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8

중국 속의 한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 여행 - 오마이뉴스

중국 속의 한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 여행 - 오마이뉴스


우리는 첫소절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되는 애국가를 기역 니은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불러왔다. 그런 우리 민족의 영산 백두산을 가는 데 우리의 영토가 아닌 중국을 통해 장백산을 찾아가야 하는 안타까움이 여행 시작부터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아무튼 이는 역사적인 사건과 국제 관계로 인해 어쩔수 없다 생각했다. 중·고등학생들인 조카들과 추억을 만들겠다고 여행 계획을 수립한 막내 동생 내외와 인천공항에서 대한항공에 몸을 실은 것이 지난 13일 오전. 약 2시간 반 뒤에 도착한 곳이 중화인민공화국 길림성 연변자치주 연길시 국제공항이었다.

(*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여기서는 백두산을 고집해 씁니다.) 

연길시는 한국의 차이나 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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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역시나 조선족 출신의 현지여행사 직원이 일행을 반갑게 맞이한다. 우선 어디를 가나 가이드의 첫 멘트는 비슷한 것 같다.

"여러분이 도착한 공항은 조선족 연변 자치주에 속해 있는 연길 국제공항이고 이곳 연길시의 인구는 약 42만 명이며 조선족이 5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목적지인 장백산 산문이 있는 이도백하까지는 대절버스로 약 네 시간이 소요되겠습니다."

연길시가지. 간판 대부분이 한글우선입니다
▲ 연길시가지. 간판 대부분이 한글우선입니다
ⓒ 양동정

시내를 통과하는 동안 펼쳐지는 길거리의 간판은 거의 100%가 한글로 우선 표시되고 한글아래에 한자를 사용했다. 이런 거리풍경을 보고 감수성이 예민한 고1 조카가 "중국에 온 건지, 한국의 차이나 타운에 온 건지 헷갈린다"라고 한마디 한다.

백두산 관광의 전진기지 '이도백하'

연길 시내를 통과하고 독립운동의 전진기지 같았던 용정을 지나 자작나무숲과 장백송(미인처럼 생겨 미인송이라고도 함)이 많은 청정한 숲길을 따라 네 시간을 달렸다. 우리의 성산 백두산을 중국인 자기들 나름대로 부르는 장백산 산문 근처의 이도백하라는 관광촌에 도착한다.

백두산 가는 길 버스로 이동하는 백두산 입구의 미인송
▲ 백두산 가는 길 버스로 이동하는 백두산 입구의 미인송
ⓒ 양동정

백두산 가는 길 백두산 가는길 주변의 양봉업자들
▲ 백두산 가는 길 백두산 가는길 주변의 양봉업자들
ⓒ 양동정

이도백하는 백두산 관광지구의 주요 전진기지 같았다. 중국말로 반점, 병관 등으로 불리우는 호텔과 음식점, 안마시술소, 한국인들이 특히 좋아한다는 보양식품 판매업소 등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가는 곳마다 시설공사가 한창인 것을 보아 관광산업을 통해 발전이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

이도백하는 공사중 백두산 관광 전진기지는 가는곳 마다 개발공사중
▲ 이도백하는 공사중 백두산 관광 전진기지는 가는곳 마다 개발공사중
ⓒ 양동정

오후 이른 시간에 이도백하에 도착했으니 바로 숙소로 가기는 너무 이르다는 가이드의 꼬임(?)에 넘어가 발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여섯명 일행이 예약한 발 마사지 업소에 들어가 발 마사지를 받고난 아내가 "한국에서 10만 원짜리 경락 받은 것 같다"고 한다.

역시 여기에서도 발바닥 굳은살 제거를 해야겠다는 마사지사의 꼬임(?)에 넘어간 나. 1만 원을 추가로 내고 발바닥 굳은살을 제거했다. 몸무게가 약 200g은 줄어든 것 같다.

백두산 오르는 총알택시(?)에 생명을 맡기고

지은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별이 다섯 개나 달린 고급 호텔에서 맑은 공기를 실컷 마시며 장백산맥 산하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오전 4시에 일어나 브라질 월드컵 결승전 중계방송을 보면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중국에서 한국 방송생중계를 이도백하 호텔에서 월드컵결승전 축구중계를 봅니다.
▲ 중국에서 한국 방송생중계를 이도백하 호텔에서 월드컵결승전 축구중계를 봅니다.
ⓒ 양동정

이제 백두산을 오른다.

우리가 탄 버스가 장백산 산문에 도착했다. 바깥 기온이 섭씨 15도 정도로 낮은 데다가 비까지 온다. 입장료를 받는 산문 주변에는 보온을 겸하는 우의를 파는 집들이 성업 중이었다. 이걸로 보아 백두산 정상의 기온·날씨가 짐작된다. 입장권을 사서 산문 안으로 들어서니 45인승 정도의 우리나라 시내버스 같은 차량에 탑승하고 약 40분을 달리니 주차장이 나온다.

장벡산 산문 백두산 가는 입구. 입장료를 냅니다.
▲ 장벡산 산문 백두산 가는 입구. 입장료를 냅니다.
ⓒ 양동정

장백산 산문 입구 백두산 올라가는 입구 비석앞에서 가족들..
▲ 장백산 산문 입구 백두산 올라가는 입구 비석앞에서 가족들..
ⓒ 양동정

중간쯤의 환승 주차장에 다시 내려 20인승 남짓한, 조금 더 작은 승합차로 갈아탔다. 차는 정상을 향해 달린다. 그런데 이 승합차의 정체가 대단하다. 우리나라의 총알택시보다 더 과감하게 달린다.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옆 굽은길도 사정없이 달린다. 팔에 알이 베길 정도로 손잡이에 매달려야 했다. 이렇게 4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하니 '백두산 천지 120m 전방'이라는 표지가 있다.

총알 택시? 천지까지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총알 미니버스..?
▲ 총알 택시? 천지까지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총알 미니버스..?
ⓒ 양동정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줄을 서서 약 50명씩 단계별로 출발시킨다. 그림에서나 보던 백두산 천지에 도착하니 소나기가 쏟아지며 운무가 가득하다. 천지 수면을 볼 수가 없다. 너무 안타깝다. 하지만 순식간에 강한 바람에 운무가 걷히더니 천지의 옥빛 수면이 얼굴을 드러낸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백두산 관광은 7·8·9월 삼 개월이 절정인데, 천지를 볼 수 있는 날은 20일 정도밖에 안 된단다. 우리를 '운 좋은 사람들'이라고 격려해주는 말 같기도 하지만….

백두산 올라가는 인파 천지 약 120m 전방에서 차에 내려 천지로 올라가는 인파들
▲ 백두산 올라가는 인파 천지 약 120m 전방에서 차에 내려 천지로 올라가는 인파들
ⓒ 양동정

백두산 천지의 인파. 백두산 관광 피크를 맞은 천지의 관광인파입니다.
▲ 백두산 천지의 인파. 백두산 관광 피크를 맞은 천지의 관광인파입니다.
ⓒ 양동정

백두산 천지 구름 사이로 살며시 속내를 보인 천지입니다.
▲ 백두산 천지 구름 사이로 살며시 속내를 보인 천지입니다.
ⓒ 양동정

백두산 천지 천지의 또 다른 각도
▲ 백두산 천지 천지의 또 다른 각도
ⓒ 양동정

장백폭포 백두산 관광의 한코스
▲ 장백폭포 백두산 관광의 한코스
ⓒ 양동정

장백폭포 주변 특이한 지형입니다.
▲ 장백폭포 주변 특이한 지형입니다.
ⓒ 양동정

백두산 야생화 장백폭포 오르는 길에서
▲ 백두산 야생화 장백폭포 오르는 길에서
ⓒ 양동정

백두산 야생화 장백폭포 가는 길에서
▲ 백두산 야생화 장백폭포 가는 길에서
ⓒ 양동정

노천온천수 장백폭포 아래의 노천 온천수
▲ 노천온천수 장백폭포 아래의 노천 온천수
ⓒ 양동정

노천온천수에 계란과 옥수수를.. 장백 폭포아래 섭씨 83도의 노천온천수에 옥수수와 계란을 삶아 팝니다.
▲ 노천온천수에 계란과 옥수수를.. 장백 폭포아래 섭씨 83도의 노천온천수에 옥수수와 계란을 삶아 팝니다.
ⓒ 양동정

우리는 이렇게 민족의 영산 백두산의 심장부이며 압록강·두만강·송화강의 발원지인 백두산 천지를 구경했다. 그리고는 다시 총알 같은 승합차에 생명을 맡기면서 내려왔다. 이후 섭씨 83도나 되는 노천 온천수에 달걀을 삶아파는, 그리고 웅장함이 더할 데 없는 장백폭포를 구경하고 연길로 향했다.

언제쯤?.. 우리땅의 백두산을 가볼 수 있을까?
백두산 관광을 마치고 장백산문을 나서면서 수천 수만의 백두산 관광 인파를 보면서 "저것이 모두 돈인데? 북한의 김정은이 이런 모습을 봐야 하는 데? 그리고 북한에 백두산 관광코스를 만들어 개방하면 외화도 벌고, 남북관계도 좋아지고 할 텐데? 언제쯤 통일이 되어 우리 땅의 백두산 천지를 볼수 있을까?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4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연길로 돌아와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전진기지 "생태 용정"

숙소는 연길 역근처의 무궁화 4개짜리 나름 고급 호텔이었으나 시설이 노후하고 청소 상태가 심히 나쁘다.하지만 우리는 "여기는 중국이니까?"  라는 한마디로 이해하고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일정은 일제 강점기 조선 독립운동의 전진기지 같았던 용정과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가르고 있는 도문시의 두만강을 구경하기로 했다.

윤동주 시비 용정중학교 입구의 시비..
▲ 윤동주 시비 용정중학교 입구의 시비..
ⓒ 양동정

대성중학교 민족정신 교육의 요람..
▲ 대성중학교 민족정신 교육의 요람..
ⓒ 양동정

약 20분 정도를 달려 "생태 용정" 이라는 시 입구의 큰 간판을 보면서 우리나라 어느 자치단체에서 컨닝해 온것 같다는 동생아내의 말이 공감이 간다.
우선우리는 민족 저항시인 윤동주선생이 다녔다는 대성중학교 교실과 기념관을 복원해 놓은  용정중학교에 도착했다.

윤동주 시인교실(재현) 대성중학교의 윤동주 선생 공부하던 교실 재현
▲ 윤동주 시인교실(재현) 대성중학교의 윤동주 선생 공부하던 교실 재현
ⓒ 양동정

동북 삼성 지역은에 우리 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연유는 ?.. 청나라 말기 북한땅에 거주하는 우리 민족이 농토가 부족하여 드넓은 농토를 찾아 처음에는 아침에 두만강을 넘어가 농사를 짓고 저녁이면 돌아오던 것이, 나중에는 봄에 두만강을 넘어가 농사를 지어 가을에 돌아오는 식으로 터전을 잡아가다 점차적으로 정주하게 되었다고한다.

그런 이곳이 조선이 일제에 침탈당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족자존을 부르짖는 선각자들이 일제의 탄압을 피해 우리 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이곳에 모여 들게 되었고, 이런 선각자 중의 한사람인 보제 이상설 선생이며 그가 개숙한 서전서숙이 조선족 교육의 요람이 되었고, 후에 서전서숙이 모태가 되어 1926년 대성중학교가ㄹ로개교되어 수많은 민족지도자를 배출하게 되었는 바, 독립운동의 전진기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념관 안에서 용정이 낳은 인물들
▲ 기념관 안에서 용정이 낳은 인물들
ⓒ 양동정

이곳 용정출신의 민족 지도자는 민족시인 윤동주. 애국투사 송몽규. 영화인 라운규.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에 기여한 문익환 목사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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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애환을 노래한 비목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일송정과 혜란강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노래를 작사 작곡한 사람이 친일파로 분류 된다고 한다.

아무튼 용정의 독립운동 유적지등을 둘러 보는 것은 중고등학생인 두 조카에게 좋은 여행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며 두만강 국경지대로 이동하였다.

북-중-러 국경인 두만강으로

용정에서 버스를 타고 약 2시간을 달려 폭이 좁은 곳은 50m 정도 밖에 안되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와 3국의 국경이 접한다는 도문시이다.

예약된 식당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하는 데 행세깨나 하는 듯한 현지 가족이 강아지를 데리고 식당에 들어오겠다.는 주장과  들어오면 벌금 문다는 종업원과 한바탕 소동을 구경하며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도문시의 간판 한글이 먼저입니다.
▲ 도문시의 간판 한글이 먼저입니다.
ⓒ 양동정

식사후 두만강변으로 이동하여보니 우선 김정구 선생의 "두만강 푸른물이~~~" 노래가사의 상상은 사정없이 깨져 버린다. 온통 시뻘건 흑탕물이다. 상류의 철광석 광산에서 내려오는 물 때문이라고 하며 강폭이 좁은 곳은 우리동네 성내천 폭만 한곳도 있어 너무 실망이다.

두만강 물은 흑탕물 두만강 푸른 물은 옛말입니다.
▲ 두만강 물은 흑탕물 두만강 푸른 물은 옛말입니다.
ⓒ 양동정

역시 중국 어디를 가나 관광객들한테 돈 받아내는 것이 혈안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실감하는 기회가 여기에도 있다. 조그만 뗏목같은 배를 타고 약 200m를 거슬러 올라갔다 내려오는 데 1인당 2만원씩을 내라고 한다. 하지만 언제 또 와볼것인가? 하면서 배에 올라 "두만강!~~ 황톳물에!~~" 하고 흥얼거리며 웃고 만다.

두만강 뱃놀이? 두만강에서 1인당 2만원짜리 뗏목배를 타고
▲ 두만강 뱃놀이? 두만강에서 1인당 2만원짜리 뗏목배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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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보잘것 없는 두만강이지만 북한과의 국경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한국의 관광객이 많다. 관광객 등을 위해서 강변에 설치된 각종 안내석들에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된것을 보고  여기에도 친일파가 남아 있는 것인가? 하면서 기분이 좋지는 않다.

두만강변 표지석에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한 것을 누군가 훼손...
▲ 두만강변 표지석에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한 것을 누군가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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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길시는 중국속의 작은 대한민국

두만강 국경 구경을 마치고 연길로 다시돌아와 좀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연길시의 대표적 공원이라 하는 진달래 공원을 둘러 보았다.  드 넓은 공원이 우리나라 공원에 와 있는 듯하다. 노래방기기를 설치해놓고 돌아가면서 노래를 하는 데 소양강처녀, 섬마을 선생님등 모두가 귀에 익은 우리나라 대중가요다. 이용시민 대부분 또한 우리민족이고 젊은 층보다 장년층이상과 어린이이며, 이들을 위한 시설이 많은 공원으로 요즘같은 더운 날씨에 저녁만 되면 수천의 시민들이 모여 든다고 한다.

진달래공원 조형물 연길시내 대표적 공원 진달래 공원에서
▲ 진달래공원 조형물 연길시내 대표적 공원 진달래 공원에서
ⓒ 양동정

전세계에 조선족이 약 8000만명이 있다고 하며 대한민국에 5천만.북한에 2천5백만. 미국에 205만. 그리고 중국에 약 192만이 살고 있다는 데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른바 동북삼성이라고 하는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에 97% 거주하고 있으며 이중 길림성에 115만 명이 거주한다고 한다. 길림성 115만명 중 연변 자치주에 80만이 거주하고 있다하니 이곳은 중국속의 우리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가 싶다.

중국 노래를 하는 노래기기 앞에는 관중이 없음.
▲ 중국 노래를 하는 노래기기 앞에는 관중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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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공원의 사물놀이 저녁만 되면 공원에 이런 공연이...
▲ 진달래공원의 사물놀이 저녁만 되면 공원에 이런 공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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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공원의 야외노래방 노래방 기기를 가지고 나와 한국가요를 부르며 즐겨하는 모습
▲ 진달래 공원의 야외노래방 노래방 기기를 가지고 나와 한국가요를 부르며 즐겨하는 모습
ⓒ 양동정

이른바 중국이 동북공정이라는 정책을 통해서 고구려. 발해의 문화말살을 시도하고 있는 이유를 이해 할만도하다. 우리도 우리나라와 흡사한 조선족자치주 연변을 그냥 중국땅이라고 방치 하지말고 민간차원에서라도 지원을 하도록 하여 민족자존의식을 고취시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연길시의 야간 경관 조명에 매료되다

어둠이 깔리자 숙소로 귀환 하는 도중 사회주의 국가답지 않게 야간 조명이 장관이라는 연길시를 가로지르는 브르하통강에 있는 청년광장을 구경하기로 하고 현장에 도착하니 사회주의 냄새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젊은 남녀들의 자유분방한 모습과 화려한 야간 경관조명이 장난이 아니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없는 화려한 야경은 모든 사람의 경탄을 자아낼 만하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또 다른 모습을 만끽하고 숙소에 들어와 잠을 청하면서 중국이라는 나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라고 되내이며...

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 야경 1
▲ 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 야경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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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3 ...
▲ 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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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4 ,,,
▲ 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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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4 ,,,
▲ 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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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5 ,..
▲ 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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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6 ....
▲ 브르하토강 청년광장에 본 야경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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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백두산 여행에서 느낀바를 이렇게 적어봅니다.

1. 식당 같은 곳에서 중국돈과 한국돈을 놓고 어느걸 드릴까요? 하면 서슴없이 한국돈을 달라하고. 대부분 간판들이 한글로 우선 쓰고 그 아래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우리나라 위상을  확인하게 됩니다.

2. 우리 민족이 많이 거주하는 동북삼성에 대해 문화적 지원을 하여 중국의 동북공정 정책에 대비해야 할 것 같다.

3. 고려말 이성계가 요동정벌에서 회군을 하지않고 정벌에 성공했다면 또 정도전의 요동정책이 성공 성공 했다면 다 우리땅인데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여행을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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