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9

17 "개인적인 질병은 없다" 건강과 '정의' 분석하는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



너부리기자의 단독없는 외길인생 :: 
[인터뷰]"개인적인 질병은 없다" 건강과 '정의' 분석하는 사회역학자 김승섭 교수
2017.09.18 19:28


세월호, 쌍용자동차, 소방공무원, 전공의, 동성애자, 트렌스젠더, 재소자···.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부교수(38)가 지금까지 연구했던 사람들이다. 김 교수는 이들을 인터뷰하고 그 결과를 데이터로 만들어, 그들이 ‘사회적으로 더 아프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김 교수는 사회역학자다. ‘원인의 원인’을 찾는다. 어떤 환자가 ‘스트레스’로 인해 병에 걸렸다면, 그 스트레스는 어디에서 왔는지 되짚어가는 식이다. 모든 질병은, 아픔은 개인적인 문제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더 그렇다. 김 교수는 그간의 연구를 통해 한국사회의 약자들이 더 아픈 것은 그들의 탓이 아니었음을 증명해냈다.

김 교수의 활동은 연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동성결혼, 트렌스젠더 병역면제 소송 등 다양한 재판에서는 전문가로서 법정증언을 하거나 소견서를 제출했다. 김 교수의 연구와 활동은 이런 약자의 싸움에서 큰 힘이자 무기가 된다.


김승섭 고려대 보건대학대 교수가 지난 14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연구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김 교수는 2005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사회의사’의 길을 선택했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석사를, 미국 하버드대에서 노동자 건강에 대한 직업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강사로 일했으며 2013년 고려대에 자리를 잡았다.

연구와 강의만 해도 시간이 모자라지만 소통에도 열심이다. 페이스북에 부지런히 의견을 올리고 지난 13일에는 신문과 잡지 등에 기고한 글을 모아 <아픔이 길이 되려면>(동아시아)이라는 책을 펴냈다. 사회역학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쉽게 소개하는 입문서이자 한국사회의 아픈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소중한 기록이다. 지난 14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나 ‘사회적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언론에 기고도 많이 하고, 페이스북에서도 활발히 의견을 올리는데, 책까지 냈다. 계기가 있었나.


“여기저기 기고를 시작할 때부터 책으로 엮을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왜 그런 글을 쓰기 시작했냐’에 대한 답변부터 드려야겠다. 세월호나 쌍용차 해고자 글은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싶어서 썼다. 다른 연구에 대한 글은, 제 분야에서 소중한 얘기들을, 저는 알고 있는데 대중들은 알지 못하는 얘기들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 가장 컸다. 또 어렸을 때 서점에서 아르바이트 한 경험도 있어서 그런지 내 책을 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임상의사가 되지 않고, 학자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이유가 이번 책에 나온다. 후배들에게 편지 형식으로 길게 쓴 글이다. 요약하면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면서 진보적인 삶을 실천할 수 있는 길’이다. 지금까지 한 연구들이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보면 될까. 후회는 없나


“그 글이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2011년, 미국에서 막 귀국해 비정규직 강사로 일할 때 쓴 글이다. 지금 보니 그때의 글이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더라. ‘넉넉하지 못한 집안의 장남’이 의대에 갔으면 많은 기대를 하셨겠지만 그래도 어머님은 항상 응원해 주셨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돈이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그러니 결혼하자마자 유학도 가고 그랬겠지.”


-그간의 모든 연구목록을 보면 한국의 모든 사회적 약자들을 다 만나려고 하는거 같다.


“가끔 오해를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다뤄보고 싶다. 가장 아픈 사람을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솔직히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은데 그런 생각으로 접근하지는 않는다. 어느 순간 내게 다가온 질문에 나름대로 응답하려 했고, 응답할 수 있었던 연구만 했다. 사실 세월호 특조위에서 용역연구 발주 없었으면 세월호 싸움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소방관 연구도 그때 마침 국가인권위원회 연구가 있었다.
저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논문을 쓰고 말하는 사람이라 그런 기회가 없으면 ‘링’에 올라갈 수 없다. 제가 답하고 싶은 질문 중에서 답할 수 있었던 것만 했다. 기본적으로 약자에 관한 연구를 하고 싶고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그 욕심과 실제로 다루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가능하면 내 글이 칼럼보다는 학자로서의 글쓰기로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연구했던 것을 기반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연구하지 못한 것은 말을 못하고. 그 다음에 무엇을 하겠다고 약속이나 다짐도 못 하겠다.”




-‘개인들이 사회적으로 연결되어야 건강하다’는 말이 책에 나온다. 그러나 가족이나 회사가 개인들 더 힘들게 하기도 한다. 또 한국은 1인가구가 가장 많은 사회가 됐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사회적 관계망은 위기상황에서 나를 지지해주고, 지원해주고, 위안이 되고, 자원이 되는데, 어떤 관계망은 폭력이 발생하고 지나친 간섭이 발생한다. 전자를 늘여나가고 후자를 줄여나가야 한다. 사회적 지지를 제공할 수 있는 관계망을 늘려가는 것이 핵심이다. 1인가구 문제는 매우 조심해야 한다. 하나의 사안을 긍정-부정, 찬성-반대로 나누는 것은 위험하다. 1인가구로 살 수 밖에 없는 환경이 있고, 장점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보다 더 잘 질문할 것인가, 어떻게 더 도움이 되도록 질문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예를 하나 말씀드리겠다. ‘동성애 전환치료’란 것이 있다. 전문가들은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기에 치료가 필요 없고, 전환치료라고 하는 것은 현재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커뮤니티 자체가 극우보수기독교 기반인 사람은 동성애자로 사는 게 너무나 괴로울 수 있다. 동성애를 부정하는 커뮤니티를 바꾸어낼 수 없을 때, 그 동성애자가 어떻게 해야 덜 상처받고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답을 해야 한다. 삶은 복잡하다. 구체적인 아이디어와 토론이 필요하다.”


-“매일 생명을 위협받는 노동자에게 ‘담배를 피우면 10년 뒤 폐암에 걸릴 수 있으니 금연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힘들다”고 말했다.


“모든 인간의 삶과 행동과 의지와 판단은 다 맥락이 있고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 오늘 죽을 수도 있는 환경에서 안전장치도 없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흡연하면 10~15년 뒤에 폐암에 걸린다고, 담배피지 말라’고 얘기할 수 있나. 먹히지도 않을 뿐더러 공동체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일 수도 있다. 개인에게 책임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책임에 대해서는 너무 무심하다는 것이다. 흡연 발생의 맥락을 봐야 한다.
예를 들어 콜센터에서 여성직원 뽑을 때는 흡연하는 사람을 더 선호한다. 이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힘들고 그러니 이를 분출해야 하는데 중독으로 인한 효과이기는 하지만 담배만큼 짧고 효과적인 것이 없다. 커피를 먹으면 화장실을 가야 하니까. 그래서 여성직원 많은 콜센터는 흡연장도 가까이 있다. 이러면 사업주도 이득이고 담배 판매자도 이득이다. 피해를 입는 건 여성의 몸 뿐이다. 이런 맥락 파악 안하고 ‘너는 흡연한다’고만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폭력적인가. 원인의 원인, 원인의 배경이 되는 조직과 공동체의 문제를 개선하지 않고 개개인만 비난하는 순간 해결되는 일은 없다.”


-‘근거의 불충분함이 변명이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생리대와 ‘살충제 계란’ 논란에도 적용이 될 것 같다.


“사전주의의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원인과 결과의 관련이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어도 건강 또는 환경에 위해를 줄 것으로 판단될 때 사전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원칙)이란 것이 있다. 새로운 상품이 나오고 거기서 화학적 물질이나 유해인자가 있을 때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새로 만들어진 화학물질은 유해성에 대한 충분한 근거가 없는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하는 문제다. 생리대 문제에 정확하게 적용될지는 모르겠지만, 일회용 생리대로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무해함을 증명해야 한다. 즉 판매자가 무해하다는 것을 증명할 때만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험을 과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규제를 늦추는 것도 문제다.”


-학자로서 항상 데이터 수집이 먼저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위험에 먼저 대처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나. ‘사전주의의 원칙’과도 상충되는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이 무대에 올라갈 때 그런 방식으로 밖에 못 올라간다는 것과 이 사회가 그런식으로만 규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는 정치인이나 행정가가 아니다. 연구를 하는 사람이고 데이터 기반해서 말하는 사람이니까 데이터가 없을 때는 말을 삼가는 것이 맞다. 그러나 내가 말을 못하는 지점이라고 해서 공동체가 판단해서 규제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기존의 데이터와 근거들을 모아서 보다 합리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은 있어야겠지만 그렇다고 내내 미룰 수는 없다.”


-질병에서 개인과 사회의 책임을 구분할 수 있을까.


“명확히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질병도 100% 개인적이거나 환경적이지 않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는 개인적인 문제에만 촛점을 맞춘다. 예를 들어 지난 20년간 자살률은 3배 증가했다. 한국사회에서 뭔가 있었던 것이다, 개인의 유전자가 변하지는 않았을테니. 그렇다면 이 원인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분석과 대책이 필요하다. 이러한 맥락 없이 개개인에게만 촛점을 맞추면, 원인의 원인을 자꾸 무시함으로써 가장 효과적인 처방을 놓칠 수 있다.”


-책에 나오는 미국 로세토 마을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서로를 지켜주는 공동체가 개인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데, 세월호나 쌍용차, 성소수자 문제 등을 보면 한국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국사회를 총체적으로 말하는 것을 가능한 피하려고 한다. 구체적으로 사안마다 얘기해야 한다. 세월호를 보면 여러면에서 후진적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후진적이다. 한국이 안 좋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우리의 좌절은 구체적이어야 하고, 희망도 구체적이어야 한다.
세월호는 모두의 책임이 아니다. 나는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을 싫어하는데, 법적인 책임은 끝까지 따져 묻고 윤리적 반성은 같이 하면 된다. ‘우리 모두 죄인이다’라는 식의 태도는 윤리적인 메타포는 되겠지만 법적인 처벌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말들을 쓰고 싶지는 않다. 법적인 책임이 확실히 처리될 때 우리가 직업인으로서, 어른으로서 반성할수는 있겠지만.”


김 교수는 “세상이 얼마나 바뀔까 싶지만, 그럼에도 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고 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건강 연구를 하면서 그는 ‘해고노동자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됐다고 했다. 거창한 포부가 아니라 “해고노동자들을 너무 초라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힘 닿는 만큼 하는 것이지, 그 이상으로 내 글이 힘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루쉰이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절망이 그런 것처럼’이라고 말했듯이, 그런 마음으로 그냥 걸어가는 수 밖에 없다.”


-앞으로 또 연구해야 할 분야는?


“가장 빨리 하고 싶은 것은 노동문제다. 특수고용. 비정규직, 여성, 서비스노동, 하청. 그분들의 건강문제를 연구해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가 너무 심하다. 미국에서 산업적 보건지표 좋아질 때 그 통계 보고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노동자들에게 위험을 넘기고, 그러면서 지표는 좋아졌다. 그런 면들이 한국에도 있다. 그동안 해왔던 방식으로 연구를 하고 근거를 마련해서 실제로 조금 더 도움이 되는 길 찾아야 한다. 마음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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