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9

16. 전희식. 중국의 젊은 농민들, 자연재배·유기농업 확대 꿈꾼다



중국의 젊은 농민들, 자연재배·유기농업 확대 꿈꾼다




중국의 젊은 농민들, 자연재배·유기농업 확대 꿈꾼다
'동아시아 지구 시민촌 2016 in 상하이', 4개국 농민들이 모였다
글전희식(nongju) 편집박정훈(twentyrock)
등록|2016.08.08 09:17수정|2016.08.08 09:17



▲ 행사포스터행사포스터 ⓒ 전희식
중국에서 귀국한 지 1달여 지났지만 여전히 기억에 많이 남는다. 선명한 기억 중 하나는 동아시아 농민대회에 참여한 20~30대의 젊은이들이다. 중국의 200여 참석자 중 대부분은 젊은이들이었다. 발표, 진행, 기획 모두 젊은이들이 이끄는 장면들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우리 참가자들에게는 없는 모습이어서 일 것이다.

젊음. 그렇다. 평균연령이 60이 넘는 한국 참가자들에게는 '젊음'이 가장 부럽다. 이들을 보니, 30여 년 전 젊은 열정과 아스팔트를 달구던 함성이 절로 떠올랐다. 집회장과 거리시위에는 나를 포함해 늘 20대 애송이만 바글거렸다. 돈이 있나, 경험이 있나, 아는 사람이 있나, 정보가 있나, 만날 러시아혁명사와 일본에서 번역한 정치경제학 원서들이나 읽으면서 토론을 벌였다.

그 당시 폴란드의 라흐 바웬사가 이끌던 솔리다리티(자유노조연대)에서 레닌그라드조선소 파업을 하는 보도를 봤는데, 거기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노친네들이 데모를 하지 않는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그때가 생생하다.

중국의 이 젊은이들이 경제와 군사부문에서 무섭게 질주하는 중국을 생태와 생명평화, 농업과 농촌을 중요하게 여기는 방향으로 이끌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었다. 본 대회 3박 4일과 전체 일정 6박 7일 동안 같은 마음이었다. 중국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한국 뿐 아니라 지구 역사에 큰 변수가 될 수 있어서다.

중국의 귀농과 자연학교(대안학교) 운동

이번 대회의 정식이름은 '동아시아 지구 시민촌 2016 in 상하이'였다. 상하이에서 열리는 지구시민촌 대회는 이번이 3회째다. 앞서 '농민대회'라고 일컬은 것은 농업과 농촌, 농민의 가치가 전면에 내세워졌기 때문이고 한국에서는 농민들이 갔기 때문이다. 행사도 다 농촌에서 진행되었다.




▲ 마을 운하마을 가운데로 운하가 흐른다 ⓒ 전희식
이 대회를 어디에서 협찬한 것인지를 보면 이 대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인민대학 지속발전 고등연구원, 서남대학 향촌건설학원, 쿤샨시 건설투자 발전 회사, 베이징 량슈밍센터, 쿤샨 유에펑따오 유기농장, 전국농민종자네트워크 등이다.

량슈밍센터는 농촌을 강조했던 중국의 저명한 유학자인 량슈밍을 기리는 기관이다. '향촌'의 개념은 우리나라의 귀농, 마을 만들기, 지속가능한 농촌 등으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서남대학은 인민대학이나 복주임업대학 등과 함께 <백년의 급진> 저자인 원톄쥔 사단의 두뇌집단이다.

원톄쥔(溫鐵軍, 65)은 중국 런민(人民인민)대 교수이며 '농업 및 농촌발전대학' 학장이다. 중국 경제개혁회 사무차장과 중국 거시경제연구재단 사무차장, 제임스 옌 농촌재건기관 대표로도 활동한다. 향촌운동의 주창자이며 농업, 농촌, 농민이라는 3농 개념을 정립했다. 중국의 대안문명운동은 원톄쥔의 영향이 크다.




▲ 농장자연재배의 현장 ⓒ 전희식
그의 저작을 읽다보면 북한농업의 붕괴에 대한 재미있는 진단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농업을 들여다보는 지침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농업의 과도한 기계화와 산업화를 경계하라는 지적이다. 북한농업의 붕괴가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원톄쥔은 탈북자들을 '탈북농자'라고 불러야 한다고까지 한다. 좀 색다른 주장이지만 그는 이 책에서 탈북자의 대량 발생 원인을 농촌의 과도한 기계화와 집단화로 농촌인구가 대부분 도시로 빠져나왔는데 그들은 다시 농촌으로 돌려보내니 적응할 수 없는 인민들이 탈북을 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소련의 해체로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자 북한의 모든 산업시설이 멈추게 되는데 농촌의 농기계도 멈춰 서게 된다. 남한보다 훨씬 기계화되었던 북한 농촌의 농기계가 멈춰 서버리니 도시로 나왔던 인민들이 다시 농촌으로 돌아왔지만 오로지 삽과 호미로 농사를 지어야 할 형편이었다는 것이다. 농사는 영업 또는 경영의 관점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다. 농업이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지키는 매개이자 삶의 보루라고 누차 강조하고 있다.

이번 행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어쩌면 원톄쥔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원톄쥔은 지금 중국이 겪고 있는 문제는 글로벌 시장에서의 산업자본, 상업자본, 금융자본 과잉이 저개발국, 개발도상국과 농업, 농촌에 그 부담을 전가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그는 중국 정부와 민간이 동아시아 사회에 공통적으로 유지되던 소농 위주의 순환적 농법을 벗어나 농업의 규모화, 관행화, 산업화로 일로매진(一路邁進)한다면, 일본, 한국이 겪었던 농촌의 해체와 농업의 몰락을 경험하게 될 것을 예언한다. 이런 진단은 중국 향촌운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은 사회생태농업이라고 주장한다.

이들 기관과 인사들이 후원을 한 행사였으니 짐작이 될 것이다. 성격이 차이는 나겠지만 이번 행사에 모인 사람들은 우리나라로 치면 농업, 생명, 귀농, 생협 관련 시민 단체와 운동가들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대회를 알리는 홍보물에서는 대회 주제도 '다원공생(多元共生) - 지속 가능한 사회를 이루어가는 아시아 시민들이 모이는 터!'였고 유기농 먹거리, 자연농법, 슬로푸드, 지속농업(퍼머컬처. 친환경적 삶의 공간, 생태원리를 따라 만들어진 생활원리), 자연(대안)교육, 적정기술, 자연에너지, 생협, 녹색관광(그린투어리즘) 등이었다.

생태적인 삶에 관련되는 주제를 다루는 강연과 워크숍들도 함께 진행되었다. 음악회와 연극, 놀이와 캠프파이어도 했다. 그러나 전체 행사는 일관되게 위의 주제로 모아졌다. 현대문명의 문제점을 발견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 이어갈 삶의 길을 찾는 것이었다. 신토불이와 천인합일(天人合一)을 크게 내세웠다.

이런 주제들이 중국에서 관심이 크고 활발하게 논의된다는 것이 반갑고 놀라웠다. 자연재배 농업과 유기농업 등의 논의는 우리들의 중국산 농산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줬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유기농사와 함께 자연학교를 매우 중요하게 실천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현상은 중국의 개방실용주의 정책으로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진행됨에 따라 경제가 성장하고 소득이 늘어났지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자본주의적 모순들과 맞닥뜨리게 된 것의 반영이 아닐까 싶다. 사회적으로 예민한 촉수를 가진 사람들이 위기를 일찍 간파하고 새로운 출로를 찾아 나선 모습이라 할 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그리고 북한

대부분의 대규모 행사가 그렇듯이 오전 9시에 개막된 첫날에는 기조강연과 패널토론이 있었고 오후에는 주제별로 조를 나누어서 토론이 진행되었다. 기조 강연은 개최국인 중국에서 맡았고 패널토론은 한국, 중국, 일본, 대만 4개국이 나누어 맡았다. 한국은 내가 발제를 맡게 되었는데 미리 제출한 발표문의 주제는 '소농과 영적 성숙'이었다.

몇 번 발표요청을 거절하다가 부득불 맡게 되었는데 이전에 치러진 두 차례의 행사 내용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주제를 잡았다. '소농'은 가족농 개념이므로 친근하겠지만 '영적 성숙'이라는 주제는 조심스러운 주제였다. 그렇지만 예상컨대 대부분의 분야별 논의와 토론이 유사한 맥락일 것으로 보였고 대안적 삶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이라는 점에서 이렇게 주제를 정했다.




▲ 모판 만들기모판에 볍씨 파종하기. 한국 농촌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 전희식
왜 소농의 삶을 추구해야 하는가를 문명사적 차원에서 제시하고 나름대로 소농의 신성성에 대해 피력했다. 결론은 소농적 실천으로 영적 성숙을 도모하자는 것이었다. 한글과 간자체 한문으로 프리젠테이션을 했고 동포 통역가의 도움을 받았다. 내 발표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몇몇 분들은 일본과 대만분들이었다. 아무래도 중국의 경우 영성이나 수련을 농사와 접목해서 생각하는 것이 주 관심사가 되기에는 시간이 더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전체 기조 발제는 베이징대학 보전생물학교수인 뤼쥐에(呂植)가 자연보호와 다원적 가치에 대해 학교에서의 활동 사례를 중심으로 했고 일본 패널로 참여한 '카토 다이고'는 대만에서 온 '리 워어핑'과 함께 생태집짓기와 농촌의 전통문화에 대해 발표했다.

나는 발표 중에 갑자기 북한이 떠올랐다. 대회에 모인 사람들은 엄격히 말하면 동아시아라기보다는 동북아시아라 하는 게 맞겠고 여기에는 북한이 빠질 이유가 없었다. 북한이 참석 못한 사정을 미루어 짐작 못 할 바는 아니지만 동북아시아 시민권역에서 빼놔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아무리 현실이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의 머릿속에서도 동북아시아 범주에서 북한이 빠져버리면 안 될 것이다.




▲ 밀 타작도리깨로 밀 타작 하는 모습. 도리깨가 넓적하다. ⓒ 전희식
그런 점을 지적하고 분단의 아픔과 동포에 대한 애틋함을 전하면서 "우리 조국은 하나다(Korea is One)"이라고 말하자 참석자들이 박수를 쳤고, 한국에서 온 사람들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3박 4일의 일정 동안 저녁에는 각종 문화예술 발표와 집단 놀이가 있었고 낮에는 작은 모임별 발표와 실습 및 어울림이 있었다. 처음 이틀은 상하이의 서남부에 위치한 칭푸(靑浦)에서, 뒤로 이틀은 상하이 서북부인 쿤산(昆山)에서 지냈다. 한국 일행들은 발표할 내용과 담당자를 미리 정해서 갔지만 현지에서 흥이 올라 더 활발한 참여가 있었다.

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출신인 정용수님은 현재 교장으로 있는 소농학교의 운영과 교육내용에 대해 발표했고 에코생협 이사장이었던 안병덕님은 생협운동과 먹을거리에 대해 발표했다.




▲ 생협운동 발표안병덕 선생의 발표 모습 ⓒ 전희식
둘째 날의 오전과 오후가 주제별 좌판(?)이 벌어지는 날이었는데 참석자들은 이 좌판 저 좌판을 돌아다니면서 자유롭게 끼어들 수 있었다. 통역은 한국말을 잘하는 중국인과 북한 출신의 재중동포, 그리고 영어 뿐 아니라 일어와 중국어, 영어에 능숙한 김유익님이 맡았다.

어떨 때는 재일동포이자 이 대회 사무국의 일원인 조미수님이 일어 통역을, 김유익님과 재중 동포들이 중국어 통역을 맡아서 한국 일행들이 많이 참여하는 좌판을 부지런히 찾아다니기도 했다.

공동체 마을인 선애빌의 '선애학교' 교장 등 오랫동안 대안학교 경험이 있는 김재형님은 자연(대안)학교를 발표하고 집담회를 이끌었다. 이분들은 1차 대회 때부터 참여한 분들이고 3차 대회 때부터 나를 중심으로 10여명의 한국인들이 더 참여하게 되었다.

그런데 3차 대회에 처음 참석하는 한국인은 또 있었다. 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의 대표인 이대수님, 사단법인 러브릿지 상임이사인 이선희님, 아시안프라이드 협동조합 왕치님이었다. 다들 한·중·일을 오가며 민간 교류를 하는 분들이었다.

교류의 밤

칭푸의 아침은 태극권으로 시작되었다. 유속이 느린 동네운하(하천)를 가운데 두고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숙소의 안마당에서 새벽 태극권으로 하루를 열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동네운하가 보였다.




▲ 태극권 ⓒ 전희식
이틀째 되는 아침이었다. 새벽 태극권 시간에 보니 운하에 늙은 할머니와 손주가 같이 타고는 긴 장대를 노 삼아 배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통발을 걷으러 가는 중이었다. 탁해서 강바닥이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물고기를 잡는 모양이었다. 배가 다시 올라올 때 어린 손자에게 가지고 있던 과자랑 오징어 등을 건네주니 그 애는 얼씨구나 하고 받아먹었다.

가장 흥이 나는 순서는 저녁 시간의 교류회였다. 어느 모임에서건 저녁 시간에는 친목 위주의 작은 축제가 마련되는데 4개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말은 통하지 않아 어색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일이 속출하였지만 그 정도의 불통은 견딜 만 했다.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이 도리어 상대에 대한 경청과 배려로 나타나곤 했다. 말이 많아서 탈이 생기는 경우는 많아도 말이 없어서(안 통해서) 생겨나는 탈은 '약간의 답답함' 외에 없었다.

교류회에선 각국의 장기자랑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본에서 온 춤꾼 한 분은 몸 연기가 탁월했다. 분장도 전문적으로 해서 춤과 연기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갔다. 초로의 일본인 부부는 현악기와 타악기를 함께 연주하는 솜씨를 보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대학 때 연극반 활동을 했다는 안병덕님이 '병신춤'을 추었는데 아주 오래전 공옥진님 춤이 연상 될 정도로 완벽했다. 병신춤은 사회적 약자의 호소 같기도 하고 숨겨진 내면의 위악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해서 감흥이 컸다.

거창에서 온 한대수님의 노래도 일품이었다. '선구자'를 불렀다. 노래에 앞서 간단한 인사말을 했는데 내가 일본 사람들을 흘깃흘깃 훔쳐보며 조마조마할 정도로 항일 독립투쟁의 무대로서의 중국 땅을 언급했다. 한대수님은 "교류라는 것이 무조건 좋다 좋다 하는 게 아닐진대 제가 처음 와 본 중국은 조선 민족에게 항일투쟁의 본거지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겠다"고 입을 떼었던 것이다.

더구나 노래가 선구자다 보니 한국 일행들은 다 따라 불렀다. 선구자라는 노래가 괜히 우리들을 조총 한 자루 어깨에 메고 삭풍이 부는 만주벌판에 서 있는 기분이 들게 했다. 무장 독립운동가의 간단한 일화를 덧붙인 그의 말은 중국어와 일본어로 동시통역이 되었었는데 다행히 일본에서 온 음악가 한 분이 말을 받았다.

그는 나도 아는 사람이었다. 일본군의 대학살을 사죄하는 프로그램으로 상하이에서 난징까지 걸었던 사람이었고 <나비문명>의 저자 마사키 다카시와 함께 한국에도 온 적이 있는 분으로서 몇 년 전에 워크나인이라는 단체와 함께 와서 일본의 평화헌법 9조를 지키는 걷기를 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일본제국주의 시절의 만행과 침략에 대해 잘못이었음을 분명히 했다. 마사키 다카시는 이 행사에 와서 며칠 같이 지내다보 니 참으로 지혜롭고 원숙해 보였다. 한국에서 강연을 들은 적도 있었는데 중국에서 함께 며칠 지내면서 훨씬 친숙해졌다.

쿤산에서의 저녁 교류회도 인상적이었다. 슬로푸드와 씨앗 나누기 행사가 함께 진행되던 마을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어색한 화려함과 매끄럽지 못한 스탭들. 급조한 네온사인. 시골의 무대는 정말 시골스러워서 좋았다. 이 행사에 초등학생들을 데리고 온 선생님도 있었고 마을의 늙은 주민들도 참석했는데 우리나라 시골처럼 그 마을도 늙은이들만 농토를 지키고 있었다.

음악회가 처음에는 정해진 출연자 중심으로 제법 노래나 연주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무대에 서더니 차츰 흥이 돋워지자 자발적인 출연자들이 생겨났고 사회자도 나라별로 자유롭게 무대에 오를 것을 권하게 되었다.

농민들이 동북아 평화 위해 힘썼으면...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DNA가 드러났다. 몇 차례나 무대에 삼삼오오 오르다가 나중에는 한국인 모두 다 무대에 올라가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출국 직전에 5.18 기념식에서도 제창을 하지 못했던 그 노래를 우리는 남의 나라에 와서 맘껏 부를 수 있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이 노래를 부르니까 대만에서 온 젊은이가 무대에 튀어 올라와서 대만어로 노래를 같이 불렀다. 이른바 노란우산 혁명 때 참여해서 그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만국의 공용합창곡이 된 셈이다. 뜻 있는 사람들이 정부를 향해서 개혁과 변화를 촉구하는 노래로 자리를 잡은 느낌이었다.

그곳 쿤산에는 특이하게 관리되는 과수원이 있었다. 풀을 제거하지 않고 함께 가꾸는 초생재배는 내게도 익숙한 것이었지만 과수원의 수종이 여럿인 것은 경이로웠다. 딸기, 블루베리, 배, 등의 과수나무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함께 심어져 있었다.

마지막 날에 소감을 나눴는데 다들 흡족해했다. 내년에 열리는 4차 대회 때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하자는 것과 우리나라에서도 젊은 친구들이 갈 수 있도록 어른들이 여비라도 보태주자는 얘기도 나왔다. 4차 대회가 중국에서 열릴지 아니면 일본에서 열릴지 모르지만 올 9월쯤에 일찍 한국측 준비위를 만들어서 미리 정보도 나누고 주제에 따른 학습도 하자는 약속도 했다.

중국에 남아서 자연학교 활동을 하기로 한 김재형님은 동북아시아의 지도를 거꾸로 뒤집어 보여주었는데 신기하게도 큰 연못을 공유한 형상이 되었다. 한·중·일이 연못을 끼고 다정하게 둘러앉은 모습이었다.

동북아시아에서의 갖가지 분쟁과 대립은 역사가 깊다. 미국이라는 존재가 이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 대회가 동북아의 평화 기운을 키워가길 바란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역할이 참 긴요할 때다. 그동안 문인이나 교사들은 동아시아 담론을 키워왔고 실천해 왔다.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농민들이 한 축을 담당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북한 농민과의 교류의 장이 되다면 더 없이 좋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발행하는 계간지 <귀농통문 여름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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