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Yipyo Hong - 2005년에 서울의 노숙자들을 위해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을 만드신 대한성공회 임영인... | Facebook

Yipyo Hong - 2005년에 서울의 노숙자들을 위해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을 만드신 대한성공회 임영인... | Facebook


2005년에 서울의 노숙자들을 위해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을 만드신 대한성공회 임영인 신부님... 12년 전 일본에서 처음 뵙고 종종 산에 함께 오르는 사이가 되었다. 4.16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임신부님께서 보내주신 글을 혼자만 묵상할 수 없어 이곳에서도 나눠 본다. (산돌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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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고통

세월호의 사건이 일어난 지 10년. 그 상처는 아물지 않고 후유증은 지금도 계속된다. 미흡한 진상규명, 책임자의 처벌도 없고, 안전사회를 만들겠다는 정부의 노력도 없다. 그래서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고통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음을 경험한 트라우마, 그리고 함께 있었던 친구나 가족을 저 세상에 보내고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자책에 시달리고 있다. “아니다, 당신이 살아있어 고맙다. 이제부터의 당신의 삶이 소중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도 그들의 귀에는 겉돌고 만다. 게다가 피해자들에 대한 조롱, 유족들에 대한 욕설, 사건을 호기심 어린 화젯거리로 만들며 조소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조롱하고 조소하는 일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성서를 읽다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노아의 이야기다. 노아가 살고 있던 세상은 하느님 보시기에 너무나 썩어 있었다. 무법천지였다. 사람들이 하는 일마다 속속들이 썩어 있었다. 그러자 하느님은 이들을 쓸어버리기로 하셨다. 그러나 노아 만큼은 올바르고 흠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노아의 가족을 구하기로 하셨다. 홍수의 심판이 일어났지만 노아의 가족은 살아남았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남은 노아에게 이해가 안되는 일이 일어났다. 노아가 술을 먹고 취하여 벌거벗은 채로 지냈던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변한 수 있을까? 그는 올바르고 흠 없는 사람이 아닌가? 이 의문에 답을 주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또다른 고통이 다가왔다. 그것은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부끄러움과 자책이었다. 몸부림치며 절규하며 죽어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수시로 떠올랐다.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술을 안 마실래야 안 마실 수가 없었다. 노아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살아남은 그는 맨정신으로 살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살아남은 자의 고통,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었다.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은 채 누워있는 것을 보고 비웃은 사람이 있었다. 아들 함이다. 그는 노아의 벌거벗은 모습을 가리려고 하지 않고, 형제들에게 이야기를 하며 비웃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셈과 야벳은 달랐다. 아버지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옷으로 가려주었다. 술에서 깬 노아는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비웃었던 함을 저주하였다. 그것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저주가 아니었다. 살아남아서 부끄러운 자가 세상을 향해서 하는 호소였다. 하느님께서 노아의 호소를 받아들였기 때문일까, 셈과 야벳은 축복하셨지만 함은 축복하지 않으셨다.
세월호의 살아남은 자들을 조롱하고 조소하는 자들의 모습이 함의 모습으로 겹쳐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노아는 살아남은 것을 부끄러워했기에 누구보다 올바르고 흠 없는 사람임이 틀림없다.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당신들도 그렇다!


2024년 4월 12일, 대한성공회 임영인(시몬) 신부
현, 일본성공회 도쿄교구 세아이교회(聖愛教会) 주임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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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다 읽고 나니 세월호 참사로 사랑하는 딸 유예은 양을 잃으신 유경근 선배님의 페북에 올리신 술과 관련된 글들이 떠올라 다시 공유해 본다. 유경근 선배님이야말로 이 시대의 노아시다. 우리는 셈과 야벳처럼 자식과 형제, 친구를 잃으신 모든 분들에게 신의 위로와 치유가 임하길 간절히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감추인 진실이 밝혀지고 정의가 반드시 실현되길 소망한다.
지난 해와 올해 초에는 유난히 무지개를 많이 보았다. 지난 해 봄, 근무했던 대학과 고후 분지에 드리워진 무지개... 그리고 지난 연초에 어머님과 조카들이 왔을 때 비와코(琵琶湖) 호변에 걸렸던 무지개, 나고야 기소가와(木曽川) 하구에서 목격한 무지개까지... 노아에게 주신 무지개의 참 의미가 다시 이 땅에서 드러나길...
노아가 다시 뭍을 밟았던 아라랏산과 같은 풍경인 기소고마가타케(木曽駒ヶ岳) 정상에서 함께 한 임영인 시몬 신부님의 모습도 올려 본다. (산돌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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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 Kyunghwa
위로가 되는 글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목사님.
제가 속한 커뮤니티에 공유해도 될까요?
Yipyo Hong
Jung Kyunghwa 네...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성은
노아의 고통…생각 못했던 부분이네요. ㅠ
Yipyo Hong
김성은 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노아의 심정... 이제 또 다시 새로운 10년의 시작입니다. 세월호 1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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