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8-30

생명평화 즉문즉설-김조년교수 - Daum 카페

늙은 전사의 노래 권총이야기 | 생명평화 즉문즉설-김조년교수

즉문즉설3. 김조년 - 우리 사회가 조금만 더 잔잔했더라면...
김재형 2009-10-24 12:33:03, H : 103, V : 8



우리 사회가 조금만 더 잔잔했더라면 - 김조년 선생님







김조년 선생님은 생명평화결사의 포럼위원장이세요.

이번 즉문즉설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세요.

이번 일을 진행하면서 원래 오늘 강연은 선생님께서 다른 분을 추천하셨어요.

그리고, 부탁까지 하신 상태였어요.

그런데, 제가 반대했어요.

선생님께서 직접 하셔야 한다고 했어요.

선생님으로선 참 힘드셨을 거예요.

이미 부탁하신 분이 있는데, 그 분에게 다시 안된다고 말씀드려야 하고, 또 자신에게 책임도 돌아오는 자리였어요.

그런데도 선생님은 제 이야기를 다 받아 주셨어요.



작은 일화 하나이지만, 이 이야기에는 김조년 선생님의 많은 부분이 담겨있어요.

선생님은 선생님께서 원하는 것이 있을 지라도, 누군가 적극적 의지를 가지고 있을 때는 그 의지를 지원해 주는 분이세요.

이런 이야기는 대전에서 활동하는 여러 활동가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어떨 때는 더 힘들다고, 다른 단체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나서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그걸 관철시킬려고 노력해서 일이 진행되는 속도가 있는데, 선생님에겐 그게 없어서 내가 생각하지 않으면 일이 안되는데, 지나고 보면 김조년 선생님의 방식이 새로운 사회에 맞는 방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만약 한국 사회가 유럽과 같이 중심 도시인 수도를 중심으로 사회가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각 도시마다 특징을 가지고, 그 특징에 맞는 삶과 운동을 구성하는 데 성공할 경우 어디에 살든 중요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회였다면...

만약 한국 사회가 격동의 변화를 겪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사회였다면...

그런 사회에서 김조년 선생님은 어느 정도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제가 보기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지명도로 치면 ‘박원순 선생님’ 정도의 평가는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어쩌면 김조년 선생님께서 그렇게 존경하시는 함석헌 선생님 정도의 사회적 존경을 받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 사회는 미친듯이 내달리는 사회였고, 그런 사회에 선생님께서 개입할 수 있는 공간도 많지 않았고, 무엇을 했더라도 제대로 평가받기도 어려운 사회였어요.

만약 우리가 조금만 더 잔잔한 사회 속에서 잔잔한 삶을 살 수 있었으면, 김조년 선생님은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지식인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즉문즉설에서 선생님의 이야기는 이 분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분인지를 알 수 있는 자리였어요.




그 동안 즉문즉설은 가능한 범위에서 생명평화결사 회원인 등불들의 자발적 참여로 구성한다는 원칙을 중심으로 준비하고 있었어요.

원칙을 정하고 그에 따라 일을 공개하고, 공개된 일에 대하여 누구나 자발적으로 마음을 내고, 되어진 결과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해왔는데, 아쉬운 것 중의 하나가 강연과 함께 공연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

이번에는 그게 자연스럽게 된 게 시작부터 기분 좋은 일이었어요.



강화 산마을학교에 다니는 구동훈님이 김조년 선생님과 참석하신 분들을 위해서 하모니카를 불러 주겠다고 왔어요.

정말 아름다운 곡이었어요.

거기다 1부 강연을 마치면서 이종희 선생님께서 직접 다같이 춤을 출 수 있도록 도와 주셨어요. 이것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진행해 주셨어요.

참석하신 분들 중에도 서로 서로 연락해서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구요.

1시간 먼저 가서 기다리면서 바닥에 방석을 깔면서 기도해요.

‘제발 내가 깔아 둔 자리는 채워 주세요.’

지난 두 번다 안됐는데, 오늘은 다 채우고 방석을 더 내렸어요.

마치고 다들 이제 어느 정도 홍보가 되어서 그런다고 좋아하시는데, 저는 그런 것보다는 김조년 선생님의 오랜 운동 방식이 드러나는 거라고 봐요.

선생님 주위의 사람들은 누구나 이렇게 자발적으로 움직여요.




김조년 선생님하면 많은 사람들은 ‘표주박 통신’이라는 편지를 떠올려요.

‘사랑하는 벗에게’로 시작하는 그 편지는 이제 20년이 넘게 나오고 있고, 한번 발행할 때 4천 부 정도를 보내고 있어요.

그런데, 36면으로 구성되는 이 편지 통신은 지금까지 한번도 원고 청탁을 한 적이 없고, 특집 기획을 한 적이 없대요. 무료 잡지를 보냈지만, 돈이 모자란 적도 없었구요.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잘 상상이 안되는 일이죠.

자발적으로 모이는 원고와 선생님께서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어느 정도 쌓이면 그 편지를 전국에 있는 벗들에게 보내는 거죠.

그런데, 사람의 생각이 사회와 완전히 벗어날 수 없으니까 그 자발적인 생각이 어떤 흐름을 가지게 되고 편집해 놓고 보면 그게 기획한 것처럼 보이더라는 거였어요.

‘기획하지 않는 기획’ ‘행동하지 않는 행동’ 이라는 오래된 이상이 가능하다는 걸 20년이 넘는 세월을 통해 보여주신 거였어요.




아마 한국 사회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 선생님 중에 ‘편지를 꾸준히 쓰는 것’으로 그 길을 열어 내신 분은 김조년 선생님이신 것 같아요.

우리가 아는 여러 선생님들은 훌륭한 책을 쓰거나, 중요한 운동에서 성과를 내거나,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거나 해서 선생님이 되셨는데, 김조년 선생님의 방법은 편지였어요.

우리 사회 어느 지도자보다도 잔잔한 방법을 택하셨어요.




생명평화 운동은 외부의 거친 물결에 호흡을 맞추지 않는 운동이예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요동치는 세상에 휩쓸려 들어가서 그걸 억누르는 방법이 아니예요.

당연히 비판받을 수 밖에 없죠.

무수한 사람들이 생명을 바치고, 희생하면서 민주주의를 이루어갈 때 생명평화 운동은 한발짝 밖에서 거리를 유지했고, 무임승차하면서 희생을 치르지 않았어요.

물론 생명평화 운동의 선생님들 중에는 어려운 고통을 겪은 분들이 많지만 크게 봐서 우린 이 세상에 대해 제대로 책임지지 못했어요.

그러나, 김조년 선생님의 삶을 보면 책임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새롭게 생각할 수 있어요.




‘생명평화 운동이 우리 사회의 진보에서 무임승차하지 않았냐, 도사처럼 행세하면서 오히려 이명박 정부에 대해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건 아니냐?’

는 날카로운 비판이 나왔어요.




선생님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 자신의 용기없음을 고백하셨어요.

용산 참사에 대해 늘 안타까운 마음은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번 그 자리에 가보지도 못한 죄스러움도 고백하셨어요.

거친 사회에서 잔잔한 삶의 방식을 택한 지식인이 어디에 있어야 할 지는 쉽지 않은 일이예요.




선생님은 로사 팍이라는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미국 애틀랜타 몽고메리시에서 살던 그녀는 재봉사로 일하는데, 그날 그녀는 너무나 힘들었어요. 버스를 탔는데 앉을 자리가 없어요.

세자리가 남았는데, 그 자리는 흑인이 앉을 수 없는 백인의 자리였어요.

그녀는 너무나 힘든 상태였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앉았어요.

조금있다 옆의 두 자리에도 흑인이 앉았어요.

그 다음에 백인이 탔는데, 백인 자리에 흑인이 앉은 것을 보고는 운전사에게 말했어요.

운전사는 로사와 두 흑인에게 일어나라고 말했고, 옆의 두 사람은 일어났지만, 로사는 끝까지 거부했어요.

자신도 돈을 내고 버스를 탔고, 지금 너무나 지친 상태인데, 인간으로서 흑인 백인을 떠나서 이렇게 지쳤을 때는 자리에 앉는 배려를 받을 존엄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건 자리를 내주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존엄성의 문제였어요.

결국 로사는 백인 자리에 앉아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 갔어요.

그게 ‘흑인 인권 운동’을 폭발적으로 일어나게 한 하나의 계기였어요.

이 사건을 계기로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이 시작되었고, 1년이 넘게 몽고메리의 흑인들은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다녔어요.

이 운동을 통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지도력이 드러났고, 결국 오바마 라는 흑인 대통령이 미국에서 나올 수 있는 기초가 되었어요.




만약 그때 ‘로사 팍’이 자리를 순순히 양보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물론 흑인 인권 운동은 그래도 일어났겠지만, 그런 폭발적인 힘을 얻는 데 더 오랜 시간과 희생이 필요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죠.


생명평화 운동을 통해 사회적 의제에 참여한다 안한다 이런 문제를 떠나 한 개인이 자신의 존엄성을 깨닫고 실천하는 과정없이 사회의 변화는 늘 한계를 가져요.



지금 이명박 정부에 대해 다들 비판하는데, 지난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 찍었다는 사람은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어요.

아무리 국정 운영을 잘 못해도 지지율이 올라가는 데 누가 지지하고 있는 지 알 수 없어요.

함석헌 선생님은 유신 말기에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이제 내 싸움의 대상은 독재 정권이 아니라 씨알 자신이다.’

이젠 싸움의 대상이 바뀌었어요.

이명박 대통령이 아니라 그를 지지하고 있는 나 자신이예요.

내가 바뀌면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바람에 불과해요.




먹물 한 방울이 떨어져 한 동이의 맑은 물을 흐릴 수 있듯이, 대양같은 흐린 물이 있을 지라도 맑은 물이 한방울씩 한방울씩 끊임없이 떨어지기만 한다면 대양같이 흐린 물도 맑은 물이 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선생님의 믿음이었어요.




희영님이 제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몇 분을 초대했는데, 1부만 듣고 쉬는 시간에 돌아가셨대요.

왜 가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이 자리가 너무 힘들대요.

다른 강연은 가서 편안한 마음으로 듣고 오면 되는데, 여기는 그렇지가 않대요.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할 것을 요구한대요.

그냥 앉아 있기도 힘들대요. 그래서 간다고...




우리 삶은 근원적으로 노예화되어 있어요.

노예화된 상태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요.

이명박 같은 지배하는 지도자가 있어야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요.

생명평화 운동은 그걸 깨고 있는 중이예요.

당연히 짜증나죠. 이명박 때문이라고 말하면 편할건데, 나 때문이라고 하니까요.

짜증나니까 한마디 해주고 싶죠.

‘그래 너 잘났어. 도사  ㅅ ㅐ ㄱ ㄱㅣ 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헛소리하고 있어.’




그러나, 그런 감정적 흥분을 한번만 누르고 자세히 들어볼 필요가 있어요.

잔잔한 마음을 얻게 되면 잔잔한 이야기가 들리게 되요.

그리고, 진실이 보이게 되요.




김조년 선생님의 이야기는 시종 일관 잔잔했어요.

그런데도 여러차레 박수를 받았어요.

그 잔잔한 이야기가 들린거죠.




다음엔 마사키 타까시에요.

일본의 환경 운동가이고, 평화 활동가예요.

워크 나인(9)이라는 이라는 운동에 참여하면서 일본의 평화 헌법을 지키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한국을 100일 동안 걸으며 일본의 평화헌법 9조를 지키는 것은 일본을 위한 일을 넘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일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동영상 온라인 인문학 강좌 회사인 ‘아트앤 스터디’에서 이번 즉문즉설 전체를 동영상으로 만들고 있어요.

지난 번 브루스 게그넌 강연은 한겨레 신문에서 취재하면서 현재 아트앤 스터디 공개 강연 중 최고 인기 강연이 되었대요.

그런데, 게그넌의 사진을 인터넷 검색을 해봤는데, 찾을 수가 없었대요.

마사키도 마찬가지였대요.

이 분들은 우리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들의 사회에서 진지한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이었어요.




다음에 와서 마사키에게 질문을 던져 보세요.

저는 제가 순례를 해봐서 알아요.

순례자에게 묻고, 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 한 사회의 모순을 넘을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어요.




우리 시대 비폭력의 길을 묻는다. 네 번째 마사키 타카시

10월 30일 금요일 6시 30분부터 장충동 분도빌딩 5층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3번 출구)

다음 월요일에 경향신문에서 세번째 이야기 기사가 나옵니다.
김연숙 (2009-10-27 11:20:44)

좋네요..좋군요. 글로 옮겨 놓기만 해도 이리 좋은데...함께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나...멀리서 응원 보내며..글은 살포시 담아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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