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5

한국 사회구조 변동과 청년 주체의 위기 '최형익

한국 사회구조 변동과 청년 주체의 위기 : 네이버 블로그

한국 사회구조 변동과 청년 주체의 위기
킨키나투스 '최형익
2024 11 16 

한국 사회구조 변동과 청년 주체의 위기.

Ⅰ. 들어가며.

2004년 중순 쯤으로 기억한다. 한국영화가 연달아 천만 관객을 넘어서 스크
린 50% 점유율을 가뿐히 통과하더니, 세계에서 처음으로 ‘반지의 제왕’과 맞
붙어 흥행에서 이겼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21 사태 이후 김일성 전 북한 주
석 암살을 위해 급조된 북파공작원들의 비극을 그린 ‘실미도’ 라는 영화얘기였
다.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태극기 휘날리며’라는 영화 역시 헐리우드 대작에
맞먹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한국영화 흥행돌풍의 기세를 계속 이어나갈 것
이라는 희망섞인 관측이 언론을 타고 속속 전해졌다.
당시 이들 영화들이 필자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는 영화와 현실에서 교차되어
등장하고 있는 청년주체의 동시성과 이질성의 문제때문이었다. 앞서 소개한
영화들은 장르로 일별 해 볼 때 ‘전쟁시대극’으로 한국사회의 가슴 아픈 현대
사를 조명하고 있다. 여기서 등장인물로 대변된 중심주체들은 당대의 전쟁기
계인 청년들이었다. ‘실미도’는 1960년대말~1970년대 초 베트남 전쟁 파병
시점과 때를 같이하며, ‘태극기 휘날리며’는 1950년대 한국전쟁에 참전한 두
형제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말죽거리 잔혹사’라는 영화는 또 어떤가? 지식노동자 대량생산시대를 앞둔
1980년대 전야, 새로운 청년주체 태동의 내밀한 억압을 다루고 있지않은
가? 여기서 우리는 동시대의 사회구조가 청년들을 특정 사회정치 주체로 호
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플라톤의 악명높은 4개의 ‘신체-사
회계급’ 분류 이래 국가권력과 자본 지배양식의 내밀한 비밀을 담고 있는 ‘사
회적 노동분업의 기제’가 자리 잡고 있다.
마르크스가 어째서 일관되게 사회적 노동분업 폐지를 그토록 사회적 해방의
이상으로 목 놓아 외쳤는지 이해할 만도 하다. 인간주체는 한갓 사회, 경제구
조의 담지자로 호명될 뿐이다 라는 구조주의적 용법에 조건부 찬성을 표하고
싶다. 단, 사회적 노동분업이 폐지되기 전까지라는 단서를 달아서 말이다. 따
라서 우리는 계급이 존재하는, 구체적으로 자본과 각양각색의 정치사회 권력
이 우리의 신체와 사고를 포획하는 현대 속에서 자본과 국가 혹은 시민사회
가 기입해 놓은 프로그램 내지 코드화 양식 속에서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
지 그 사이클을 따라 삶을 영위해 나갈 수밖에 없는, 곧 ‘사회적 불구’로 살아
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인 사이보그 ‘기계’인 그러
한 주체화 양식 말이다.
‘네 일만 열심히 하라’는 게 자본의 주문이고 보면, 사회적 노동분업과 자유가
양립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자유가 무엇인지, 해방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당신은 알고 있는가? 안다면, 제발 좀 말 해줬으면 좋으련만. 허나, 안다고 해
결될 문제만도 아닌 것 같다. 노예는 가끔 자본과 권력의 열려진 틈새로 전해
오는 ‘자유의 바람’, 그 맛을 느낀다. 그리고 아주 가끔 노예는 저항기계로 돌
변한다. 물론 슬며시 비추어진 균열의 틈새를 자본과 권력이 재빨리 봉합하기
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주체의 위기와 사회전복의 기회는 동전의 양면과
도 같다.
‘전쟁기계’로 살다간 앞 시대의 청년주체들을 현재의 청년들은 문화적으로 소
비하고 있다. 좋게 말해서, 앞 시대의 정치, 사회, 저항의 숨결들을 문화양식
을 통해 재전유하고 있다고나 할까? 따라서 현시대에 문화는 정치이고, 그런
한에서 현재의 청년들을 ‘문화 혹은 소비기계’라고 할 수 있다. 단, 노동의 위
기라는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 말이다. 하여, 현재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그것도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들을 강타하고 있는 대규모 청년실업과 고도소
비로부터 파생되는 고율의 신용카드 연체는 긴밀한 함수관계에 놓여있다.
이렇고 보면, 자본과 국가권력이 이제 현대라는 역사적 자장 속에서 펼쳐놓
은 시대극이 마감할 때가 임박한 것 같기도 하다. 노동은 피지배계급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유일한 생의 계기이자 삶의 생성활동이었다. 노동기계로서
의 주체적 삶을 통해 우리의 일상은 그나마 유지되며, 사회적 관계가 교직되
고, 문화와 저항이 한 데 어우러져 창출될 수 있었다. 반면, 거꾸로 그것은 노
예로서의 삶을 강요당하는 피지배계급 주체양식의 마지노선이었으며, 따라
서 지배가 창출되는 교리였다.
자본은 이렇게 말한다. ‘저항도 좋고, 정치도 좋다. 단, 그 무엇이든 노동을 넘
어서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자본이 자신의 노예들에게 노동을 포기할 것을
강요한다면, 자본 그 자체로 위기를 맞게 된다. 노동가치론이라는 자본주의
헌법 제1조가 기각되는 상황은 더 이상 자본주의일 수 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이전 사회와 부르주아 사회를 종별 짓는 중요한 질적 차이로 앞
사회가 노예들의 노동으로 유지된다면, 부르주아 사회는 거꾸로 사회가 노예
를 먹여 살려야 할 것이라고 일갈한 적이 있다. 따라서 사회는 노동 말고 아니
정확히 그것을 포함하여 다른 출구를 찾도록 강제되며, 전복의 시간대로 욕동
(欲動)해 들어가는 가운데, 거대한 전환이 임박한 것으로 여겨지기에 이른
다. 그런데 과연 출구는 있기나 한 걸까? 새로운 삶과 시대를 조율하는 자유
와 해방의 원리는 어떤 것일까? 그러한 삶의 주체화 양식은 어떤 방식으로 전
개되는 것일까? 마르크스를 정점으로 하는 해방의 정치사회이론이 풀어야
할 과제가 눈덩이처럼 쌓여가고 있는 인상이다.

Ⅱ. 근대적 청년주체의 탄생: 전쟁기계, 노동기계

청년을 개념규정하기란 그리 쉽지 않은 노릇이다. 단순나이로만 한다면, 10
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까지를 대략 청년세대로 규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
각하지만, 1989년 임수경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그녀를 맞이하고 접대한 북
한의 청년정치조직인 사로청, 곧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의장이 40대 초반이
었던 사실을 상기해 보면, 단순한 나이 규정도 확실해 보이지는 않는다. 청년
이란 용어를 정치, 사회적 또는 역사적 맥락에서 위치 지워놓고 본다면 매우
다른 이질적 형태를 띠게 됨을 알 수 있다. 청년이란 단순히 연령, 세대 규정
이라기보다 사회구성적 개념이다. 따라서 동시대의 사회주체화 양식과 떼어
놓고서는 그 구체적 규정을 확보할 수 없다.
근대는 민족 또는 국민국가의 시대다. 특정 영토를 경계로 하면서, 가상적 인
민주권을 핵심적 원리로 독립적 형태의 국가 및 사회를 조직하지 못하고는 어
떤 주체건 제대로 생존을 영위할 수 없는 게 일반 현실이다. 따라서 당대의 청
년들은 자신들이 국민으로 귀속되어있는 특정 근대국민국가가 발전하는 궤
적을 따라 독특한 주체화 양식을 경험한다. 한마디로, 독자화된 국민국가와
민족자본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양상에 따라, 그리고 그것들의 주체호명 방식
에 따라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전개과정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세계2차
대전의 여파로 탄생한 신생 국가 한국이 직면한 최대문제는 안보였다. 여기
에 남북분단이라는 정치적 위기를 종결짓기 위해 발생한 한국전쟁은 모든 국
민을 국가의 생존을 본능적으로 자신의 존망과 직결짓는 안보주체로 돌변하
게 하였다. 전쟁의 정치사회학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청년들은 전선에서 ‘조
국을 위해’ 무조건 싸워야 만하는 전쟁기계로 호명되었다. 다시 말해서, 전쟁
기계는 1950년대 청년들의 삶을 좌우한 정언명령이었던 셈이다.

전쟁기계라는 주체 호명기제가 얼마나 강력하고 저항하기 어려웠나 하는 점
은 해방 당시 20살 청년이었으며, 대표적인 로맨티스트 내지 리버럴리스트
시인으로 ‘목마와 숙녀’로 잘 알려진 박인환이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 쓴 ‘신
호탄’이라는 시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적을 쏘자
침략자 공산군을 사격하라
몸뚱어리가 벌집처럼 터지고
뻘건 피로 화할 때까지
자장가를 불러주신 어머니
어머니, 나를 중심으로 한 주변에
기총(機銃)을 소사(掃射)하시오.
적은 나를 둘러쐈소.
-박인환의 시, <신호탄>의 일부

한국전쟁은 남북한 합쳐 한반도 전체를 지구상에서 무력이 가장 포화된, 고밀
도의 군사적 격전장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때부터 모든 청년들은 국민적 주체
로 인정받기 위해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활력 있고 잠재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삶의 시간을 국가방위의 이름아래 저당잡히게 되었다. 전쟁기계로서의
청년주체화 양식은 한국전쟁이 종결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징병제의 형태
로 계속 유지되고 있으며, 여기에 조금이라도 반론을 제기하다가는 국가권력
의 무자비한 징벌을 면치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전쟁기계로서의 청년 주체의 호명방식은 근대 교육이라는 훈육장치
와 함께 노동가치론을 표상하는 시장화폐경제가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
하자마자 금새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4.19 혁명은 바로 그러한 주체 전환의
지연 내지 지체과정에서 폭발한 청년혁명이라는 전복적 성격을 내장하였다.
하지만, 이내 5.16 쿠데타라는 ‘수동혁명’의 형태로 위기는 봉합되었다. 전복
적 청년주체들을 체제 내로 흡수하기 위해 시도된 전략기제가 바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상징되는 산업화 전략이었다. 산업화란 경제발전을 통해 청
년들의 전복적 역능을 자본으로 흡수하는 노동주체로의 재배치 전략으로써,
이를 통해 청년들은 조국근대화의 기수, 산업역군을 너머 노동전사로 돌변하
였다.
국가는 한국사회에서 처음 푸코가 말하는 식의 그 자체 ‘산출하는 권력’으로
등장하였다. ‘산아제한’이라는 미명아래 개인의 출산력조차 장악한 국가는 근
대적 훈육장치를 통해 배출된 노동력을 사회적 노동분업의 흐름에 따라 재배
치하고, 이들을 노동기계로 호명하는 데 다른 어떤 근대국가보다 성공적이었
다.
한국자본의 눈부신, 가히 경이적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부의 축적과 자
본의 축적과정 배후에는 이처럼 전복주체로서의 청년인민들의 힘을 포획하
여 노동기계로 훈육한 뒤, 공장에 배치하는 데 완벽한 억압을 사용할 수 있었
던 국가권력의 힘이 작동하였다는 점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바로
제도권 정치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한국산업화의 엔진으로 회자돼 온 이른바
‘발전국가론’의 내밀한 핵심이다.
노동기계로서의 청년주체는 노마드, 곧 유목적 노동기계화를 통해 최절정에
도달한다. 미국 달러는 세계적 자본권력의 표상으로, 한국의 산업화에 절대적
으로 필요한 피와 같은 존재였다. 1960년대말 독일 등에 진출한 광부와 간호
사, 그리고 70년대 석유위기를 기화로 달러가 부족해지자 건설특수를 노리
고 중동 등지에 파견된 건설노동자들은 말 그대로 노동기계의 노마드화 말고
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정도로 당시 아시아 어느 나라에서도 그 유래를 찾
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특기할 점은, 미국의 요청으로 월남전에 파견된 주월 파병군인들 역시 한국전
쟁에서와 같은 순수한 전쟁기계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전쟁터에
서 쏟아 부은 총 한방 한방은 시간당 최저 노임, 즉 피의 달러로 환산되었다.
이는 다시 고스란히 본국으로 환류됐고, 궁극적으로 한국 독점자본의 원시축
적에 밑거름이 되었다. 월남에 파병된 전쟁기계들은 변형된 노동기계였으며,
이제는 거꾸로 이러한 전쟁기계의 흔적이 배어있는 노동기계로서의 청년주
체들을 중동 지역에 파견된 노동기계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
이 아니다.
한국의 풍토와는 전혀 다른 극한의 노동조건, 섭씨 40도가 넘나드는 중동지
역에서의 노동이란 말 그대로 전쟁이었으며, 과연 이러한 중노동을 월남전이
라는 실전을 거치지 않았다면, 과연 노동기계들이 수행할 수 있으리라고 아무
도 장담할 수 없었을 일이다. 한마디로, 중동특수로 파견된 노동자들은 노동
기계와 전쟁기계가 합성된 새로운 형태의 노동사이보그와 같은 존재로 규정
할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의 위기가 작동하는 시발점은 역설적이게도 노동 그 자
체에 있다. 자본성장과 위기가 사실은 모두 노동의 주체화 양식에 집약되어
나타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에서 밝힌 대로, 70년대까지 한국사회의 고
도성장을 견인한 노동주체들은 전쟁기계의 흔적을 간직한 노동기계들이었
다. 그 주력부대 역시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청년노동자들이었
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공업 확장기에 작업장은 그야말로 병영이나 다름없었다. 대규모 선박을 최
단시간 건조한 현대중공업의 성장사로 집약되는 자본집약형 중공업 중심의
산업발전전략은 선전포고만 없었을 뿐 타 경쟁국가에 대해 분초를 다투고 진
행되는 노동전쟁이었다. 여기서 대부분의 청년노동자들은 군대의 사병과 같
은 존재들로 취급되었다.

구상과 실행은 철저히 분리됐다. 노동병사들은 자본사령부의 장군들과 장교,
사관들이 정해놓은 작업계획을 일사불란 완수하기 위해 생산의 전쟁터로 투
입되었다. 옆 동료가 죽던 말던 생산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말 그대로 ‘밤을 패
가며’ 일을 했던 것이다. 인간들이 밤새워 가며 해야 하는 일이란 전쟁 말고 그
밖에 무엇이 있겠는가? 세계 최대의 LNG 저장 선박을 최단시간, 최저 단가
로 수주하기 위해, 저장탱크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그대로 묻힌 채 건조
되었는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것이 바로 한국 자본주의의 비약적 성
장의 비결인 ‘유혈(流血)’ 포드주의의 진실이다.
하지만, 노동을 전쟁 삼아 너무 많이 일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장시간 반복
노동에 의한 대량생산을 미덕으로 여기며, 상품판매, 곧 가치의 실현과정을
해외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해왔던 한국자본은 70년대 말 유럽을 필두로 한
전 세계적 과잉생산 공황으로 인해 치명상을 입었다. 60~70년대 내내 약 20
년 간 두 자리 수(double digit) 고도성장을 구가해온 한국자본에게 그동안
한 차례도 겪어보지 못했던 경제위기가 닥쳤다. 이는 동시에 노동주체의 위기
로서, 전쟁기계가 한 데 합성된 노동기계, 곧 청년노동자들의 대량실업을 의
미하는 것이었다.
공황을 타개하기 위해 자본이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은 노동의 주체화 양식을
근본적으로 변형하여 상대적 잉여가치를 제고하는 것 이외 달리 방도가 없
다. 그것이 ‘자본론’이다. 저임금, 장시간, 저학력으로 대변되는 전쟁기계형
노동주체들은 더 이상 자본이 위기를 돌파하는 데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없었
다. 이에 자본은 유사 이래 계급지배의 내밀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지성의
독점’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이미 평균 100여년 이상
의 역사를 지닌 선발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전후부터 진즉에 진행되었던 것으
로, 정치적으로는 ‘계급타협’으로 표현되었던 바, 한국사회는 그 과정을 20년
현대사 속에 응축시켜 놓았다고 할 수 있다.

Ⅲ. 1980년대: 투쟁기계와 노동기계의 청년 주체합성

1980년대 들어, 대학설립과 학생정원은 교육법인이 원하는 만큼 자율화되
었고, 바야흐로 고등교육자들의 대량생산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많은 청년
들이 대학을 노동영역에 투입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자본과 국가권력은 지성의 독점을 개방하긴 했지만, 그 과정을 철저
히 통제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풀어 주었다간 그동안 억눌려온 노동기계
들의 반역이 걷잡을 수 없다는 것을 지배세력은 1979~1980년에 벌어진 일
련의 노동쟁의와 소요사태를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
나 자본축적을 위해 지성의 독점은 포기하되,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를 억압
하겠다는 것은 애당초 양립할 수 없는 이율배반임이 입증되었다.
한국의 청년들, 특히 대학생들은 집단적인 투쟁기계들로 변모해갔다. 청년들
이 투쟁기계라는 새로운 주체화 양식을 확보하기에 이른 것이다. 80년대를
살아간 대부분의 청년학생들에게 일상은 그 자체로 투쟁의 나날이었다. 진리
는 더 이상 상아탑에 머무르지 않았다. 제도권 교육, 특히 인문사회과학 강단
교수들의 권위는 바닥에 떨어졌고, 청년들은 마르크스주의를 투쟁의 과학으
로 받아들였다.
현대적 서구지성의 대부분의 저서들이 속속 번역 소개됨으로써, 그동안 우파
일색의 반쪽에 머물렀던 지성의 힘은 급속도로 진전되었고, 청년들의 삶은 활
기로 넘쳐났다. 나중에 학위를 받기 위한 공부를 하면서 보다 자세히 안일이
긴 하지만, 웬만한 사회과학 저작들이 80년대에 대부분 출간되었다. 이 시대
에 오직 열정 하나로 엄청난 양의 인류지성의 유산을 소개한 70년대 말 80년
대 초반 선배들의 노고에 대한 고마움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1980년대에 대학생활을 경험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인정할 일이지만, 사실
이들에게 투쟁이외 할 일도 별로 없었다. 머리에 온통 독재정권을 어떻게 전
복할까 하는 투쟁의 정치학이 압도했던 이들의 삶 속에 문화란 존재할 여지조

차 없었기 때문이다. 우스운 얘기지만, 단적으로 내가 그 시대를 기억하는 가
수로는 조용필, 한국영화로는 에로영화의 대명사 ‘애마부인’ 시리즈 뿐 생각
나는 게 별로 없다. 그들의 삶은 정치의 과잉으로 넘쳐났고 상대적으로 문화
적 삶은 그만큼 과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주제화 양식은 어째서 소위
386세대가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을 이끌어내는 등 지금까지도 정
치생활에 있어서는 그렇게 강력한 힘을 행사하면서도, 80년대를 대변하는 변
변한 청년문화 하나 전승하지 못하고 있는가의 이유를 잘 말해준다. 그러므
로 투쟁기계로 80년대 청년들의 주체화 양식을 규정하는 것은 상당히 타당하
다 하겠다.

군사독재정권이 몰락하자 그동안 노동기계와 분리된 채 그동안 대학 안에만
머물러 있던 투쟁기계들은 노동기계의 주체화 양식과 급속도로 결합되기 시
작했다. 노동기계와 투쟁기계의 합성이라는 종래 한국 현대사에서 찾아볼 수
없던 전혀 새로운 청년주체화 양식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단적인 예로
1987년 한해 파업 건수는 그 이전 1961년부터 1986년에 이르기 까지 28
년간의 파업건수를 합친 2,365건보다 1,384건 많은 3,749건에 달한다(신
광영 1994:312). 이러한 파업의 폭발현상은 사실상 노동기계와 투쟁기계
의 새로운 결합이라는 주체양식 규정을 보지 않고는 올바로 설명할 수 없다.
자본과 국가권력은 노예들의 반란에 혼비백산했고, 새로운 전략마련에 골몰
했다. 만약 새로운 청년의 주체합성 기계가 사회전체로 퍼져나간다면 자본권
력은 전복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본은 자신의 위기 타
개를 위해 스스로 지성을 개방한 결과, 이제 노동기계들은 과거와는 다른 새
로운 형태의 지성적 주체로의 전환을 도모할지도 모른다. 나아가 새로운 사회
구성을 도모하는 정치주체로 변화된다면 혁명적 상황을 낳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자본과 국가는 일단 단기적으로 경제주의, 즉 노동현장 안으로 투쟁기계
를 봉쇄하는 전략을, 그리고 중, 장기적으로 신자유주의라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공세적 전략을 입안했다.

신자유주의 전략은 국가권력을 포함하여 사회구성 전체를 재구조화하는 형
태의 근본적 재편으로 그동안 한국사회 지배권력의 관제사령탑 역할을 해온
발전국가모델의 상당한 구조변화를 수반하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는 작업
장 안에서는 민영화와 구조조정으로 대변되는 신경영전략 수립으로 구체화
되었고, 자본권력 내부로는 주주과두제가 헤게모니를 장악함으로써 실물자
본에 대한 금융자본의 최종적 승리를 확인했다.
이러한 형태의 구조조정과정은 궁극적으로 시장화폐 권력의 힘을 통해 노동
기계라는 주체화 양식 자체를 봉쇄하는 식의 완전히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었
다. 하지만, 자본의 신전략은 국내 자본만의 힘으로 달성될 수 없었다. 왜냐하
면, 한국 노동기계의 극심한 저항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이에 화폐권력은 국
내 금융자본의 급격한 해외유출 등 생산사보타지로 대응했고, 그것은 결국
IMF 사태로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IMF 금융위기
의 본질을 화폐권력, 즉 국내 금융자본이 국제금융자본과의 동맹을 통해 노동
기계와 투쟁기계의 합성적 주체화 양식의 해체를 도모한 반혁명으로 규정할
수 있다.
다른 한편, 투쟁기계의 거점이던 대학 안에서, 군사독재가 붕괴되자 청년들
의 주체화 양식의 급격한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3저 호황, 즉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약 10 년간의 경제적 풍요시대의 도래가
크게 한몫 했다. 이 당시 중고등 학교를 다닌 학생들이 90년대 중반이후 대학
에 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투쟁기계라는 주체구성은 급속도로 해체되어 갔다.
박노해의 시 ‘노동의 새벽’이 80년대 투쟁기계의 정서를 대변했다면, 90년대
초반, 관심을 모은 최영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시의 경우 이들에 대한
진혼곡으로 읽혀져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 경험으로 말하자면,
과거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서울대학 등 서울소재 대규모 대학들에서 90년
중반을 기점으로 대학생들이 교문에서 전투경찰과 대치하는 광경, 이른바 ‘교
투’를 목격한 바 없다.
5 0
이창裏窓
25. 8. 5. 오후 3:17 한국 사회구조 변동과 청년 주체의 위기 :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drcooler/223663245122?referrerCode=1 11/23
투쟁기계를 대체하여 문화소비 기계라는 새로운 청년 주체화 양식이 창출되
었다. 서태지 신드롬을 필두로 한 새로운 문화현상은 여기에다 기름을 부었
다. 청소년화 된 청년들이 새롭고 강력한 문화소비주체로 등장함으로써,
4~50대 위주의 주류 기성문화는 퇴조 내지 해체 되는 지점에까지 이르렀다.
2002년 월드컵 때 보여준 ‘붉은 악마’ 현상은 문화소비기계가 그들의 문화적
힘을 극대화하여 집단 소비하는 양상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파악할 수 있
을 것이다.
하지만, 문화소비기계라는 청년들의 새로운 주체화 양식은 IMF를 계기로 그
위기를 드러냈다. 고도실업사회로의 진입을 통해 청년들의 노동기계로의 주
체 전환을 통한 문화소비기계와 노동기계의 주체합성 기회가 봉쇄되었다. 청
년들은 자본의 봉쇄에 맞서 단호한 저항을 행사하지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았을 때, 청년실업은 투쟁기계라는 주체화 양식의 포기에 대한 가혹한 대가
일는지도 모른다.

Ⅳ. 문화소비기계로서의 청년주체

한국사회의 최대화두 가운데 하나는 단연 청년실업이다. IMF 시기에 대부분
의 한국인들은 그것을 말 그대로 외환위기로만 알았다. 다시 말해서, IMF에
게 빌린 구제금융을 청산하고 나면 다시금 경제성장이 고용을 촉진하게 될 것
으로 이해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경제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
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바로 ‘고용 없는 성장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국경제는 2003년 당시 기준으로 2000억 달러, 2008년 4000억 달러의
수출을 달성했다. 2003년 환율 기준으로, 원화로 환산하면 약 260조원에 달
하는 천문학적 금액이었다. 이처럼 자본의 성장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에 비해
서 실업은 구조화 되었고, 그 가운데 청년층 일자리가 작년 한해 20만개 가
량 줄어들고, 같은 해 대학졸업자 가운데 절반이상, 비정규직 취업비율을 고

려하면 약 80%이상이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
해야 한단 말인가?
청년실업은 자본주의 사회구성체의 구조적 위기의 발현으로 인턴제 확대 등
일시적 미봉책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노동기계와 투쟁기계
의 주체합성을 봉쇄하기 위해 자본권력에 마련된 체계적 전략의 산물이기 때
문이다. 하지만 자본에게도 고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청년들의 노동기
계로의 주체전환의 체계적 봉쇄는 한국 자본 그 자체의 재생산 내지 축적위기
를 가속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90년대의 청년의 주된 주체구성은 문화소비기계의 형태를 띠었다.
이들은 노동기계로의 진입이 막혀 있는 상태에서 자신들의 소비를 신용카드
라는 유사 화폐에 주로 의존했다. 다시 말해서, 노동가치가 체현되지 않은 화
폐소비는 자본주의 자체로 엄청난 거품 경제를 초래하고 이는 카드회사 등 금
융사 부실로 이어져, 금융공황을 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최근
미국 발 금융위기로 현실화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2008년 미국
발 경제위기의 본질은 자본주의적 축적체제의 위기라는 사실에 이전의 불황
기와는 다른 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설명을 돕기 위해 몇 해 전 일간지에 보도
된 바 있는 관련 자료를 하나 인용해 보도록 하겠다.
“통계청에 따르면, 경제상황이 비교적 좋았던 시기인 2002년 11월 현재 20
대 실업률은 7.6%로 1년 전(5.9%)에 비해 1.7%포인트 상승했다고 한다.
이는 같은 기간에 전체 실업률 상승폭(0.6%포인트)의 2.8배에 이르는 수준
이다. 또 최근 1년 동안 증가한 실업자 수(14만4000명)의 절 반 가량(7만
명)이 20대인 것으로 파악돼 실업난에 따른 경제고통이 20대 층에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처럼 심화하는 청년실업 속에 20대 개인 신용불량
자수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2002년 말 48만8159
명이었던 20대 개인신용불량자수가 2002년 10월 기준으로 70만9102명
으로 한 해 만에 22만943명이나 급증했다. 이에 따라 전체 개인신용불량자
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도 2002년 말 18.5%에서 2003년 10월 기준
으로 19.7%로 1.2%포인트 상승하면서 20%대에 근접한 것으로 파악됐
다”(<문화일보> 2003년 12월 26일).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에 의한 초유의 금융위기과 한국의 카드대란
에 의한 급속한 신용불량자 양산 사태는 동일한 원인에 의해 표출된 서로 다
른 경제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문제는 취업을 한다고 해서 이전처럼
사정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20대 임금 근로자중 임시․일용직
비중이 최근 10년 동안 11%포인트 이상 늘어 절반(50%)이상으로 훌쩍 올
라선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청년실업률이 위험수위에 이른 상황에
서 어렵사리 취업에 성공한 20대 취업자 역시 임시․일용직에 몰려 있어 고용
불안이 심각한 상태임을 반영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2002년 한국의 20~29세 임금근로자 400만8000명중 임시직과 일용
직은 각각 162만2000명과 39만1000명 등 201만3000명으로 50.2%를
차지했다. 이보다 10년 전인 지난 92년 당시 20대 임시․일용직 비중이
38.8%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10년 사이 11.4%포인트나 뛰어 오른 셈이
다. 전체 20대 임금근로자에서 임시․일용직 비중은 외환위기 이후 대대적인
구조조정 여파로 지난 99년 52.1%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51.9%
(2000년)→49.7%(2001년) 등으로 조금씩 낮아지다가 2002년에 다시 절
반 이상으로 상승했다.
20대 취업자의 고용불안은 취업시간 분포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났다.
2002년 당시 20대 경제활동인구 가운데 5.1%인 23만 명은 주당 근로시간
이 27시간 미만인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2.8%인 12만6000명은 주당 근
로시간이 18시간에도 못 미쳐 제대로 된 취업이라고 보기 힘든 상태라고 할
수 있다(<문화일보> 2004년 1월26일). 어느 새 불안정, 비정규 노동이 노동
세계의 주요 구성부분으로 슬그머니 자리잡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통계추세를 요약하자면, 한쪽에서는 실업과 불안정 노동이 확
대 재생산되고, 다른 한쪽에선 카드연체 등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말
이다. 그 한 가운데, 재생산비용이 매우 높은 문화소비기계로서의 청년들이
노동기회를 차단당하고, 그 결과 그들은 대부분 채무를 이행할 방도가 사실
상 전무한 이른바 ‘악성신용불량자’로 분류됨으로써, 카드사 파산 등 금융부
실의 ‘주범’으로 비난 아닌 비난을 받기 시작했다. 이는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대단히 흥미롭고 새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문화소비기계로서의 최근의 청
년주체는 매우 높은 지적 능력과 문화욕구를 체현하고 있는 매우 새로운 사회
적 주체라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자면, 2004년 모 일간지에 한국 청소년, 아동 삶의 조건이
‘세계 9위, 아시아 1위’라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 지 알 수 없는 기사가 실렸
던 적이 있다. 이는 한국 청년들의 기본특징을 간접적으로 나마 알 수 있게 해
주는 조사결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면, 한국청년들이
얼마나 극심한 경쟁에 시달려야 하는 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
대로 인용해보기로 하자.
“우리나라 아동의 삶의 조건, 즉 교육, 경제, 환경, 건강 등이 아동이 살아가기
에 적합한지를 판단하는 척도가 세계 9위, 또 아시아에서는 1위라는 조사 결
과가 나왔다. 교육인적자원부는 5일 최근 미 워싱턴에 본부를 둔 비영리 민간
기구(NPO)인 ‘포퓰레이션 커넥션’(Population Connection)이 인구 1천
만 명 이상 80여 개국 아동의 삶의 질을 비교한 ‘아동 친화적 국가 보고
서’(Kid-Friendly Countries Report Card)를 인용,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
다. 이 단체는 현재 보유한 자원으로 유지될 수 있는 수준으로 세계인구를 안
정시키기 위한 교육 및 대 언론, 대정부 활동 등을 벌이고 있으며, 보고서는

아동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찾아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대책을
촉구하는 차원에서 작성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8세 이하 인구
비율, 출산율 등 3개 비순위 지표와 건강, 교육, 경제, 환경, 추정 인구 변화,
기혼여성 피임률 등 6개 순위 지표에서 종합 ‘A등급’을 받아 80여개 국가 가
운데 9위, 또 아시아에서 1위를 차지했다. 1-4위는 종합등급에서 ‘A+’를 받
은 벨기에, 네덜란드, 호주, 프랑스 순이었으며 영국, 포르투갈, 미국, 스페
인, 한국, 이탈리아가 ‘A’로 5-10위를 차지했고 일본, 독일, 캐나다, 칠레, 체
코, 말레이시아, 헝가리가 ‘A-’로 11~17위에 올랐다. 한국은 항목별로 △건
강 ‘A-’(기대수명 75세, 10만명당 산모 사망 20명, 1천명당 영아 사망 7.44
명 및 만5세 이전 사망 5명) △교육 ‘A’(초등학교 입학률 99%, 중등학교 진
학률 97%, 교육비 예산 비율 21%, 15세 이상 문자해독률 100%) △경제
‘A-’(1명당 국민총소득 1만7천300달러) △환경 ‘B-’(식수편의시설 및 위생
시설 접근 가능 인구비율 92%, 63%) △2002~2050년 추정 인구변화율
‘A’'(3%) △15~49세 기혼여성피임률 ‘A+’(81%)등의 등급을 받았다. 일본
은 건강(A+), 경제(A), 환경(A+)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교육(B)과 인구
변화 추정치(B), 피임률(B-)에서는 점수가 낮게 나왔고 중국은 교육 및 환경
점수가 매우 낮았다. 아울러 교육부는 유엔아동기금(UNICEF) 연구기관인
‘이노센티연구소’(Innocenti Research Center) 보고서를 인용해 경제협력
개발기구(OECD) 24개국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조사에서 우리나라의 종합
순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즉, 국제표준 학업성취도에 도
달하지 못한 청소년 비율 등을 PISA(국제학생평가 프로그램)의 읽기, 수학,
과학 및 TIMSS(국제수학.과학학업성취도평가)의 수학과 과학 등 5개 지표
로 분석한 결과, 한국은 평균 1.4위로 종합 1위를 차지했다는 것. 일본이 5
개 지표 평균 2.2위로 종합 2위에 올랐고 미국은 평균 16.2위로 18위, 포르
투갈은 평균 23.6위로 최하위인 24위에 랭크됐다”(<한겨레 신문> 2004년
1월5일).

노동소득은 없어도 서태지 라이브 공연은 봐야하며, 최소한 신보앨범은 사야
직성이 풀렸던 게 1990년대 이후 청년들의 세태였던 것이고 보면, 이들에게
소비를 중지하라고 하는 것은 숨 쉬지 말고 살라는 얘기와 마찬가지 일 것이
다. 역설적이게도, 노동기계의 투쟁기계로서의 주체합성을 차단하기 위해 자
본에 의해 마련된 문화소비기계의 노동기계로의 주체 합성의 위기가 화폐권
력이라는 자본 자체의 심장부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기계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자본과 국가권력은 한편으로는 청년의 주체합성 위기를 조장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위기를 봉합해야 하는 모순적 형태의 이중운동
을 전개할 수밖에 없다. 매년연중행사처럼 호들갑을 떨며 논의되고 있는 청년
실업 대책은 그러한 이중운동의 한 단면일 뿐이다.
혹자는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진단하지만, 나는 여기에 더해 ‘위기사회’로
정의하고 싶다. 위험은 그러한 항구적 위기의 결과 내지 반영물이 아닐까? 역
사는 그 기회라는 면에서 어느 정도 공평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 까닭
은 자본과 국가 혹은 화폐와 법으로 표상되는 지배세력의 독점적 권능 또는
영지가 무너지면서 피지배계급의 새로운 주체구성을 통한 역능으로 점차 전
화되고 있다는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자본과 국가권력의 지배구조 역시 종래의 지배계급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노
동분업을 축으로 피지배계급의 주체구성을 달성한다. 따라서 사회적 노동분
업은 자본주의 사회구조가 움직여 나가는 대단위 메트릭스라고 할 수 있는
데, 자본주의적 인문사회과학에서 확고한 우세를 점하고 있는 이른바 ‘기능주
의’는 바로 이러한 메트릭스를 학문전략화 한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한국
의 청년주체들은 그들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각각 전쟁기계, 노동기계,
투쟁기계, 문화소비기계의 주체양식의 구성을 경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과 국가권력의 의도대로만 주체구성이 이루어진 것
은 아니다. 노예들의 창의성은 때때로 새로운 주체합성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
에 대한 전복의 경계를 넘다들며 빛을 발했다. 노동기계와 투쟁기계의 주체
적 합성이 그 대표적 예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비교적 중립적 설명을 하
고 싶은데, 어떤 특정한 주체구성양식을 특권화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
래의 설명처럼, 투쟁기계를 문화소비기계에 비해 우월한 것으로, 그리고 후자
가 따라야할 단순한 전범으로 보지 않는다. 예컨대, 단순히 진화론적 설명은
아니지만, 문화소비기계의 출현은 어느 정도 자본주의 주체구성의 최후의 단
계임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노동기계와 투쟁기계의 주체합성 양식만으로는 경제발
전과 형식적 민주주의의 의제에 안주했을지 모른다. 그것의 종국적 귀결은 소
련식 사회주의 혁명이거나 서구 사민주의적 ‘계급타협’임은 역사가 증명한
다. 하지만, 문화소비기계의 주체합성은 그러한 의제 너머 최후의 식민지로
서 여성주의를 성찰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회적 생
산력 발전의 추구가 초래하는 파괴적 경향에 대해 그것을 멈추는 것이 민중
의 이익에 합치할 수 있음을 알려준, 곧 생태학적 인식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
다고 할 수 있다. 인류가 도달한 현재의 사회적 생산력만으로도 과포화상태이
며, 과거처럼 노동과 생산을 신성시하는 것은 거대한 재앙의 전주곡일 뿐이
다.
이제 파괴와 학살만이 자본의 몫으로 남아있다. 이라크 전쟁은 전쟁기계들의
투쟁이 아닌 전쟁 엔터테인먼트 내지 부르주아적 욕망의 가상적 실현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엥겔스가 말한, 이른바 ‘전쟁의 생산적 역할’은 작동을 멈추었
으며, 역사에 있어서 이제 부르주아지의 진보적 역할은 종식되었다.
Ⅴ. 사회적 위기와 전복의 기로에서
부르주아 계급은 청년시대에 바스티유를 파괴했다. 이후 국왕의 목을 벰으로
써 자신의 경제적 지배에 더해 정치적 지배를 달성했다. 나아가 부르주아 계
급은 보편적 인민을 구성하였고, 이는 사회의 전 영역에서 부르주아적 헤게모
니를 달성시켜주는 핵심기제로 작동했다. 요컨대, 지배계급이 되기 위해서는
전쟁, 노동, 투쟁, 문화소비 기계 전체의 주체합성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인민
을 탄생시켜야만 한다.
지금까지 인류역사에 있어서 피지배계급의 정치적 전복의 모델로 굳게 자리
를 지켜온 ‘1917년형 소비에트 모델’은 노동기계와 투쟁기계의 합성주체에
의한 전복이었다. 하지만 1917년 모델은 보다 높은 단계의 욕구를 표상하는
‘문화소비기계’와의 주체합성을 통한 소비에트 인민의 완성에 실패함으로써
소비에트 혁명은 미완에 그쳤다.
서구사회에서 68혁명을 정점으로 한 60년대 말, 저항의 시대 역시 노동기계
와 투쟁기계로서의 청년주체 합성의 양상을 띠었지만, 새로운 정치사회적 인
민을 탄생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그 결과, 1970년대 말 이후부터, 최근의 한
국사회와 마찬가지로 투쟁기계는 소멸되었고, 노동기계 상층과 문화소비기
계가 합성된 이른바 ‘여피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럽, 브라질 등지에서 신자유주의 모델은 새
로운 사회적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고, 여기에 대항하는 새로운 투쟁기계로서
문화소비기계와 노동기계의 주체합성 노력이 어느 정도 가시화되고 있는 인
상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 악마 응원이 문화소비기계의 문화적 제의
(祭儀)에 그쳤다면, 시애틀 투쟁,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시위에 참여한 청
년들의 면면은 새로운 전복적 청년주체 등장의 다소간의 증거라고 할 수 있
다.
그렇다면 위기는 과연 전복으로 반전될 수 있는가? 가령, 문화소비기계는 사
실상 신용연체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본주의적 화폐
연쇄를 뒤흔드는 일상적 형태의 전복적 실천을 단행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
만, 이는 노동기계와의 합성적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주체 스스로의 생
존위기를 동반한다는 차원에서 네거티브 한, 곧 부정적 투쟁이다. 따라서 긍
정적 투쟁전략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나는 여기서 한국의 진보적 사회운동
이 실천/이론상의 급격한 정치적, 인식론적 전환을 단행하지 않으면 앞으로
생존조차 어려울 것임을 말하고자 한다.
파업만이 능사며, 투쟁기계와 노동기계 주체 합성의 좋았던 시절을 회상한
채, 지금껏 우리는 과거의 전리품을 소모해 오지 않았는가? 사회경제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이에 따른 사회주체의 질적 전환을 놓고 보았을 때, 한국의 진
보적 정치사회운동은 이러한 추세를 따라잡기는커녕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진공을 정치적으로 치고 들어와 메우고 있는 세력이 과거 노사
모나 열린우리당 등 같은 자유주의 정치세력이었다. 가령, 언제까지 우리는
청년실업, 불안정 노동 문제를 정규직으로의 전환투쟁에서만 찾을 것인가?
이제, 새로운 대안에 대한 논의, 논쟁, 내부 투쟁을 일정에 올리고 본격화해
야 한다. 우리 스스로 문화소비기계와 노동기계의 주체합성을 시도하는 정치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서 투쟁기계로의 주체 합성 역시 자연스럽게 논의
될 수밖에 없다. 자본에 의존하지 않는 노동영역의 창안, 가치가 아닌 사용가
치를 창출하는 노동, 우리들의 생존과 삶, 곧 문화소비에 대한 욕망을 전취하
는 행위로의 노동의 요구로부터 투쟁기계, 곧 새로운 정치적 청년인민의 구성
을 위한 전략이 시급히 요망된다. 이는 결국 새로운 사회공동체를 위한 투쟁
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그럴 때야, 비로소 기계적 작동을 멈추고 인간
주체로의 돌연변이를 개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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