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5

“최태민, 박정희 죽음 예고해 박근혜가 더 믿게 된 것”

http://www.msn.com/ko-kr/news/other/%E2%80%9C%EC%B5%9C%ED%83%9C%EB%AF%BC-%EB%B0%95%EC%A0%95%ED%9D%AC-%EC%A3%BD%EC%9D%8C-%EC%98%88%EA%B3%A0%ED%95%B4-%EB%B0%95%EA%B7%BC%ED%98%9C%EA%B0%80-%EB%8D%94-%EB%AF%BF%EA%B2%8C-%EB%90%9C-%EA%B2%83%E2%80%9D/ar-AAjTbKV?li=AAf6Zm&ocid=spartanntp

“최태민, 박정희 죽음 예고해 박근혜가 더 믿게 된 것” 3/9
 한겨레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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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민 측근으로 알려진 전기영 목사© Copyright ⓒ The Hankyoreh. 최태민 측근으로 알려진 전기영 목사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진 날, 최태민씨가 당시 ‘영애 박근혜양’에게 ‘오늘 대통령과 점심 약속을 해서 주위에 있는 사람을 모두 물리쳐라’고 했다. 그날 낮 12시50분께 최태민씨에게 영애 박근혜양이 전화해 ‘아버지한테 부탁을 했는데, 오늘 말고 사흘 뒤에 전부 다 물리치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태민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을 예감한 거다. 그러니 영애 박근혜양이 최씨를 더 믿게 된거다. 다 최태민씨가 내게 한 이야기다.”

국정 농단의 장본인 최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씨의 측근으로 알려진 전기영 목사(79·사진)는 4일 오전 충남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 충성교회에서 [한겨레]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전기영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예장종합총회) 총회장을 맡고 있으며, 예장종합총회는 1970년대 최태민씨에게 목사 호칭을 줬다.

전 목사는 이날 최태민씨가 당시 영애 박근혜양과의 관계에 대해 “우리는 영적인 한 가족, 한 부부와 같은 것이지, 육신에 대한 얕은 얘기는 하지 말라”거나 “우리 신이 이 분을 도우라고 했고, 육영수 여사의 혼이 나보고 도우라고 했다. 그래서 도와주는 거지, 저질들 같은 육신의 관계가 아니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날 오전 박근혜 대통령의 2차 대국민 사과를 지켜본 뒤 대통령 하야나 탄핵을 주장하지 말고 (주술에 홀려) 다친 대통령을 잘 도와 나라 안보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래는 전 목사와의 일문일답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싣는다.

-최태민씨는 원래 어떤 사람인가.

“최태민씨는 도를 닦는 사람이다. 주술가다. 최씨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다. 일제 경찰의 독립군 토벌 정보를 알기 위해서 황해도 안악의 경찰서에 급사로 들어간다. 최씨는 명필이고, 아는 게 많다. 검사장에게 편지를 썼는데 (최씨가) 명필이고 지식이 많아(감동했다고 한다). 조현종씨가 일본에서 법대를 나와 경찰서 간부로 온다. 검사장이 조씨한테 급사인 최씨와 형제처럼 지내라고 말해서, 그 때 최씨가 경찰 특채가 돼 순사가 됐다고 한다.”

[풀빛목회] 1984년 7·8호에는 최태민씨를 도왔던 조현종 목사가 1938년 피어선성경학교와 일본 대학법문부 종교과를 졸업했으며, 해방이 되자 귀국해 경찰 간부직을 거쳐 헌병 소령으로 예편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조 목사는 1969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서울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70년 종합총회 2대 총회장에 피선됐다.

-최태민씨가 어떻게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다고 했나.

“해방 뒤 남한으로 내려와서 조현종씨는 한국군 헌병이 됐고, 최태민씨는 할 게 없으니까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았다. 굴 속에 도를 닦는데 하루는 평소 최씨에게 먹을 쌀을 갖다주던 청년이 찾아와 (최씨는 이 청년이 산신령 같다고 했다고 한다) “지금 국상이 났습니다”며 (1974년 8월15일)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돌아가신 이야기를 했다. 그 청년이 “(육 여사가) 지금 선생님을 만나러 저기 왔습니다” 해서 최씨가 나가 봤더니, 오전에 햇빛이 쫙 내리쬐는데 육 여사가 바윗돌 위에 치마를 넓게 펼치고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이 생생했다고 한다. 최씨는 꿈이 아닐까해서 자기 살을 꼬집어봤는데 아팠다.(꿈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육 여사가 “우리 딸 근혜가 내가 죽고 저렇게 하고 있는데, 나와 딸 사이에 비밀이 있다. 이걸 편지에 써서 보내면 선생을 만나자고 할거다. 만나게 되면 우리 딸 잘 좀 도와주라”고 말했다고 한다. 최씨가 편지를 써서 서울 광화문 우체국에다 부쳤더니, 청와대에서 당시 최씨 용산 집에 전화를 해 “검은색 승용차를 보낼테니 타고 들어와라”고 했다고 한다. 최씨가 영애 박근혜양을 만나서 어머니에 대한 비밀 이야기를 했더니, 영애 박근혜양이 기절을 했다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그걸 입신이라고 한다. 꿈처럼 그 안으로 들어가는 거다. 그 속에서 영애 박근혜양이 어머니 육 여사를 만났더니 “최태민씨를 보내니 너를 도와줄 것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영애 박근혜양이 최씨를 완전히 믿게 된 것이다.”

-최태민씨가 목사 맞나.

“조현종씨는 헌병 제대 뒤 예장 종합총회장으로 있었다. 최태민씨가 영애 박근혜양 옆에서 권한이 커지니까 조씨가 최씨에게 성경 민수기의 발락 왕이 주술가 발람을 이용하는 대목을 이야기하며 “주술가를 하지말고, 목사를 해라”라고 했다. 조씨가 최씨에게 “너는 목사다”고 말해 목사가 된 것이다. 그 당시는 기독교인이 많지 않아서 총회에서 마구 지정해서 목사를 만들 때다. 신학 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한국 기독교가 굉장히 난립하던 시기다. 그렇게 최태민씨가 목사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최태민씨가 구국십자군은 어떻게 만들었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10월 유신을 하니 기독교가 반대 세력이 됐다. 박정희 대통령이 최태민씨에게 “너는 이제 목사니, 기독교의 기존 세력을 막을 수 있는 단체를 만들라”고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것이 구국십자군이다. 그렇게 구국십자군을 만들어서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에 걸쳐 지부를 뒀다. 거기에 강신명 목사를 총재로 세웠다. 각 지부의 감투 하나에도 기관들이 꼼짝을 못했다. 지부 구성이 다 된 다음에 최씨가 직접 총재로 취임한다. 그때 영애 박근애양을 명예총재로 세웠다. 서울 서대문에 있는 성결교 자리를 9억원에 사서 3억원을 들여서 노인한방무료병원을 차렸다. 의사협에서 와서 당번제로 근무했다. 최태민씨는 ‘건강보험은 노인한방무료병원에서 시작한 것이다’고 말했다. 조현종씨가 최씨가 돈이 많으니 종합총회장을 하라고 했다. 그때부터 종합총회를 중심으로 구국선교단이 돌아갔다. 조현종 목사가 (구국선교단의) 소집 책임총재가 된다. 총재가 조현종, 최태민, 박근혜 3명이었다.”

-당시 박근혜-최태민 관계는.

“그때 소문에 최태민씨와 영애 박근혜양이 방에 들어가면 하루종일 안 나온다고 했다. 그렇게 말이 나쁘게 도니 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정보보고를 올려, 박정희 대통령이 둘을 불러 친국을 했다. 박근혜양은 최씨 이야기를 적극 옹호를 했다. 최씨는 “우리는 영적인 한 가족, 한 부부와 같은 것이지, 육신에 대한 얕은 얘기는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박정희 대통령이 듣고 이해를 했다. 김재규 부장한테 정보를 하려면 똑바로 하라고 했다. 최태민씨는 영애 박근혜양을 신격화 했다. 엄청나게 존중했다. 조금도 허튼 소리가 없었다.”

-박근혜-최태민 사이에 기억나는 일은.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진 날, 최태민씨가 당시 ‘영애 박근혜양’에게 ‘오늘 대통령과 점심 약속을 해서 주위에 있는 사람을 모두 물리쳐라’고 했다. 그날 낮 12시50분께 최태민씨에게 영애 박근혜양이 전화해 ‘아버지한테 부탁을 했는데, 오늘 말고 사흘 뒤에 전부 다 물리치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태민씨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을 예감한 거다. 그러니 영애 박근혜양이 최씨를 더 믿게 된거다. 다 최태민씨가 내게 한 이야기다. ”

-80년대 최태민씨는 어떻게 지냈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고 최태민씨는 2~3년 잠적했다. 나는 최씨를 박정희 전 대통령 죽고 난 뒤에 처음 만났다. 80년대 초반이다. 80년대 최태민씨가 종합총회장을 할 때 내가 부총회장을 했다. 서울 강남에 박정희 대통령 연구실이 있었는데, 거기가 종합총회의 사무실이 됐다. 강남에 200평 규모로 만남의 교회를 세워서, 노인대학과 노인봉사단을 운영했다. 어린이대공원에는 근화봉사단이라는 간판을 붙였고, 주일에는 그곳을 근화교회로 썼다. 내가 어린 나이에 부총회장을 하니 시기·질투가 많았다. 최태민씨가 말투가 거칠었다. 최씨가 다른 목사들에게 “야, 이 새끼들아. 너희들은 무당이 가진 혼도 없는 새끼들이 무슨 목사라고 하느냐. 한심스러운 놈들. 이 분은 나보다 영이 높기 때문에 내가 모셔온 분이야”라고 했다. 최씨는 나한테는 반말 한번을 안했다. 나보고 한마디 하라고 해서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했더니 여자 비서에게 돈봉투를 가져오라고 해서 내게 줬다. 집에 와서 보니 600만원이었다. 그때 600만원이면 아파트 두어채 값이다. 나와 만나기를 무척 좋아하고, 안 나오면 오라고 하고, 정말 친절하게 대했다.”

-그 뒤 최태민씨는 어떻게 지냈나.

“1993년 만나자고 해서 최씨를 만났다. 최태민씨는 호위하는 사람 6명을 데리고 다녔다.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들 보고 칼잡이라고 했다. 덩치 큰 사람들. 최태민씨가 내게 “목사님, 앞으로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됩니다.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데 박근혜씨를 도와주세요. 근화봉사단이 전국에 70만명 조직이 있는데, 이걸 주축으로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 목사님이 맡아주세요. 자금은 조흥은행 안국동 지점에 13억이 있고, 남은 이자가 9000만원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기독계에서는 영안이라고 한다. 영안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니 눈이 쑥 들어가 시꺼멓고, 신들린 모습이었다. 그때 최태민씨에게 “야, 이 놈아. 니 정체가 뭐냐. 나는 주의 종이야”라고 했더니 최씨 얼굴이 막 찌그러졌다. 눈이 시뻘개지고 몸을 막 떨었다. 그때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최씨가 쓰러질 것 같더니 뛰어나갔다. 그게 1993년 10월이다.”

-최씨에 대해 기억에 남는 일은.

“최씨가 앞으로 일을 많이 알아맞추긴 했다. 미래의 일을. 박근혜씨 대통령과 관계가 얼마나 깊냐고 물었더니 정색하면서 “우리 신이 이분을 도우라고 했고, 육영수 여사의 혼이 나보고 도우라고 했다. 그래서 도와주는 거지, 저질들 같은 육신의 관계가 아니다”고 했다. 최씨가 박근혜 대통령을 얘기할 때 신성한 존재로 여겼다. 최태민씨는 달변은 아니었다. 대개 4차원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영적인 이야기. 요즘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걸 보면 최씨가 이야기하던 영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전 목사는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바른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거나 ‘정말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나서 도와준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듣고 최태민씨를 떠올렸다고 했다.

-현재 최순실씨 등 최태민씨 가족들의 재산이 상당한데.

“최태민씨 가족이 처음엔 형편이 어려웠다. 최씨 이야기가 자기가 도를 닦을 때는 쌀거리가 없어서 남들한테 얻어서 먹고 했다고 했다. 그런데 대통령 옆에 있게 되니 막 갖다 준거다. 기업체도 갖다주고, 구국선교단 감투 쓰려고 갖다주고. 13억원은 ㅇㅇ에서 갖다준거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차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제 박 대통령이 제 정신이 들었다. 지금 와서 대통령 손을 묶어두면 전쟁 시 누가 국군을 통솔하겠나. 탄핵을 주장할 게 아니다. 대통령이 주술 들린 걸 쫓아내지 못한 건 기독교의 책임이다. 상처가 났으면 잘 보호해줘야지 쫓아내는 게 능사가 아니다. 오늘 담화 보고 사실 눈물이 났다. 저 연약한 여자, 외로운 여자. 주술에 들렸으면 인간의 힘으론 안 된다. 이제 거기서 벗어났으니 상처를 나게 만들었던 우리 기독교인들이 대통령에게 힘을 주는 기도를 해야 한다. ”

서산/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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