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3

알라딘: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알라딘: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알라딘: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이시카와 이쓰코 (지은이),손지연 (옮긴이)삼천리2014-09-19원제 : 日本軍 ‘慰安婦’にされた少女たち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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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20년 만에 <‘종군위안부’가 된 소녀들>의 개정판을 내놓았다. 최근 일본의 여론 상황은 그렇다 치고, 놀랍게도 이 책의 초판이 나온 건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가 창립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세상에 처음 나온 지도 얼마 되지 않은 1993년이었다. 올해로 82세가 된 이 일본인은 지난날 직접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고, 한국의 나눔의 집까지 찾아와 지금은 고인이 된 할머니들을 취재하여 책을 썼다.

일본의 양심, 이사카와 이쓰코 시인은 교사이자 활동가로서 반핵과 반전 평화를 실천해 왔다. 계간 <히로시마- 나가사키를 생각한다>를 100호까지 발간했고, <한국 원폭 피해자들의 수기> 등 일본 근현대사의 치부를 파헤치는 책을 여러 권 펴냈다. 최근에도 3·11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한 시집 <애도와 분개: 벚꽃나라의 슬픔>을 펴내는 등 날카로움을 잃지 않고 있다.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개정판을 내며

1. 동갑내기 소녀들의 경험
2. 연행되어 간 소녀들
3. ‘위안소’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4. 전쟁 말기의 광기 속에서
5. ‘위안부’는 왜 만들어졌나?
6. 소녀들의 전후
7. 히노마루 휘날리는 ‘위안소’
8.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하여

후기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책속에서


첫문장
유미야 잘 지내고 있니? 그 곳 생활은 어때? 새로운 학교에는 잘 적응하고 있는지?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였다. - 두뽀사리


추천글
일본에서 태어난 이시카와 이쓰코 시인은 ‘위안부’로 끌려갔던 소녀들과 동시대인이었다는 책임감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몸으로, 때로는 시로, 그리고 이렇게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이라는 책으로 오늘을 살고 있는 소녀들에게 ‘위안부’였던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은이가 만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진실에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어떻게 듣고, 무엇을 기억하고, 왜 전해야 하는지.
-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14년 9월 22일자 출판 새책



저자 및 역자소개
이시카와 이쓰코 (石川逸子)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평화사상가이자 시인. 1933년 도쿄에서 태어나 오차노미즈여자대학 사학과를 졸업했다. 오랫동안 중학교 사회 교사로 근무하다 1983년에 퇴직했다. 반핵 메시지를 담은 미니통신 계간 《히로시마?나가사키를 생각한다》를 100호까지 발간했다. 《지도리카후치에 가보셨습니까》, 《부서진 꽃들의 레퀴엠》을 비롯한 시집과 《‘일본의 전쟁’과 시인들》, 《한국 원폭 피해자들의 수기》 같은 책을 펴냈다.

최근작 :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 총 3종 (모두보기)

손지연 (옮긴이)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경희대학교 일본어학과 교수. 경희대 글로벌 류큐오키나와연구소 소장. 저서로 『전후 오키나와문학을 사유하는 방법-젠더, 에스닉, 그리고 내셔널 아이덴티티』, 『냉전 아시아와 오키나와라는 물음』(공편), 『전후 동아시아 여성서사는 어떻게 만날까』(공편), 역서 『오시로 다쓰히로 문학선집』, 『기억의 숲』, 『오키나와와 조선의 틈새에서』, 『오키나와 영화론』, 『슈리의 말』 등이 있다.

최근작 : <냉전 아시아와 오키나와라는 물음>,<전후 동아시아 여성서사는 어떻게 만날까>,<전후 오키나와 문학과 동아시아> … 총 3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황군’ 병사의 선물로 전락한 소녀들

70여 년 전, 꽃다운 소녀들이 중국의 쓰촨 성, 필리핀, 인도네시아, 미얀마, 싱가포르, 오키나와, 남태평양의 팔라우 섬까지, 그야말로 이역만리에 끌려가 고통을 당하고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때의 소녀들은 얼굴과 손에 주름이 패고 백발이 되었음에도 성치 않은 몸으로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 선다. 더 많은 수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패전 70주년이 한 해 앞으로 다가오지만, 지금 일본에서는 아베 총리가 NHK 프로그램에 직접 출연하여 《아사히신문》을 공격하여 우익과 보수 세력을 벌집 쑤시듯 자극하고 있다. 일본의 정치와 언론계의 ‘위안부’ 문제 인식은 사실상 ‘고노 담화’(1993년) 이전으로 돌아가 버렸다. 한국에서도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지식인들의 ‘담론’ 공방과 ‘정치적’ 해석은 진실과 역사인식을 놓치고 있다. 우리는 올해도 이렇게 한일 강제병합, 이른바 ‘국치일’(9월 28일)을 맞고 있다.
“종군 위안부라는 제목에서 ‘종군’은 자칫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군에 따라간 것처럼 생각되기 쉬우므로, 이번에 일본군 ‘위안부’로 바꾸었습니다. 본문에도 나오겠지만 ‘위안부’ 제도는 일본 국가가 만들고 군인과 군속들이 이용한, 글자 그대로 ‘성노예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일본 정부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사죄와 보상을 하기 바랍니다.”

한 일본인이 20년 만에 《‘종군위안부’가 된 소녀들》의 개정판을 내놓으며 덧붙인 말이다. 최근 일본의 여론 상황은 그렇다 치고, 놀랍게도 이 책의 초판이 나온 건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가 창립되고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이 세상에 처음 나온 지도 얼마 되지 않은 1993년이었다. 올해로 82세가 된 이 일본인은 지난날 직접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고, 한국의 나눔의 집까지 찾아와 지금은 고인이 된 할머니들을 취재하여 책을 썼다.


일본의 양심, ‘죽은 역사에 바치는 레퀴엠’

이와나미 주니어신서로 출간된 이 책은, 지금은 성인이 된 수많은 일본 청소년들에게 역사의식을 일깨운 양심의 목소리였다. 야만적인 전쟁의 광기 속에서 조선인 소녀들이 성노예로 끌려가 강간을 당하고 있을 때, 같은 또래 일본인이었다는 부끄러움과 현직 교사로서 대면한 역사의 아픔이 이 책을 쓰게 했으리라.
일본의 양심, 이사카와 이쓰코 시인은 교사이자 활동가로서 반핵과 반전 평화를 실천해 왔다. 계간 《히로시마-나가사키를 생각한다》를 100호까지 발간했고, 《한국 원폭 피해자들의 수기》 등 일본 근현대사의 치부를 파헤치는 책을 여러 권 펴냈다. 최근에도 3·11 동일본 대지진을 소재로 한 시집 《애도와 분개: 벚꽃나라의 슬픔》을 펴내는 등 날카로움을 잃지 않고 있다.


같은 또래 소녀들에게 일어난 일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은 10대 소녀인 아사코와 아키 자매, 아키의 친구 유미가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웃에 사는 가와세 마키코 씨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소녀들 간의 편지와 가와세 마키코의 ‘르포’는 부끄러운 과거와 역사의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고 전쟁의 고통과 여성의 피해는 어느덧 현재의 인권과 평화 문제로 자각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생생한 증언뿐 아니라 직접 일본군 병사로 참전한 이들의 증언과 편지, 일기, 공문서는 충격적이지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드러낸다. ‘위안소’의 실태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본 병사의 심리 묘사, 하루에도 수십 명한테 처참하게 강간당하고 성병에 걸리고 임신하는 소녀들. ‘황군 병사에게 주는 선물,’ ‘공중변소’로 취급되는 이 여성들은 그야말로 노예 신세였다.
책의 뒷부분으로 가면, 20년이 흘러 어느덧 교사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아사코가 가와세 마키코 씨에게 편지를 보낸다. 동생 아키는 서울로 유학을 가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에도 참여하고 소녀상이 세워졌다는 소식도 전한다. 유미도 지역 출판사에서 일하며 ‘위안부’에 관한 세미나를 열고, 동일본 대지진 모금을 제의한 길원옥 할머니의 사연과 중국인 우이샤오란 씨 모자 이야기를 전한다.
강덕경, 김학순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오래되었고 얼마 전에는 황금주 할머니도 세상을 떠난 시점이다. 가와세 마키코는 어른이 된 ‘소녀들’에게 답장을 보낸다. “내가 만나 뵌 ‘위안부’ 피해 여성 가운데 건강하신 분은 이용수 씨 한 분 뿐이네요” 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그러면서도 1999년 도쿄에서 그들이 함께한 국제여성전범재판을 떠올리기도 하고, 2003년 3월 일본 최고재판소가 송신도 씨의 소송을 기각한 처사를 상기시킨다. 지난 20년 동안 ‘위안부’ 문제는 저마다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어느새 이들은 일본 정부를 향해 한시라도 빨리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사죄와 보상을 하라고 촉구한다.


가해자의 증언과 편지, 공문서에 바탕을 둔 생생한 르포

‘위안부’가 된 소녀들은 반세기가 흐른 뒤에야 자신이 어떻게 연행되어 ‘위안부’가 되었는지 낱낱이 세상에 밝혔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증언한 그 용기는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간절함에서 나왔다.
이 책에는 ‘위안부’의 진실을 세상에 처음으로 밝힌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하여 강덕경, 문옥주, 황금주, 이용수 할머니뿐 아니라,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일본에 거주한 배봉기, 송신도 할머니, 북한의 김영실, 중국인 완아이화, 일본인 시로타 스즈코, 네덜란드인 얀 루프 오헤른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형식이 다소 문학적이지만, 편지와 일기, 르포의 행간에는 역사를 대하는 엄중함이 담겨 있다. 자랑스러운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후세에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다.

하나, 본 위안소는 육군과 해군 소속의 군인, 군무원 이외에는 외부인의 입장을 금함.
입장하는 자는 위안소 외출증을 소지할 것.
하나, 입장하는 자는 반드시 접수대에 요금을 지불하고 입장권과 콘돔 한 개를 수령할 것.

1938년 초에 일본군이 직접 운영하는 ‘육군 위안소’에 큰 글씨로 붙어 있던 사용규정 10개 항목 가운데 일부이다. 1938년 1월 2일, 군 특무부 명령으로 ‘위안부’ 검진을 담당했던 군의관 아소 데쓰오(麻生徹男)는 대부분 나이가 어린 처녀들이었다고 기록했다. 이 ‘육군 위안소’에 연행되어 온 여성들은 100명 가운데 80명꼴로 조선인이었다고 한다.

“지나사변(중일전쟁) 전지에 위안소 설치를 위해 내지에서 종업부 등을 모집하는 데 있어 업자들이 트러블을 일으켜 경찰 업무에 방해가 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파견군이 통제하고 이에 준하는 인물이 선정을 적절히 주도하며, 그 실시에 대해서는 관계 지방 헌병 및 경찰 당국과 긴밀히 연락하여 군의 위신 유지 및 사회 문제에 실수가 없도록 배려할 것을 통첩함.”(205쪽)

1938년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군 위안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건〉에 명기되어 있는 내용이다. 1992년 1월, 주오대학 요시미 요시아키(吉見義明) 교수가 구일본군의 ‘위안소’ 설치, 통제를 증명하는 문서와 진중일지를 방위청 방위연구소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한일 외교 문제를 넘어선 인류 보편의 과제

최근 유엔 인권최고대표 나비 필레이는 2008년 9월부터 6년간의 임기를 마치며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 정부가 즉각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행정적 입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 모든 증거를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해야 하며, 이 조사를 통해 드러나는 책임자는 반드시 처벌해야 한다.”(연합뉴스, 2014. 8. 31) 유럽과 미국에서도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함께 20세기의 가장 잔인한 전쟁범죄로 인식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한일 간의 문제를 넘어 보편적인 여성인권과 평화의 문제로 떠올랐음을 보여 준다.
1993년 8월 ‘고노 담화’를 통해 국가가 관여했음을 인정하고 사죄의 뜻을 표명한 바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결할지, 피해자들 한 사람 한사람에게 공식 사죄하고 보상하지 않았다. 9월 28일은 한일 강제병합 104주년이 되는 날이고 내년은 일본이 패전 70주년을 맞는다. 최근 들어서는 이 ‘고노 담화’마저 비판받는 등 일본의 우경화 바람이 거세다. 이런 흐름을 타고 “강제 연행이 아니다”는 발언이 나오고, 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서술을 삭제하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되자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 올라온 비방 글은 이런 분위기를 잘 보여 준다.

“종군위안부의 실존 자체가 현 시점에서는 분명히 부정해야 할 일이며, 사실은 조선인 여성 업주에게 팔려간 여성들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의 비참함을 아이들에게 올바르게 전달하려는 것이면 후지와라 테이의 《흘러가는 별은 살아 있다》로 충분할 것이다.”

“일본군에게 강제 연행되었던 소녀들은 없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되었다. 이 책을 구입하는 분들, 이것이 ‘일교조’(日敎祖)와 일본을 훼손하려는 좌익의 수법입니다. 아이들에게 읽히기 전에 한 번 꼭 읽어 보세요. 유소년기 책은 세뇌되기 쉬우니 주의하세요.” 접기


평점 분포
    
9.7



    


일본군 위안부는 대체로 조선여성들이 대다수였는데, 그 이유는 일본군이 정복한 식민지 여성들에게는 무슨 짓이든 해도 된다는 왜곡된 사고 때문이었다. 
두뽀사리 2015-05-04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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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를 떨게 만드네요. 읽으면서 너무 화가 났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왜 이렇게 약했던건지...분통이 터지네요. 
저기압일땐고기앞 2016-02-1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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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즈음 했던 <눈길>이라는 드라마를 가슴아프게 봤어요.. 생각하기 싫은 아픈 역사도 우리 역사이고 그 속에 견뎌온 우리 할머니들도 우리 역사입니다.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네요..너무 가슴아파요 
크리수탈 2016-01-25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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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화나고 안타까웠습니다. 왜 우리는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해야 했는지.  
이주영 2017-08-24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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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작가가 쓴 위안부로 끌려갔던 피해자분들의 이야기다
뉴스로 듣던 일본인들의 만행을 저지르는 일본인도 있고 그분들의 이야기들 들려주고자 하는 일본인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책이다. 
Jemma 2015-08-13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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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잊지 말고, 피눈물을 닦아줘야... 



"피눈물 난다는 게 어떤 말인지 이제 알겠다."



이 말이 떠오른다. 이제야 피눈물의 의미를 알았단 말인가? 자신의 행동으로 또다시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정작 그 피눈물을 닦아줘도 시원찮을 사람이 그 눈에 피눈물을 나게 해 놓고.



광화문에 나가 보았다. 일본 대사관 근처, 소녀상이 있다. 촛불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든 사람들이 소녀상과 사진도 찍는다. 그 옆에는 천막이 있고 젊은이들이 소녀상 곁을 지키고 있다.



겨울이 되니 소녀상에 목도리를 둘러주고, 장갑을 끼워주기도 한다. 그런데도 소녀상은 추워 보인다. 사람들의 훈기가 소녀상 주변을 감싸고 있지만, 소녀상을 지켜주어야 할 정부가 지켜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 소녀상이 언제 어디로 사라질지 몰라 그 곁에 천막을 치고 지키는 젊은이들, 그들을 따뜻하게 정부가 감싸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많은 촛불들이 소녀상의 목도리, 장갑 역할을 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일본 정부와 협상을 했다고, 그것이 협상인지도 의문이지만, 소녀상을 감싸줄 우리 정부가 앞서서 소녀상을 힘들게 하고 있다. 소녀상을 힘들게 하는 정부의 수장, 그 정부를 이끌었던 사람, 일본과의 협상을 주도했던 사람이 자기 눈에서 '피눈물'이 난다고 한다.



'피눈물'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다. 그가 한번이라도 일본군 위안부가 되었던 분들의 눈물을 닦아준 적이 있던가. 아니 그들의 눈물을 바라본 적이라도 있던가. 그분들이 피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혹시 일본정부와 마찬가지로 일본군 위안부는 민간인들이 저지른 일일 뿐이고, 일본 군부가 관여한, 일본 정부가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설마, 그런 일은 없겠지.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에 대해서 알기는 하는지 의문이다. 진실을 알고 있다면 일본군 위안부가 피해자로 있는 나라의 수장으로서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며 요즘 떠돌고 있는 '피눈물'이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일본군 위안부로 어린 나이에 끌려가 온갖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며 지내다 일본이 패망한 뒤에 고향에 돌아와서도 인간 이하의 삶을 살아간 사람들.



이보다 더 돌아오지도 못한 사람들, 그들의 원한이 쌓이고 쌓여 어떻게든 풀어줘야 하는데, 그것을 풀어줄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현실.



오히려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이 언제 사라질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이 현실이 바로 이제는 몇 분 남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들의 눈에 또다시 피눈물이 나게 하고 있다.



일본인이 쓴 책이다. 양심적인 일본인들 가운데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지니고, 이를 잊지 않고 사죄하고 일본 정부가 책임지게 하려는 사람들도 꽤 있다. 비록 '아베'라는 일본 총리가 군국주의 일본으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 일본에서는 양심적인 사람이 꽤 있다.



소녀들의 편지글로 시작한다. 위안부에 대해 처음 알게 되는 일본 소녀들, 자기 나이 또래에 강제로 끌려가 성노예가 되어야 했던 위안부 얘기를 듣고, 그것에 대해 점점 더 깊이 알아가는 내용으로 책은 전개된다.



르포와 편지글이 주를 이루면서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여기에 시가 등장해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이런 비극이, 이들이 흘려야 했던 피눈물이 아직도 마르지 않고 있다는 것에 분노를 넘어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따라서 책을 읽어가면서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에 직면하게 된다. 그 진실에 직면했을 때 행동하지 않을 수 없음도.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일본군 위안부의 진실을 접하고 점점 변해가는 학생들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진실은 사람을 움직인다.



그런데 가해자인 일본에게 피해자인 우리나라 정부가 강하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를, 그리고 책임을 질 것을 요청해야 하는데, 겨우 돈 몇 푼에 불가역적인 해결이라고 했으니, 위안부 분들의 눈에 더 많은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 있다.



이 책 역시 일본에서는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단다. 일본 우익들에게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런 책은 아이들이 읽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일본 인터넷 서점에 이 책에 혹평이 실려 있다는데... (243-234쪽 참조)



이런 혹평이 실렸다는 것은 그만큼 이 책이 많이 읽힌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저자 역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고 계속 자료 조사를 하여 개정판을 냈다. 이 책은 그 개정판을 번역한 것이다.



일본에서만 이러겠는가. 우리나라에서도 일본군 위안부에 관심을 가지고 낸 책, 또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여전히 소녀상은 있다. (윤정모의 소설, 에미 이름은 조선삐였다와 영화 '귀향' 등)



소녀상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사죄하고 제대로 책임을 져도. 왜냐하면 소녀상은 역사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그 일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알려주는 각성제이기 때문이다.



제발 자기 눈에서 피눈물 난다고 징징대지 말고,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피눈물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마음을 지니고 행동했으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가볍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생생하게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이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하는.



우리나라 학생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무심한 정치인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겠다는 도대체 학자라 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 이 책 좀 읽었으면 좋겠다.
- 접기
kinye91 2016-12-15 공감(1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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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오직 ‘폭력·학살·강간’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87







전쟁은 오직 ‘폭력·학살·강간’

―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이시카와 이쓰코 글

손지연 옮김

삼천리 펴냄, 2014.9.19.







기다립니다. 반가운 벗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어느 날 어느 곳에서 만나기로 한 뒤, 어느 날 어느 곳에 가서 조용히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동안 먼산바라기를 하고, 책을 뒤적이다가, 공책을 꺼내 글을 살짝 씁니다.




반가운 벗이 오랫동안 안 온다면, 혼자 하늘바라기를 더 할 수 있습니다. 반가운 벗이 때를 맞추어서 온다면, 하늘바라기는 그칩니다. 이제부터 서로 바라보면서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기다리는 일이란 무엇일까요? 마음으로 어느 한 가지를 바라면서 가만히 지켜보는 일일까요?




기다립니다. 곰곰이 지켜보면서 기다립니다. 기다립니다. 찬찬히 바라보면서 기다립니다. 봄에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립니다. 겨울에 눈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저기 바다 건너 일본에서 전쟁을 일으킨 이들이 제대로 뉘우치고 참답게 ‘사랑’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다립니다.







.. “어째서 일본 정부는 그토록 전쟁을 좋아하는 걸까요? 이번에도 와 보니 해외에 군대를 파견한다고 하더군요. 난 군인을 보는 것만으로 온몸이 떨려요(김학순).” … “야자나무와 암페라가 쌓여 있고, 강물이 흐르는 곳에 위안소가 자리잡고 있었어요. 정말 비참했죠. 그곳 부대원들은 말이 해병이지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굶주려 있었어요. 그런 와중에도 병사들은 여자들이 있는 곳을 찾아 들었어요. 그런 해골이 덮친다고 생각해 보세요(시로타).” …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인간이 되지 않으면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평화로운 지방에서 온 사람들에게 사람을 죽이도록 훈련시키는 겁니다. 눈을 감고 푹 찌릅니다. 빠지지 않으면 힘껏 잡아 뺍니다.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 짓을 반복하는 사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됩니다. 그리고 부대에 새로 신병이 들어오면 이들이 선임이 되어 두들겨 패고 마귀로 변모시키는 노력을 하게 되죠(데쓰무라 고).” .. (21, 31∼32, 82∼83쪽)







전쟁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먼저, 전쟁은 ‘폭력’입니다. 전쟁무기는 ‘폭력무기’입니다.




사람들은 잘못 알기 일쑤인데, 전쟁무기는 평화를 지키지 않습니다. 전쟁무기는 오직 전쟁에 씁니다. 평화를 지키는 자리에서는 전쟁무기가 덧없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어요. 내가 너한테 총을 내밀어 보셔요. 총을 내밀기에 너와 나 사이가 평화로운가요? 내가 네 앞에서 날카로운 칼을 흔들어 볼까요. 칼을 휘휘 휘두르면 너는 평화롭다고 여길까요?




오늘날 한국에서는 남녘과 북녘이 전쟁무기를 놓고 다툽니다. 전쟁무기가 있어야 평화를 지킨다고 떠벌입니다. 참말 그렇습니다. 떠벌입니다. 전쟁무기가 없으면 남녘이 북녘으로 쳐들어온다고 저쪽에서 떠벌이고, 전쟁무기가 없으면 북녘이 남녘으로 쳐들어온다고 이쪽에서 떠벌입니다. 서로서로 떠벌입니다.




그러면, 전쟁무기가 그득그득 많은 오늘날, 누가 누구를 괴롭힐까요?




어느 누구도 누구를 괴롭히지 않습니다. 남녘과 북녘 모두 정치권력자가 ‘여느 사람들’을 짓밟으면서 괴롭힙니다. 전쟁무기는 평화를 지키는 연모가 아닙니다. 전쟁무기는 정치권력자가 사람들을 짓밟거나 괴롭히는 연모입니다. 전쟁무기를 앞세워 온갖 엉터리 정책을 일삼습니다. 전쟁무기를 앞세워 사람들 목소리를 짓눌러요. 전쟁무기가 없어도 군사쿠테타가 일어났을까요. 전쟁무기가 없어도 군국주의나 제국주의나 식민지가 생겼을까요. 지구별 모든 나라는 전쟁무기를 하루 빨리 없애야 합니다. 총과 칼을 녹여야 합니다. 총알과 미사일을 뜯어야 합니다. 전쟁무기 만드는 과학자를 쫓아내고, 전쟁무기 만드는 공장을 닫아야 합니다.







.. 이 비디오를 보고 문득 우리 반 남자애들에게 불신감이 들었어. 이 애들도 어른이 되면 돈으로 성을 사고 강간을 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야 … 점차 수세에 몰린 일본군은 이른바 ‘3광 작전’이라는 방화, 살인, 약탈이 포함된 작전을 명령했다. 여기에 무자비한 인체 실험과 세균전까지 계획했던 일본은 ‘동아시아의 재앙’ 그 자체였다 … “일본군의 행동은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고 인의와 자애의 마음을 저버린 행동인 것이다. 이러한 무자비한 행동은 머지않아 일본 국내 각 개인의 성품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암묵적으로 강도를 좋은 것이라 가르치는 것과 같다나가이 가후).” .. (38, 96, 97쪽)







전쟁은 ‘학살’입니다. 학살은 한국에서 수없이 있었습니다. 가까이 1980년에도 전라도 광주에서 학살이 있었고, 요 몇 해 앞서는 서울 용산에서 학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골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경상도 밀양에서도 ‘학살’이라고 할 만합니다. 경상도 밀양에 있던 전경과 경찰은 총을 쏘지 않았으나, ‘입으로 학살을 일삼’았습니다. 주먹질과 발길질로 학살을 일삼았습니다.




시골사람은 손에 무엇을 쥐었을까요? 송전탑을 시골에 박지 말라면서 외친 할매와 할배는 두 손에 흙을 쥐고 나락을 쥐었습니다. 시골 할매와 할배는 오직 사랑과 평화를 두 손에 쥔 채 전경하고 경찰한테 맞섰습니다. 전경과 경찰은 두 손에 무엇을 쥐었을까요? 전쟁과 권력입니다. 여기에 학살입니다. 전쟁과 권력이 만나니 학살이 태어납니다.




전쟁무기가 윽박지르니 사람들이 죽어 나갑니다. 사람들은 죽고 싶지 않아 징용으로 끌려가고 징병으로 끌려갑니다. 게다가, 일본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는 이 나라 가시내를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끌고 가서 ‘성노예’로 괴롭혔습니다. 전쟁은 폭력이면서 학살입니다.







.. 다다미 두 장, 그곳은 방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곳이었다. 매서운 추위에, 듣도 보도 못한 이국땅에서 365일 그곳에 갇혀 밤마다 수십 명의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던 소녀들. 그런 지옥 같은 생활을 강제한 것은 다름아닌 천황의 군대였다 … 황금주 씨의 경우, 일본군에게 강간죄, 상해죄, 감금죄, 인신매매죄 등을 물어야 할 것이다. 또한 1910년 파리에서 체결된 〈매춘업을 위한 부녀매음 금지에 관한 국제조약〉은 본인이 원하더라도 미성년자에게 매춘 행위를 시키는 것을 금하며, 매춘을 위한 목적으로 강제로 성인 여성을 유괴한 자는 처벌받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 어째서 병사들은 이토록 성욕에 굶주려 있으며 성욕을 억제하지 못하는 걸까 … 대일본제국은 종이 한 장으로 일본인 남성들을 사지로 내몰았으며 혐오스러운 ‘동양의 마귀’가 되기를 독려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성을 관리하기 위하여 ‘위안소’를 만들었던 것이다 .. (67, 78∼79, 81쪽)







전쟁은 ‘강간’입니다. 전쟁무기를 손에 쥔 이들은 거의 모두 사내입니다. 정치권력을 손에 쥐고 전쟁을 일으키는 이도 거의 모두 사내입니다. 사내는 전쟁무기를 앞세워 가시내를 짓밟습니다. 사랑도 평화도 모르는 사내들은 가장 바보스러우면서 어리석은 길로 갑니다. 왜냐하면, 손에 총과 칼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총칼을 들이밀면서 옷을 벗깁니다. 아니, 손찌검과 발길질로 옷을 찢습니다.




이런 자리에는 아무런 사랑이 없습니다. 사내와 가시내가 만나 살을 섞을 때에는 오직 사랑과 평화가 감돌아 아름다운 씨앗을 빚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만나서 사랑을 낳아야 아기가 태어납니다.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진 학살 어린 핏빛으로 짓밟는 자리에는 오직 ‘강간’만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끔찍한 폭력과 학살과 강간을 일삼다가 원자폭탄 두 방을 맞습니다. 아무리 저지레와 잘못을 일삼았어도 이들이 원자폭탄을 맞아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원자폭탄을 맞았다는 ‘피해자 의식’을 내세웁니다. ‘피해자 의식’을 내세워 일본이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내세우면서 저지른 모든 저지레와 잘못을 슬그머니 덮거나 감추려 합니다. 일본사람 나스 마사모토·니시무라 시게오 두 사람이 빚은 《히로시마, 되풀이해선 안 될 비극》(사계절 번역,2004) 같은 그림책이 바로 이 같은 얼거리로 태어났습니다. 이 그림책은 ‘피해자 의식’으로 가득 찬 모습이 아주 짙고 넓게 나타납니다.




그래요. 일본도 원자폭탄을 맞아서 아픕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일본으로 끌려가 징용살이를 해야 했던’ 식민지 조선사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일본은 ‘원자폭탄을 맞아서 죽은 식민지 조선사람’한테 한 푼조차 배상을 하지 않았으며 ‘원자폭탄 피해 조선사람’을 치료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 ‘천황의 적자’인 일본의 아이들은 ‘총알’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때까지 약간의 시간이 주어졌고, 그 기간이 지나면 부모를 떠나 소개해야 했다. 이와 달리 조선의 어린 소년 소녀들은 공습이 격렬한 일본의 군수공장 노동자로 가차 없이 차출되어 갔다 … 집이 무너진 탓에 근처 텐트 안에 모포만 깔아 놓은 ‘임시 위안소’가 마련되었다. 그곳도 군인들로 붐볐다. 그들에게 한 사람의 소녀는 인간이 아니라 하반신만 존재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 도대체 세상 어떤 여자가 남자에게 몸을 파는 것이 좋아서 자신의 몸을 판단 말인가 … 아이누, 아이즈, 타이완 등지에서 자행한 무차별적인 폭력과 강간 행위는 정복한 땅의 여성들에게 어떤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일본군의 야만적인 사고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 (98, 111, 125, 132쪽)







이시카와 이쓰코 님이 쓴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삼천리,2014)이라는 책을 읽습니다. 1933년에 태어난 이시카와 이쓰코 님은 일본에서 똑똑히 두 눈을 뜨고 슬기롭게 삶을 읽으면서 사랑스럽게 일을 하는 아름다운 사람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녁은 일본 정부가 이렇게 괴롭히거나 저렇게 들볶아도 씩씩합니다.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를 일본 정부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어김없이 꾸짖습니다. 전쟁이 얼마나 쓸데없는 짓인지 밝히는 일에 앞장서고, 전쟁에 눈이 먼 일본 정부와 지식인을 따사로이 어루만지면서 일깨우는 길에 힘을 보탭니다.




이 책에도 잘 나타나지만 ‘일본군 위안부’가 되어야 했던 사람은 모두 ‘소녀’입니다. ‘어린 가시내’입니다. 꿈을 키우고 사랑을 노래하고 싶던 어린 가시내를 군국주의와 제국주의가 모질게 짓밟았습니다.




여기에서 잘 헤아려야 하는데, 일본 군인과 정부만 ‘위안부’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일본에 부역한 이들도 이러한 일을 똑같이 저질렀습니다. 이를테면, 김활란과 모윤숙 같은 슬프고 딱한 이들이 이러한 일에 앞장섰어요.




이들은 왜 아픈 이웃을 바라보지 못했을까요? 이들은 왜 아픈 동무를 지키지 못했을까요? 이들은 왜 ‘독립을 기다리지’ 못했을까요? 이들은 왜 ‘독립을 기다리면서 씩씩하게 싸우는 길에 손을 보태지’ 못했을까요?







..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위안소’라는 곳. 그곳은 병사들이 공공연하게 여성을 윤간하던 곳이다 … 우선 지적할 것은 메이지 유신 이래 일본은 매우 폭력적인 국가였다는 점이다. 일본은 아시아의 일원이면서 이웃 나라들을 오직 병탄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온갖 음모와 궤변으로 해외파병을 정당화했던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정복당한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직 정복할 땅과 자원, 훈장과 명예, 그리고 여자의 몸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을 쟁취하기 위해 사기와 폭력, 살인을 아랑곳하지 않고 저질렀는데, 여기에 국가권력이 개입하면 이 모든 행위는 ‘성전’으로 둔갑해 버렸다 … “일본군에 의해 얼마나 많은 마을이 불에 타고 파괴되었는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강간당했는지. 나는 살해당한 중국인들을 대표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의 만행을 여러분께 알려주지 않으려고 하지요(완아이화).” .. (117, 141, 192쪽)







일본 정부는 ‘위안부 할머니’한테, 그러니까 ‘성노예 피해 할머니’한테, ‘강간 피해 할머니’한테 제대로 뉘우치고 보상을 해야 마땅합니다. 이에 앞서, 한국 정부가 먼저 이 할머니를 따사로이 보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 정부가 먼저 이 할머니를 품은 뒤, 일본 정부가 한국 정부한테 뉘우치고 보상을 하도록 이끌어야지요.




한편, 우리는 잘 알아야 합니다. 왜 ‘위안부’라고 하는 끔찍한 ‘제도’를 일본 군대가 만들었는지 잘 알아야 합니다.




잘 살펴보셔요. 한국에 있던 ‘주한미군 기지’마다 둘레에 ‘창녀촌’이 있습니다. 주한미군 기지뿐 아니라 ‘한국 군대’ 둘레에도 ‘창녀집’이 있습니다. 서울역과 청량리역과 용산역 같은 기차역이라든지, 상봉이나 강변 같은 버스역 둘레에는 ‘군인옷 입은 젊은 사내한테 달라붙어서 돈을 주고 여자를 사서 놀다 가라’고 하는 아주머니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아마 이런 아주머니는 아직 제법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군대가 있는 곳마다 ‘창녀촌’이 생깁니다. 군대가 있는 곳마다 성폭력과 성추행이 잇달아 생깁니다. ‘평화로운 한국’ 군대에서도 ‘높은 계급 사내’가 ‘낮은 계급 가시내(직업군인)’를 폭력과 계급을 내세워서 괴롭힙니다. ‘평화로운 한국’ 군대에서도 ‘높은 계급 사내’가 ‘낮은 계급 사내’를 폭력과 계급을 앞세워서 두들겨 패거나 괴롭히거나 성추행을 저지릅니다.







.. 강간을 저지른 쪽은 전쟁 때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하고, 뒷날 보통 시민으로 돌아와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는데, 피해 여성들은 고향으로도 돌아가지 못하고 말이야. 뭔가 거꾸로 된 것 같아 … 이 세상에 폭력과 지배는 필요치 않아. 폭력이나 지배는 용기와 반대 개념인 것 같아. 그리고 누가 됐든지, 사람을 도구로 삼을 권리 따윈 없어 .. (212, 215쪽)







군대가 있기 때문에 폭력과 학살과 강간이 끊이지 않습니다. 군대가 있기 때문에 평화가 찾아오지 못합니다. 군대가 있기 때문에, 정작 자유와 민주와 평등조차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나는 기다립니다. 참다운 평화와 자유와 민주와 평등을 기다립니다. 나는 기다립니다. 사랑과 꿈을 기다립니다. 기다리면서 생각합니다. 기다리면서 지켜봅니다. 파랗게 눈부신 하늘을 바라보고, 푸르게 우거진 숲을 지켜봅니다. 우리 아이들과 살아갈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 새롭게 거듭날 하루를 생각하고, 내가 두 발을 디디는 이곳에 사랑씨앗을 한 톨 심습니다. 4347.10.28.불.ㅎㄲㅅㄱ




(최종규 . 2014)













http://lady.khan.co.kr/khlady.html?mode=view&code=4&artid=201208031738061&pt=nv




이 책을 쓴 분을 <레이디경향>이라는 곳에서 만난 기사가 있다.

아주 반가우면서 뜻있는 기사로구나 싶다.

이 글도 읽어 주시기를 바라고,

내 이웃과 동무가 이 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삶과 마음을 사랑스럽게 북돋우는 슬기를 얻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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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4-10-28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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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이시카와 이쓰코 지음

삼천리



이 책은 일본 시인이 아시아·태평양 전쟁 시기에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갔던 소녀들과 동시대인이었다는 책임감으로 직접 몸으로, 시로 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이다. 두 일본인 10대 소녀 아키와 유미와의 대화를 중심으로 아사코와 아키 자매, 아키의 친구 유미가 편지를 주고받으며 이웃에 사는 가와세 마키코 씨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소녀들 간의 편지와 가와세 마키코의 ‘르포’는 부끄러운 과거와 역사의 진실에 조금씩 다가가고 전쟁의 고통과 여성의 피해는 어느덧 현재의 인권과 평화 문제로 자각된다.
저자의 대역인가와세 마키모의 르포를 통해서 위안부의 잔인한 실상을 고발하고 있다. 최초로 1991년에 위안부라는 사실을 고백했던 김학순 할머니를 비롯하여 윤두리, 강덕경, 문옥주, 황금주, 이용수 할머니뿐 아니라,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일본에 거주한 배봉기, 송신도 할머니, 북한의 김영실, 중국인 완아이화, 일본인 시로타 스즈코, 네덜란드인 얀 루프 오헤른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나라 뿐 만 안라 일본, 중국인, 위안부들의경험을 직접 취재한 기록이 담겨있어서 그 끔찍한 실상을 더 현실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가게 되었거나, 어딘지도 모른채 일본군들에게 강제로 납치를 당해 위안부가 된 소녀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 가덕경 할머니는 노동을 하는 정신대에 갔다가 너무 힘들어서 도망을 치고, 두 번째 탈출이 실패한 후에 강제로 위안소에 끌려가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위안부' 제도는 일본의 가부장적인 제도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피해자들은 폄하되고 그 피해 사실을 숨기고 살 것을 강요당해왔으며일본은 과거에서부터 여성은 천황의 자식이여도 황위계승에서 제외되었다. 또한 부모들의 돈을 위해서 딸을 술집 파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일본제국이 '황군 병사의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소녀들을 병사의 먹이로 제공한 것이다.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였다.

일본군 위안부는 대체로 조선여성들이 대다수였는데, 그 이유는 일본군이 정복한 식민지 여성들에게는 무슨 짓이든 해도 된다는 왜곡된 사고 때문이었다. 일본 북해도 지역의 아이누 민족부터 타이완, 청나라,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 그리고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여성들에게 가혹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이처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증거가 이렇게도 많은데, 아직도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생한 증언으로 좀 더 깊게 그 당시​ 위안부 할머니들의 현실을 잘 알 수 있었다. 일본인이 직접 쓴 위안부 이야기여서 그런지 더 객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2015.5.3.(일) 이지우(고2)




`위안부`가 아니라 성노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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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뽀사리 2015-05-04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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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에 대한 깊은 성찰의 시간 



1. 너무도 쉬워서 너무도 읽기 어려운 책!

이렇게 얇은 책을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읽기는 처음이다. 책의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책의 내용은 너무도 쉬웠고 작가는 너무도 친절하게 역사의 진실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을 빨리 읽기가 어렵게 만들었다. 일본군들이 조선인 소녀들에게한 못쓸 짓들을 쉬운 글로 이뤄진 책을 읽다보니, 나의 머릿속에 너무도 그 당시의 참상이 그려졌다. 그리고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소녀들이 당해야했던 고통을 내가 느낀 것과 같은 느낌과 기분!!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몇 페이지를 읽다고 책을 덮고는 산책을 했다. 머릿속을 정리하며, 인간 보편의 인권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2. 인간의 인권은 무엇인가?

남자인 내가 읽기에도 고통스러운데 여성이 이책을 읽는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하는 생각을 책을 읽는 동안 계속했다. 남자인 나는 한여인의 몸을 빌어 세상에 태어났고, 한여자와 행복한 가정을 이뤘으며, 자녀들 두었다. 인류의 절반은 여성이고, 인류는 여성의 몸을 빌어서 세상의 빛을 본다. 여성의 인권은 여성만의 인권이 아니다. 인류의 인권인 것이다. 여성을 아기를 낳는, 천황의 적자를 낳는 도구로 생각하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눈에는 조선의 소녀들은 몸을 망가뜨려 조선인을 멸종시켜야할 존재로 인식했고, 그것이 '일본군 위안부' 즉 성노예를 만들었다. 일제는 조선인 소녀들의 인권을 군화발로 짖밟고, 나아가 일본인 여성의 인권마져도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일본 천황을 위한 남자들만을 위한 세상을 꿈꾸는 존재들로 보인다. 마친 여왕벌(일왕)을 위해서 일을하는 일개미들(일본 남성)로 보인다. 그들은 여성의 인권을 부정한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일본인 남성의 존재도 부정하는 것이다. 그들도 한여성의 몸을 빌어 세상에 태어났기에... 일왕만을 위한 유일한 세상을 꿈꾸는 극단적인 일본의 파쇼체제는 광기의 극단에 치달았고, 그것은 조선인 소녀들을 망가뜨리고 더 나아가 '대동아 공영권'을 만들려는 그들의 꿈에 따라, 필리핀 여성, 대만여성, 더 나아가 네덜란든 여성까지도 성노예로 만들었다. 나와 내주변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와 멀리 떨어진 존재들의 인권도 짓밟게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3. 왜곡된 해결로 가려는 세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뤄진 타결은 너무도 안타까운 결말을 향해서 역사를 이끌고 가고 있다. 반성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 친일의 역사를 단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의 일부 지도층들은 친일에 대해서 별다른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피해자분들의 고통을 공감하며 그들이 만족해하는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상처뿐인 타결을 만들어냈다. 이것으로 사건을 끝나지 않았다. 또다시 역사의 아픈 상처를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친일에 별다른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의 일부 지도층들에게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당신들은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으라고 강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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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2016-06-11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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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협상 타결에 대한 나의 생각 



우리 민족의 정서를 한 단어로 요약하면 ‘한(恨)’ 아닐까 싶다.

백의민족답게 역사적으로 남의 나라를 거의 침범한 적이 없었고, 부끄러울 수도 있는 일이지만 주로 외침(外侵)을 당하면서 살아온 민족이기에 ‘한’이 우리민족의 정서로 각인된 듯하다. 고전문학에 있어서도 여성들의 작품들은 대부분 정한(情恨)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숱한 전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가족을 잃고, 성리학의 울타리에 갇혀 자기표현을 못하고 살았기에 가슴에 한이 응어리져 있을까 생각해보니 착잡하기 그지없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위안부(慰安婦)’라는 명칭도 곰곰이 살펴보면 역사적 상흔이 고스란히 어려 있다. 나라가 망하여 백성을 지켜줄 수 없는 지경에 처한 참혹한 시대에 여성들의 삶인들 오죽했을까? 예부터 우리 땅에 사는 여인들의 수난은 수없이 되풀이 됐었다. 몽골이 침입하여 우리 강토를 짓밟았던 고려시대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고, 명분론에 휩싸여 당파싸움으로 국력을 낭비한 조선시대에도 청나라의 침략으로 수많은 여인들이 치욕을 당했다.



몽골이 오랜 전쟁 끝에 고려를 복속한 이후 얼마나 많은 여인들이 공녀(貢女)로 보내졌던가? 아마 몽골 지배기간 약 100여 년 동안 수만 명의 여인들이 동토의 땅으로 보내졌을 것이라 추정된다. 대갓집 규수부터 하층의 노비까지 반반한 여인들은 닥치는 대로 거두어 갔으니, 열에 아홉은 불행한 삶을 살았고, 가는 도중에 목숨을 끊는 여인들도 상당수를 차지했다. 간혹 원나라에 바친 공녀 중에 ‘기황후’라는 불리는 특이한 케이스의 여인도 있었지만 대부분 한 많은 삶을 살았다.



조선조 병자호란 때의 상황은 어떤가? 지금 상황에서 돌이켜 보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지배층의 명분론에 집착한 나머지 막을 수 있었던 불필요한 전쟁을 초래했고, 권력층의 판단 착오는 자신들의 고난은 물론 무고한 백성들을 죽음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어리석은 행위였다. 물론 성리학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그 카테고리를 갇혀 명분론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쓸데없는 ‘대의명분’에 집착하다 무고한 백성들을 숱한 고통 속으로 밀어 넣는 결과를 낳았다.



당시 1만 명이 넘는 여인들을 공녀로 보내졌는데, 유교의 영향에 따라 고려보다 정조관념이 철저했던 조선조 여인들은 자살자가 더 많았다. 끌려간 여인들 중에 간혹 그곳에 정착하는 여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심한 멸시와 차별을 받으며 살았다. 말도 안 통하는 낯선 곳에서 청나라인의 성노리개로 전락한 여인들의 삶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고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아 맞아 죽는 여인들도 많았다. 이런 지옥의 땅에서 벗어 나기위해 많은 이들이 몸부림쳤다.



청나라에 머물면서 조선의 상인을 통해 조선으로 가는 길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고, 또 학대를 견디다 못해 탈출한 여인들은 물어 물어서 무작정 조선 땅으로 귀향하는 이도 많았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그 유명한 ‘환향녀(還鄕女)’였다. ‘고국(향)으로 돌아온 여인’이란 단순한 뜻이 나쁜 뜻으로 변질된 것도 이때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수많은 여인들이 케케묵은 성리학의 악습에 얽매여 몸을 더럽힌 여인이라 오명을 둘러쓴 채 박대를 받으며 집안에서 쫓겨났다. 그들이 택할 곳은 오직 죽음 밖에 없었다. 구사일생의 위기에서 벗어나 그나마 혈육의 땅을 간신히 찾아왔건만 동네 사람들의 비난이 두려워 가족조차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 얼마나 억울하고 비통한 삶인가!



조선 조정에서는 청나라를 탈출하거나 마른 담배 잎과 바꾸어 교환해 온 ‘환향녀(還鄕女)’들이 고향에 정착하지 못하고 자살하는 사례가 속출하자 한 가지 대안을 내놓았다. 인조는 각 고을에 ‘홍제탕’을 만들어 이곳에서 몸을 씻은 환향녀는 죄를 없애주겠다는 것이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조선 여인들의 목숨을과 정절을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 무능한 조정이 죄라면 죄지 나라 잃은 백성들이 당한 능욕이 어찌 죄가 될 수 있겠는가? 일제 강점기나 병자호란 때나 이러한 현실은 ‘오십 보 백 보’란 생각이 든다.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1941~1945)때 군인들의 성노리개로 아무런 연유도 모르고 끌려간 조선 여인들을 일컬어 ‘위안부(慰安婦)’라 부른다. 난 사실 위안부란 명칭조차도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위안을 받을 사람이 누군데, 일본을 위해 충성을 맹세한 군인들의 성노예로 희생된 여인을 위안부라 무르는 것이 마뜩찮다. 우리 스스로 젊음을 송두리째 빼앗긴 할머니들을 한 번 더 죽이는 꼴이다. 그런데 여태껏 마땅한 명칭조차 짓지 못했다.



불과 며칠 전에 오랫동안 밀고 당기기를 해오던 일본과의 ‘위안부협상’이 타결되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 때 군 위안부 동원 사실을 공식 인정하고 위로금으로 우리 돈 100억 원을 내놓겠다는 것이 요지였다. 위안부 동원사실을 부인하는 일본에 항의하는 천 번이 넘는 수요 집회와 수많은 나날 동안 싸워 온 그동안의 노력이 허탈하게 느껴질 정도로 협상은 비밀리에, 단번에 이루어졌다. 1965년 한일협정 때와 마찬가지로 내용은 사전에 전혀 몰랐고 철저히 정부 주도로 진행되어 위안부 할머니조차 내막을 알 수 없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일제강점기 역사적 피해자로서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와 돈으로 배상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사죄에 상당하는 충분한 배상금이 따르기를 바랐다. 독일의 경우에서 보듯이 유대인 학살에 독일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고 총리가 직접 찾아가서 사죄를 한 것처럼 아베 총리가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직접 사과하길 바랐지만, 아니 수위를 좀 낮춰 공식적인 방송을 통해 일제강점기 한국에 큰 죄를 죄었다고 세계만방에 죄를 고하는 사과방송이라도 했으면 그나마 마음에 위로라도 되었을 것이다.



고작 돈 100억에 우리의 뼈아픈 역사를 팔아버린 느낌이다. 이제 미안하다고 인정했고 100억을 배상했으니 두 번 다시 위안부 얘기는 꺼내지 말라는 협박조의 협상이다. 우리가 뭐가 그리 급해서 빨리 협상을 종결지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일본입장에서도 우익들의 반발과 일본의 체면을 생각하면 한국이 바라는 만큼의 굴욕적인 협상에 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일본과의 민감한 역사적 협상을 명쾌하게 해결해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현 실정에서 보면 어떤 협상도 국민들의 마음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번 협상 결과는 많이 아쉬운 생각이 든다. 위안부 당사자는 물론 국민들의 60%가 잘못된 협상이라는 결과만 보아도 너무 성급하게 협상 결론이 이르지 않았나 싶다. 일본은 더 이상 위안부에 대한 거론을 거부할 것이며, 심지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위안부의 상징인 ‘소녀상 철거’도 주장할 개연성이 높다. 앞으로 ‘위안부’의 상흔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나라간의 약속인 ‘협상타결’이 세계만방에 알려진 지금, 타결된 협상을 다시 무를 수는 없겠지만, 일제에 강제 동원된 위안부에 대한 보다 철저한 역사교육과 소녀상 유지 및 확대 설치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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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향기 2016-01-16 공감(3) 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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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소녀였다" 



아침에 포털에서 읽은 기사를 옮겨온다(제목만 보고 다시 찾으려고 했을 때 이미 포털 메인에서는 사라졌다). 미국의 한 여성학 교수가 기고문을 통해서 한일 간의 위안부 합의를 보도한 뉴욕타임스의 기사 내용 오류를 지적했다는 게 골자다. 핵심은 일본군에 종군 위안부로 끌려간 한국 여성들이 실상은 상당수가 13-14세의 소녀들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행위는 전쟁범죄일뿐만 아니라 어린이에 대한 인신매매와 성범죄였다." 이런 사실을 일본 교과서에 적시하고 서구 언론들이 보도하지 않는 한 '정의'는 없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전폭 공감할 수밖에 없다. 더불어 한국 정부가 얼마나 모자란 짓을 저지른 것인지 다시금 개탄하게 된다(성의 없는 사과와 100억 보상금 따위에 눈이 멀었단 말인가?).


델라웨어 대학 마가렛 D 스테츠 교수는 1일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뉴욕타임스가 구랍 29일 보도한 기사에서 일본 군대에 '한국 여성들'이 끌려갔다고 했지만 피해자는 대부분 미성년자였으며, 이같은 성범죄가 일본 교과서를 통해 교육되어야 정의가 바로 세워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테츠 교수는 "뉴욕타임스는 이날 기사에서 2차대전때 일본 군대 매음굴에 속여서 혹은 강제로 끌고 간 '한국여성들'에 관한 분쟁을 타결지었다고 했다"며서 "생존자들이 증언했듯이 잔혹한 성노예 시스템의 대상은 어른들이 아니라 13세, 14세의 소녀들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짐짝처럼 배에 실려 아시아 각지의 전쟁터로 끌려가서 매일같이 강간을 당한 소녀들은 초경조차 치르지 않은 어린 나이였다"고 덧붙였다.

스테츠 교수는 "일본의 행위는 전쟁범죄일뿐만 아니라 어린이에 대한 인신매매와 성범죄였다. 이러한 사실들이 일본의 교과서에 기술되고 서구의 언론들이 보도하지 않는 한 희생자를 위한 진정한 정의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마가렛 스테츠 교수는 하버드대 박사출신으로 버지니아대학과 조지타운대학을 거쳐 2002년부터 델라에워 대학 영어학과에서 주로 여성학을 가르치고 있다. '2차대전 위안부의 유산'(2001) 공동저자이기도 하다.(뉴시스)





찾아보니 <2차대전 위안부의 유산>은 아직 절판되지 않았다. 한국계 교수와의 공저다. 이런 책이 더 널리 알려져야 할 듯싶은데, 국내에도 아직 소개되지 않았다. 일본의 양식 있는 학자나 지식인의 책은 국내에 몇 권 소개돼 있다. 이시카와 이쓰코의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삼천리, 2014), 우에노 지즈코의 <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현실문화, 2014) 등이다. 두 권 모두 오랜만에 나온 개정판들이다(이를 넘어서는 책이 아직 없다는 뜻으로도 이해된다). 국내 학자의 책은 지난해 논란이 되었던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뿌리와이파리, 2015)를 제외하면 눈에 띄는 책이 드물다.







<그들은 왜 일본군 '위안부'를 공격하는가>(휴머니스트, 2014)가 "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쟁점들을 정리하고 현주소를 날카롭게 분석, 비판"한 책이다. 일본의 시민단체 '전쟁과 여성 대상 폭력에 반대하는 연구행동센터'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함께 엮었다. 주로 여성학자와 사회운동가들이 위안부 문제에 적극적인데, 스즈키 유코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젠더>(나남, 2010)도 그런 시야에서 문제를 다루고 있다.


1995년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에 대한 보상차원에서 일본 정부가 발족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 실제는 '국가에 의한 성폭력'이라는 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기 위한 꼼수임을 치밀하게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일본군 위안부 범죄를 부인하는 우파 정치가들과 자유주의사관 학자들, 특히 국민기금 관련자들에 대해 젠더 관점에서 분석하고 비판한다. 또한 국민기금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과정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며, 국민기금이 추진했던 역사청산 과정과 실천사례를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요컨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더 정확히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다루는 일본 정부의 입장이나 태도는 결코 신뢰할 만하지 않다. 불행히도 한국 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16. 0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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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16-01-02 공감 (8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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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와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 : 서로 다른 역사의 기억들 





 램지어의 논문에서 동등한 단체가 자유롭게 협상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법적, 경제적, 사회적 합의인 '계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그 계략을 가장 먼저 드러내는 부분이다. 설사 그런 '계약'이 존재했다는 물적 증거가 있다 하더라도 도처에서 상시로 발생한 성 착취와 극도의 폭력이 그런 계약에 따른 것이라고 판단한 일은 놀라울 따름이다. 유엔과 국제 앰네스티가 "반인륜적 범죄"(4)로 인정한 역사적 사실에 '계약'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야말로 수치스러운 일이다.._ <르몽드디플로마티크, 3월호> , <역사를 모독하지 마라>(http://www.ilemonde.com)>




얼마 전 하버드 미쓰비시 일본 법학 교수인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전세계를 분노로 몰아넣었고, 이에 대한 비판의 글은 <르몽드디플로마티크 3월호>에도 실렸다. 기사를 읽으면서 전에 읽었던 <제국의 위안부><반일 종족주의>를 떠올리면서, 위안부(성노예)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제국의 위안부>를 다시 읽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때에도 저자의 주장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가졌지만, 그때와 차이가 있다면,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의 여러 편의 비판의 글이 실린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는다>와 함께 비교해서 읽었다는 점일 것이다. 덕분에,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비판점을 늘릴 수 있었다.








위안부의 불행을 만든 것은 민족 요인보다도 먼저, 가난과 남성우월주의적 가부장제와 국가주의였다. _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 제2판 34곳 삭제판>,서문 - 다시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 -, p33




만약, <제국의 위안부>의 주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위의 문장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저자 박유하는 위안부 문제에서 민족의 문제를 제외하고, 논의를 시작한다. 민족 요인보다 구조적, 제도적인 문제로 이 문제를 한 차원 끌어올린 후 이 차원에서 이를 강요한 강제성의 주체를 이분화한다. '현실적인 강제성'과 '구조적인 강제성'이 그것이다. 그러면서, '현실적인 강제성'의 주체에 조선인 남자들이 포함되기 때문에, 조선인들 역시 이로부터 책임이 자유롭지 않음을 비판한다. 이에 대해서는 제노사이드(genocide) 측면에서의 문제를 지적한 다음 글을 살펴보자.







'위안소'를 설치한 데에는 장병들의 성병 예방이라는 목적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군은 일본인 창기보다 조선인 소녀가 '황군 장병들을 위한 선물'로 적당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또한 대일본제국의 성인 남자가 속속 죽음으로 내몰리는 가운데, 그의 '씨' 種 야마토 민족의 아이를 최대한 재생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조선에 대해서는 민족 말살을 하더라도 상관없는, 아니 오히려 '민족 말살'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당시 병사들 사이에서 "조선의 젊은 여자를 모두 긁어모아 위안부로 삼아 조선 민족의 종자를 절멸시켜야 한다"는 발언도 공공연하게 나돌았다고 한다. _ 이시카와 이쓰코, <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p144




'위안소' 설치를 통해 민족 말살을 생각했다는 이러한 인식이 보편적이었다면, 과연 저자가 지적한 '제국의 위안부'라는 용어가 설 자리가 있을 수 있을까. 민족 문제를 위안부 문제와 분리할 수 없다라면, 이후 전개되는 저자의 논리는 설자리가 없어지겠지만, 그 이후 논리에도 문제점이 있기에 계속 살펴보자.





일본군이 장기간 동안 전쟁이라는 '비일상'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 병사들을 '위안'한다는 명목으로 '위안부'라는 존재를 발상하고 모집한 것은 사실이다... 더구나 규제를 했다고는 하지만 불법적인 모집이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집 자체를 중지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도 일본군의 책임은 크다.(p25)...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군의 수요를 자신들의 돈벌이에 이용하고 자국의 여성들을 지배자의 요구에 호응해 머나먼 타국으로 데려다놓는 일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이들의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위안부에 대한 '강제성'을 묻는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식민지주의와 국가와 가부장제의 강제성을 무엇보다 먼저 물어야 한다. _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 제2판 34곳 삭제판>, p26







"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보려면 구조적인 강제성과 현실적인 강제성의 주체가 각각 누구였는지를 보아햐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 이의가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제국의 위안부>는 두 개의 '강제성'이라는 공을 교묘하게 돌리며 대중의 시선을 끄는 광대처럼 보인다. 그리고 집요하게 '현실적인 강제성(조선인 협력자)'을 통해 '구조적인 강제성(일본제국)'을 지우려고 한다. 복권되는 것은 일본제국이고 면책되는 것은 식민주의 침략의 역사다. 심지어 그녀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이들에 대해서 "'가라유키상의 후예', '위안부'의 본질은 실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지적한다. _손종업 외,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p34




<제국의 변호인> 저자 박유하는 얼핏 일본군의 책임을 인정하는 듯하지만, 사실 읽다보면 극히 일부임을 알게된다. 거대한 범죄자의 '가해자'가 아닌 '자살방조죄' 정도의 책임을 일본의 국가 책임으로 인정하는 대신, 그는 가해자를 민간으로 떠넘긴다. 우리는 국가 부채를 민간 부채으로 떠넘기는 그런 얄팍한 정책을 위안부 문제의 논리에서도 보게 된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시민 사회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쇼와(昭和)시대는 과연 그러한 시대였는가? 이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서 답해준다.





사실 일본인들은 한국이 일본에 병합되기 전부터 한국에 많이 건너와 살았다. 그중에는 속아 팔려온 소녀들이나 살길이 막막했던 가난한 여성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들의 '이동'을 조장하고 묵인한 건 국가권력과 민간업자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는 훗날의 '조선인 위안부'의 전신은 '가라유키상', 즉 일본인 여성들이었다. 그들 역시 가난한 시골처녀들이었고, 감언이설에 속거나 부모의 뜻에 따라 팔려간 이들이었다. 말하자면 '일본인 위안부' 역시 가부장제와 국가의, '가난한 여성' - 사회적 역자에 대한 차별이 만들어낸 존재였다. _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 제2판 34곳 삭제판>, p30





무엇보다, 일본제국시대(1868~1945)에는 자유롭게 행동하는 '시민'이 없었다. 그러므로, '계약'이라는 용어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모든 개인(일본 국민과 식민지 백성 모두)은 천황의 '신민'이었으며, "일본 신민이 되는 데 필요한 조건은 일본 천황이 승인하고 명령한 법에 의해 결정"됐다.(5) 성별과 경제적, 인종적 요소가 그런 "조건"의 기초를 이루면서 개인의 특질에 대한 명확한 위계질서를 만들어냈다. 즉, 모든 인간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 그 요지다. 여성은 말할 것도 없으며, 일본 식민지의 여성과 미성년자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다._ <르몽드디플로마티크, 3월호> , <역사를 모독하지 마라>(http://www.ilemonde.com)>




1940년대 전시(戰時)체제 아래 일본은 강력한 국가 주도의 통제 사회였고, 이 안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생각은 총력전(總力戰)이라는 주장 아래 묻힐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해 가족을 부양하는 내용을 담은 저자의 현대판 <심청전> 주장은 그야말로 신파의 극치라 여겨진다. 이와 함께 저자는 정의기억연대에 의해 왜곡된(?) 위안부에 대한 이미지를 비판한다. <제국의 위안부>에서는 눈물짓고 미칠듯한 고통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들을 조명하는 대신, 일본 군과의 로맨스 등을 그리며, 위안부 삶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일본군의 동지'로서 '위안부', 제국의 일원으로서의 위안부 상(像)을 만들어낸다. 그렇지만, 저자가 그려낸 '제국군'이자 '일본군의 동료'로서의 위안부 모습이 과연 진실이고, 이를 통해 전쟁을 여자로서 감내해야 했던 이들의 고통이 누그러질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오키나와 전투를 배경으로 한 <전장의 기억>의 내용으로 대신 답하고 싶다.





소녀상이 저항하는 모습만 표현하는 이상, 일본옷을 입었던 일본이름의 '조선인 위안부'의 기억이 등장할 여지는 없다. 그들의 또 다른 생활과 기억, 일본 군인을 간호하고 사랑하고 함께 놀며 웃었던 기억을 가진 '위안부'는 그곳에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곳에는 군인을 자신과 같은 운명에 떨어진 가엾은 존재로 간주하고 동정했던 위안부도 물론 없다... '위안부'들은 그렇게 국가와 남성에 의한 피해자이면서 국가에 의해 '애국자'의 역할을 담당해야 했던 이들이기도 했다. 그것은 분명 국가의 부조리한 책략이었지만, 외국에서 서러운 음지생활을 하던 그들에게는 그 역할은 자신에 대한 긍지가 되어 살아가는 힘이 되었을 수 있다. _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 제2판 34곳 삭제판>, p31










제도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류큐는 식민지 지배를 받은 타이완이나 조선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1898년에 이미 징병제가 시작되었다는 점은 타이완이나 조선과 비교할 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가 말했듯이 국가에 의한 폭력의 독점은 근대국가라는 범주를 생각할 때 중요한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p29)... 제도적인 동질화가 이루어졌다고 해서 곧바로 '상상의 공동체'로서의 '일본인'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오키나와 사람들에게 '일본인'이 된다고 하는 것, 바꿔 말해서 자기 마음속에 '일본인'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떠올리고 거기에 자신을 동일화시켜 나가는 과정이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이 책에서 오키나와 전투를 거론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p29)... 대동아전쟁에 패배하고 오키나와 출신의 황군 병사는 전사함으로써, 결국 '일본인'이 되려고 하던 과정은 실패로 끝났다. 그것은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죽음도 아니며 '초(超)국가주의'의 죽음도 아니다. 무엇보다 생활의 죽음이며 부엌의 죽임인 것이다. 생활은 8월 15일로 단절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연속성은 생활의 죽음 가운데서부터 도출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기억 속에 전장 동원을 아로새긴 생활의 죽음은 과연 어떻게 이야기될 수 있을까?_도미야마 이치로, <전장의 기억>, p30




<전장의 기억>에서 저자 도미야마 이치로는 오키나와 사람이 된 류쿠인들이 진정한 일본인이 될 희망을 품고 참전한 태평양전쟁에서 자신들의 꿈과 함께 일상의 죽음도 함께 맞이했음을 말한다. 일본 내륙으로 직접 편입되어 직할령이 된 제1제국 신민이 그런 감정을 느꼈을 때, 차별받던 2등 신민 조선인들이 과연 제국의 동질성에 대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었을까? 결국 박유하가 그리고자 했던 잔다르크와 같은(?) 이미지의 위안부 상은 허상임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이런 세부적인 사항에 담긴 왜곡과 거짓을 둘째로 놓더라도, <제국의 위안부> 안의 논리 자체가 모순을 가지면서 주장의 거짓임을 입증한다. 저자는 <제국의 위안부>를 통해 위안부의 일본 배상 책임과 관련해서는 '구조적 강제성'과 '현실적 강제성'의 논리를 통해 현실의 강제성 주체인 '민간(조선인을 포함한)'책임을 강조하며 일본에 면죄부를 주고 있지만, '제국주의'문제에서는 '현실의 강제성'과 '구조적 강제성'에 대한 책임을 묻는 문제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즉, 일본의 침략 문제에 있어서는 현실의 강제성 주체인 '일본'의 책임을 묻는 대신 '제국주의'라는 '구조적 강제성'의 주체인 서구 제국주의에게 책임을 돌린다는 점은 논리적 모순이라 지적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강자로서의 '제국'에 의해 상처를 입었던 우리가 구 제국(일본)의 죄를 다른 제국(네덜란드)와 연대해 또 다른 제국(미국, 영국 등 유럽)에게 물어온 방식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p297)... 문제는 네덜란드 여성과 '조선인 위안부' 역시 '적'의 관계였다는 점이다... 일본이 제국주의로 나선 것은 서양을 흉내낸 일이기도 하다. 일본의 대상은 아시아였고, 말하자면 아시아의 불행은 서양의 제국주의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하다. 그건 결과적으로 아시아의 침략이 되고 말았지만, 일본의 전쟁의 명분은 서양 제국으로부터의 '아시아의 해방'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일본은 졌고, 전후 일본과 한국은 함께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적 냉전구조 속에 안주하게 된다._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 제2판 34곳 삭제판>, p298




결국, <제국의 위안부> 저자는 민족 문제와 분리할 수 없는 위안부 문제에서 민족 문제를 분리하고, 시장 경제가 성립할 수 없는 사회에서 계약의 자유를 언급하며, 구조적 강제성과 현실적 강제성의 논리를 통해 이를 일본 제국 내 문제로 물타기를 했다. 그렇지만, 한일 병합 조약(1910)이라는 제도적 강제에도 조선인들은 일본인이 될 수 없었고, 때문에 '제국의 위안부'가 아닌 우군으로 포장된 '인종 청소 대상이자 피해자'였다는 것이 역사의 진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논리가 <제국의 위안부>, <반일종족주의>에 인용되어 혐한 서적과 램지어 교수 같은 이들의 논리로 사용된다는 사실에 비통한 마음을 버릴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조의 글을 통해 진정한 '화해'를 이루고 싶었다는 저자의 글은 한홍구 교수의 답으로 대신하며 긴 글을 갈무리한다...








PS. <제국의 위안부>와 관련된 페이퍼 리뷰를 마무리 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개념 사전의 주제는 <제국주의>와 <전쟁>으로 정해졌다...





<화해를 위해서>(2005)라는 책으로부터 8년이 지나도록, 그때 바랐던 "생산적인 논의"는 정작 필요한 곳에서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한 당연한 일이었지만, 한일관계를 둘러싼 상황은 그동안 기본적으로는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안의 견고한 기억들"에 "화해를 지향하는 균열"을 내보려 했던 8년 전의 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간 셈이다._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 제2판 34곳 삭제판>,서문 - 다시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 -, p5





제(한홍구)가 박유하씨가 말하는 '화해'를 비판하는 근거 중 하나는, 제가 '미안해요, 베트남' 운동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몫은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일 뿐이고, 화해란 베트남 사람들이 우리의 사죄를 받아들인 다음에 베트남 사람들이 먼저 제안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_한홍구, <자국의 가해 역사를 직시한다> <Q&A '위안부' 문제와 식민지 지배 책임>







위안부의 불행을 만든 것은 민족 요인보다도 먼저, 가난과 남성우월주의적 가부장제와 국가주의였다. _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 제2판 34곳 삭제판>,서문 - 다시 ‘생산적인 논의‘를 위해서 -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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