주 내에서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며 정체성을 획일적이고 불변하는 영역으로 간주하는 것은 편협하고 위험한 접근 방식이다.
학자들은 종종 세계를 문명에 따라 선을 그어 분류하고 문명 간의 차이와 충동을 설명하고자 하는데, 이는 다양한 정체성을 무시하고 하나의 범주화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행위이며 부당하고 잘못된 토대 위에 탑을 쌓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명론적 접근법이 각광을 받는 이유는 방대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과 현대의 기준에 비춰 평범하지 않은 사례들이 주는 지적 호기심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다양한 정체성을 모순없이 지닐 수 있다. 소속된 다양한 집단과 관련된 상이한 정체성들은 무수히 존재하고 공존할 수 있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문명론적 접근법의 편협한 분할은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 다양성과 상호작용을 무시함으로써 좁고 굴절된 시야를 제공하게 된다.
정체성의 다양성을 도외시 한 해석은 비단 문명에 국한되지 않는다. 종교 영역에서도 억지로 분할해 나눔으로써 정체성의 다양성을 무시하거나 일부러 외면해 갈등을 조장하기도 한다. 특정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부과된 선입견은 인간을 이해하는 방해요소로 작동하며 종교적 정체성을 지나치게 부각해 더 중요할 수 있는 요인들(정체성)을 간과하는 오류를 낳는다.
종교적 정체성을 악용해 폭력을 용인하도록 조장하기도 하는데, 이런 행위는 혼란을 불러와 종교적 정체성에 대한 그릇된 선입견을 고착화시킨다. 분명한 것은 같은 종교를 갖고 있더라도 개인의 우선순위와 선택은 상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양의 제국주의적 팽창은 20세기 중반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 영향을 끼쳤다. 식민지배를 경험한 피지배자는 서양 제국주의에 반발하고 자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반발적 자아 인식(reactive self-perception)'을 낳았다. 서구적인 것이라 주장되는 것들에 대한 변증법적 접근으로 비서구적인 것을 자국의 정체성으로 삼은 것이다. 예를 들면 '자유'와 '개인주의'가 서양에서 비롯됐다는 것에 대한 반발로 동아시아는 '수양'과 '도리'를 강조하는 식이다. 비교적 최근의 세계사가 유럽 주도로 이뤄진 것은 맞지만 문명의 장구한 역사는 과학이나 사상의 발전은 전 세계에 걸쳐 이뤄진 성과의 결집체란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서양에서 제기된 주장을 추종하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현대 과학과 사상을 서구적인 것으로 인지하는 실수를 범하고, 비서구 지역은 마땅히 주장했어야 할 역사적 기여를 뒤로한 채 반서구적 성질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서구적인 것들에 비해 비서구적인 것들이 미개한 것 같다는 그릇된 인식을 갖기도 한다.
개인이든 사회든 정체성이 올바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서구와 비서구의 대립이 아닌 내생적, 외생적 정체성을 모두 수용해 다원적 정체성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진정한 탈식민화는 고립된 정체성과 우선순위로부터 해방될 때 이뤄질 수 있다.
문화는 독단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변화와 상호작용한다. 문화적 운명의 환영은 자칫 숙명론에 빠져 체념하고, 정체되고, 퇴행하는 사회를 야기할 수 있다. 문화적 자유란 우선순위를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내는 자유를 의미한다. 문화는 정체성과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문화가 가변적인 것처럼 정체성도 가변적이며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듯 다양한 정체성 또한 존재한다.
세계는 눈부시게 풍족하면서도 동시에 참혹하게 피폐하다. 세계화를 통해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심화된 불평등과 빈부격차는 손꼽히는 화두로 남았다. 전체적 부는 증가했음에도 세계의 약자들이 누릴 수 있는 몫은 불공정하게 분배되는 경우가 많아 이들로 하여금 상대적 빈곤, 소외, 박탈, 무시, 굴욕을 느끼게 한다. 위의 부정적 감정들은 우위를 차지한 세력에 대한 불만을 낳고 격화되면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빈부에 따라 사회를 가르는 정체성의 첨예한 대립을 막기 위해서는 (인도주의적인 접근이든 평화를 위해서든) 가난한 사람들과 불행한 사람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고 이는 공정한 배분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세계화는 물리적 거리와 국경의 중요성을 낮추었다. 이주의 물결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다양한 문화를 지닌 이주민들이 한 공간(나라)에 모이게 됐다. 상이한 관습과 전통을 가진 사회 구성원들이 원만한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크고 작은 갈등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도 다문화주의에 관심을 기울인다.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는 다원적 단일문화주의(plural monoculturalism)와는 구별되는데 다문화주의가 문화적 자유를 수반하는 반면 다원적 단일문화주의는 종교적 분리주의를 수반하고 있다. 사회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체성을 존중하는 다문화주의를 지향하고, 각자의 신앙적 정체성에 지나치게 고양된 여러 집단으로 구성된 다원적 단일문화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오늘날 자행되는 폭력의 근저에는 정체성에 대한 중요한 개념적 혼동이 있으며 이 개념적 혼동은 다차원의 인간을 일차원적으로 바꿔 버린다. 폭력을 획책하는 사람들에 의해 그럴싸하게 포장된 단일 정체성의 환영에 의해 선동된 사람들은 인간을 구성하는 다른 중요한 가치들(다양한 정체성)을 무시하고 오직 피아로 구분해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어떤 특정한 정체성에 몰두해 편협한 시각을 갖는다면 사람과 사회를 온전히 볼 수 없으므로 정체성의 다원성을 함양하고 존중해야 한다.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많아 신중히 읽게된다.
여지껏 읽고 감명받았던 책들도 정체성의 측면을 작위적으로 단일화하거나 중요한 정체성의 요소를 배제하지 않았을까 염려되었다. 문명과 전쟁사를 다룬 몇몇 저작은 분명 정체성의 측면을 획일적 분류로 강하게 규정하고 논리를 전개했던 것이 기억났다. 솔직히 내가 읽은 대부분의 문명과 사회와 관련된 서적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런 맹점을 갖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무 것도 읽지 않은 사람보다 한 권만 읽은 사람이 위험하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학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치는데 모든 변수를 고려할 수 없고 자신의 주장에 알맞은 정체성을 끌어와 사용하는 것이 글을 매끄럽게 이어주고 논거의 일관성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렇지만 독자(공부하는 자)는 어떤 책을 읽으며 논거로 언급되는 것들이 정당한지, 논리적 모순은 없는지, 다른 요소에 의한 영향은 어떠할지 등에 대한 고민을 해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동일한 역사적 사건도 저자의 관점에 따라 상이하게 보일 수 있음을 상기하고 여러 관점을 아우르는 독서습관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마르티아 센'의 주장처럼 문화적 자유를 증대시키고 정체성의 다원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는 바가 크다. 그렇지만 현실적 제약을 감안해 보면 타자(otherness)의 정체성에 대한 존중은 상호적이여야 하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부분인데, 개인과 정부 나아가 세계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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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니토리 2020-11-18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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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르티아 센 「정체성과 폭력」 (바이북스, 2020)
미국에 거주할 때, 나는 수표를 입금하러 드라이브스루(Drive-through) 은행 창구 앞에서 자동차 창문을 열었습니다. 창구에 있는 약간 늙은 백인 여성에게 수표를 건넸는데, 그녀는 나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고, 수표도 이리저리 살피는 것이었습니다. 동양인이 큰 금액의 수표를 내민 것이 못마땅한 듯했습니다. 나는 그 여인에게서 동양인을 향한 경멸의 눈빛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동양인에 대한 왜곡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이 책의 저자 아라르티아 센도 영국 공항 출입국 관리소에서 동일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는 대학 학장이었기에 그의 주소는 당연히 대학 학장 관사로 되어 있었습니다. 출입국 관리직원은 그가 학장과 가까운 친구인지 질문했답니다. 그 직원은 인도인이 영국 대학의 학장일 리가 없다는 선입관, 다시 말해 인도인에 대한 왜곡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자는 사회적 정체성의 개념은 꽤나 복잡한 문제라고 말합니다. 세상에 차별과 폭력이 난무한 것은 타인에 대한 사회적 정체성이 왜곡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이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한국인은 둘만 모이면 싸운다. 일본인은 돈밖에 모르는 경제적 동물이다.’ 이런 말들은 타자에 대한 왜곡된 정체성을 만들어 냅니다. 한국인은 모두 이기주의자들입니까? 일본인들은 모두 돈밖에 모르는 자들입니까? 영국인과 인도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슬림과 서양인, 등은 서로에 대한 왜곡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모두 다양한 소속 관계와 교제 관계 중에서 어떤 것에 우선을 두어야 할지 끊임없이 판단하고 선택합니다. 독일의 나치 시대에 유대인들, 미국 남부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인도 카스트 제도 아래서의 천민 계급들이 그렇게 평가받았습니다. 타자의 시선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주장할 자유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제한받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정체성의 왜곡은 차별과 폭력을 낳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고, 인간은 모두 동등하며, 동시에 인간은 모두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별, 고향, 종교, 정치적 성향, 경제력, 등 다양한 관계와 관점에서 자신을 이해합니다. 이런 것 중에 어느 하나만을 자신의 특징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타인에 대해서는 어느 한쪽 면만으로 바라봅니다. 타자에 대한 왜곡된 정체성 때문에 지구상에 인종차별, 종교차별, 경제적 차별 등과 같은 차가운 차별과 이로 인한 분쟁과 전쟁과 폭력이 난무하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논지입니다. 옳습니다. 문명 충돌론과 같은 주장 자체가 사회적 정체성의 왜곡을 전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책을 읽으며, 타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지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차별과 폭력으로 신음하는 이 지구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나와 다른 피부색, 언어, 종교,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와 포용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진영논리로 이해하고 내 편이 아니면 적으로 인식하는 사회는 차별과 갈등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책 <정체성과 폭력>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개념, 정체성에 관해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제공합니다. 이 땅의 정치인, 종교인, 사회 지도자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합니다. 이 땅의 평화와 희망찬 미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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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7joy 2020-11-26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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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폭력을 넘어 화합으로 향하는 길
이 책은 개인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개인이 속한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실제적인 인식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들의 현상과 원인에 대해 다양한 학문적 분야와 시각에서 다루는 책이다.
책의 구성과 내용은 개인의 정체성에 대해 정의 내리는 기존의 관점과 방식, 이로 인해 드러나는 사회적인 문제와 정체성의 본질적 요소들을 국제적, 정치, 경제, 역사적인 맥락에서 살펴본다: 총 9개 단원에 걸쳐 서술한다.
저자는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하버드 대학의 아마르티아 센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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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인류 역사상 자기가 누구인지를 규정하는 정체성의 문제는 항상 어려운 주제 중에 하나일 것이다:
사람을 정의하는 속성이 다양하고 많기 때문에 한가지 속성만 가지고 판정일 내리는 것은 부적절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이유에 의해서 채택되어 지금까지 많은 학자들이나 대중들이 오직 한가지 기준에 의해서 사람들을 분류하고 판단해버리는 고정적인 방식에 대한 모순과 위험성이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주된 주제이다.
저자는 단일 기준의 정체성 분류 방식이 가지는 문제점을 다양한 학문적 분야에서 사용했던 접근 방식의 사례들을 통해 지적하며, 궁극적으로는 개인과 사회가 가지는 다차원적인 정체성의 속성을 인정하고 선택할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대 경제이론의 기본 전제인 개인의 이기심이 경제 활동의 여러 동기요인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이나 사회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이 제안한 문명구분과 충돌 이론의 기준으로 삼는 종교 또한 국가나 사회의 속성 전체에 대한 대표성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세계화 시대에 다문화를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특히, 그 중에서도 기존의 문명구분 이론이 가지는 모순과 종교라는 분류 기준이 가지는 폭력적 위험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슬람’ 종교가 가지게 되는 오해와 편견에 대한 반대 사례들이 거론된다.
그러나, 저자가 비판하는 헌팅턴의 문화 충돌 이론은 일방적인 이슬람 비난이론이 아니다:
국가나 공동체에서 작동하는 정치, 경제, 문화는 서로 상호 연관 관계가 존재하며, 그 중에서 문화의 본질은 종교적인 신앙이나 가치관에서 비롯된다는 것으로, 현재 국제 관계의 역학적 동태를 설명하는 하나의 국제정치 이론이다:
이슬람 종교의 교리에 남아 있는 이교도에 대한 불포용성이 물리적인 폭력의 정당성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폭력의 내재성이 지적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책에서 문명 구분론 비판 근거로서 언급된 2가지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인도의 이슬람 국가였던 무굴 제국과 가나와 한국의 비교.
무굴제국은 지배층의 종교가 이슬람일뿐 대다수의 피지배층인 인도인들은 힌두교도라서 이슬람국가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한국의 고도 경제 성장을 가나와 비교해 이야기할 때, 원동력이 된 이유를 경제개발이 시작된 1960년대 이전에 이미 갖추어져 있었던 교육 정책과 제도 덕분이라고 하고 있다.
즉, 일본의 식민지배 시기에 일본이 정책적으로 시행한 의무교육으로 인해 낮은 문맹률과 교육 제도가 정비되어 있었던 탓에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룬 동아시아의 피식민지배 국가를 쉽게 이해하는 전형적인 서양 제국주의적인 시각이라는 점에서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전반적으로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참신한 시각을 얻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 아쉬움도 느껴지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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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세우스 2020-11-2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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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정체성과 폭력_아마르티아 센 -˝운명이라는 환영˝
-폭력을 중단시키려는 선의에서 수많은 시도가 있지만, 불행히도 우리에게 정체성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고 느끼게 되면 그러한 시도들이 곤란을 겪게 된다. 이는 폭력을 저지하는 우리 능력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상이한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관계가 이루어질 가능성을 (사람들이 서로 관계 맺는 다양한 방식은 무시한 채) 다른 무엇보다 "문명 간의 친선 관계"나 "종교 간의 대화" 또는 "상이한 공동체 간의 우호 관계"에 의거해 전망한다면, 그것은 평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고안하기도 전에 인간 존재를 심각하게 축소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세계의 가지각색의 차이가 단 하나의 지배적 분류 체계라고 주장된 것에 의해 단일화될 때, 즉 종교로, 또는 공동체로, 문화로, 국가로, 문명 등으로(이들 각각을 전쟁과 평화 같은 특정한 접근 맥락에서 독보적으로 강력한 것으로 취급하면서) 단일화될 때, 우리가 공유하는 인간성은 맹렬한 도전을 받게 된다. 독보적인 방식으로 분할되는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형성하는 다원적이고 다양한 범주의 세상보다 훨씬 분열적이다. 그것은 "우리 인간은 모두 동일하다"라는 오래된 믿음에도 반하는 것이며, 또한 우리는 '저마다 다르다'라는 이해에도 반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화합에 대한 바람은 인간 청제성의 다원적 성격을 더욱 명료하게 이해하는 데 상당 부분 달려 있다. 넘나들 수 없는 단 하나의 확고한 분리 선으로 첨예하게 갈라지는 것에 저항해 서로를 가로지르면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다원성임을 인식해야 한다.
-어떤 단일의 정체성(과 그 의미라고 주장된 것들)이 숙명적인 것이라는 운명론적 환영이 작위 뿐 아니라 부작위를 통해서도 전 세계에 걸쳐 폭력을 길러낸다.
-우리는 다른 개별적 소속 관계를 무수히 맺고 있으며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상호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능력이 있는 것이다.
흔히 운명이라고 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나서 한 국가의 한 지역의 한 가정의, 그리고 내 주변 마주하는 모든 생명체들과 보내는 이 삶이.
아모르파티, 내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어쩌면 그 운명을 너무 당연하게(그리고 다른 운명을 하찮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을지 흠칫 놀라게 된다.
<정체성과 폭력>이라는 책은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박사 '아마르티아 센'의 역작이다.
제목을 보면 '정체성과 폭력'이라는게 조금 과격해 보이지만 읽다보면 그의 조근조근한 설명과 설득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 생각에는 폭력이라는 초점보다는 우리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고 오랜 역사의 예시들과 함께 문제를 제기한다.
누군가는 정체성이란 단일한 것이고 배타적이고 나의 진리를 설파해야하며 개인적인 게 세계적인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이 책에서는 고립주의적이라고도 한다.)
오늘 날에도 벌어지는 무수한 싸움과 전쟁을 보면 이것이 인간인가? 이것이 21세기가 맞는가?하는 물음표가 떠오른다.
결론만 얘기하자면 <정체성과 폭력>에서 '아마르티아 센'이 말하는 정체성이란 단일하지 않고 배타적이지도 않으며 가변하고 폭력에 의해 지켜지지 않는다. 어찌보면 너무 당연한 일 같지만 이론과 실제를 많이 다르다.
<정체성과 폭력>에서 말하는 정체성은 대게 내 집단과 다른 집단과의 거리감을 나타내며 남과 나를 분리하는 느낌을 주고, 내 집단의 연대성은 곧바로 다른 사람과의 배타적인 싸움으로 이어진다.
이론적으로는 나와 우리 이웃을 연대감을 가지고 공동체적 삶을 살아야하지만 실제로는 내 종교, 내 문화, 내 국가 외에 투쟁과 폭력이 만무하는 슬픈 얼굴을 가지고 있다.

정체성의 이해
-개인은 여러 정체성 중 어느 것에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가치를 부여할지 결정해야 하며, 이는 다시 정확히 맥락에 따라 바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구별되는 쟁점이 있다. 첫째, 정체성들이 확고히 다원적이며, 하나의 정체성의 가치는 다른 정체성의 가치를 제거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둘째, 개인은 특정한 맥락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서로 다른 충성과 우선순위들에 상대적인 중요성을 어떻게 부여할지 명시적이든 암묵적이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유의 자유
-오늘날 세계에서는 세계화의 경제와 정치에 대해서는 물론, 글로벌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형성하는 가치와 윤리, 소속감에 대해서도 질문해야 할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하고 있다. 인간 정체성에 대한 비고립주의적인 이해에서 본다면, 그러한 쟁점들과 관련된다고 해서 우리의 국가적 충성과 지역적 충성 모두를, 거대한 "세계 국가"를 운영하는 데 반영될 수 있는 세계적 소속감으로 '대체해야' 한다고 요구할 필요는 없다. 사실, 세계적 정체성은 우리의 다른 충성들을 배제하는 일 없이도 정당한 지분을 가지기 시작할 수 있다.
-이 책의 관심사인 인간의 축소화에 대해 저항하면서, 우리는 또한 쓰라린 과거의 기억을 극복할 수 있고 곤경에 처한 현재의 불안을 억누를 수 있는 세계의 가능성을 열어놓을 수 있다.
-나는 우리의 능력으로 불가능하지 않은 또 다른 세상을 상상한다. 그 속에서 그와 나는 (적대적인 단일주의자들이 그 입구에서 아우성치더라도) 서로에게 공통된 수많은 정체성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 마음이 어떠한 수평선으로도 나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살면서 많은 정체성과 충돌하지만 내 안의 정체성과도 충돌을 일으킨다.
우선 사람들마다 수 많은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겠고, 그 이후에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 안에서도 가치와 우선순위에 따라 충돌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하나의 정체성을 맹신하는 것은 무섭다. 우리의 역사는 과거 나치와 군국주의를 통해 충분히 겪어왔고 지금도 끊이지 않는 분쟁의 팔레스타인을 보면서 아프고 아프게 겪고 있다.
<정체성과 폭력>에서는 개개인이 가진 정체성이 얼마나 무자비하게 폭력으로 나아가는지 알려주지만 이 책의 끝은 꽤 긍정적이다.
저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우리 안에 있는 평화의 가능성과 이해의 정체성을 배우기를 소망하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희망한다.
정체성이란 무 베듯이 딱! 가를 수 있지 않지만 배타적이고 단일한 정체성의 믿음은 국가와 사람과 민족과 문화를 무 베듯이 잘라버리고 폭력적인 죽음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계속 힘주어 말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 안의 정체성이 폭력성이 아니라 생명력과 치유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운명(여기서 운명이란 부정적인 의미의 운명이다)과 편견들을 다시 꼬집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정체성과 폭력>의 저자 '아마르티아 센'이 말하듯,
우리는 "환영에 덜 감금된 세계를 꿈꾸며",
우리는 '이보다는 더 잘할 수 있다."
syanyway 2020-11-26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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