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1

알라딘: [전자책] 내 서재 속 고전 - 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 서경식

알라딘: [전자책] 내 서재 속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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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내 서재 속 고전 - 나를 견디게 해준 책들 
서경식 (지은이),한승동 (옮긴이)나무연필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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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지식인, 서경식 선생 별세 (1951~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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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의 선택
"자신만의 고전을 찾아 자유롭게 대화하라"
재일조선인 에세이스트 서경식이 꼽은 고전은 무엇일까. 서경식의 글을 꾸준히 읽은 이라면, 서경식이 꼽을 고전을 어림짐작할 수도 있겠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빼놓을 수 없을 테고, 프리모 레비도 앞에 놓일 게 분명하다. 이렇게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여러 글에서 해당 인물의 저작을 언급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서경식이 평생에 걸쳐 사유하며 맞선 주제, 즉 경계에 선 인간의 고뇌와 이를 넘어서려는 인간성과 용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렇게 고른 서경식의 고전을 다시 읽어가며, 그가 주목하는 오늘의 문제, 즉 ‘인간의 단편화’를 극복할 방법으로서 고전과 교양을 되새긴다. 서경식이 고전을 찾아 읽고 사유하는 단면을 제시하며, 이를 바탕으로 각자가 자신만의 고전을 찾아 대화하기를 권한다. 서경식이 겪은 시대와 지역은 우리와 다르지만, 앞서 제시한 서경식의 주제는 여전히 우리와 맞닿는다. 나보다 앞서 비슷한 단면을 걸어간 이들의 생각이 고전이라면, 이 책을 당신 '자신만의 고전'의 시작으로 삼는 건 어떨까. 완성된 지도는 아니지만, 참조하기에는 부족함이 없겠다.
- 인문 MD 박태근 (2015.09.08)


종이책 페이지수 : 272쪽

이벤트

섬광같은 울림을 주었던, 시대의 지식인 서경식


책소개
에세이스트 서경식이 자신의 서재 속 책들 가운데 마음에 품고 있던 열여덟 권의 고전을 세상에 꺼내놓았다. 자신의 독서 이력과 사유를 한껏 드러낸 이 글들을 통해 우리는 그가 어떤 순간 그 책을 만났으며 어느 구절에 밑줄을 치며 성찰했고 또 어떤 깨달음과 위안을 얻었는지를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다.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 수상작인 <소년의 눈물>이 청년 시절 서경식이 기댄 책들에 대한 기록이라면, <내 서재 속 고전>은 중년을 거치며 그가 자신의 삶을 투영해 읽어낸 책들에 대한 기록이다. 중년에 접어든 그의 시선은 달라지지 않는 현실, 더 깊은 어둠과 고통 그리고 무지에 가닿아 있다. 고전이란 인간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비관적 현실을 냉철하게 응시하고 실패에도 쉽게 무릎 꿇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 존재로 우리를 견디게 해주는 무언가이다.

책 후반에 수록한 대담 '우리 시대의 고전과 교양을 찾아서'는 서경식이 세 명의 젊은 신진 연구자들과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고전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 서경식이 표방하고 있는 '나'를 드러내는 에세이의 효용, 교양의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지는 가운데서 고전을 되짚어야 하는 이유 등이 담겨 있다. 고전 독법을 고민하면서 동시에 서경식이 추구하는 ‘서정적 지성’의 글쓰기를 갈망하는 독자들이라면 한번쯤 고민해볼 지점들을 제공하는 대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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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_ 인간의 단편화에 저항한다

클래식의 감명, 그 심연의 뿌리를 캐는 즐거움: 에드워드 사이드의 『사이드 음악평론』
살아남은 인간의 수치, 그럼에도 희망은 있는가: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노예노동의 고통조차 넘어서는 인간에 대한 탐구욕: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망각의 절망 속 어렴풋한 희망의 가능성에 대하여: 루쉰의 「망각을 위한 기념」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동시에 읽어내는 즐거움: 니콜라이 바이코프의 『위대한 왕』
현대의 지식인들이여, 아마추어로 돌아가라: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식인의 표상』
그대는 침묵으로 살인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브라힘 수스의 『유대인 벗에게 보내는 편지』
비관적 현실을 냉철하게 응시하는 낙관주의자를 만나다: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
관용은 연민이 아니라 생기발랄한 관심이다: 미셸 드 몽테뉴의 『몽테뉴 여행 일기』
미감을 즐길 시간은 오렌지 향보다 길지 않다: 케네스 클라크의 『그림을 본다는 것』
죽음을 금기시한다는 건 삶을 방기하는 것: 필리프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
‘인간’이라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하여: 가토 슈이치의 『양의 노래』
‘백장미’를 기억하던 이들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풍화되는 투쟁, 하지만 정의의 실천을 게을리 말라: 피에로 말베치 등이 엮은 『사랑과 저항의 유서』,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어느 가족의 대화』
참극의 유대인 거리에 남은 것과 변한 것: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어느 가족의 대화』, 가와시마 히데아키의 『이탈리아 유대인의 풍경』
용기 있는 패배자, 식민주의 섬기던 이성을 구원하다: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의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
인간해방을 실현하는 그릇으로서의 국가를 옹호하다: 마르크 블로크의 『이상한 패배』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 그 고뇌의 원형: 빈센트 반 고흐의 『반 고흐 서간 전집』

대담_ 우리 시대의 고전과 교양을 찾아서: 서경식, 권영민, 이나라, 이종찬
『내 서재 속 고전』에 언급된 책들
원고 출처
접기


책속에서


P. 11~12원래 어떤 책도 짧은 문장으로 그 내용을 충분히 전달할 순 없다. 오히려 이 책은 책에 접근하려 할 때 내가 활용하는 내 나름의 방식의 ‘단면’을 제시한 것이고, 나와 ‘고전’ 간의 대화에 관한 기록이다. ‘단면’이 같은 모양새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기 나름의 ‘단면’으로 자신만의 ‘고전’을 찾아내고 그것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과정이야말로 형식화한 지식이 아니라 진정한 지적 태도로서의 교양이며, 인간을 단편화하려는 힘에 맞서는 저항이다. (‘머리말’ 중에서) 접기
P. 33~35프리모 레비는 자신의 르상티망(원한)을 토로하진 않는다. ‘신’이나 ‘운명’ 같은 초월적인 관념을 만들어내서 분노나 슬픔을 터뜨리거나 거기에서 위로받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자기 자신도 용서 없이 까발린다. 그는 다만 깊은 절망의 양상들을 과학자와 같은 솜씨로 해부한다. 냉혹하기조차 한 분석과 기술이 어디까지나 지적으로,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펼쳐진다.
레비가 인생 마지막에 이 책을 남긴 것은 타인에게 사실을 알림으로써 그들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던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증언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증언을 그 사람들을 향해 말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도 그는 이 증언을 써서 남겼다. 개인의 생물학적 생명 이상의 가치(일단 ‘진실’이라고 해둘 수밖에 없다)를 위해. 그리하여 레비는 설사 아무리 절망적인 것일지라도 진실을 추구하는 것의, 이렇게 말해도 된다면, ‘진정한 지적 즐거움’도 우리에게 준다. (‘살아남은 인간의 수치, 그럼에도 희망은 있는가: 프리모 레비의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중에서) 접기
P. 74~76그는 죽음을 앞두고 집필한 『오리엔탈리즘』 신판 서문에 이렇게 썼다.
“나는 내가 의도한 것을 ‘인문주의(휴머니즘)’라 불러왔다. 이 말을 세련된 포스트모던 비평가들은 바보 취급을 하며 물리쳤지만, 나는 완고하게 계속 써왔다.”
구미 지식인들 다수가 이미 잃어버렸든지 포기해버린, 이 완고해 보이기조차 한 ‘인문주의’ 정신에서 나는 ‘최후의 승리의 필연성’ 따위를 설파하는 어떤 연설보다도 더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최후의 승리의 필연성’ 따위를 입에 올릴 수 없게 된 시대에 그래도 계속 싸울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사이드라는 존재는 큰 격려였다. (‘현대의 지식인들이여, 아마추어로 돌아가라: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식인의 표상』’ 중에서) 접기
P. 110“나는 잘 알고 있다. 이 여행의 즐거움은 문자 그대로 불안과 동요의 증거라는 것을. 그러나 이 불안과 동요는 모두 우리 인간의 중요한, 그리고 지배적인 특질이다. (……) 그밖에 무엇 하나 나를 만족시키는 것이 없더라도 다양성을 포착할 수만 있다면 나는 만족한다.”
여행의 대선배가 내린 지언(至言)이다. 자기 속에 좁게 틀어박혀 자족하기보다 설사 불안과 동요가 있더라도 타자와의 만남을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성을 포착할 수만 있다면 만족한다. 그렇다. ‘관용’이란 자기만족적인, 높은 곳에 서서 타자를 연민하는 태도가 아니라 생기발랄한 인간적 관심으로 ‘다양성’에 마음을 여는 것이다. 16세기 인문주의자가 21세기라는 불관용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렇게 가르쳐주고 있다. (‘관용은 연민이 아니라 생기발랄한 관심이다: 미셸 드 몽테뉴의 『몽테뉴 여행 일기』’ 중에서) 접기
P. 130~131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벗이나 지인 들에게 내가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면 재빨리 화제를 바꿔버리는 경우가 많다. 자칫하면 불쌍히 여기거나 위로해주기까지 하는 통에 오히려 내가 당혹하게 된다. 죽음의 관념을 더 길고 넓은 문맥 속에서 다시 살펴보는 것은 인간이 정신적으로 자립한 존재로서 인생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게 금기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태도는 삶에 대한 사고를 스스로 방기하는 것과 같다. (‘죽음을 금기시한다는 건 삶을 방기하는 것: 필리프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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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서경식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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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 불문과 재학 중이던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형 서승, 서준식이 구속되며 두 형의 구명 활동과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때의 체험과 사유는 이후 저술과 강연, 사회운동으로 이어졌다.
『소년의 눈물』로 1995년 일본에세이스트클럽상,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2000년 마르코폴로상을 받았고, 2012년에는 민주주의와 소수자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후광 김대중학술상을 수상했다.
2000년부터 도쿄게이자이... 더보기

수상 :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 1995년 마르코폴로상
최근작 : <디아스포라 기행>,<[큰글자도서] 내 서재 속 고전>,<나의 일본미술 순례 1> … 총 50종 (모두보기)

한승동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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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 사학과를 다녔다. 《한겨레신문》 창간멤버로 참여해 도쿄 특파원, 국제부장과 문화부 선임기자를 거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미국·일본의 패권 게임과 우리의 생존법》, 《지금 동아시아를 읽는다: 보수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생각》을 집필했다. 옮긴 책으로는 《우익에 눈먼 미국》, 《시대를 건너는 법》, 《디아스포라의 눈》,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오키나와》, 《보수의 공모자들》, 《내 서재 속 고전》, 《재일조선인》,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종전의 설계자들》, 《책임에 대하여》, 《완전하지도, 끝... 더보기

최근작 : <우리는 왜 시국선언을 하는가>,<서경식 다시 읽기>,<사회를 말하는 사회> … 총 63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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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원래 어떤 책도 짧은 문장으로 그 내용을 충분히 전달할 순 없다. 오히려 이 책은 책에 접근하려 할 때 내가 활용하는 내 나름의 방식의 ‘단면’을 제시한 것이고, 나와 ‘고전’ 간의 대화에 관한 기록이다. ‘단면’이 같은 모양새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기 나름의 ‘단면’으로 자신만의 ‘고전’을 찾아내고 그것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과정이야말로 형식화한 지식이 아니라 진정한 지적 태도로서의 교양이며, 인간을 단편화하려는 힘에 맞서는 저항이다. _‘머리말’ 중에서

엄혹한 세상에 지쳐갈 때
마음의 빛이 되어준
대화하는 벗이 되어준
지성과 교양의 버팀목이 되어준 책들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에세이스트 서경식, 그가 자신의 서재 속 책들 가운데 마음에 품고 있던 열여덟 권의 고전을 세상에 꺼내놓았다. 자신의 독서 이력과 사유를 한껏 드러낸 이 글들을 통해 우리는 그가 어떤 순간 그 책을 만났으며 어느 구절에 밑줄을 치며 성찰했고 또 어떤 깨달음과 위안을 얻었는지를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다.

서경식의 고전 읽기: ‘나’를 중심에 두고 고전과 대화하라
“이 책은 젊은이들에게 권하는 교양서 목록이 아니다.” 서경식은 자신의 글을 수많은 고전 목록의 하나로 두고 싶어하지 않는다. 형식화한 지식에서 벗어나 그는 본인이 어떻게 고전과 대화해나갔는지 그 단면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어떻게’ 읽고 사유할지에 대해 자신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적 태도이자 독서의 방법이라고 보는 것이다.
에세이스트로 스스로를 규정한 이답게 서경식의 글에는 책과 그가 만난 찰나들이 빛나게 담겨 있다. 파리의 번잡하고 좁은 중국 식당, 뜨거운 열기와 격투를 벌이는 요리사들의 움직임에서 그는 조지 오웰의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떠올린다. 아버지가 저세상으로 떠난 후 느낀 ‘실패의 감정’을 투영하여 필리프 아리에스의 『죽음의 역사』를 읽어낸다. 만사를 금전적 가치나 사회적 지위로 재단하는 시대에 그런 척도와는 다른 가치를 믿는 인간의 고뇌를 떠올리며 빈센트 반 고흐의 『반 고흐 서간 전집』을 펼쳐든다.
고전과 자신이 만난 지점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켜켜이 압축된 의미를 담고 있는 고전 가운데서 자신이 길어올린 것들을 꺼내 보여주는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그가 읽고 사색했던 고전과 만나면서 동시에 우리가 고전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세상이 권하는 의무로서의 고전이 아니라 지적 즐거움을 나누는 대상으로서의 고전을 상정할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또한 서경식의 고전 읽기는 고전 가운데서 동시대와의 접점을 발견하고 사유한다는 점에서 현재적이다. 그는 과거의 정전으로만 고전을 소비하는 게 아니라 현재와 견주어보고 지금을 성찰해내는 필터로 고전을 읽어낸다. 서경식의 손길을 거치면서 조지 오웰, 루쉰, 에드워드 사이드, 요한 하위징아, 미셸 드 몽테뉴, 마크르 블로크, 빈센트 반 고흐 등 동서양 대가들의 고전은 현재적 의미를 얻고 우리 시대에 걸맞은 숨결을 부여받는다. 지적이면서도 정서적 포즈를 겸비한 서경식의 문체는 켜켜이 의미가 압축된 고전들을 만나면서 더욱 빛을 발한다.
책 후반에 수록한 대담 ‘우리 시대의 고전과 교양을 찾아서’는 서경식이 세 명의 젊은 신진 연구자들과 나눈 대화의 기록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고전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 서경식이 표방하고 있는 ‘나’를 드러내는 에세이의 효용, 교양의 토대가 흔들리고 무너지는 가운데서 고전을 되짚어야 하는 이유 등이 담겨 있다. 고전 독법을 고민하면서 동시에 서경식이 추구하는 ‘서정적 지성’의 글쓰기를 갈망하는 독자들이라면 한번쯤 고민해볼 지점들을 제공하는 대담일 것이다.

고전이란 오롯한 인간 존재로 우리를 견디게 해주는 무엇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 수상작인 『소년의 눈물』이 청년 시절 서경식이 기댄 책들에 대한 기록이라면, 『내 서재 속 고전』은 중년을 거치며 그가 자신의 삶을 투영해 읽어낸 책들에 대한 기록이다. 청춘의 시기를 거쳐 중년에 접어든 그의 시선은 보다 원숙해졌으나 이전보다는 다소 비관적이다. 그의 눈길은 달라지지 않는 현실, 더 깊은 어둠과 고통 그리고 무지에 가닿아 있다. 그런 그에게 고전이란 깊은 절망을 버티면서 자신을 지켜나간 이들에 대한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비관적 현실을 냉철하게 응시하고 실패에도 쉽게 무릎 꿇지 않는 이들의 이야기. 고전이란 그런 존재로 우리를 견디게 해주는 무엇이 아닐까.
비관적 현실 가운데서 그는 승산이 있든 없든 그것을 넘어선 곳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힘에 대해 고민한다. 또한 어떻게 하면 막다른 지점에서까지 인간성과 용기를 지켜낼 수 있을지에 대해 골몰한다. 일상 가운데서 그러한 것들을 목격하기란 쉽지 않은 법. 하지만 서경식이 꼽은 고전 가운데에는 그러한 이야기들이 알알이 박혀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패배자일지언정, 그 용기 있는 소수 덕에 우리는 가까스로 구원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삶 속에서 오롯한 인간 존재로서 자존감 있게 버틸 수 있는 힘이 고전 속에 꿈틀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서만 고전을 읽는다면, 고전 읽기는 도리어 힘을 잃을 수 있다. 나치 범죄의 모골송연함을 과학자와 같은 솜씨로 해부한 프리모 레비의 책에서 서경식은 깊은 절망의 양상에만 주목하는 게 아니라 유머러스한 분석과 기술에도 눈길을 준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 관장을 지낸 케네스 클라크, 그가 쓴 “순수하게 미적인 감각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오렌지 향을 즐기는 시간보다 길지 않다”라는 문장을 읽으면서 서경식은 “으음, 좋구먼” 하고 탄복한다. 자신의 생각과 책의 한 구절이 적절하게 조응하는 순간일 것이다. 조선 호랑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위대한 왕』을 읽으면서는 어린 시절 흥미진진하게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텍스트와 만나고 대화하면서 슬며시 마음속으로 퍼지는 기쁨 또한 고전 읽기의 빠질 수 없는 묘미인 것이다.

고전을 화두 삼아 교양과 지성의 지도 그리기
서경식은 이 책에 수록된 대담 말미에서 어린 시절에 읽은 전집의 기억을 반추한다. 학교나 도서관 등에서 전집을 구입하고 가정에까지 그것이 보급되던 시대에 대한 추억은 많은 이들에게 남아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 시시하거나 불필요한 책들이 끼어 있기도 했지만, 그 시절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끝까지 읽을지 장담할 수 없는 많은 책들을 집에 들여놓곤 했다. 아마도 거기에는 인간의 지적 행위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감이 있었을 터.
서경식은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펴낸 『백과전서』가 프랑스혁명을 촉발시켰음을 예로 들며, 이런 어린 시절의 독서가 나름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번 책은 이러한 토대를 바탕으로 이후에 읽은 책들을 그러모아 자기 나름의 교양과 지성의 지도를 그려본 것이라고 밝혔다. 서경식이 그려낸 이 지도가 독자들 각자의 삶에서 지적인 지도를 그려나가는 데 유용한 참조가 되면서 동시에 우리 시대의 교양과 지성을 복원하는 데에도 이바지하는 소중한 자료가 되길 바란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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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삐뚤어지려는 내 마음을 짓눌러야 했다.
munsun09 2019-09-08 공감 (3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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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싸워온 사람만이 보여주는 절망의 바닥, 그리고 피로감. 그 밑바닥으로부터 다시 차고 올라오는 용기와 희망을 모두 보여준 책.
transient-guest 2015-12-05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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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선생님이 책을 들불 삼아 걸어온 세월들을 상상하니 고개가 숙여집니다. 저 또한 이 책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의지할 등불로 삼겠습니다. 좋은 책 감사합니다.
키치 2015-09-27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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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것은 삶의 궤적과 맞물려 있다. 그 고뇌의 시간 속에서 만난 고전을 통해 그의 생각과 삶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를 볼 수 있었으니.. 책에 대한 책이라기보다 삶에서 만난 책이랄까. 흔한 고전은 아니지만 여러 사회적 문제들에 휩쌓여 있는 현 시대에 생각거리를 더해주는 책이었다
adsl 2015-09-10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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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들을 알아가는 방법의 하나로 책을 읽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가 읽어온 책들을 들여다 봄으로써 그를 조금이나마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서경식이라는 이름으로 현대사를 건너온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라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동대장 2015-09-15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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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투영한 책 읽기.



한때 직장생활에서 대인관계 때문에 힘들던 시기가 있었다. 차라리 업무가 힘이 들면 쉬엄 쉬엄할 수 있으련만, 매일 마주해야 하는 사람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 이었다. 내겐 탈출구가 필요했고 그렇게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더랬다. 그때 읽던 책이 카네기 <인간관계론> 이었는데 나보다 상대가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나는 이렇듯 내게 직면한 문제 속에서 책을 찾아 읽는 걸 좋아하고, 또 그렇게 삶을 비춰낸 책들을 좋아한다. 물론 시대의 명저를 여러 학자의 이론으로 풀어 헤치며 쉴 새 없이 지적인 일깨움을 주는 책도 좋아하지만, 삶과 삶에 직면 된 문제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사유하며 새로운 시각을 선사하고 삶을 느슨하게 조율해주는 책 읽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이 책 <서재 속 고전>의 저자 서경식 님은 재일교포 2세로써,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두 형님이 구속되는 아픔을 겪고, 1980년대엔 어머니가 암 투병을 그리고 3년 뒤에는 아버님이 같은 병으로 잃는 아픔을 겪었다. 이런 삶의 문제에 직면한 저자의 고전이란, 윌리엄 셰익스피어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나 베르길리우스가 아닌 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시대의 사상가이자 계몽 가인 '루쉰'이나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의 생존자인 프리모 레비나, '유대인 벗에게 보내는 편지'의 저자 이브라힘 수스를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 추운 아침 작심하고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다. 루쉰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셀 수도 없을 만큼 썼는데, 책장에서 꺼낸 것은 닳아빠지도록 읽은 『루쉰 평론집』이다. 또 루쉰인가 하고 생각할 독자도 있겠지만 이 책이야말로 나의 '고전'이다'p49



' 이 「망각을 위한 기념」을 나는 20대 후반부터 30대에 걸쳐 글자 그대로 읽고 또 읽었다. 그때, 즉 197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친 시대는, 일본에서는 세상이 탈정치에서 버블(거품) 경기로 향해 가던 시절이지만 한국에서는 유신체제 시절이다. 야만적인 정치폭력이 횡행하고 다수의 학생과 지식인 들이 투옥돼 학대와 고문을 당했다. 그런 시절에 나는 조국의 동포들이 겪고 있던 고통을 "잊고 싶었다." 그래서 루쉰의 이 글을 읽고 또 읽었던 것이다.p51'



그러니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책 속에 투영된 삶을 읽는 것과 같다. 한 저자의 삶에 침잠된 고통과 고민의 부스러기들이 어떻게 책을 통해 여과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란 생각이 들면서 코리아 디아스포라(흩어진 사람들, 팔레스타인을 떠나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는 말)라는 저자의 입장을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또 전쟁에 대한 고통을 경험해보지 못한 현시대의 젊은이들이(나를 포함해서) 고통과 아픔, 분노와 두려움 탄식을 모르고서 어떻게 '평화'를 이해하고 지킬 수 있겠느냐는 침울한 물음엔 질타와 비난들로 아프고 따가웠지만 '이렇게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p53이라던 울림으로 내 상황에 놓인 문제뿐 아니라 함께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하는 생각을 잠시나마 하게 되었다. 더불어 유럽을 여행하며 느꼈던 생각들이 몽테뉴의 『몽테뉴의 여행일기』와 버무려지는 대목이 참 좋았는데 여행과 독서의 변주는 이런게 아닐까 하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대목을 만나면 여행의 기쁨과 책을 읽는 기쁨이 일체화하면서 내 상상은 단숨에 활성화된다. 바로 몇 달 전 내가 걸어다녔던 오랜 도시의 성당, 광장, 다리가 그대로 여기에 등장한다. 그곳을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대열을 지어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아플정도의 경이와 호기심으로 바라보고 있는 인물이 몽테뉴가 아니라 나 자신인듯한 느낌마저 든다'p106



저자는 말했다. 어떤 책도 짧은 문장으로는 그 내용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다고. 그러니 자신만의 '고전'을 찾아 그것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자세야말로 지적 태도로서의 교양인이자, 인간을 단편화하려는 힘에 맞서는 저항이라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알려진 권장도서 목록은 지극히 참고적인 사항일 뿐, 개인 각자의 삶 속에서 직면된 문제를 바라보고 적재적소에 알맞은 책을 찾아 읽으며 그 책 속에서 투영된 삶을 바라보며 문제를 끊임없이 변주해 갈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고전'의 의미이자, 독서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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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10-14 공감(18) 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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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을 읽고 희망을 쓰다 _ 서경식 <내 서재 속 고전>






<내 서재 속 고전>은 서경식 선생이 같은 제목으로 <한겨레>에 2년 간 연재한 칼럼을 묶은 것이다. 저자가 감명 깊게 읽은 책, 그 중에서도 한국의 젊은 독자들에게 읽어보기를 권하는 책을 추렸다고 해서 일반적인 형식과 내용의 독서 에세이를 예상했건만, 읽어보니 저자가 이제까지 걸어온 인생 여정을 알 수 있을 뿐더러 그 길 위에서 고민하고 성찰한 것들이 고스란히 느껴져 결코 가볍게 읽히지 않았고 읽을 수도 없었다.






저자는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난 '코리안 디아스포라'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으면서도 학문에 정진하던 저자는 1971년에 두 형이 한국에서 체포, 수감되는 일을 겪으면서 '높고 두꺼운 벽에 갇혀 있는 것처럼 어디에도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에 절망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책을 읽었다. 루쉰을 읽고 말의 힘, 글의 힘을 다시 한번 믿게 되었고, 에드워드 사이드를 읽고 재일조선인이라는 마이너리티 입장에서 대항적인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역할이라고 자각했다. 그 결과 현재는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이 시대에 꼭 필요한 말과 글을 전하는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에세이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젊었을 때의 나는 "밤은 길고, 갈 길 또한 멀다"는 것을 비관했다. 하지만 지금은 "설령 내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그들을 생각해내고 다시 그들에 대해 말할 날이 오리라는 것"이라는 부분을 비관하고 있다. 사람들은 희생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과거에서 배우지 않는다. 무서운 속도로 모든 것이 천박해지고 있다. 루쉰 따위는 읽지 않으며, 설령 읽는다 해도 그 부름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p.51)







그러나 전보다 경제적으로 보나 사회적으로 보나 훨씬 안정되고 편안한 상태인데도 저자의 비관은 그치지 않는다. 프리모 레비, 조지 오웰, 이브라힘 수스, 요한 하위징아, 미셸 드 몽테뉴, 가토 슈이치, 잉게 숄 등 동서양의 수많은 저자들이 남긴 자유를 향한 열망과 저항의 몸부림이 담긴 책을 소개하면서, 한편으로 진지한 반성 없이 과오를 되풀이할 조짐을 보이는 일본 정부를 포함한 권력자들을 비관하고, 절망적인 현실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비관하는 것이 그렇다. 가장 안타까운 건 이런 현실을 목도하면서도 바로잡을 시간이 부족함을 느끼는 저자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이다. 저자가 생애 동안 온몸으로 읽고 배우고 쓰고 느낀 것들을 과연 후세의 사람들이 제대로 알고 전해줄 것인가. 저자의 진지한 고뇌가 내 마음에도 사무친다.






생각건대, 이것이 시의 힘이다. 즉 승산이 있든 없든 그것을 넘어선 곳에서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런 루쉰의 정치와 문학의 결합을 나카노 시게하루는 "서정시 형태로의 정치적 태도 결정"이라고 불렀다. 일본의 시인 나카노 시게하루는 루쉰이라는 중국의 시인을 만나 그렇게 감동을 받았다. (중략) 나도 젊은 시절 루쉰의 어두운 말에서 절망과 같은 모습을 한 '희망'을 발견한 사람 중 하나였다. 이제 나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 (p.56)







다행인 것은 저자와 독자인 나 모두 글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다. 역사상 밝은 곳에서 큰 소리로 말할 수 없을 뿐더러 어딘가 구석에서 작은 소리로 속삭이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던 온갖 계급과 인종과 당파와 조직 등등에 속한 힘 없는 사람들은 말 대신 글로 자신의 뜻을 표현하고 소통하고 후세 사람들에게 기록을 남겼다. 그 기록을 우리는 볼 수 있으며, 그것을 발굴하고 연구하고 번역하고 출판하는 것이 지식인이라는 사람의 본래 역할일 것이다. 일찍이 루쉰의 책을 읽고 압제와 폭력에 저항하고 자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시의 힘에 눈을 뜬 저자는 수십 년에 걸쳐 수많은 책을 읽고 쓰며, 자신의 손에 전해진 항거와 자유의 증거를 세상에 알리고 후대에 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부디 이루어지기를. 힘없고 어리석은 독자인 나도 함께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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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 2015-09-27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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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


iamjune 2015-09-2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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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책은 무엇인가.



- 서경식 선생님은, 한겨레 신문에 칼럼 연재를 시작하셨을 때 처음 알게 되어 지금까지. 그러니까,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읽은 뒤로는 본격적으로 존경하고 좋아하고 있는 분. 영화 <Go>부터 <우리학교>, <가족의 나라>까지... 관심을 갖고 보게 된 이유. 내 머릿속, 그런 시작점에 서 계신 분이다.




- 선생님은 점점 더 절망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별, 불관용, 폭력이 세계 각지에서 개가를 올리고" 있기 때문에. 세계 역사에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을 품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야만적인 정치폭력"에 희생되었고, 그것을 기억하자고 작가들은 적었다. 후대의 사람들은 그 글을 읽는다. 그런데 그 시절 그 희생이 지금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으니 사회는 도무지 앞으로 더 나아가고 있다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절망한다.



젊었을 때의 나는 "밤은 길고, 갈 길 또한 멀다"는 것을 비관했다. 하지만 지금은 "설령 내가 아니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그들을 생각해내고 다시 그들에 대해 말할 날이 오리라는 것"이라는 부분을 비관하고 있다. 사람들은 희생자를 기억하지 않는다. 과거에서 배우지 않는다. 무서운 속도로 모든 것이 천박해지고 있다. 루쉰 따위는 읽지 않으며, 설령 읽는다 해도 그 부름의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p.51




- 책을 읽는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그대는 침묵으로 살인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묻는다. 일상이 파괴된 채 목숨을 걸고 난민이 되어야만 하는 수만의 사람들이 저기 헤엄치고 있지 않느냐고. 일본 대지진을 겪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목격하고도 원전을 짓겠다는 정부의 새된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아직 찬 바닷바람에 천막 하나 쳐놓고 정부의 세월호 인양 작업을 감시하겠다고 발벗고 나선 아빠들의 거칠어가는 얼굴이 보이지 않느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을 모르면서 시작도 전에 체념을 배우고 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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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로망 2015-09-30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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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선으로 고전 읽기

고전’이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 고전의 고(古)는 옛 고 자고, 이는 시간적으로 오랫동안 혹은 오래 전이라는 사전적 뜻의 단어와 부합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높을 고(高)를 쓴 다른 의미의 高典(고전). 높이 두고 우러러 볼만 하거나 인식의 지평이 이미 높은 곳에 닿아 있는 작품을 지칭할 때 등장 할 법한 단어다. 예전의 것을 말하는 시간적 의미의 앞선 단어와는 달리, 후자에 등장한 고전(高典)은 공간적 의미의 단어다. 서로 다른 뜻을 가진 두 단어를 나란히 놓고서야 이 책, 서경식의 <내 서재 속 고전>을 겨우 펼쳐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하게도 시간과 공간을 모두 아우르는 책이기 때문이다.

<한겨레>에 연재 된 16개의 칼럼을 한데 모은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저자 서경식의 ‘고전’을 소개하는 책이다. 그러나 이렇게만 말하면 절반의 반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셈이다. 서경식의 고전을 제대로 읽기 위해선 수만가지 갈래로 뻗친 촘촘한 줄기와, 뼈를 부수는 힘으로 파고든 뿌리 모두를 조망할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 일단 두 개의 명제를 던져 놓기로 한다. ‘보편’과 ‘특수’다.

책을 펼치자마자 등장하는 ‘고전’의 작가는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 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미국인으로 재일조선인 2세인 작가의 문학적 분신이라 부를 만한 작가다. 사이드 저작의 주된 내용은 ‘보편성’과 ‘특수성’인데,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의어로 통하는 이 두 단어는 사이드를 거쳐 지배자- 피지배자 혹은 식민지- 탈식민지 등으로 발화된다.

“문학에서 지배층의 이야기에 피지배자들의 대항적인 이야기를 대치시키는 것이 장차 인류의 ‘새로운 보편성’을 구축하는 데에도 중요하다”(p.73)

아닌게 아니라 사이드는 자신의 저작 <지식인의 표상>에서 보편성을 따로 언급한 적이 또 있다. “보편성이란 우리의 출신배경, 언어, 국적이 타자의 존재로부터 자주 우리에게 보호막이 되어줌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해 얻게 되는 확실성에 안주하지 않고 이를 넘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편성은 또한 대외 정책이나 사회 정책과 같은 문제에 대해서도 인간적 행위에 대한 단일한 규준을 찾아내고 이를 유지하고자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보편성을 너무나 오랜 시간 해체한 나머지 특수성의 위치까지 끌어올려진 탁월한 예인데, 마이너리티(소수자)로서의 특수한 위치와, 문학이 갖는 보편성(누구나 읽을 수 있고, 어디에서나 읽힐 수 있는)이 섞여 전혀 다른 빛깔을 길어낸, 그야 말로 특별한 정의다. 이 말을 전달할 때 저자는 망설임이 없어 보인다.

두 번 중복되어 다뤄지는 사이드 외에도 저자는 ‘프리모 레비’ ‘루쉰’등을 들어 절망과 희망 사이의 낙차를 재는가 하면, ‘가토 슈이치’와 ‘고흐’로 인간 정신의 고된 강건함을 고요히 증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다시 이런 구절

'중세의 가을'은 인상 깊은 번역이지만, 하위징아 자신이 감수한 영어 번역에서는 이 '가을'이란 말을 'waning', 즉 '조락'으로, 프랑스어 번역에서는 'decline', 곧 '쇠퇴'로 옮겼다. 말하자면 하나의 생물체의 사멸처럼, 지은이는 '중세'라는 시대가 몰락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려는 것이다.

이 책 제목이 불러일으킨 연상으로 내 뇌리에는 지금 '현대의 가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지금 나는 ‘현대’라는 시대의 몰락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거대한 폭력과 함께했던 이 시대는, 그러나 동시에 가냘프긴 했으나, ‘진보’와 ‘평화’라는 가치에 대한 막연한 희망을 품게 했다. 20세기에 들어 두 번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등으로 이런 희망은 뼈아픈 타격을 받았지만, 그 타격을 교훈 삼아 미래에 대한 기대를 이어가려는 사상적 시도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즉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석권하는 시대를 맞아 그런 사상적 시도는 일거에 탁류 속으로 떠밀려, 멈춰 서서 조용히 성찰하는 태도를 상실했다. 도처에서 냉소주의가 야만스런 개가를 올리고 있다.”

요한 하위징아의 <중세의 가을>을 언급한 저자는 인간 군상의 포악하고 나약한 역사를 외면하고 싶은 얼굴로 돌아온다. 이 수없이 많은 얼굴과 표정들을 하나씩 포개어 겹쳐놓은 것이 바로 이 책 <내 서재 속 고전>이다. 단 하나의 명료한 줄기를 갖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책들이 있지만, 더러는 여러개의 팔을 뻗어 다양한 층위의 열매를 수확하는 책들도 있다. 명확히 후자에 속하는 책이다.

“모든 사상과 행동은 컨텍스트(문맥)와 포지셔널리티(위치)를 빼고는 이해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했다. 식민지의 육체를 갖고 침략의 문맥을 짚어나가는 시선은 고요하고 명징하기에 강력하다. 독자가 공감하기 전에 먼저, 서둘러 공감하거나 아파하지 않는 그러나 엄연히 상처 입은 이 언어들은 보편을 보편적으로 밖에 읽지 못하는 나의 빈약한 감수성에 논리로 호소한다. 이것은 오래 남을 책이다. 그러나 동시에 높고도 넓은, 보편과 특수 양면의 성곽 위로 올려다줄 사다리이기도 하다. 이 말을 할 때 나 또한 망설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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