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5

알라딘: 그런 세대는 없다 - 불평등 시대의 세대와 정치 이야기 신진욱

알라딘: 그런 세대는 없다
그런 세대는 없다 - 불평등 시대의 세대와 정치 이야기 
신진욱 (지은이)개마고원2022-02-28


책소개

‘세대’와 ‘정치’가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 유권자들의 관심이 큰 만큼, 이 책에서 저자는 세대정치 현상의 의미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며 현재 2030세대의 정치적 유동성이 노무현 정권 후반기와 유사한 국면임도 보여준다. 나아가 각종 세대담론들이 박근혜 노동개혁, 조국 사태, 최근 보궐선거 및 대선 등 정치 사건을 계기로 폭발했음을 규명함으로써 세대담론의 정치적 측면을 보다 적확히 이해하도록 해준다.

나와 다른 시대에 나고 자란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생애와 현실을 알고자 하는 관심이, 따라서 세대론 자체가 문제이거나 한 건 전혀 아니다. 특정 세대를 안정/불안정, 가해/피해, 착취/피착취 식으로 갈라놓는 세대불평등론으로는 정작 각 세대 내에서 교육, 직업, 고용, 자산 등의 부문별로 한층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와 불평등 현실을 보지 못하게 되므로 문제인 것이다. 결국 그런 담론의 허구성을 실증적으로 밝힘으로써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려는 것이 이 책의 일차적 목표인 셈이다.


목차
머리말

시작하며/ 현실 직시의 방해물들

제1장 세대, 무엇이 문제인가?
1절 ‘세대’에 관한 의문
2절 갈등사회 한국의 세대 갈등
3절 세대담론의 폭발이라는 ‘현상’
4절 어떻게 세대문제에 접근할 것인가?

제2장 불평등 시대의 청년
1절 ‘청년’이 논쟁적 개념인 이유
2절 누가 ‘청년’을 대표하는가?
3절 청년세대의 경제적 양극화
4절 계층으로 갈라진 인식세계

제3장 기성세대는 기득권층인가?
1절 ‘586세대’, 누구를 가리키나?
2절 기성세대 다수는 고졸 노동자
3절 그 때도 청년기에 양극화가 시작됐다
4절 중년의 계층화된 불안과 죽음

제4장 한국사회 불평등 구조의 세대 구성
1절 변화하는 계급구조 속의 세대들
2절 젊은 부동산 부자들
3절 정치권 ‘고인물’은 왜 고였나?

제5장 누가 왜 ‘청년’을 말하는가?
1절 정치적 각축장이 된 청년담론
2절 어느 청년의 공정인가?
3절 ‘MZ세대’ 담론의 정치적 유래와 상업화
4절 ‘X세대’와 ‘신세대’ 담론의 생애

제6장 정치담론과 세대담론의 융합
1절 세대 혐오담론이 된 ‘586세대’
2절 정치의 세대화, 세대의 정치화
3절 정치적 세대담론의 서사들

제7장 한국 정치의 역동과 세대
1절 젊은 민주주의의 열정
2절 출렁이는 세대 균열
3절 ‘2030’ 유권자는 어디로 가는가?
4절 ‘청년노동자’와 ‘이대남’, 두 정체성의 정치

맺으며/ 대립의 담론이 지워버린 현실의 삶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신진욱 (지은이)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에 2005년부터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베를린자유대와 오스트리아 그라츠대에서 방문교수를 지냈으며 알렉산더 폰 훔볼트 펠로우, 한국사회정책학회 부회장, DAAD독일유럽연구센터장을 역임했다. 민주주의, 정치담론, 사회운동, 불평등과 복지정치 등의 연구 분야에서 10여 권의 저서와 70여 편의 논문을 출간했다.
주요 저서로 <한국의 근대화와 시민사회>, <시민>, <다중격차, 한국사회 불평등 구조>(공저), <한국에서 불평등 심화와 그 영향>(공저),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공저) 등이 있다. 최근에는 불평등의 정치적 원인과 결과, 사회적 약자의 임파워먼트, 21세기 사회운동과 거버넌스 변화에 관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그런 세대는 없다>,<현대 비판사회이론의 흐름>,<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 … 총 1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문제는 ‘세대 간 불평등’이 아니라
‘세대 내 불평등’이다!

세대선정주의: ‘기득권 기성세대’ vs ‘불안정 청년세대’
역대 그 어떤 선거와도 달리, 유독 이번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온갖 ‘세대’가 호출되고 수다한 ‘세대담론’이 쏟아졌다. 이는 물론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에 대해 그 원인과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노력의 하나로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다. 그중 특히 많이 불려나온 두 특정 세대(586/86 ‘기성세대’, 2030/MZ ‘청년세대’)는 서로 뒤얽히면서 ‘운빨 좋은 기성세대의 사다리 걷어차기와 그에 희생되는 청년세대’ 같은 유의 프레임까지 만들어졌다. 관련한 언론 기사 제목들만 봐도「불평등사회, 86세대에 책임을 묻다」「86세대 기득권 이제 양보해야 할 때」「586과 민노총 결탁, 젊은 세대 비정규직 내몰아」「청년들 힘든 삶에 책임지지 않는 586세대의 위선」「민주화세대, 86세대의 집합적 부도덕과 윤리 파탄」… 대개 이런 식이다.
그렇다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 끼여 스물네 살 비정규 노동자 김용균씨가, 평택항 부두에서 컨테이너에 깔려 스물세 살 알바생 이선호씨가 사망했을 때, 이런 안타까운 청년들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그 책임을 ‘기성세대’에게 묻게 되는 건 자연스런 수순인 듯 보인다. 하지만 이런 세대담론의 가해-피해 대립항은 뭔가 이상하다. 김용균씨의 어머니도 노동자이며, 이선호씨의 아버지도 아들과 같은 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로, 이들이 이른바 그 기성세대 아닌가. 한국의 산재사망자는 해마다 2000명을 웃도는데, 그 70%가 나이 50대 이상의 노동자로, 바로 그 기성세대다. 최악의 산재사망률을 보이는 한국의 현실이 특정 세대만의 고통이 아닐진대, 그렇게 세대불평등론으로 불려나오는 순간 중년과 노년의 마찬가지 고통은 주목되고 포착되어야 할 삶의 현실에서 배제되고 만다.

청년들의 어려움을 말하기 위해 다른 세대의 인생이 짊어진 무게를 폄훼하거나 심지어 기득권층으로 만들 필요는 없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가해자 세대와 피해자 세대, 착취하는 세대와 착취당하는 세대, 운좋은 세대와 불운한 세대를 나누는 일은 경험적으로 사실이 아닐뿐더러 정책적으로 무익하고, 윤리적으로도 문제적이다. -본문 352쪽

오도된 세대담론의 오류과 왜곡
‘기성세대의 기득권에 희생당하는 청년세대’라는 식으로 ‘세대 간 불평등’을 강조하는 주장에 과연 타당성이 있는지를 저자는 수많은 실증자료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분석해 보이고 있다. 우선, 많은 주목과 호응을 받으며 그런 세대선정주의에 단단한 버팀목 노릇을 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몇 가지 통념을 보자.
- 586세대는 당시 대학만 나오면 쉽게 취직했다: 그러나 이 ‘억세게 운좋은’ 사람들은 그 세대 내의 극히 일부라는 점은 곧잘 잊힌다. 80년대 학령인구 중 4년제 대학 취학률은 13%, 즉 1960년대생인 현재의 50대들 가운데 당시 대학에 간 사람은 10명중 1명 남짓. 따라서 실상은, 그때는 대졸 여부에 따른 격차가 지금보다 훨씬 컸긴 하지만 세대 내 다수는 비대졸자였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세대 전체가 그러한 양 허위일반화되어 있는 것이다.
- 청년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주로 저임금 판매서비스직에 종사하고 있다: 이 직업군에 청년 저임금노동자가 집중되어 있는 건 맞지만, 한편으로 사무전문직 종사자의 비율을 보면 30대(31%), 15~29세(27%), 40대(25%)로 전문직은 20~40대의 직업이란 점 역시 같이 봐야 한다. 청년세대의 직업 구성은 “한편에 저임금 서비스·판매직 노동자, 다른 한편에 고학력 사무·전문직 종사자가 대단히 많은 반분 구조”인 것이다. 게다가 880만 청년의 일자리 빼앗는 주범이란 ‘50대 기득권 노조원’도 실상은 그들이 전체 취업자의 0.7%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매우 과장된 담론이 아닐 수 없다.
- 기성세대는 부동산으로 쉽게 돈 번 안정계층이다: 기성세대는 대부분 안정계층이고 청년세대엔 불안정계층만 있는 듯 착각을 일으키는 주장으로, 고소득 청년의 존재를 망각하게 한다. 오히려 이 문제의 핵심은 ‘부와 지위의 세대 간 이전’에 있으며, “어떤 세대가 안정계층이고 다른 세대가 불안정계층인 게 아니라, 안정계층의 부모자식과 불안정계층의 부모자식이 있으며, 이 문제가 청년세대에 와서 더 심각해졌다”는 데 있다.

말하자면 벤처기업 사장 청년과 배달노동자 청년, 넥타이 맨 대기업 정규직 청년과 중소기업 공장노동자 청년,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졸업자 청년과 2년제 전문대 또는 고교 졸업자 청년, 브랜드 아파트에 거주하는 청년과 고시원?쪽방의 1인가구 청년이 과연 다 같은 ‘청년’이라는 이유로 비슷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비슷한 인식세계 안에서 살고 있을지를 묻는 것이다. 이 질문은 또한 지금 우리 사회에서 ‘청년은 이렇다’라고 알고 있는 많은 것이, 사실은 청년세대 내에 사회적 발언권이 있거나 사회적 관심을 받는 특정 계층의 특성을 세대 전체의 특성으로 잘못 일반화한 것은 아닌지 묻는 것이기도 하다. -본문 114쪽

세대 간 불평등을 과장하는 담론은 세대 내의 계층 사이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불평등 구조를 자꾸 축소하고 외면한다. 그러나 이 불평등 시대에 우리가 진정 보아야 할 것은 세대 내에서 갈수록 삼화되고 있는 고용격차, 소득격차, 자산격차 들이다. 이를 더욱 악화일로로 밀어붙이고 있는 부와 지위의 세습도 말이다.

세대 간 계층세습은 위선적이고 속물적인 상류층만의 얘기가 아니다. 실은 많은 사람이 전혀 악의 없이 행하는 일상의 미시적 실천들이 모여 거시적인 격차구조를 만든다. 예를 들어 고학력 중산층 부모는 자식이 넓은 세상을 보고 꿈을 펼치도록 해외여행을 함께하고 어학연수를 보내주는 사랑으로 우리 사회의 학력?학벌의 격차구조 심화에 기여한다. 또한 그들은 자식이 집을 한 채 갖고 자기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금전적인 도움을 주는 희생으로 주거·자산 격차구조의 재생산에 동참한다. 그들은 사회이슈와 인문학에 관한 일상적인 지식의 전수로 중산층 문화 자본을 자식에게 대물림할 수 있다. 높은 학력, 좋은 직장, 안정된 소득, 자기 집, 넉넉한 재산, 괜찮은 인맥, 문화적 자원 중 어느 하나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이 계층세습의 고리에서 자신만은 완전히 자유롭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본문 108쪽

2030세대와 정치권의 86세대 담론
2030세대는 인구학적으로는 소수지만 정치적으로는 매우 적극적이다. 박근혜 탄핵정국과 촛불집회를 통해 얻어진 정치효능감이 이들의 정치적 존재감을 높여준 덕분이지만, 동시에 특정 정당에 대한 충성도는 낮은 비당파가 많다. 이런 양면적 특성이 오히려 각 정당들로부터 구애의 대상이 되게 한다. 그런 와중에 ‘세대포위론’ ‘반페미 이대남’ ‘반중 20대’ 등의 이슈가 부상하기도 했다. 그 가운데 2030세대에게 정치권이 적극 꺼내든, 기득권 50대 vs 희생자 20대라는 ‘86세대 담론’(기득권론, 무능론, 청년착취론)은 그러나 세대를 막론하고 모두가 겪고 있는 차별과 불평등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 단지 청년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려고 정적을 ‘청년의 적’으로 몰아 대중의 분노를 불러오려는 전략의 당연한 한계일 것이다.

세대론에 경도된 정치는 도대체 유권자의 어떤 이익을 대변한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지방거주자는 지역격차 해소를 요구할 수 있고, 임대생활자는 주거안정 대책을 요구할 수 있으며, 빈곤층은 생계안정 대책을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20대의 이름으로 요구할 수 있는 정책은 없다. 20대 상류층을 위한 부동산 감세정책, 20대 중산층을 위한 주식시장 촉진책, 20대 노동자를 위한 최저임금 정책, 20대 페미니스트가 요구하는 성산업 대책, 20대 안티페미니스트가 요구하는 무고죄 강화 정책은 있지만 ‘20대 정책’은 없다는 것이다. -본문 31~32쪽

‘세대’와 ‘정치’가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 유권자들의 관심이 큰 만큼, 이 책에서 저자는 세대정치 현상의 의미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며 현재 2030세대의 정치적 유동성이 노무현 정권 후반기와 유사한 국면임도 보여준다. 나아가 각종 세대담론들이 박근혜 노동개혁, 조국 사태, 최근 보궐선거 및 대선 등 정치 사건을 계기로 폭발했음을 규명함으로써 세대담론의 정치적 측면을 보다 적확히 이해하도록 해준다.

실체 아닌 허상을 보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나와 다른 시대에 나고 자란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생애와 현실을 알고자 하는 관심이, 따라서 세대론 자체가 문제이거나 한 건 전혀 아니다. 특정 세대를 안정/불안정, 가해/피해, 착취/피착취 식으로 갈라놓는 세대불평등론으로는 정작 각 세대 내에서 교육, 직업, 고용, 자산 등의 부문별로 한층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와 불평등 현실을 보지 못하게 되므로 문제인 것이다. 결국 그런 담론의 허구성을 실증적으로 밝힘으로써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려는 것이 이 책의 일차적 목표인 셈이다.

‘기성세대’라는 악을 만들어 청년들에게 비난의 대상을 만들어주고 청년의 편인 듯 가장하여 인기를 얻으려는 발상은 어쩌면 큰 걸림돌이 없는 일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기성세대’는 동질적 이해관계를 가진 사회집단으로서 실체가 없기에, 비난에 대해 반박하지도, 보복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고용주에게, 직장 상사에게, 집주인에게 맞선다면 당신은 곧바로 응당한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가 노인이든, 중년이든, 당신보다 젊은 청년이든 말이다. 계급은 실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을 한 뼘만이라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려면 허상이 아니라 실체를 직시해야 하지 않겠는가. -본문 165쪽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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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에서 MZ까지 세대담론의 허구성을 논파한다. 전상진이 <세대게임>에서 한국의 세대담론이 프레임에 기반한 일종의 음모론, 즉 가짜 논쟁임을 논증했다면, 이 책은 논리에 실증을 더해 세대론을 남김없이 허물어뜨린다. 나아가 허상이 감춘 진짜 문제, 즉 불평등과 계층 이슈에 주목할 것을 촉구한다.  구매
sanitarium 2022-03-09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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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 대 청년’이라는 허구적 대립
등록 :2022-03-04 
안선희 기자 

기득권으로 모는 50대 다수는 노동자·자영업자
청년 내에서도 양극화 심화하며 격차 벌어져
세대 불평등 아닌 계층 불평등이 진짜 문제

그런 세대는 없다
불평등 시대의 세대와 정치 이야기
신진욱 지음 l 개마고원 l 2만원

 바야흐로 세대론의 전성시대다. 586, 기성세대, 베이비붐 세대, 2030, 엠제트(MZ)세대, 이대남 등 세대를 일컫는 각종 표현이 난무하고, 대선을 앞둔 정치권은 ‘연령대별’ 득표 전략을 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두드러지는 현상은 ‘각종 기득권을 누리는 기성세대’에 대한 매서운 질타와 ‘온갖 어려움을 견뎌 나가는 청년세대’에 대한 연민 어린 눈길이다. 이 두 세대를 대립시키면서 기성세대의 ‘반성’과 ‘양보’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선뜻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런 대립구도는 정말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을까? 이런 담론은 누가 주도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이익을 얻는 집단은 누구일까?
<그런 세대는 없다>에서 지은이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성세대 대 청년’이라는 세대불평등 담론의 허구성을 각종 실증 자료를 동원해 파헤친다. 이와 함께 세대담론의 기원과 역사를 추적하고, 정치적·실천적 함의를 분석한다. 그동안에도 세대담론에 대한 비판은 공론장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지만, 이번 저서는 이를 총체적으로 정리한 ‘종합판’이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기득권 기성세대’ ‘희생자 청년세대’ 등으로 총칭될 수 있을 만큼 동일한 속성을 가진 세대는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같은 세대라 할지라도 현저히 차이 나는 소득과 자산, 고용형태 등을 가진 상이한 계층들로 나눠진다. “이 불평등의 시대에 세대는 더욱더 계급계층으로 갈라지고 있으며 그만큼 더 동질적인 집단으로 간주될 수 없다.”
먼저 기성세대, 특히 이들을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되며 흔히 ‘586세대’라고도 불리는 50대를 살펴보자. 이들은 ‘좋은 시절’에 태어나 쉽게 취직하고 사회에서 안정된 자리를 차지한 “꿀 빨아 먹은” 세대라는 식의 비난을 받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에 학령인구 중 대학 취학률은 20%, 4년제 대학 취학률은 13%에 그쳤다. 현재 50대 취업자의 70%가 서비스·판매직, 기능·기계조작직,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자영업자 중 28%가 50대다. 50대의 다수는 노동자와 자영업자인 것이다. ‘청년 일자리를 빼앗는 주범’이라는 식의 비난을 받는 ‘50대 대기업 정규직 노조원’의 비중은 전체 취업자의 0.7%에 불과하다. 결국 “지금 ‘기성세대’의 다수는 자식 세대를 위해 뭔가 양보하고 내려놓을 기득권이라는 걸 가진 사람이 아니다.”
청년세대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을, 대학을 나와도 취직의 기회가 없고 결혼과 출산마저 포기해야 하는 불행한 세대라고, 또는 능력주의와 경쟁주의를 신봉하고 반페미니즘 성향을 가진 ‘이대남’이라고 한꺼번에 싸잡아 말하는 것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최근 청년세대는 양극화가 점차 심화하고 있다. 소득·고용·사회보장의 세 측면에서 청년세대 내의 양극화 추이를 추적한 연구를 보면 2002년에는 ‘모두 불안정한’ 계층이 19%였지만, 2020년에는 29%까지 늘어났다. ‘모두 안정적인’ 계층 역시 증가했으며 그 사이에 놓인 중간계층은 줄어들었다. 청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월 임금총액 평균은 2017년 기준 각각 214만원과 127만원으로 갑절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런 상황은 지금 문제의 핵심이 청년세대 전반의 불안정화라기보다는 청년세대 내의 심각한 격차라는 것을 말해준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또 한 측면은 이 격차가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에 연동돼 있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부모보다 자식이 가난해진 시대’ 같은 담론이 유행하면서 세대 간 불평등이 문제인 것처럼 주장되고 있지만, 실제 현실의 문제는 ‘부자 부모 아래 부자 자식’ ‘가난한 부모 아래 가난한 자식’이라는 계층 간 불평등이다.
청년세대의 인식세계 역시 단일하지 않고 학력과 학벌, 계층,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 등에 따라 큰 차이가 드러난다. 예를 들어 학력·학벌이 높을수록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더 많은 몫을 가져가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의 능력은 대학입시, 취업시험 등 시험 성적을 보면 알 수 있다’ ‘좋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것은 공정하다’ 등의 문항에 동의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럼 누가, 왜 이런 세대담론들을 만들고 확산시키는가? 세대불평등론은, 청년들의 취업난, 비정규직 문제 등은 기성세대가 과도하게 자원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중장년 노동자의 고용, 임금, 조직을 약화시켜야 해결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를 구사한다. 이 프레임 안에서는 기업, 재벌, 고용주 등의 책임은 사라진다. 일하는 사람의 권익을 보호하는 정책은 말해지지 않는다. 보수진영과 경영단체가 세대불평등론을 적극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2015년 박근혜 정부가 노동자 해고 요건 완화 등 소위 ‘노동개혁’을 추진하던 시기 세대불평등론이 본격적으로 대두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상대 정치 진영을 분노의 대상으로 만들기 위해 ‘청년의 적’으로 공격하는 정치권 역시 세대담론의 재생산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주요한 불평등이 세대 간에 발생하고 있다는 담론의 득세는 세대를 가로지르는 불평등의 실태를 정확하게 보고 그에 대한 실질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지은이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현실을 직시하고 변화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각 세대의 고통의 경중을 저울질하면서 청년들이 더 아픈지, 노인들이 더 아픈지를 따지며 세대와 세대를 비교하기를 멈추어야 한다”며 “가해자 세대와 피해자 세대, 착취하는 세대와 착취당하는 세대, 운 좋은 세대와 불운한 세대를 나누는 일은 경험적으로 사실이 아닐뿐더러 정책적으로 무익하고 윤리적으로도 문제적”이라고 강조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안선희 기자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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