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20

알라딘: 이성시 (지은이), 만들어진 고대 이성시 ,박경희 (옮긴이)2001



알라딘: 만들어진 고대




만들어진 고대 - 아시아연대총서 5 
이성시 (지은이),박경희 (옮긴이)삼인2001-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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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양장본
260쪽
160*235mm
390g
ISBN : 9788987519586

알라딘 리뷰
"아시아의 고대사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말"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다. 고대에 '임라일본부'를 통해서 '일본'이 '한국'을 지배했다는 왜곡에는 근대 식민지배에 대한 왜곡보다 더 민감하기도 하다. 더 나가서는 '한국'의 백제, 신라, 가야가 '일본'을 지배했다는 논리로 맞선다. 어떤 경우에는 '한국'의 그 나라들이 사실은 '중국'의 상당한 지역도 지배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된다.

'광개토대왕비 조작사건'도 이 이야기에 관련되어 있다. 일본의 관동군 장교가 역사 왜곡을 위해서 석회를 바르고 글자를 조작, 그것을 임라일본부설의 근거로 삼았다는 잘 알려진 이야기 말이다.

위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들리시는지? 예컨데, '한국', '일본', '중국'과 같이 따옴표를 친 나라 이름들이 나오는 대목이 말이다. 그러나 죄송하게도 수천년 전에는 그런 나라들은 존재하지 않았다을 뿐더러 그 '민족'들의 실체도 불분명했다. 게다가 '광개토대왕비 조작'이라는 것은 그 근거조차 불분명하여 이제는 학계에서도 부정되는 주장이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이 이야기들은 그렇다면 어떻게 이해하여야할까?

고대사의 '진실'이 무엇인지가 학술적인 쟁점일 뿐일까? 그렇다면 평소에는 '역사'에 관심도 없는 것 같던 정부가 펄쩍 뛰고, 학교 다닐 때는 관심도 없던 사람들까지 흥분하는 것일까? 그것이 정치적인 쟁점으로 비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경우에는 명백한 왜곡까지 자행하면서 말이다. 도대체 고대사에서는 진실이나 거짓말이 구분될 수나 있는 것일까?

저자는 얽히고 섥힌 그런 질문에 대해서 일본의 역사연구, 그리고 동아시아 각 나라들의 역사연구를 검토하면서 답하고자한다.

결론을 요약하여 말하자면, 동아시아 각국이 자신의 근대 민족국가의 '국민'을 형성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를 고대사를 투사하고 있고 이 것은 고대사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낳는다는 것. 각국의 역사가들은 자기 나라들이 현재 처한 사정을 고대에 투사하여 그것을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했다. 예를 들어 광개토대왕비에서, '왜가 고구려에 패했다'는 내용을 러일전쟁에서 일본과 대륙 세력의 대립으로 이해하고 여기서 '역사적 교훈'을 얻으려한 일본 역사학자들의 논리가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민족'이라는 것의 실체가 실은 근대 이후에나 성립되었다는 점에서, 고대사를 '민족국가의 역사'로 정리하는 작업은 매우 근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수천년 전에 각 지역에 존재했던 정치 세력들이 곧바로 현재의 한중일 각 민족(과 그 국가)의 실체에 연결된다는 것은 환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근대 민족국가를 고대에 그대로 적용하여 이해하는 것을 이미 전제로 삼고 벌이는 논쟁들은 무리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발해'는 어느 나라의 역사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을 해보자. 한국인가, 중국인가? 이런 질문은 질문 자체가 기반하고 있는 의식 자체에 이미 문제가 있다. 발해가 당(唐) 왕조의 소수 민족국가, 지방정권이라는 중국 측의 이해나, 고구려의 후예로 통일신라와 '남북국시대'를 이루어 겨룬 韓민족 국가라는 남북한의 이해는, 모두 역사적 사실보다는 현재의 정치적 지형 속에서 그것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한다.

더구나 이러한 역사해석 상의 경쟁은 '서양'의 시선에 자신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던 일본의 의해 구성된 '일본사' 형성에서 시작된다.(예를 들어 일본 최초의 근대적 역사서는 파리 만국박람회에 서양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비로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일본이 자신의 민족사를 만들어내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과 중국의 역사학은 그 틀을 그대로 복사하여 '경쟁작'을 만든다. 그러한 점에서 이러한 역사 이해와 논쟁은 지극히 근대적인 현상이다.

이 책은 이렇게 고대사에 현재의 정치적 의지를 투사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이해하는 여러가지 사례들을 비판한다, 위에서 예를 든 광개토대왕비 해석, 발해의 이해 뿐 아니라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과 일본에서 수용된 새로운 '오리엔탈리즘' 등을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역사가 단지 과거의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현재 우리들의 문제의식으로 해석되고 이해될 필요가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현재의 문제의식'이 각 민족국가가 가지는 정치적 의도를 고대사에 투사, 왜곡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과연 얼마나 올바른 것일까? 저자는 이런 쉽지 않은 질문들을 던지면서, 우리에게 판단을 위한 근거들을 제시한다.

이 책은 말하자면, 근대에 형성된 민족국가. 민족의식이 어떻게 과거를 왜곡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보고서인 셈이다. - 박준형(2001-11-14)


책소개
'동아시아 고대사는 실재의 기술인가 근대의 창출인가?'

'근대국민국가의 동아시아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동아시아 고대사에 실로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재일교포로 태어나 일본에서 동아시아 고대사를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일본의 고대사 연구와 한국, 북한의 고대사 연구를 아우르면서 이들 동아시아 고대사는 '고대 속에 현재의 욕망을 매개없이 투영한 것이 아닌가'라는 강한 의문을 가져왔다고 고백한다.

이와같은 문제의식 아래 광개토왕비문의 해석 문제, 발해사를 둘러싼 민족과 국가 문제, 동아시아 문화권의 영향 관계, 그리고 식민지 역사학이 품고 있는 욕망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저자는 19세기 후반 일본이 구미 열강의 국민사를 모델로 연속하는 자기 완결적인 '일본사'를 만들어 낸 것에 대항하여 동아시아 각국이 제각기 자기 완결적인 '민족사'를 만들어 내었다고 본다. 이 책의 표제인 '만들어진 고대' 는 동아시아 고대사가 명확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목차


머리말
옮긴이의 말

제1부
고대사에 나타난 국민 국가 이야기
표상으로서의 광개토왕비문

제2부
발해사 연구에서의 국가와 민족
발해사를 둘러싼 민족과 국가

제3부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

제4부
근대국가의 형성과 '일본사'에 대한 고찰
구로이타 가쓰미를 통해 본 식민지와 역사학

보론
각인된 오리엔탈리즘

주석
접기


책속에서



대체로 남북한이나 중국의 역사학계에서의 고대 일본상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근대 일본이 `현재`를 투영하여 과거 속에서 읽고 만들어 낸 일본상(자화상)의 구속을 받는다. 자기와의 관계 속에서 일본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할 때 근대 일본의 해석 도식이나 평가 기준이 전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 각국에서의... 더보기 - nana35
광개토왕비문은 적어도 고구려 멸망(668년) 후부터 1200여 년 동안 그와 같은 텍스트(동아시아 삼국 전체에 중요한 역사적 유물)로서 주목받은 적이 결코 없었으며, 그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에 `발견`되자마자 역사 저편에서 홀연히 소생했다는 것이다. 37) - nana35
박시형은 발해가 조선사에 편입되지 않으면 안 되는 근거로, 민족적으로도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고, 더욱이 남(쪽)의 신라와 발해가 서로 `동족`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강조하였다.
...
그러므로 이러한 점을 논거로 한 이상 이는 필연적으로 삼국 시대 이전에 한민족으로서의 동질성•동일성이 존재해 있었음을 전제로 하지 않... 더보기 - nana35
역사적 세계로서의 동아시아 세계란 역사적인 검증 차원 이전에 1960년대의 정치적 현실에 입각한 지역 설정이었던 것이다. 중국•한국•베트남•일본 네 나라가 동아시아 세계를 구성하는 지역으로 명확하게 의식된 것은 그러한 시대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159) - nana35
앤더슨에 따르면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 국가의 유적 건설자와 당대 식민지 원주민은 같은 종족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
유적은 복원되어 주변 시설과 함께 설치됨으로써 원주민에게 자신들이 장기간에 걸친 위업을 이룰 능력도 자치 능력도 결여되어 버렸음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223) - nana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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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이성시 (李成市)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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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일본 나고야에서 태어나서 요코하마에서 성장하고 와세다대학과 대학원에서 한국 고대사를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고대사를 전공했다. 요코하마 국립대학 조교수를 거친 후 1997년부터 와세다대학 문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뛰어난 학문적 업적을 내는 한편, 재일한인역사자료관 관장과 한국목간학회 회장 등 시민사회에서의 사회적 학술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저서
『東アジアの王權と交易 正倉院の寶物が來たもうひとつの道』(靑木書店, 1997년)[김창석 옮김, 『동아시아의 왕권과 교역』(청년사, 1999년)]
『古代東アジアの民族と國家』(岩波書店, 1998년)
『東アジア文化圈の形成』(山川出版社 世界史リプレット, 2000년)[『만들어진 고대』에 수록]
『만들어진 고대』(삼인출판사, 2001년)

편저
西嶋定生, 『古代東アジア世界と日本』(岩波現代文庫, 2000년)[송완범 옮김,
『일본의 고대사 인식: ‘동아시아세계론’과 일본』(역사비평사, 2008년)]
『岩波講座 日本歷史 20 地域論』(岩波書店, 2014년)
『岩波講座 日本歷史 22 歷史學の現在』(岩波書店, 2016년)

공동편저
『古代朝鮮の考古と歷史』(雄山閣, 2002년)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휴머니스트, 2004년)
『植民地近代の視座 朝鮮と日本』(岩波書店, 2004년)
『東アジア古代出土文字資料の硏究』(雄山閣, 2009년)
『いま〈アジア〉をどう語るか』(弦書房, 2011년)
『「韓國倂合」100年を問う』(『思想』 1029, 岩波書店, 2010년 1월 특집호)[최덕수
외 옮김, 『일본, 한국병합을 말하다』(열린책들, 2011년)]
『世界歷史大系 朝鮮史 1·2』(山川出版社, 2017년) 접기


최근작 : <투쟁의 장으로서의 고대사>,<동아시아 세계론의 실천과 이론>,<李基白韓國史學의 影響> … 총 10종 (모두보기)

박경희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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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화여대 부설 한국여성연구소 연구원으로 사료를 편찬했으며, 서울여대 강사,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전문위원을 거쳐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사료연구위원으로 있다. 『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일본사』를 썼고, 『조선미의 탐구자들』, 『한권으로 읽는 베트남사』, 『만들어진 고대』, 『역사교과서의 대화』, 『에도의 몸을 열다』 등을 옮겼다.


최근작 : <오라클 튜닝>,<연표와 사진으로 보는 일본사>,<사계절 바뀌어도 나 기도하리니> … 총 18종 (모두보기)
이성시(지은이)의 말
이 책은 1988년 이래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은 문제 의식 아래 써 왓던 사론을 <만들어진 고대>라는 책 제목으로 편집한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일본에서 연구 활동을 해왔지만, 이 논문들을 집필함에 있어서는 일본인 독자뿐만 아니라 남북의 독자 또한 염두에 두고 써 왔던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의 많은 독자들 눈에 비쳐질 것을 생각하니 왠지 모를 긴장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때마침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기억과 역사를 둘러싼 논의가 격렬하게 오가고 있다. 나는 이른바 교과서 문제는 특수한 일본적인 문제라기보다는 근대 역사학의 한계를 표상하는 일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이제까지 걸어온 길의 연장선상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해 내 나름대로 계속 발언해 나가려 한다. 이 책은 나의 변변찮은 사고의 궤적에 지나지 않지만, 향후 동아시아 규모로 전개될 기억과 역사를 둘러싼 새로운 논의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다면 다행이다. --'서문'중에서



Editor Blog
동아일보 기획, 흥미진진한 역사 읽기 30선 l 2006-07-04

동아일보가 ‘흥미진진한 역사 읽기 30선’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독서평론가 역사학자 문인 등 각계 30명에게서 추천받은 100여 권의 책 가운데 30권을 선정해 소개합니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역사 교양서 및 역사소설을 위주로 골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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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아무도 위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등 총 246종
대표분야 : 한국시 25위 (브랜드 지수 18,763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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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은 책. 이 책과 요동사는 고대사에 대한 나의 시각을 변화시킨 완소책
magicfinger 2010-04-19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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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 투영된 고대사 복원하기




광개토대왕비문에 대한 관심 때문에 다시 읽게 됐다.
220 페이지 밖에 안 되는 얇은 책이지만 내용은 알차다.
재일 사학자라는 저자의 신분 때문인지 일본과 한국 역사에 대해 상당히 객관적인 관점을 취한다.
궁극적으로는 일국사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고대사를 제대로 복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누누히 언급되어 온 바지만, 민족이나 국사라는 개념이 생긴 것은 기껏해야 19세기 말이고, 일본은 서양에 대해, 조선은 일본에 대해 대립항으로써 자기 규정을 위해 민족과 국사를 개발해 낸 것이므로 21세기의 정체성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역사학이 국민교화에 이용된다는 어느 학자의 지적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 같다.
임지헌 교수가 고구려사를 변경사로 보자는 제안을 했는데 그에 대한 반론으로 만약 제 민족의 역사로 챙기지 않는다면 누가 그 역사를 의미있게 여기고 연구하고 발굴하겠냐고 현실적으로 무가치하다는 말을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국사를 넘어서자는 주장은 민족주의 역사관에서 한 단계 나아가는 방향임이 분명하다.

다시 한 번 확인한 바지만, 광개토대왕비문 조작설은 말 그대로 음모에 불과하다.
일본인 대위가 발견하기 전에 이미 먼저 뜬 탁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있지도 않은 주어와 목적어를 일부러 집어 넣어 고구려 쪽으로 유리하게 해석하려는 한국 학계의 시도에 반대한다.
오히려 비문의 전체적인 형식으로 봤을 때 당시의 위급한 상황을 강조한 다음, 이렇게 힘든데도 불구하고 왕이 직접 친정하여 적을 섬멸했다는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왜가 한반도로 넘어와 침략한 것은 사실이고, 위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왕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가 왜를 물리쳤다고 본다.
일본에서도 광개토왕에게 패한 것은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때문에 대륙 진출이 좌절됐다고 해석한다.
중요한 것은 왜가 한반도에 침임했다고 해서 그것이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증거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주장이야 말로 식민지 시대 내선일체를 주장하기 위해 억지로 만들어 낸 근대의 소산물에 불과하다.
또 저자는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를 속국으로 삼았다는 주장도 억지라고 본다.
조공을 바치는 것은 강대국과 약소국의 차이 정도지, 정치적 지배력까지 가졌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의 이런 해석이 제일 깔끔하고 무리가 없다고 본다.

저자는 수묘인들에 대해 자세히 논한 기사에 대해서도 고구려가 5부 체제를 완벽하게 극복하지 못한 예시로 든다.
이 점은 이종욱의 주장과 매우 다른데, 이성시는 계루부가 왕권을 계속 이어갔으나 끝내 부를 초월한 지배력을 갖기 못했다고 본다.
5부 체제설은 역사서에도 자주 등장하므로 합리적으로 생각해도 고구려의 절대 왕정제를 주장한 이종욱의 의견에 더 무리가 따른다.

동아시아 문화권의 책봉 체제에 대한 언급도 신선했다.
저자는 일본 학자의 동아시아 문화권 주장에 비판적이면서도 당시 한자와 한역불교, 유교, 율령 등을 매개로 베트남, 일본, 삼국 등이 책봉 의식을 통해 하나의 문화권으로 묶여 있었음을 지적한다.
책봉은 중국의 화이사상을 받아들여 예를 행함으로써 중국 문화권의 일원이 된다는 일종의 형식 의례였다.
이 때 중국 문화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오히려 수당 왕조의 권위를 빌어 각 나라들이 내부의 응집을 꾀했다고 본다.
그러므로 동아시아 문화권을 논할 때 요즘처럼 중국에 대한 굴욕감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다고 하겠다.
한자 역시 내부에서 글자 사용에 대한 욕구가 커져셔라기 보다는 중국과 혹은 외국과의 관계 정립에 필요했기 때문에, 즉 동아시아 문화권이라는 큰 세계에 편입하기 위해 도입한 걸로 본다.
이런 걸 보면, 고구려 역시 중국으로부터 책봉을 받아 동아시아 문화권의 일원으로 활약했음은 너무 당연한 사실이고 왜 이 점을 비틀고 왜곡해서 중국 측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지 모르겠다.

마지막에 나온 시바 료타로에 대한 비판은,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감상적 직관주의가 얼마나 허망한 얘기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막연하게 이럴 것이다, 혹은 당위성에 입각해 이렇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과연 일본이 유교 대신 법가를 취해서 가족주의를 극복하고 화폐경제를 발전시켜 개인주의와 합리주의에 의거해 오늘날의 근대화를 이뤘는가?
또 한국은 유교 문화에 함몰되어 가족주의 속에 개인과 상업을 억압하고 근대화에 실패했는가?
이런 관념론을 들을 때마다 이른바 지식인 내지는 방송인, 문화인 하는 사람들의 발언이 얼마나 무책임 한지를 새삼 느낀다.

한 가지 언급해야 할 사실은 발해에 대하여 말갈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점이다.
중국은 당의 지방 정권으로 생각하고 한국은 고구려 지배층을 강조한다.
저자는 지배층이 누구냐가 한 나라의 민족 정체성을 결정하는 일이냐고 반문한다.
또 고구려 계층이 일부 지배층에 편입될 수는 있었겠으나 기본적으로 발해는 여러 말갈 부족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성장한 나라이고 신라와는 적대적인 관계였던 반면, 당과 일본과는 활발한 교류 활동을 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현재 국사학계에서 남북국 시대 운운하는 것은 억지스럽다고 평한다.
과연 신라와 발해가 남국과 북국으로 나누어져 언젠가는 통일해야 할 한 민족으로 생각했을까?
그것이야 말로 현재의 남북한 분단 상황에 고대를 투영하는 비역사적인 관점이다.
나는 이 점에서 오히려 이종욱의 주장처럼, 고려는 명백히 신라의 인민과 문화를 계승했으며 신라의 통일이 갖는 의미는 훼손될 수 없다고 본다.
말갈족은 숙신, 읍루 등으로 불린 북부 말갈족과 예, 옥저 등에 살던 남부 말갈 등으로 나누는데 유목 집단이었던 만큼 다양한 부족이 있었고 후에 여진족 만주족 등으로 연결된다고 한다.
그러니 한 발 더 나가면 금나라도 한민족의 역사에 포함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만 하다.
발해는 주로 남부 말갈 중심으로 성장했고 세력을 넓히는 과정에서 북부 말갈족, 즉 흑수 말갈 쪽을 통합해 갔다고 한다.

민족주의 역사관의 문제점은 모든 민족이 자민족 관점에서 특히 오늘날의 정세에 비춰서 당위적으로 고대를 해석하므로 통합적인 시야를 갖기 어렵다는 점이다.
근대에 투영된 고대사, 저자의 말마따나 일국사를 넘어서야 좀 더 입체적으로 고대를 복원할 수 있을 것 같다.
- 접기
marine 2008-10-23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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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고대 / 이성시


발해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것은 러일 전쟁(1904~05년)에서 승리한 일본이 자신들의 만주 침략을 학문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했던 일련의 시도에서 비롯했다. 일본은 발해 문화의 종속성과 비주체성을 강조하여 만주가 특정 국가의 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을 부각시켰고, 이후 한국에서는 식민사관에 대한 반작용으로 발해, 신라의 남북조 개념을 정립한다. 즉 발해는 고구려 유민이 세운 한민족 국가이므로, 통일에 대한 환기와 전망을 동시에 제공하는 한반도의 고대사라는 관점이다. 중국 역시 자신들의 입장에 맞추어 발해를 말갈족이 세운 지방 정권으로 간주하면서, 다양한 소수 민족의 자립성을 희석시키고, 하나의 중국 안에 그들을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동아시아 삼국의 고대사는 근대 국민 국가의 성립 추이와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1900년대를 전후하여 일본의 팽창 정책 속에서 '만들어진' 학술 연구와 그 대립항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처럼 고대란 실제로 존재했던 사실(事實)이 아니라 현대가 주목하는 토양에서 비로소 자라나는 사실(史實)인 것이다. 현대의 시각을 과거에 투영하는 행위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과거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착각에 불과하다. 다만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만들어진 고대' 자체가 아니라 그 만듦의 의도와 해석의 본류이다. 고대사 발굴이 현재를 과거로 밀어 내는 것인가, 과거를 현재로 당겨 오는 것인가는 그 과정 전체를 또 하나의 역사로서 기록하는 성실함에 달려있다.







대체로 남북한이나 중국의 역사학계에서의 고대 일본상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근대 일본이 `현재`를 투영하여 과거 속에서 읽고 만들어 낸 일본상(자화상)의 구속을 받는다. 자기와의 관계 속에서 일본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가 할 때 근대 일본의 해석 도식이나 평가 기준이 전제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아시아 각국에서의 국가 이야기는 근대 일본의 태내에서 자라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3)



광개토왕비문은 적어도 고구려 멸망(668년) 후부터 1200여 년 동안 그와 같은 텍스트(동아시아 삼국 전체에 중요한 역사적 유물)로서 주목받은 적이 결코 없었으며, 그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에 `발견`되자마자 역사 저편에서 홀연히 소생했다는 것이다. 37)



박시형은 발해가 조선사에 편입되지 않으면 안 되는 근거로, 민족적으로도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하고, 더욱이 남(쪽)의 신라와 발해가 서로 `동족`으로 여기고 있었음을 강조하였다.
...
그러므로 이러한 점을 논거로 한 이상 이는 필연적으로 삼국 시대 이전에 한민족으로서의 동질성•동일성이 존재해 있었음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 자체의 논리적 요청에 의해 초래된 변화였다. 91-2)



역사적 세계로서의 동아시아 세계란 역사적인 검증 차원 이전에 1960년대의 정치적 현실에 입각한 지역 설정이었던 것이다. 중국•한국•베트남•일본 네 나라가 동아시아 세계를 구성하는 지역으로 명확하게 의식된 것은 그러한 시대 배경과도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159)



앤더슨에 따르면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 국가의 유적 건설자와 당대 식민지 원주민은 같은 종족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
유적은 복원되어 주변 시설과 함께 설치됨으로써 원주민에게 자신들이 장기간에 걸친 위업을 이룰 능력도 자치 능력도 결여되어 버렸음을 알리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223)



(시바 료타로의 논의에는) 법가의 나라 -> 문명 -> 합리적 -> 상품경제 -> 자유•개인 -> 근대 자본주의라는 흐름 속에서 근대 일본의 성공 이야기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에 대해 중국•한국은 유교의 나라 -> 문화 -> 불합리 -> 억상(抑商)정책 -> 가족주의 -> 대정체라는 대칭 항목으로서 묘사, 일본과는 근본적으로 구별하는 작업이 시도되고 있다. 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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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a35 2015-05-04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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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고대사인가-만들어진 고대, 이성시




1. 상상의 공동체, 상상의 고대사

저자의 주장은 머리말과 1부의 첫 논문 <고대사에 나타난 국민국가 이야기>에 함축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것은 동아시아 고대사인식은 근대 국민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욕망의 투사물이라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동아시아의 근대 국민국가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욕망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고대사를 바라보고 서술해왔다고 할 수 있다.

에릭 홉스봄이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에서 지적하듯이 옛부터 내려져온 것이라고 믿고 있던 전통과 의식들은 사실 근대 국민국가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창조된 것에 불과하다. 이 같은 논의를 따른다면 고대사 역시 근대 국민국가의 욕망이 투영되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실제로 古代史라는 개념 자체가 역사를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누는 근대적 역사관에서 나온 것이다. 유럽의 계몽주의자들은 그들이 극복해야 할 어제의 미신과 악습을 중세 봉건시대의 것으로 대상화 시켰으며, 새로이 구축해야 할 세계의 모습으로 중세 이전의 시대, 즉 고대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 중세의 마지막 시기, 즉 르네상스(Renaissance)가 ‘부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맑스가 공화주의자들의 습속에서 발견했듯이 “루터는 사도 바울로 분장하였으며, 프랑스 혁명은 로마 공화국과 제국의 장식을 번갈아가며 몸에 걸쳤다(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그리고 그들에게 소환된 바울과 로마는 실제 그 당시의 모습과는 상관없는 근대의 시선으로 재해석된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고대‘사’는 누가 어떻게 왜 만들어 냈을까. 저자인 이성시는 <만들어진 고대>를 통해 그 질문에 차분하게 답하고 있다. 저자의 답을 따라가 보자.



(사진: 베네딕트 엔더슨의 저작 "상상의 공동체"표지)

일 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20세기 초까지의 현실(청일전쟁, 러일전쟁)과 욕망(정한론, 제국주의)에 동아시아의 고대사를 투영시키며 하나의 거대 서사를 만들어갔다. 그에 비해 한국의 고대사 서술은 그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성립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즉 한국의 역사 연구는 일본을 의식하고 전재로 하며 형성되어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고대사 연구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흥미롭게도 일본 연구의 청중은 서양인들이었다. 일본사, 일본연구는 우선 서양을 모델로 자신들을 가공하여 그들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이었다. 결국 일본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서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양’과의 관계에서 고려되고 실체화된 것이다(p.8). 문제는 이렇게 가공된 고대사는 결국 서로에 대한 상호 이해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저자는 고대사에 투영된 국민국가의 욕망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이를 해체시켜 놓는다. <고대사에 나타난 국민국가 이야기>가 원론에 해당된다면 그 이후의 논문들은 같은 문제의식으로 파해쳐본 동아시아 고대사의 모습을 다룬 각론이다. 트릭은 모두 파악되었다. 국민국가의 거푸집 속에서 창출된 상상의 공동체인 내셔널 히스토리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제 범죄의 재구성만이 남았을 뿐이다.


2. 광개토왕비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1 부에 실린 <표상으로서의 광개토왕비문>은 대단히 흥미로우며 논쟁적이다. 1000년이 넘도록 발견되지 못하고 방치되어온 광개토왕비문은 발견되자마자 근대로 소환되었다. 고구려의 텍스트가 근대적으로 전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성시는 오늘날 광개토대왕비라는 텍스트가 어떻게 전유되고 있는지를 밝히고 1000년전 광개토대왕비가 어떤 형태로 만들어진 텍스트였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좀 더 살펴보자. 실제로 광개토대왕비는 역사적 기록을 위해 만들어진 비석이 아니다. 저자에 따르면 광개토 대왕비는 고구려의 지배귀족들이 수묘인(왕릉 주변에 살면서 관리 일을 하는 사람들)들을 함부로 데려가 매매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광개토대왕비는 지금 비석 주위에 살고 있는 수묘인들이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를 밝히기 위해 광개토대왕의 관련된 무훈을 중심으로 서술된 것이다. 즉 특정 지역의 노예들을 어디서 데려온 것인지 설명하는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광개토대왕의 무훈은 얼마든지 극적 효과를 위해 과장될 수 있으며, 민족의식 같은 것은 생기지도 않았으므로 신라를 東夷라 낮추고 왜를 동이(신라)의 속민을 괴롭히는 트릭스터(trickster)로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광개토대왕비가 원래 어떤 의도로 만들어진 텍스트였는지는 내셔널 히스토리에서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다. 광개토대왕비가 가지는 풍부하고 다채로운 모습들은 거세되고 오로지 이것이 현존하는 동아시아의 정치질서에맞추어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즉 광개토대왕비를 둘러싼 무수한 논란과 연구는 1775 글자 중에 32자에 맞추어졌다.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破百殘□□新羅以爲臣民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이성시의 대답은 광개토대왕비로 우리가 궁금해 하는 당시의 동아시아 질서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다소 허무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기실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 지배층 내부를 향한 텍스트였기에 우리가 이를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임나일본부의 실제가 아닌 귀족연합정권이었던 고구려 지배층의 복잡한 속내일 것이다.

이 같은 저자의 시각은 기존의 광개토대왕비를 둘러싼 논쟁은 물론, 여타의 동아시아 고대사논쟁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키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주류 사학계에서는 이성시의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쉽게도 나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한 주류 국사학계의 내실 있는 비판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는 이성시 뿐만 아니라 2000년대 이후 민족주의와 관련한 논쟁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민족주의의 허구를 지적하며 제기된 비판에 민족주의자들의 비판은 민족의 실제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민족은 실천적으로 유효한 가치, 라는 소극적 자기변명에 그칠 뿐이다.


3. 발해는 누구의 나라인가

뒤이어 2부에서는 발해사를 중심으로 근대 국민국가의 열망이 어떻게 역사연구에 투영되어있는지를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다. 러일전쟁이후 만주에 일본은 만주에 주목하게 된다. 일본의 관심은 만주국을 건설하면서 이 지역의 독립국가였던 발해에 눈을 돌려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발 해에 대한 관심은 순수하게 학문적인 것이 아니었다. 발해를 둘러싼 국민국가들은 저마다의 국사에 발해를 끼워맞추기 시작했다. 일본은 만주국으로, 구소련은 스탈린주의 민족론에, 중국은 자신들의 지방정권으로, 한국은 신라와 동족의식을 가진 북조로 의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발해라는 고대국가의 독자적 성격을 무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저자는 당시 발해의 민족성을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즉 근대적 개념인 민족을 고대로 투여시킬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발해는 고구려 귀족들로 이루어진 지배층와 말갈인 피지배층으로 이루어진 이원화된 사회가 아니라 만주-연해주 지역에서 다양한 부족들이 서로 연합한 국가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발해를 남북국으로 묶어서 이야기 하기 위해 굳이 고구려와 말갈의 관계를 단순한 지배 피지배의 관계로 서술하는 종래의 내셔널 히스토리의 서사에는 근원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4. 일본사의 확장 : 동아시아 세계론

3 부 이하의 글들은 모두 일본의 고대사 서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그중 <동아시아 문화권의 형성>에서는 일본의 사학자인 니시지마 사다오가 제창한 동아시아 문화권을 해부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일본사학계는 한자를 매개로 중국으로부터 유교, 율령, 漢譯佛敎를 수용한 지역을 동아시아 문화권이라고 불러왔다. 중국을 포함한 한반도, 일본열도, 인도차이나 반도의 베트남 지역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동아시아 문화권을 검토하면서 각 지역이 중국의 한자와 그에 기반한 율령, 불교등이 어떻게 수용되어갔는지를 추적하여 이를 비판한다. 우선 한자는 중국의 것 그대로 수용된 것이 아니었다. 요컨대 신라의 경우 고구려와의 관계를 통해 한자를 수용했다. 즉 중국과의 정치적 관계에 따른 것이 아니었으며 실제로 중국과 교류하게 되는 것도 백제나 고구려에 비해 매우 늦었다. 한자의 용법도 일본처럼 훈독(訓讀)등을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한반도에서는 고려시대까지 훈독법이 사용되었음을 입증하는 자료들이 발견되고 있으며, 중국의 동북지방인 거란과 여진에서도 훈독을 했음이 밝혀졌다고 한다. 동아시아의 각나라들에게 한자는 ‘그다지 연속성이 없었던 중국과의 외교관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변나라들과의 끊임없는 중층적 교류’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는 거란이나 티벳등에서한자의 전면수용을 포기하고 독자적인 문자를 개발한 것에서도 드러나듯이, 중국문화의 수용은 상당히 유동적인 것이었다.

또한 니시지마의 동아시아 세계론에서는 한자, 유교, 불교, 율령등 중국문화가 주변국으로 파급되는데에 중국의 조공-책봉체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파악한다. 그러나 실제로 고대국가들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세계에 편입되었다기 보다는 각 지역의 소체계를 중심으로 움직였다고 볼 수 있다.



(사진: 일본의 불교와 율령체제를 확립시켰다고 여겨지는 쇼토쿠 태자)

동 아시아 세계론은 일본사 연구 속에서 동아시아를 세계사속의 일관된 흐름으로 파악하고 일본사를 그 안에 자리매김하고 있다. 즉 이는 근대 국가인 일본의 역사적 형성을 추적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이지 동아시아 그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탐구과정은 아니었다. 일본을 제외한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서 동아시아 세계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이는 대동아공영권의 의심이 묻어나는 국가 이데올로기의 연장으로 읽히는 것이다.


5. 누구를 위한 고대사인가

고대사에 대한 저자의 관점은 내셔널 히스토리에 대한 일관된 비판이라 할 수 있다. 민족주의와 그로 인한 역사인식의 왜곡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에 실린 저자의 논문 <조선왕조의 상징공간과 박물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다시 정리하자면 근대 국가라는 프리즘을 통해 왜곡된 역사인식을 걷어내고 그 다채로운 결들을 새로이 주목하자는 것이다. 물론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제기 되어왔다. 그러나 이성시의 작업을 주목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의 주된 작업이 고대사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게의 민족주의 비판은 근대 형성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이성시는 고대사에 대한 비판적 서술을 통해 비판적 역사인식의 확장을 가능케 하고 있다.

이성시의 비판적 고대사 읽기는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라는 키스 젠킨스(Keith Jenkins)의 도발적 문제제기를 떠오르게 한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누군가에 필요에 의해 구성된 역사담론에 불과하다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주장은 일면 타당하다 할 수 있다. 난 여기서 역사적 사실의 존재 유무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 문제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역사담론 비판에 치중한 나머지 대안적 역사서술에 대한 가능성마저 차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에 따르면 이성시의 고대사 연구 또한 대안적 고대사 서술이 아닌 이성시의 내면독백에 불과할 것이다.



(사진: 영국의 포스트모던 역사학자 키스 젠킨스)

근 대의 산물인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이 근대에 대한 전면 부정으로 이어질 필요는 없다. 실제로 이성시의 역사서술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근대적’, '합리적' 정합성에 기초하고 있다. 역사에 문학적 상상력을 강조했던 것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이었다. 나는 이 점에서 포스트모던 역사학이 민족주의라는 프리즘을 걷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해 의심스럽다. 몇 해전 크게 논란이 되었던 일본 ‘새역모’의 교과서가 극우 민족주의의 틀은 유지한 채 포스트모더니즘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새역모의 교과서는 포스트 모더니즘이 비판해온 민족주의에 기반해 있으므로 그들이 만든 교과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아니다, 라는 선언적 수사로 그칠 문제가 아니다. 역사학이 객관적 사실을 거부하는 순간 상상과 선동의 나래로 빠져 들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학이 정치적 아지테이션으로 전락하는 것을 우려한다면 그것이 내셔널 히스토리든, 포스트 모더니즘이든 경계할 필요가 있다. 민족주의와 그것이 만들어낸 내셔널 히스토리를 비판하는 작업이 굳이 포스트 모더니즘을 전면적으로 수용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담담하면서도 예리한 문체, 풍부한 논거를 제시하는 이성시의 연구를 주목할 수 밖에 없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P.S: 이 책은 원래 일본어로 쓰여진 저자의 논문을 모은 것이다. 역자의 번역은 대단히 깔끔하고 매끄럽다. 역자에 대한 표기가 없었다면 번역본이라는 것을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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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더기 2009-07-21 공감(2)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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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결국 씌어진 것이다??


저자는 재일교포 2세로서 한국인과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듯하다.(어쩌면 둘 다를 거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저자의 입장이 이 책을 쓰는 데에 가장 큰 밑거름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마치 '오리엔탈리즘'이라는 획기적인 저술의 바탕으로 아랍계 서구인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지닌 에드워드 사이드라는 저자가 있었듯이.

이 글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사'가 얼마만큼 근대적인 시각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를 폭로하고 있다. 그러나 서구의 포스트담론의 역사인식과 같이 사실 자체를, 객관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저자는 고대사가 국민국가체제에 소속감을 지니고 있는 근대인들의 시각에 의해 '재구성'되어있음을 밝히고 있다.

발해사의 귀속 문제의 경우, 과연 당시의 발해인들이 현재와 같은 (근대의 산물인) 민족주의적 귀속의식을 지녔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현재의 발해사 귀속문제에 대한 (근대적)논쟁들에 대한 회의를 표시한다. 또한 일제시기의 일본인 사학자들에 의한 조선사 연구를 일본의 독자적인 '오리엔탈리즘'으로 파악한 점 등에서 저자의 예리한 통찰력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이 글은 상당히 어려운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글 자체가 학술논문임에도 불구하고 '재미있다'. 그것은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뛰어난 서술능력에 더불어 번역자의 세심한 수고가 더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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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2-01-2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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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논리의 고대 투사


재일교포 사학자인 이성시가 지은 이 책은 근대의 사고를 고대에 투영함으로써 근대의 논리를 정당화 하는 역사학의 담론을 분삭하고 있다. 근대 사고의 고대 투사라는 논리는 광개토 대왕비나 발해사 연구의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그리고 설득력 있게 드러난다. 특히 그러한 논리가 근대의 국민국가와 천황제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을 뒷받침하고 있음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특히 니시지마 사다오의 문명권 논리는 조동일의 문명권 논의의 선구로써 책봉제에 의한 동아시아 문명권이 19세기 유럽 문명권의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붕괴되는 과정을 체게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데, 이를 비판적으로 소개하는 '동아시아 문명권의 형성'이라는 논문은 흥미롭다. 니시지마는 동아시아 문명권이 19세기에 서구와 접촉함으로써 정치질서로서의 동아시아에서 경제적 교역권으로서의 동아시아로 재편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근대의 민족, 국가 등의 표상들을 상상하는 논리가 고대사의 당대적 변용 혹은 구성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저자의 논리는 근대 상상의 논리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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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e0525 2003-10-04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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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고대 by 이성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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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까 2012-09-28



이성시, <만들어진 고대>, 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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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스 2008-03-28



고대사는 현대 정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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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비출판사 2008-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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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론




프레시안에 새롭게 연재되는 글이다. 관심이 가는 주제다.
[동아시아를 묻다·1] 동아시아에 내재하기 위하여



동아시아론, 버블기의 끝자락

제가 먼저 시작하겠습니다.

동아시아. 외래어였다는 흔적조차 희미해진 말 아시아(Asia)에 '동(東)'이라는 방위가 달린 이 말은 담론의 대상이자 통찰의 주제로 빈번이 회자되었습니다.

동아시아론. 동아시아에 관한 담론은 탈냉전, 세계화, 지역화, 탈국경화 등의 추세와 맞물려 부상했으며 역내 교류의 증가, 북핵 위기, 중국의 부상, 일본 우익의 준동, 한류의 확산에 이르기까지 현실 사건과 반응하며 현실감을 더해 학술 쟁점 이상의 담론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학술 영역에서라면 동아시아론은 사상사, 문화 연구로부터 지역학에 이르는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전 방위로 논의되며 인문학에서는 주체 구성지평으로, 사회과학에서는 긴박한 분석 범주로서 조명을 받았습니다. 더욱이 많은 인적·물적 자원이 투입되어 동아시아론은 인문·사회과학의 위기에서 벗어나는 출구라는 인상마저 풍겼습니다. 바야흐로 동아시아론은 풍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동아시아론은 철지난 담론이 될지 모릅니다. 이미 내리막길로 들어섰다는 인상입니다. 여전히 여러 논의가 쏟아져 나오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리막길 위의 자전거 페달이 공회전하듯 담론은 지면(현실)과 무관하게, 그간 쏟아져 나온 동아시아론의 관성으로 인해 자기운동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동아시아 사상사를 공부합니다. 그러나 동아시아론의 성장세가 멈췄다고 아쉽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동아시아론이 외형적 성장을 거듭할 때도 그 번영과 사상적 공백 사이의 낙차가 제게는 눈에 밟혔습니다.

동아시아론은 풍년처럼 보였지만 실은 버블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정권이 바뀌고 동아시아론에 관한 정책적 수요가 줄고, 관련 사업지원이 끊기자 동아시아론은 거품이 빠지듯 쇠락하는 풍경입니다. 역시 정책적 지원이 줄었다는 것은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책적 지원 속에서 웃자란 동아시아론은 바로이유로 '동아시아'에 관한 담론임에도 '내수용' 담론으로 성장해왔다는 인상이 짙습니다.

한국의 사상계는 어느 사상계보다 '동아시아'를 자주 입에 담지만, 몇몇 값진 시도들을 제외하고는 타국의 사상계와 공유할 만한 동아시아론을 생산해냈는지는 의문입니다. 한국의 조건으로부터 긴장어린 사상 자원을 빚어내 다른 지역과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라는 모호한 지평에 자신의 기대를 투사하는 형국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동아시아의 모호함, 동아시아론의 애매함

동아시아는 분명 모호한 말입니다. '아시아'의 어감에 배인 모호함은 '동'아시아로 좁힌다고 그다지 희석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개념은 모호함을 대가로 지불하는 대신 풍부한 환기 능력을 얻습니다. '동아시아'는 그리하여 화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말은 사회 현실의 다양한 면모에 새로 빛을 비추고, 기존의 학문적 대상과 범주들은 그 말 안에서 자명함을 잃거나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동아시아라는 말은 주체/타자, 근대/탈(반)근대, 국가/지역, 이론/역사 어느 개념과도 복잡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런데 동아시아라는 말을 통해 환기되는 문제의식들은 멀리서 넉넉하게 표현하면 다양하다고 하겠으나, 바짝 다가가서 내실을 들여다보면 여러 모순, 불균형한 갈등이 엿보입니다. 동아시아는 하나의 문제의식이 전개되는 전제로 오기도 하며, 문제 상황을 갈무리하는 자리에 오기도 했습니다. 문화 연구에서는 현실의 면모를 새롭게 들추는 분석 틀로 쓰이기도 하며, 특히 마르크스주의가 힘을 잃으면서 만들어진 공백을 메우며 이념의 위상에 서기도 했습니다. 동아시아라는 말은 직관과 추상의 영역을 오가면서 다양하게 회자되었습니다.

그것은 동아시아가 지리적 개념으로 안착하지 않고 유동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유동적으로 사용된 까닭은 '동아시아'를 문제의식으로 끌어들이고자 했던 시대 배경이 복잡했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론은 어떤 배경에서 왜 요청되었는지에 따라 의미가 다양하게 갈라졌습니다. 앞서 탈냉전, 세계화, 지역화, 탈국경화 등 동아시아론이 부상하게 된 배경들을 늘어놓았는데, 그런 시대 조건들은 동아시아론이 성장해온 토양이자, 동아시아론을 복잡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동아시아라는 말은 모호성을 씻어낼 수 없었고, 그 모호성으로 말미암아 동아시아론은 생산성을 띠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추상화되기도 했습니다. '동아시아'는 때로 자국을 지역의 수준에서 확대 재생산하는 지평으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국민 국가 단위의 자국 중심주의를 극복하는 장으로 모색되기도 했습니다. '동아시아'는 때로 지역 공동체설립경제적 근대화를 기도할 때 조명되기도 하며, 때로는 서구적 근대에 대한 '탈근대적 대안'으로 모색되거나 자본의 세계화에 맞선 동학을 지닌 지역으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덧붙여 문명론으로 경사되기도 했죠.

그러나 그 어느 경우에도 '왜 동아시아여야 하는가'는 충분히 해명되지 않았습니다. '동아시아'를 앞으로의 비전과 결부시켜야 하는 이유들은 쏟아져 나와 사상계를 넘어 정부 기구와 민간 단체에 이르기까지 '동아시아'에 관한 상이한 접근들이 논의의 지평을 넓혀 갔지만, '왜 동아시아여야 하는가'라는 내적 원리는 밝혀지지 않은 채 동아시아라는 말의 모호함에 기대어 동아시아론은 애매하게 확산되었다는 인상입니다.

지금껏 다뤄오던 연구 주제나 기획을 그대로 '동아시아'라는 애매한 담론 장으로 옮겨도 성립하는 것처럼 보이고, '동아시아'라는 말이 붙으면 어떤 현실성마저 띠는 듯한 착시 현상 속에서 '동아시아'는 사고의 지평이라기보다 그럴듯한 수사로 전락해갔습니다. 그리하여 만연한 동아시아론은 구체적 현실에 직면하면 담론의 물질성이 휘발되고 추상성, 관념성을 노출하곤 했습니다.

동아시아가 환기한 것

저는 동아시아론의 쇠락이 안타깝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쇠락하고 있는 것이 실상이라면 동아시아론의 유산화 작업에 착수하고 싶습니다. 동아시아론 자체에 가치가 있어서라기보다 동아시아론을 통해 환기된 몇몇 문제의식들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첫째, 동아시아론은 서구 중심주의와 학문의 식민성을 문제로 부각시켰습니다. 사실 '동아시아(East Asia)'는 '극동(Far East)'에서 나온 말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국무부 내에는 '극동 업무(Far Eastern Affairs)'를 대신해 '동아시아 업무(East Asian Affairs)'라는 명칭을 단 부처가 등장했고, 아시아는 전후 미국의 정치적·군사적 개입의 필요에 따라 '동아시아(East Asia)', '동남아시아(South-East Asia)', '서남아시아(South-West Asia)'로 구획되었습니다. 즉, '동아시아'는 미국 지역 정책의 필요성에서 등장한 말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동아시아'는 미국 주도의 지역학에서 한 가지 하위 영역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사상계에서 '동아시아'는 다른 맥락으로 전용되었습니다. 동아시아론의 포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는 최원식의 "탈냉전 시대와 동아시아적 시각의 모색"은 한국 사상사의 흐름 안에 있는 '변방적 경직성'을 질타하며 시작합니다. 교조의 권위에 매이지 않고 자기가 발 딛고 있는 현실과의 변증법적 관여를 통해 창조적 비약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백영서는 "지적 실험으로서의 동아시아"를 제기하는 데 이릅니다. 그밖에도 '동아시아'를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을 성찰하는 지적 지평으로 삼으려는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런 시도 안에 내재된 역오리엔탈리즘이 문제로 제기되기도 했지만, 아무튼 동아시아론을 매개해 서구 중심주의, 학문의 식민성 문제는 더욱 천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이 지역에서 사상적 연대를 도모하기 위해서도 동아시아 논의는 필요합니다. 이 지역에는 '동아시아 공동의 번영'이라는 수사로는 감출 수 없는 적대 관계가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분단, 과거사 문제, 양안 문제, 영토 분쟁, 경제 패권 등의 문제가 상존하여 한국과 북한, 중국과 타이완, 한국과 일본, 중국과 일본, 북한과 일본 사이에는 어지러운 갈등이 잠재해 있습니다. 긴장 관계가 어려 있는 각국 간의 역사인식의 충돌, 현실적 규모의 차이에서 빚어지는 지역 인식과 세계 인식의 간극은 동아시아의 문제 상황에서 좀처럼 가시화되지 않지만, 뼈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동아시아를 지리적 실체가 아닌 사유의 지평으로 삼으려는 시도들은 지난 20년 간 이 지역의 문제들을 들춰냈으며, 동시에 자국인 대 외국인, 내부 대 외부처럼 정합적으로 짜인 패러다임에 담겨지지 않는 사고를 산출해냈습니다. 앞으로도 현실상의 갈등 가운데 사상적 연대는 더욱 절실할 것입니다. 다만 사상적 연대를 도모할 때 국가 단위의 표상이 동아시아에서 얼마나 적절한지, 그리고 이 지역 내에 존재하는 지리적·역사적 규모의 비대칭성을 어떻게 사고할 것인지는 관건이 될 것입니다.

셋째, 동아시아론은 한국 사상계 내부의 소통을 가능케 했습니다. 한국의 사상계에서 공동 언어의 소실 현상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동아시아론은 한국 사상계의 다양한 차원에서 논점을 생산하고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물론 그로 인해 동아시아론의 애매함이 가중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한국의 사상계에서 동아시아론이 달아올랐던 까닭이 한국의 장소성에 관한 재인식과 깊이 결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환기해두고 싶습니다.

역시 여기서 창비 논자의 동아시아론은 더욱 검토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논의는 건조한 동아시아 공동체론으로 경사되지 않고, 한국의 장소성에 근거해 한국의 동아시아론에 오리지널리티를 주입하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을 냉전 체제의 결절 지대로 인식합니다. 또한 복합 국가론은 분단 체제와 세계 체제의 고리로서 동아시아를 사고한다는 문제의식으로 표출되었습니다.

물론 이를 둘러싸고 여러 논자들의 논의가 거듭되었습니다. 무척 값진 충돌의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을 거쳐 동아시아론이 공론이 되지 않고, 한국의 상황에 근거하되 타국의 사상계와 공유할 만한 사상적 자원으로 연마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아시아에 내재하기 위하여

결국 저는 '내재하는 동아시아'를 함께 탐색해보고 싶습니다. 즉 그저 지역 범주 혹은 지리적 근접성을 뜻하지 않는다면 동아시아가 과연 무엇일 수 있는지를 공동으로 모색해보고 싶습니다. 지금껏 제가 적은 내용에서도 '왜 동아시아여야 하는가'라는 내적 논리는 여전히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그 지점을 공동의 토의 주제로 다듬어나가고 싶습니다.

아직은 동아시아론을 장사지낼 때가 아닙니다. 후원 담론의 지위를 상실하고 거품이 꺼지는 지금이야말로 동아시아론은 사상적으로 유의미할 수 있는지, 자립할 수 있는지가 진정으로 추궁되어야 할 시기입니다.







/윤여일 수유너머R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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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우스 2011-09-15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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