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5

최형익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 : 네이버 블로그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
킨키나투스
2015 9 14 
 
그레고리 헨더슨. 2000(1988).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한울아카데미.


1. 한국의 정치패턴은 외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서조차 아직 거의 해
명되고 있지 않다(39쪽). 한국이 정치학자들에게 중요시되고 있는 것은 한국
의 인구가 많다거나 그것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만은 아니다. 과거 한국정치형
태의 추세, 이른바 (도시국가형이 아니면서)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중앙집권
적 과두정치 형태는 세계 역사상 희귀한 사례다(40쪽). 한국정도의 안정된
지리적 판도를 가지고 이 정도로 영속적인 정치적 구조 안에서, 이 정도로 획
일적인 민족, 문화, 언어의 환경을 유지하며 이런 규모의 나라로 뿌리를 내린
전통은 다른 곳에선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한국처럼 지방세력의 성
장을 완전히 배제하고 중앙집권적 지배를 오랜 세월 흔들림 없이 지속한 나라
도 드물다. 한국이라는 온실에는 몇 명의 정원사가 있긴 했지만 온실의 온도
와 토양은 놀라운 불변성을 유지해왔다....하지만 정치적으로 그토록 중앙집
권화된 제도는 오늘날(이 서문이 쓰여진 시점인 1988년-자주)에 와서야 민
주주의적 구조 내에서 존속 가능한 안정적인 제도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으
로 보인다(41쪽).

2. 단일의 긴 정치전통을 가진 동질문화가 자발적인 정치적 통일과 단결을 이
뤄내지 못했다는 거듭된 실패는, 잠재적 다수파를 굴욕적으로 패배한 소수파
로 전락시켜 다수의지의 표명, 나아가서는 민주주의의 표명을 좌절시키는 것
이다. ...정치적 응집력의 결여가 원래 역사상 특정 인물의 개성이나 전술 혹
은 우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다음에 서술할 한국역사의 각 장에서 잘 보여
줄 것이다. 일례로 1천300만 명의 인구가 겨우 수천 명(4~6천명)의 일본군
을 상대했음에도 불구하고 1910년 한일합방에 대해 효율적이고 단합된 저항
을 하는 데 실패한 것 등이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내우외환을 맞아 보여주는
정치적 응집력의 결여는 한국의 역사를 통해 오랜 기간에 걸쳐 전염병처럼 반
복되었다. 그것은 때대로 근대화에 대한 한국인들의 노력을 좌절시켰다. 외국
세력이 임의적으로 남북을 분할시킨 것을 제외하곤, 거의 완전하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분열의 객관적 근거(43쪽)가 없는 이 나라의 분열에 관한 설명
을 도대체 어디에서 구해야만 할까?

3. 나는 이 책에서 한국의 단일성과 동질성이 강력한 제도의 형성이나 촌락
과 군주 사이의 자발적인 제휴가 돼 있지 않은 사회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
다고 주장했다. 한국사회는 단계적으로 대략 점점이 흩어져 있는 촌락, 작은
저자[시장]가 있는 소도시, 벌족이나 지역 소유의 서원이나 향교 내지 사찰로
구성돼왔으며, 이들은 주로 국가권력과 개별적 관계를 가지고 상호간 교류를
해왔다. 이런 사회는 전형적으로 원자화된 개체로 구성되어 있고 개체 상호간
의 관계는 주로 국가권력에 대한 관계로 규정되며 엘리트와 일반대중은 그들
사이를 조정할 수 있는 집단의 힘이 취약하기 때문에 직접 대결하게 되고 여
러 사회관계의 비정형성과 고립을 특색으로 하고 있다.

4. 대중사회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들 대부분은 중앙집권과 독재정치를 지
향한다. 한국사회는 다른 사회들과 구분되고 있는데 그것은 종류에서가 아니
라 진행된 추세에서 보인 극단적 수단에서 구분되는 것이다. 한국은 좁은 국
토에다가 인종도 종교도 정치도 언어도 혹은 다른 어떤 기본적인 원천도 적대 
적인 요소로 분리돼 있지 않으며 이런 보편적인 가치구조가 각 그룹으로 나뉘
는 데 깊이나 계속성 혹은 선명도가 거의 없는 사회를 만들어냈다. 기득권, 종
교적 반목, 기본적 정책의 차이 및 이데올로기적 분열은 좀처럼 발생하기 어
려웠을 뿐만 아니라, 또 다른 한편으로 장기간에 걸쳐 별로 중요시되지 않았
기 때문에 이 사회가 만들어내는 정치형태 안에서 그런 것들이 적당한 지위
를 점하지 못했다. 이리하여 한국에서 집단을 만드는 것은 주로 구성원들을
권력에 접근시키기 위한 기회주의적 수단이었으며 서로간 별 상위점이 없기
때문에 각 집단은 구성원의 개성과 그 당시 권력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구별
할 수 있다. 그래서 집단을 만드는 것은 파당을 만드는 것이며 파당으로부터
실질적인 정당을 벼려내는 토론과 관심은 한국과 같이 동질적이고 권력지향
적인 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44쪽).
그 결과 극도로 구심적인 역학 패턴이 나타나게 되는데, 영토가 협소하기 때
문에 그것의 격렬성은 중국이나 러시아와 같이 좀 더 광대한 대중사회에서나
감내할 수 있는 한도를 훨씬 초과하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역학 법칙은 사회
의 여러 능동적 요소들을 권력의 중심으로 빨아올리는 하나의 강력한 소용돌
이 형태를 띠게 되었다. 유럽이나 일본식 봉건사회를 경험하지 못한데서 오
는 취약한 하부구조를 가진 중앙집권적 관료정치에서는 수직적으로 강력하
게 내리누르는 힘이 이런 상승기류 속에서 서로 간 보완관계를 갖게 된다. 말
하자면, 수평적 구조의 취약성이 강력한 수직적 압력을 크게 증가시킨 것이
다. 중앙에서 내려누르는 수직적 압력은 그것을 억제할 만한 지방세력이나 혹
은 독립적 집단들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일단 형성된 소용돌이를 제
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반작용이 걸리지 않는다. 더욱 현기증 나는 상승기류
는 모든 구성원들이 더 낮은 수준에서 응집되기 전에 권력의 정점을 행해 원
자화된 형태로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 서로의 구성요소들을 빨아들이는 경향
이 있다(45쪽).  


5. 한국인들이 정치적으로 움직여왔다는 나의 소용돌이 이론은 만들어진 것
이지 태생적인 것은 아니며 나의 관점으로는 한국 정치문화에서 중간층이 약
하고 응집력과 계속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들
의 영향을 받으면서 한국인들은 오히려 빨리 소용돌이 행위를 포기하고 있
다. 공장들의 수요로 인한 수도 이외 지역의 자원개발, 전문직 또는 특수직의
증가, 다원적 기능을 가진 다원사회의 발생을 동반하는 현대화가 한국의 여
러 문제해결에 적합한 제도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 다원주의 사회의 대결합
은 역량이나 연령 및 위세와는 상관없이 그리고 정부보다 빠른 정통성을 갖
고 일어남으로써 큰 걸음을 내디뎠다. 이런 다원주의가 완전한 독립성을 가
진 정치적 다원주의로 전환하는 데는 아직 시간이 걸릴 것이며 형성과정에 있
다. 새로운 결합이 그간의 독재주의 혹은 독재정권 내에서 부분적으로 배태돼
왔기 때문에 북한에서 그리고 남한에서 어느 정도까지는 다원주의를 탄생시
킬 수 있을 것이다(51쪽).....이런 현대화의 영향이 끈질기게 한국의 정치문
화에 작용하여 그것을 변화시키고 있으며 아마도 비관론자들이 예측하는 것
보다는 훨씬 더 빨리 좋아질 것이다(52쪽).

6. 토크빌이 프랑스에 대해 술회한 것처럼, 조선에도 정부가 중앙집권화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구성요소가 응집돼 있지 않았다. 계급 또는 일족의 특수성,
공동체 의식, 긍지 그리고 충성심을 응결시키지 못했다. 공통적인 이해관계
와 공통적인 목표 및 지도력이라고 하는 것은 극단적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
만 생기는데, 그런 위기는 조선의 태평스런 사회에서 좀 채로 없었던 것이다.
사회가 화해에 의해서가 아니라 병합에 의해 발전했기 때문에 규칙을 만들고
거기에 복종하는 것에 적대적이었다. 적어도 하층 양반들의 신분상승 기대가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강력하게 작용했으며, 그런 기대가 조선정치의 동력
이 되었다. 권력을 제어하기 위한 집단을 형성하고 법률과 사회적 압력에 의 
해 권력을 중화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개개인들이 뿔뿔이 분산된
채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위로만 돌진하는 것이 당시의 사회풍조였다. 이런
조선의 계급제도 속에 이미 현대 한국정치의 특징이 배태되고 있었다
(100~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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