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30

대학을 떠나며 / 조형근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모바일

[세상읽기] 대학을 떠나며 / 조형근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모바일: 조형근 ㅣ 사회학자 11월부터 무직자가 됐다. 1년 남짓 한 정규직 교수 노릇을 그만두었다. 대입 때부터 따지면 만 30년 훌...


독서와 사색이 대학교수에게 사치라니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한국 사회 자체의 모 순들을 논외로 한다면 지식생산체제로서 대학의 의미와 기능이 근본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근대 19세기의 대학은 구체제의 권위주의에 맞서던 유럽 부르주아의 거 점이었다. 대학은 제 머리로 사유하는 비판적 교양인의 양성을 목표로 삼았으니 진 리탐구의 상아탑이었다. 실용적이지 않되 자유로운 엘리트 지식인을 길렀다. 사회학 자 만하임이 ‘자유롭게 떠도는 지식인’에 주목하고, 마르크스주의 사상가 그람시가 ‘유기적 지식인’을 요청한 배경이다. 우리가 저 옛날 대학에서 목도하던 지사형 지식 인이 출현한 토양이기도 하다. 이제 이런 유형의 지식인은 대학에서 경멸받는다. 

 2차대전기 미국에서 성장하고 세계로 확산된 연구중심대학-산학협력모델에서 대학 은 실용지식의 생산공장이다. 대학의 존재의미는 고도 자본주의에 필요한 유용한 지식의 생산과 기업의 직무훈련비용 절감에 있다. 20세기 말 한국에서 시작된 대학 개혁의 목표이기도 하다.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유가 아니라 ‘국민의 삶’(사실은 자 본)에 직접 기여하는 지식의 생산이 중요해졌다. 모든 것이 엄정화되었다. 연구재단 의 기준에 맞는 논문과 학술지만 업적으로 인정받게 됐고, 정부와 대기업 프로젝트 의 수주로 연구자의 능력이 판가름나게 되었다. 정부와 언론은 평가를 통해 대학을 줄 세웠다. 

자유로운 비판적 연구모임들은 제도권 학회로 변신했고, 대중을 향해 말 을 걸던 독립 학술지들은 필자와 심사자만 보는 연구재단 등재지로 변신했다. 혹은 동의해서, 혹은 살아남으려고 상당수 ‘교수지식인’이 이 체제에 순응했다. 한때 한국에서 대학은 고고한 희망의 사다리였다. 거기 가서 엘리트가 되었다.

지금 대학은 누구나 가는 곳이 된 대신 공고한 서열과 세계 최고 수준의 등록금으로 민중 에게 고통을 안기고 있다. 엘리트주의적 상아탑 모델이 답은 아니다. 나는 떠나는 쪽 을 선택했다. 어떻게든 해볼 요량이다. 남아서 치열하게 고민하는 분들도 어떻게든 해보셨으면 한다. ‘교수지식인’은 이미 민중에게 외면받고 있다. 어떻게든 하지 않는 다면, 감히 말하건대 우리는 퇴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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