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만의 시간 - 반국가단체 만들기에 희생된 한통련의 50년김종철 (지은이)진실의힘2023-08-15







































미리보기
Sales Point : 287

책소개
저자 김종철 전 기자는 현직(한겨레 신문)에 있을 때부터 한통련 회원들이 겪는 인권침해, 반국가단체 판시의 문제점, 국내 민주화운동과 한통련의 연대활동 등을 여러 차례 특집기사로 다뤄왔다. 2022년 정년 후 그는 한통련에 대해 보다 더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한통련은 “우리 사회에서 마지막 남은 소외당한 사람들”이다. 국내와 일본을 넘나들며 한통련과 관련된 인사들을 심층취재하고, 재판자료, 문헌기록, 언론보도 등을 수도 없이 뒤지며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반국가단체 만들기에 희생된 한통련의 50년을 기록했다. 5년에 걸친 저자의 전방위적 취재는 탐사보도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며 『야만의 시간』은 독자들을 생생한 역사적 현장으로 빠져들게 한다.
목차
들어가는 글
1. 반세기 넘는 차별과 박해
“당신들은 자유 입국 안 돼”
“국가유공자 보상금도 안 돼”
“한통련 회원과는 거래 안 돼”
2. 반국가단체 만들기와 굳히기
김정사 간첩 사건 조작의 비밀
정보부의 조작카드, 영사증명서와 윤효동
‘DJ 내란음모’각본 재판의 희생양
3. 개혁파의 홀로서기와 찬란한 투쟁
베트콩파의 탄생
김대중과의 만남과 한민통
눈부신 민주화운동과 국제연대
반외세 자주의 통일운동
4. 머나먼 명예 회복
한통련대책위의 행동하는 양심들
이명박 진실화해위원회의 배반
법원, 비겁하거나 게으르거나
나가는 글
주
참고문헌
찾아가기
접기
책속에서
군사독재 정부의 반국가단체 만들기와 굳히기
한통련의 전신 한민통은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의 개혁적인 재일동포들이 1973년 일본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과 함께 만들었다. 하지만, 8월 13일로 예정된 발족식을 몇일 앞두고 박정희 정권에 의해 김대중이 납치되었다.
김대중이 납치된 다음 날인 1973년 8월 9일 도쿄에서 김대중구출대책위를 결성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10년 동안 한민통은 김대중 구출운동에 전력을 다했다. 이들 재일 민주개혁파의 열과 성을 다한 김대중 구출운동은 일본 시민사회를 동조 세력으로 끌어냈으며, 전 세계 여론을 움직였다. 김대중이 박정희에게 당했던 1차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고, 전두환에 의한 2차 위기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한민통의 이러한 노력 덕분이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211쪽)
한민통(한통련)이라는 단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과거 독재정권에 맞서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전력을 쏟았고, 그 성과는 대단했다. 한민통의 활동을 눈엣가시로 여긴 박정희 군사정권은 한민통을 반국가단체로 만들어버렸다. 1977~78년 재일동포 유학생인 김정사를 간첩으로 조작하면서 아무 관계도 없는 한민통을 배후 세력으로 지목하여 반국가단체라고 규정했다. 이어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정권이 만든 ‘한민통=반국가단체’라는 판시를 빌미로 김대중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저자는 이런 조작이 한민통과 아무런 상관없이 시작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한민통을 당사자로 하는 재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법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재일동포 김정사도 무도한 독재정권이 휘두른 칼날에 인생의 행로가 꺾인 피해자지만, 일본에서 활발하게 한국 민주화운동을 벌이던 한민통은 집단 전체가 하루아침에 반국가단체가 됐다.(61쪽)
김정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던 한민통이 김정사의 구속과 재판을 거치면서 반국가단체가 된 것은 검찰 공소장에 슬쩍 끼워둔 단어 몇 개 때문이었다. ... “북괴 및 「재일조선총연합회」의 지령에 의거 구성되어 그 자금 지원을 받아 그 목적 수행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는 반국가단체인 재일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라는 67개 글자에 엄청난 비밀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공안 당국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71-72쪽)
군사독재 정권은 정권 유지에 위기가 닥치거나 권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느낄 때마다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을 만들어 냈다. 저자는 이른바 김정사 사건도 그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저자는 반국가단체로 규정되려면 그들이 정말 정부를 자처하는지, 또 국가를 뒤엎을 계획을 하는지 등이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드러나야 하는데, 김정사에 대한 공소장에는 한민통이 정부를 참칭하는지, 대한민국 전복을 목적으로 삼는지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하나도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강령이나 규약에 대한 조사나 분석도 없이 섣불리 반국가단체로 규정함으로써 한통련의 질곡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접기
민주정부도 외면한 한통련
한통련 회원들은 야만적인 독재정권이 자신들을 반국가단체로 조작한 것이 억울했지만, 조국이 민주화만 되면 명예가 회복되고 복권이 이뤄질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무참히 깨져버리고 민주화된 한국 사회에서 한통련 사람들은 외면당했다.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서는 이들의 조국 방문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나마 노무현 정부 시절 2004년 손형근 의장 등 한통련 회원들에게 처음 여권을 발급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사정이 달라졌다. 「여권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유효기간이 턱없이 짧은 여권을 발급하거나, 손형근 의장에게는 여권을 발급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잘못된 이 시행령을 손보지 않았고, 손형근 의장은 현재까지도 여권을 손에 쥐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반국가단체 회원이라는 이유로 사업상 불이익을 당하거나 재일학도의용군으로 출전하여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지급되던 보상금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한통련 회원들의 피나는 노력과 우여곡절 끝에 2010년 6월 1기 진실화해위원회 전원위원회에 상정된 보고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다.
한민통 규약과 강령 등에 「국가보안법」에서 정한 반국가단체로서의 국가 변란의 목적이나 의도를 찾을 수 없고, 한민통이 정부를 참칭하였다거나 지휘통솔 체계를 갖춘 국가조직 체계를 갖추고 있거나, 정부를 사칭하였거나 새로운 정부를 조직한 내용 등의 행위 사실은 일체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한민통에 대한 반국가단체 규정은 부당하므로 이를 시정할 필요가 있다.(308쪽)
그러나 한통련의 반국가단체 규정에 대한 진실 규명을 하자는 의견과 달리, 김정사 사건 재심에서 한통련의 반국가단체 여부를 다룰테니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진실 규명 보고서를 채택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결국 표결에 부쳐졌고 ‘한통련 진실 규명 반대’, 즉 각하 결정이 나왔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조사보고서까지 마련한 진실 규명이 외면받는 순간이었다.
‘김정사는 한청 소속 지도원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침투한 자로서 한청은 반한단체일 뿐 반국가단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구속영장 신청 시 고충이 많았다’고 보안사 스스로 『대공30년사』에서 고백했을 정도(75쪽)였지만, 진실화해위원회의 각하 결정 앞에서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한민통(한통련)을 「국가보안법」에 따른 반국가단체로 교묘하게 몰아간 것은 정보부와 검찰이었으나, 이를 법적으로 승인하고 굳힌 것은 법원이었다. 법원은 1978년 김정사 사건에서 어이없게 한민통을 반국가단체라고 판시했을 뿐 아니라, 이후 여러 재판에서도 ‘한민통=반국가단체’라는 규정을 아무 의심 없이 수용했다. 잘못 꿰인 첫 단추를 바로잡을 기회가 두 차례 있었지만, 두 번 다 한민통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슬쩍 피해갔다.(321쪽)
저자는 진실화해위원회뿐 아니라, 법원이 한통련의 반국가단체 여부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판단할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는데 이를 일관되게 회피해버린 법원의‘게으름’이나 ‘비겁함’을 꼬집고 있다.
2004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재심은 법원으로서는 잘못된 자신의 과거와 직면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였다. 한통련의 이적성 여부를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다시 판단할 기회였지만, 법원은 이를 피해갔다. ...이번에는 김대중이 1987년 특별사면을 이미 받았다면서 반국가단체 수괴 혐의에 대해서는 “면소” 판결을 했다. 중대한 사안에 대한 판단을 사실상 회피한 것이다. (330-331쪽)
김정사 사건 재심에서도 법원은 한민통(한통련)이 반국가단체인지 여부는 아예 다루지 않고 넘어갔다.
임계성이 북한 공작원이라는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1978년 서울고법이 임계성을 만나 김정사를 간첩 혐의 유죄로 선관 것은 위법”이라고 판단하면서도 한민통의 반국가단체 규정 자체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334쪽)... 더보기
머나먼 명예 회복
재일동포 유학생 조작 간첩 사건 때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힌 후 한통련 사람들은 지난 45년간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겪어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국내에서는 많은 것이 바로잡혔다. 형극의 길을 걸었던 국내의 민주인사는 명예 회복과 함께 유무형의 보상을 받았다. ... 그러나 해외에서 한국 민주화운동에 매진했던 한통련 사람은 명예 회복이나 보상은커녕 독재정권이 억지로 덧씌운 반국가단체라는 족쇄를 찬 채 각종 차별과 박대를 아직도 받고 있다.(341쪽)
재심을 통해 속속 무죄로 드러나고 있는 재일동포 양심수와 달리 한통련 사람들은 재심청구도 할 수 없는 특수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저자가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책무에 무게를 두는 지점이다.
한통련은 유학생 간첩 조작 사건에 끼워 넣어져 반국가단체가 됐을 뿐 자신들이 직접 재판을 받은 적이 없다. 그래서 반국가단체 규정을 벗어나려고 재심을 하고 싶어도 청구할 자격이 없어 법적 해결책이 마땅치 않다. 이에 이들은 과거사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설립한 진실화해위원회 1기와 2기에 잇따라 진정서를 냈다. 자신들에게 씌워진 반국가단체 규정이 잘못이었음을 권위 있는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원회가 밝혀달라는 요청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의 진실화해위원회(1기)는 막판에 정치 논리로 한통련에 대한 진실 규명을 거부했다. 현재의 2기 진실화해위원회가 다시 이 사안을 살펴보고 있지만, 한통련은 불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다.(341쪽-342쪽)
한통련 사건은 야만적인 독재정권 시절에 있었던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문제다. 반독재민주화운동을 한 이들에게 아무런 근거도 없이 반국가단체라는 붉은 딱지를 붙인 것은 독재 시절 한국 정부였으나, 지금까지 그들을 각종 차별 속에 방치해두고 있는 것은 민주화된 한국 사회다. 이 ‘야만의 시간’을 끊어내는 것은 일본에 사는 그들의 일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 우리의 과제라고 저자가 강조하는 이유다.
민주화된 한국 사회가 할 일은 해외에서 민주화운동에 애썼던 그들에게 독재자들이 씌운 오명을 벗겨주는 일이다. 정치적 또는 법적으로 굳이 규정한다면 이들은 반정부 활동가였을 뿐이다. 해외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단체에 반국가단체라는 굴레를 씌어서 우리 사회에서 추방한 것은 과도하고 명백한 잘못이지 않은가(343쪽)... 더보기
추천글
대한민국 국민은 사실 한통련에 큰 빚을 지고 있다.
아니,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 아니아니, 한통련 자체를 모른다. 그러니 그 성원들이 어떤 고통을 겪어왔고, 현재도 겪고 있는지를 모른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에서 납치되던 1973년 결성되어 올해로 만 50살이 되는 한통련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오래된 민주화운동 단체이지만, 여전히 빨갱이라는 낙인을 벗지 못하고, 여권도 제대로 안 나오는 처지다. 일본에서 차별받고, 한국에서 불온시 되는 한통련에 대해 일찍부터 관심을 가졌음에도 이렇다 할 일을 못해 늘 부담스러웠는데, 김종철 기자가 『야만의 시간』을 펴낸다. 딱 내가 쓰고 싶었던 책, 내가 썼어야 할 책이다.
- 한홍구 (성공회대 석좌교수, 한국현대사)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23년 8월 11일자 '책&생각'
한국일보
- 한국일보 2023년 8월 10일자 '책과 세상'
경향신문
- 경향신문 2023년 8월 11일자 '새책'
국민일보
- 국민일보 2023년 8월 17일자 '200자 읽기'
세계일보
- 세계일보 2023년 8월 18일자 '새로 나온 책'
저자 및 역자소개
김종철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대학에서 한국사를 전공했다. 1989년 《CBS》기자로 출발해 《한겨레》신문에서 논설위원, 정치부장, 신문부문장, 선임기자 등으로 일했다. 정치 분야를 주로 담당하던 기자 시절부터 역사와 그 흐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2022년 정년을 마친 뒤 반국가단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여전히 차별과 냉대를 받고 있는 한통련에 대해 대한민국 역사로서의 재일동포사를 복원한다는 마음으로 『야만의 시간』을 집필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각별한 당신』이 있다. 접기
최근작 : <야만의 시간>,<각별한 당신> … 총 3종 (모두보기)
출판사 소개
진실의힘
도서 모두보기
신간알림 신청
최근작 : <전쟁하는 뇌>,<광장의 역설>,<정의를 배반한 판사들>등 총 13종
대표분야 : 한국사회비평/칼럼 14위 (브랜드 지수 17,902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독재정권의 희생양’ 재일 민주단체 ‘한통련’
민주 조국에서도 외면받는 억울한 이야기
한통련은 어떻게 반국가단체가 되었나? 그 과정을 톺아보는 실증적 기록
조국을 사랑했지만, 조국으로부터 반세기 넘도록 외면과 박대를 당하고 있는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사람들의 이야기가 『야만의 시간』으로 우리 앞에 섰다.
저자 김종철 전 기자는 현직(한겨레 신문)에 있을 때부터 한통련 회원들이 겪는 인권침해, 반국가단체 판시의 문제점, 국내 민주화운동과 한통련의 연대활동 등을 여러 차례 특집기사로 다뤄왔다. 2022년 정년 후 그는 한통련에 대해 보다 더 집중적으로 취재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한통련은 “우리 사회에서 마지막 남은 소외당한 사람들”이다. 국내와 일본을 넘나들며 한통련과 관련된 인사들을 심층취재하고, 재판자료, 문헌기록, 언론보도 등을 수도 없이 뒤지며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반국가단체 만들기에 희생된 한통련의 50년을 기록했다. 5년에 걸친 저자의 전방위적 취재는 탐사보도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며 『야만의 시간』은 독자들을 생생한 역사적 현장으로 빠져들게 한다.
김대중이 납치된 1973년 결성되어 올해로 50살이 된 한통련
올해 8월, 한통련(옛 이름 한민통)은 설립 50주년을 맞이했다. 반백 년 동안 조국의 민주화와 통일을 염원했으나, 박수와 축하보다는 여전히 반국가단체라는 족쇄에 갇혀있다. 수많은 재일동포가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고 있지만, 한통련은 여전히 반국가단체다. 한통련 회원들은 반국가단체 구성원이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과 박해를 받고 있다. 여권도 제대로 발급해주지 않는다. 반국가단체 회원이라는 이유로 사업상 불이익을 당하거나,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아 지급되던 보상금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불온시하고, 일본에서는 차별한다.
민주화된 조국은 왜 아직도 이들을 불온과 기피의 대상으로 남겨두고 있나?
1973년 민단계 재일동포들이 일본에 망명 중이던 김대중과 함께 한민통 결성, 결성식을 앞두고 김대중 납치, 초대의장으로 김대중 추대, ‘김대중구출대책위원회’결성. 1977년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 사건 공소장에 ‘반국가단체’로 등장. 1978년 대법원은 “한민통은 반국가단체”라는 공소장 내용을 그대로 인정. 1989년 한통련으로 이름을 변경했으나 여전히 반국가단체로 규정... .
저자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 조작을 일삼은 정보기관과 검찰, 그리고 공소장을 그대로 베낀 법원, 취재도 없이 받아쓰기식 보도를 한 언론, 반국가단체 여부를 판단하지 않은 1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등을 하나하나 톺아보며 우리를 그 시대로 이끌고 간다. 그리고 “과연 이들만의 문제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저자의 시선은 민주정부 출범 후 벌어진 한통련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바라보며 훨씬 날카롭고 섬세해진다. 저자가 보기에, 한통련 사람들에게 들씌어진 반국가단체라는 오명을 벗길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2004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재심과 2011년 김정사 사건 재심에서 법원은 모두 무죄 선고를 하면서도 한통련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슬쩍 피해갔다. 2010년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는 한통련에 대한 반국가단체 규정은 잘못이었다는 최종 보고서가 나왔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로 폐기되고 말았다.
법원도, 진실화해위원회도 본질적 문제인 반국가단체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비껴간 것이다. 저자는 민주정부가 들어선 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한통련의 처지, 그것이 바로 우리 민주주의의 현재라고 진단한다. 이‘야만의 시간’을 끊어내는 것은 일본에 사는 그들의 일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 우리의 과제라고 저자가 강조하는 이유이다. 접기
북플 bookple
이 책의 마니아가 남긴 글
친구가 남긴 글
내가 남긴 글
친구가 남긴 글이 아직 없습니다.
마니아
한통련의 50년 역사를 곱씹은 야만의 시간은 ‘희생된‘ 이라는 형용사에 어울리지 않는다 . 문제는 이러한 50년의 야만의 시간이 지금까지 이어진다는 것! 기자님의 <각별한 당신> 전작과 비교 강추 ! 고난과 역경에서의 인간애는 비슷하나 <야만의 시간> 완독은 쉽지 않다. 대단한 기자님께 존경을!
진홍 2023-10-07 공감 (2) 댓글 (0)
마이리뷰
민족과 세계 사이,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 『야만의 시간』
민족과 세계 사이, 한국 현대사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 『야만의 시간』
최근 한국사 연구의 트렌드는 “트랜스내셔널(transnational) 역사학”이다. 국민국가를 당연한, 주어진 것으로 여기는 “방법론적 민족주의”를 벗어나, 네이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다양한 주체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중시하는 흐름이다. 현대사는 아마도 고대사와 더불어 ‘트랜스내셔널한’ 접근이 가장 활발한 시대일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다. 현대란 어떤 나라도 외따로 존재할 수는 없는, 필연적으로 다른 나라나 국제기구, 기업 등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시대니 말이다.
그렇다면 현대사 연구에서 ‘민족’이란 더 이상 유의미한 변수가 아니게 된 걸까? 그렇진 않다. 방법론, 다시 말해 역사를 이해하는 틀로서 의미가 없어졌을 뿐 ‘트랜스내셔널한’ 현대사회에서도 ‘네이션’은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이젠 “2민족 2국가”란 얘기도 나오지만)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국민국가와 세계 각지의 디아스포라 공동체로 나뉜 “코리아”라면 더더욱. 한국 현대사는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굉장히 ‘글로벌하게’ 이뤄졌다는 점에서, ‘네이션’과 ‘트랜스내셔널’은 상충하기보다는 오히려 함께 간다고 봐야 맞을지도 모르겠다.
김종철의 『야만의 시간』 역시 민단계 재일코리안 사회단체인 한통련(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 50년사를 통해 ‘네이션’과 ‘트랜스내셔널’이 복잡하게 얽힌 한국 현대사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지은이는 한통련이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혀 무고한 사람들이 숱하게 고통 받고 오늘날까지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아픈 현실에 집중한다. 하지만 이 책의 주제의식을 보다 잘 나타내는 말은, 제목보다는 뒤표지에 적힌 “대한민국 국민은 한통련에 큰 빚을 지고 있다”에 가깝다. 한통련은 한국의 통일과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고, 그로 인해 말 못할 고초를 겪었으나, 아직까지 대한민국 국민은 그 빚을 갚지 못하고 있다.
한통련은 그 탄생부터 한국 현대 정치사와 밀접히 얽혀있다. 한통련의 기원 중 하나인 재일한국청년동맹(한청)부터가 4·19혁명에 큰 자극을 받아 “4월혁명의 이념을 자신들의 이념으로 삼아 그 이념을 실천해가는 조직”으로 스스로를 정의했다. 또 다른 기원인 “유지간담회” 역시 5·16 쿠데타 세력을 지지하며 “민단의 여당화”를 꾀한 단장 권일에 맞서 김재화와 배동호가 주축이 돼 결성한 민단 내 개혁파였다. 이들은 한국 내 학생운동 세력 및 야당과 연대해 한일회담 반대운동을 벌이는 등 민단과 한국의 민주화를 나눠서 생각하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찬반과 맞물린 민단 내 대립은 1967년 한국 총선을 기점으로 폭발한다. 공화당이 권일을 전국구 의원으로 공천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신민당의 유진산은 김재화를 공천하겠다 약속했는데, 유지간담회가 신민당에 보낸 4,000만 엔을 정보부가 총련의 공작 자금으로 몰고 간 것이다. 급기야 1971년 민단 정기대회에서 정보부는 사실상 조작된 것이나 다름없는 녹음테이프를 근거로 유지간담회 측이 조총련과 함께 한국 정부를 전복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단장 선거를 파행으로 몰고 갔다. 결국 1972년 7월 7일 민단 중앙은 유지간담회의 거점인 민단 도쿄본부와 한청, 한학동을 “민단 와해를 기도하는 불순분자”로 규정하며 산하단체에서 제외했다.
갈 곳을 잃은 (구)민단 개혁파는, 역시 박정희 정부에 의해 해외를 떠도는 망명객이 된 김대중을 만나며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1973년 3월 21일 김대중의 하코네 연설을 계기로 이들은 민단과 한국의 민주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의기투합했다. 당시 7·4남북공동성명의 여파로 재일코리안 사회에서도 민단과 총련 사이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나, (구)민단 개혁파는 총련과 선을 긋고 “선민주 후통일”을 분명히 해달라는 김대중의 요구를 수용하면서까지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한통련의 전신) 일본지부 결성에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이 납치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구)민단 개혁파는 일본 시민사회에 이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나 자작극이 아닌 박정희 정부에 의해 벌어졌다고 호소하며 김대중 구명운동을 벌였다. 그렇게 한민통은 김대중 구출운동의 중심이 됨으로써 일본사회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고,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거의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김대중을 한국 민주화운동의 얼굴로 부각시킬 수 있었다.
김대중과의 만남은, 그러나 한민통에겐 크나큰 시련이기도 했다. 김대중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군사정권은 그가 의장을 맡았던 한민통에 “반국가단체”라는 낙인을 찍었다. 박정희 정권은 일본에서의 차별에 낙담해 ‘고국’을 찾은 재일코리안 청년들을 간첩으로 몰아갔고, 이들과 별다른 접점도 없던 한민통은 보안사에 의해 총련의 지령을 받고 한국에 간첩을 파견한 반국가단체로 탈바꿈했다. 전두환의 신군부는 김대중을 사형시키기 위해 그의 한민통 의장 경력을 국가보안법에 따른 반국가단체 수괴 혐의로 둔갑시켰다.
이는 김대중 개인에게도 큰 불행이었지만, 한민통에게도 그만큼의 비극이었다. 한민통이 반국가단체로 규정됨으로써 한민통에서 활동한 사람들에게도 여러 차별과 제약이 가해졌기 때문이다. 여권을 발급받지 못해 입국도, 투표도 할 수 없는 한통련 의장 손형근, 한국전쟁 당시 재일학도의용군으로 출전했음에도 한민통 활동 경력 탓에 보훈보상금을 받을 수 없게 된 곽동의, 한통련 회원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이어오던 거래처마저 빼앗긴 허경민은 한통련(한민통은 1989년 한통련으로 개편)에 새겨진 반국가단체라는 낙인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프게 보여준다.
이처럼 한통련(한민통)의 50년 역사는 한국의 국가폭력, 그리고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 한통련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다. 물론 한통련의 목표가 오로지 한국의 민주화였던 것만은 아니다. 『야만의 시간』에서 가장 가슴 벅찬 대목 중 하나인, “보통의 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오사카의 재일코리안 고등학생 김창오가 ‘의식화’되는 순간은 이를 잘 보여준다. 평범한 고등학생답게 멋 내기에만 관심이 있던 그는 도쿄 우에노공원의 판다를 보여준다는 형의 꼬임에 따라간 한청 집회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김종철과의 인터뷰에서 그때의 기억을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제가 아는 조선 사람은 가난한 집에 살면서 육체노동을 하고 술 취해서 집에 오면 부인과 아이들을 때리는 그런 가난하고 야만적인 사람이었어요. 그런 인상밖에 없었는데, 거기 모인 동포들이 당당하게 자기 나라의 장래를 이야기하는 걸 보고는 정말 충격이었어요. 그 모습을 보고는 한청에 가입했죠.”(p.209.)
김창오에게 한청이란 단순히 한국의 민주화를 지원하는 단체가 아니었다. 그동안 부끄럽게 여기던 조선/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새롭게 긍정할 수 있게 해주는, 나아가 조선/한국인으로서 일본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목소리를 내며 살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 지원이라는 대의와 일본사회 내 마이너리티로서 재일코리안의 존엄을 지키려는 움직임이 서로 맞물려 있었던 것이다. 그 점에서 재일조선인(그는 조선적을 유지하고 있다) 3세 역사학자인 정영환이 재일코리안을 의도적으로 ‘민족’과 떨어뜨려 서술하려는 최근의 연구경향과 거리를 두며, 이들에게 조국에 대한 공헌과 외국인으로서 권리 획득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지적한 것은 곱씹을 가치가 있다.
그렇다고 한통련(한민통)의 50년 역사가 전적으로 ‘민족’이란 틀 안에 갇히는 것은 아니다. 기실 한통련(한민통)의 “눈부신 성과”는 국제사회의 연대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한민통은 윤이상의 소개로 1977년 도쿄에서 열리는 사회주의인터내셔널 정상회담에 참석한 빌리 브란트를 만났고, 그에게 한국 민주화에 대한 지원을 약속받았다. 이듬해 6월 본과 런던에서 열린 한국 민주화에 대한 국제회의는 그 결실이었다. 사회주의인터내셔널이 1980년 6월 오슬로에서 열린 간사회에 한민통을 공식 옵서버로 초청한 것 역시 그 연장선 위에 놓여있다.
한민통이 주최하지는 않았지만, 김대중이 신군부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자 일본연락회의가 주도한 집회에 일본 시민 1만 7000여 명이 참가해 김대중의 석방을 외치기도 했다. 김대중의 1심 선고가 있던 날 전일본국철노동조합은 일본의 모든 기차역에서 항의의 기적을 울렸으며, 전일본항만노동조합도 일본의 모든 항구에서 한국 선박의 선적과 짐 내리기를 거부했다. 김종철의 말마따나 “이웃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위해 한 나라의 시민이 이처럼 깊이 연대투쟁을 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전례가 드문 일이었다.”(p.235.)
요컨대 한통련(한민통), 나아가 한국 현대사는 전적으로 ‘내셔널하지도’, 그렇다고 전적으로 ‘트랜스내셔널하지도’ 않다. 같은 민족을 뿌리로 삼는 두 개의 국민국가, 그리고 해외의 여러 디아스포라 공동체에게 민족이란 굉장히 중요한 정체성이었으며, 이를 둘러싼 협력과 경쟁이 국가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앞서 이야기했듯 애초에 한국 현대사의 ‘트랜스내셔널한’ 교류 대부분이 ‘네이션’을 매개로 이뤄진 것이기도 했다. 물론 미국과 일본을 비롯해 정말로 ‘다른’ 네이션들이 미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 만큼 한국 현대사를 이해할 때는 민족과 세계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진부한 얘기지만) 양자를 자유로이 오갈 수 있는 문제의식과 시선이 필요하다. 지은이가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지만, 『야만의 시간』은 내게 그런 한국 현대사 연구의 가능성을 제시한 책처럼 읽힌다. 나 같은 얼치기 역사학도의 기를 죽이는, 기자의 취재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는 촘촘한 서술도 인상적이다. (좋아하는 선생님께선 늘 역사학도가 기자를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더랬다.) 재일코리안 연구는 물론 국가폭력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연구할 때도 중요하게 언급될 이 책을, 『역사문제연구』나 『역사학연구』, 『역사비평』 같은 훌륭한 학술지에서 다뤄주길 바라는 건 그래서다.
- 접기
유찬근 2023-09-26 공감(4) 댓글(0)
Thanks to
공감
==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