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8

전세 사기 피해당하고도 지원 못 받는 이주 노동자들 "경매 시작되면 재앙" < 곁에서 밀려난 이주 노동자들 < 사회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전세 사기 피해당하고도 지원 못 받는 이주 노동자들 "경매 시작되면 재앙" < 곁에서 밀려난 이주 노동자들 < 사회 < 기사본문 - 뉴스앤조이



전세 사기 피해당하고도 지원 못 받는 이주 노동자들 "경매 시작되면 재앙"
외국인이란 이유로 '우선매수권' 지원 못 받아 보증금 날리고 쫓겨날 판…"차별 없는 정부 지원 절실"
기자명 안디도 기자
승인 2025.08.07

"안산에서 이주 노동자들을 상대로 한 전세 사기가 발생했다. 건물주가 목사다. 세입자 대부분이 외국인이라 제대로 된 지원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취재해 달라."

[뉴스앤조이-안디도 기자] 7월 어느 날, 사무실로 제보 전화가 들어왔다.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전세 사기'가 발생했는데, 가해자가 '목사'라는 내용이었다. 평소에도 다양한 제보 전화가 들어오지만, 이번 제보는 그 가운데서도 기가 막힌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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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이라 곧바로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파악했다. 하지만 제보자와 피해자들은 건물주가 어느 교회 담임목사인지 알지 못했다. 아쉽게도(?) 확인 결과 그가 목사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건물주 정 아무개 씨는 수원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장을 지낸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그렇다고 취재를 멈출 수는 없었다. 외국인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처한 상황을 알고 보니, 현실은 너무나 가혹했기 때문이다. 7월 27일 안산에서 만난 제보자 남명길 씨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사연은, 가해자가 목사가 아니라는 이유로 지나칠 수 없었다. 이들은 전 재산과도 같은 전세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고 거리에 나앉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었다.

전세 사기 피해가 발생한 안산시 원곡동 한 빌라. 한 세대를 제외하고 모두 외국인이 세입자로 거주하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안디도

남명길 씨는 2022년 12월, 안산시 원곡동 한 빌라를 1억 4000만 원에 전세 계약했다. '전세 사기'라는 말이 세간에 알려지기 직전이었다. 당시 남 씨가 계약한 건물은 갓 신축한 건물로, 등기가 나지 않은 상태였다. 혹시나 나중에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지만, 건물주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공인중개사 이 아무개 씨도 "정 씨가 부자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평화롭게 살던 어느 날, 남 씨는 문 앞에 붙은 안내문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건물주 정 씨가 빚을 갚지 않아 그가 소유한 건물 전체를 강제경매에 넘긴다는 내용이었다. 알고 보니 정 씨가 지고 있는 채무는 확인된 것만 20억 원에 달했고, 정 씨와 함께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던 공인중개사는 명의만 빌린 가짜 업자였다. 남 씨는 백방으로 연락을 돌렸다. 하지만 정 씨는 전화를 피했고, 어쩌다 통화가 닿으면 다른 건물을 처분해 전세금을 돌려주겠다고 둘러 대기만 했다.

남 씨에게 전셋집을 추천했던 공인중개사는 확인 결과 가짜 업자였다. 현재 부동산은 문을 닫았다. 뉴스앤조이 안디도

여기까지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겪는 과정과 거의 동일하다. 건물주 주인의 사기, 잠적, 날벼락 같은 통보.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8월 현재 전국에 전세 사기 피해를 겪고 피해자로 인정받은 사람은 3만 명이 넘는다. 수만 명이 사기를 겪은,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정부는 특별법을 제정해 다양한 구제 대책을 마련했다. 정부로부터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으면 주택도시기금이나 한국주택금융공사로부터 저 이자 대출을 받을 수 있고, 현재 살고 있는 주택이 경매에 넘어갈 때 먼저 입찰할 수 있는 '우선매수권' 행사가 가능하다. 만약 매수를 원하지 않는다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우선매수권 양도를 신청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LH가 주택을 매입한 후 피해자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최대 20년간 거주할 수 있게 해 준다.

하지만 남명길 씨와 같은 외국 국적자는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을 받을 수는 있어도 저리 대출과 우선매수권 양도는 신청할 수 없었다. 남 씨는 "LH에 전화해 봤지만 외국인이라 우선매수권 양도가 안 된다는 답변뿐이었다. 올해 3월 경기도 전세사기피해지원센터에서 진행한 간담회에 갔을 때도 불만을 이야기하니 법이 정해져 있어 행정 기관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고 말했다. 외국인인 그가 받을 수 있는 혜택은 '긴급 주거 지원'이 사실상 유일했다.

안산은 이주 노동자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도시다. 인구의 약 14%에 해당하는 10만 명이 이주 노동자라는 통계도 있다. 그러다 보니 안산에서 발생한 전세 사기는 대부분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타깃으로 하고 있었다. 실제로 남명길 씨가 거주 중인 ㄱ빌라 피해자들 역시 한 세대를 제외하고 모두 외국인이었는데, 대부분이 중국 동포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소득이 적어 생활이 불안정한 상황이었는데, 전세금을 빼앗기고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다고 하니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정 아무개 씨 부인 명의 건물에서 전세 사기 피해를 본 한 외국인 세입자도 보증금을 잃을까 봐 불안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안디도

ㄱ빌라에서 만난 피해자 A는 "요즘 일자리가 없다. 아들은 몸이 아파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한다. 상황이 안 좋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70대 피해자 B도 "남편은 몸이 안 좋아 쉬고 있다. 내가 돈을 벌려고 해도 나이 때문에 일을 구하기 너무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전세 대출을 받기 어렵다. 때문에 이들에게 전세금은 객지에서 평생 모은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다. A는 "이전 집에서 주인이 살겠다고 해 급하게 이사를 와야 했다. 20년 넘게 모은 재산과 친척들에게 빌린 돈으로 전세금을 마련했다. 앞으로 아들이 결혼도 해야 하는데 여기 다 묶여 버렸다"고 토로했다.

전 재산을 잃을 위기에 처한 이들은 당장 거리에 나앉을 수 있다는 걱정으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B는 "힘들어서 말도 못 한다. 하루하루 사는 게 아니다. 맨날 아파서 약으로 때우고 산다"고 말했다. 남명길 씨 또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회사 일에 집중이 안 되고 경찰이나 검찰에 가려면 반차를 써야 하니 눈치도 보인다. 바보 같다는 핀잔을 들을까 봐 직장 동료들에게 얘기도 못 한다"고 전했다.

같은 피해자이자 ㄱ빌라에서 유일한 한국인인 김채화 씨는 피해자들이 외국인이라 문제 해결에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건물주 정 씨가 외국인은 법에 대해 잘 모를 것으로 생각해 더 접근한 것 같다"면서 "외국인들은 의사소통이 어려워 경찰 조사에서 어려움을 겪고, 경찰이 집에 오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한 줄 알고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제를 제기하면 불이익을 받을까 봐 불안해하는 일부 피해자도 있었다. 남명길 씨는 "피해자 중에는 중국인이 많다. 중국에서는 관료들이 앙심을 품고 시민에게 가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한국 사회에 불만을 터뜨리면 (중국에서처럼 불이익을 겪고) 추방당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몇몇 피해자는 확인되지 않은 건물주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B는 "정 씨가 전화 통화에서 '다른 빌라가 팔리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A는 "정 씨가 정직하고 성당에서 강의도 하는 사람인데 일을 벌이다 보니 문제가 커졌을 뿐이고, 나쁜 짓을 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언젠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현재 ㄱ빌라에서 법적 대응을 진행 중인 사람은 남명길 씨와 김채화 씨 둘 뿐이다. 다른 피해자들은 함께 고소에 나섰다가, 감옥에 들어가면 돈을 영영 받지 못할 테니 취하하라는 건물주의 협박에 겁을 먹고 진행을 멈춘 상태다.

ㄱ빌라 외에도 정 씨 일가에 의해 고통받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은 더 많다. 정 씨와 그의 부인 명의 빌라는 확인된 것만 5채인데, 세입자 상당수가 외국인이다. 이들의 총 피해액은 50억 원을 뛰어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피해 지원 차별
금융 지원, LH 우선매수권 양도 가능해야


전세 사기 피해를 당한 또 다른 빌라. 뉴스앤조이 안디도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외국인 전세 사기 피해자는 2025년 5월 기준 457건으로, 1년 사이 178건 늘었다. 불이익을 염려해 신청하지 않은 수를 고려하면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세 사기 피해를 당한 외국인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이 받을 수 있는 정부 지원은 긴급 주거 지원이 거의 전부다. 그나마 긴급 주거 지원 기한이 2년에서 6년으로 늘어난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남명길 씨가 살고 있는 ㄱ빌라는 경매 유예 중이라 우선 세입자들이 한숨 돌리고 있는 상태이지만, 경매 절차가 강행된다면 세입자들은 꼼짝없이 쫓겨나야 할 처지다. 현행법대로라면 경매가 진행될 경우 유일한 한국 국적자 김채화 씨 정도만 우선매수권 양도 제도를 사용해 거주를 계속할 수 있다.

김채화 씨는 "경매가 끝나 쫓겨나면 목숨을 거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4층에 살고 있는 20대 외국인은 어머니와 살고 있는데 일하던 중 교통사고로 하체를 쓰지 못한다.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 재산과 빌린 돈으로 전세를 잡았다. 그는 쫓겨나면 뛰어내려 죽겠다고 말한다. 정부에서 일단 이들이 살 수 있는 기반을 만들 때까지만이라도 도움을 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남명길 씨는 정부가 이주 노동자에게 차별 없는 지원을 하고, 적극적인 수사도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외국인도 LH에 우선매수권 양도를 신청할 수 있는 정책이 가장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쫓겨나지 않고 월세를 내면서 몇 년은 더 살 수 있지 않은가. 또한 경찰과 검찰이 빨리 수사해서 임대인이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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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지만 않게 해 달라고 기도"…전세 사기 외국인 피해자의 절규
내국인과 다르게 정부 지원에서 대부분 소외…"교회도 외국인 고충 듣고 정책 변화에 함께해야"
기자명 안디도 기자
승인 2025.08.07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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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안디도 기자] A는 약 15년 전 중국에서 한국으로 왔다. 초등학생 시절 그는 기독교적 가치관으로 중국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교육 선교' 비전이 있었다. 꿈을 이루진 못했으나, 한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이미용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 사업을 하며 남편과 딸, 어머니와 함께 서울에 터전을 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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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약 6년 전인 2019년 무렵 수원으로 이사했다. 전셋집을 구하려고 부동산을 돌아다녔다. 신기하게도 여러 곳에서 같은 빌라를 추천했다. 공인중개사들이 반복해서 추천한 만큼 마음이 갔지만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보니 근저당이 14억 원가량 잡혀 있었다. 걱정이 된다고 말하자, 공인중개사들은 다른 건물 등기부등본을 떼 봐도 이 정도 근저당은 잡혀 있고 혹시나 문제가 생기더라도 최우선 변제를 받을 수 있다며 비슷한 답변으로 안심시켰다. A는 공인중개사들의 말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해 계약을 맺었다.

2023년 어느 날, 한 주민이 갑자기 문을 두드렸다. 창백한 얼굴이었던 그는 급히 주차장으로 와 달라고 했다. 내려가 보니 세입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 주민은 사람들을 향해 집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두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것이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6년 전 공인중개사들이 소개한 건물 대부분은 한 사람 소유였다. 건물 37채 675가구, 710억 원에 이르는 초대형 전세 사기 사건이었다. 건물주 정 씨 외에도 아내와 아들 등이 동참했다는 점에서 '수원 일가족 전세 사기 사건'으로 불린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땐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대처 방안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냥 모르겠더라고요. 그때는 오히려 괜찮았어요. 다음날부터 현실이 받아들여지면서 더 지옥이었어요."

수원 전세 사기 규모가 워낙 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었기 때문에 A는 문제없이 전세사기피해자법에 따라 전세 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그래도 살길이 생기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배포한 안내문에 나와 있는 대로 지원 절차를 진행하려 했다. 그런데 센터에 연락해 보니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가 없었다. 그가 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0부터 다시 시작하란 말"
외국인에게 더 아픈 제도적 한계


A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지역 대책위원회에서 도움을 받았고, 같은 처지에 놓인 전세 사기 피해 외국인들을 많이 만났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 피해자들은 대부분 소득이 많지 않았다. 전세금은 곧 전 재산이었기 때문에 더욱 절망스러운 상황이었다. A는 "이들은 대부분 일용직 노동자다. 전세금은 현장 근로로 모은 돈"이라며 "외국인은 대출 자체가 잘 안된다. 이분들이 위기에 있는 결정적 이유는 평생 모아온 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전세금은 먼저 한국에 왔던 부모님들이 식당에서 일하며 모은 재산과 나중에 온 자녀들까지 모은 돈이다. 이걸 잃게 되면 0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소통이 곤란해 피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A는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전세 사기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신다. 지난번 안산에서 열린 외국인 간담회에는 러시아 분들이 왔는데 아예 소통이 안 돼서 통역이 있어야만 했다. 심지어 경매 사이트에 들어가 조회하는 방법조차 모르고 계셨다"고 말했다.

A는 구조적인 문제도 외국인 피해자들을 힘들게 하지만 무엇보다 일부 한국인이 가진 사회적 시선이 더욱 고통스럽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인 피해자들의 상황을 전하는 뉴스 보도나 소셜미디어 댓글을 보면서 자포자기하는 분들이 많다고 토로하면서 외국인 지원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소셜미디어를 보면 '우리가 낸 세금으로 왜 너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느냐'는 반응이 있어요. 사실 저희도 똑같이 세금을 내고 있거든요. 왜곡된 사회적 시선으로 어려움을 토로하시는 외국인들이 계세요. 애초에 얘기해 봤자 바뀌는 게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저는 (댓글을 보면) 그냥 '참 모르시는 분들이구나' 이렇게 생각해요. 반대로 제가 중국에 산다고 했을 때 대한민국 국민이 와서 혜택을 받는다고 하면 저는 그런 댓글 달지 않을 것 같아요. 지금은 글로벌 시대이고 개개인의 이슈를 전체적인 시선으로 보는 건 이해가 안 돼요."

A는 현재 거주하고 있는 빌라에서 유일한 외국인이다. 지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 당장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경매 유예'뿐이다. 하지만 그가 유예 신청을 하면 다른 호수까지 포함돼 빨리 경매가 진행되길 바라는 다른 세입자들에게 눈총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같은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갈등을 겪고 있는 A는 무엇보다 외국인도 내국인과 같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별법에 따라 금융 지원, 주거 지원을 차별 없이 똑같이 받게 해달라. 단체 채팅방에 있는 모든 외국인 분이 말씀하시는 내용이 똑같다. 차별은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지원이 같으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특별법에 외국인은 지원에서 배제된다는 조항이 따로 있지 않기 때문에 정부 지침과 정책을 수정하면 얼마든지 차별을 없앨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A는 "(외국인 지원 제한은) 정부 기관의 지침일 뿐이다. 도움을 주고 계시는 분들 모두 법적으로 안 된다는 조항이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하신다. 법을 바꾸려면 매우 힘들겠지만 문을 계속 두드리면 가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바뀌면서 확실히 피해자들과 함께 소통하는 자리가 많이 마련됐다. 그래도 조금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시 권선구 빌라 밀집 지역. '수원 일가족 전세 사기 사건'으로 수원 지역 전체에서 500여 명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뉴스앤조이 안디도

A는 혹시라도 쫓겨날 상황을 대비해 아이의 학원을 줄였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현재 하던 일을 그만둔 상태다. 자연스럽게 수입은 적어졌고 삶은 팍팍해졌다.


"엄마로서 역할이 먼저니까 지금 하던 일들을 관뒀어요. 수입은 예전보다 줄어들었어요. 정말 치킨 하나 시켜 먹는 것도 계획적으로 해야 돼요. 아이는 모르잖아요. '나 오늘 치킨 먹고 싶어. 뭐 하고 싶어' 말하는데 '안 돼. 일주일에 한 번, 주말만 먹자' 이렇게 얘기를 할 때 너무 마음이 아파요."

매일 아침 살고 있는 집에 매각 기일이 떴는지, 경매 속행 신청을 한 사람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법원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게 요즘의 일과가 됐다. 고통스러운 상황에도 그의 걱정은 오직 아이뿐이다. 그는 "매일 아침 사이트를 뒤져보는 게 너무 무섭다. 왜 이렇게 힘들게 24시간을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삶의 질이 떨어지고 행복을 찾을 수가 없다. 그나마 아이가 웃을 때 함께 웃을 수 있다. 엄마의 정신 건강이 불안정하니 아이에게 영향이 왜 안 미치겠나. 계속 불안하게 산다. 마음 편히 못 산다"고 털어놓았다.

가족들과 수원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 가고 있는 A는 기도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쫓겨나지만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지만 어떤 결과든 최상으로 주실 것이라 믿는다. 마음에 들지 않고 나의 계획과 다를지라도 받아들이고 생활에 큰 타격을 받지 않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한다"고 말했다.

교회가 전세 사기 문제, 특히 이주 노동자 피해자의 상황에 연대해 달라는 요청도 전했다. A는 "교회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많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피해자 중에서도 차별받는 소수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기도해 주셨으면 한다. 또한 기도뿐 아니라 행동해 주셨으면 좋겠다. 교회가 TF팀을 구성해 외국인들의 애로사항을 함께 듣고 정책적인 변화에 도움을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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