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5호] 2010.10.04
[신(新)중국기행] ① 랴오닝성 선양(瀋陽)
GDP 성장률 15% 중국 4대 경제축 급부상 기업들이 몰려들고 있다
▲ 주택 철거와 아파트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선양. ☞ 주식으로 6억 수익낸 30대 직장인? photo 로이터 |
부임길에 선양 외곽 타오셴(桃仙)국제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3월 초봄임에도 불구하고 녹다만 시커먼 눈으로 지저분했다. 또 을씨년스러운 날씨는 필자가 이전에 근무했던 베이징(北京)이나 칭다오(靑島)와는 사뭇 다른 “정말 살벌한 곳에 왔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 ☞ 승률 90% 이상의 급등주 무료추천
부임 첫날 저녁 환영모임에서 영사관 직원들이 보여줬던 경직된 표정도 잊을 수 없다. 문제 공관으로서의 그간의 역정을 보여주는 듯했다. 환영 모임이 개최된 식당은 코리아타운으로 유명한 시타에 있었다. 시타 거리에는 평양관, 모란각 등의 북한식당을 비롯해 한국의 경회루, 초원정, 조선족 식당인 옌볜 꼬치구이집 등의 한글과 중국어 간판이 입구부터 즐비했다. 어수선한 간판은 중국인, 한국인, 조선족, 북한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산다는 정겨운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무엇인가 통일되지 않고 한국어를 사용하는 재개발지역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선양 부임 후 첫 주말에 아내와 함께 들렀던 선양 시내 타이위앤지에(太原街) 백화점 거리의 활기차고 풍요로운 분위기와 시민들의 밝은 표정에 깜짝 놀랐다. 당시 필자는 “이제 동북지방과 선양에 대한 부정적 음영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이곳에서 우리의 진출을 돕고 위상을 드높여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중국 정부의 동북진흥전략에 따라 중국의 제4대 경제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동북지방 중심도시 선양의 역동적 경제성장을 목격한 것이다. ☞ 200만원으로 주식 대박난 리얼 후기
만주족과 한족을 가르는 경계
선양은 우리 한민족의 활동이 활발히 펼쳐진 곳이기도 하다. 선양 주위에는 주몽(朱蒙)이 고구려의 첫 도읍을 세운 오녀산성을 비롯해 국내성과 광개토대왕비, 장군총, 안시성, 백암성 등 수많은 고구려 유적이 있다. 몽골 침략 이후 일부 고려왕은 심양왕을 겸하기도 했다. 충선왕(忠宣王)이 1308년 심양왕(瀋陽王)으로 책봉됐고 이후에는 고려왕과 별도로 고려 왕족이 심양왕을 맡기도 했다. 옛 심양부(선양)에는 한때 수많은 고려의 유민들이 살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1636년 청의 건국과 함께 시작된 병자호란 때 후금의 10만 대군이 출병한 곳도 선양이다. 후금에 인질로 잡혀간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비롯해 조선에서 끌려온 전쟁포로 10여만명의 아픔과 고통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 반년만에 6억번 주식초보 최대리???
근대 들어 1905년 러일전쟁 당시 제정 러시아와 일본의 30만 대군이 격돌한 지상전의 주무대도 선양이었다. 당시 선양은 봉천(奉天)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지금도 선양은 북방의 군사 요충지다. 북한, 러시아, 몽골과 국경을 맞대면서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정치적 영향력을 투사하는 선양군구(軍區)의 중추도시이다. 선양군구는 중국의 7대 군구 중 하나다.
인구 740만명, 동북지역의 중심
오늘날 선양은 740만의 인구를 가진 동북지방의 정치·군사·경제·문화·교통의 중심도시다. 1980년대까지 선양은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공업 기반을 바탕으로 중국의 군수산업과 중화학공업을 선도해왔다. 하지만 남방에서 시작된 개혁 개방의 흐름에 부응하지 못했고, 1990년대 후반부터 선양의 경제는 기울기 시작했다.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했다. 이는 선양지역 기업들의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이어져 대량 실업 사태가 일어났다. 결국 한때는 노동자들의 집단소요가 발생하는 등 지역이 위기를 맞기도 했다. ☞ 주부, 직장인도 수익낼 수 있는 주식
지난 2003년부터 상황은 달라졌다. 중국 중앙정부가 서부대개발에 이어 ‘동북진흥전략(東北振興戰略)’이란 새로운 경제발전 계획을 추진하면서다. 중국판 균형발전전략이다. 그 결과 중국 동북지역의 경제가 과거의 비효율에서 벗어나 성장 궤도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제는 광저우와 선전의 주강(珠江)삼각주, 상하이와 쑤저우, 항저우를 중심으로 한 장강(長江)삼각주, 베이징과 톈진의 보하이(渤海)만 경제권에 이어 중국의 제4대 경제성장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동북진흥전략의 중심에 있는 도시가 선양이다. 선양 주변 100㎞ 범위 내 8개 도시는 선양경제구라는 거대 도시권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올 상반기 선양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14.6%에 달했다. 이는 중국 전체의 GDP 성장률 11.1%를 월등히 추월하는 수치다. 14.6%란 경이적 수치는 선양의 역동성과 발전 잠재력을 잘 설명해 준다. ☞ 카페에서 주식으로 6억인증한 회사원
롯데, 중국판 롯데월드 건설
선양은 한국과의 교류도 빈번하다. 선양시는 주(駐)선양 총영사관과 함께 8년째 ‘선양한국주간’ 행사를 개최해오며 한국과의 교류확대와 투자유치에 힘쓰고 있다. 이는 중국 도시 가운데 유일한 사례로 선양시의 한국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잘 대변해 준다. 인천과 선양 간에는 매일 4편의 항공편이 운항되고 있다. 또 인천~선양 노선은 중국 어느 도시를 잇는 항공노선보다도 황금노선으로 알려져 있다.
선양에 대한 우리 기업의 진출은 12만명에 달하는 조선족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LG전자 등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소규모 중소 제조업 진출이 주종을 이룬다. 최근에는 선양의 발전 잠재력에 착안해 롯데그룹이 선양 북역(北驛)에 20억달러를 투자해 서울 잠실 롯데월드 2배에 달하는 복합단지를 건설 중이다. 포스코(POSCO), SK, 금호석유화학 등 대기업의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 무료 회원가입으로 급등주 추천 이벤트
그러나 아직까지 많은 한국기업들은 임금 상승, 구인난, 환경, 세무, 금융 등 제반 분야에서 중국 투자환경의 악화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북지역 현장 관리들 특유의 보수성도 우리 기업 진출에 걸림돌이다. 실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2만명 정도로 추산되던 한국 교민 사회는 1만5000명 선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 기업들은 국력 신장과 경제 진출, 개인의 생존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선양의 한국인 사회는 매년 개최되는 선양한국주간을 활용해 지난해 중국 최초로 ‘전국노래자랑’을 개최했다. 선양 전국노래자랑은 사상 최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대대적 성공을 거두었다. ☞ 주식으로 6억 수익낸 30대 직장인?
특히 선양에서 열린 전국노래자랑 예선에 참가하기 위해 1500명의 중국인이 남쪽 끝 하이난다오(海南島)를 비롯해 서남부 쓰촨(四川)과 윈난(雲南) 등 중국 전역에서 운집했다. 그중 노래자랑 참가자의 40%는 한국인이나 조선족 중국인이 아닌 중국 한족(漢族)이었다. 덕분에 이 행사는 중국 내에서의 한류 확산에도 크게 기여한 바 있다.
그 여세를 몰아 지난 7월 선양한국주간에는 선양 한국인회와 주선양 총영사관이 주축이 돼 전세계 1200명 한상(韓商)이 참가하는 ‘글로벌한상대회’를 열었다. 당시 글로벌한상대회 개막공연으로 ‘열린음악회’가 4만여명의 관객들이 모인 가운데 선양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성대히 개최됐다. 이는 한국 이외의 지역에서는 최초로 개최된 사례다. 중국 동북3성에서 한류 열기를 다시 한번 불태우고 한민족의 단합을 과시한 셈이다. ☞ 승률 90% 이상의 급등주 무료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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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다른 한편으로 선양 총영사관은 북한에 접경한 우리 외교의 최전방 공관으로서 많은 도전과 어려움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필자를 비롯 총영사관 직원들은 사고다발 공관으로서의 이미지를 불식하고, 중국 경제의 제4대 성장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동북3성 지역에 대한 경제 진출과 투자 및 관광 유치를 위해 가능한 지혜와 노력을 모으고 있다.
내년에 북한 신의주를 마주보는 단둥(丹東)에서 선양까지 고속철도가 완공되면 40분 만에 주파할 수 있게 된다. 또 남북의 철도가 연결되어 고속철도가 깔리면 서울에서 선양까지 철로로 3시간이 채 안 걸리는 날이 올 것이다. 그날을 그리면서 우리는 중국의 동북3성, 특히 선양에 대한 관심과 진출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 매일오전 승률90% 주식종목 추천!!
또 우리 교민사회가 더욱 건강하게 발전하기 위해 선양 현지 교민들은 한국학교, 금융, 내수시장 개척 분야에서 본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갈망하고 있다. 다시 부상하는 중국을 바라보면서 국제정세에 보다 신중하며 중국과 중국인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중국인들이 우리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하는 노력은 우리가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과제다.
1954년생, 한국외대 정치학 석사, 대만유학, 외무고시 12기, 베이징무역대표부, 주중대사관 1등서기관, 주칭다오 총영사. ☞ 반년만에 6억번 주식초보 최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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