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14

수학자 김용운 "한·일 집단無의식이 양국 갈등의 원인…구조적 틀에서 풀어야"

수학자 김용운 "한·일 집단無의식이 양국 갈등의 원인…구조적 틀에서 풀어야"
입력2014.08.17 21:18 수정2014.08.18 01:29 지면A33

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2014081707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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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관계 연구하는 원로 수학자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

한·중·일 둘러싼 역학구조는 1000년 전과 동일
백제 유민의 恨이 일본 지도층의 피해의식으로 고착

80대 후반에도 건강한 이유는 끊임없는 호기심때문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가 프랙털 이론을 설명하는 포스터를 가리키며 수학과 역사학의 유사점을 설명하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인터뷰가 끝날 무렵 노학자의 시선이 허공을 향했다. 눈가에 번지기 시작한 눈물. 목소리도 물기에 젖어 점점 안으로 말려들었다. 지난주부터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수학자대회가 감정의 빗장을 푼 계기였다
“광복 무렵 우리나라에 수학자는 남북한을 합쳐 고작 다섯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랬던 한국이 세계수학자대회를 개최하다니….”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87·사진). 

일본과 수학이라는 두 가지 화두의 접점에 서 있는 국내 유일의 학자다. 1927년생. 팔순이 넘은 고령이지만 한 번 불이 붙은 논리는 막힘이 없었다. 역사 얘기에 외교 문제가 섞여들더니 어느새 복잡계와 프랙털이라는 수학 용어들이 뛰어다녔다. 미리 준비해 간 질문지는 끼어들 틈을 찾지 못했다. 받아적던 수첩을 덮으며 마지막으로 건강 비결을 묻는 상투적인 질문을 던졌다. 김 교수는 ‘호기심’이라고 답했다. 그 순간 그는 청년이었다.

▷한·일 관계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그럴 때가 됐습니다. 한동안 일본인들에게는 죄의식이 많았습니다. 전쟁을 통해 주변국에 피해를 입혔다는 것이죠.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는 외교적인 측면에서 우월한 입장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상 등을 거치면서 일본의 죄의식이 옅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인 사이에서는 ‘이제는 한국도 잘살게 되지 않았느냐’는 인식이 확산됐습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의 우월적 지위가 사라지고 대등한 상황이 된 것이죠. 독도와 위안부 등의 문제가 예전에 비해 더욱 폭발력을 갖게 된 것은 이런 상황 변화에 기인합니다.”

▷어떻게 양국 관계를 풀어나가야 할까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한국과 일본 양쪽이 모두 깊은 피해의식을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걸 서로 이해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지금 한국과 일본에 사는 대부분 사람들은 일제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관념적으로만 과거의 역사를 인식하고 있다는 얘기죠. 여기에 피해의식이라는 집단 무의식이 스며들면서 고약한 국면이 돼 버렸습니다. 상대방 국가에 대해 어떤 말을 해도 애국이 된다는 이상한 인식도 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익이 어디에 있는지 그 어느 때보다 잘 살펴서 슬기롭게 대처해야 할 시점입니다.”

▷일본이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한·일 갈등의 기원이 저는 663년에 벌어진 백강 전투에 있다고 봅니다. 아시다시피 백강 전투는 백제·왜 연합군이 당·신라 연합군에 패배한 싸움입니다. 당시 일본은 백제의 분국, 즉 속국과 비슷했습니다. 일본어로 백제를 ‘구다라(くだら)’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말 ‘큰 나라’에서 온 것입니다. 백제가 일본의 본국이었다는 뜻이죠. 당나라와 신라에 패퇴한 뒤 백제인들은 대거 일본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 수가 3만2000여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당시로는 엄청난 규모죠. 이들은 나중에 일본 정치권의 지도층을 형성하는데 그들의 가슴에는 항상 신라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됐다는 피해의식이 깔려 있었습니다. 저는 이걸 ‘원형’이라 부릅니다. 이런 집단 무의식은 지금까지도 내려오고 있고, 이게 한·일 관계를 매번 꼬이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비슷하고 가까워서 더욱 미워하는, 일종의 ‘근친 증오’라고 볼 수 있죠.”


▷1300여년 전의 역사적 사실을 지금의 외교관계와 엮는 건 좀 무리 아닌가요.

“하하. 그런가요. 하지만 제 눈엔 명확히 보입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역사적 증거들이 남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 야마구치현이라고 아시죠? 여기가 바로 백제인들이 집단적으로 거주했던 지역입니다. 근데 희한한 건 이곳이 바로 한국 침략의 사상적 토대가 된 정한론(征韓論)의 발상지라는 점입니다. 정한론의 원조인 요시다 쇼인을 비롯해 조선 초대 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 조선 초대 총독이었던 데라우치 마사다케, 을미사변을 일으킨 미우라 고로 일본공사 등이 하나같이 야마구치현 출신입니다. 아, 깜빡했네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고향 역시 야마구치현입니다.”

▷얘기는 흥미롭지만 금방 와 닿지는 않습니다.

“제 얘기의 결론은 한·일 관계를 하나의 구조적인 틀로 재조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국의 갈등 구조를 이루는 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좀 전에 말한 양국의 집단 무의식이 그 하나고,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사이에 끼어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이 또 다른 한 축입니다. 이런 기본 구조는 지금도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최근 들어 중국이 부상하면서 우리나라가 다시 외교적으로 샌드위치 신세가 된 것도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1000년 묵은 집단 무의식은 쉽게 청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정학적 특수성은 아예 바꿀 수도 없는 요인입니다. 따라서 한·일 양국은 현 단계에서 풀기 어려운 문제는 미래로 넘기고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게 합리적입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떠오르네요.

“수학과 물리학에 ‘프랙털 이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분의 구조가 전체의 구조와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개념입니다. ‘하나가 곧 전체이고, 전체가 곧 하나(一卽多 多卽一)’라고 하는 불교의 화엄경 사상과 상통하는 얘기죠. 집단 무의식으로 역사를 풀어 보려는 저의 노력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저는 그걸 ‘원형 사관’이라고 부릅니다.”

▷일본이 우경화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동일본 대지진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어느 나라든 대재앙이 닥치면 국민의식이 하나로 뭉칩니다. 자존감을 지켜내기 위해서죠. 정치가들은 이런 시류에 편승하기 마련입니다. 응집된 국민의식의 분출구를 찾아 주려고 노력합니다. 손쉬운 방법은 공통의 적을 만드는 것이죠. 일본에 가장 적당한 대상은 한국입니다. 반한(反韓) 의식으로 일본을 뭉치게 하는 전술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나 일왕 사죄 요구 발언은 이런 추세에 기름을 부은 격입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우익 세력들은 겉으로는 양국 관계를 걱정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아마 웃고 있을 겁니다.”

▷수학자이면서 역사 관련 서적을 20권 이상 내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수학은 기본적으로 구조의 학문입니다. 노엄 촘스키의 언어학이나 레비 스트로스의 문화인류학도 착안점은 수학입니다. 수학자이기에 역사학자와는 다른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볼 수 있고, 그런 생각을 꾸준히 책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요즘은 ‘바람 물 불’이라는 제목의 역사서를 쓰는 중입니다. ‘신바람’의 나라인 한국은 ‘바람’으로, 깊은 호수처럼 도도하면서도 속내를 알 수 없는 중국은 ‘물’로, 벚꽃처럼 화려하게 피었다 순식간에 사그라지는 화산열도의 나라 일본은 ‘불’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 역시 추상화한 개념으로 구조를 짜는 수학적 사고의 연장선에 있는 작업입니다.”

▷지난주부터 서울에서 세계수학자대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세계수학자대회에 처음 가본 것은 1969년입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대회였죠. 그때 함께 간 한국 수학자는 채 열 명이 안 됐어요. 그런데 어느덧 국력이 커져 우리나라에서 수학자대회가 열리다니…. 그때는 정말 이걸 상상도 못 했습니다. 어젯밤엔 너무 감격스러워서 잠을 한숨도 못 잤습니다. 한숨도….”

▷특별한 건강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호기심이 강해서 그런가 봅니다. 요즘도 뭐 하나 궁금한 게 생기면 밤을 거의 새워 버리죠. 꿈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때는 벌떡 일어나 메모도 하고 그럽니다. 하하.”

■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는
수학보다 한·일 연구로 유명…광주일고에서 교사 생활도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는 본업인 수학보다 한·일 문화와 역사 연구로 더 유명한 학자다. 일본 와세다대 공대 출신인 그는 한때 광주일고 수학교사를 하기도 했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등이 당시 제자들이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미국으로 유학가면서 전공을 수학으로 바꿨다. 그는 한국에서 아직 세계적인 수학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미친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수학의 세계에 빠져드는 사람이 드물다는 얘기다. “중·고등학교 교사를 하던 시절 정말 뛰어난 녀석을 세 명 봤는데, 그중 둘은 의사가 되고 하나는 학원을 차리더군요.”


△일본 도쿄 출생(1927년) △와세다대 광산과 △캐나다 앨버타대 수학 박사 △한양대 수학과 교수(1969~1993년) △한양대 대학원 원장(1987~1990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2000~2003년)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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