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아들>부터 <박열>까지, 내용이 똑같다?
기사입력2017.08.21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탈식민의 좌절과 자폐적 영화의 반복: 기억전쟁과 역사 영화
[김신동 한림대학교 교수]
사라진 식민의 기억
우리에게 식민의 기억은 없다. 기억이란 경험이나 정보를 자신의 의식 속에 간직하고 그것을 재구성하는 방식이나 능력이다. 혹은 그렇게 재구성된 이야기를 전수 받음으로써 직접 경험하지 않은 내용을 간직하는 능력이다. 기억의 반대말은 망각이다. 우리에게 식민의 기억이 불가능한 이유는 식민을 기억하는 대신 망각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식민의 시기를 치욕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그 시기에 대한 기억은 극히 선택적인 일부 사건에만 파편적으로 반복학습 되어 왔다. 일제강점기를 떠올려 보라고 하면 삼일운동 유관순 안중근 김구 이봉창 등이 스쳐 지나가고, 일경의 잔인한 고문 장면이나 중국의 어느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투척하는 윤봉길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공백이다.
1910년 이후 36년간, 1905년 을사늑약으로부터는 사십년간, 1895년 을미왜변으로부터는 무려 오십년간 일본의 직간접적인 지배에 놓여 있었고, 그 시기의 역사가 현대 한국의 형성에 끼친 직접적이고 지대한 영향을 고려한다면 평균적 한국인들의 식민지 시기에 대한 이해는 기이할 정도로 공허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배운 바가 없거나 매우 얇기 때문이다. 가장 두터워야 할 근현대사가 고작 교과서 몇 쪽으로 요약되고 학교를 졸업하면 그나마도 관심으로부터 사라져 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심각한 문제이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심각하다는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왜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를 애써 망각하거나 부정하거나 왜곡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
식민시기에 대한 무지와 부정, 그리고 망각은 한국인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자폐적인 상황에 내몬다. 과거와의 단절은 시간적 자폐이고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은 공간적 자폐이다. 자폐 증상이란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을 싫어하고, 상호 작용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정의된다. 사실을 직시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를 거부하거나 싫어하며, 상호 작용 상황에서 상대편의 처지와 입장을 고려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정이 이런저런 계기를 타고 분출된 결과 근래 십여 년 사이에 식민지 시기의 미시사에 대한 연구과 관심이 괄목할 만큼 성장하였다. <경선에 땐스홀을 허하라>나 <연애의 시대>와 같은 연구서를 통해 표출이 되었고, <모던 보이>, <청연> 등과 같은 영화를 통해 식민지 공간과 일상의 삶을 조명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그저 시도로서 머무르는 인상이다. 시도들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연구와 논의가 불붙어야 하는데 그냥 타닥거리다 꺼져버리는 젖은 장작 수준이다. 왜 그런 것인가?
원본보기▲ 독립군과 일본 순사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 <밀정>.
기억전쟁과 자폐적 자기 검열
현대 한국 사회의 기본 꼴과 트라우마를 형성하는 두 가지 중대한 사건을 꼽으라면 단연 식민과 전쟁이다. 전쟁은 분단의 형태로 계속 중이며 한국의 지정학과 한국인의 이념세계를 규정해 왔다. 반공이 국시가 되고 레드 콤플렉스가 아직도 중요한 정치적 변수로 상존한다. 분단은 남북을 불안과 불안정의 지진대에 올려놓은 채 한반도를 둘러싼 강국들의 놀음에 희생과 타협을 강요해 왔다. 분단은 남북에 그 약점을 교묘히 이용하는 분단세력을 조장하였고 그들이 통일을 극단적으로 외칠수록 통일은 적대적 캠페인으로 변질되어 점점 더 통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상을 낳았다. 전쟁 이후 분단의 굴레는 한반도를 여전히 욱죄고 있고, 미군정은 모양을 바꾼 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패권을 유지하고 있다.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적대상황을 해소하며 점진적 경제사회 통합으로 결국 남북통일을 이룰 수 있는 길이 너무나 간단한 현실적 대안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유지되는 쪽으로 결정이 내려지고 있는 것이다.
전쟁과 분단이 한반도의 남과 북에 강요해 온 문제들에 대해서 부분적으로나마 의제가 설정되는 것에 비해 식민의 역사에 대한 논의는 맹목적 반식민 애국주의의 장벽에 갇힌 상태에서 거의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점은 장벽의 높이나 크기를 가늠하기는커녕 장벽이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 정서라는 것이다. 식민의 경험은 어느 사회에서나 종종 마니교식의 이분법적 투쟁 구도로 정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와 타자라고 하는 이항대립의 구도). 여기서 나는 피해자이고 타자, 즉 식민주의자는 가해자가 된다. 피해자의 저항과 투쟁은 곧이어 자기 미화로 변질되고 나아가 흑백논리로 연결된다. 그러나 세상은 흑이나 백이기보다는 대부분 회색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접근은 식민의 경험과 실제를 단순한 방식으로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결국 식민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탈식민으로 나가는 길을 차단할 뿐이다. 식민제국을 탓하며 피해자로서의 박해와 저항을 미화하며 끝없이 식민 트라우마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정치적으로 조작하고 이용하는 세력이 등장하게 된다.
식민사에 대한 한국 사회내의 논쟁도 이런 틀을 따라 반복되어 왔다. 일제하 식민주의자에 의한 식민사관의 등장, 해방 후 식민사관에 대한 비판과 부정, 그리고 민족주의 사관의 애국주의적 자기 미화, 그리고 이에 대한 비판 등이 씨름하는 가운데 일제의 문제는 일본과의 문제로 소환되고 역사가 아니라 정치가 되었다. 어떤 역사가 맞는가를 두고 역사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억이 나에게 유리한가를 두고 기억 전쟁을 치르게 된 것이다.
기사입력2017.08.21
[좋은나라 이슈페이퍼] 탈식민의 좌절과 자폐적 영화의 반복: 기억전쟁과 역사 영화
[김신동 한림대학교 교수]
사라진 식민의 기억
우리에게 식민의 기억은 없다. 기억이란 경험이나 정보를 자신의 의식 속에 간직하고 그것을 재구성하는 방식이나 능력이다. 혹은 그렇게 재구성된 이야기를 전수 받음으로써 직접 경험하지 않은 내용을 간직하는 능력이다. 기억의 반대말은 망각이다. 우리에게 식민의 기억이 불가능한 이유는 식민을 기억하는 대신 망각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식민의 시기를 치욕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그 시기에 대한 기억은 극히 선택적인 일부 사건에만 파편적으로 반복학습 되어 왔다. 일제강점기를 떠올려 보라고 하면 삼일운동 유관순 안중근 김구 이봉창 등이 스쳐 지나가고, 일경의 잔인한 고문 장면이나 중국의 어느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투척하는 윤봉길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공백이다.
1910년 이후 36년간, 1905년 을사늑약으로부터는 사십년간, 1895년 을미왜변으로부터는 무려 오십년간 일본의 직간접적인 지배에 놓여 있었고, 그 시기의 역사가 현대 한국의 형성에 끼친 직접적이고 지대한 영향을 고려한다면 평균적 한국인들의 식민지 시기에 대한 이해는 기이할 정도로 공허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배운 바가 없거나 매우 얇기 때문이다. 가장 두터워야 할 근현대사가 고작 교과서 몇 쪽으로 요약되고 학교를 졸업하면 그나마도 관심으로부터 사라져 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심각한 문제이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심각하다는 것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왜 이렇게 살게 되었는지를 애써 망각하거나 부정하거나 왜곡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심각한 문제가 된다.
식민시기에 대한 무지와 부정, 그리고 망각은 한국인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자폐적인 상황에 내몬다. 과거와의 단절은 시간적 자폐이고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은 공간적 자폐이다. 자폐 증상이란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을 싫어하고, 상호 작용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정의된다. 사실을 직시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하기를 거부하거나 싫어하며, 상호 작용 상황에서 상대편의 처지와 입장을 고려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정이 이런저런 계기를 타고 분출된 결과 근래 십여 년 사이에 식민지 시기의 미시사에 대한 연구과 관심이 괄목할 만큼 성장하였다. <경선에 땐스홀을 허하라>나 <연애의 시대>와 같은 연구서를 통해 표출이 되었고, <모던 보이>, <청연> 등과 같은 영화를 통해 식민지 공간과 일상의 삶을 조명해 보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들은 그저 시도로서 머무르는 인상이다. 시도들을 바탕으로 본격적인 연구와 논의가 불붙어야 하는데 그냥 타닥거리다 꺼져버리는 젖은 장작 수준이다. 왜 그런 것인가?
원본보기▲ 독립군과 일본 순사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 <밀정>.
기억전쟁과 자폐적 자기 검열
현대 한국 사회의 기본 꼴과 트라우마를 형성하는 두 가지 중대한 사건을 꼽으라면 단연 식민과 전쟁이다. 전쟁은 분단의 형태로 계속 중이며 한국의 지정학과 한국인의 이념세계를 규정해 왔다. 반공이 국시가 되고 레드 콤플렉스가 아직도 중요한 정치적 변수로 상존한다. 분단은 남북을 불안과 불안정의 지진대에 올려놓은 채 한반도를 둘러싼 강국들의 놀음에 희생과 타협을 강요해 왔다. 분단은 남북에 그 약점을 교묘히 이용하는 분단세력을 조장하였고 그들이 통일을 극단적으로 외칠수록 통일은 적대적 캠페인으로 변질되어 점점 더 통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상을 낳았다. 전쟁 이후 분단의 굴레는 한반도를 여전히 욱죄고 있고, 미군정은 모양을 바꾼 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패권을 유지하고 있다.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적대상황을 해소하며 점진적 경제사회 통합으로 결국 남북통일을 이룰 수 있는 길이 너무나 간단한 현실적 대안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유지되는 쪽으로 결정이 내려지고 있는 것이다.
전쟁과 분단이 한반도의 남과 북에 강요해 온 문제들에 대해서 부분적으로나마 의제가 설정되는 것에 비해 식민의 역사에 대한 논의는 맹목적 반식민 애국주의의 장벽에 갇힌 상태에서 거의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가장 심각한 점은 장벽의 높이나 크기를 가늠하기는커녕 장벽이 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 정서라는 것이다. 식민의 경험은 어느 사회에서나 종종 마니교식의 이분법적 투쟁 구도로 정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와 타자라고 하는 이항대립의 구도). 여기서 나는 피해자이고 타자, 즉 식민주의자는 가해자가 된다. 피해자의 저항과 투쟁은 곧이어 자기 미화로 변질되고 나아가 흑백논리로 연결된다. 그러나 세상은 흑이나 백이기보다는 대부분 회색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접근은 식민의 경험과 실제를 단순한 방식으로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결국 식민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탈식민으로 나가는 길을 차단할 뿐이다. 식민제국을 탓하며 피해자로서의 박해와 저항을 미화하며 끝없이 식민 트라우마를 재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정치적으로 조작하고 이용하는 세력이 등장하게 된다.
식민사에 대한 한국 사회내의 논쟁도 이런 틀을 따라 반복되어 왔다. 일제하 식민주의자에 의한 식민사관의 등장, 해방 후 식민사관에 대한 비판과 부정, 그리고 민족주의 사관의 애국주의적 자기 미화, 그리고 이에 대한 비판 등이 씨름하는 가운데 일제의 문제는 일본과의 문제로 소환되고 역사가 아니라 정치가 되었다. 어떤 역사가 맞는가를 두고 역사 논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억이 나에게 유리한가를 두고 기억 전쟁을 치르게 된 것이다.
종군위안부, 강제 징용 등이 이런 공간에 소환되어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는 법정으로 끌려가고, 영화 <군함도>는 징용의 고난사를 '국뽕' 과잉애국주의 탈출오락물로 둔갑시켜 흥행을 노리게 되었다. 이런 현상이 가능하게 된 근저에는 한국 사회에 가득한 반일 애국의 자기검열 기제가 놓여있다. 피해자의 저항과 투쟁을 자기 미화하는 흑백접근이 마니교식 이분법의 자기검열을 배양한 것이다. 박유하 교수의 책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열렬히 그리고 확신에 차서 인터넷에 욕설과 비난을 도배하는 현상, 위안부 소녀상을 종교적 상징처럼 곳곳에 이고 다니는 것 등은 영화 밖에서 일어나는 군함도식 '국뽕'인 셈이다.
상상의 빈곤과 일제 배경 영화
<군함도> 이전에도 근래 몇 년 동안 이상하리만치 갑작스럽게 일제시기 배경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모던보이>, <청연>, <암살>, <밀정>, <동주>, <귀향>, <덕혜옹주>, <박열> 등 해방 이후 지난 몇 년 만큼 일제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많이 나온 적이 없다. 화려한 영상과 세트, 그리고 해외 로케를 통해 볼거리가 풍부해지고 거기에 연출력과 연기력이 결합하여 영화의 재미는 커졌지만, 27년 전에 개봉하여 무려 6개월 동안이나 단성사에 걸렸던 <장군의 아들>에 비교했을 때 내용의 유사성은 놀랍다. 일제 식민시기가 한국에 끼친 엄청난 영향에 비하면 영화를 통해 그 시대를 조명하는 작업이 너무나 빈약했음을 알 수 있다.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봐야 할 지,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 지, 민감한 수용자 정서나 경직된 국가와 권력의 시책 등 영화 제작자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주제였을 것이다. 고작해야 일본인들을 상대로 주먹질을 하거나 독립투사를 영웅적으로 미화하는 범주를 넘어 상상하기 어려웠을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그렇다는 데에 있다.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가?
일제 식민에 연관하여 다소 다른 접근을 보여 준 두 외국 영화와 한국 영화 <청연>을 비교해 보았다. 이안 감독의 <색,계>는 국내에서도 꽤 주목을 받았는데 유감스럽게도 핵심 주제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의 섹스 장면이 길고 노골적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대만 영화 <해각7호>는 국내에서 개봉된 적은 없고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었을 뿐이다. 대만에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영화다. 영화 <청연>은 재밌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대구 출신의 가난한 소녀가 꿈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가 아시아 최초의 여류 민간 비행사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한다는 드라마 위에 일본인과의 경쟁에서 이긴다거나 끝내 조국을 위해 희생을 택한다는 식의 허구를 덧씌워 흥행을 노렸다. 그런데 불행히도 흥행을 위해 애국주의를 입힌 것이 화근이 되어 이 영화는 흥행실패작으로 막을 내린다. 주인공이 사실은 친일파인데 왜 영화에서 애국자로 그렸냐고 항의 데모가 일어나는 바람에 망한 것이다. 사실을 왜곡하여 애국주의 흥행을 노린 감독이나, 그렇다고 데모까지 하며 상영방해를 한 소비자나 의식의 수준이 모두 흑백의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색,계>는 이안 감독의 또 다른 걸작이다. 이미 <와호장룡>이나 <브로크백 마운틴>을 통해 이안은 지속적으로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는 사랑의 가치와 힘을 영상에 성공적으로 구현한 바 있다. 내가 보기에 <색,계>는 그 삼부작의 피날레이다. 그의 주인공들은 위대한 사랑을 실천하지만 모두가 현실의 관습에 가로 막혀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그러나 관객은 진정한 사랑의 힘과 숭고함을, 그리고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게 된다. <색,계>의 설정은 일본군의 밀정과 그를 암살하려는 젊은 애국단원이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고 동시에 그들을 조종하는 정치 이데올로기, 즉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허망함을 뛰어 넘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설정을 담은 영화가 일제시기를 배경으로 나올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설정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오랫동안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상상력의 수원지가 말라버렸고 이러한 영화적 전개를 허용하지 못하는 자기 검열이 제작자나 관객 모두에게서 너무나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마니교적 이분법으로 식민시기를 재단하는 한에 있어서 이것은 불가능하다. 식민지배의 갈등을 모조리 타자, 즉 식민 제국과 그 앞잡이 친일파에 전가하고 나의 투쟁과 저항을 미화하는 방식에 포박된 상황에 있는 한 역사적 상상에 있어서 자폐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상상의 빈곤과 일제 배경 영화
<군함도> 이전에도 근래 몇 년 동안 이상하리만치 갑작스럽게 일제시기 배경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모던보이>, <청연>, <암살>, <밀정>, <동주>, <귀향>, <덕혜옹주>, <박열> 등 해방 이후 지난 몇 년 만큼 일제시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많이 나온 적이 없다. 화려한 영상과 세트, 그리고 해외 로케를 통해 볼거리가 풍부해지고 거기에 연출력과 연기력이 결합하여 영화의 재미는 커졌지만, 27년 전에 개봉하여 무려 6개월 동안이나 단성사에 걸렸던 <장군의 아들>에 비교했을 때 내용의 유사성은 놀랍다. 일제 식민시기가 한국에 끼친 엄청난 영향에 비하면 영화를 통해 그 시대를 조명하는 작업이 너무나 빈약했음을 알 수 있다.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봐야 할 지,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 지, 민감한 수용자 정서나 경직된 국가와 권력의 시책 등 영화 제작자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주제였을 것이다. 고작해야 일본인들을 상대로 주먹질을 하거나 독립투사를 영웅적으로 미화하는 범주를 넘어 상상하기 어려웠을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도 그렇다는 데에 있다.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인가?
일제 식민에 연관하여 다소 다른 접근을 보여 준 두 외국 영화와 한국 영화 <청연>을 비교해 보았다. 이안 감독의 <색,계>는 국내에서도 꽤 주목을 받았는데 유감스럽게도 핵심 주제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의 섹스 장면이 길고 노골적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대만 영화 <해각7호>는 국내에서 개봉된 적은 없고 온라인을 통해 유통되었을 뿐이다. 대만에서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영화다. 영화 <청연>은 재밌게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대구 출신의 가난한 소녀가 꿈을 품고 일본으로 건너가 아시아 최초의 여류 민간 비행사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성공한다는 드라마 위에 일본인과의 경쟁에서 이긴다거나 끝내 조국을 위해 희생을 택한다는 식의 허구를 덧씌워 흥행을 노렸다. 그런데 불행히도 흥행을 위해 애국주의를 입힌 것이 화근이 되어 이 영화는 흥행실패작으로 막을 내린다. 주인공이 사실은 친일파인데 왜 영화에서 애국자로 그렸냐고 항의 데모가 일어나는 바람에 망한 것이다. 사실을 왜곡하여 애국주의 흥행을 노린 감독이나, 그렇다고 데모까지 하며 상영방해를 한 소비자나 의식의 수준이 모두 흑백의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색,계>는 이안 감독의 또 다른 걸작이다. 이미 <와호장룡>이나 <브로크백 마운틴>을 통해 이안은 지속적으로 사회적 금기에 도전하는 사랑의 가치와 힘을 영상에 성공적으로 구현한 바 있다. 내가 보기에 <색,계>는 그 삼부작의 피날레이다. 그의 주인공들은 위대한 사랑을 실천하지만 모두가 현실의 관습에 가로 막혀 비극적 종말을 맞는다. 그러나 관객은 진정한 사랑의 힘과 숭고함을, 그리고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게 된다. <색,계>의 설정은 일본군의 밀정과 그를 암살하려는 젊은 애국단원이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고 동시에 그들을 조종하는 정치 이데올로기, 즉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허망함을 뛰어 넘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설정을 담은 영화가 일제시기를 배경으로 나올 수 있을까? 아니 그런 설정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오랫동안 불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상상력의 수원지가 말라버렸고 이러한 영화적 전개를 허용하지 못하는 자기 검열이 제작자나 관객 모두에게서 너무나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마니교적 이분법으로 식민시기를 재단하는 한에 있어서 이것은 불가능하다. 식민지배의 갈등을 모조리 타자, 즉 식민 제국과 그 앞잡이 친일파에 전가하고 나의 투쟁과 저항을 미화하는 방식에 포박된 상황에 있는 한 역사적 상상에 있어서 자폐적인 한계를 극복할 수 없는 것이다.
<식민지에 대한 세가지 기억 방식>
제목 | 청연 Blue Swallow | 색,계 Lust, Caution | 해각7호 Cape No. 7 |
연도 | 2005 | 2007 | 2008 |
감독 | 윤종찬 | 이안 Ang Lee | 웨이 떠셩 Te-sheng Wei |
장르 | 드라마 성장 로맨스 | 드라마 스파이 스릴러 애정물 | 드라마 로맨틱 뮤지컬 |
국가 | 한국 | 미국 | 타이완 |
주요 갈등 | 식민지 조선인에 대한차별과 탄압; 애국적 투쟁 | 사랑 vs 애국 비인간적 정치도구화 | 성장 갈등; 맺지 못하는 사랑 |
구성 | 식민지 상황에서의 출세와 애국적 투쟁 사이의 갈등 | 개인의 사랑과 애국을위한 헌신 사이의 갈등 | 과거와 현재의 맺지 못한 사랑들 |
<해각7호>는 두 사랑 이야기가 오버랩되는 형식으로 일본과 대만 관계를 암시한다. 대만에 근무하던 일본인 선생은 사랑하던 대만 여성을 두고 귀국선을 타지만 끝나 돌아오지 못한다. 남겨진 편지만이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전해지며, 그 편지를 우연히 열어본 오늘날의 젊은 대만 청년은 일본인 관광 가이드와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에 제국주의와 식민지는 맺지 못한 어느 사랑의 간접적인 백그라운드로 희미하게 존재한다. 식민지든 아니든 사랑은 맺기 어렵게 마련이고, 맺어지든 아니든 그 애틋함과 아련함은 그 자체로 숭고하다. 식민의 공간에도 사랑은 있는 법인데, 대만 영화는 그걸 그리고 한국 영화는 그리지 못한다.
중국에 가서 저녁에 텔레비전을 켜면 여기저기서 항일전쟁 드라마를 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중국인들에게 1937년 중일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종전까지 팔년 세월, 만주사변부터 치면 15년 간 일본에 당해온 분노의 시절이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항일전을 매일 새롭게 치러야하는 것일까? 보나마나 중국군이, 그것도 인민해방군이 지혜롭게 국민당군을 이끌고 일본군을 물리치는 환상의 전쟁이 매일 저녁 되풀이된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외면하는 드라마다. 이들에게 전쟁과 식민의 분노는 없다. 매일 밤 일본군을 물리친다 해서 일본에 타격을 줄 리도 없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좋으라고 이런 드라마를 계속 만드는 것일까?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과 도시 하층민, 노인 인구 등이 주요 대상이다. 내용도 항일이 핵심이 아니라 공산당의 애국적 영도가 중요 메시지이다. 식민의 기억을 오늘의 정치에 동원하는 것이다. 그 대가는 작지 않다. 중국인들은 식민의 함정에서 떠나지 못하고 쳇바퀴에 갇혀 사라져버린 식민주의자들을 하염없이 탓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이와 다를까?
주: 식민의 경험에 대한 마니교식 이분법에 대한 이론적 논의는 최정무의 다음 자료와 거기 인용된 잔모하메드의 논의를 참고하였다.
Choi, Chungmoo (1993). The discourse of decolonization and popular memory: South Korea. positions: east asia cultures critique 1(1): 77-102.
JanMohamed, Abdul (1985). The economy of Manichean allegory: The function of racial difference in colonial literature. In Race, Writing and Difference (Ed.) Henry Louis Gates Jr.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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