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 Ka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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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 관해 일견한 석사, 박사논문 포함 25편 중 상당수는 에코페미니즘을 주제로 다루거나 간접적으로 이 해석의 관점을 보여주는 논문들이다. 소설의 1부 <채식주의자>에서 주인공 영혜가 채식자이며, 3부 <나무불꽃>에서는 채식자를 넘어 거식(拒食)을 함으로써 식물(나무)이 되려는 열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포스트휴먼 에코 감수성, 에코페미스트적 해석의 관점은 주요하다고 생각한다. 육식을 먹고 여자의 일반적인 옷차림을 상식으로 여기는 영혜의 남편과 영혜의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부장적이며 영혜의 어머니로 대표되는 가부장제 하에서의 모성적인 관습이 주류적인 인간세계에서 이탈한 영혜가 추구하는 것은 물과 햇빛만으로 살아가는 식물의 세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채식주의자』 한국 첫판의 표지 그림은 에곤 실레의 나무를 차용했고, 미국판의 표지 그림도 나무 인간이다. 스페인어 역도 마찬가지이다. 미술사학자 양정무 교수는 실레가 그린 ‘네 그루의 나무’가 담고 있는 정서적인 고통과 시적인 서정성에 공감한 것으로 보인다”며 “작중 영혜는 채식을 하며 점차 나무처럼 육체와 영혼이 말라간 끝에 나무 그 자체가 되려고 하는데, 그 모습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나무 불꽃>에서 영혜는 언니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언니, 내가 물구나무서 있는데, 내 몸에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 땅 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응,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흔히 오해하듯 식물은 약하거나 수동적이지 않다. 식물은 잎과 꽃에서 터져 나오는 관능적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영혜는 자신의 몸에 꽃을 담고 있는 ‘식물-인간’이 될 때 생명의 활력을 되찾는다. 2부의 <몽고반점>에서 형부는 처제의 채식과 식물성 사이에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영혜가 살려내고자 하는 생명 세계에 공감하는 그가 처제의 몸에 꽃을, 그리고 두 사람이 관능적 황홀감에 빠져드는 2부의 이야기는 이들이 추구하는 세계가 파편화된 부분의 세계와 인간 도덕과 관습의 경계를 초월하는 전체 우주의 세계임을 보여 준다. 종교가 부분과 전체의 연합을 종교적 명상이나 실천으로 보여준다면, 예술은 부분과 전체의 융합을 예술적 행위를 통해 보여준다.
관습과 규칙과 도덕과 세상의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이분화되고 고정된 세계를 벗어나 의식이 무한히 확장되어 우주와 하나가 되는 황홀의 세계를 <몽고반점>에서는 몸의 꽃, 혹은 몸에 그려지는 꽃으로 표현된다. 2022년 개정판부터 표지그림이 꽃으로 바뀌었다. 나는 개정판의 표지그림이 작품의 지향성을 더 잘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푸른바탕에 푸른 꽃이라 도드라지지 않는다. 독일 낭만주의의 상징 파란꽃인가? 첫인상으로는 꽃인가 싶다. 달개비꽃이라는 사람도 있고, 원추리꽃이라는 사람도 있고, 나팔꽃 등등 다양하다. 영국판과 독일어판 표지는 꽃을 그렸다.
꽃은 생물 중에서 유일하게 생식기를 외부에 화려하게 자랑하고 유혹하는 생물이다. 찬란한 생명성의 표현이 바로 꽃이다. 2부 <몽고반점>에서는 바로 이 생명성의 충일감과 합일을 표현한다. ①맑고 투명한 아름다움(美)이다.
“그제야 그는 처음 그녀가 시트 위에 엎드렸을 때 그를 충격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모든 욕망이 배제된 육체, 그것이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라는 모순, 그 모순에서 배어나오는 기이한 덧없음, 단지 덧없음이 아닌, 힘이 있는 덧없음, 넓은 창으로 모래알처럼 부서져내리는 햇빛과, 눈에 보이진 않으나 역시 모래알처럼 끊임없이 부서져내리고 있는 육체의 아름다움...... 몇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 그 감정들이 동시에 밀려와, 지난 일년간 집요하게 그를 괴롭혔던 성욕조차 누그러뜨렸던 것이다.”
②생명 안에서 터져 나오는 황홀한 색채의 아름다움의 분출이다. 분출하는 야성적 생명성, 격렬한 존재감, 미증유의 새로운 감각.
“무수한 색채들이 – 물론 이전에도 색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으나 – 그의 안에서 터져나온 적은 없었다. 마치 몸의 내부가 힘찬 색채들로 가득 차올라, 그 격렬함이 더 견디지 못해 분출돼 나오는 것 같았다. 매우 격렬하게 그는 존재하고 있었다. 이전의 어떤 시기에도 결코 느끼지 못한 새로운 감각이었다.”
③어둠과 빛의 혼재, 카오스모스,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 흰그늘, 미추의 미학, 夕陽의 아름다움.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려왔던 대로였다. 그녀의 몽고반점 위로 그의 붉은 꽃이 닫혔다 열리는 동작이 반복되었고, 그의 성기는 거대한 꽃술처럼 그녀의 몸속을 드나들었다. 그는 전율했다. 가장 추악하며,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의 끔찍한 결합이었다.”
2부 <몽고반점>의 꽃은 1부 채식(菜食)의 억압 및 배제와 3부에서 음식 먹기를 일체 거부하고 햇빛만 맞고 살 수 있다는 거식(拒食)의 고통 속에서 피어난 고통의 꽃, 통화(痛花)이다.
성서나 불경에서 사용된 꽃의 상징, 은유에도 심한 고통과 아픔이 배어있다.
팔레스타인에는 수백 종의 꽃들이 있으나 성경에는 단지 나무꽃을 포함해 12종만이 언급되어 있다. 성서에는 꽃을 그 고유의 이름에서 말하고 있는 곳은 적다. 그러나 아가서의 시인은 팔레스티나의 봄의 즐거움을 생기있는 필치로 그리고 있다. (아 2:12-14).
“산과 들엔 꽃이 피고 나무는 접붙이는 때 비둘기 꾸르륵 우는 우리 세상이 되었소. 파란 무화과 열리고 포도꽃 향기가 풍기는 철이오. 나의 귀여운 이여, 어서 나와요. 나의 어여쁜 이여, 이리 나와요. 바위 틈에 숨은 나의 비둘기여! 벼랑에 몸을 숨긴 비둘기여, 모습 좀 보여줘요. 목소리 좀 들려줘요. 그 고운 목소리를, 그 사랑스런 모습을.” 예수께서는 하늘나라의 상징으로 들의 백합화를 보라 한다(마 6:28)
불경은 꽃을 사용해 깨달음의 세계, 선정의 세계를 매우 적극적이며 격렬하게 꽃비가 내리는 세계로 말한다.
“이 경을 다 설하신 뒤에는 곧 많은 대중 가운데서 결가부좌(結跏趺坐)하시고 무량의처(無量義處)삼매에 드시어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아니하셨으니, 이때 하늘에서는 만다라꽃과 마하만다라꽃과 만수사꽃과 마하만수사꽃을 내리어 부처님의 위와 대중들에게 흩뿌리며, 넓은 부처님의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였습니다.”(법화경 서품)
Prajna Y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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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 Ggot
이 책이 저는 아주 특별했는데(한강 작가 책 중에서 제일 마음이 가요) 교수님 글을 읽으며 다시 읽어야겠다 해요. 놓친 부분이 많았어요.
저도 나무와 꽃이 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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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Kalia
차꽃 이미 차꽃님 아니신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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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 Ggot
심광섭 아하하하^^교수님 댓글에 빵 터졌어요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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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배
근래 읽은 평 중에서, 제가 독서가 짧지만, 최고의 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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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o Kalia
이규배 전공자로부터 극찬을 들으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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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배
심광섭 아이고 참. 별 말씀을. 박사님께서 전공자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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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 Hwa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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