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9-06

양우진의 “다시 읽는 한국 현대사”,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 현대사"를 읽고



한청훤
3 March 2017


양우진의 “다시 읽는 한국 현대사”,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 현대사"를 읽고

이 글은 위의 두 책을 읽고 난 후의 독후감임…

나는 한국사람들이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자기 세계관과 정서에 디폴트로 깔고 있는 민족주의라는 국교에서 벗어났을 때 굉장히 많은 것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민족주의는 모든 한국인들이 어렸을 적부터 가정과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하고 내면화 시켜 거의 모든 가치판단의 출발점이 되는 일종의 비공식적 국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국교로써 민족주의는 복잡한 현상을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종종 방해한다. 어떤 주제나 사안이 일단 민족주의적 가치에 위배되는 것으로 보이면 한국인들은 그 외 것은 보려거나 고민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 의식, 무의식의 디폴트로써 민족주의를 하나의 상대적 가치로 대상화 시켜 볼 수 있다면 그 동안 간과되고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을 비로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추측한다. 왜 이게 중요하냐면 그 동안 간과되고 보지 못한 걸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 때 고질적인 정치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할 돌파구가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폭넓게 수용되는 매우 정형화된 한국사에 대한 일종이 역사적 해석이 있는데, 바로 한국 현대사를 불의가 승리한 정의가 패배한 실패의 역사로 보는 일종의 실패주의 사관이다. 일본 식민지 지배에서 독립과 정부 수립을 거쳐 내전과 분단, 그리고 정치적 독재가 이어지면서 한국사는 악당들이 끊임없이 승리를 거두는 잘못된 결과가 되풀이 되는 과정으로 보며 그 반복된 과정들이 지금까지 영향을 끼쳐서 현재의 거의 모든 사회적 문제의 배경이자 원인이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는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때의 잘못을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결론 까지 내리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헬조선의 그 수많은 문제들의 해결책이 이렇게 간단명료 했던 것이다.

나는 이 실패주의 사관이 왜 그렇게 까지 영향력이 큰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고 그리고 내 나름 내린 결론은 바로 국교 민족주의의 지배적 영향력이었다. 강렬한 민족주의라는 관점과 정서로 바라본다면 한국의 정부수립과 뒤이은 전개 과정은 수 많은 오욕과 굴욕의 과정으로 보이기 충분할 것이다. 민족 대분열을 가져온 단독 정부 수립부터 일제 부역자들에 대한 미흡한 청산, 정부 고위층을 차지한 일제 부역자들, 권위주의 정권에서 시도된 대일 관계 개선, 역대 정권의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 외채와 외국 시장 수출에 의존한 경제 발전 전략, 미국의 비호를 받는 것으로 보이는 잔인한 독재 정권, 그런 친일과 친독재 세력을 계승한 것으로 보이는 정당의 장기 집권, 그러한 집권세력의 지나친 친일적 외교 노선 등등. 한국인의 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민족주의에 틀에서 볼 때 한국의 현대사는 탄생부터 지금까지 먼가 왜곡되고 삐뚤어지고 실패가 반복되며 가끔 그 실패를 바로잡는 상황이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전반적으로 불의의 만연한 실패와 패배의 역사 다름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종교적 민족주의는 한국 현대사를 오로지 하나의 관점에서만 바라보게 할 뿐 좀더 입체적이고 심층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걸 끊임없이 방해한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민족주의는 민족주의적 관점 외에 다른 관점을 극히 배타적으로 밀쳐내어 오로지 민족주의적 역사 해석만을 고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를 단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만, 그러니까 총체적 실패의 반복 과정으로만 바라보는 게 다 일까?

만약 한국 현대사를 근대적 공화주의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매우 다른 풍경을 보게 된다. 한국은 전근대 봉건상태에서 근대적 민주공화국으로 거침없이 걸어온 매우 성공적 과정으로 바라볼 수 있다. 한국의 전신인 조선은 비록 19세기 말에 갑오경장을 통해 제도적으로 봉건적 신분제를 철폐한 나라였지만 사회문화적 신분 예속은 식민지를 거처 독립이 된 후에도 지속적으로 강고하게 남아 있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신분적 예속은 지주-소작이라는 경제적 관계와 겹침으로써 경제 구조적으로도 강력하게 고착되어 극복되기 힘든 상태에 있었다. 해방이 되고 민주공화국을 내세웠지만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근대와 시민사회를 단 한번도 경험해 본적이 없었다. 사회 곳곳에서 봉건적 신분의식과 전근대적 잔재들이 강력하게 남아 있었고 농경 형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주-소작 관계는 신분적 서열 구조를 경제적 불평등으로 더욱 강화시키는 상황에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뿌리깊은 전근대적 신분의식과 봉건적 관습은 두 가지 충격적 사건에 의해 거의 뿌리째 뽑히고 와해되고 만다. 바로 농지개혁과 한국전쟁이었다.

농지개혁은 농경 형태 대부분을 차지하던 지주-소작형태를 자가보유의 소농 형태로 전환시킴으로써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 구조를 일순간에 와해시키는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뒤이어 한국전쟁은 사회문화적으로만 남아있던 사회문화적 신분의식을 순식간에 일소시킴으로써 단 한번도 근대를 경험해 보지 못한 한국이 일순간에 근대로 돌입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거의 모든 마을에서 이념과 진영에 따라 하루 아침에 죽고 사는 처지가 바뀌는 상황에서 전통 촌락에 자리잡고 있던 봉건적 신분 의식은 철저하게 씻겨 내려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국전쟁에 뒤이어 한국 정부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시행한 보통교육은 모두가 평등한 존재의식을 갖춘 근대적 국민을 탄생시키는 출발점이 되었다. 농지개혁과 한국전쟁, 보통교육을 통해 1950년대 한국에서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거의 평등한 사회가 형성되었고 이는 뒤이어 한국 사회가 근대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는 데 결정적인 기반을 제공하게 된다. 사업화를 방해할 토지 귀족도 없었으며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성공하고 잘 살 수 있다는 개천의 용 신화가 탄생했고 수 많은 평범한 소농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이 교육을 통해 더 성공할 수 있도록 자신의 땅에서 피땀 흘려 근면노동에 나서게 된다. 그러한 소농 부모들의 후원으로 교육을 받는 자녀들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전사로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똑같은 시기 동일한 민주공화국으로 출발 했지만 인도 같은 문화적 신분의식이 잔존하거나 극소수의 지부토호들과 대다수의 소작빈농들이 존재하던 중남미와 필리핀과는 차원이 다른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다.

뒤이은 권위주의 정권과 군부독재 정권은 일본과의 관계개선으로 얻는 자금지원과 외국차관을 통해 얻은 자금을 산업 투자 밑천으로 사용하고 주요기업들에게 수출규율을 부과하여 경제발전에 나서게 된다. 반 정권 민족주의 진영에서는 정부의 경제정책이 외세에 종속을 불러서 반식민지로 전락할 것이라고 매서운 질타를 가했다. 뒤이어 모택동의 반식민지 반봉건론과 중남미의 종속이론이 영향을 강하게 받은 민족좌파 세력은 한국의 경제발전이 외형만 그럴듯한 사상누각이며 경제성장을 할수록 외세에 종속되어 결국 무너지게 될 것이라고 끊임없이 예언을 하였다. 그들은 외채와 수출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갱생의 자주적 산업화를 주창하였는데 그들이 봤을 때 권위주의 정권과 군부독재 정권은 나라를 팔아먹는 제2의 이완용 같은 매국노였다. 이러한 시각은 독재정권의 가혹한 탄압과 정치적 억압과 상승작용 하며 매판외세독재 세력에 대비하여 북한을 한반도의 정통성 있는 정권으로 간주하게끔 하는 결론으로 이어지기 까지 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최소한 경제 산업 정책에 있어서 독재에 저항하던 민족좌파세력들이 권력을 잡지 않았던 것은 민중들에게는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그들이 독재정권의 경제 산업 정책의 대안으로 내세웠던 자력갱생의 비외세의존적 주체적 산업화 정책은 만약 실제로 추진되었다면 큰 재앙이 닥쳤을 것이고 오늘날 한국은 지금 보다 훨씬 낮은 발전 상태에 놓여있었을 것이다. 외국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적 산업 개발 정책은 수 많은 실패 사례들을 통해 잘못된 방법이라는 게 이미 수도 없이 입증되었다. 저개발 국가는 만성적인 자본 부족에 시달리기 때문에 외국 자본이 아니라 농업 같은 국내 다른 부문에서 억지로 자본을 빼올 경우 수 천만명 혹은 수 백만명이 굶어 죽는 중국의 대약진 운동의 참사나 스탈린 시대 러시아 집단농장 아사 사태 등이 벌어 질 수 있다. 게다가 수출 규율로 통제 받지 않은 국내 산업은 단지 정부 각종 규제에 보호 받으며 국내시장 독점이라는 지대에 의존해서 결국 국민 경제에 부담이 되는 좀비 기업이 되기 십상이다. 중남미와 동남아에서 수입 대체화를 위해 국가로부터 지원 받은 수 많은 국내 기업들이 경쟁력 있는 글로벌 기업이 되는 데 모조리 실패한 게 자주적 산업 정책은 실패 할 수 밖에 없음을 여실히 증명한다. 거기다가 더 나아가 자주를 위해 외국 무역에 의존하지 않는 폐쇄적 경제를 운영한다면 그 결과가 어떨 지는 바로 북한이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최소한 경제 산업적 측면에서 민주주의를 압살한 권위주의 정권과 독재 정권이 추진한 정책이 옳았다는 건 역사가 증명했다. 농업국가에서는 다원적인 시민 사회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성립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경우를 봐서는 산업화 성공은 뒤이은 민주주의의 성공적인 정착에도 주요한 토대가 된다. 결국 봉건적 잔재를 쓸어내고 계급적 평등을 이룬 한국 전쟁과 토지개혁, 보통교육의 토대 위에 적절한 산업화 정책이 이어지며 한국은 2차 세계대전 후 탄생한 국가들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거기다 정치적 민주주의 정착 까지 성공을 거두며 한국은 개발도상국 중 고도로 발달된 산업, 다원화된 시민 사회, 정치적 민주주의가 보장된 소위 세계적 선진국 대열에 오르는 유일무이한 나라가 된다. 물론 정치적 민주주의의 성공적인 정착에는 좌파민족주의 진영의 공헌이 매우 컸음은 물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민족주의 성패 시각이 아니라 근대화 성패의 시각으로 본다면 한국은 실패와 패배가 아니라 성공과 승리의 역사로 볼 수밖에 없다. 지금도 많은 나라들이 사회, 문화, 경제, 정치 각 분야에서 전근대적 낙후성에 벗어나지 못하는 걸 고려해 본다면 한국의 성공과 승리로 더욱 빛나 보이게 된다. 나는 민족주의적 사관으로 한국 현대사를 실패와 패배의 역사, 불의가 판을 친 잘못된 역사를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그 민족주의적 역사관이란 여러 역사 해석 중 하나의 역사관에 불과할 뿐 유일한 진리라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얼마든지 관점을 바꾼다면 한국 현대사는 다르게 보일 수 있고 다른 느낌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여러 관점을 용인하고 폭넓게 수용 한다면 나는 현재의 한국 정치에서 보여지는 여러 고질적 문제들을 극복 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한국 정치의 대립과 갈등은 민생 정책을 위한 건설적 경쟁보다는 서로 다른 역사관 중 어느 역사관이 옳은지에 대한 소모적 경쟁이기 때문이다. 역사관을 둘러싼 도적적 정통성을 가지고 싸운다면 공존과 타협은 불가능 하며 오로지 상대에 대한 절대적 부정과 우리편의 절대적 승리만을 추구하게 되고 이는 결국 정책과 노선을 둘러싼 건설적 경쟁이 들어설 자리를 없는 상태가 계속되게 만든다.

나는 물론 과거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면에 대해 눈을 감자고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민간인 학살과 고문 같은 극악한 인권유린, 각종 의문사와 민주주주의 파괴, 각종 의문사, 가혹한 노동착취등은 물론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하지만 그림자는 단지 현상의 일면일 뿐 그림자를 벗어나면 또 다른 장면이 보이게 된다. 나는 그림자만 보자는 사람도 햇볕이 드는 밝은 곳만 보자는 사람도 모두 단지 일면만 보는 것이며 일면만 보는 사람끼리는 결코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언제쯤 우리는 단지 그림자와 햇볕만 처다보고 상대 말은 전혀 안 듣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 끼리 죽자 살자 말다툼 하는 것만 옆에서 수동적으로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끝으로 나는 한국 현대사 관련 책을 보며 두 가지 지독한 아이러니를 느낀다. 하나는 한반도 남쪽에서 선의 가득 찬 이상주의자들이 실패한 건 결과적으로 민중들에게 큰 축복이었다는 것이다. 남쪽의 이상주의자들이 만약 정권을 잡았다면 한국은 현재 최악의 경우 북한, 혹은 잘 되야 베트남 정도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남한에서 현실 권력 투쟁에서 실패한 이상주의자들의 이상은 죽지 않고 그들이 타도 대상으로 삼았던 지배권력에 의해 현실화 되었다. 이상주의자들이 품었던 평등과 자유와 민주주의는 한국의 역대 정권에 의해 어떤 때는 획기적으로 어떤 때는 점진적으로 하나하나 실현 되고 성취 되었다. 선의 가득 찬 이상주의자들은 현실에서 실패 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 시키는 성공을 거둔 셈이었다. 이상주의자든 현실 지배권력이든 지나가 보면 덧없고 온갖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들어 헤겔이 말한 역사적 인물이란 기껏해야 역사의 신이 쓰고 버리는 인형에 불과하다는 말이 자꾸 뇌리에서 떠오른다.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