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6

알라딘: 거대한 역설

알라딘: 거대한 역설

거대한 역설 - 왜 개발할수록 불평등해지는가   
필립 맥마이클 (지은이),조효제 (옮긴이)교양인2013-03-29원제 : Development and Social Change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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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쪽

책소개

개발의 렌즈로 본 자본주의 문명 비판서. <거대한 역설>은 지난 수백 년간 세계를 움직여 온 정치.경제적 흐름을 ‘개발’이라는 관점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독창적인 역사서이자, 환경과 에너지 위기, 슬럼 확산과 식량 위기 등 현재 세계가 처한 전방위적 위기를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의 대안을 구상하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문명 비판서이다.

미국 코넬대 교수이며 국제 개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필립 맥마이클은 이 책에서 ‘개발’과 불평등 확대의 내적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헤친다. 번역은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학자로서 오랫동안 NGO(비정부기구)와 개발의 문제를 연구해 온 성공회대학의 조효제 교수가 맡았다.
목차
옮긴이 머리말 / 머리말 / 국제 개발 연표

1장 개발이란 무엇인가
개발의 역사와 정치 / 개발 이론 / 개발의 역설 / 결론

1부 개발 프로젝트 (194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

2장 개발 프로젝트의 기원
‘개발’의 뿌리, 식민화와 산업화 / 탈식민화 / 탈식민화와 개발
제3세계와 ‘개발의 사다리’ / 개발 프로젝트의 구성 요소
개발 프로젝트의 틀 짜기 / 경제 민족주의와 발전국가 / 결론

3장 개발 프로젝트의 국제적 틀
냉전과 개발 프로젝트 / 국제 분업 구조의 재편성
식량 원조 프로그램의 진실 / 제3세계 농업의 재형성 / 결론

4장 개발의 전 세계적 확산
초국적 수출 기지, ‘세계의 공장’ / 농업의 지구화 / 금융의 지구화 / 결론

2부 지구화 프로젝트 (1980년대~2000년대)

5장 지구화 프로젝트의 정치학
전 지구적 시장 제국의 건설 / 외채 위기와 채무 레짐 /
워싱턴 컨센서스, 지구화 프로젝트의 탄생
전 지구적 거버넌스 / 초국적 권력, 세계무역기구 / 결론

6장 지구화 프로젝트의 그림자
빈곤의 거버넌스 / 아웃소싱의 시대 / 이동과 배제의 경제 논리
비공식 경제의 출현 / 전 지구적 재식민화 / 결론

7장 전 지구적 대항 운동
‘침묵의 봄’과 환경주의 / 개발 담론에 대한 페미니즘의 도전
사파티스타 봉기와 세계주의 운동 / 식량 주권 운동 / 결론

3부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 (2000년대~현재)

8장 지구화 프로젝트의 위기
정당성의 위기 / 브릭스의 부상, 지정학적 전환 / 신용 천국이 불러온 금융 위기
불평등의 폭발, 식량 위기 / 사라진 미래, 생태 위기 / 결론

9장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
새로운 변수, 기후 변화 / 환경주의의 역설 / 농업의 재발견
전 세계를 먹여 살리는 법 / 전 지구적 토지 수탈 - 21세기형 인클로저
녹색 기술 / 결론

10장 개발을 다시 생각한다
경제 성장에서 인간 개발로 / 패러다임의 변화 / 전체 결론

주석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접기
책속에서
“서구 식민 지배 관리들은 식민지 특유의 고통스러운 사회 변동 과정을 겪고 있던 피지배 주민들을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관리했다. 이른바 ‘백인이 져야 할 짐(white man’s burden) ’ –영국 시인 키플링 Rudyard Kipling 의 시 – 의 시 제목 – 이라 하여 겉보기에 숭고한 과업처럼 보이도록 개발에 영예로운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이 말속에 함축된 인종주의는 개발의 규범적인 의미와 개발의 세계적인 결과 속에 그대로 남았다.
1장. 개발이란 무엇인가 33P  접기 - 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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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필립 맥마이클 (Philip McMichael) (지은이) 

미국 코넬대 개발사회학과 교수이며, 국제 개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푸아뉴기니 등에서 봉사 활동을 하면서 개발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 미국사회학회 세계체제분과 위원장,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자문관, 국제사회학회 농업식량문제연구위원회 위원장, 유엔사회개발연구소(UNRISD)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식량 주권과 소농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초국적 농민 운동 단체 ‘비아 캄페시나(La Via Campesina)’에 참여하고 있는 활동가이기도 하다. 1996년 초판 출간 후 2012년 5판이 나온 《거대한 역설(Development and Social Change)》은 ‘개발’과 불평등 확대의 내적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헤친 그의 대표 저서이다.

그 밖에 주요 저서로 《정착민과 농업 문제(Settlers and the Agrarian Question : Foundations of Capitalism in Colonial Australia)》가 있고, 엮은 책으로 《전 지구적 농식품 체계의 재편(The Global Restructuring of Agro-Food Systems)》, 《전 지구적 개발사회학의 새로운 방향(New Directions in the Sociology of Global Development)》, 《개발을 문제 삼기 : 사회 변동을 위한 비판적 투쟁(Contesting Development: Critical Struggles for Social Chang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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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거대한 역설>
조효제 (옮긴이) 

성공회대학 교수이자 베를린자유대학 초빙교수이다. 런던대학 정치외교학 학사, 옥스퍼드대학 비교사회학 석사, 런던정경대학(LSE) 사회정책학 박사이다. 한국인권학회장,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준비기획단 위원, 하버드대학 인권펠로, 코스타리카대학 초빙교수, 세계인권선언 70주년 유엔 본부 학술대회 기조 강연자 등을 지냈다.
저서로 《조효제 교수의 인권 오디세이》, 《인권의 지평》, 《인권의 문법》, 《인권을 찾아서》, 《Human Rights and Civic Activism in Korea》 등이 있다. 역서로 《인권사회학의 도전》, 《인권의 대전환》, 《세계인권사상사》, 《거대한 역설》, 《직접행동》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10대를 위한 민주시민 교과서, 한걸음씩 시리즈 1~10 세트 - 전10권>,<탄소 사회의 종말>,<인권의 최전선> … 총 4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산업혁명에서 ‘아랍의 봄’까지
‘개발’의 렌즈로 본 200년 자본주의 문명 비판서

연평균 경제 성장률 7, 8퍼센트에 이르는 고성장 국가 인도에서 왜 5살 미만 어린이의 절반이 영양실조에 시달릴까?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으로 대표되는 빈곤층 소액 대출 사업이 악덕 사채업으로 변질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던 디트로이트 한복판에 도시 농사꾼들이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2008년 이후 중국, 인도, 한국, 일본과 중동 국가들이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에서 토지를 사들인 이유는 무엇인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현상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개발(development)’이다.
《거대한 역설》은 지난 수백 년간 세계를 움직여 온 정치.경제적 흐름을 ‘개발’이라는 관점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독창적인 역사서이자, 환경과 에너지 위기, 슬럼 확산과 식량 위기 등 현재 세계가 처한 전방위적 위기를 진단하고 지속 가능한 발전의 대안을 구상하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문명 비판서이다. 미국 코넬대 교수이며 국제 개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필립 맥마이클은 이 책에서 ‘개발’과 불평등 확대의 내적 관계를 총체적으로 파헤친다. 번역은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학자로서 오랫동안 NGO(비정부기구)와 개발의 문제를 연구해 온 성공회대학의 조효제 교수가 맡았다.

왜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착한 개발’은 없을까?
‘개발’의 이름으로 세계를 지배해 온 거대한 정치적 프로젝트를 밝힌다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개발의 의미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그동안 우리는 개발을 모두를 위한 경제 성장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추구해 왔다. 대체 언제부터 ‘개발’을 국가의 존립 근거이자 목표로 삼게 되었을까? 왜 모든 나라가 예외 없이 ‘개발의 사다리’에 위태롭게 올라서서 위를 쳐다보게 되었을까? 어떻게 개발이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 후진국으로 국가의 등급을 나누는 기준이 되었을까? 이 책은 식민화와 산업화 시대부터 시작해 ‘개발’의 역사를 추적하고 그 근원적 특성을 드러냄으로써 이러한 의문에 답을 찾는다.
스스로 근대적 발전의 표준 국가가 된 미국, 전후 ‘개발 프로젝트’의 총아로 부상한 한국, ‘양말 도시’와 ‘넥타이 도시’를 거느린 ‘세계의 공장’ 중국, 라틴아메리카의 자원 민족주의를 선도하는 베네수엘라까지, 이 책은 ‘개발’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생생하고 풍부한 사례들로 가득 차 있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개발’이 ‘통치를 위한 정치적 기획’으로 동원되었다는 데 주목한다.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 지배 프로젝트’부터 20세기 중반에 등장했던 ‘개발 프로젝트’, 해체기에 들어선 ‘지구화 프로젝트’까지, 오랜 세월 전 지구가 따라야 하는 ‘보편적 발전’의 길로 여겨졌던 개발의 맨 얼굴이 날것 그대로 드러난다.
사회학자의 냉철한 눈과 운동가의 뜨거운 가슴을 지닌 저자는 어려운 학술 용어가 아닌 일상의 언어와 흥미진진한 사례 연구를 통해 신자유주의 이후 지구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썼다. 이 책을 통해 지난 200년간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이루어진 개발의 역사와 주요 이론, 논쟁의 흐름을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개발만큼 역설로 가득 찬 현상도 없을 것이다. 개발의 기원 자체가 지배와 종속에 바탕을 둔 권력 관계로부터 출발한 역설, 신생 국가의 존립 근거로 표방했던 국가 발전 담론이 억압적 국가 체제를 강화하는 데 기여한 역설, 자원 고갈과 기후 변화 시대를 맞아 기존의 개발 모델을 폐기하고 탈성장을 추구하는 새로운 ‘개발’ 모델을 찾아야 하는 역설 등 어느 하나 역설 아닌 부분이 없을 정도이다. ……
개발의 궁극적인 목표는 ‘좋은 변화’를 이루자는 것인데, 세상 다른 모든 일과 마찬가지로 개발 분야 역시 ‘좋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와 진단이 모두 다르다.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개발, 그저 선의를 품고 실천하기만 하면 달성되는 개발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지, 어떤 성격의 개발인지를 반드시 짚어봐야 하는 것이다.” ― <옮긴이 머리말>에서

개발의 역설, 빈곤과 불평등의 지구화

이 세계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하면서 동시에 불평등하게 만든다.
생각이나 습관을 강제로 평등하게 만들어놓고,
정작 기회는 불공평하게 제공한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20세기 중반에서 지금까지 ‘개발’은 나라와 인종과 이념을 초월해 전 지구 차원의 정치?경제적 화두였다. ‘개발’은 ‘다함께 잘사는 세계’를 이루기 위한 경제 성장을 의미했다. 그런데 과연 개발은 인류에게 풍요를 가져다주었는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굳게 믿고 있는 것처럼 경제가 발전할수록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는가? 《거대한 역설》은 이러한 기대와 달리 전 세계에 걸쳐 개발이 도리어 불평등과 빈곤의 확산을 불러왔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개발은 인간에게 기회와 번영을 확대해주지만, 불평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또 개발은 빈곤 퇴치를 목표로 삼지만 오히려 빈곤을 심화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 성장과 빈곤이 함께 나타나는 개발의 역설은 다음과 같은 사실 즉, 세계 인구 중 상위 10퍼센트의 부유층이 전 세계 소득의 50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사실과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을 만성 영양 실조 상태에서 신음하게 만드는 먹을거리 위기 상황과 같은 사실로 명백히 입증된다. 인도의 예를 들어보자. 연평균 경제 성장률이 8퍼센트에 달하고 2013년이면 경제 성장률이 중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나라인데도 2010년 현재 다섯 살 미만의 어린이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아이들이 영양 실조 상태이다.
― 1장 개발이란 무엇인가 52쪽에서

멕시코의 착취 공장에서 저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 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아시아에서 소규모 경작지를 수출용 작물을 재배하는 상업형 농토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농민이 도시 빈민층으로 전락하면서 만들어진 ‘슬럼 행성’(대규모 빈민촌) 등 개발로 인한 빈곤과 불평등 확산의 다양한 사례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녹색 혁명은 농촌 지역의 소득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면서 진행되었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 베네수엘라 같은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그리고 푼잡과 하리아나 같은 인도의 관개 지역에서 진행된 녹색 혁명식 농업은 농가들 사이의?그리고 흔히 한 가구 내에서도?경제적 격차를 크게 벌렸다. ― 3장 개발 프로젝트의 국제적 틀 149쪽에서

멕시코 티후아나 근방의 전자 제품 회사 ‘마킬라도라’에서 일하는 어느 노동자에 관한 다음과 같은 증언이 착취 공장의 노동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다. “구리 도선을 수작업으로 물레에 감는 것이 그녀의 일이다. 아주 가는 구리선을 겹치지 않게 촘촘히 일렬로 감아야 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계속 하다 보면 극심한 두통을 겪는다. 이런 일을 1년 정도 하고 나면 보너스를 지급하는 회사도 있지만, 대다수 노동자는 그때까지 견디지 못한다. 1년 동안 버티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그때쯤이면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껴야 한다. 얼마나 살인적인 일인지 노동력이 계속 교체된다.” ― 4장 개발의 전 세계적 확산?168쪽에서

식민 지배 프로젝트, 개발 프로젝트, 지구화 프로젝트까지
전 지구적 개발은 자연스러운 진화가 아니라 정치적 기획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과학 발전과 산업 진보의 결실이
저개발국의 발전과 성장에 활용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대담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에 착수해야 한다.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 1949년)

이 책은 지난 200년의 근현대 세계사를 ‘개발’이라는 일관된 관점으로 파악하면서, ‘개발’의 내용과 초점에 따라 시기별로 ‘식민 지배 프로젝트 - 개발 프로젝트 - 지구화 프로젝트 -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의 시대로 나누어 살핀다.
저자는 먼저 개발의 역사적 기원을 파헤치면서 개발이 자본주의, 산업혁명, 서구의 비서구권 지배와 긴밀하게 얽힌 채 시작된 과정이었음을 상기시켜준다. 제국주의 식민 지배 시대에 식민 본국의 산업화와 식민지 주민 관리를 위한 일종의 통치 프로그램으로 등장한 ‘개발’은 그 기원에서부터 종속과 지배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라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개발은 처음부터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권력의 문제였다.
개발이 국가의 공식적인 프로젝트로 자리 잡은 것은 20세기 중반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들이 등장하면서 이른바 ‘개발 프로젝트’의 시대(1940년대 후반~1970년대 초반)가 열린 것이다.

식민 시대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신생 독립국들이 탄생하면서 이른바 ‘개발 프로젝트’의 시대가 열렸다. 이 나라들은 새로운 국가 건설의 정당성을 시민권적 사회 계약에서 찾으면서, 국민을 잘살게 만드는 경제 개발을 통해 국가의 존재 의의를 인정받고자 했다. 다른 한편, 구식민 지배 세력은 냉전 체제에서 전략적 우위를 지키고 과거 식민지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편리한 수단으로 개발 담론을 활용했다. 이런 와중에 개발은 인류의 자연스러운 진화 과정처럼 제시되고 옹호되었다. 그러나 저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개발은 당시의 국제 정세와 국내 상황에 편승한 인위적인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정치적 기획, 즉 ‘프로젝트’라고 보아야 한다. ― 옮긴이 머리말 7쪽에서

‘개발 프로젝트’의 총아, 대한민국
이 책은 개발의 역사에서 전 세계적으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례들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그 사례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한다. 이 책에서 우리는 흔히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1960~1970년대 한국의 경제 개발이 냉전 시기 전 지구적 ‘개발 프로젝트’ 안에서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과정의 결과였음을 알게 된다.

아마 한국은 한 세대 안에 경제와 사회를 완전히 탈바꿈한, 중간 소득 신흥 공업국 중 가장 성공한 나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53년에 한국은 국민총생산(GNP)의 47퍼센트를 농업이 주도했고 제조업은 9퍼센트 미만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1981년이 되면 이 비율이 역전되어 농업이 16퍼센트, 제조업이 30퍼센트를 차지한다. …… 어떻게 이런 실적을 올릴 수 있었는가?
한국이라는 발전국가는 흔치 않은 적응력을 갖춘 국가 정책과 군사 통치자 박정희의 유별나게 탄압이 심했던 정치 체제가 결합하여 성공을 이룬 사례라 할 수 있다. 한국 노동자들은 극단적으로 오랜 시간 노동을 해야 했지만 그들이 모은 돈은 오로지 정부 주도의 투자 정책에 이용되었을 뿐이었다. 산업 노동자들은 아무 권리도 없었다. …… 또한 냉전 최전방에 위치한 나라로서의 이점도 있었다. 미국이 한국산 수출품에 자국 시장을 개방해주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의 값싼 농산물 수출도 큰 도움이 되었다. …… 한국 정부는 전국의 학생들에게 매일 미국산 밀가루로 만든 공짜 빵을 주었고, 수많은 가정 주부가 제빵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 과정에 등록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요한 비용은 미국의 식량 원조 프로그램의 하나인 ‘대충 자금(counterpart funds)’으로 충당했다.
― 3장 개발 프로젝트의 국제적 틀 132~134쪽에서

개발 프로젝트에서 지구화 프로젝트로
개발 프로젝트는 1980년대에 들어와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지구화 프로젝트’(1980년대~2000년대)에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개발이 종말을 맞았기 때문이 아니라 개발의 좌표가 변했기 때문”이었다. 개발 프로젝트 시대건 지구화 프로젝트 시대건, ‘개발’의 명분은 언제나 전 인류가 ‘모두 잘사는 세계’를 만든다는 것이었고 그 명분과 목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다만 이전에는 개발이 국가가 중심이 되어 진행하는 공적인 프로젝트였다면, 이제 개발은 민간(시장)이 추진하는 전 지구적 프로젝트로 새롭게 규정되었다. 20여 년간 지속된 지구화는 국가 정책과 경제, 사회, 문화에 이르기까지 우리 삶의 거의 모든 부문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꾸어놓았다.

“시장이 국가를 대체하고, 소비자가 노동자와 시민을 대체하고, 경쟁이 권리를 대체하고, 신용 카드가 노동자 증명서와 선거인 명부를 대체하고, 쇼핑 센터가 대중 광장을 대체하고, 텔레비전이 인간적 유대를 대체하고, 사기업체의 후생 복지가 사회 정책을 대체하고, 전 지구적인 것이 일국적인 것을 대체하고, 사회적 배제가 사회적 통합을 대체하고, 차별이 평등을 대체하고, 불평등이 정의를 대체하고, 이기심이 연대를 대체하고, 소비자주의가 휴머니즘을 대체하고, NGO와 자발 조직이 정당과 사회 운동을 대체했다.”(에미르 사데르, 브라질 사회학자) ― 5장 지구화 프로젝트의 정치학 241쪽에서

‘지구화 프로젝트’의 위기와 전 지구적 대항 운동

지구화가 철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파탄을 맞은 이유는,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을 상품으로 환원하고, 인간의 정체성을
전 지구적 시장의 소비자밖에 안 되는 존재로 국한한 데 있다.
(반다나 시바)

국가를 시장의 종으로, 시민을 상품 소비자로 전락시킨 지구화 프로젝트는 최근 들어 수명이 다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 책은 2000년대 미국을 비롯한 북반구의 심각한 금융 위기부터 2007년에서 2008년 사이에 이탈리아?인도네시아?멕시코에서 시작해 전 세계를 휩쓴 식량 폭동, 지구를 생명체가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 수도 있는 ‘돌이킬 수 없는 기후 변화’에 이르기까지, 현재 인류가 처한 파국적 상황을 폭넓게 소개함으로써 기존의 ‘개발’과 ‘성장’ 담론이 지속 불가능해진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다.

북반구 주민들은 남반구 주민들만큼 식량 가격 상승을 예민하게 느끼지 않는다. 미국의 최하위 20퍼센트에 속하는 빈곤 가구의 생활비에서 식품 구입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16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반면, 나이지리아 국민의 식품 구입비는 생활비의 73퍼센트, 베트남 국민은 65퍼센트, 인도네시아 국민은 50퍼센트, 인도 국민은 70퍼센트, 중국 국민은 50퍼센트나 된다. 남반구를 통틀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기아 비율이 집중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2011년 현재, 전 인류의 약 14퍼센트?약 10억 명?가 기아선상에 있거나 영양 실조 상태에 놓여 있다(특히 여성들). 전체 기아 인구 중 대다수인 65퍼센트가 인도, 중국, 콩고민주공화국,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에티오피아 등에 몰려 있다.
― 8장 지구화 프로젝트의 위기 421쪽에서

그러나 이 책은 무시무시한 경고의 나열로 끝나지 않는다. 저자는 금융 위기, 환경 위기, 식량 위기에 맞서 일어선 전 지구적 대항 운동과 기존의 개발 담론을 비판하는 대안 담론을 소개한다. 인도 히말라야 중앙 지대에서 펼쳐진 ‘칩코 운동’ 같은 풀뿌리 환경 저항 운동, 브라질의 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MST)이 대표하는 식량 주권 운동,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봉기가 대표하는 세계주의 운동, 탈성장(degrowth)이나 제로 성장(zero growth) 같은 대안적 성장 이론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저자는 대항 운동과 이론을 소개하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각 운동의 맹점과 가능성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탁상공론이 아닌 실현 가능한 대안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인도의 히말라야 중앙 지대에서 전개했던 칩코 운동(Chipko movement)은 저항 운동의 극적인 사례였다. 1973년에 고페쉬왈 마을의 여성들은 상업적 벌목에 맞서 예로부터 내려온 농민 저항의 전통을 되살려 나무를 끌어안는 방식으로 간디의 비폭력 전략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 이와 유사한 저항 운동이 인도 북부를 휩쓸었다. 부족민들의 산림 거주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저항 운동에 참여한 주민들은 숲과 토양을 살리기 위해 칩코 운동이 실천하는 나무 심기 방식을 모방하여 ‘나무를 뽑고 다시 심는’ 전술을 활용했다. 운동가들은 유칼립투스 나무?그늘을 제공해주지도 않고, 지하수를 고갈시키는데도 공식적 식목 사업에서 선호받는 수종?를 뽑아버리고, 그 자리에 현지 주민에게 유용한 산물을 생산해주는 토착 수종을 심었다. ― 7장 전 지구적 대항 운동?333쪽에서

케냐의 라이키피아에 사는 키쿠유족 여성들은 354개의 여성 모임을 결성하여 천연자원에 대한 접근성과 사용에 관한 공동체의 의사 결정을 여성들이 스스로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모임의 크기는 마을에 따라 20명에서 100명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르며, 농민부터 공유지 거주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임의 구성원들은 현금과 생산물, 또는 노동력을 모임에 제공하며, 모임은 이렇게 모인 자원들을 다시 구성원들에게 똑같이 분배한다. 이 모임의 구성원들은 함께 기금을 모아 토지를 사들이고, 소규모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 이런 사업과 같은 집단 운동은 개발의 실패를 만회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런 사업을 통해 여성이 식민 지배 당시 그리고 식민 지배 이후의 개발 과정에서 빼앗겼던 자원 접근성을 되찾고 있기 때문이다. ― 7장 전 지구적 대항 운동 348쪽에서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와 패러다임의 변화

농업생태학은 소농들이 비용을 덜 들이고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됐을 때 소농들만 혜택을 보는 게 아니다.
지구 온난화의 속도를 늦추고 생태 파괴를 막는 효과도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수혜자가 될 수 있다.
(올리비에 드 슈터, 유엔 식량권 특별조사관)

저자는 지구화 프로젝트 이후의 개발 담론을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라 부른다.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는 국제 기구에 의해 집행되는 잘 조정되고 일관된 정치적?경제적 현실이 아니라, 아직까지는 일종의 사회적 경향 정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지 여부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를 다루면서 저자는 환경과 식량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새롭게 주목받는 전통 방식의 농업, 풍력이나 재생 에너지 같은 대체 에너지원 개발로 대표되는 녹색 기술 등을 살펴본다. 생태 중심적 농업 혁명을 통해 지속 가능한 발전의 중요한 사례로 떠오른 쿠바의 경우는 많은 시사점을 준다.

1991년에 소련이 붕괴하고 소련권으로부터 원유, 농화학 제품, 농기계류 등의 수입이 중단되면서 쿠바는 에너지와 먹을거리 체계를 완전히 바꿀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쿠바의 농업 부문은 유기 농법, 도시 농장, 동물력 이용, 생물학적 해충 관리 등을 발전시켰다. ……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지역 편차가 있긴 하지만, 10년도 채 안 되어 전체 농가의 46퍼센트에서 72퍼센트가 농생태적 영농을 하고, 전 국민이 소비하는 야채, 옥수수, 콩, 과일, 돼지고기의 60퍼센트를 이 같은 방식으로 생산하고 있다. 2008년에 초대형 태풍 아이크가 지나간 후 농생태적 농사를 짓던 농장에서는 50퍼센트 정도의 손해를 입은 반면, 단일 작물을 재배하던 곳의 피해는 90퍼센트에서 100퍼센트에 달했다. …… 세계 어느 나라도 쿠바만큼 먹을거리의 생산과 소비 사이클을 효과적으로 통합하지 못했다. ― 9장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 461, 462쪽에서

저자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대안을 모색하는 다양한 움직임을 설명하면서, 한국과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에서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소개한다.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 세계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무자비하고 극도로 경쟁적이며 점점 더 부패하는 사회 시스템을 해결하기 위해 ‘공정 사회’를 건설하자는 새로운 욕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서아프리카의 밤타레(Bamtaare)라는 개념은 공동체와 환경을 통합한 ‘조화로운 발전’을 의미한다. 에콰도르와 볼리비아는 2008년 자국 헌법에 발전을 ‘잘사는 것(에스파냐어로 buen vivir, 또는 체쿠하어로 sumak kawsay)’이라고 재규정함으로써 세계인들의 이목을 끌었다. ‘부엔 비비르(buen vivir)’는 원주민과 농민과 아프리카계 후손과 여성, 환경 운동가, 청소년이 수십 년간 펼쳐온 정치적 투쟁과 연대의 결과에서 나온 것이며, 경제를 생태, 인간 존엄, 사회 정의 아래에 두는 개념이다.
― 10장 개발을 다시 생각한다 525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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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마법적인 측면을 겉어내고 나면 무엇이 남는지를 보여주는 책. 개발과 진보는 당연히 다르다는 것을 왜 진즉에 몰랐을까...  구매
푸른하늘 2014-10-22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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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처지에서는 개발이란 게 반가울 수가 없는 거로구나  구매
여기 2014-11-0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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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을 역사적인 고리로 엮어 낸 훌륭한 사상서  구매
augenblick 2013-10-10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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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클 다운이 실재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책  구매
꼬마눈사람 2013-11-08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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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대한민국이 읽어야 할 책.  구매
낮에뜬별 2014-11-05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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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역설을 읽고나서 새창으로 보기 구매
우리는 흔히 개발할 수록 발전한다고 믿는데 이 책에서는 전지구적 관점에서 보아 개발할 수록 점점 더 불평등해지고 빈곤층은 더 빈곤해지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의 해결책으로 공정한 무역과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 시민운동을 들고있다. 현재의 세계화로 혜택을 보는 것은 선진국이고 개발도상국은 아직도 빈부격차와  무역역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 원인과 처방책에 대해 심각하게 의문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snowypark 2014-04-07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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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발전인지 물었어야 했다 새창으로 보기
1. 요약 。。。。。。。     

 

     우리는 흔히 ‘개발’하면 ‘좋은 것’으로 인식한다. 어딘가(혹은 무엇인가) 개발된다는 것은 지금보다 더 편리하고, 깨끗하며, 효율적인 상태로 전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그런 개발에 대한 이미지가 일종의 정치적 구성물이며, 힘 있는 자들(식민지배 본국, 소수의 정치와 경제 분야의 엘리트, 강대국들이 만든 국제기구)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든 질서를 강요하기 위해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애초에 개발논리라는 것이 어떤 한 국가 내에서의 발전이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 식민지의 수탈을 전제로 한 약탈적인 경제구조였다는 것.

 

     시대가 바뀌고 이제 더 이상 식민지를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지만, 이런 기본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개발 프로젝트’는 이제 ‘지구화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달라졌고, 그 공식적인 방식도 총칼과 채찍에서 ‘전 인류의 번영’이라는 멋들어진 설득으로 바뀌었지만 현실은 그대로다. 저자는 ‘자유 시장을 통한 번영’이 실은 전체 인구의 2/5만 누릴 수 있는 것이며 나머지 3/5은 그 2/5를 위해 여전히 수탈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런 상태를 위해 여전히 서구 선진국들은 정치적이고, 군사적이며, 재정적인 압박을 통해 저개발 국가들을 자신들의 뜻에 따라 옥죄고 있다.

 

     이런 상황에 반대하는 흐름이 나타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른바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의제도 그 중 하나다. 책은 환경, 농업, 빈곤문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존의 개발 논리에 저항하는 새로운 움직임들을 소개하면서, 개발을 다시 생각하기 위한 첫째 단계로 ‘발전의 관념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530).

 

 

2. 감상평 。。。。。。。   

 

     책의 부제가 이 책에 실려 있는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해 준다. ‘왜 개발할수록 불평등해지는가’. 군더더기 없이 잘 붙인 부제목이다. 단지 제목만이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저자는 왜 지난 수십 년 동안 급격한 개발이 진행되었는데도 여전히 전체 인구의 상당수가 빈곤한 상태에 처해 있는지, 또 갈수록 삶의 조건이 악화되고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 내고 있다.

 

     책의 중요한 통찰 중 하나는 소위 자본주의적 발전의 열매는 모두가 아니라 일부만을 배부르게 할 뿐이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오늘날 이런 착취가 어떻게 지구화,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었는지를 잘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수출용 상품작물을 단일재배 하느라 정작 자국민들의 식량이 부족해 빈곤에 시달리는 상황은 ‘비교 우위’ 따위의 개념이 얼마나 허황된 논리인지를 보여준다.

 

     이건 분명 정의롭지 못한 상황이다. 그저 모든 것에는 명과 암이 있기 마련이라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려 넘어갈 수 있는 무엇이 아니다. 그 명과 암이 늘 힘 있는 자들에게 유리하게 그어진 경계라면 더더욱 그렇다.

 

 

     개발에 대한 환상, 혹은 신화는 매우 단단해서 쉽게 깨지지 않는다. 사실 우리는 경제발전이 지고의 선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 속에서, 성장률이라는 지상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경주마가 될 것을 세뇌 받으며 살아 왔으니까. 여기에 ‘왜’라는 질문은 필요 없었다. 왜 경제성장을 해야 하는지, 그러면 누구에게 좋은 건지 하는 부분은 제대로 생각해 보지 못한 채 그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압박만 받아왔다.

 

     이런 현실을 극복해 나가는 시작은 역시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데부터다. 책의 저자도 지적했던 것처럼 발전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내다버리고 새롭게 묻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 이를 위해서는 우선 현실의 문제를 분명히 볼 수 있어야 하고, 대안적 삶 혹은 행동이 실제로도 가능하며 더 유익하기도 하다는 점을 증명해 내야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런 부분들을 보여주는 데 많은 공을 들여서 잘 써 냈다.

 

 

     번역의 문제인지(사실 복문이 지나치게 많긴 하다), 원 저자의 탓인지 임팩트 있는 문장이 좀 부족한 게 아쉽긴 하지만, 충분히 여러 부분에서 인용되고 참고될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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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가방 2015-06-14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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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역공? 새창으로 보기 구매
경제영토, Economic territory. 이 말의 정의는 ‘국가의 경제 영토는 정부에 의해 관리되는 지리적 영역으로 구성되어 이 지역 내에서, 사람, 상품, 자본이 자유롭게 순환.’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영토라면 경계가 없이 자유로워야 할 텐데 정말로 자유롭게 순환 가능한가? 사람도 그렇고 – 특히 우리는 비행기나 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육로로 이동할 수 없으므로 – 상품도 보이지 않는 규제가 있으므로 꼭 자유롭다고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단지 자본만 소리 없이 움직이는 것으로 볼 수 있을 텐데 그렇다면 경제 영토는 일부의 부류에게만 적용되는 영토라는 말이겠다.

따라서 경제영토라는 말은 자본을 다루는 금융가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지 나 같은 보통 이하의 경제적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말이다. 차라리 그냥 ‘국제시장’ 이라는 말로 불리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한다. 남대문 이나 부산의 국제시장에는 이미 여러 나라의 상품이 판매되고 있으나 그것들이 대부분 밀수 또는 ‘병행수입’이라는 방법을 통해 들여온 것이라는 차이일 뿐 뭐가 다르다는 것인지 모를 기존의 수입유통망이 법적으로 가능해졌다는 인정을 해줌으로써 지금보다 더 양적 – 질적 경로가 다양화되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겠지만 그 동안은 그럼 밀수, 개별 수입, 병행수입 이와 같은 변칙적인 수입루트로 판매 욕구를 채울 수 없었을까? 구입 욕구야 정보의 개방으로 많아졌다 하더라도 구매력이 부족했을 뿐 아니었을까? 하층민이 알기에 너무 광범위하고 차원 높은 무언가가 오고 가겠지만 그게 왜 하층민은 알 수 없는 체계로 되어있어야 하는 걸까? 사람과 상품의 이동이 이 나라에서 지방경계를 넘을 때나 유럽에서 국경을 이동할 때와 같이 아무런 제도나 형식을 필요하지 않는 것도 아닌 한 특별하게 달라진 것도 없다면 뭐가 넓어졌다는 것인가? ‘경제영토의 확대’ 그렇게 표현해서라도 좁은 땅을 가진 민족으로서의 콤플렉스를 보상받으려 하는 것인가?

 

만약 그런 두 가지, 상품과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과 거래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라면 경제영토의 확장이라는 의미는 자본의 확장. 즉 금융의 확장이라는 의미만 남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우리가 국제적으로 채권 국가가 될만한 금융력이 있는가? 채무국의 입장에서 벗어 나려면 아직도 약 2년여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국은행에서 분석했다고 하지만 좋은 방향으로 생각했을 때 그렇단 이야기 아닌가?

 

(한국의 순 대외부채 규모가 점차 감소해 1~2년 안에 다른 나라에 줄 돈보다 받을 돈이 많은 채권 국(순 대외자산 국가)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정용 한국은행 국외 투자통계 팀 과장과 구 현회 조사역은 14일 발간한 '최근 우리나라의 국제투자 균형에 대한 평가' 보고서를 통해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고 주가·환율 변동성이 크지 않다면 한국이 1∼2년 내 순 대외자산 국가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2014.7.14 디지털 타임스; http://www.dt.co.kr/contents.html?article_no=2014071402109957803001

 

상품의 매매를 위한 시장의 확대라는 의미를 보더라도 그 동안에 우리의 기업이 다른 나라와 경쟁력 있는 상품을 판매하지 못할 만큼의 국제 시장 판로가 없어서 판매를 하지 못했던가? 경제 순환에 대한 깊은 의미와 전문적인 지식이 없으니 전문가들이 벌인 짓에 똑바로 지적할만한 지식이 없더라도 자유무역의 결과는 단순히 사와야 할 것이 늘어나는 만큼 우리에게 팔려는 사람들도 늘어 났을 뿐 아닌가? 그런 과정의 평형성을 유지하면서 이득을 보는 것이 각국의 이득일 텐데 그렇다면 창고에, 또는 생산할 수 있는 그것도 아니라면 중개해서 팔거나 사올 여력이 있는 대체능력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에게 내다 팔아서 판매와 구매의 불평등을 해소할 만한 상품이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전후(戰後) 식민지의 상황에서 민족주의 이념으로 전환된 시민으로서 자신들의 국가를 이루려는 ‘개발 프로젝트’의 결과로 진행되어왔고 GNP라는 수치로 나타나있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전후부터 지금까지 숨가쁜 경제개발의 질주를 잠시 멈추고 수지타산을 점검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는가 아닌가가 중요한 시점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닌가가 상품의 판매나 구매의 불평등 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물론 정권은 아직도 불안하고 언제 망가질지 모르기 때문에 계속해서 성장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가끔 언론을 통해 배포하는 자랑거리를 볼 때면 그런 생각을 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들이 내놓는 자랑거리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수치만 놓고 보면 우리는 세계에서 2~30위 안에 드는 경제력을 가진 나라이고 삶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꼴찌를 맴돈다 하더라도 매번 분기마다 흑자를 내고 있으며 3~4%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하지 않는가! 그런데 한족에서는 불안하다고 공포감을 조성하고……. 맞다. 나 같은 하층민은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는 그들의 배려인 것이다.

 

그러나 뭔가 이상하게 생각된다. 사람의 경우는 그만두고 상품의 경우도 좋게 보면 팔 곳이 늘어나고 사올 것이 많아져서 상품의 가격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둘째 치고라도, 다양한 문화의 상품을 접함으로써 구매욕을 늘리고 삶이 풍부한 경험으로 채워질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서 잘 한다면, 아주 기가 막히게 잘해서 성공하는 One in a Millionaire가 된다면, 그가 분수 아래로 뿌려댈 낙숫물에 기대를 걸어볼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되기도 하고, 문화적인 다양성을 얻는 기회로 정신세계의 풍부함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10여년전이나 꿈꾸었을 희망상이었을 것이고 지금의 현실로는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돈을 조금 더 주고라도 온라인을 통해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들 - 아마도 그들은 외국의 경험을 직접 육감과 물리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미 겪어본 것을 토대로 문화적인 동질감을 지속시키고자 상품 구매를 하려는 의지가 조금이라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다면 – 이 이미 많아졌고 내수 시장이 그들을 위한 구매창구를 넓혀가고 있기 때문에, 상품의 경우는 그만 두고라도 자유무역이라는 경로를 통해서 사람이 문화의 다양성과 삶의 질적인 측면으로서 풍부함을 준다는 생각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남은 효과는 금융이어야 하는데 그것은 실질적인 득보다는 국제적인 금융자본가들에게 뭔가 우리가 필요한 것을 얻어서 외형적인 효과를 보여주려는 면 (우리에게는 투자이지만 그들에게는 투기의 대상일 뿐인) 이 있어서라고 생각할만하다. 그 동안의 정권들이 행한 짓들을 보면 금융시장의 개방이라는 결과가 나 같은 자들에게도 경험할 수 있는 이득은 없었다고 보이고 오히려 얼마 전의 외국 금융의 사건을 보더라도 우리는 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아닐까?

 

“둘째, 론스타의 양도차액에 대한 국세청의 과세가 “자의적이고 위법적이며 몰수적”이라는 주장이다. 이미 론스타는 외환은행 매각에 대한 양도소득세 3900억 원을 돌려달라며 국세청에 청구한 상태다. 그래서 이제 누군지도 모를 3인의 중재 재판관이, 그들끼리 세계은행 밀실에 모여 앉아 우리 금융당국의 외환은행 매각 불승인이 옳았는지를 판정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가슴 졸이며 그저 그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대한민국 국민 99%는 ISD가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다. 또 이로부터 터럭만큼의 혜택 받을 일도 없다. 하지만 재판에서 패소한다면 4조6000억 원을 ‘먹고 튄’ 론스타라는 사모펀드에 다시금 피 같은 세금을 모아 배상을 해 주어야 한다. 혜택 볼 일은 없지만, 물어줘야 할 의무는 있다.” 프레시안 2014.11.11 자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21668

 

확장된 경제영토의 이득으로 얻어진 금융의 혜택을 내가 느끼던 못 느끼던, 분수에서 뿌려진 물줄기는 아니더라도 그냥 물 보라 정도는 맞았을 수도 있겠지만 언론이나 정부의 홍보와 관심은 모두 상품의 판매 경로 확대와 농산품의 피해 같은 내용에 집중되어 있다.

 

뭔가 알리지 않는 것이 있거나 숨기고 있는 것이 있거나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적당한 공포에 스스로 문을 닫아 걸거나 적당한 경제적 이득을 준다는 달콤함에 자신이 명예와 부, 권력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이고 드라마 속이나 영화에서나 가능한 일 일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짓을 왜 지속할까?

정권을 다투는 자들이 입에 달고 사는 서민 경제 살리기와 경제개발이라는 것이 우리의 경우로 본다면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자는 이름으로 ‘지도 받는 자본주의’라는 이념을 감추고 정권이 내자(內資) 및 외자(外資) 동원과 배분에 직접 관여하고 주요 산업부문을 관리 육성해온 결과로 그나마 이 정도라고 할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그 시기의 동남아 세계는 미국이 주도하는 자국의 경제성장 정책에 이용당했을 뿐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삼모사(朝三暮四)와 같이 누가 먼저 얻는 것이 뭐가 중요했을까?

 

이념이 벌인 전쟁의 피해국가들은 가해국가들이 던져준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성장과 번영이라는 미끼를 물고 끝이 어딘지 결코 알 수 없는 종착점을 향해 달리고 있는 중인데 누가 앞섰다고 말 할 수 있다는 말인가? 50년전에는 동시에 출발한 경주였다. 그런데 10년전에는 우리보다 뒤쳐졌다고 생각했던 국가가 지금 기준으로 적용해보니 성장력에 있어서 우리보다 나은 값싼 경쟁력의 인력과 풍부한 물적 자원을 가지고 있음이 알려져 경쟁력이 비교우위에 있음이 밝혀졌다면 10년 후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 아닐까? 그런 결과를 예방하기 위해 계속 적당한 공포와 적당한 경제를 지속해야 한다고 정권은 말하겠지만 그게 비단 우리에게만 적용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를 지배하는 생각조차 우리는 아직도 서양의 금융자본에 의한 지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며 그들이 제시한 개발이라는 눈가리개에 앞만 보고 달릴 수 밖에 없는 경주마의 운명에 갇혀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서구 식민 지배 관리들은 식민지 특유의 고통스러운 사회 변동 과정을 겪고 있던 피지배 주민들을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관리했다. 이른바 ‘백인이 져야 할 짐(white man’s burden) ’ –영국 시인 키플링 Rudyard Kipling 의 시 – 의 시 제목 – 이라 하여 겉보기에 숭고한 과업처럼 보이도록 개발에 영예로운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이 말속에 함축된 인종주의는 개발의 규범적인 의미와 개발의 세계적인 결과 속에 그대로 남았다.
1장. 개발이란 무엇인가 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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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스 2014-12-03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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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만, 많은 깨달음을 주는 책
jbchoi 2016-09-0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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