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창이라는 사람의 케이스는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부산 사람인데, 중등 학교 졸업하고 총독부 행정 강습소 졸업이라는 자격으로 1923년에 조선 총독부에 입사하여 정말 열심히 장기 근속해 결국 일제 말기에 군수자리까지 얻은 겁니다. 대졸도 아닌 사람으로서 쉽지 않았던 출세 (?)의 경우죠. 그 사람은 총독부에서 정리한 자료들을 책으로 몇 번 펴냈는데, 이 책은 그 자료집 중의 하나입니다. 해방 이후에 "애국심이 많은 사업가"로 변모하여 안호상 등 국수주의자들과 한 패가 되어서 백제가 중국 대륙을 지배하고 가야가 슈메르 문명과 연관이 있었다는 방식의 유사사학 서술을 계속 내놓았습니다. 아무래도 일제 시절의 "위대한 대일본 제국"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상황에서, "대일본"을 "한국"으로 교체하고 "위대한 우리 제국"의 (만들어진) 과거를 선전하는 게 이 "총독부 베테랑"에게 자연스러웠던 듯합니다. 이덕일씨 등이 극찬하는 사람이기도 하죠. 그러면서도 이덕일 등이 "식민 사학" 타령을 하는데...참, 어이 없습니다. 나름 탈식민화 과정을 1960년대 이후에 거친 강단사학보다, 유사사학은 제국주의 시대의 "제국"의 꿈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편입니다.
Gyusoo Yi동농문화재단 강덕상자료센터/東農文化財団 姜徳相資料センター/Kang Deoksang Archive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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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소개 579>
자료명 : 朝鮮農村團體史
저자 : 文定昌
발행자 : 日本評論社
발행일 : 1942년 12월 20일
쪽수 : 539쪽
문정창이 펴낸 조선농촌단체사입니다. 제1편 농회, 제2편 금융조합, 제3편 산업조합, 제4편 식산계 농촌단체의 구조조정문제로 구성되었습니다. 부록으로는 산림관계단체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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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seon Lee
랑케처럼 역사위에 덧씌워져 있는 것들을 벗겨냄으로써 독일의 역사를 조명했듯, 우리의 역사는 어떤 것을 걷어내야 할지, 그러고 나면 뭐가 나올지 모르겠네요.
김석영
저도 "환단고기"같은 설들을 보면서 저것은 제국주의 이론이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John Maiden
1945년 이전의 조국은 대일본제국이고 1945년 이후의 조국은 대한민국이니 당연히 "애국심"이 이어지죠. 너무나 자연스러운 겁니다.
Andrew Miles Logie
나중에 저술했던 사이비역사학보다 차라리 이 책의 내용이 더 쓸모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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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창
문정창(文定昌, 일본식 이름: 文山定昌, 1899년, 부산 ~ 1980년)은 일제강점기의 군수이며, 대한민국의 재야 역사학자이다.[1] 본관은 남평(南平), 호는 백당(柏堂)이다.
생애[편집]
1932년 문정창은 '조선 쇼와 5년 국세조사기념장'을 수여받았고, 1942년에는 충청북도 내무부 사회과 사회주사(고등관 7등), 1943년에는 황해도 은율군수, 1945년에는 이사관으로 승진하여 황해도 내무부 사회과장을 지냈다.[2]
8·15 광복으로 황해도가 인민공화국 치하에 들어가자 월남하여 남한에서 한때 조선농회(朝鮮農會)총무부장에 있기도 하였으나 1947년 그만두고 저술활동을 했다.
환갑이 넘은 나이까지 한국 고대사에 관한 저서를 다수 집필하였다.[3]
그의 주장으로부터 일제가 20만 권의 역사책을 불태웠다는 이야기, 이스라엘과 한민족은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 등이 튀어나왔다. 그는 한족의 조상으로 받들어지는 황제가 동이족으로서 본래 한민족의 조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문정창은 '동이'의 개념을 광의로 사용하면서 중국 고대사에 등장하는 동이를 한민족의 조상으로 취급했으며, 이를 서량지나 임혜상과 같은 중국 학자들도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동이족인 소호족 일파가 서쪽으로 떠나서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정착하여 수메르 문명을 건설했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이 한민족과 갖는 관련성에 대해서 문정찯은 "그 소위 '선민'을 영문으로 된 성서 《구약》역대기 상 16장 13절이 Chosen People(음대로 읽으면 조선 사람)이라고 기록하였음을..."이라며 주장했다[4]
약력[편집]
- 1899년 부산 출생
- 1923년 동래군 서기, 경남도청, 조선총독부에 근무
- 1940년 충청북도 사회과 주사
- 1942년 황해도 은률군 군수
- 1944년 황해도 사회과장
- 미군정 지역으로 월남
- 조선농회 총무부장
- 1947년 개인사업
- 1976년 박창암, 안호상, 유봉영, 이유립, 박시인, 임승국 등과 함께 국사찾기협의회 조직
사후[편집]
-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선정
기타[편집]
그가 1969년에 간행한 《고조선사연구》(古朝鮮史硏究)와 윤내현 교수도 <한국고대사신론>(1986)을 통해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논증하였다.[5]
저서[편집]
- 《産業組合設立まで》, 1932 ~ 1933
- 《조선의 시장 朝鮮の市場》, 조선총독부, 1941
- 《조선농촌단체사 朝鮮農村團體史》, 조선총독부, 1942
- 《백제사 》(百濟史), 백문당(柏文堂), 1964, 1975
- 1988년에는 인간사에서 출간하였다.
- 《군국일본 조선강점 삼십육년사》상.중.하, 1965 ~ 1967
- 《단군조선사기연구 檀君朝鮮史記硏究》, 백문당, 1966
- 《근세일본의 조선침탈사》, 백문당, 1967
- 《고조선사연구》(古朝鮮史硏究), 백문당, 1969
- 《일본상고사 日本上古史》, 백문당, 1970
- 《한국고대사 韓國古代史》상.하, 1971, 1979
- 《고대일본사: 한국사의 연장》, 1973, 1989
- 《한국고대사연구평》, 백문당, 1976
- 《광개토대왕훈적비문론 廣開土大王勳績碑文論》, 백문당, 1977
- 《가야사 加耶史》, 백문당, 1978
- 《(한국-슈메르)이스라엘의 역사》( (韓國∼슈메르)이스라엘의 歷史) , 백문당, 1979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 ↑ 이문영 (2018). 《유사역사학 비판》. 역사비평사. 92, 99쪽. ISBN 9788976965554.
- ↑ 이문영 (2018). 《유사역사학 비판》. 역사비평사. 105쪽. ISBN 9788976965554.
- ↑ 김대성, 흉노왕의 후손 김일제 유적을 찾아서, 신동아, 1999.
- ↑ 이문영 (2018). 《유사역사학 비판》. 역사비평사. 99~107쪽. ISBN 9788976965554.
- ↑ 현재진행형 역사 왜곡 뒤엔 ‘쓰다·이병도 짙은 그림자’ 한겨레 200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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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창 ()
1899년 경상남도 부산에서 출생했다. 호는 백당백당(柏堂)이다. 부산의 동명중등학교를 졸업한 후, 1923년 경상남도 동래군 서기를 지내다가 1924년 4월 조선총독부 행정강습소에 입학해 이듬해 3월 졸업했다. 경기도 수원군 속, 1927년 경상남도 울산군 속, 1928년 동래군 속, 1930년 경상남도 산업부 산업과 속(1930), 1932년 10월에는 조선 쇼와[昭和]5년 국세조사기념장을 받았다. 1937년 조선총독부 농림국 농촌진흥과 속, 1941년 조선총독부 농림국 농정과 속, 1942년 충청북도 내무부 사회과 사회주사(고등관 7등) 등을 거쳤다.
1943년 3월 군수로 승진하여 황해도 은율군수를 거쳐 1945년 6월부터 해방될 때까지 황해도 내무부 사회과장으로 재직했다. 관직생활 중 조선총독부 간행의 조선조사자료총서인 『산업조합 설립까지(産業組合設立まで)』(1932), 『조선의 시장(朝鮮の市場)』(1941), 『조선농촌단체사(朝鮮農村團體史)』(1942) 등을 저술했다.
해방 이후 월남하여 조선농회(朝鮮農會) 총무부장을 지냈으나, 1947년 개인 사업을 경영하며, 일제 식민사학에 대한 기성 사학계의 도전이 불충분하다는 비판의 차원에서 일제침략사 및 한국고대사 연구을 진행했다. 『근세 일본의 조선침탈사(近世日本의 朝鮮侵奪史)』(1964), 『(군국일본)조선강점삼십육년사((軍國日本)朝鮮强占三十六年史)』(상·중·하, 1965~1967), 『단군조선사기연구(檀君朝鮮史記硏究)』(1968), 『고조선사연구(古朝鮮史硏究)』(1969), 『일본상고사(日本上古史)』(1970), 『한국고대사(韓國古代史)』(상·하, 1971), 『백제사(百濟史)』(1976), 『가야사(加耶史)』(1978) 등 다수의 저작을 출판했다. 1976년 10월 8일 이유립(李裕岦)·안호상(安浩相)·유봉영(劉鳳榮) 등과 '국사찾기협의회'를 결성해 국사 바로잡기 운동을 전개했다. 1980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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