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2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 | 김근배 - 교보문고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 | 김근배 - 교보문고


김근배 , 이은경 , 선유정 저자(글)
세로북스 · 2024년 04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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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국내도서 > 과학 > 교양과학 > 과학자
국내도서 >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 과학자

“한국 현대사는 산업화, 민주화와 함께 치열한 과학화의 과정이었다”
우리 역사의 잃어버린 고리, 근현대 한국 과학자 이야기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까지, 우리나라 과학의 토대를 만든 근현대 과학자들을 본격 조명한 책이 출간되었다. 그동안 근현대 한국 과학기술인에 대한 연구는 매우 부족했고, 그들의 이름은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시기 인물의 삶은 친일과 독립운동, 좌파와 우파라는 정치사적 관점에서만 주로 논의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전북대 과학학과 김근배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15년간의 연구를 통해 역사 속에 묻혀 있던 근현대 한국 과학기술인을 발굴하고 그 삶과 자취를 추적했다. 최초의 화학자 리용규(1881~미상)부터 지난달 29일 타계한 위상수학의 권위자 권경환과 세계적인 연구자로 우리나라 유기광화학 분야를 개척한 심상철(1936~2002)까지, 자연과학 분야의 인물 30명을 소개하는 이 책은 첫 결과물이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국가기록원,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기록관 등 여러 기관과 유족들에게 제공받은 귀한 사진과 다양한 사료도 수록되어 있다.
식민지·분단·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에 어렵게 과학자의 길을 개척하고 세계 과학계와 함께 호흡했던 20세기 대한민국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한국 과학사를 연결하고, 현대사의 빈칸을 채우며, 암울하게만 느껴지던 근현대 우리 역사를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것으로 복원한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근배
인물정보
생물학자


전북대학교 과학학과 교수이며 전북대 한국과학기술인물 아카이브를 책임지고 있다. 서울대학교 미생물학과를 거쳐 같은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한국과학사학회 회장과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후보자 심사위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운영자문위원, 유엔 세계기초과학의해 한국추진위원을 역임했다. 근현대 한국의 과학과 과학자, 남북한 과학 비교사를 연구해 오고 있으며, 한국과학사학회 논문상과 국립중앙과학관장상, 과학기술훈장 진보장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근현대 한국사회의 과학』(공편), 『한국 근대 과학기술인력의 출현』, 『한국 과학기술 인물 12인』(공저), 『황우석 신화와 대한민국 과학』, 『우장춘- 종의 합성을 밝힌 과학 휴머니스트』, 『한국 과학기술혁명의 구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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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의 사립전문학교, 한국대학의 또 하나의 기원(양장본 Hardcover)

식민지 유산 국가 형성 한국 민주주의 1

우장춘: 종의 합성을 밝힌 과학 휴머니스트

한국 과학기술 인물 12인

저자(글) 이은경
인물정보
과학자/공학자


전북대학교 과학학과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를 마치고 같은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기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을 지냈으며 과학기술정책, 과학기술과 젠더, 과학기술문화의 여러 주제를 연구하고 있다. 서울신문에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이은경의 유레카〉를 연재했고, 2022년부터 〈이은경의 과학산책〉을 연재 중이다. 저서에 『한국의 과학기술과 시민사회』, 공저에 『과학기술과 사회』, 『근대 엔지니어의 탄생』, 『근대 엔지니어의 성장』, 『사회·기술시스템 전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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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한국에도 감동을 주는 탁월한 과학자들이 있었다. 어려운 시대 상황에서도 새로운 과학 분야에 도전하고 그 길을 개척해 나간 남다른 과학자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과학기술은 놀라운 반전의 기회를 맞았다. 이들이 행한 열정적인 과학 활동과 국제 과학계로의 진출, 나아가 세계적인 연구 성과 창출은 ‘거인의 어깨’로서 오늘날 과학한국의 초석이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과학자들은 그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역사에서 잊힌 존재가 되어 가고 있다._서문에서

과학자를 평가할 때 흔히 현재의 시각으로, 혹은 서양 과학자들에 빗대 오로지 연구의 우수성에만 초점을 맞추곤 한다. 그러나 한국의 과학기술이 계통발생의 경로를 밟으며 시대별로 가파르게 변모해 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때로는 과학 분야의 개척과 인력 양성, 고등교육 및 연구 기반의 구축, 그리고 국제적 연구 성과와 연구학파의 창출이 저마다 다르게 중요했다._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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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추천의 글 4
⦁서문 7
리용규_화학 20
1904년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노동 이민 / 조선인 최초의 화학 전공 석사 학위 / 숭실전문에 재직하며 조선 특산 ‘모란잉크’ 개발 / 북한 흥남공대 교수로 활동
정태현_생물학 36
수원농림학교를 거쳐 식물 연구에 입문 / 조선식물의 학명에 이름을 남긴 연구자 / 조선박물연구회 활동과 『조선삼림식물도설』 출간 / 한국식물분류학을 선도하며 대한민국학술원상 수상
정두현_생물학·의학·농학 58
외국어에 능통한 농학 전공의 백과전서 지성인 / 숭실전문 생물학 교수로, 인정도서관 관장으로 / 삼숭의 폐교, 그리고 의학 공부를 위한 대만 유학 /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의학부장 임명과 사상 논란
원홍구_생물학 82
송도고보 박물 교원으로 시작한 연구 / 조선산 조류 연구의 권위자로 발돋움 / 북한에 남아 한반도 조류 연구 집대성
이춘호_수학 102
미국에서 취득한 조선인 첫 수학 석사 / 연희전문 수물과의 첫 조선인 교수 / 서울대 총장 역임과 사회 활동
이원철_천문학 122
1926년 조선인 최초로 이학박사 취득 / ‘원철성’의 발견자, 스타 교수 이원철 / 관상대 재건과 한국 표준시 제정
박동길_지질학 146
소년공 신분에서 제국대학 진학까지 / 광물분석 분야 개척과 ‘다이아몬드 원석’ 발견 / 한국 지질광물학계의 대부
최윤식_수학 164
조선인 최초로 도쿄제대 이학부 진학 / 아인슈타인의 강연을 듣고, 조선에서 상대성이론 대중 강연 / 수학 교사로 출발해 수학계의 대표 리더로 / 대한민국 수학 진흥 선도
김량하_화학 184
조선인 최초의 일본 이화학연구소 연구원 / “비타민E 결정 발견, 노벨상 후보 김량하 씨” / 해방 후 정치적 격랑에 휩쓸린 스타 과학자
이태규_화학 206
충남 예산에서 경성을 거쳐 일본 교토로 / 교토제대 최초의 조선인 조교수 / 프린스턴대학 연수 후 일본에 최신 양자화학 도입 / 해방 정국에서 과학교육 및 과학 대중화에 기여 / 리·아이링 이론을 발견한 “국제 물리화학계의 거성”
장기원_수학 232
이춘호의 제자로 연희전문 수물과 우등 졸업 / 식민자 조선의 기하학 고수 ‘장기하’ / 연세대에 남아 이공대학 발전 견인 / 미완의 ‘4색 문제’와 한국수학사 연구 / 후학들이 세운 전무후무한 ‘장기원기념관’
조복성_생물학 254
현장 채집 경험을 쌓으며 곤충 연구의 길로 / 경성제대 조수로 일본인과 박물 연구
본격화 / 저술과 곤충분류 연구 종합화에 힘쓴 ‘한국의 파브르’
박달조_화학 286
하와이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 산업 연구의 최전선으로 / 불소화학의 세계적 권위자로 우뚝 서다 / 자체 기술로 프레온 국내 생산의 길을 열다 / 한국과학원 이끌며 “세계 일류의 공업한국” 소망
국채표_기상학 314
연희전문을 거쳐 교토제대 수학과 진학 / 미국 유학 통해 선구적 기상학자로 대변신 / ‘인공강우’ 도전과 한국 기상시스템 현대화 / 태풍 장기예보를 위한 ‘국의 방법’ 제시와 한국기상학회 창립
권영대_물리학 334
신문물에 관심 많던 소년, 홋카이도제대 물리학과 수석 입학 / 중등 교사에서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수장으로 / 고군분투 우주선 연구하며 연구 인력 양성 / 한국 과학의 기반 구축과 저변 확대
석주명_생물학 360
부잣집 ‘도련님’으로 태어나 나비 연구 / 개체변이를 이용해 나비분류 연구 재정립 / 나비 분포와 국학으로서의 조선산 나비 연구 / 비운에 단명한, 나비학과 제주학의 거장
김삼순_생물학 392
담양에서 경성으로 여성 교육의 길을 찾아 / 고등교육을 받으러 떠난 도쿄 유학 / 제국대학을 졸업한 최초의 조선인 여성 과학자 / 전쟁의 상흔 딛고 57세에 “한국 최초의 여자 농박” / 퇴직 후에도 나이를 잊은 “할머니 과학자”
최기철_생물학 422
경성사범학교 졸업 이후 학생 교육을 위한 생물 탐구 / 미국 연수 통해 생태학의 최신 동향 습득 / 정년퇴직 후 한국 담수어 분포 연구 집대성 / 과학교육학 개척과 자연보존에도 앞장
박정기_수학 452
연희전문 수물과를 졸업하고 도호쿠제대 수학과로 / 경북대 수학과 창설과 영문학술지 발간 / 한국 수학계 경북학파의 탄생
김옥준_지질학 470
대관령을 넘어 경성제일고보와 도호쿠제대까지 / 한국인 최초로 지질학 박사 학위 취득 / 아파치호 항공 지질탐사와 태백산지구 지하자원 조사사업 / ‘원자력 자원의 과학자’로서 지질학계 발전 선도 / 왕성한 연구로 한국 광산지질학 발전에 기여
이민재_생물학 498
외교관을 꿈꾸던 학생이 식물학자로 성장하기까지 /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과학 진흥에 앞장 / 식물학·해양학·미생물학 개척 및 자연보존활동 힘써 / 한국 현대 식물학의 선도자로서 교육행정에도 기여
강영선_생물학 524
홋카이도제대에서 신생 분야인 세포학 전공 / 열악한 연구 여건에서 집단유전학 연구 /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논문 발표하며 국제적 인정 / 한국 생물학 연구의 새로운 이정표
리림학_수학 544
독학으로 수학자가 되어 해외 학술지에 논문 게재 / 캐나다 정착과 독창적인 리 군Ree group 발견 / 우여곡절의 개인사와 이산가족의 회한
조순탁_물리학 568
선배 과학자들 보며 키운 물리학자의 꿈 / 조·울렌벡 방정식으로 세계적 인정 / 척박한 연구환경에서 ‘한국적 물리학’ 모색 / 한국 통계물리학 연구공동체의 형성과 성장 / 대학 교육행정과 대중 과학 보급에 기여
이상수_물리학 596
광학 분야에서 한국인 첫 박사 학위 취득 / 광학의 다양한 응용 탐색과 레이저 연구 개척 / 광학 연구와 연구 인력 양성 그리고 산학협력의 조화 모색 / 활발한 학회 활동과 한국 광학의 국제적 위상 제고
최삼권_화학 618
고난 딛고 국제적 과학자로 성장 / 한국과학기술원을 터전으로 유기불소화학 연구 선도 /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독창적인 연구 성과 / ‘고불문’으로 스승의 학풍 계승하는 제자들
권경환_수학 640
서울대 수학과를 마치고 뜻밖의 미국 유학 / 미시간주립대학 수학과 이끌며 위상수학 발전에 기여 / 포항공대 수학과를 반석 위에
이휘소_물리학 660
우여곡절 끝에 공대 입학한 과학소년 / 미국에서 유학하며 이론물리학자로 성장 / 세계 이론물리학계의 기대주로 주목 /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와 참 입자 탐색 / 한국 물리학계와의 교류, 그러나 비운의 교통사고
박세희_수학 688
전쟁의 포화 속에서 찾은 ‘수학의 길’ / 미국에서 학위 받고 돌아와 서울대 수학과 대학원 강화 / 대한수학회 회장으로 학회의 현대적 기반 구축 / 한국 최고의 ‘논문 왕’
심상철_화학 712
최고의 수재로 명성을 떨친 과학계의 기대주 / 한국과학원 화학과의 유기화학 삼총사 / 노벨상 후봇감으로 언론과 대중의 주목 / 한국과학기술원 발전을 위한 노력과 고향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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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장하석 (케임브리지대학교 과학사·과학철학과 석좌교수)

과학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없던 나라에서 과학자라는 자신을 창출해 낸 선구자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은 잊혀졌던 우리나라 첫 과학자 30명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으로 전하고 있다. 편저자들의 면밀하고 철저한 연구에 기반하여 학문적으로도 더없이 탄탄하다. 과학자 개인의 열정적인 삶을 넘어 한국 근현대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책이다.
박태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박태균의 이슈 한국사』 저자)

과학기술 분야는 현대 한국의 역사적 진화를 이해하는 한 축이다. 근현대 한국 과학자를 촘촘히 조명하고 종합한 이 책은 한국 근대 과학기술의 기원을 찾는 출발점이자, 현대 한국의 압축적 성장을 규명하는 퍼즐을 완성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줄 것이다.
강성주 (천체물리학 박사, 유튜브 ‘안될과학’ 크리에이터)

아인슈타인, 뉴턴 같은 과학의 거장 이야기가 익숙한 여러분은 100년 전 대한민국 과학의 불꽃을 지핀 숨은 과학 영웅들에 대해 들어 본 적 있는가?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은 우리가 진심으로 자랑스러워해야 할 과학자들의 뜨거운 열정과 눈부신 도전, 그리고 놀라운 성취를 담은 보물 같은 책이다.
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KAIST 명예교수)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우리나라 과학의 토대를 닦은 분들의 삶과 업적을 정성껏 담아낸 이 책은 한국 과학자의 뿌리와 계보를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과학기술유공자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기관의 원장으로서,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책의 출간이 반갑고 감사한 이유입니다. 위대한 과학자들의 열정과 감동적인 이야기가 세대와 분야를 뛰어넘어 많은 이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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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리용규는 박용만의 주선으로 미국인 예배당 지하실에서 지내면서 청소와 정원 일을 하며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 만 25세이던 그가 들어간 학교는 와이머초등학교 2학년 과정이었다. 박용만이 교장을 만나 간곡히 요청한 끝에 리용규는 곧 4학년으로 올라갈 수 있었지만, 여전히 많이 늦은 나이였다. 조선에서 서당을 다니며 공부했지만 근대 교육을 받은 경험이 전혀 없었던 터라 학력을 인정받기 어려웠고, 배우는 내용도 낯설어 학업은 더디기만 했다.(24쪽, 리용규 편)

연희전문 수리과 1회 졸업을 필두로 국제학회에서 첫 과학 논문 발표, 국내에 처음으로 천체망원경 설치, 연희대 초대 이학원장, 관상대 초대 대장, 기상학회 초대 회장, 인하공대 초대 학장 등 그는 곳곳에 ‘최초’라는 자취를 남겼고, 그것은 고스란히 한국 과학사의 일부가 되었다.(123쪽, 이원철 편)

1940년대에 전시 상황이 악화되자 일제는 조선인 과학자들에게도 자신들의 군국주의적 시책을 지지할 것을 요구했다. 일제는 조선인 지원병제를 확대 실시하는 것에 대해 각계의 의견을 모아 《특고월보》(1941. 12.)에 게재했는데, 이태규는 지원병제를 넘어 “조선인에게도 징병령을 희망”한다는 의견을 냈다.(217쪽, 이태규 편)

(김량하 편)
비타민은 당시 국제 과학계에서 우선권 경쟁이 뜨겁게 펼쳐지는 연구의 최전선이었다. 비타민A를 필두로 B, C, D가 발견되면서 그에 따른 연구가 활발했는데, 이 무렵에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던 미지의 비타민E로 경쟁이 옮겨가던 상황이었다. 1920년대 말부터 1960년대까지 비타민 연구자 6명이 노벨화학상을, 10명이 노벨생리의학상을 탔을 정도로 이 시기는 비타민 연구의 전성기였다. … 김량하는 쌀 배아로부터 세계에서 처음으로 비타민E의 순수 결정을 얻어 냈고, 비타민E의 분자식을 제시했다. 그 효능도 연구해 비타민E가 생명체를 젊게 하고 불임 해결에도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189~190쪽, 김량하 편)

1929년 대학을 졸업한 박달조는 프리지데어사에 연구원으로 들어갔다. 이 회사는 오하이오주 데이턴에 있는 냉장고 제작 전문 업체로 1918년 제너럴 모터스의 창업주가 인수했다. 박달조는 코넬대학 출신 토머스 미즐리의 지휘 아래 초기에는 단출하게 5명의 연구자와 함께 활동했다. 이들이 관심을 기울인 핵심 연구과제는 당시 널리 보급되고 있던 냉장고의 새로운 냉매를 개발하는 것이었다.(288쪽, 박달조 편)

그는 청강생으로 이과를 선택했다. … 청강생은 본과의 학과를 선택하여 4년간 수업을 받을 수 있으나 졸업증이 아닌 수료증이 나오는 외국인이었다. 도쿄여고사는 일제의 식민지였던 조선과 대만에서 유학 온 학생들을 외국인으로 분류했다. 게다가 도쿄여고사에 청강생으로 입학하는 것은 본과만큼이나 까다로웠다. 중등교육에서 조선과 대만의 여고보는 4년제였는데, 일본에 설치된 고등여학교는 5년제였다. 이 때문에 식민지에서 학교를 졸업한 여성은 학력 부족을 이유로 별도의 검정시험을 거쳐야 했다.(397쪽, 김삼순 편)

3년 뒤 아키다광전을 졸업한 김옥준은 1938년 후루카와古河광업회사 산하의 아시오동광산足尾銅鑛山에 취직해 채광 기술자로 근무했다. 그러나 큰 회사인데도 근무조건이 매우 열악했다. 지하 깊은 갱내에서 햇빛을 보지 못한 채 오랜 시간 일하며 식사도 그 속에서 해야 했다. 일본인 기술자는 갱내에 들어왔다가 금방 밖으로 나갔지만 그는 그렇지 못했다. 조선인 노동자와 일본인 감독관 사이의 갈등을 지켜보는 것도 힘겨웠다.(473쪽, 김옥준 편)

“그의 대동학원 조선인 동기 중에는 장차 국무총리와 대통령을 역임하게 되는 최규하가 있었다. 당시에는 제국대학 졸업자 등 상당수 조선인이 상대적으로 민족 차별이 심하지 않았던 만주국을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여겨 대동학원을 거쳐 갔다.”(505쪽, 이민재 편)

이들은 자궁경부암에 기원을 둔 헬라 세포(HeLa cell)에 스테로이드 호르몬을 처리할 경우 생장이 억제되고 염색체의 수적 변이가 유발됨을 발견했다. 1951년 자궁경부암으로 숨진 여성 헨리에타 랙스의 암 조직에서 분리해 배양된 헬라 세포는 특이하게도 무한 번식이 가능하여 암과 난치병의 주요 연구 재료로 사용되어 왔다. 이후 이들은 연구를 지속하여 헬라 세포에서 더 많은 염색체 수를 지닌 새로운 암세포주의 분리에 성공했으며 이 논문은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1964)에 「138 및 148개의 염색체를 갖는 종족세포들로 구성된 헬라 하위-세포주의 분리」라는 제목으로 실렸다.(533쪽, 강영선 편)

(조순탁 편)
1975년에 출판되어 꽤 널리 사용된 교과서 『평형과 비평형 통계역학』(Radu Balescu 저)에도 조·울런벡 방정식이 자세히 소개되었다. 조순탁의 KAIST 시절 제자 오종훈은 “국내 학자의 이름을 외국인이 쓴 교과서에서 발견한다는 것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그때의 감격을 상기했다.(577쪽, 조순탁 편)

세계적인 물리학자로서 그의 위상, 사고로 인한 갑작스러운 죽음, 북한과 일본보다 강한 군사력을 원했던 박정희 정부 시기의 핵무기에 대한 열망, 민족주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이러한 책들은 대중에게 인기를 끌었다. 이휘소의 유족들은 출판물로 인한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소송을 벌였고, 일부 승소했다. 그러나 재판 결과는 그런 책들의 출판을 완전히 막지 못했고, 잘못 신화화된 그의 대중적 이미지를 바로잡는 데도 실패했다.(681~682쪽, 이휘소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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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전북대 과학학과 김근배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들의 15년 연구 성과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던 사진과 유족들에게 제공받은 소중한 자료가 한 권에!
★장하석 케임브리지대학 석좌교수, 유튜브 ‘안될과학’ 크리에이터 강성주 박사,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유욱준 추천!

최초의 조선인 화학자부터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스타 과학자까지,
그때 과학자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과학자가 되는 길은 험난했다. 이공계 고등교육 기관은 1915년에 개설된 연희전문 수리과(이후 수물과로 개칭) 정도가 다였고, 법학부와 의학부만 있던 경성제국대학에 처음으로 이공학부가 설치된 건 1941년이다. 따라서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본이든 미국이든 낯설고 먼 해외로 나가야 했고, 여러 차별과 곤궁함 속에서 고군분투해야 했다. “어렵게 학업을 마친 뒤에도 전문직으로 진출하고 연구 기회를 얻기까지는 많은 걸림돌이 있었다. 그럴지라도 놀라운 열정으로 길을 만들고 선명한 발자국을 남긴 인물들이 속속 출현했다.”
1904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노동 이민을 떠난 리용규(1881~미상)는 미국 본토로 건너가 주경야독 끝에 네브래스카대학 화학과에 진학한다. 학부를 마치고 석사 학위까지 받은 그는 시카고공업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숭실전문 교수가 되었다. 한국인 첫 화학자라 할 그는 조선물산장려운동의 일환으로 만년필용 모란잉크를 개발하는 등 산업 발전에도 기여했다.
도쿄제국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김량하(1901~미상)는 일본 최고의 연구기관인 이화학연구소의 첫 조선인 연구자였다. 그는 세계 최초로 비타민E 결정체 추출에 성공해 언론에서 한국인으로는 처음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었다.
김삼순(1909~2001)은 식민지 여성이라는 이중 차별을 극복하고 조선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제국대학 이공계(홋카이도제국대학 식물학과)를 졸업했다. 57세에는 한국 여성 최초로 농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느타리버섯 인공 재배에 성공해 느타리를 우리에게 친근한 식재료로 만들었다. 대전의 성심당 대표와 만나 발효빵 개발에 관한 조언을 주기도 했다.
수학자 리림학(1922~2005)은 해방 직후 남대문 시장 쓰레기 더미에서 《미국수학회보》를 발견하고, 거기 실린 논문에 제시된 미해결 문제를 풀어서 그곳에 논문을 게재한다. 《미국수학회보》에 실린 리림학의 논문은 해방 후 한국 연구자가 국내에서 연구한 성과를 영어권 해외 학술지에 발표한 첫 사례였다. 이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에서 연구하며 대수학 분야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리 군(Ree group)을 발견한 리림학은 군론에 근원적으로 공헌한 21명의 수학자로 기록되었다.
이 밖에 두만강 유역의 모래에서 다이아몬드 원석을 발견해 동아시아에는 다이아몬드가 없다는 통념을 뒤집은 지질학자 박동길, 일본에 양자화학을 처음 도입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리-아이링 이론을 남긴 세계적인 화학자 이태규, 한국인 집단 유전학 연구로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잇달아 논문을 발표한 강영선 등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 활동한 한국의 첫 과학자들을 만날 수 있다. 나비 박사로 알려진 석주명(그러나 그는 박사 학위를 받지 않았다), 프린스턴고등연구소 이론물리부장을 지내며 ‘노벨상 메이커’로 불린 이휘소 등 한 번쯤 이름은 들어 봤지만 제대로 몰랐던 인물들의 진면목도 발견할 수 있다.

한국 과학사의 잃어버린 고리, 근현대 과학자는 왜 역사에서 사라졌을까
근현대 한국 과학자들이 유독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건 왜일까? 우리나라 과학자라고 하면 왜 많은 이들이 아직도 장영실, 이순지 같은 조선시대 인물이나 김상욱, 허준이 같은 요즘 과학자 이름만 떠올릴까. 이순지와 허준이 사이에는 분명 이춘호, 최윤식, 장기원, 박정기, 리림학, 권경환, 박세희 같은 근현대 수학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조선시대와 21세기 대한민국을 잇는 근현대 과학자들은 역사에서 사라지고 사회에서 잊혀졌을까? 격동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과학자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얼마간 짐작할 수 있다.
해방 직후 미군정청은 경성대학(경성제국대학)과 여러 전문학교를 통합하여 종합대학을 만드는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국대안)을 추진했는데, 그에 대한 찬반 논쟁이 격하게 일어나면서 일명 ‘국대안 파동’으로까지 치달았다. 좌우 이념 대립까지 맞물린 국대안 파동은 과학자 사회를 분열시켰다. 많은 과학자들이 월북하거나 납북되었고, 이태규 같은 과학자는 미국으로 떠났다. 곧이어 발발한 전쟁과 증폭된 이념 갈등은 여러 과학자의 목숨을 앗아갔다. 전쟁과 그 뒤로 이어진 독재 정권의 통치는 해외에 체류하던 과학자들의 발을 붙들기도 했다. 그나마 남은 과학자들조차 이념으로 재단되어 배제되고 지워졌다. 북한에서는 정풍운동으로 과학자들이 숙청당했고, 남한에서 ‘빨갱이’ 과학자를 언급하는 건 금기시 되었다.
정두현(1887~미상)은 위기의 순간마다 새로운 배움을 찾아 유학을 떠나 농학, 생물학, 의학을 차례로 공부하고, 세 분야에서 모두 연구 경력을 쌓은 과학자다. 숭실전문 교수와 인정도서관 관장을 역임한 그는 해방 후 북한 김일성대학 의학부장이 되었으나 1951년부터 행적이 사라진다. 소련에서 열풍처럼 유입된, 유전자를 부정하고 환경적 변이를 강조한 미추린-리센코 학설을 반대하다 학장에서 물러났고, 유전학 강의마저 폐지되면서 교재와 연구물도 압수당했다. 그는 그렇게 남과 북 모두에서 잊혀졌다.
세계 최초로 비타민E 결정체 추출에 성공해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었던 김량하는 해방 후 여러 세력의 주목을 받으며 중요 인물로 떠올랐다. 보수 우익 한민당, 중도좌파 여운형이 이끄는 건국준비위원회, 좌익 계열의 조소문화협회 등에 참여하며 정치적 격랑에 휩쓸렸던 그는 분단 후 북한에서 활동하다 정풍운동으로 숙청당했다.
나비 박사로 알려진 석주명은 한국전쟁 시기 평안도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공산당으로 오인돼 길에서 총을 맞아 사망했다. “많은 사람이 빨갱이로 내몰려 무참히 폭행을 당하거나 살해를 당하던 시절이었다.”

과학자라는 렌즈를 통해 새롭게 들여다보는 한국 현대사
김량하의 사례에서 보듯이 해방 후 과학자들은 당대의 엘리트로서 연구와 교육 외에도 사회적으로 다양한 역할을 감당해야 했고, 때론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기도 했다.
연희전문 수물과의 첫 조선인 교수였던 수학자 이춘호(1893~1950)와 최초의 이학박사 이원철(1896~1963)은 해방 직후 보수 우익 정당 한민당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해방 후 서울대 첫 한국인 총장이자 2대 총장으로 재임한 이춘호는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반민특위 특별재판관으로 선임되었고,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으나 한국전쟁 때 북한으로 끌려가 평양 감옥에서 사망했다. 해방 후 관상대 초대 대장과 인하공대 학장으로 재직한 이원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조선에 소개한 수학자 최윤식(1899~1960)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의 종신집권을 위한 이른바 ‘사사오입 개헌’에 연루되기도 했다.
한국 담수어를 연구하여 총 8권의 책으로 집대성한 ‘물고기 박사’ 최기철(1910~2002)은 4,19 혁명 때 계엄령하에서 전국교수단 258명의 일원으로 시국선언문 발표에 참여했으며, 한국민물고기보존협회를 만들어 멸종 위기에 처한 물고기를 살리기 위해 애썼다.
한편, ‘국의 방법’을 창안해 허리케인과 태풍의 장기예보를 실현했던 국채표는 박정희 정권 때 관상대 대장으로 있으면서 ‘인공강우’를 전략적으로 이용해 한국 기상시스템을 현대화하고 기상학 발전을 도모했다. 박정희 군사정부에서 “인공강우는 가뭄 해결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전 정부와는 다른 혁명정부의 이벤트가 될 획기적인 방법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다.”
이처럼 과학자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곳곳에서 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맞닥뜨린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정지용, 이광수, 최규하, 이회창 같은 이름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동안 정치·사회적인 관점으로만 보던 현대사를 과학자라는 창을 통해 새롭게 바라보며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아울러 우리 사회에서 과학자의 위치와 역할, 사회적 책무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세계 과학계의 흐름과 한국 과학자의 계보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 그려 내는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
과학자 열전에 걸맞게 저자들은 인물의 생애는 물론이고 과학자로서의 활동과 학문적 업적을 설명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과학자들은 학업 및 연구 과정에서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이루며 학문적 계보를 형성해 나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당시 세계 과학계의 흐름도 함께 담겼다.
노벨상 수상자를 다수 배출한 초창기 비타민 연구, 냉장고의 보급과 프레온가스 개발, 헬라세포를 이용한 암세포 연구, 우주선(cosmic ray)과 핵건판 실험, 전자기력-약력의 통일과 표준모형 등 20세기 세계 과학계의 주요 관심사를 한국 과학자들의 활동 속에서 발견하는 일은 그 자체로 새롭고 흥미로울 뿐 아니라, 세계 과학사와 연결된 줄을 통해 그동안 공백처럼 여겨졌던 근현대 우리 과학의 존재와 자리를 확인하는 기회이기도 하다.
식민지라는 열악한 조건, 분단과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낙후된 연구환경에서도 과학자들은 유학과 공동연구, 학술지 발간 등을 통해 해외 과학자들과 소통하고 세계 과학계의 흐름을 따라잡으며 끈질기게 연구를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제자들을 해외로 보내 선진 연구 방법을 익히게 하고 별도의 공부 모임을 꾸려 학계의 최신 성과를 공유하는 등 후속 세대를 기르고 연구 전통을 확립했다. 각종 학회도 창립되었다. 그렇게 대한민국 초기에 과학자 집단이 형성되면서 오늘날 과학 한국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우리 과학이 어떻게 짧은 시간에 빠르게 국제적인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었는지, 현대 한국의 압축적 성장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과학화 운동, 기념일, 동식물 이름, 신여성…
다양한 키워드에 숨어 있는 현대 한국인의 생활과 의식의 기원
현재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고 따르는 많은 것들이 근현대 시기에 만들어지고 결정되었다. 1930년대 말에 지금 우리가 부르는 많은 동식물의 우리말 이름이 지어졌으며, 1934년 찰스 다윈 사망 50주년을 맞아 그의 사망일인 4월 19일이 과학데이로 지정되었다(현재 과학의 날은 과학기술처 발족일인 4월 21일로 날짜만 바뀌었다). 한글날은 음력과 양력 율리우스력과 그레고리력 등 복잡한 논의 끝에 10월 9일로 결정되었다. 해방 후 조선산악회의 시민식목등산회 개최는 1949년 식목일의 제정으로 이어졌고, 1978년에는 식물학자 이민재와 이은상, 이숭녕이 초안을 작성한 자연보호헌장이 선포되었다.
각종 기념일의 제정은 무엇보다도 과학의 대중화, 생활의 과학화를 위한 방안이었다. 근현대 과학자들은 과학 강연회에서 강연하고, 과학대중화운동을 이끈 김용관의 발명학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기고 글을 통해 생활의 과학화를 이끌었다. ‘물고기 박사’로 알려진 담수어 연구자 최기철은 낙후한 지역의 주민을 대상으로 생산 증대와 미신 타파 등 직접적인 생활의 과학화 사업을 펼쳤다. 전국민 과학화 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현대사는 산업화, 만주화와 함께 치열한 과학화의” 과정이었다.

“1937년 첫 번째 성과로 『조선식물향명집』이 출간되었을 때 정태현은 도봉섭, 이덕봉, 이휘재와 함께 이 책의 공편자로 이름을 올렸다. … 민들레, 쑥, 엉겅퀴, 개망초, 고들빼기, 곰취, 머위, 개미취, 여우오줌, 도깨비바늘, 구절초, 국화, 과꽃, 백일홍 등 지금 우리가 부르는 많은 이름이 이때 확정된 것이다.”(47쪽, 정태현 편)

이 밖에, 여성사의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장면이 많다. 김삼순이 입학한 도쿄여자고등사범학교는 기혼자의 재학을 허용하지 않았고, “학생 신분으로 남자를 만나는 것을 엄격히 규제하여 ‘50세 이하의 남성과는 나란히 걷지 말 것’이라는 내부 지침까지” 있었다든가, 석주명이 신여성인 김윤옥과 이혼을 하면서 이혼 원인으로 “시가와 의합치 못한 점, 자기를 찾아오는 손님의 접대에 경중을 가리지 못한 점, 단추 떨어진 와이셔츠를 함부로 내놓는 점”을 들자, 김윤옥의 친구들이 “남성 중심의 전제주의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비난했다는 기사는 남녀평등 의식을 탑재한 신여성과 전통적인 여성상에 머물러 있는 구시대적 제도와 남성이 갈등하던 시대상을 잘 보여 준다.
학제의 변천과 여러 교육 기관 및 학과 설립, 각급 학교의 커리큘럼에서 현대를 읽어낼 수도 있고, 최근 R&D 예산 삭감과 대비되는 박정희 시대의 과학 정책과 투자가 눈에 들올 수도 있다. 박정희 시대는 진정 과학자들의 벨 에포크였을까?
근현대 한국 과학자라는 새로운 유적이 발굴되었다. 유적이 발굴되면 전공 분야나 관심사에 따라 누구는 건축양식을 누구는 복식을 어떤 이는 사회제도를 발견하는 것처럼, 이 책에서 무엇을 읽어낼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저마다의 독법으로 즐겁게 읽어 보자.

사실에 기반한 서술, 다양한 기록과 인터뷰를 통한 교차 검증!
인물의 활동과 시대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다채로운 자료와 사진
이 책은 전북대 과학학과 교수이자 전북대 한국과학기술인물 아카이브를 책임지고 있는 김근배 교수와 연구자들이 15년간 연구한 결과물이다. 공동 편저자인 이은경, 선유정 교수를 비롯해서 근현대 시기를 연구하는 10여 명의 과학사학자가 집필에 참여했다. 미생물학, 생물학, 물리학, 화학 등 학부 전공이 각기 다른 저자들은 논문, 저서, 기고와 기사, 회고록, 정부 문건 등 다양한 자료를 살피고 때론 유족이나 제자를 인터뷰하며 인물의 삶을 폭넓게 들여다보았고, 교차 검증을 통해 사실관계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회고록과 기고·기사 중 일부는 인물의 생생한 목소리를 글로 만날 수 있도록 발췌하여 실었다. 충실한 참고자료 목록은 후속 연구자를 위해 책에 그대로 수록되었다.
정두현의 이력서(국가기록원 소장), 고려인 화가 변월룡이 그린 조류학자 원홍구의 초상(변원룡 유족 제공), 연희전문 언더우드관 옥상에 국내 최초로 설치되었던 천체망원경(연세대 기록관 소장), 조순탁의 통계역학 관련 친필 원고(아들 조권국 제공) 등 여러 기관과 유족이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자료와 사진을 제공 받아 수록한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다채로운 자료와 사진 덕분에 인물의 활동과 시대상이 훨씬 생생하게 다가오고 책을 보는 재미가 배가된다.

“과학자의 생애와 업적은 사실에 기반해서 서술하려고 노력했다. 작은 사실이라도 그것을 정확히 밝히고자 반복적인 검증 절차를 거쳤다. … 아울러 인물의 공과를 사실 그대로 적시하고자 했다. 뛰어난 과학자일수록 대부분의 자료가 공로만 주목하고, 그마저 과장하여 서술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과학자들을 공정하고 엄정하게 다루려고 했다.”(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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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ISBN 9791197909474
발행(출시)일자 2024년 04월 19일
쪽수 752쪽
크기
153 * 220 * 44 mm / 1148 g판형알림
총권수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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