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 - 노무현정권과 개혁진보진영에 대한 성찰
김기원 (지은이) | 창비 | 201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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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꾸준히 진보진영과 개혁세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노동조합운동의 합리적 진로에 대한 논쟁을 주도해왔던 김기원 교수는 진보진영이 냉철한 비판과 통렬한 반성을 통해 자기혁신을 해야 집권도 가능하고, 제대로 된 통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아 <한국의 진보를 비판하다>를 출간했다.
이 책은 제1부 ‘노무현정권의 정치력을 돌아본다’, 제2부 ‘한국의 진보는 거듭나야 한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는 가장 최근의 진보정권인 노무현정권의 정치적·정책적 오류에 대한 진단과 비판, 진정한 진보정권을 탄생시키기 위한 정치사회적 선결조건에 대한 제안, 그리고 한진중공업 사태를 통해 바라본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나아갈 바에 대한 논의를 담았다.
책머리에
제1부 노무현정권의 정치력을 돌아본다
1. 노무현은 누구인가
2. 대연성과 기자실 문제
3. 대복송금 특검, 이라크 파병, 한미 FTA
4. 노무현정권의 인사정책
5. 검찰 및 언론과의 권력투쟁
6. 노무현정권과 진보파
제2부 한국의 진보는 거듭나야 한다
7. 한진중공업 사태를 돌이켜보며
8. 노동조합과의 충돌
9. 진보파의 게보를 더듬으며
10. 현실과 유리된 진보파
11. 한국사회의 모순과 진보의 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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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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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개혁적 진보의 메아리>,<경제학 포털>,<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 … 총 12종 (모두보기)
소개 :
1953년 부산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고 2014년 12월 지병으로 타계했다.
일제 귀속재산 연구를 통해 재벌의 근원을 파헤친 그의 박사학위 논문은 이후 『미군정기의 경제구조』로 출간되었고, 1990년대 들어서는 재벌문제를 오랫동안 천착하여 참여연대 등에서 활동하면서 『재벌개혁은 끝났는가』를 펴냈다. 그 외에 『현대자본주의론』『한국산업의 이해』『생활 속의 경제』『경제학 포털』『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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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민감하고 논쟁적인 정치비평서가 나왔다!
1987년의 민주화운동 이후 진보개혁세력은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두 대통령을 연달아 배출하며 우리 정치와 사회에 한층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다시 보수세력으로의 정권교체였다. 그뿐 아니라 지난 4년여 이명박정권의 역주행과 폭주에 반대하는 여론의 힘으로 지난 4월 총선에서 대대적인 국면전환을 꿈꿨으나 역시 여권의 승리로 끝났다. 이러한 일련의 민심의 흐름과 지리멸렬한 진보진영의 실상에 비추어보건대, 다가오는 12월의 대선 결과도 전혀 예측 불가능할뿐더러, 설령 야권과 진보진영이 승리한다 한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과 문제의식이 널리 공유되고 있다.
이에 그동안 꾸준히 진보진영과 개혁세력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노동조합운동의 합리적 진로에 대한 논쟁을 주도해왔던 김기원 교수(한국방송통신대 경제학과)는 진보진영이 냉철한 비판과 통렬한 반성을 통해 자기혁신을 해야 집권도 가능하고, 제대로 된 통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주장을 담아 『한국의 진보를 비판하다』를 출간했다. 이 책은 제1부 ‘노무현정권의 정치력을 돌아본다’, 제2부 ‘한국의 진보는 거듭나야 한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는 가장 최근의 진보정권인 노무현정권의 정치적·정책적 오류에 대한 진단과 비판, 진정한 진보정권을 탄생시키기 위한 정치사회적 선결조건에 대한 제안, 그리고 한진중공업 사태를 통해 바라본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나아갈 바에 대한 논의를 담았다.
노무현을 넘어라 ― 치열한 비판 없이 승리는 불가능하다!
‘노무현을 넘어라’는 단순한 구호나, 친노세력이라 일컬어지는 몇몇 정치인들에게만 해당하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진보정치권과 야권에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저자 김기원은 김대중정권에 이어 한국정치사에서 진보진영의 집권이라는 중대한 획을 그었던 노무현정권이지만 그 ‘공’보다는 ‘과’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점검할 때만이 집권한 후에 제대로 된 진보정치를 실현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논의를 출발한다.
우리는 이미 김대중·노무현정권 10년을 겪었다. 물론 이 시기는 보수·수구·남북대결세력이 외쳤던 것처럼 ‘잃어버린 10년’은 아니다. 나름대로의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기대에 크게 못 미친 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일부 진보파처럼 김대중·노무현정권을 그저 비난만 하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 실천 가능한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 제대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2013년이든 2018년이든 진보·개혁·평화세력이 집권할 경우에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다. ―「책머리에」
이를 위해 저자는 인간 노무현의 개성과 장단점을 먼저 되새겨보고, 1990년 3당합당 당시 통일민주당 해체식에서 “이의 있습니다”를 외치는 것을 시작으로 선거운동 시기 유권자들에게 감동을 주던 노무현이 실제 통치시기에는 왜 지지세력마저 등 돌리게 만드는 오류를 범했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한다. 선거시기와 통치시기는 엄연히 다름에도 불구하고 이를 혼동하며 정치적 실책을 거듭했고, 집권 후 권력을 장악하고 통치력을 발휘하기 위한 준비가 부족했던 노대통령과 정권 전반의 문제점은 막대한 기대 속에 화려한 출발을 알렸던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민심의 이반을 가져왔다고 본다.
특히 인사정책, 검찰개혁, 대(對)언론 전략, 진보파와의 관계설정 등에서는 형편없는 성적표를 받았고, 대북송금 특검, 이라크 파병, 한미FTA에 이르러서는 명분도 실리도 없이, 민심뿐 아니라 지지세력까지 이반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노무현정권은 초기부터 좁은 인력풀을 비정상적으로 가동하는 바람에 집권을 위한 준비 부족을 드러냈고, ‘평검사와의 대화’ ‘기자와의 대화’ 등의 이벤트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고 방치한 탓에 올바른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지지를 받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김대중정권의 대북송금을 두고 실시된 특검에서 김대중과 호남 민심을 제 편으로 만들지도 못했고, 대미 정책에서 가장 큰 악수(惡手)였던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로 이어지기에 이르렀다. 이에 더해 대연정 제안은 노무현의 독선과 현실정치에 대한 경험 부족, 그리고 이를 보완하기에 미흡했던 참모진의 허술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였으며, 진보언론조차도 등지게 만든 기자실 개혁 또한 여론을 중시하는 현대정치의 전략에 어긋나는 방향이었다.
여기서 저자는 노무현정권의 정책적 실책들을 지적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당시의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어야 할지에 대한 현실적 대안들을 제시하며, 이러한 점이 이 책을 단순한 사후 평가서가 아니라 논쟁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치평론서로 만들어주었다.
진보운동의 나아갈 길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를 두고 [창비주간논평]에 발표했던 '한진중공업 사태의 올바른 해법은'이라는 글에서뿐 아니라, 저자는 노동운동을 비롯한 진보진영의 비현실적이고 비합리적인 운동방식에 대한 지적에 앞장서왔다. 그런 내용을 집약해놓은 제2부에서는 진보진영 전반의 실상을 점검하고 비판하며, 제1부의 내용만큼이나 논쟁적인 주장을 펼친다.
노무현시대를 돌이켜보면서 노정권만이 아니라 진보파에도 많은 문제점이 존재함을 확인했다. 대표적으로 대중의 삶과 정서에 대한 이해 부족, 시장의 의의와 한계에 대한 인식 미흡,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전술의 결핍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런 문제점은 이명박시대의 한진중공업 사태, 신자유주의 타령, 통합진보당 사태 등에서도 마찬가지로 드러났다. 진보파가 거듭나지 않으면 야권이 어찌어찌해 정권을 잡더라도 전망은 그리 밝지 않은 셈이다. ―「책머리에」
특히 작년 진보진영과 노동운동계를 들썩이게 했던 한진중공업 해고사태와 이어진 희망버스 운동을 분석하면서 대기업 정규직 위주의 노동운동권과 정리해고 자체를 반대하는 진보파가 간과하고 있는 점은 무엇이며, 좀더 현실적인 요구와 대안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사측과 기업주 혹은 정치권과 사회에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조목조목 살핀다. 이 대목은 진보진영으로서는 매우 민감하고 논쟁적인 부분이다. 저자는 ‘정리해고 반대’라는 운동 진영 일반의 구호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진보파 경제학자로 이름 높은 장하준 교수를 비롯해 김대중정권 이래로의 한국경제를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분별없이 싸잡아 비판함으로써 오히려 문제의 해결을 저해하는 ‘현실과 유리된 진보파’의 허상을 진단한다. ‘신자유주의’라는 용어 자체의 문제점이나 경제적 개혁을 위한 선결과제를 무시한 주의주장이 얼마나 사상누각 같은지 저자는 경제학자답게 심도 깊은 분석으로 보여준다. 특히 장하준 교수에 대해서는 그의 저서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수치와 통계가 사실과 다르고, 그가 한국의 재벌과 재벌개혁론에 대해 오해하고 있으며, 복지확대라는 그의 진보적인 주장과는 배치되게도 개혁의 과제에 대해서는 무시한다고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경제·정치·문화 등 다양한 모순 중에서도 경제적 모순으로 인해 비롯된 현상을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이라는 세가지 키워드로 요약한다. 생산과정에서의 ‘고단함’, 1차 분배과정에서의 ‘억울함’, 2차 분배과정인 복지에서의 ‘불안함’이 심각하고, 각각에 대한 체감과 해법이 다름을 제대로 분별할 것을 주문한다.
결국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 모순의 산물인 셈이다. 다만 이런 모순을 얼마만큼 심각하게 인식하고 또 어떤 데서 해법을 찾는가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차이가 ‘진보↔보수’ ‘개혁↔수구’ ‘남북한 평화협력↔남북한 긴장대결’이라는 3차원의 주요 대립전선을 만들어낸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따위의 이념 대립을 넘어서 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자주 듣는다. 그러나 진정한 통합이란 차이에 따른 대립을 무조건 덮어버림으로써 가능한 게 아니다. (…) 서로의 대립지점과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고, 양립 가능한 대립과 해소해야 할 대립을 구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회의 대립전선을 확인하는 것은 바람직한 선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과제다. ―11장 「한국사회의 모순과 진보의 길」
진보개혁정권의 재탄생을 위하여
2012년의 양 선거 중 총선은 많은 이들의 기대와 달리 여당에 과반수 의석을 안겨주는 것으로 끝났다. 그로 인해 야권과 진보정치권은 상당한 충격을 받은데다가, 연이어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 부정과 중앙위원회 폭력사태, 종북논란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며 대선을 앞둔 전열은 요동치고 있다.
저자 김기원은 한국사회의 특수성과 진보의 태생적 제약성 속에서, 준비 부족으로 인해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던 김대중·노무현정권으로 대변되는 진보정치계의 개혁을 위해 작심하고 쓴소리를 하고 있다. 어제와 오늘에 대한 정확한 점검과 진단 때로는 냉혹한 비판이 있을 때에야 대선승리와 희망의 2013년체제가 가능하다기 때문이다.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라는 책 제목은 결코 저자와 진보진영의 최종 목적지이거나 체념하고 말 오늘의 현실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진정한 진보와 개혁을 위한 뼈아픈 성찰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저자는 단순히 현상과 결과의 표면을 지적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한국적 현실에 맞는 대안을 복지국가 모델과 교차비교해가면서 꼼꼼히 현실 정책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이 책은 대선을 준비하는 진보정치권뿐 아니라, 노무현을 넘는 진짜 진보 대통령을 바라고 진보운동의 개혁을 원하는 독자 대중들에게도 유효한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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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주는 정치, 삶을 바꾸는 정치를 요구한다 새창으로 보기
메틀키드 ㅣ 2015-01-26 ㅣ 공감(2) ㅣ 댓글 (0)
여전히 정치를 잘 모른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겠지만, 단순히 나이를 더 먹는다고 해서 지혜가 자동 옵션으로 풍부해지는 것은 아니다. 난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게으르고 나태하기에, 지혜를 쌓아가는 것에 여전히 초보적이다.
나의 첫 투표는 아쉽게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계산대로만 하면 97년 대선이 첫 투표여야 하지만, 난 투표하지 않았다. 재수 후 대학에 갓 들어간 덜 떨어진 새내기였고, 한창 음악에 빠져 있던 때라 정치 따윈 우리집 복실이에게 일임한 상황이었다. 아주 멍청한 녀석이었다. 뭐, 좋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IMF의 파고 속에 당시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어수선했고, 결핍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하지만 난 눈과 귀를 닫고 살았다. 쥐의 뿔도 모르면서 짐짓 뭣 좀 아는 것처럼, 헛소리만 늘어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능력이 현저히 부족했다. 역시나 덜 떨어진 녀석이었다. 매우 한심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군대엘 들어갔다. 아주 추웠던 1998년 12월이었다. 전방이 아닌 논산훈련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더럽게 추웠다. 논바닥을 핥으며 지나가는 동네 강아지의 자유마저 부러웠다. 의외로 성욕은 조절이 가능했는데, 식욕은 내 생애 처음으로,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으로 불타올랐다. 짬밥이 안 되었던 시절에는 관물대 앞에 떨어진 설날 특식 떡까지 주워 먹었던 참혹했던 기억이 남아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땐 대한민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허기에 고통스러워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어느 정도 짬밥이 찼던 2000년 6월, 일하기 싫어 꾀병을 부렸다. 그리고 외진이라는 재수를 얻어 육군 창동병원으로 갔다. 여기에서 궁금한 건 지금도 창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는데, 당최 당시 병원의 위치가 기억나질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 그 사이 이전을 했을 게다.
진료 시간을 기다리며, 빈둥거리다 대기실에 있는 TV에 눈길이 갔다. 먼진 몰라도 상당히 스펙터클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것도 예능프로가 아닌 뉴스에서 말이다. 당연했다. 분단 후 처음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것이다. 당시 병원의 분위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흥분과 당혹감이 포르말린 냄새와 적절히 섞인, 그리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분위기. 나 역시 조금은 당혹스러워하며, 나의 진료 차례를 기다렸다.
아무리 공부를 안 했어도, 명색이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공부하는 학과에 다니던 녀석이 바로 나였다. 때문에 여타 매우 중요한 학과에 다니다 왔을 전우, 혹은 대학 따위 각자의 집 복실이에게 던져주고 멋들어지게 살다 왔을 전우, 혹은 여타 각자의 파란만장한 사연으로 대학보다 더 큰 세상과 싸우다 들어왔을 전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날의 충격과 흥분이 더했다고 기억된다.
물론 거창하게 ‘이제 드디어 분단체제에 금이 가는가!’ ‘우리의 뒤틀린 역사가 이제야 바로 잡히는가’ ‘이번 정상회담이 향후 동북아 정세와 나아가 북미 관계, 북일 관계, 한미·한일·한중 관계 등 대외적으로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따위를 고민할 수는 없었다. 그럴 깜냥이 안 되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세월호의 비극을 겪을 때 느꼈던 감정을 그때 이미 느낄 수는 있었다. “이제, 대한민국은 어떤 식으로든 과거와는 다를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정치를 여전히 모르겠다. 추악한 권력집단 간의 이전투구라고 생각 들다가도, 우리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합의 도출 과정이라는 생각도 든다. 또한 온갖 고상한 명분을 들이밀어도, 결국은 자원 분배에 대한 투쟁이라는 단순한 결론도 가능하겠다. 하지만 이제 곧 마흔이라는, 조금은 묵직한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입장에서, 정치는 그렇게 단순명료한 것이 아님을 느낀다. 적어도 내가 생각해왔던 것보다 많이 복잡하고 또한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여전히 정치는 매우 단순하다. 정치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작업이다.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쉴 곳을 안정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정치의 본 역할일 것이다. 그 어떤 고상하고 심오한 사상과 철학을 갖다 붙여도 결국은 그것으로 귀결된다. 정치는 결국 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그리고 지금의 박근혜 정부 모두 같은 실수를 했고, 또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정치의 역할, 임무를 소홀히 했거나 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정의감에 불타 뒤틀린 대한민국 시스템을 바꾸려 노력했다. 서툴렀지만 진정성은 분명했다고 지금도 그들이 주장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정치 본연의 역할에 100% 충실하겠다는 공약으로 당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렇게 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물론 지지층에 대한 ‘잘 보이기 전략’은 충실히 이행했다. 그것마저 결과는 영 부실했지만 말이다. 결국 자신들에게 한 표를 행사한 이들의 삶을 바꾸는데 노무현, 이명박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노무현 정부는 진정성만 앞세우다가 디테일에서 무너졌다. 취임 전부터 오만가지 전선을 쳐두고, 별로 세지도 않았던 권력을 제대로 집중하지도 못했다. 또한 자신들을 지지해준 서민이나 일반 국민들을 위한 정책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며, 국가 전체적인 개혁과제들을 이뤄내려 했다. 힘든 일이었고, 결국 실패했다. 한편 이명박 정부는 특별히 평가할 것도, 평가하고 싶은 것도 없다.
그렇담 현 정부는 어떨까. 역시 이렇다하게 평가할 것이 없다. 매우 지저분하게 권력을 차지했음에도(그것도 간신히)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노력은 오히려 나태했다. 지금도 그렇다.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국민들에게 ‘그래서 어쩌라고!’ 자세다. 역시 정치의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앞서 그리 위대하지 않은 나의 젊은 시절을 언급한 것은, IMF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 나의 정치적 각성을 일깨운 첫 경험이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이다. IMF는 비정상적인 경제개발노선을 무식하게 고수해온 결과였고, 6·15공동선언은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뒤틀린 분단체제를 깨기 위한 첫 발걸음이었다. 이는 모두 정치적 선택의 결과였다. 그리고 국민이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의 삶을 뒤바꿔놓았다.
책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 원인을 분석한다. 그리고 다시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한 조건과 노력을 제시한다. 2012년 대선을 얼마 앞두고 출간된 것은, 당연히 대선에서 진보진영이 승리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저자의 노력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누구든 비판은 불편하다. 특히 실패한 이후 듣는 비판은 쓰리다. 하지만 그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실패의 경험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후사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진보세력들을 보면 그런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두 차례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점을 그리 못 느끼기 때문이다.
저자는 “1인당 소득 면에선 선진국 수준에 올라섰으나 삶의 질을 악화시키는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이 폭발 지경인 한국사회는 진보·개혁·평화를 통해 이런 모순을 떨쳐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진단한다.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을 옥죄고 있는 것들이다. 먹고 살기 위해 죽어라 일하느라 고단하고, 그럼에도 살기 팍팍하여 억울하며, 정의롭게 정당하게 살려 노력해도 언제 추락할지 몰라 불안하다. 바로 이런 것들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을 덜기 위해 사람들은 투표를 하고, 특정 정당에게 권력을 위임한다. 하지만 진보든 보수든 아직까지 이런 고통들을 덜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는 집단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비극이다.
쓰디쓴 비판을 달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정당한 방법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 권력을 차지하려는 세력이 끝내 승리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개인적 판단으로는 진보·개혁·평화세력들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
이제 그들은 그럴 자격을 능력으로 보완하고, 진정성으로 완성해야 한다. 자신들만이 인정하는 진정성이 아닌, 국민의 지지와 성원을 받을 수 있는 진정성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또 한 번 속는 심정으로, 그만큼 절박한 심정으로 그들을 지지할 것이다. 세상은 단 한 번의 투표로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단 한 번의 투표는 많은 것을 가능케 하기도 한다.
정의는 끝내 승리한다는 벅찬 감동과 함께, 반드시 삶의 긍정적 변화를 함께 이끌어내야 함은, 모든 정치세력들의 임무이다. 정치는 반드시 사람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이 땅의 여전히 남아있는 슬기로운 진보세력들의 건투를 빈다.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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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성찰 새창으로 보기
전민용 ㅣ 2012-10-16 ㅣ 공감(1) ㅣ 댓글 (0)
[북카페]한국의 진보개혁세력에 대한 성찰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 김기원, 창비
2012년 10월 15일 (월)
복지 논쟁, 경제 민주화 논쟁에 이어 정치 개혁 논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복지도 경제 민주화도 결국은 정치가 바로서야 실행 가능하다는 성찰일 것이다. 안철수 현상이 기존 정당과 정치 에 대한 불신의 반영이라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안철수 후보는 출마 선언에서 단일화의 조건으로 정치권의 쇄신을 주장했다. 문재인 후보 역시 민주당의 강도 높은 쇄신을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무엇이 정치권 쇄신이냐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국어사전에서 쇄신은 “묵은 것이나 폐단을 없애고 새롭게 함, 없애고 새롭게 하다”로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존 정치의 묵은 것이나 폐단의 정확한 파악과 이를 극복하는 새로운 정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개혁진보 정치권은 과거 집권 경험이나 정치 경험들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쇄신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 중에서도 현재 민주당의 대선 후보와 주요 인사들이 주도적으로 운영했던 참여정부 5년의 공과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대안을 생각해 보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는 ‘노무현정권과 개혁진보진영에 대한 성찰’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은 부제 그대로 2010년 지방선거를 계기로 하나의 세력으로 형성되고 있는 개혁진보진영의 각 세력에 대한 평가와 대안을 담고 있다. 최근 각 후보들이 비전과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것들이 실행 가능하려면 올바름과 현실성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과거에 대한 사실 그대로의 인식과 객관적 평가는 미래에 대한 올바름과 현실성을 가늠할 수 있는 반면 교사가 될 것이다. 저자의 평가와 대안은 관점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큰 것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의미 있는 공론화라고 생각한다.
저자에 따르면 노무현시대 역시 빛과 그림자가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들은 노대통령이 경제를 잘못 관리한다는 것을 부각시켜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라고 비난하곤 했다. 이것은 2007년 MB의 경제대통령 슬로건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보수파가 좋아하는 경제성장률로 보더라도 이명박시대 보다 노무현시대가 1-2% 더 높았다. 저자가 보기에는 노대통령은 ‘경포대’라기보다 정치를 포기한 ‘정포대’에 더 가까웠다. 노대통령은 주요 정책을 결정하면서 정치적 고려가 별로 없어 자기편을 축소 약화시키고 반대편을 강화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힘 없는 정권은 어떤 정책도 관철하기 어려워졌고 지지 기반은 더 축소되는 악순환을 낳았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감동을 주는 정치인이었다. 1988년의 청문회장이나 부산에서 계속된 낙선 행진도 큰 감동을 주었다. 정몽준이 지지를 철회 했을 때 여러 인사들이 정에게 사과하러 가자고 끈질기게 종용했을 때도 “실패한 후보는 될 수 있어도 실패한 대통령은 될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는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통치 시기의 노무현에게서는 이런 감동의 노무현다움이 보이지 않았다. 거꾸로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가벼움이나 참모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독선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노대통령의 이단아적 특성은 그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지도자는 자신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도록 주위 참모들을 배치했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나 참모들이나 뾰족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치명적 약점이 되었다. 더구나 통치에 힘을 발휘하려면 국민의 지지가 받쳐줘야 하는데 노정권은 정치적 고려에 소홀했다. 기껏 청와대 권력만을 장악했던 노정권은 취임 당시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던 의회 권력과 재벌, 관료, 언론이라는 또 다른 강한 권력집단에 대한 권력 투쟁에서 결국 패하고 말았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연정 제안이 나왔을 때 황당해 했다. 처음에 노대통령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내놓았다가 누군가 언론에 흘리는 바람에 그냥 덮자는 참모들의 건의를 무시하고 노대통령이 치고 나갔다고 한다. 이런 사안은 상대방과 물밑에서 충분히 논의해서 어느 정도 합의에 이른 후에 공론화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갑자기 불쑥 제안하니 한나라당으로서는 어떤 의도에 말려드는 것으로 생각하고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노대통령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총리와 내각을 한나라당에 넘기고 대신 선거구제를 개편하려고 했다. 노대통령의 상식을 뒤엎는 이런 결단이 대통령 전에는 감동을 줄 때도 많았지만 권력을 가진 이후에는 독선으로 보여졌다.
기자실 사건은 기자실을 개방형 브리핑룸으로 확장한 일이었다.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언론탄압이라는 쓸데없는 논란을 자초했다. 최소한 진보언론 쪽의 의견이라도 미리 수렴해야 했지만 이런 과정이 없어 모든 언론들의 반응이 나빴다. 기자실을 바꾼다고 언론이 정말 개혁 되었는지도 의문이고 대중의 삶과는 무관한 행정 조치일 뿐이었다. 좋은 일이면 정치적 고려 없이 밀고 나간다는 노정권의 반정치성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대북송금 특검은 불가피했을까? 문재인의 ‘운명’에 따르면 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하려면 대북송금이 통치행위였음을 내세워야했다. 그런데 김대중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은 몰랐다고 해버려서 통치행위라고 하기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특검을 수용하지 않으면 총리 임명에 동의하지 않겠다는 한나라당의 협박도 감안했을 수 있다. 특검이 일반 검찰 수사에 비해 수사 목적과 범위를 특정하므로 덜 위험하다는 법률적 판단도 있었다.
하지만 특검 수용의 결과는 정권 초반에 주요 지지 기반 중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호남세력이 떨어져 나가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나중에 김대중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송금에 대해 보고받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정권이 더 끈질기게 김대통령 측을 설득했다면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통치행위임을 확인하는 것이 최선이었고, 설득에 실패했더라도 대북관계는 통치행위임을 일방 선언하고 수사 중단을 지시하거나 최소한 어떻든 특검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에 대해 ‘운명’에 따르면 북핵 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미국의 협조가 절실했던 상황에서 미국의 파병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파병을 계기로 북핵문제가 6자 회담 등을 통해 노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으로 풀려 나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 생각에는 파병이 불가피했다고 하더라도 국민과 진보개혁진영에 대해 충분한 대화나 홍보를 했다고 보지 않는다. 또한 한미 관계가 정말 파탄나지 않는 한 한미 관계 때문에 국내 정치를 무시하는 것은 본말 전도라고 본다. 국내의 반대 여론을 업고 비전투병을 파병 했던 것처럼 충분히 협상력을 더 발휘할 여지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미 FTA 문제는 개방이냐 쇄국이냐가 아니라 개방의 시기와 방식에 대해 더 공론화 했어야 한다고 본다. 관세인하 효과도 크지 않고 대미 무역 규모도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 같은 독소 조항까지 있는 한미 FTA를 서둘러 체결할 이유는 없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미국 제약회사를 위해 죽도록 싸운 인물로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김현종 같은 인물을 기용한 것도 문제였다. 협상의 순서에서 투자자-국가 소송제나 개성공단 문제 등에 유리했던 한-EU FTA를 먼저 체결했다면 한미 FTA 협상이 더 쉬웠을 것이라고 본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정치와 행정, 정치가와 관료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다. 노대통령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실리주의적 관료들의 입장으로 기울어 갔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문적 훈련을 받은 관료들이 규정과 명령에 따라 끌어가는 대규모 행정 없이는 근대국가는 존립할 수가 없다. 하지만 관료들은 창의적이기 어렵고 조직이기주의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결국 정치와 행정의 균형이 중요하다. 비전과 기본 방향의 제시는 진보적인 정치가가 맡고 효율적인 집행은 관료들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듯이 정권의 성패는 인사에 결정적으로 의존한다. 대통령과 철학과 비전을 같이 하되 일처리 능력도 뛰어난 인물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게 문제이다. 노정권의 인사정책에 대해 코드인사니 회전문 인사니 하는 억지 주장도 많았지만 재고해야 할 부분들도 많았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문재인수석은 다른 자리를 통해 정무적 감각을 기른 후 중용했어야 했고, 강금실 법무장관은 검찰 개혁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발탁이라고 본다. 이광재의 삼성과의 유착 문제도 인적, 정책적으로 논란이 될 만 했다. 인재 풀의 한계 속에서 핵심 포스트에 힘을 집중하고 브라질의 룰라처럼 그림자 내각을 미리 발표해 통치를 준비하게 하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민주화 이후에는 대통령도 다른 국가 기관이나 세력과 더불어 권력을 분점 한다. 이들 권력 사이에는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고 때로 이념이나 이해관계에 따라 투쟁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 민주사회이다. 그런데 한국의 권력집단들은 시대착오적 성격인 경우가 적지 않다는 현실이 있다. 진보개혁 정권은 검찰, 거대언론, 재벌이나 각종 특수 이익 집단과 공공의 이익을 둘러싸고 일전불사해야 할 경우가 있다. 그런데 노정권은 이런 투쟁에서 갈팡질팡했고 권력을 어떻게 행사할지 헤맸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노정권은 검찰의 중립성을 보장했다고 하지만 다른 말로 하면 검찰을 방치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노정권은 역사상 최초로 검찰 개혁을 국가적 과제로 상정하고 공판중심주의를 도입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비대해진 검찰 권력 축소나 검찰 자체의 비리에 대한 견제 등의 개혁에는 실패했다. 적어도 인사권을 적절히 활용해서 검찰이 특권층을 엄정하게 수사하게 하는 ‘검찰 본분 찾기’는 하도록 했어야 했다. 또한 국정원을 정치 사찰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되지만 권력 기관 민주화를 위해 활용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개혁은 정권의 힘이 살아 있는 집권 1년 이내에 끝내야 한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혁명정권이 아닌 다음에야 이런 식으로 성공한 경우가 없다고 한다. 저자는 먼저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정책이나 싸움을 펼치고 그 힘을 바탕으로 강한 적과 상대해 가는 게 옳다고 제안한다. 전선을 여러 개로 분산하는 것도 불리하고, 순서의 문제도 중요하다. 경기도 교육청도 먼저 무상급식 이슈로 대중의 지지를 확대하고 그 힘으로 인권 조례와 혁신학교라는 개혁정책을 펼쳐나갔다.
오바마의 경우에도 뚜렷한 저항 세력이 없는 금융 위기의 피해자들, 즉 실업자나 주택상실가계들을 위한 구제책을 먼저 하고 이 힘을 바탕으로 금융 개혁과 의료 개혁으로 나갔다면 더 수월했을 것이란다. 의료는 보험업계, 금융은 월가의 저항 때문에 어려웠고, 개혁도 부실해져 버렸다. 브라질의 룰라는 빈곤층을 위한 보우사 파밀리아 정책부터 밀고 나가며 대중의 지지를 획득했다.
저자는 2부에서 한국의 진보에 대해 성찰한다. 한진중공업 사태 평가나 정규직 노동조합의 현실과 문제점도 지적한다. 진보파의 과거 계보와 비현실적인 모습에 대해서도 평가한다.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시장만능주의라는 용어를 쓰자고 하고 장하준 교수의 주주자본주의관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저자는 한국은 이미 다른 선진국처럼 저성장 또는 중성장 단계에 들어섰고, 성장동력은 필요하지만 삶의 질의 문제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제안한다. 한국 사회를 고단함, 억울함, 불안함이라는 세가지 키워드로 요약한 부분도 읽을 만하다.
최근 들어 문재인 후보는 여러 면에서 참여정부의 과오를 시인하고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참여정부의 공과에 대한 더 폭넓고 냉정한 평가와 대안 모색은 문재인 후보뿐 아니라 안철수 후보에게도 꼭 필요한 과정이다. 공동 정부 구성이라는 과제의 동의 여부를 떠나 비슷한 국정 철학과 비전을 가졌던 정권에 대한 평가와 대안 모색은 미래를 설계하는 데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교훈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내용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당사자나 관찰자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 제기의 시작이나 의제화라고 본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다양한 분야에서 더 정확한 평가를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바둑 실력 향상에 복기만큼 효과적인 공부는 없다. 과거 민주 정부 10년 뿐 아니라 이명박정부 5년 까지도 선입견 없이 객관적인 복기와 평가와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세력이라면 새로운 대한민국을 믿고 맡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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