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8

벼랑에 선 조선족 : 사회 : 인터넷한겨레

벼랑에 선 조선족 : 사회 : 인터넷한겨레

편집시각 2001.12.05(수)


한겨레/사회/벼랑에선조선족


⑥조선족-한국인 갈등 이해·애정으로 메워야 ... 03/15 09:58
⑤한국형 '돈 열병'…공동체의식 붕괴위기 ... 03/13 18:10
④"돈 벌수만 있다면…" ... 03/13 18:01
③"한국인들은 야박" "조선족 비효율적" ... 03/10 20:02
②금의환향 꿈꾸며 몸고생 마음고생 ... 03/09 20:07
①'돈 벌고 싶어' 도시로…도시로… ... 03/08 22:06




①'돈 벌고 싶어' 도시로…도시로…
· 지난 3일 밤 중국 심양시 화평구 서탑거리. 심양의 12만 조선족 가운데 2만8000여명이 모여사는 조선족거리답게 노래방,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에선 흥청대는 한국 노래가 마이크를 타고 거침없이 흘러나온다.

“돈 벌고 싶어 나왔지요. 안되는 일도 돈이면 다 돼요.” 이 거리의 ㄷ노래방에서 만난 조선족 동포 이아무개(23·여)씨가 당차게 대답했다. 이 업소의 접대부인 그는 2년 전 고향인 길림성 구태시를 떠나왔다.

심양생활 초기, 그는 월급 600위안(한화 8만4000원)을 받고 백화점 `복무원'(종업원)을 했다. 하지만 월 3000~4000위안이나 보장되는 접대부 일의 유혹에서 그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그는 이 돈으로 낮에 다니는 컴퓨터학원비와 연변 사범학교에 다니는 동생(20) 학비를 댄다. 고향에서 1년 내내 농사를 지어 손에 쥐는 돈은 기껏해야 3000위안. 이 돈으론 한학기 등록금만 1만위안이 넘는 고등교육은 커녕 생계유지도 벅차다.

서탑거리엔 조선족 접대부 아가씨가 1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한 노래방 주인은 “서탑거리 주변 조선족 아가씨의 80% 이상이 술집 접대부라고 보면 틀림없다”고 말했다.

서탑거리 뒷골목은 일자리를 구하려는 조선족 동포들이 모이는 곳이다. 날씨가 좋을 땐 수백명의 조선족 실직자들이 이 곳으로 모여든다고 한다.

1년 전 요녕성 신빈현 고향을 떠나온 강금복(23)씨는 지난 1월 취업했던 음식점이 경영난을 겪어 직장을 잃은 뒤 두달째 이 곳으로 `출근'하고 있다. “고향 친구 20여명 가운데 2명 남고 모두 도시나 한국으로 나갔어요. 남들 다 떠났는데 혼자 있기 답답하고 돈도 벌고 싶어 나왔는데, 생각보다 어렵네요.”

흑룡강성·길림성·요녕성 등 중국의 동북 3성에 모여살던 조선족들이 급속히 도시로 향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유흥업소 종사자나 실업자 신세다. 당연히 범죄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난 95년 베이징에서 적발된 조선족 매춘녀가 무려 7000여명에 이르렀다. 지난 98년에는 베이징에서 한국인을 납치살해한 흑룡강성 조선족 청년 3명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중국조선족발전연구회 박경옥(75) 부회장은 “중국 56개 민족 가운데 우수성을 인정받던 조선민족이 무분별한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타락하고 있다”며 “최근 문제가 된 한국인 납치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생긴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국내의 조선족도 마찬가지다. 을지로 3가 국도극장 뒷편에 줄지어 있는 다방엔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조선족 여성을 고용하고 있다. 일부에선 티켓 매매 형태로 조선족 여성의 몸을 팔고 산다. 단란주점에 고용된 조선족 여성들도 형편은 다르지 않다.

지난 세기초 고향땅에서 쫓겨난 조선족들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벼랑 끝에 서 있다. 가난인가 아니면 범죄 또는 타락인가를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선양/김종태 기자jt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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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금의환향 꿈꾸며 몸고생 마음고생
“우리 고향마을 어떤 이는 한국에 가서 큰 돈을 벌어왔어요. 또 젊은 애들중에는 일찌감치 도시로 나가 성공한 사람들도 적지 않지요.”

중국 베이징의 동북쪽 외곽에 있는 조선족마을 `고려촌'. 지난 94년 연변을 떠나온 강아무개(54·여)씨는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이런 `성공한' 사람들을 떠올린다. 지금은 남편과 함께 두부장사를 하며 방 한칸에 부엌 하나 딸린 월세방에 사는 형편이지만, “나라고 그들처럼 못할 것 있느냐”는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강씨는 애초 3년만 `화끈하게' 일해 목돈을 쥐어 돌아갈 생각으로, 과수농사를 정리하고 고향을 떠났다. “왜 안돌아가고 싶겠어요? 올해만 벌고 가야지 하는 게 벌써 몇년쨉니다.” 물가가 높아 연변 생활보다 나은 것도 없지만 그나마 도시생활 초기 방황을 거쳐 안정된 두부장사로 자리를 잡았다는 게 강씨에게는 위안이다.

이곳 `고려촌'의 조선족 60여세대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도시로 나왔다가 방황 끝에 그나마 동포들끼리 만나 마을을 꾸려 살고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과 산업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탈농'이 줄을 잇고 있다. 문맹율이 가장 낮다는 조선족 동포들에게는 좀더 두두러진다. 실제 연변 조선족자치주의 조선족 인구비율은 90년대 이래 해마다 떨어지고 있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정신철 부연구원은 “한때 중국의 조선족 200만명이 대부분 모여살던 동북 3성 조선족집결지역에서 타 지역으로 떠난 조선족 인구는 근래 들어 20만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조선족의 경우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탈농 현상이 심한 데다 `무작정 탈농'이 많다는 점이다.

조선족의 취업인구 현황을 보면, 정부기관이나 기업체·전문직 종사자가 13.2%로 소수민족 평균에 비해 2배 이상 높고, 노동자·상업 및 서비스업 인구도 26.94%로 소수민족 평균 10.02% 보다 훨씬 높은 편이다. 조선족들의 도시 진출이 어느 민족보다 활발하고, 이에 따라 이들의 계층분화도 뚜렷하게 양극화하고 있다. 지난 92년 한·중 수교 이후 불어닥친 한국 바람은 조선족의 탈고향을 더욱 부추겼다. 특히 조선족 교육체계의 문제는 이들의 방황을 부추기고 있다. 현재 중국 조선족 중학생의 고등중학교 진학율은 60% 수준에 불과하지만, 진학 탈락자를 대상으로 체계적 기술교육을 시킬 만한 교육기관은 전무한 실정이다.

조선족 출신인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학 서영빈 교수(한국문학)는 “동포들의 도시행은 주변 사람들의 성공담에 자극된 측면이 많다”며 “이 때문에 별 준비없이 도시로 나와 주변부를 맴돌면서 한탕주의, 물질만능주의에 쉽게 빠지게 된다”고 진단했다.

이런 부작용은 최근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 젊은 조선족의 강력 범죄가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 하고있다. 요녕성의 조선어신문 <요녕일보>의 이덕권 기자는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않은 동포들이 더 나은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현재'를 희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선양/

글·사진 김종태 기자jt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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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한국인들은 야박" "조선족 비효율적"
“한국 기업요? 다시 갈 마음 없습니다. 친절하게 대해 주는 것도 아니고, 야근비도 안 주고….”

베이징에서 만난 조선족 동포 김아무개(35)씨는 2년 전까지 베이징의 한국 컴퓨터회사인 ㅎ사에 근무했지만 씁쓸한 기억뿐이다. 대신 김씨는 출퇴근 시간과 업무 구분이 확실한, 현재의 중국인 컴퓨터회사에 아주 만족한다고 했다.

베이징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조선족 김용호(30)씨는 2~3년 전까지 중국의 `한국인 동포' 덕택에 짭짤한 수입을 올렸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막대한 자본을 가진 한국인 부동산 업자가 나타나면서 그들에게 `발등을 찍힌' 신세가 됐다. “병주고 약준다더니…. 한국인 업자들과 도저히 경쟁이 안돼요. 이젠 동포들이 없느니만 못합니다.”

중국 조선족들의 한국에 대한 실망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이런 실망감은 조선족을 보는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한국 기업들이 고용하는 조선족 노동자의 비율이 해가 가면서 눈에 띄게 줄고 있다는 사실은 그 좋은 실례다. ㅇ사의 베이징지사는 진출 초기 현지 직원 20여명 중 70~80%에 이르던 조선족 비율이 지금은 절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컴퓨터회사인 ㅎ사도 조선족 고용이 해마다 줄어 현지 직원 15명 가운데 조선족은 4명이고, 철강회사인 ㅅ사는 아예 조선족 직원이 한명도 없다. 그 이유에 대해 중국의 한국 사업가 모임인 베이징 한국상회의 구성진 부회장은 “한국 기업들이 처음엔 언어소통과 동포애로 조선족을 선호했으나 어느 정도 현지에 적응해 조선족의 효용이 떨어진 요즘은 냉정한 경영적 사고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의 거리가 자꾸 멀어지는 원인은 양쪽의 사고방식 차이가 현실 속에서 자주 충돌하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심양 서탑거리에서 음식점을 하는 한국인 여태식(37)씨는 “조선족들은 한국인에 비해 책임감이 부족하고, 결과보다 과정을 너무 중시한다”며 “반세기 이상 서로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그들이 우리 같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베이징 한국식당에서 일하는 조선족 박경철(21)씨는 “한국을 뿌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술자리 예의 등 모든 것이 다르더라”고 토로했다.

여기에 최근 잇따르는 조선족과 한국인이 서로를 상대로 벌이는 범죄와 사기사건 등은 둘의 간극을 벌이는 `결정타' 구실을 하고 있다.

주중 한국대사관은 지난해 베이징에서 발생한 한국인의 범죄피해 50여건 중 조선족에 의한 것이 90%를 넘는다고 밝혔다. 이런 범죄피해는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를 두고 한 조선족 동포는 “일부 조선족 지식인이나 한국의 언론이 양쪽의 대립관계를 너무 부각시켜, 결과적으로 이런 범죄를 부추기고 있다”며 안타까워했지만, 이런 추세가 조만간 뒤바뀌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중국조선족발전연구회 박경옥(75) 부회장은 “최근 상황은 조선족이나 한국인 모두를 위해 불행하다”며 “양쪽이 이제 서로를 차분하게 되돌아보고 바람직한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이징 심양/
김종태 기자jt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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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돈 벌수만 있다면…"
“솔직히 말할까요? 이 땅에서는 하루도 살기 싫어요. 돈 벌면 빨리 떠나야죠.”

지난 93년 입국한 동포 류아무개(31)씨는 지난해 10월부터 서울 을지로3가의 한 다방 종업원으로 일한다. 식당 설거지일로 버는 한달 수입 60만~80만원으로는 연변을 떠날 때 브로커에게 주려고 빌린 4만위안(우리돈 500만원 상당)과 이자, 남동생 학비 등을 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같은 또래 친구의 귀띔으로 다방에 취업한 그는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하루 40여차례 배달을 나가는 고된 일이지만, 월급 120만원에 가끔 `팁'까지 챙기는 부수입 때문에 버틴다”고 말했다.

서울 을지로와 충무로, 동대문 등지의 다방에선 류씨와 같은 조선족 여종업원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을지로3가에서 인쇄업을 하는 조아무개(35)씨는 “이 일대 다방에는 한 집 건너마다 조선족이 일하고 있다”며 “`티켓다방'은 아니지만 조선족들은 손님과 눈만 맞으면 외박을 마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업소에선 미성년 동포가 취업했다가 단속을 염려한 업주에게 쫓겨나기도 했다고 그는 전했다.

서울 용산의 한 갈빗집에서 일하는 동포 이아무개(38)씨도 “식당일을 하는 조선족 여종업원 중에도 손님과 `2차'를 나가는 이가 흔하다”고 털어놨다.

국내 조선족 동포들의 행태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고된 노동과 잦은 체불, 일상화된 차별과 생활고 등이 그 원인이다. 일부 젊은 여자들은 `몸을 팔아서라도'라는 생각에 빠져들고, 일부 남자들은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정상적 취업보다는 비정규적인 일거리나 `한탕'을 꿈꾼다.

이런 현실은 계속 늘어나는 조선족 범죄로 나타나고 있다.

조선족 동포 5만여명의 집단 거주지가 있는 서울 구로동의 관할 경찰서인 남부경찰서에는 지난해 사흘에 한번 꼴로 이들의 범죄가 접수됐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동족을 대상으로 한 범죄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정부가 대대적인 불법체류자 단속에 나섬으로써 불안심리를 자극해 자해를 하는 경우나 과로사 등도 속출하고 있다.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지난달 24일 서울 휘경동 외국인보호소에서 자해를 한 최광범(32)씨나, 입국한 지 불과 6일 만에 공사장에서 과로로 숨진 최아무개(49·여)씨 사건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실제 `성남 외국인 노동자의 집'은 국내에 들어왔다 자살과 병사 등으로 숨지는 조선족 동포가 이틀에 한명 꼴에 이르고, 하루에 4명이 숨진 일도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재중동포들의 발길은 되레 늘고 있다. 지난해 2만6529명으로 전년에 비해 갑절 가까이 늘더니, 올 들어선 1~2월에만 9671명에 이르고 있다. 잘만 하면 중국의 1~2개월치 월급을 하루에 벌 수 있다는 `돈벌이 신화'가 여전한 탓이다.

성남 외국인의 집 김해성 목사는 “조선족의 삶이 더욱 힘겨워지면서 돈벌이에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들의 현실이 개선되지 않으면 더 큰 `재앙'이 닥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김동훈 기자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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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한국형 '돈 열병'…공동체의식 붕괴위기
“한국과 중국이 축구경기를 하면 어딜 응원합니까?”

한국인이 중국 조선족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의 하나다. 대부분의 경우 “당연히 중국”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한국인들에겐 섭섭한 답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중국 국적의 조선족들에겐 오히려 이 질문이 `넌센스'일 수 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중국 조선족만큼 민족정신의 뿌리가 분명한 이들도 없기 때문이다.

심양시의 조선족마을인 `만융촌' 들머리 담벼락엔 큼지막한 글씨로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배우고 부지런히 일하며 떳떳하게 살아갑시다'라고 쓰여 있다. 만융촌에서 열린 `3·8부녀절'(세계여성의 날) 행사에 참가한 조선족들은 한복 차림에 김치·인절미 등을 먹고, 아리랑 가락에 맞춰 춤을 추면서 하루를 보냈다.

길림성 주도인 연길시 거리에 즐비한 간판에도 하나같이 한글 상호가 한자 상호를 지긋이 누르고 있다. 이를 두고 조선족 택시기사는 “중국어보다 조선글을 더 중시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어'는 한어, 장족어, 위글족어, 몽골어 등과 함께 중앙정부에서 공식 인정하는 중국의 5대 언어다. 조선족자치구에서 조선어는 제1언어다. 비록 줄고는 있지만 자치주 정부의 조선족 간부는 여전히 43%에 이른다.

이처럼 중국인이자 한민족인 조선족들의 자치사회는 요즘 해체의 위기에 놓여있다. 시장경제의 확산에 따라 청년들이 돈을 좇아 떼지어 도시로 떠난 결과다.

이에 조선족 지식인들은 “앞으로 이 땅을 민족의 터전으로 유지하려면 조선족이 여기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한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진정한 협력방안을 아쉬워했다.

김종국(59) 연변사회과학원장은 “열쇠는 이 지역의 경제발전”이라며 “경제가 자립하면 문화는 자연히 뒤따라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현재 연변지역 조선족의 이탈은 이들을 고용할 만한 경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연변지역의 한국인 투자사업은 400여개. 그러나 대부분이 자본금 1억원 미만의 음식점 등 소규모 업체여서 지역경제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 한 조선족 학자는 “남북통일 등을 감안할 때 이 지역을 단순한 경제논리로만 판단해서는 안된다”며 “한국 정부에서 과감한 세제 혜택 등 기업 진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인과 접촉이 잦아질수록 되레 실망감과 이질감만 커지는 현실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조성일(64)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장은 “한국인들이 돈 많은 체하고, 가난한 조선족 동포들을 업신여기는 자세를 하루 빨리 버려달라”고 호소했다.

베이징·연길/글·사진 김종태 기자jt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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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한국형 '돈 열병'…공동체의식 붕괴위기
“한국과 중국이 축구경기를 하면 어딜 응원합니까?”

한국인이 중국 조선족에게 자주 던지는 질문의 하나다. 대부분의 경우 “당연히 중국”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한국인들에겐 섭섭한 답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중국 국적의 조선족들에겐 오히려 이 질문이 `넌센스'일 수 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중국 조선족만큼 민족정신의 뿌리가 분명한 이들도 없기 때문이다.

심양시의 조선족마을인 `만융촌' 들머리 담벼락엔 큼지막한 글씨로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열심히 배우고 부지런히 일하며 떳떳하게 살아갑시다'라고 쓰여 있다. 만융촌에서 열린 `3·8부녀절'(세계여성의 날) 행사에 참가한 조선족들은 한복 차림에 김치·인절미 등을 먹고, 아리랑 가락에 맞춰 춤을 추면서 하루를 보냈다.

길림성 주도인 연길시 거리에 즐비한 간판에도 하나같이 한글 상호가 한자 상호를 지긋이 누르고 있다. 이를 두고 조선족 택시기사는 “중국어보다 조선글을 더 중시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조선어'는 한어, 장족어, 위글족어, 몽골어 등과 함께 중앙정부에서 공식 인정하는 중국의 5대 언어다. 조선족자치구에서 조선어는 제1언어다. 비록 줄고는 있지만 자치주 정부의 조선족 간부는 여전히 43%에 이른다.

이처럼 중국인이자 한민족인 조선족들의 자치사회는 요즘 해체의 위기에 놓여있다. 시장경제의 확산에 따라 청년들이 돈을 좇아 떼지어 도시로 떠난 결과다.

이에 조선족 지식인들은 “앞으로 이 땅을 민족의 터전으로 유지하려면 조선족이 여기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한 한국과 중국 조선족의 진정한 협력방안을 아쉬워했다.

김종국(59) 연변사회과학원장은 “열쇠는 이 지역의 경제발전”이라며 “경제가 자립하면 문화는 자연히 뒤따라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현재 연변지역 조선족의 이탈은 이들을 고용할 만한 경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연변지역의 한국인 투자사업은 400여개. 그러나 대부분이 자본금 1억원 미만의 음식점 등 소규모 업체여서 지역경제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한다. 한 조선족 학자는 “남북통일 등을 감안할 때 이 지역을 단순한 경제논리로만 판단해서는 안된다”며 “한국 정부에서 과감한 세제 혜택 등 기업 진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인과 접촉이 잦아질수록 되레 실망감과 이질감만 커지는 현실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조성일(64)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장은 “한국인들이 돈 많은 체하고, 가난한 조선족 동포들을 업신여기는 자세를 하루 빨리 버려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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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조선족-한국인 갈등 이해·애정으로 메워야
“어느 사회나 못된 사람과 좋은 사람이 있게 마련 아닌가요?” 한국인에 대한 평을 묻는 질문에 한 중국 조선족 동포는 이렇게 대답했다. 실제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 `못된 짓'을 하는 한국인 못지않게 그들과 동포애를 나누는 한국인도 많다. 이들의 노력이야말로 날로 벌어져가는 한국인과 조선족의 마음을 따듯하게 이어주는 가교 구실을 한다.

중국 길림성 연길시에 있는 연변대학 복지병원. 지난 94년 한국의 사단법인 대륙복지회와 연변대학의 합작으로 설립된 이 병원의 한국인 직원들은 이곳 사람들에게 `천사들'로 통한다.

이 병원은 중국 병원에서는 드문 사회재활과를 두고 빈민들의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빈민 686명에게 모두 7만5000여위안(한화 980여만원)을 지원했다. 극빈환자들의 자녀들에겐 장학금을 지원하고 매주 조선족 마을을 상대로 무료진료봉사활동도 펼친다.

지난 97년 술에 취해 길바닥에 쓰러져 방치돼 있던 화룡시 출신 40대 조선족 남자를 3개월만에 완치해 귀가시켜, 고향마을 사람들로부터 절절한 마음의 사례를 받기도 했다.

또 이 병원은 심장병에 걸려 사그라들던 이 지역 어린이 52명에게 한국의 대학병원, 사회복지단체 등과 연결시켜 새 삶을 찾아줬다.

이 병원의 정옥동(65) 이사장은 “90년대 초 이 곳에 왔다가 너무나 뒤떨어진 의료상황에서 고통받는 환자들을 보고 투자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 병원에서 일하는 한국인 직원 25명은 한국에서의 안정된 생활을 뿌리치고 온 자원봉사자들이다.

연길시에서 백화점 사업을 하는 한국인 정영채(67)씨도 조선족과 한국인들의 간극을 메우고 있는 대표적 사업가다.

그는 요즘 중국에 온 한국인들로부터 “경호원을 얼마나 두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정씨는 그럴 때마다 “떳떳하게 사업을 하면 그런 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대답해준다.

주변의 조선족들이나 한국인들은 “정씨의 백화점 입점 점포주 150여명 가운데 120여명이 조선족이지만, 지금까지 조선족 점포주들로부터 불평 한번 나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자나깨나 어떻게 하면 점포들이 잘 될까만을 생각한 것이, 조선족이든 한국인이든 차별하지 않게 된 게 비결인 듯하다”며 웃었다. 사업을 위해서도 조선족들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긴요하다는 설명이다. 실제 그는 다른 한국기업들의 추세와는 달리 여전히 직원 대부분을 조선족 동포들로 충원하고 있다.

“사업 초기 주 정부의 조선족 간부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건물 공사중지 위기를 넘겼습니다. 이국땅에서 그 때 절감했던 동포애가 그 뒤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정씨는 “한국인들도 한국 땅에 온 조선족들에 대해 애정을 갖는다면,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며 “조선족 동포와 한국인이 한핏줄임을 절감하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끝> 

연길/글·사진 김종태 기자jt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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