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8

210430 김민웅 "윤미향"이라는 주홍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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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210430



<"윤미향"이라는 주홍글씨
>
지난 해 얼마나 엄청난 폭풍이 불었던가요?
이제는 망각 속에 묻히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평생 헌신해온 분이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습니다.
언론의 과녁이 된 당사자는
이후 지금까지 초죽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직도 무한대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안부 배상 2차 소송에 대한 지난 4월 28일 사법부의 각하결정.
지금 떠올려야 할 사람 하나,
윤미향.

열한개 혐의에 대한 불기소.

그래서 해당사항에 대한 무죄가 이미 밝혀져도
그 어떤 정당도, 정치인도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여성단체들도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윤미향을 피합니다.
진실이 밝혀지면 그걸 도리어 은폐하거나 그에 대해 침묵하는 언론,
그래서 애초 자신들이 매장하기로 한 대상이 다시 살아날까봐
무덤에 커다란 돌을 막아 버리는 자들.
온갖 부정과 비리와 부패로 그득 찬
비호감, 혐오 대상으로 만든 책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언론이 그토록 떠들었던 일들.
그런데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불기소 처리 되었습니다.
미안하게 되었다는 말 한 마디 없습니다.
언론이 그토록 난리친 일들,
당사자 윤미향 의원의 주장이 맞았습니다.
그렇다면
근거도 없이 덮어씌웠던 베일을 풀어주어야 마땅한 거 아닌가요?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재판,
사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아무도 모르나
윤미향이 살아온 세월.
그래서 전력을 다해온 일
그건 너무나 소중합니다.
보호받아야 합니다.
탄원되어야 합니다.
위안부 책임 배상 2차 소송에 대한 지난 4월 28일 사법부의 결정
우리는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이게 도대체 어디서 부터 시작된 일일까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재판장 민성철)는 지난 21일, 고(故) 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 할머니를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등 20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했습니다.
재판부는 국제법상 주권국가는 다른 나라의 재판 관할권으로부터 면제된다는 ‘국가면제 원칙’을 들어,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책임을 묻는 1차 판결은
국제법적으로도 너무나 중대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결정이 뒤집어지게 된 것에 대해
누구도 제대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틀 안에 윤미향이 존재합니다.
이런 가운데 웃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나라들도 있습니다.
윤미향이 지워져야 된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을 겁니다.
<정의연> 운동을 삭제하고 싶은 겁니다.
미워해야 하는 존재라고 찍히면
작은 실수가 큰 범죄가 되고
작은 잘못이 죽을 죄로 지탄받아
공개처형 당하는 일은 되풀이 될 수 없습니다.
절대완벽은 인간에게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건 그럴 만 했구나, 그럴 수도 있지,
의도는 문제가 없었네.
이 정도를 가지고 이 중요한 역사적 작업을 훼손하는 것은
안 될 일이야.
그 일에 목숨을 걸고 살아온 사람을 이렇게 희생되도록 할 수는 없어,
라는 판단이 내려질 만한 일입니다.
그 어떤 정당도 이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어떤 정치인도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탄원의 목소리조차 내지 않습니다.
다음은 자신들 차례가 되어도 누구도 도와주지 않을 조건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이지요.
“윤미향”이라는 이름은
저주받은 주홍글씨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사법농단에 의한 통합진보당 해산도 합법이 되고
이석기 의원은 근거를 내세울 수 없는 내란음모로 아직도 옥에 갇혀 있습니다.
촛불혁명은 이런 것을 용납하지 말자고 들었던 시민들의 의지입니다.
무고한 사람을 모욕하고 짓밟고 범죄자처럼 만든 자들은 사죄하고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이렇게 찟기고 버려지고 묵살당하는 사람들이 자꾸만 생겨도
가만히 있으면
희생자는 계속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에 뛰어든 이들이
가차없이 제거당하고 사회적 사망선고를 받게 하는 일을
반드시 막아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역사는 이그러지고 망가지며
악취나는 늪에 빠지고 맙니다.
나병으로 고생하던 이를 치유한 예수는
그에게 말합니다.
“너의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라.”
왜? 그래야 그가 공동체에 당당하게 복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린 뒤 예수는 말합니다.
“그의 몸을 칭칭 동여매었던 베옷을 모두 풀어주어라.”
그가 죽었다는 표시가 된 것들에서 해방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그 베옷을 풀어주지 않고
죽은 자라고 손가락질 합니다.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은 걸까요?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려도 변호해주지 않는 세상인가요?
아니면 무고한 이들을 지켜주는 세상인가요?
죄없는 이들에게
저주의 주홍글씨를 붙이는 포악한 언론과 정치세력들,
그들에게 더는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겁니다.
그래야 역사가 생명을 얻습니다.
저들은 악마들입니다.
역사에 헌신하는 생명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1.6K송필경, Chung Hyun Kyung and 1.6K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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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K Park

억울한 모함으로 추방의 제의에 앞장선 이들이 이나라 정의의 보루라는 검찰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들의 범죄를 정당한 법치라고 주장하는 타락한 언론은 억울한 이들의 복귀를 가로막습니다. 불의한 세상입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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