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24

강미숙 활동가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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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활동가로 산다는 것

20대에 여행이란 건 나와는 상관없는 먼나라 이야기였다. 대학다닐 때까지 내가 한 여행은 방학 때마다 가는 학보사 수련회와 전국에 흩어져 수감되어 있는 동기들을 한번씩 면회가는 것이 전부였다.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비로소 아이들을 핑계삼아 정말 많이 싸돌아다녔다. 나를 위한 여행은 어쩌면 3년간 매달 10만원씩 뚝 떼어 부은 적금으로 2008년 그리스와 이집트, 터키를 한달 조금 넘게 배낭여행한 것이 거의 처음이었는데 그때 사람들의 반응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 그분이 고생했다고 여행보내 주나봐요?”(당시 지방선거에서 선배의 선거운동을 했고 그것을 아는 사람들 다수가 이렇게 반응했다)이거나 “남편과 무슨 일 있어요?”, “남편이 허락해줘요?” 대체로 이 두가지 반응이었다. 아이들 둘이 다 초등학생이었으니 의아하기도 했겠지만 나는 그 반응들이 당시 그리고 지금도 사람들의 보편적인 시각이 어떻게 형성되고 진화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표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대가없이 하는 일은 없다고 여긴다는 것과 아줌마노동자는 남편의 종속된 사람쯤으로 여긴다는 것 두가지를 말이다. 당시 이혼, 자살 등의 언사까지 들었으니 후자는 12년이 지난 지금은 실로 상전벽해라 할 만하지만 전자는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대학을 휴학하고 잠시 다닌 공장을 제외하면 뒤늦게 학교를 마치고 노동의 대가로 ‘임금’이란 걸 받은 것은 교원노조의 간사로 일하면서 받은 ‘40만원’이 처음이었다. 과외해서 활동비로 쓰고 방송원고나 노가다 알바해서 생활비하는 걸 당연하게 여겼던지라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돈도 준다고? 하며 감동하고 신기해했다. 그게 1994년이었다. 한달 월급의 절반을 학교에서 고생하는 후배들에게 ‘갈매기살’을 사주는데 쓰고 그렇게 해서 네 밥벌이는 어떻게 하고 살겠냐며 혀를 차시던 엄마에게 시장에서 4만원 짜리 옷을 사드렸다. 다음해에 사고로 돌아가셨으니 그것이 엄마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딸 노릇한 것이었는데 내가 엄마에게 한 효도는 유일하게 뒤늦게나마 대학을 졸업한 것과 작지만 돈도 주는 곳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드린 것이어서 나를 고용해준 교원노조에 지금도 무척 감사한 마음이다.
구차한 옛날 생각이 나는 것은 그동안 판단을 유보해온 윤미향 당선인의 30년이 너무나 가슴이 아프기 때문이다. 오늘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또 하신다는데 할머니도 안타깝고 윤미향씨도 안타깝다. 그녀는 정대협의 간사로부터 활동을 시작하여 30년간 한눈 팔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 환경이나 여성, 노동분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특히 일본군 성노예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이라는 활동은 같은 여성으로서 일종의 2차 성폭력을 수십년동안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정대협의 활동이라는 게 지금이야 국내외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지만 끝없이 식민지라는 과거와 싸우고 국가폭력과 나아가 그것을 외면하고 은폐, 폄훼하는 국가와 친일세력을 상대해온 결과다. 김복동님이나 이용수님처럼 여성 평화 인권운동을 해오신 분들도 많지만 대부분의 피해자 할머니들은 늘 돌봄과 치유라는 관점에서 대해야 했을 터이니 일말의 투정이나 힘듦을 토로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었을 것이다. 그 어떤 활동가들보다 감정노동의 강도가 세고 오랫동안 마주해온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매우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미래가 아닌 과거의 보이지 않는 유령과 맞서 싸우는 것의 그 아득함을 나는 감히 알지 못한다.
내가 시민단체, 아닌 부문운동이란 말로 처음 시민운동의 존재를 접한 것은 대학 1학년 때인 87년 한국여성민우회의 창립이었다. 그리고 요즘 연일 양아치조직처럼 이리저리 짓밟히는 정대협은 1990년 창립되었다. 난 그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가시밭길을 헤쳐나왔는지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 시민단체, 시민운동이란 말은 최소한 나에게는 현실사회주의 실험이 실패하고 동구권이 몰락한 91년부터였다. 처음엔 시민운동으로 전향하는 사람들을 개량주의자라 비판하고 손가락질하는 분위기였고 시민운동 활동가들은 부르조아 운동이란 비난과 가난을 동시에 감내해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보정당도 그러했지만 시민단체는 거의 모두가 빨갱이 취급을 받았기에 지금처럼 많은 후원금을 받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90년대 초중반 지역에서의 시민운동 정착시기는 정말 힘들었다. 너무나 오랫동안 돈 안받고 일하는, 아니 돈 벌어 활동비로 충당하며 일하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다보니 그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나의 노동의 대가를 챙기는 일을 잘 못했다. 대가를 말하는 것은 옹졸하고 스스로 진심을 폄훼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챙겨주면 고맙고 안챙겨주면 그뿐이라는 식으로 퉁치고 온 경우가 많다. 몇 달동안 수업료를 안줘도 달라 말도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내 모습은 전적으로 그 시절의 잘못된 경험 때문이다. 지난해 프리랜서로 일하는 후배 문화기획자에게 나의 그런 개념없는 노동의식에 대해 비판받고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렸는지 모른다. 나야 생계방편도 아니고 좋아서 봉사하는 일이니 그렇다 쳐도 생계로, 일로 하는 사람들에게 민폐도 그런 민폐가 없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럼에도 아직도 잘 안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은 모든 일에는 다 그럴 만 하니 하겠지, 다 뭔가 생기는 게 있겠지 하고 생각한다는 것을 많이 느끼지만 사실 시민단체 활동이라는 게 그 뭔가가 생길 틈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살면서 서너번 시민단체 일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매번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로 손사래를 쳤는데 어쩌면 그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누구보다 잘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소위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에게는 하루 8시간 노동과 최저임금, 복리후생과 지속가능한 직업이라는 직업선택의 ABC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시민단체 상근자의 임금규정이 만들어진지 오래지만 얼마나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업무는 시간중심이 아니라 과제 중심이고 주로 만나야 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퇴근한 후인 경우가 많아 장시간 노동은 물론이고 시민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위해서는 주말과 휴일을 반납해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부모가 시민운동 한답시고 허구헌날 야근하고 길바닥에서 시간을 보낼 때 그들의 자녀들은 늘 뒷전이 되거나 같이 길바닥에서 성장하고 부모를 사회에 내어준 빈자리로 허기진 성장기를 보내는 경우가 많다. 맨날 몸빵하면서 생색은 돈버는 동서가 다 내고 칭찬받는 것을 보며 속끓이하는 맏며느리의 심정이랄까. 같은 활동이어도 회원으로서 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 되고 활동가(상근자)가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된다. 일하다보면 간혹 부러운 사람이 후원금 내고 대접받는 것을 볼 때 아 나도 다른 데서 돈벌어 후원하고 우아하게 살고 싶다 이런 생각 한두번쯤은 다 해보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오직 가치와 자긍심 때문이다.
난 이번 윤미향 사건은 조국 사건과는 달리 정치적 논리나 팩트체크 방식으로 보는 것에는 관심도 없고 판단할 능력도 없다. 그저 그곳에 사람이 있었네 하는 것을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회계처리가 부실하고 빈틈이 많은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업무량에 비해 턱없이 모자라는 활동가들로 활동비도 쥐꼬리만큼 주면서 그 많은 일들을 완벽하게 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참으로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아마 공무원 조직이었다면 정대협 3명의 활동가가 하는 일에 최소 10명 이상은 매달렸을 것이다. 시민운동단체이니 순수한 자원봉사가 되어야 한다고? 세상에 실로 순수하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이런 말을 들으면 마치 80년대 순수문학, 참여문학 논쟁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되기도 한다.
차제에 시민운동이란 무엇인가, 활동가란 무엇인가 근본적인 질문을 물어야 한다. 시민단체란 국가가 하지 못했거나 방기했던 영역에서 힘없고 억울한 시민 개개인을 대변하여 오직 공익만을 생각하며 목소리를 내고 정치와 행정이 하지 못하는 빈공간을 메워주는 말그대로 비정부기구, NGO다.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자기 좋아서 하는 사람, 허드렛일하는 사람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공짜로 써먹을 수 있는 유휴인력이거나 자원봉사자가 아니다. 그들도 개인의 욕망이 있다. 집도 사고 싶고 아이도 잘 키우고 싶고 여행도 가고 싶은 보통의 사람일 뿐이다. 이번 일은 못된 의도가 읽혀지지만 그나마 긍정적인 면이 있다면 국가가 어느정도 기능을 하게 되어 이런 문제도 불거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그동안 국가가 해야 할 얼마나 많은 일들이 순수한(!) 활동가들에게 의존해왔는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들에게 돌을 던질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특히 여성, 인권, 노동분야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이 그들이 외치는 것처럼 여성으로서 노동자로서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지, 타인과 시민의 인권을 말하기 이전에 자신의 인권을 충분히 보장받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전국의 수많은 시민단체에서 오랫동안 박봉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다 하나둘씩 떠나간 사람들, 그들을 보며 허탈하지만 군소리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이크를 주어야 한다. 턱없는 회비와 후원금으로 보조금 사업을 신청할 수밖에 없는, 오늘도 영수증과 공무원, 문서더미에 파묻히고 때로 길거리에서 오직 명예와 자부심으로 묵묵히 일을 하고 있는 수많은 활동가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 사태를 속절없이 지켜보고 있을 수많은 활동가들이 더 아프게 느껴진다.
이용수 할머니(이렇게 부르는 것, 참 맘에 안든다)도 서운함이 많으셨을 줄로 안다. 그러나 당신의 지금 말씀들이 당신들의 아픔을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시절부터 30년간 공론화하고 당신들 곁을 변함없이 지키면서 2차 3차 폭력을 함께 감내했던 동지들에게 어떤 비수로 돌아갈지를 한번더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들만큼 당신의 아픔을 함께 하고 일상을 반납하며 곁을 지켜준 사람들이 있는가. 전쟁폭력과 여성인권에 관심을 갖고 수요집회에 매주 참여한다고 해도 참여하는 사람과 주최하는 사람의 무게는 하늘과 땅 차이다. 희생과 헌신은 활동가들이 선택한 것이지 누구도 심지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당신들조차도 요구할 권리가 없다. 당신의 말씀대로 잘못이 있으면 경중을 따져 징계하고 처벌하고 제도적으로 보완할 일이지 30년간 당신들의 곁을 지켜준 사람을 범죄자 취급하며 원색적으로 비난할 일이 아니다. 
나는 시민단체의 활동가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기에 형편이 어려움을 알고도 때로 손사래치고 얼마 안되는 회비와 후원금으로 면죄부를 받고 있지만 부채감의 무게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무슨 자격으로 말하겠나 싶어 ‘할많하않’이기도 했고 팩트확인도 안돼 판단을 유보해온 것조차 한없이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오늘이다. 이번 일이 그동안 곳곳에서 오직 공공선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자신의 재능과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으며 활동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도매급으로 취급받거나 폄하되지 않기를, 그들이 처한 노동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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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comments
김도연
‘희생과 헌신은 활동가들이 선택한 것이지 누구도 요구할 권리가 없다’는 말씀 너무도 지당한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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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Chul Kim
존경합니다. 그게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 어지간한 사람이면 다 알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용수 할머니(저도 이 칭호가 참 그렇습니다만)의 마음을 이해해보려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좀 되지 않습니다. 윤미향씨는 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했을까요? 그러나 제가 모르는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아 함부로 재단하지 않고 지금은 무슨 판단을 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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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희
오늘 할머니의 기자간담회를 보고나니 더 우울해집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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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광
참 안타깝네요...그래서 공인이 될려거든 자신을 한번 쯤 뒤돌아 볼 줄 알아야 되는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젊으디 젊고 곱기도 고왔을 그 몸을 무수히 더럽힌 왜구들과 친해야 한다는 말씀이 도무지 이해가... 노망일까요... 아니면 치매일까요... ㅉ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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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가치를 찾아 간다는 게 너무나 힘든 일임이 이용수 할매를 보며 새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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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희
오늘도 역시 선생님의 글은 현실인식과 더불어 마음의 위안을 주네요~
'호의가 길어지면 권리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기에, 자신을 내려놓고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상처를 입는것 같습니다.
오늘 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을 보았습니다만,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싶은지 잘 모른채 횡설수설 하신것 같았습니다.
어떤 서운함이 있는진 모르겠으나, 김복동 할머니와 같은 대접을 못받았던게 서운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자회견의 내용은 아무런 정보를 주지 못한듯합니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서는, 배신당했느니 이용만 했느니 하는 감정적인 단어에 휘둘릴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제 마음을 너무나 잘 표현해주신 선생님의 글, 오늘도 감사히 모셔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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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홍석
저는 이용수씨를 피해자 그이상 그이하로 안보기로 했습니다
미통당 곽씨가 주최하는 곳에 들러리가 된듯한 퍼포먼스를 보고 있노라니 기가막힙니다
선생님 글 읽고나니
더 화가 납니다
지들이 시민운동이란걸 하고 시민단체 운운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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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장홍석 그러게 말입니다. 이용수님이 친일을 얘기하고 저들과 똑같은 논리를 내세우시다니 참담합니다. 30년 헌신적인 활동을 스스로 부정하시는 것 같아 화마저 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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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지
어느 단체나 모임이든 이름이 알려지고 커지게 되면 하나의 단순 목적으로만 사람들이 모이지 않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다같은 피해자이나 서로 다른 사람인 할머니들도 마찬가지이고요.
기부나 후원을 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하나이겠으나 그 많은 다름이 갈등을 낳고 속사정이 만천하에 드러나면, 진실이나 사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지고 ... 남는 것은 서로의 상처 뿐이지요. 안타깝게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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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이영지 네. 그동안 정대협, 정의연이 주도하여 전쟁폭력과 성노예문제를 공론화해온 지난했던 세월이 참 무색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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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영
저도 지금은 많이 물러나 후원금이나 여기저기 좀 보태며 살고 있지만.........
30년이란 세월 그리고 시민단체에서 일한다는게 어떤건지 조금은 알기에 뭐라고 쉽게 이야기 할수가 없더군요
그냥 속상하고 안타깝고....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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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이원영 네 지켜보는 것 외엔 판단도 유예했는데 오늘 두번째 기자회견을 보니 참담하기 이를데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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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섭
고맙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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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
구구절절
옳은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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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onJong Hwang
끝에서 두번째 문단이 핵심입니다. 항상 감탄/감동하며 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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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JoonJong Hwang 공감해주셔서 저에게도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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张硕焕
긴글이지만...
시민단체에 소속된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해달라.
그들은 누구보다 박봉에 열심히 일한다...
뭐 이런 논조이신데....
맞아요.
고생하시는 분들이 참 많아요.
그러나...
그렇다고 불법과 부도덕이 용인되어선 곤란하겠죠.
정의는 그렇게 조금씩 양보하고 이해하고 눈감아주면서...무너져 내리죠.
결론을 못내리셨다면....중립을 지키시길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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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정
고맙습니다.
100% 1000%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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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ung Kil Chang
팩트체크...저 역시 이 문제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었던...심지어 어느 쪽에도 '좋아요'도 누르질 못했습니다. 쌍방이 파도치듯 치열한 설전만 있을 뿐 뭐하나 누구 말이 옳은지 단서가 될 만한 걸 찾지 못했다는 게 반증이 되겠지요. 하지만 올리신 글에서 그동안 우리가 미처 살피지 못했던 오로지 정의로운 뜻 하나로 자신의 일부를 희생하며 어떤 댓가도 바라지 않고 묵묵히 뒤에서 드러나지 않게 사회를 위해 봉사했던 또다른 많은 사회봉사활동가 분들을 조명해주심에 답답했던 시야가 트임을 느낍니다. 이는 한때 그 현장에 참여하여 몸으로 체험한 이만이 가질 수 있는 펙트이기에 절로 공감이 오는 것이겠지요. 더불어 지금도 그 진실의 여부엔 그닥이지만 그 현장에서 오늘도 수고하시는 분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이게 진정한 팩트이기도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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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영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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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환
난, 솔직히 나라 잃어 위안부 할머니들이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서는 참 미안하고 안됐다는 감정은 있지만 할머니들이 나라를 위해 훌륭한 일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음.
오히려 나라를 되찾으려고 목숨 걸고 독립운동하신 분들이 더 훌륭하시지.
할머니들이 훌륭할 때는 일제의 만행을 드러내실 때인데, 그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느라 정의연이 일정한 공헌을 했다고봐.
정부도 외면하는 일을 민간단체가 30년 동안 수고 해서 할머니들을 훌륭하게 만들었다고 보거든.
그러면, 좀 서운해도 할머니들이 정의연에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고 봐.
할머니들을 훌륭하게 만드는데 일조한 사람들이잖아.
불평을 하려거든 아직까지 억울함과 분노를 해결하는데 소홀했던 정부에 해야하고, 특별히 할머니들 모르게 일본과 불가역적 합의해서 할머니들을 두 번 죽인 나쁜 정부를 탓해야지. 그리고 그런 나쁜 정부에 역정 들어준 조선일보같은 친일파들에게 해야지.
어떻게 이제 와서 그런 놈들과 손 잡고 정의연을 욕보일 수 있는거지(?!)
그래서 나 지금, 이용수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겠어.
- 최석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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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ndon Sketch
삶의 무게라는 단어가 나눠주신 글 읽으며 이처럼 엄중하게 다가왔던 적이 없어서 너무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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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London Sketch 그렇게 말씀하시니 제가 더 민망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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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양
시민운동의 시작은 온몸을 던지는 거나 마찬가지지! 이 문제로 우리 사회가 또 양분되어 갈등을 키워나가는 듯한 모습이야! 언론이 또 그런 역할을 담당하는 꼴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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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희박
옳은 말씀,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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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문
감사합니다..맘이 아프고 힘들었는데 위안이 됩니다..늘 좋은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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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es Jun
넵. 고맙습니다.
공감합니다.
시민단체들과 운동가님들을 응원합니다.
No photo description avail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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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크게 공감하여 카스에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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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young Kim
글을 읽으며 마음이 점점 무거워집니다
활동가들에게 빚을 지고 사는 느낌... 좋은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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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미숙
김미영 각자의 조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거죠. 누군가는 공적인 역할을 더 도맡아 하는 것이고요. 요즘은 상근활동가들 구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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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young Kim
강미숙 그러게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생각하며 힘쓰며 살수밖에 없으리라 느껴집니다 힘내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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