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2

재中동포작가 김혁의 역사채널 :: 불온한 시도, 불편한 사실…'제국의 위안부' 논쟁 관련

재中동포작가 김혁의 역사채널 :: 불온한 시도, 불편한 사실…'제국의 위안부' 논쟁 관련

불온한 시도, 불편한 사실…'제국의 위안부' 논쟁 관련

일본군 慰安妇 2015/12/16 10:14 김 혁


9일 오전 서울 참여연대에서 열린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나영 중앙대 교수(맨왼쪽)가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는 도발적이고 불온하다. 우리사회 성역 중의 하나인 위안부에 대한 '상식'에 균열을 내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종군 위안부란 우물가에서 빨래하던 순진무구한 소녀 순이가 일본 군인과 관헌에게 머리채 잡혀 끌려가 일본군의 성노예로 학대받은 존재다. 그러나 박유하 교수가 이 책에서 그려내는 종군위안부의 모습은 우리의 상식과는 많이 다르다.

종군 위안부는 일본군이 강제로 끌고 갔다기보다는 식민지의 가난한 처녀가 쉽게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업자들의 감언이설에 속거나 사기를 당해서 간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위안부 강제 동원의 주체에 대해 박교수는 일본군보다는 업자들에게 방점을 찍고 있다. 위안부들은 강제적인 성노동에 시달리기는 했지만 계약 기간이 있었다고 한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위안소를 나갈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성노동의 대가를 받았고 많지는 않지만 적잖은 돈을 번 사례도 있다고 말한다. 매춘의 측면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더욱 충격적인 주장은 위안부들의 역할이다. 박교수는 위안부들이 하루에 수십명의 병사를 상대로 성노동을 제공하는 굴종과 강제의 나날을 보내긴 했지만 일방적인 피해자만은 아니었다고 본다. 위안부들은 부상병들을 치료하기도 하는 '주둔부대의 일원'이었고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군인들을 신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위안해주던 '부인 같은 느낌을 주는 존재'였으며 일본군이 준비해 준 운동회 등을 즐기는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위안소는 기본적으로 지옥 같은 곳이긴 했지만 사람 사는 곳이 어디나 그렇듯 거기에도 사랑과 평화가 없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위안부와 일본군들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인 동시에 공감과 연민을 표할 수 있는 이른바 '동지적 관계'이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위안부는 일본 제국의 최하층 구성원으로 수모와 멸시를 받았지만 위안부 가운데는 "이런 몸이 된 나도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다"라는 자긍심을 갖고 있었던 사람도 있었다는 것이다.    

박교수는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위안부 像은- 평화의 소녀상이 그러하듯, 우리가 보고 싶고 듣고 싶어하는 모습만 모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지원 단체들이 주도해 형상화한 '민족의 수난자'로서의 위안부상이 굳어지면서
원래 위안부의 다양하고 다층적이고 복잡한 모습은 사라지고 우리가 아는 위안부와 실제 위안부의 모습에 큰 괴리가 생겼다는 것이다.

박교수는 이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위안부 직접 증언과 기록,외교 자료,법원의 판결문은 물론 소설과 애니메이션,만화,드라마까지 인용하고 있다. 자료는 방대하고 인용은 촘촘하다. 이런 자료를 들이대며 지금까지 대다수 한국인들이 갖고 있던 위안부상에 대해 균열을 내려는 박교수의 불온한 시도에 대해 아연할 수밖에 없다.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유희남 할머니가 9일 오전 서울 참여연대에서 열린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있다./사진=연합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지원 단체의 분노는 당연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돕는 나눔의 집 등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박유하 교수의 책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겪었던 위안부 삶을 객관적으로 표현하지 못하였거나 심하게 왜곡한 부분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자발적 매춘'을 한 사실이 없고 일본군과 동지가 되어 일본의 승전을 위해 싸운다는 생각을 하면서 위안부 생활을 견딘 것이 아니라 죽지 못해 견뎠고 70년이 지난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식민지 백성으로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끌려다니며 성노예 생활을 한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매춘과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 운운하는 것은 학문과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해도 가혹한 일이다. 오죽하면 저자를 처벌해달라고 고소까지 했을까. 그러나 차분히 몇가지 점만 따져보기로 하자.

박유하 교수의 이 논란 많은 책은 한국어판이 먼저 나오긴 했지만 한국 독자보다는 일본 독자을 우선 염두에 두고 쓴 것처럼 보인다. 저자도 서문에서 이 책의 일부는 책이 발간되기 전인 2012년부터 다섯달 동안 일본의 인터넷 매체에 연재했던 글이라고 적고 있다. 일본인들을 상대로 쓴 글이란 뜻이다.

박교수가 상정하고 있는 일본 독자는 종군 위안부 제도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느끼는 '양심적인'이고 '상식적인' 일본인들로 보인다. 일본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막무가내식으로 일본을 협박하고 윽박질러서는 사태가 해결되기는 커녕 악화될 뿐이라는 게 박교수의 입장이다.

일본 독자를 설득하고 그들의 공감를 얻으려는 게 이 책의 목적 가운데 하나라고 보면, 저자가 한국에서 일본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한국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유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저자가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입장 바꿔보기는 이 책이 한일 두나라에서 모두 화제가 된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역지사지하려는 자세가 지나쳐 일본측에 기울어진 듯한 주장도 없지 않다. 예를 들면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는 배상과 사죄라는 것이 법리적으로 불가능하고 무리한 요구라거나 위안부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가 일본을 비난하는 것은 정확한 진상을 잘 몰라서라는 식의 주장이 그러하다. 일본의 결단을 촉구하는 박교수의 논리도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위안부 실상이 이리도 가혹했으니 일본 당신들이 책임을 지고 결단해라 일본 정부,당신들이 노력한 것 인정한다.그렇지만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서라"는 게 박교수의 주장인데 마치 일본의 善意를 당부하는 것처럼 읽힌다. 위안부 문제는 어느 한 쪽의 선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이 일본의 굴복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본의 '선의'는 더더욱 아니지 않은가?
9일 오전 서울 참여연대에서 열린 '제국의 위안부' 사태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이신철 성균관대학교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
그렇다고 해서 박유하 교수의 진의를 의심할 필요는 없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일본 정부와 양식있는 일본인들에 대한 설득이 필요하고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사실 인식이 필요하다는 박교수의 주장은 진지하게 귀기울여 들을 말이다. 일본의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봤다고 해서 이 책을 두고 친일이니 저자가 친일파니 하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편협한 민족주의 논리에서 벗어나 사실을 있는 파악하는 것, 그것이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 돼야 한다면 상대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보려는 노력은 오히려 앞으로도 필요한 일이다.

일본이 칭찬하고 일본인이 응원하니 친일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그리 대응할 일은 결코 아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박교수가 제시하고 있는 사례들이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 것인지 차분하게 검증하는 것이다. 사실과 다른 게 있으면 바로잡고 우리의 '상식'과는 다른 '사실'이 있다면  고통스럽고 불편해도 겸허하게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학계,언론계에서 해야 할 일이다. 검찰이 수사하고 법원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근 열흘 동안 이 책을 잡고 씨름하는 내내 떠나지 않은 이름이 있다. 센다 가코 (千田夏光). 1973년에  <목소리 없는 여성 8만명의 고발,종군위안부>란 책을 내 위안부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저널리스트라고 박교수는 소개한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그 책의 제목도 처음 들었다. 저자가 인용한 일본어 자료 가운데 귀에 익은 제목은 없었다.

위안부에 대해 관심있다고 자처해왔는데 정작 내가 알고 있는 게 없구나하는 자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박유하 교수를 친일이라고,일본의 책임을 면하게 해주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외면한 냉혈한이라고 비난하기 전에 위안부 실상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우리 언론과 학계가 얼마나 해왔는지, 그 동안 우리의 대응에 부족함은 없었는지 먼저 되돌아볼 일이다. 

윤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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