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13

인문학의 깊이-나카노 시게하루와 김두용 2010 김윤식

인문학의 깊이-나카노 시게하루와 김두용 : 책&생각 : 문화 : 뉴스 : 한겨레

인문학의 깊이-나카노 시게하루와 김두용

등록 :2010-09-17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김윤식의 문학산책 /

재일동포라면 문학에 문외한이라도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1929)을 알고 있을 법하오. 일본 프롤레타리아 시인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의 이 작품이 어째서 그토록 감동적이었을까. 노동에 종사하던 조선인이 모종의 사건으로 일본에서 쫓기어 고국으로 가는 장면을 노래한 것.

“신(辛)이여 잘 가거라/ 김(金)이여 잘 가거라/ 그대들은 비오는 시나가와역에서 차에 오르는구나”로 시작되는 이 시는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안타까움이 분노를 동반하여 넘쳐흐르오. 
언젠가 그대들은 다시 현해탄을 건너와 그대들을 쫓아낸 그 ‘XX’에게 복수하라는 것.
 ‘XX’로 된 부분이 바로 천황을 가리킴인 것. 
<우산 받은 요코하마의 부두>(1929)로 임화가 화답한 것은 이미 문학적인 사실.

나카노의 시가 지닌 결정적인 곳은 조선노동자를 두고 “일본 프롤레타리아의 앞잡이요 뒷군”이라 한 대목. 이것은 민족차별이 아닐 수 없다는 것.

이 비판 앞에 정작 시인은 생전에 솔직히 그렇다고 승인했소. 무의식의 발로였다는 것. 이는 계급과 민족의 관계가 깊은 수준에서 검토된 사례라 할 만하오. 인문학이 이런 깊이에까지 닿아야 비로소 그 몫이 살아나는 법.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사례는 또 어떠할까.

나카노는 1930년대 초 당으로부터 전향했지만 종전 후엔 복당되어 참의원까지 지냈소.

맥아더 사령부가 조선에 기관차를 몇 대 보내라고 일본 정부에 요구했을 때 나카노는 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에 글 한 편을 썼소. 수필 <기관차 문제>(1946. 3. 11)가 그것.


현재 일본 국민생활에 제일 필요한 것이 기관차라는 것. 그것도 성능이 좋은 것이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조선엔 낡아빠진 기관차를 보내야 할까. 노오! 라고 그는 힘차게 말했소. 가장 성능 좋은 기관차를, 그것도 많이 조선에 보내야 한다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천황 일족이 타는 궁정 기관차를 보내야 한다는 것. 자기의 이런 제안에 일본 국철 노동자의 응답도, 조선 형제들의 목소리도 듣고 싶다, 라고.

이러한 제안 역시 민족차별이 아니었을까. <창씨개명>(2008)의 저자이자 정작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의 조선어역을 찾아낸 미즈노 나오키 교수(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도 그렇게 의심하는 인문학자의 한 사람이오. 

미즈노씨는 나카노와 도쿄제대 선후배 관계인 조선인 김두용의 글 <기관차를 받았다>를 찾아내었소. 일본 공산당원이자 재일동포인 김두용은 나카노의 글을 읽고 유쾌했다는 전제하에서 이렇게 적었소. “그 기관차에 우리의 거룩한 희생자의 영령들을 태우고, 우리도 타고, 또 우리들 일반 인민도 타서 조선에 간다면 더욱 좋다. 그러나 현재 심각한 교통지옥에 고생하고 있는 일본의 인민대중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제일 적당한 방법이리라”(<아카하타>, 1946. 4. 2)라고.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으로 천황 일족이 타는 기관차를 준다면 받겠으나 역시 궁정기관차는 일본 인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 이는 물론 일본 공산당원으로 있는 재일 조선인의 결의이겠으나, 그 심층에는 민족 차별에 대한 모종의 비판이 깔려 있지 않았을까. 누구보다 나카노의 과거를 잘 알고 있는 김두용임을 염두에 둘 때 특히 그러하오.

나카노, 그는 또다시 무의식 속에서 민족차별을 내보인 게 아닐까. 그렇게 김두용이 무의식 속에서 뇌고 있을지 모른다고 미즈노 교수가 이쪽을 향해 조용히 묻고 있었소. 인문학의 깊이 그것 말이외다.

김윤식 문학평론가, 서울대 명예교수


연재김윤식의 문학산책

세 층위의 내면성으로 이루어진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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