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비핵화'라고 알려진 트럼프 발언... 사실은 이렇다
입력2025.08.28.
[정욱식의 진짜안보] 사즉생의 지혜로 북핵 문제를 '세계의 핵군축'에 담아내야제 의견을 피력할 때에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으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이 표현이 공식 국호이고, 조선이 '남조선'이 아닌 대한민국(한국)으로 표현하면서 자신도 공식 명칭으로 불러달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서로가 국가성을 인정할 때 대화와 관계 개선도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한 것입니다. 이에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합니다. <기자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5일 워싱턴 D.C.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현금 보석금 제도를 폐지하기 위한 행정 명령에 서명한 후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비핵화는 매우 큰 목표이다. 러시아는 여기에 참여할 뜻이 있고 중국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핵무기가 확산되는 걸 방치할 수 없다. 우리는 핵무기를 멈춰야 한다. 그 파괴력은 너무나도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5일(미국 현지시각) 이재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그런데 국내 일각에선 이 발언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나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트럼프의 발언을 러시아와 중국의 협조를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의 비핵화를 도모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발언 취지는 이보다 훨씬 크다. 그의 바람은 미국이 러시아·중국과 함께 핵군축 협상을 하고 궁극적으로 '세계의 비핵화'를 향해 나아가자는 것이다. 트럼프가 "우리(나와 푸틴)는 핵무기 제한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있고, 중국도 참여하길 원하고 있다"라고 발언한 것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알래스카 미러 정상회담 하루 전에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 다음 단계로 "전략 공격무기 통제 분야에서 합의에 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의 발언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세계 비핵화'는 2기 트럼프의 목표?

▲ 지난 2023년 3월 2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무기병기화사업을 지도하고 핵반격작전계획과 명령서를 검토하는 모습.
ⓒ 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주목할 점은 트럼프가 집권 2기의 목표로 세계의 핵군축이나 비핵화를 핵심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1월 23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진행된 세계경제포럼(WEF) 화상 연설에서 러시아와 중국을 거론하면서 "우리는 비핵화를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은데, 나는 그것이 매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2월 13일에도 러시아와 중국을 거듭 거론하면서 비핵화가 2기 행정부의 목표라는 점을 거듭 밝혔다.
그리고 3월 13일에는 "다른 국가들도 참여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라며, "규모는 더 작지만 김정은도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조선을 "확실한 핵보유국"이라고 칭하면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관계를 재구축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발언을 종합해 보면,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반도 비핵화"를 역설하자 트럼프도 이에 호응하면서 북미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트럼프의 야심을 너무 작게 보는 것이다. 트럼프는 '세계의 비핵화'라는 큰 틀에 북핵 문제도 담아내려고 하는데,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좁은 시야에 갇혀 있다는 뜻이다.
여기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어느 것이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일까?' 이재명 정부 들어서도 한반도 비핵화가 목표라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비핵화는 멀어지고 남북관계 회복도 불가능해진다. <조선중앙통신>이 한미정상회담 직후 "리재명이 '비핵화망상증'을 '유전병'으로 계속 달고 있다가는 한국뿐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리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에서도 이러한 분석이 지나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즉생의 지혜가 필요하다

▲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5일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러한 진단이 조선의 입장을 두둔하고자 함이 아님은 물론이다. 김정은 정권의 '조선 비핵화 불가론'과 트럼프의 '세계 핵군축과 비핵화론'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취지다(참고로 여기서 '트럼프 행정부'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이유는 아직까진 세계 핵군축과 비핵화 추진이 미국 행정부 차원의 공식 입장이라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기실 '세계 핵군축과 비핵화'는 '북한의 비핵화'만 요구해 온 외부 세계에 대한 조선의 대항 담론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트럼프가 핵 강대국들이 먼저 솔선수범을 보이자고 하면서 조선 등 다른 핵보유국의 동참도 요구하고 있다.
점진적인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북미정상회담을 통해서든, 핵보유국 정상회의를 통해서든 북핵 문제를 세계 핵군축의 틀에 담아내 '동결-감축-폐기' 프로세스를 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미중러 핵군축 협상이 이뤄질지도 불분명하고, 여기에 조선 등 다른 핵보유국이 어떤 형태로 참여할 수 있을지도 막막함이 있으며, 핵보유국 간에 큰 격차가 있는 핵전력을 어떻게 조율해 줄여나갈 수 있을지도 난제다.
다만 분명한 건 있다. 세계, 특히 미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의 핵군축 기운이 커질수록 조선의 핵 동결과 감축을 유도할 수 있는 정치외교적 환경은 무르익게 된다. 조선의 핵무기가 줄어들수록 한국에 이익이 될 것이라는 점도 자명하다.
하여 한국도 "북한의 비핵화"나 "한반도 비핵화"를 내려놓고 세계의 핵문제 해결이라는 관점에서 북핵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사즉생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점이라는 뜻이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은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장입니다. 최근 신간 <달라진 김정은, 돌아온 트럼프>를 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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