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27

재일동포 하정웅 수림문화재단 이사장 자전 에세이 출간 - 경향신문



재일동포 하정웅 수림문화재단 이사장 자전 에세이 출간 - 경향신문

재일동포 하정웅 수림문화재단 이사장 자전 에세이 출간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2014.09.22


ㆍ“이민자 운명에 눈물 흘렸지만 한·일에 보탬 되고 싶었다”




재일동포 사업가인 하정웅 수림문화재단 이사장(75·사진)에게는 ‘수천억원에 이르는 미술작품 1만점 기증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가난한 재일교포 이주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반 고흐를 좋아하고, 화가를 꿈꿨다. 하지만 ‘자이니치’(재일한국인을 통틀어 부르는 일본말)로 불리며, 디아스포라의 고단함을 온몸으로 겪어야만 한 그에겐 그저 꿈이었다.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기를 원한 그는 “한 걸음 한 걸음, 그저 열심히” 살며 역경을 극복했다. 사업으로 성공했고, 지난 50년 동안 모아온 미술품 1만여점을 “아낌없이” 광주시립미술관, 영암군립 하미술관 등 국내 미술관들에 모두 기증했다.


‘하정웅 컬렉션’ ‘하정웅 청년작가상’ 등으로 유명한 하 이사장이 자전 에세이 <날마다 한 걸음>(메디치미디어)을 펴냈다.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가전제품 판매사업으로 크게 성공하기까지의 평탄하지 않지만 꿋꿋하게 살아온 인생담, ‘하정웅 컬렉션’을 만들기까지의 미술품 소장 과정, 조선인 징용자 추모사업과 시각장애인 복지사업 등을 추진한 사연 등을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디아스포라로 겪은 20세기 격동의 세월이, 미술작품과 화가에 대한 그의 철학이, 나눔과 배려라는 그의 삶의 가치관이 행간에 가득하다.


22일 에세이 출간을 기념해 기자들과 만난 하 이사장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채 떠도는 디아스포라의 운명에 눈물지었지만 그럴수록 더 한국과 일본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가 미술품을 처음 수집한 것은 25세 때, 재일한국인 화가인 고 전화황 화백의 유화 ‘미륵보살’이었다. 가전 판매사업이 도쿄올림픽 특수로 “돈을 쓸어모으던 시절”이었다. “전 화백은 내 인생을 바꾼 화가”라는 그는 “처음에는 재일동포 화가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줘야겠다, 꿈을 포기해야 했던 내 대신 꿈을 피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이우환, 곽덕준 등 재일한국인 작가를 후원하고, 피카소와 샤갈 등으로 소장 범위도 넓혔다.


“그림 한 점마다에는 역사가 담겼습니다. 디아스포라의 증거이고, 눈물이고, 유산이죠. 지금도 그림들을 보면 열이 나고, 눈물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제나 감동이 있죠.”


하 이사장은 수집 기준으로 “작가가 어떤 기도를 올리고 있는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가를 본다”며 “제가 공감되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작품에 끌린다”고 소개했다. 그는 “미술품을 문화적 가치가 아니라 자꾸 돈의 가치로만 따지는 것에 화가 난다”고도 덧붙였다.



지금도 50년 전 지어진 집에 살고, 비행기는 이코노미석을 이용할 정도로 검소하게 생활하는 그는 “굶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 나누고 베푸는 것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삶”이라며 “마음은 진짜 부자라는 자긍심이 있다”고 강조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9222133045&code=100100#csidx60d326500876206a106467cb29c82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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