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04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 본질을 묻되 구체적으로 탐구하는,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



한겨레 수행·치유 전문 웹진 - 휴심정 - 본질을 묻되 구체적으로 탐구하는,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
본질을 묻되 구체적으로 탐구하는,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

이남곡 2013.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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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을 묻되 구체적으로 탐구한다.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


요즘 전주의 여성 인권단체 분들과 논어 강독을 하고 있다.
역시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어서 그 깊이에 감동할 때가 많다. 그냥 지나치듯 읽은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경우도 많다. 특히 같이 읽는 분들과 교감이 잘 이루어질 때는 더 그런 경우가 많이 생긴다. 이것이 같이 읽는 즐거움의 하나이리라!


공자의 제자인 자유와 자하의 대화는 교육과 탐구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자유가 “자하의 제자들은 물 뿌리고 쓸고 응대하고 드나들고 하는데는 제법이지만, 그것은 말단의 일이다. 본질적인 일에는 보잘 것이 없으니 어쩌겠는가?”하고 비판했다는 말을 전해들은 자하는 “아아, 자유의 말은 잘못이다. 군자의 도에 무엇을 먼저하고 무엇을 게을리하겠는가? 초목에 비유하면 종류에 따라서 분별이 있을 뿐이다.”고 응답한다.


본질은 외면하고 지엽말단에 맴도는 교육이나 실천과 유리된 이른바 본질적이라고 생각되는 관념의 주입은 둘 다 옳은 방향은 아니라고 본다.
요즘의 우리 교육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려서부터 자기 주변 정리하고, 청소하고, 친구들과 잘 사귀고, 일상적인 행동거지에 대해 우리 부모들과 학교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또 본질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데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사실 어느 면을 보더라도 그다지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닌가?


그저 스펙 쌓기에, 진학이나 취업을 위한 시험 준비에 본질적인 내용마저 하나의 암기해야할 지식이나 관념 수준으로 되어버리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요즘 인성 교육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이런 현실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번 논어 강독을 하다가 자하의 말 중에서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간절하게 묻되, 가까운 것부터 생각한다”는 말로도 번역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본질을 묻되, 구체적으로 탐구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본질에 대한 질문이 구체적 현실과 유리되면 추상적이거나 사변적이 되어, 진정한 지혜와는 거리가 멀게 된다.
예를 들어 “화(怒)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추상적이고 일반론적으로 묻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자기가 화가 났던 실례를 통해서 “그 때 나는 왜 화가 나는 것인가?”하고 탐구하는 방식이 절문이근사(切問而近思)가 아닐까?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관념상의 지식으로부터 살아 숨쉬는 지혜로 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예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소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소유의 본질은?”하고 추상적으로 묻는 것보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물건을 구체적으로 상정하고 “그 물건은 누구의 것인가?” “그 물건이 당신의 소유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하고 탐구하는 방식이 훨씬 구체적이며 실제적이다.


“믿는다는 것의 본질은?”하고 추상적으로 묻는 것보다 자신이 틀림없다고 믿고 있는 것을 떠올려 예를 들어 “저 사람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할 때 “정말은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인가?” 하고 탐구해 가는 것이다.


이런 탐구방식이야말로 본질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체득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
요즘 여러 가지 마음에 관한 프로그램들이 이런 방법으로 탐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탐구 방식이 비단 집중적인 프로그램에서 활용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일상의 삶과 사회적 실천 속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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