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양의 중심업무지역인 금융상무개발구.
한참을 달리다 보니 ‘번시’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문득 번시에서 주몽이 고구려를 개국한 졸본성이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졸본성은 현재 랴오닝성 환런현(桓仁滿族自治縣)의 약 800m 산지에 축성된 오녀산성으로 추정된다는 설이 있다. 오녀산성은 남북 약 1,000m, 동서 너비 약 300m의 비교적 규모가 큰 성으로 부근에는 적석총(돌을 쌓아 만든 무덤) 등 많은 고분군이 있다. 하지만 일정상 들를 수 없어 안타까움만 느껴야 했다.
단둥을 출발한지 2시간 20분가량이 지나자 멀리 빌딩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랴오닝, 지린, 헤이룽장 등 동북 3성의 최대 도시인 선양이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의 ‘성경잡지’편에서 선양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7월 10일 선양에 들어서다 멀리 요양성 밖을 돌아보니 수풀이 아주 울창한데 새벽 까마귀떼가 들 가운데 흩어져 날고 한줄기 아침 연기가 하늘가에 짙게 낀데다 붉은 해가 솟으며 아롱진 안개가 곱게 피어오른다. 사방을 둘러본즉 넓디넓은 벌에 아무런 거칠 것이 없다. 아아 이곳이 옛 영웅들이 수없이 싸우던 터전이구나. 범이 달리고 용이 날제 높고 낮음은 내 마음에 달렸다는 옛말도 있겠지만, 그러나 천하의 안위는 늘 이 요양의 넓은 들에 달렸으니 이곳이 편안하면 천하의 풍진이 자고, 이곳이 한번 시끄러워지면 천하의 싸움 북이 소란히 울려댄다. 선양은 본시 우리나라 땅이다. 혹은 이르기를, 한나라가 4군을 두었을 때는 이곳이 낙랑의 군청이더니, 후위·수·당 때 고구려에 속했다. 지금은 성경이라 일컫는다.”
선양 톨게이트를 들어서니 통행료가 100위안(한화로 약 1만 6,500원)이다. 처음 내는 통행료였는데 한국보다 더 비쌌다. 중국인들이 어지간하면 통행료를 아끼기 위해 국도를 이용한다는 얘기가 실감나는 순간이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반기는 이들이 있다. 길이 복잡한 대도시에 가면 나타난다는 샹다오(向道)들이다. 이들은 도시를 처음 방문해 길을 모르는 운전자들에게 동승해 길을 가르쳐주고 수고료를 받는다. 곧이어 LG라는 간판이 보였다. LG전자의 LCD TV 생산공장이다.
LG전자 공장을 지나니 바로 SR개발이라는 간판이 달린 아파트 건물들이 눈에 띄었다. SR개발이 공급한 5,000가구가 넘는 아파트들이다.
톨게이트를 지나 선양 시내로 들어가는 대로의 이름은 칭넨따제(靑年大街). 이 길은 진낭(金囊, 금주머니)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큰 사업 기회가 열리는 곳이다. ‘진낭’이라는 별명 자체가 21세기 들어 새롭게 발전하는 선양의 모습과 썩 어울리는 듯 했다.
선양(瀋陽)에는 790만 명(시내인구는 560만 명)이 산다. 랴오닝·지린·헤이룽장 등 동북 3성의 최대 도시다. 과거 봉천(奉天)·묵덴(Mukden·만주어)·성경(盛京, 《열하일기》에 언급됨)·심주(瀋州) 등으로 불린 이곳은 중국 내에서 새로운 발전거점으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
선양 한국영사관의 조백상 총영사는 “선양에는 원래 3,000~4,000여 개의 중소기업이 있었지만 중점 도시로 발전 방향을 잡으면서 대 기업들의 선호를 받기 시작했다. 상하이, 광저우 등의 인건비·물가 등이 오르면서 동북 3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예전부터 중공업으로 유명했고, 넓은 만주벌판과 석유산지 등을 갖고 있어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동북 3성의 총인구는 약 1억 1,000만 명. 선양은 이러한 동북 3성 가운데 상주인구와 유동인구가 가장 많으며 각종 소비재의 동북지역 유통센터 기능까지 수행한다. 24개 주요 도매시장이 존재하고 있으며 우아이(五愛)시장은 전국 2위의 의류·잡화 제품 도매시장이다. 동북 육로교통의 중심지로 국가급 간선철도 5개, 고속도로 4개가 선양을 통과한다. 반경 150㎞ 이내에 안산(鞍山), 푸순(撫順), 번시(本溪), 푸신(阜新), 판진(盤錦), 랴오양(遼陽), 톄링(鐵嶺) 등 주요 공업도시가 연계해 인구 2,400만 명에 달하는 랴오닝 중부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선양은 기계·장비제조·부품 등 중공업이 발달했지만 기업들이 노후화됐고 분지 형태의 지형인 관계로 2002년 세계 10대 오염 도시로 선정될 정도로 환경문제가 심각했다. ‘계획경제 최후의 보루’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계획경제의 혜택을 많이 받으면서 개혁개방의 흐름에 뒤처졌다.
그러나 1990년대에 대외 개방이 이뤄지고 2003년 동북진흥정책이 시작되면서 현대화된 산업도시로 빠르게 부상 중이다. 톄시 공업구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2020년까지 세계 최고 공작기계 산업기지로 탈바꿈될 것이라는 계획이 서 있다. 다둥구(大東區) 자동차시티 건설 사업은 자동차 생산량과 생산액을 각 100만 대, 1,000억 위안 달성이라는 목표하에 진행되고 있다. 전체 도시환경도 급속히 정비돼 한층 맑아진 도시가 됐다.
선양의 부상은 최근 5년간 평균 15.7%에 이르는 성장세가 잘 말해준다(2010년 선양의 1인당 GDP도 9,400달러 수준이었다). LG전자 선양판매법인의 이동선 법인장은 “동북 3성의 GRDP(지역총생산)는 5,000억 달러에 육박하고, 1인당 GDP도 중국 전체 평균보다 훨씬 높다. 2010년의 경우 가전시장이 전년대비 20%가량 성장했으며, 55인치, 70인치 TV를 들여놓을 정도로 구매력이 있는 프리미엄 고객들이 많다”고 전했다.
LG전자는 1994년 일찌감치 선양에 진출해 1996년부터 TV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2011년 2월부터는 LCD TV 양산에 들어갔다. 연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70만 대에 이른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물건은 황하 이북 지역의 시장에 풀린다. 난징에 있는 생산공장이 중국 중남부를 맡는다면, 선양 공장은 중국 북부시장을 담당하는 셈이다.
선양이 물류 중심지임을 감안해 여기에 집중하고 있는 한국 기업으로는 2005년 진출한 SK네트웍스가 있다. SK네트웍스 중국 본사가 선양남역 앞에 있다. 선양남역은 향후 베이징까지 2시간(2011년 기준 4시간) 만에 주파하는 고속철의 역이 들어서게 된다.
SK네트웍스가 하는 대표적인 사업은 버스시외터미널(객운참) 사업.
정해준 객운참 총경리는 “2011년 연말까지는 현재 운행 중인 노선 70개 중에서 68개를 서비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버스터미널사업은 새로운 서비스사업을 수반하는데 주유소, 충전소, 부동산 개발 등도 이곳을 거점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SK가 자체로 지었던 건물의 가치는 해마다 급상승해, 현재 당초 투자액(한화로 약 2,000억 원)의 2배 가까이 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밖에 한국 기업으로는 농심, 잠실 롯데월드 2배 크기의 놀이공원사업에 2조원 가량을 투자하는 롯데, 포스코 등이 있으며 2009년 이후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안긴 청나라(당시 후금)의 수도였던 선양이 이젠 한국 기업의 새로운 성장거점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은행 북경현지법인 선양 분행(지점)의 김진섭 부행장은 “선양시가 2010년 14.6% 가량 성장했다는데 해마다 성장속도가 너무 빨라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중국 금융생태도시’로 지정됐고, 금융개발구를 중심으로 인구 790만 명의 선양에 804개의 은행 점포가 있지만 아무래도 산업발전 속도보다 느린 듯하다”고 설명했다.
선양의 발전을 보여주는 다른 사례는 인프라의 급격한 확충. 2013년 열리는 중국 전국체육대회를 앞두고 지하철 1호선이 이미 운행 중이고 2호선도 공사에 들어갔다. 선양의 하늘관문인 타오셴(桃仙) 국제공항의 경우 34억 위안(한화로 약 6,000억 원)을 들여 기존 여객터미널보다 3배가 큰 20만㎡ 규모의 여객 터미널을 새로 짓고 종전 10대에 불과했던 주기장(駐機場) 수용 능력도 30대로 확대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렇게 되면 하루 160여 회에 그쳤던 항공기 운항 횟수가 600여 회로 늘게 돼 연간 공항 이용객이 600만 명에서 2,500만 명으로 4배 가량 증가하게 된다.
실제로 국제공항을 가보니 여객터미널 왼편으로 새로운 건물들을 짓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선양 한국영사관의 조백상 총영사는 “선양에는 원래 3,000~4,000여 개의 중소기업이 있었지만 중점 도시로 발전 방향을 잡으면서 대 기업들의 선호를 받기 시작했다. 상하이, 광저우 등의 인건비·물가 등이 오르면서 동북 3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예전부터 중공업으로 유명했고, 넓은 만주벌판과 석유산지 등을 갖고 있어 새롭게 관심을 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동북 3성의 총인구는 약 1억 1,000만 명. 선양은 이러한 동북 3성 가운데 상주인구와 유동인구가 가장 많으며 각종 소비재의 동북지역 유통센터 기능까지 수행한다. 24개 주요 도매시장이 존재하고 있으며 우아이(五愛)시장은 전국 2위의 의류·잡화 제품 도매시장이다. 동북 육로교통의 중심지로 국가급 간선철도 5개, 고속도로 4개가 선양을 통과한다. 반경 150㎞ 이내에 안산(鞍山), 푸순(撫順), 번시(本溪), 푸신(阜新), 판진(盤錦), 랴오양(遼陽), 톄링(鐵嶺) 등 주요 공업도시가 연계해 인구 2,400만 명에 달하는 랴오닝 중부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선양은 기계·장비제조·부품 등 중공업이 발달했지만 기업들이 노후화됐고 분지 형태의 지형인 관계로 2002년 세계 10대 오염 도시로 선정될 정도로 환경문제가 심각했다. ‘계획경제 최후의 보루’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계획경제의 혜택을 많이 받으면서 개혁개방의 흐름에 뒤처졌다.
그러나 1990년대에 대외 개방이 이뤄지고 2003년 동북진흥정책이 시작되면서 현대화된 산업도시로 빠르게 부상 중이다. 톄시 공업구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2020년까지 세계 최고 공작기계 산업기지로 탈바꿈될 것이라는 계획이 서 있다. 다둥구(大東區) 자동차시티 건설 사업은 자동차 생산량과 생산액을 각 100만 대, 1,000억 위안 달성이라는 목표하에 진행되고 있다. 전체 도시환경도 급속히 정비돼 한층 맑아진 도시가 됐다.
선양의 부상은 최근 5년간 평균 15.7%에 이르는 성장세가 잘 말해준다(2010년 선양의 1인당 GDP도 9,400달러 수준이었다). LG전자 선양판매법인의 이동선 법인장은 “동북 3성의 GRDP(지역총생산)는 5,000억 달러에 육박하고, 1인당 GDP도 중국 전체 평균보다 훨씬 높다. 2010년의 경우 가전시장이 전년대비 20%가량 성장했으며, 55인치, 70인치 TV를 들여놓을 정도로 구매력이 있는 프리미엄 고객들이 많다”고 전했다.
LG전자는 1994년 일찌감치 선양에 진출해 1996년부터 TV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2011년 2월부터는 LCD TV 양산에 들어갔다. 연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70만 대에 이른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물건은 황하 이북 지역의 시장에 풀린다. 난징에 있는 생산공장이 중국 중남부를 맡는다면, 선양 공장은 중국 북부시장을 담당하는 셈이다.
▲ SK네트웍스가 운영하는 선양객운참.
SK네트웍스가 하는 대표적인 사업은 버스시외터미널(객운참) 사업.
정해준 객운참 총경리는 “2011년 연말까지는 현재 운행 중인 노선 70개 중에서 68개를 서비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버스터미널사업은 새로운 서비스사업을 수반하는데 주유소, 충전소, 부동산 개발 등도 이곳을 거점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SK가 자체로 지었던 건물의 가치는 해마다 급상승해, 현재 당초 투자액(한화로 약 2,000억 원)의 2배 가까이 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밖에 한국 기업으로는 농심, 잠실 롯데월드 2배 크기의 놀이공원사업에 2조원 가량을 투자하는 롯데, 포스코 등이 있으며 2009년 이후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안긴 청나라(당시 후금)의 수도였던 선양이 이젠 한국 기업의 새로운 성장거점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은행 북경현지법인 선양 분행(지점)의 김진섭 부행장은 “선양시가 2010년 14.6% 가량 성장했다는데 해마다 성장속도가 너무 빨라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다. ‘중국 금융생태도시’로 지정됐고, 금융개발구를 중심으로 인구 790만 명의 선양에 804개의 은행 점포가 있지만 아무래도 산업발전 속도보다 느린 듯하다”고 설명했다.
선양의 발전을 보여주는 다른 사례는 인프라의 급격한 확충. 2013년 열리는 중국 전국체육대회를 앞두고 지하철 1호선이 이미 운행 중이고 2호선도 공사에 들어갔다. 선양의 하늘관문인 타오셴(桃仙) 국제공항의 경우 34억 위안(한화로 약 6,000억 원)을 들여 기존 여객터미널보다 3배가 큰 20만㎡ 규모의 여객 터미널을 새로 짓고 종전 10대에 불과했던 주기장(駐機場) 수용 능력도 30대로 확대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렇게 되면 하루 160여 회에 그쳤던 항공기 운항 횟수가 600여 회로 늘게 돼 연간 공항 이용객이 600만 명에서 2,500만 명으로 4배 가량 증가하게 된다.
실제로 국제공항을 가보니 여객터미널 왼편으로 새로운 건물들을 짓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랴오닝·지린·헤이룽장 등 동북 3성은 우리에게 만주벌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3성의 총면적은 80.6만㎢. 남한의 8배 크기를 자랑한다. 이 가운데 랴오닝성 다렌부터 창춘과 하얼빈으로 이어지는 평원은 동북평원으로 중국 내 4대 평원 가운데 가장 넓은 경작지를 보유하고 있는 들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헤이룽장성은 중국에서도 토지자원의 대성(大省)으로 꼽힌다.
‘북대황(北大荒)’이라 부르는 광대한 평원지대는 흑토가 비옥하여 농경지로 개간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절반 가까운 경작지가 1950년대 이후에 개발됐다.
만주벌판의 대표적인 작물은 옥수수. 여름이면 온통 푸른 옥수수로 뒤덮인다. 4월에 만주벌판을 달린 관계로 그 장관을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중국은 전 세계 옥수수의 절반가량을 생산하고, 동북평원이 중국 내 생산량의 70~80%를 차지한다. 결국 세계 생산량의 40% 가까이가 나오는 셈이다. 옥수수는 식용·가축 사료·에탄올 원료 등으로 쓰인다.
동북 3성이 자랑하는 자원은 석유·석탄·목재. 석유는 따칭(大慶)과 판진(盤錦) 등에서 나온다. 따칭이라는 이름은 석유가 생산돼 크게 경사롭다는 의미에서 이름이 붙여진 것. 실제로 취재팀이 판진의 가오셩요우취(高昇油區)로 불리는 곳을 찾았더니 중국 국영 기업인 중국석유(페트로차이나)가 원유를 뽑아내고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허허벌판 공터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추하는 기계장비가 50여 개도 넘게 아래위로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가오셩요우취가 있는 랴오허강(遼河) 유전은 중국 3대 석유가스 유전으로, 석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이 중국에서 각각 15%와 10%를 차지한다.
그밖에 동북 3성이 자랑하는 자원은 삼림이다. 백두산으로 중심으로 따씽안링, 샤오씽안링지역은 울창한 삼림을 형성하고 있으며, 다양한 임산자원의 공급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헤이룽장성은 중국에서도 토지자원의 대성(大省)으로 꼽힌다.
‘북대황(北大荒)’이라 부르는 광대한 평원지대는 흑토가 비옥하여 농경지로 개간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 절반 가까운 경작지가 1950년대 이후에 개발됐다.
만주벌판의 대표적인 작물은 옥수수. 여름이면 온통 푸른 옥수수로 뒤덮인다. 4월에 만주벌판을 달린 관계로 그 장관을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쉽다. 중국은 전 세계 옥수수의 절반가량을 생산하고, 동북평원이 중국 내 생산량의 70~80%를 차지한다. 결국 세계 생산량의 40% 가까이가 나오는 셈이다. 옥수수는 식용·가축 사료·에탄올 원료 등으로 쓰인다.
▲ 랴오닝성 판진 고승촌의 유전지구.
그밖에 동북 3성이 자랑하는 자원은 삼림이다. 백두산으로 중심으로 따씽안링, 샤오씽안링지역은 울창한 삼림을 형성하고 있으며, 다양한 임산자원의 공급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선양에서 진저우로 가는 길에 만나는 강이 랴오허(遼河)다. 봄철로 비가 거의 없는 계절 탓인지 물은 많지 않다. 이처럼 크지 않은 랴오허지만 한국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크다. 한민족이 활동했던 요동지방을 말할 때 랴오허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민족사학자인 신채호, 최남선, 안재홍, 정인보 등은 단군왕검이 건국한 고조선이 요동지방에 존재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청동기 시대 고조선의 유물인 비파형 동검, 적석총, 고인돌, 다뉴세문경, 미송리형 토기 등이 요서·요동 등에서 광범위하게 발굴되고 있다. 한나라 무제가 위만조선을 세웠다는 한사군(낙랑·임둔·현도·진번) 등도 요동에 위치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역사·고고학계에서 관심을 끄는 사항은 네이멍구와 랴오닝성 접경에서 발견되는 홍산문화다. 홍산문화란 기원전 4500~3000년에 존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이 문화가 한민족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특히 랴오허 일대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 세석기, 적석총, 석관묘, 비파형 동검, 고인돌 등은 중국 본류인 중원과는 전혀 상관없이 만주와 한반도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랴오허가 흐르는 동북 3성은 한국 역사에서 고구려가 활동했던 무대다. 지린성에는 광개토대왕비와 고구려 유적이 많다. 광개토대왕비에는 고구려 건국신화와 동명성왕 내용, 광개토대왕의 정벌 내용 등이 담겨 있다. 랴오닝성의 오녀산성은 고구려 발원지인 졸본성으로 추정된다. 헤이룽장성 닝안시에는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용천부의 왕궁 터 유적이 남아있다.
한편 랴오닝성을 다니다 보면 만주족 마을을 자주 만나게 된다. 만주족(옛 여진족)은 지붕을 평평하게 만들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띈다. 그들은 청나라를 세워 중국을 270년 가량 지배했다. 하지만 지금은 1,068만 명(2000년 기준)이 동북 3성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 개고기를 먹지 않는 풍습을 갖고 있는 그들은 민족 고유의 만주어를 잃은 채 거의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만주어는 현재 20여 명의 만주족 노인들만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어는 민족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임을 감안하면, 만주족도 화려했던 역사의 뒤안길에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민족사학자인 신채호, 최남선, 안재홍, 정인보 등은 단군왕검이 건국한 고조선이 요동지방에 존재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청동기 시대 고조선의 유물인 비파형 동검, 적석총, 고인돌, 다뉴세문경, 미송리형 토기 등이 요서·요동 등에서 광범위하게 발굴되고 있다. 한나라 무제가 위만조선을 세웠다는 한사군(낙랑·임둔·현도·진번) 등도 요동에 위치했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역사·고고학계에서 관심을 끄는 사항은 네이멍구와 랴오닝성 접경에서 발견되는 홍산문화다. 홍산문화란 기원전 4500~3000년에 존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이 문화가 한민족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특히 랴오허 일대 유물인 빗살무늬 토기, 세석기, 적석총, 석관묘, 비파형 동검, 고인돌 등은 중국 본류인 중원과는 전혀 상관없이 만주와 한반도에서만 나타나고 있다.
랴오허가 흐르는 동북 3성은 한국 역사에서 고구려가 활동했던 무대다. 지린성에는 광개토대왕비와 고구려 유적이 많다. 광개토대왕비에는 고구려 건국신화와 동명성왕 내용, 광개토대왕의 정벌 내용 등이 담겨 있다. 랴오닝성의 오녀산성은 고구려 발원지인 졸본성으로 추정된다. 헤이룽장성 닝안시에는 발해의 수도였던 상경용천부의 왕궁 터 유적이 남아있다.
한편 랴오닝성을 다니다 보면 만주족 마을을 자주 만나게 된다. 만주족(옛 여진족)은 지붕을 평평하게 만들기 때문에 쉽게 눈에 띈다. 그들은 청나라를 세워 중국을 270년 가량 지배했다. 하지만 지금은 1,068만 명(2000년 기준)이 동북 3성을 중심으로 살고 있다. 개고기를 먹지 않는 풍습을 갖고 있는 그들은 민족 고유의 만주어를 잃은 채 거의 중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만주어는 현재 20여 명의 만주족 노인들만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어는 민족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임을 감안하면, 만주족도 화려했던 역사의 뒤안길에 사라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 선양의 코리아타운 시타제.
네온사인 불빛이 하나 둘 밤거리를 밝히는 저녁 7시께 가장 큰 번화가 중 하나인 시타제에도 어둠을 배경 삼아 간판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전문 빵집 프랜차이즈, 신초원정, 한국요리, 화로구이, 매일슈퍼, 배달가능…. 익숙한 한국어 간판이다. 시타제에 위치한 가게 대부분이 조선족이 운영하는 상점이나 음식점, 호텔, 의류점 등이다. 이곳에는 조선족이 다니는 학교, 병원, 은행, 교회 등이 밀집해 있다.
한 식당에서는 불고기, 김치찌개에서 홍어까지 다양한 한국 음식을 팔고 있다. 가게에서는 아이유의 노래가 흘러나올 정도로 최신 유행을 따르고 있다.
한 교민은 “선양은 4월부터 10월까지 야외운동이 가능하고 그 뒤부터는 영하 20도 밑으로 떨어지는 추위 탓에 실내에서 운동할 수 있는 스크린골프장이 인기”라고 귀띔했다. 선양의 한국인 교민 수는 유학생 2,000여 명을 포함해 대략 3만 5,000명으로 추정된다. 이 중 1만 5,000명이 시타제 인근에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시타제는 20만여㎡로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코리아타운 중 하나지만 건물들이 대부분 노후해 이전부터 재개발 필요성이 제기돼 온 곳이다.
시타제 주변에서 지난 2년간 근무하고 있는 한국 주재원은 “시타제에도 재건축 사업이 추진될 전망이라는 기대감이 한때 불었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인 움직임은 적어 보인다”고 전했다. 당초 시타제가 위치한 허핑구(和平區) 정부는 2010년 홍콩 부동산 개발업자와 함께 ‘시타제 개조 프로젝트’ 의향서를 조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선양시와 허핑구 정부는 2011년 초 10억 위안의 원주민 이주비를 책정했으며 2011년 하반기부터 이주와 철거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시타제 재개발의 1차 개발지역은 옌볜(延邊)가와 난징(南京)가 등 시타 동쪽 일대 약 6만 9,000㎡ 규모. 한인타운이 재개발되면 5성급 호텔, 오피스텔, 대형 쇼핑몰을 비롯해 유치원 등 주민 생활을 위한 각종 시설들이 들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 바 있다.
하지만 대부분 노후한 건물 사이에 각종 가게들이 즐비하고 이해관계가 많이 얽혀 있어 실제 실행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뒤따를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한편 동북 3성에 터전을 잡고 살던 우리 민족(조선족)은 갈수록 숫자가 줄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예컨대 하얼빈에서 남동쪽으로 110㎞가량 떨어진 우창(五常) 조선족민락향은 한때 1,400가구가 모여 살던 대표적인 조선족 마을인데 지금은 200가구 정도만 남아 있다. 조선족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떠나면서 5,700여 명이던 주민이 500명 이하로 줄었다.
하얼빈에서 20㎞ 떨어진 아청(阿城)구의 조선족 마을 홍신춘(紅新村)도 등록 인구 1,500여 명 가운데 남아있는 주민은 200여 명으로, 한국으로 간 이들이 9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국제농업개발원 보고서에 따르면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중국 동북 3성의 조선족 인구는 192만 5,000명에 달하고 35가구 이상의 마을도 2,678개나 존재했다. 그러나 18년 뒤인 2010년 등록 인구는 160만 1,000명인 반면 실제 거주 인구는 85만 1,000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최대 조선족 공동체인 연변조선족자치주에 등록된 1,470여 개 소규모 마을은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되는 등 조선족 사회가 해체 위기에 직면해 있다. 사람이 떠나면서 만주벌판을 영원히 잃어버릴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 선양에서 베이징을 갈 때 만난 황사의 모습.
“황사는 1년에 두 번 찾아온다. 다만 한 차례 올 때마다 6개월씩 불어댄다.” 결국 1년 내내 황사의 영향권에 놓여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네이멍구 동쪽에 위치한 선양의 하늘은 현지 주민들이 맑은 날씨라고 했는데도 여전히 칙칙했다. 선양을 떠나 남서쪽 진저우(錦州)를 가는 고속도로에서도 황사는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황사를 동반한 강한 바람이 내내 불어대면서 하늘은 오후 2시에도 햇빛 없이 뿌옇게 흐려 있다. 목이 금세 칼칼해지고 귓속까지 미세한 먼지와 모래가 채워지는 듯해 답답했다. 손톱 밑이 쉬이 까맣게 변하고 코도 자주 막히는 느낌은 좀처럼 가셔지지 않는다. 강한 바람을 맞다보니 눈도 뻑뻑해져 피로감이 들었다. 차량 가시거리도 그다지 길지 못했다.
흩날리는 먼지 속에서 이방인들의 눈에 띈 것은 황사를 피하기 위한 사람들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 한 아주머니는 벌에 쏘이지 않으려는 양봉업자처럼 얇은 노란 머플러로 얼굴 전체를 휘감은채 길을 재촉하고 있다.
아기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자신도 선글라스를 쓴 어머니는 스쿠터로 발길을 재촉한다.
▲ 황사를 피하기 위해 안면 마스크를 쓴 중국의 중년 여성.
2011년의 경우 3월 12일 처음으로 중국 북부에 황사바람으로 인한 피해가 관찰됐다. 신장(新疆)과 네이멍구(內蒙古) 등지에는 중앙기상대가 황사 남색경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황사와 뒤섞인 강풍 탓에 4월인데도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은 일교차가 20도 이상 나면서 주민들이 외출에 어려움을 겪는 일도 벌어졌다.
해마다 지독했지만 2011년에 특히 황사가 심해진 원인은 2010년 극심했던 중국의 겨울 가뭄 때문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무리한 개간과 방목까지 겹치다보니 초원은 황폐화됐다. 한국에 있어서도 중국 황사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예컨대 한국에 부는 황사의 69%는 네이멍구의 고비·쿠부치사막에서, 21%는 동북 3성에서, 나머지 10%는 황토고원에서 발생한다. 특히 동북 3성에서 불어오는 황사는 한국까지의 거리가 불과 500~1,000㎞에 불과해 6~12시간이면 우리나라에 상륙한다. 황사가 한번 발생하면 동아시아 상공에 떠도는 미세먼지 규모는 100만 t 안팎에 이른다. 한반도에는 이 가운데 5~8%가 쌓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중·일로 얘기되는 동아시아는 황사라는 자연현상으로 단단히 연결돼 있는 셈이다.
우리는 앞으로 봄마다 어김없이 황사소식을 듣게 될 전망이다. 중국에서 여전히 사막화 위협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건조한 북부지역 몽고사막은 빠른 속도로 선양을 향해 확대되고 있으며, 선양과 사막 사이의 거리는 2000년 100㎞에서 지금은 50㎞ 내외로 가까워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매년 1,500㎢(4억 5,000만 평)이 사막화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중국 당국도 현재 사막화 지역을 복구하는 데 300년이 걸릴 것이란 조사를 발표한 바 있다. 중국 임업국 주례커(祝列克) 부국장은 2011년 초 열린 사막화 방지 행사에서 “중국에는 2011년 173만 ㎢의 사막화 지역이 있고 복구 속도에 비춰보면 약 300년은 소요될 것”이라고 밝혔다. 2011년 중국의 사막화 지역은 전체 국토 면적의 18%이며 남한 면적의 17배다.
중국은 이와 관련 다양한 사막화 방지대책을 펼치고 있다. 북방 보호림체제공사, 전국 사막화방지공사, 경작지역을 임야로 바꾸는 공사 등이 그것이다. 대상 면적도 중국 전체면적의 42%인 406만㎢에 달한다.
지역매체인 랴오션 완보는 2011년 4월 14일 지면보도를 통해 “랴오닝성의 10분의 1 면적이 5년 내로 초록빛을 되찾게 될 것(返靑)”이라고 설명했다. 랴오닝성 조림연구소 측은 “추위를 이기고 생산을 풍부히 하고 가뭄을 견뎌내는 것이 숲을 조성함으로써 가능해진다”고 덧붙였다.
황사를 막아보려는 중국 정부가 택한 수단 중 하나는 인공강우다. 황사도 어느 정도 잦아들게 만들 수 있고 황사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가뭄해갈에도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중국 내 최근 강수량 가운데 인공강우 비중은 16~17%로 집계되고 있다. 인공강우는 대기 중의 습기가 뭉쳐 눈과 비로 형성되도록 촉매제를 살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와 극심한 가뭄의 연속 등은 중국 당국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 수 있다. 바짝 마른대지에 조림사업을 하더라도 좋은 결과를 얻어내기 어려운 탓이다. 한편 황사가 가져온 중국인들의 생활상 변화의 하나로 공조제품의 인기를 들 수 있다. 중국인들이 웰빙과 건강에 대한 관심을 높이면서 황사를 막아주고 청정한 실내공기를 유지해준다는 공조제품 구입에 주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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