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9

17 서경식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일본 퇴행의 책임, 일본 리버럴에 있다 

등록 :2017-08-31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퇴락한 반동기의 사상적 풍경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나무연필·1만6000원

“와다 선생의 방향 설정은 잘못된 게 아닌가, 라는 것이 나의 논점이다.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그는 선한 사람이다’라는 식의 반격은 논점에서 벗어난 것이고 (…) 악의적인 바꿔치기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는 한국과 일본 두 사회에서 모두 ‘타자’다. 그는 한국에서는 재일동포라는 국외자로, 일본에서는 재일조선인이라는 소수자로 살아왔다. 한국에서는 두 형이 간첩단 조작사건으로 참혹한 곤경을 겪고, 일본에서는 차별과 배척을 받았다. 그의 가족사는 두 사회의 주류와 다수자들이 볼 수 없는, 아니 보지 않으려는 불편한 진실을 대면케 한다. 

그가 겪는 신산한 삶은 전작인 <나의 서양미술 순례>에서 보여준 풍부한 인문학적, 문학적, 역사적 소양으로 승화됐다.

하지만 그는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에서 칼을 꺼낸다. 한일관계와 일본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의 양심을 대변한다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에 대한 그의 직설적 비판이 대표적이다. 그가 이 책에서 건드리는 불편한 진실의 대상은 일본의 진보 진영이다. 그는 아베 신조 정권으로 상징되는 최근 일본의 퇴행과 반동의 책임을 우리에게는 진보 진영으로 인식되는 ‘리버럴파’에 묻는다.


그에 따르면 일본 사회는 1990년대 이후 긴 ‘반동의 시대’로 들어갔다. 
1990년대 중반까지의 ‘사회당·총평(일본노동조합평의회)’계 그룹, 신문을 예로 든다면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도쿄신문>과 그 독자층으로 구성된 일본의 리버럴파는 일본 안팎의 조류에 붕괴했다. 

사회주의권 붕괴와 동서 대립 구도의 종언, 신자유주의의 도래 앞에 투항한 것이다. 한국 등 아시아 국가에서는 권위주의 체제가 동요하며 민주화가 진행된 결과, ‘위안부’ 문제 등 일본의 봉인된 전쟁범죄 문제가 표면에 떠올랐다. 하지만 당사국 일본은 이 벡터가 역방향으로 향했다.

진보 세력을 결집하는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에, ‘탈이데올로기 시대’라는 천박한 구호와 함께 스스로 자기붕괴의 길을 택했다. 진보적 입장을 대변하던 사회당은 보수 우파인 자민당과의 연립을 받아들였다가 결국 소멸로 갔다. 국가주의에 저항하며 일장기 히노마루와 국가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하던 교원노조는 이를 용인했다.


서경식은 위안부 문제를 제국 운영의 부수적 피해라고 주장하는 ‘박유하 현상’에 빗대 이를 설명한다. “박유하의 언설이 일본 리버럴파의 숨겨진 욕구와 정확하게 합치하기 때문이다 (…) 우파와 일선을 긋는 리버럴파 다수는 이성적인 민주주의자를 자임하는 명예 감정과 옛 종주국 국민으로서의 국민적 특권 모두를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그의 이런 비판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와다 교수의 현실주의적 선회로 보면 이해된다. 와다 교수는 2015년 12월28일의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를 백지 철회하도록 하는 것은 ‘일의 경과로 보건대 어렵다’고 말한다. 새로운 해결안을 내놓게 할 힘이 일본 국내에는 없기 때문에 그 한일 합의가 개조·개선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책은 그가 최근에 쓴 일본에 관한 글을 골라 모은 것이다. 위안부 문제를 놓고 와다 교수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두 편의 글, 그가 소수자로 일본 사회를 바라보는 애국주의, 개헌, 안보법제 문제 등을 해부한다.

그에게 일본 리버럴파는 두 나라와 그 관계의 미래를 위해 버리거나 매도할 수 없는, 아니 끝까지 같이 가야 하는 세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경식의 불편한 진실 뒤집어내기는 결코 해코지가 아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09170.html#csidx64a2df855794e9e8c7a9296af6b5c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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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서경식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디아스포라 기행>,<[큰글자도서] 내 서재 속 고전>,<나의 일본미술 순례 1> … 총 50종 (모두보기)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 불문과 재학 중이던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형 서승, 서준식이 구속되며 두 형의 구명 활동과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때의 체험과 사유는 이후 저술과 강연, 사회운동으로 이어졌다.
『소년의 눈물』로 1995년 일본에세이스트클럽상,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2000년 마르코폴로상을 받았고, 2012년에는 민주주의와 소수자 인권 신장에 기여한 공로로 후광 김대중학술상을 수상했다.
2000년부터 도쿄게이자이대학에서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인권론과 예술론을 강의하고 도서관장을 역임했으며 2021년 정년퇴직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동료와 후학 들이 그의 퇴임을 기념하는 문집과 대담집인 『서경식 다시 읽기 1』 『서경식 다시 읽기 2』를 펴냈다. 2023년 12월 18일 별세했다.접기


옮긴이: 한승동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우리는 왜 시국선언을 하는가>,<서경식 다시 읽기>,<사회를 말하는 사회> … 총 63종 (모두보기)
서강대 사학과를 다녔다. 《한겨레신문》 창간멤버로 참여해 도쿄 특파원, 국제부장과 문화부 선임기자를 거쳐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저서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미국·일본의 패권 게임과 우리의 생존법》, 《지금 동아시아를 읽는다: 보수의 시대를 가로지르는 생각》을 집필했다. 옮긴 책으로는 《우익에 눈먼 미국》, 《시대를 건너는 법》, 《디아스포라의 눈》,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오키나와》, 《보수의 공모자들》, 《내 서재 속 고전》, 《재일조선인》,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종전의 설계자들》, 《책임에 대하여》, 《완전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 《정신과 물질》, 《제국의 브로커들》 등이 있다.
현재 출판기획 및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며 〈시민언론 민들레〉에서 국제분야 담당 에디터를 맡고 있다. ‘60+기후행동’에도 운영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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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우리는 지금의 ‘일본’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날카로운 소수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일본의 풍경/

근대의 시발점부터 지금까지 ‘일본’은 우리에게 어렵고 곤란한 질문으로 남아 있다. ‘위안부’ 문제에서 알 수 있듯 식민지배라는 무거운 과거사는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숙제이며, 재특회(在特会) 등의 세력이 거리에서 혐한론(嫌韓論)을 외치는 데서 알 수 있듯 일본 사회는 점점 극우 보수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에서 서경식은 바로 그러한 ‘일본’의 과거와 현재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감성 풍부한 에세이스트 서경식과는 또 다른, 날카로운 ‘전투적 논객’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말이다.


서경식은 재일조선인으로 평생을 일본에서 살아왔기에, 자신이 그 내부에 있으면서 동시에 ‘일본’이라는 대상을 끊임없이 사유할 수밖에 없는 문제적 존재다. 이 책은 그러한 그가 오래전 과거처럼 여겨지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은 식민주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아시아에서 벌인 전쟁에서 패한 이후 일본이 어떤 흐름을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사상적 반동기에 들어서게 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자민족 중심주의를 넘어서 ‘보편’과 ‘연대’와 ‘평화’의 가치를 찾아갈 수 있을지를 탐색해본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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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사실’을 외면하고 등 돌리는 일본의 현재

서경식의 진단에 의하면, 일본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사상적 반동기에 들어선다. 이는 단지 우파의 탓이라기보다는 일본 국민 다수에 침잠해 있는 ‘국민주의’적 심성을 우파들이 이용한 것이다. 여기서의 ‘국민주의’란, 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파고드는 것은 피하고 싶지만 동시에 자신을 ‘민주주의자’로서 도덕적 우위에 올려놓고 싶은 이율배반적이면서도 분열된 소망을 가리킨다. 즉, 과거의 잘못을 회피하고 그것을 지나간 일로 돌리면서도 양식 있고 선한 위치에 서고 싶은 심성이 사회적으로 발현되었고, 일본 정계의 다수파인 우파들이 이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2015년 말의 한일 위안부 합의는 바로 그러한 모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다면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해결해야만 하는 과거란 과연 무엇일가.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일제강점의 역사가 될 것이고, 중국과 대만 등 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게는 침략과 전쟁의 역사가 될 것이다. 40여 년간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온 사람의 피로감이랄까. 이 뼈아픈 과거에 대한 서경식의 묘사에서는 다소 지친 기색도 엿보인다. 일본인으로서 전쟁의 열기가 타오르던 1937년의 일본을 해부하듯 묘사해나간 헨미 요(辺見庸)의 『1★9★3★7』을 소개하면서 서경식은 이렇게 말한다. ”이 작품은 전쟁, 학살, 차별 등에 대한 사실 인식을 독자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사실’이라면 그것은 다시 주장할 것도 없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난징 대학살’이나 ‘위안부’라는 사실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것일까. 적어도 어느 세대 이상의 사람들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사실’의 유무가 아니라 명명백백한 사실 앞에 서 있으면서 거기에 등 돌리고 지나칠 수 있는 심성이다.“

물론 일본에도 한때 등 돌리고 지나치지 않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던 시기가 있었다. 전쟁 시기의 와타나베 가즈오로부터 전후의 가토 슈이치, 오에 겐자부로로 이어지는 일본 휴머니즘의 가느다란 계보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에는 이들이 비록 소수파일지언정 일본의 과오를 직시하면서 성찰하는 작업이 이어졌다. 대외 팽창과 침략을 가능하게 했던 제도인 천황제에 대해서도, 시대에 뒤떨어진 천황제는 결국 사라질 것이라는 말들이 회자되곤 하던 시절이다. 서경식 또한 일본 사회에서 이들의 지적 세례를 받으며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성장한 지식인이다. 그러하기에 그에게 일본의 반동기는 더더욱 안타까운 현실이다.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반동기에 들어선 일본

그렇다면 이 반동기는 어떻게 태동된 것일까. 그 당시에 처음 존재를 드러냈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상황을 돌이켜보자. 넓은 역사적인 시야로 본다면, ‘위안부’ 문제는 세계적인 동서 냉전 구도의 종언과 함께 떠오른 사태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에서는 권위주의 체제가 동요하면서 민주화가 진행된 결과, 피해자들이 이름을 밝히며 나설 수 있게 되었고 지원 운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전까지 봉인돼 있던 일본의 전쟁범죄 문제가 표면에 떠오른 것이다.

반면에 당사국인 일본은 이 벡터가 역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동서 대립의 종언이 ‘탈이데올로기 시대’라는 천박한 구호와 함께 진보적 리버럴파의 자기 해체의 방향으로 진행된다. 새로이 진보 세력을 결집하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스스로 자기 붕괴의 길을 택한 것이다. 진보적 입장을 대변하던 사회당은 보수·우파인 자민당과의 연립을 받아들인다. 국가주의에 저항하며 히노마루(일장기) 게양과 기미가요 제창을 거부해왔던 일본교원노조는 방침을 전환해 이를 용인한다. 이때 상투적으로 쓰인 말은 “시대는 변했다. 이젠 이데올로기 시대가 아니다”이다. 진보 세력이 스스로 이념과 이상을 내버리자 우파 세력은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성채를 강화해나갔다.

이에 서경식이 냉철하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대상은 바로 일본의 ‘리버럴파’다. “일본의 국수주의자나 우파를 비판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은 일본 사회의 ‘리버럴’한 언설을 깊은 의미까지 파고들어 비판하는 일이다. (……) 내 생각으로는, 많은 경우 한국인들의 일본론은 이 지점에 약점이 있는 듯하다.” 서경식이 말하는 ‘리버럴파’는 1990년대 중반까지의 ‘사회당·총평(總評,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계 그룹, 신문을 예로 든다면 《아사히신문》 《마이니치신문》 《도쿄신문》과 그 독자층 정도다. 일본 ‘리버럴파 지식인’은 예전의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호칭과 거의 겹친다. 이들은 확신범적 국가주의자는 아니고 아시아 민족들과는 대화를 통한 평화적 관계 구축을 지향하고 있지만, 식민지 책임 문제에 대한 인식은 결여돼 있거나 부족하다. 서경식은 이들이 취하는 애매한 태도가 관성적으로 고착되면서 일본의 우경화를 막을 자성의 목소리가 사라졌다고 보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명한 2~3장의 두 글이 일본의 대표적인 리버럴파 지식인인 ‘와다 하루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것은 서경식의 문제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서경식은 1980년대 초의 어느 날, 와다 하루키와 도쿄의 긴자 거리에서 마주친다. 어디 가시는지 묻자 답변은 이러했다. “스키야바시 공원에 가서 시위를 할 겁니다.” 당시는 5·18민주화운동 뒤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군사재판이 진행 중이었다. 현해탄 건너 타국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진 일본인들이 공원에 모여 이런 구호를 외쳤다. “김대중을 죽이지 마라!” 와다 하루키 역시 번화한 긴자 거리를 지나 바로 그 자리에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27년이 지난 지금, 서경식은 바로 그 와다 하루키에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면서 그의 입장을 묻고 있다. 이들은 극심한 반동기를 경유하면서 결국 다른 입장으로 조우하게 된 셈이다.

서경식은 이념과 이상이라는 원칙을 지키면서 민주화를 쟁취한 한국과,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나둘 원칙을 포기하면서 보수파 및 관료들과 타협해간 일본의 진보 세력을 대비시킨다. 그리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 선언한 2015년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청산을 둘러싼 한일 간의 엇박자와 갈등 심화도 일본 리버럴파의 퇴행적 변절이 그 주요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일본 리버럴파가 양국 간 갈등을 주도적으로 조성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이들이 일본의 극우 반동적 퇴락을 저지하고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한 민중 연대를 진작할 의무를 저버렸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일본이라는 악몽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서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언론을 통해 종종 보도되고 있지만 총체적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웠던 일본의 현재에 대한 서경식의 묘사를 살펴보자. 즉, 이 반동기의 실제 모습이 어떤지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2012년 일본의 총선거에서 자민당이 대승을 거두었을 때, 많은 시민들이 도쿄의 아키하바라 역 앞에서 연설하던 아베 신조 총재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선거에서의 승리를 자축하며 반중(反中)·혐한·재일 외국인 배척 구호를 외쳤다. 그야말로 1930년대의 독일이나 이탈리아를 보는 듯한 소름 끼치는 광경이 연출된 셈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일본 사회 곳곳에서 보이고 있다. 도쿄의 도심에서는 “조선인을 죽여라!” 같은 헤이트 스피치 구호를 외치는 이들이 재특회 같은 모임을 중심으로 집회를 여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심지어 조선학교를 습격하기까지 했다. 한 여성 만화가는 난민이나 재일 외국인이 일본인의 안전을 위협하고 속임수로 복지를 누리면서 안락하게 살고 있다며 증오를 부채질하는 만화를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했다.

일본 정계의 상황도 살펴보자. 2015년 9월에는 일본 참의원 본회의에서 안보법제 법안이 통과되었다. 이 법안은 과거 침략 전쟁에 대한 반성의 뜻으로 전쟁을 포기하고 평화주의를 지향하는 평화헌법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면서,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고 일본이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었다. 이어서 아베 정권은 헌법 개정 의도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교전권을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는 헌법 9조에 대한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권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책임은 묻지도 해결하지도 않은 채, 자신들의 원전 기술이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며 전 세계를 향해 거짓말을 일삼고 있다. 이것이 과거를 잊은 채 ‘자국민 중심주의’에 빠져 있는 반동기 일본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악몽에서 벗어날 출구는 어디에 있는 걸까? 서경식은 이라크전쟁이 벌어지기 직전 에드워드 사이드가 한 말을 소개한다. 사이드가 죽기 7개월 전에 인터뷰에서 했던, 일종의 유언이라 할 만한 말이다. “지금 현재 제국주의자들을 이토록 제멋대로 날뛰게 만든 원인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사이드는 이렇게 답한다. “강력하게 조직되고, 많은 사람들을 확실하게 동원할 수 있는 저항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 그와 함께 지식계급 전반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 중요한 목표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중요한 목표란 에메 세제르(Aime-Fernand Cesaire)가 말했듯이 자유와 해방과 계몽을 추구하는 모든 민족들이 모이는 승리의 모임입니다.”

서경식은 희미해 보이지만 ‘보편적 가치’를 향한 가능성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찾고 있다. 강대국들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왜곡된 보편주의를 정의인 양 펼쳐가는 세상에서 이를 넘어선 보편주의가 과연 가능할까? 서경식은 그 좁디좁은 출구를 향한 꿈을 포기하지 않으며 여전히 나아가고 있다.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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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민들레  2017-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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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선생님의 고민 깊이가 더해졌다. 나 또한 일본에 대한 생각도 고민이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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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터라이프   201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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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쓴 저자인 서경식 교수는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로 와세다 대학에서 수학한 후, 현재 도쿄게이자이 대학 현대헌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에 있습니다. 지난 2006년에는 우리나라 성공회대학에 2년간 연구교수로 있으면서 한국과도 적잖은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지식인으로 특히 저에게는 지난 세종대 박유하 교수가 출판한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비판과 일본내에서 양심적 지식인으로 알려진 와다 하루키 교수와 지난 2017년 박근혜 정부와 아베 정부 양측의 졸속 합의된 ‘위안부 합의’ 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지면을 통해 논쟁한 것으로 기억납니다. 이 두 가지와 관련된 부분도 이 책의 2장과 3장에 자세희 소개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다 일독하고 나서 정말 비통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재일한국인(한국인이라는 디아스포라적인 입장에서) 으로 그동안 일본에서 60년간 삶을 살아오면서 서경식 교수가 체험했을 인종적인 차별과 전후 및 일본 제국의 식민지주의와 관련된 대다수 일본인들의 예의 ‘침묵’을 고스란히 느끼며 상처받았을 개인의 양심이자 그의 학자적 양심이 어떠했을지 추측이 어려울 정도입니다. 현재 일본에서 압도적인 주류가 되어버린 역사수정주의자들과 한국, 북한, 중국 및 다른 아시아인들에 대해 전후 역사 문제 및 식민지 지배에 대한 그 애매한 입장과 더불어 그들에 대한 적극적인 적대적 발언과 혐오는 서경식 교수의 표현대로 겉으로는 예의바르고 의식있어 보이는 얼굴에 이 문제 만큼은 적극적으로 ‘애매함’을 내세우며 내면에 침잠해 있는 일본인들의 침략주의적 근성입니다. 이를테면 한반도에 유사 사태가 벌어졌을 때 적극적으로 미군과 함께 자위대를 파견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헌법 개정과 집단 자위권 확정과 같은 내외적인 준비를 하고 있는 정치권과 이것에 대해 가타부타 말이 없거나 혹은 내심 동조하는 일본인들의 의식 구조가 이를 뒷받침한다고 느꼈습니다.

저자인 서교수는 이 글의 도입에서 ‘일본 극우 세력과 헌법 개정주의자들 및 역사수정주의자들’에 대한 본질은 한국에서도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고 비판 또한 활발한 편인데, 이들 이면에 아무런 의사 표명없이 ‘애매함’으로 침묵하고 있는 일본 ‘리버럴들’을 서슴없이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 리버럴들도 일본 국가 자체에 대한 국가주의 및 애국주의적인 입장에 동감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이 글을 읽은 후에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이런 일본의 국내 상황이 한국의 비판 세력과 연대나 동조도 어렵게 되었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반식민주의 세력과의 연대도 무너져 국제 무대에서 일본 정부가 매우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입장인 “종군 위안부와 관련된 당시 일본 정부의 연관설을 부정하고 이는 국가가 저지른 전쟁 범죄가 아니며, 법적으로도 일본이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방종하게 만드는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저자 역시 일본이 지난 포츠담 선언으로 일본이 조선과 대만 등의 식민지를 포기하겠다는 것을 수락했다고 여기는 것과 전후 처리 과정에서 당시 워싱턴과 맥아더가 일왕제에 대한 존속을 결의하고 그 직접적인 전쟁 책임자를 단죄하지 못한 애초의 ‘목에 걸린 생선 가시’ 지금의 동아시아에서 역사 갈등과 전후 책임 문제의 근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것은 저와 같은 한국인에게는 너무나 입이 아픈 주제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인들과 일본 언론은 바로 이런 일본 정부의 식민주의적인 입장과 역사수정주의 및 관련된 정부의 입장에 맞서 싸워야만 했으나 그러지 않았고 이렇게 된 배경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결국 일본인들의 그 ‘애매한 태도’에 본질이 있다고 서교수는 밝힙니다. 사실 2차대전 당시에 일본인들이 자국이 미국과 전쟁을 하게 된 것을 알고 일본 제국 시민으로서 전쟁에 참여해 그것에 기반한 이득을 쟁취하겠다는 사적인 이기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분명 있었고 그런 분위기를 이해하는 많은 일본인들이 있었음에도 전후 처리 과정에서 자기들은 ‘그때는 정말 우리는 그런줄은 몰랐다’고 발뺌하는 것은 정말 유치한 장난에 지나지 않다고 봐야겠죠. 이것은 불행하지만 일관되게도 일왕을 단죄하지 못한 혹은 일왕제에 대한 존체에 따른 제반 이익으로 미국 정부가 그런식으로 처리한 것이 일차적인 원인일 것 입니다.

결국 동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각국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명백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결여된 채 종전 처리가 졸속으로 이뤄져 이런 결과로 위안부와 관련된 박유하 교수의 그런 글이 아무리 한국에서 출간되어 이슈가 되고 또 일본에서는 침묵하는 다수의 일본인들과 그것을 기반으로 더욱 날뛰는 일본의 우익 세력, 역사수정주의자들, 헌법 개헌론자들의 판세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죠. 애초에 저는 이러한 일본 국내의 현상에 대해 많은 부분이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못하는 교육 기관의 역사 교육 문제로 여기고 있었는데요. 서교수의 이 글을 보고 드는 생각은 이것은 오로지 역사 교육의 결여로 발생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일본의 민주주의가 일당 체제로 견고화되고 있다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시민의 기본권과 언론 출판의 자유가 공고히 있었는데 그동안 출판된 관련 서적이나 공개되어 있는 수많은 사료들과 자료들을 조금이라도 찾아보면 개인의 양심에 따라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문제들인데 결국 이익에 따라 다수의 일본인들이 눈을 감은 것이겠죠. 저는 특히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일본 재특회에 대한 주장입니다. “재특회의 멤버들이 재일 한국, 조선이들을 고키부리 (바퀴벌레)라고 부르며 학살해야 한다”는 사례가 소개되어 있는데 이러한 심각한 인종 차별적인 주장 마저도 침묵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일본 사회가 양심을 길바닥에 내다 버렸는지 알 수 있는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종전과 그 전후 처리 과정은 앞으로 동아시아에서 몇세대가 지나더라도 이 역사 문제, 일본 제국에 의한 식민주의 그로인한 우리나라와 중국과 갈등은 해결할 수도 없으며. 이미 미일 동맹과 일본의 국제적인 국가 지위를 감안하고 여기에 침묵하는 일본 대다수 국민들과 마찬가지의 상태인 일본 리버럴 지식인들과 변절한 사회당 정치인 등의 현 상황이 우리로서는 어떻게 해 볼 여지가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런 상황에서 무슨 ‘동아시아 공동체론’ 이라든지 ‘동아시아 연대론’을 주장하는 (실명을 밝히고 싶지 않은) 국내 학자들이 얼마나 몰지각하고 현실을 망각한 무분별한 탈역사주의에 빠져 있는지 진심으로 자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경식 교수가 여기에 밝힌 현재 일본과 일본인들의 정치적인 내면 세계와 사고가 너무나 실제적이고 현실적으로 체감되어 어떻게 보면 더 일본에 대해 더 (부정적으로) 체념하게 만드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서교수의 문제가 아니라 전혀 바뀔 수 없는 현실을 목도한 사람의 개인적 차원의 생생한 습득 체험이어서 그럴 겁니다.그리고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어보셨으면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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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쟝쟝   2023-12-20메뉴
얼마 전까지 서경식의 <책임에 대하여>를 읽다가 (어려워서) 놓고 있던 중이었다.

“(148)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요? 자국, 자민족이 자행한 식민주의를 비판하지 않은 채로 포스트 콜로니얼 연구가 성립될까요? 식민주의 비판이라는 의식이 박약하고, 결핍된 포스트 콜로니얼 연구는 단지 ‘지적 유행’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고, 나쁜 경우에는 의도하지 않게 국가와의 공범 관계를 형성할지도 모릅니다. 조선의 통일 운동과 오키나와 반기지 투쟁 등 전체적으로 제3세계의 민족 해방운동을 ‘내셔널리즘’이라고 지칭하는 것으로만 자족하면서, 자국의 내셔널리즘을 극복하려는 데 대한 관심은 희박한 듯 보입니다. 내가 박유하 씨를 예찬하는 일본 지식인들의 언설에서 느끼는 위화감은 그런 것입니다. (중략) 1990년대 이후에 냉전이 무너지고 포스트모던의 사상 조류가 일본에 들어왔을 때에 그것을 섭취하여 흡수하지 못한 채, *결국 타자비판 도구로 삼았지만 자기비판 도구가 되지는 못해서* 일본 사회의 반동화, 리버럴파의 퇴락, 아카데미즘의 형해화……로, 전부가 발을 맞추어서 진행하는 듯한 생각이 들어요. 예컨대 리버럴파 지식인의 대표 격으로 우치다 다쓰루 씨가 있지요.” - <책임에 대하여>, 서경식



일본의 지성계의 상황이 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내 프랑스 현대 철학 독서의 한줄기 빛이었던 일본의 미소지니 꼰대 할배 우치다 센세🤪를 꼬집어 조근조근 씹어 주시는 서경식 선생님의 혜안에 피식피식 웃긴했다.)



음.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 호기심이 생겼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더 정확하게 적자면 일본의 지식인이 고안하고 황국신민이 동조한 서구를 선망했던 제국주의와 한국에서 나고 자란 국민(K-장녀...)으로서 내게도 뿌리박혀 있는 선진국을 따라잡고자 하는 심성(?)에는 어떤 간극과 어떤 다름이있는지 궁금했다.



아니. 사실은 궁금하지 않다. 거칠게. 혹은 잔인하게. 나는 이미 “거기엔 다름이 없다”는 결론 내린 채. 이런저런 책들을 뒤진다... (일단은 내려놓는 가장 가혹한 전제. 이건 페미니즘 책을 읽다가 터득한 어떤 방어기제일지도.)

“(23) 일본의 제국주의 실행은 좀 복잡하다. 일본은 유럽식(영국과 프랑스)을 벤치마킹하면서도, 이를 자신의 방식대로 변용을 했다. *일본은 스스로를 ‘동아시아의 영국’으로 상정*하고 영국식을 모방했다. 이른바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 (중략) 일본은 서양문명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를 보편적인 방식으로 인식했다. 그런데 일본이 직면한 고민이 있었다. 자신들과 아시아인들 사이에 피부색과 문명의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중략) 일본인은 자신과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차이가 없고, 분리 또한 쉽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여 자신의 우월성과 제국 건설을 정당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고심했다. 한 가지 방법은 조선의 후진성을 부각시키고, 문명화의 필요성을 내세우는 것이었다.” - <탈식민주의에 대한 성찰>, 박종성 -



“(29) 슈미드는 한국의 민족주의와 일본의 식민주의가 정치적 의제의 차원에서 정반대임에도 불구하고, *한일 모두 문명개화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비슷한 목표에 매진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일본 당국은 한국의 민족주의적 자기비판 양식을 손쉽게 채택해서, 문명개화라는 동일한 원칙하에 식민 착취를 정당화하는 데 활용했다.” -<애국의 계보학>, 실라 미요시 야거



“일본이 대일본 제국이라는 다민족 제국이던 시대에는 지배층이 일본 민족(야마토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한편 조선인·대만인 등 식민지 신민臣民들에게 야마토 민족과 마찬가지로 국가에 대한 충성을 요구했습니다. 식민지 신민을 ‘이등 국민’으로 취급하고 심하게 차별하면서 그 차별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천황과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패전을 전후해서 일본 지배층은 ‘국체’ 유지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 옛 식민지 출신자들을 내버리고 야마토 민족에 의한 단일민족 국가로서 전후 일본을 재출발시켰습니다. 여기에 전후 일본 ‘국민주의’의 기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략).” -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서경식 -


올해 1월, 케이트 만의 <남성 특권>을 읽고 인셀의 심리에 대해서 곰곰 생각하다가 그건 나에게도 있다는 결론에 가닿고 소스라친 나머지 (나의 인셀스러움ㅋㅋㅋ) 차마 글로 정리하지 않은 것.



인셀의 심리(라고 쓰고 내게도 있는 심리라고 읽는다. 나는 야, 여자 인셀). 자신의 내면 안에 사회(다수)가 암묵적으로 허락한 위계를 짓고. 그 위계에 따라서 인간(이 자리에는 숱한 정상성 혹은 규범이 들어간다. 남성, 백인, 황국신민, 국민, 정규직, 중산층, 스카이, 정상인... )/비인간을 분류하고. 라벨링, 규정하고. 혐오하거나 배제하거나 지배할 명분을 스스로가 멋대로 ‘정당화’한 채. “다들 그렇지(나 같지) 않나?”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해 버리는” 인간이 인간이기에 지니는 어떤 속성에 대해. (이게 N번방이 가능했던 까닭 아닐까?) 



동시에 비인간들(특히 여성)과의 연결을 끊어버리는. 옆에 있는 데. 연결되어 있는 데. 자신이 비인간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멍청함. 어쩌면 스스로를 보지 않으려는 거대한 억압에 대해. 그러니 혹은 그러나. 운이 나빠. 아마도 삶이 짓궂어 어쩔 수 없이 우연하게 다른 위치에 서게 되었을 때. 나는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보고 싶지 않았던 심연. 두려움. 도망치고 싶음. 자기기만.



에 대한 이야기로.



나는 그런 방식으로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개인적인 체험>을 읽었다.

“(193) 하지만 내 아내에게서 비정상적인 아기가 태어난 것은 단순한 우연일 뿐 *우리에게 책임은 없어*. 그리고 내가 아기를 그 자리에서 눌러 죽여 버릴 만큼 터프한 악한도 아니지만, 아무리 치명적인 증상을 가진 아기라도 의사들을 총동원하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어떻게든 살려내 보려고 할 정도로 터프한 선인도 아니라고 한다면 나는 아기를 대학 병원에 맡겨두고 자연스런 쇠약사를 선택하는 것 말고 다른 길이 없지. 그러던 끝에 *자기기만이라는 질병*에 걸려 쥐약을 먹고 막다른 골목으로 뛰어든 시궁쥐처럼 되어버린다 한들, 그것도 내겐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개인적인 체험>, 오에 겐자부로-



그리고 내부자가 아닌 외부인. 아니, 외부인도 아닌 코리안 디아스포라 서경식은 그의 책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에서 작가 오에를 ‘애매한 일본인’에 저항한 지식인(일본에 몇 없는) 계보에 두고 검토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의 ‘반동기’는 보수파와 우파들만의 작품이라기보다 오히려 일본 국민 다수의 ‘국민주의’적 심성이 이들을 크게 이용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전쟁 책임·식민지배 책임을 철저히 파고드는 것은 피하고 싶지만 동시에 자신을 ‘민주주의자’로서 도덕적으로 높은 곳에 올려놓고 싶은, 동요하는 머조리티의 이율배반적으로 분열된 소망*이 이 ‘국민주의’입니다. 국가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생각해낸 ‘아시아여성기금’이나 그것을 이어받은 2015년 말의 한일 위안부 합의가 바로 그러한 모순(‘애매함’)을 보여주는 흔한 사례겠지요.

미국의 ‘핵우산’에 스스로를 의탁하면서 자신들이 ‘유일한 피폭국’이며 ‘평화 국가’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애매함’의 또 다른 사례일 겁니다. 일본 국민 다수는 이 ‘애매함’을 받아들여 자신들이 평화 애호가이며, 자국은 평화 국가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합니다.” -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서경식



지지난 달 이 책을 읽고서 내가 독서 앱에 남겨놓았던 단상은 아래와 같다.



“일본에서 살던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70대 한국인 택시 기사의 내면화된 애향심과 분열된 애국심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애국주의-> 가족주의까지 연결되는 내면화의 흐름 잡아채서 쓴 부분은 보통 훌륭하지가 않음. 



서경식의 위치는 사유를 치열하게 해야 하는 위치였을 거다. 멈추지 않고 자신의 위치에서 사유하는 사람이라 느낌. 무튼. 깊었다. 때때로 서슬퍼렇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내가 일본의 지배 계층, 국민주의적 심성에 물든 국민, 혹은 이 책에서 계속 때리는 ‘진보적 리버럴’이었다면 그의 입을 막고 싶었을 듯. 그런데 서경식은 일본에서 대학교수다. 한국에는 이렇게까지 불편한 지식인이 있나? 그게 일본 사회의 어떤 면모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혜택(?)을 입은 그가 피해자로서 가해자 집단에게 가해 의식을 가지라! 지적하는 것은 대단한 결기와 용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가해 집단이 셀프로 “우리 모두가 애매한 죄인입니다”라는 종류의 말은 아무 말도 아닌 게 맞다. 그것은 피곤한 갈등을 평안하게 봉합시키는 비열하기까지 한 장치로도 보인다. 실은 거기까지 염두할 필요가 없는 위치성에서 어쩔 수 없이 게으른 사유가 나온 것일 테지. 일본의 메조리티들이 공유하고 싶어 하는 은근 징그러운 품위 유지의 일면도 알게 되었음.



어떤 부분은 한국인으로서는 듣기 좋았는데, 서경식이 말하는 반일과 한국인의 정서에 있는 반일주의는 그 결이 완전히 다른 듯. 일본 내부의 상황은 전혀 몰랐는데, 한국과 어딘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차라리 들었다. 서경식 더 읽어보겠으.”



더 읽어보겠다고 하고, 또 밀어두고 다른 책 읽느라 바빴었다. 그러다 예상치 못하게 선생의 부고를 듣게 되었다. 이상하고 착잡한 마음이 든다. 생각 자체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어떤 ‘지성’이라 이름 붙인 것의 미덕이라고 한다면. 존재 자체가 다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의 몸에서 나온 사유가 이토록 뜨거우면서 서늘해지기까지 그 지성을 가다듬는게 얼마나 어려웠을까하고 생각했다. 불편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제거해버리고 싶어 하는 눈초리만 그득해져가는 한국과 일본의 현실에서. 선생의 몸이 강건하게 버티고 있을 거라 생각한 것 자체가 염치없었구나. 하게 되는.



언젠가 코리안 디아스포라 가족의 일대기를 다룬 <파친코>라는 소설을 읽고 친구와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트랙백 https://blog.aladin.co.kr/jyang0202/13981035 참고) 그때 나는 노아의 자살을 질병사(우울증)라고 썼다.



글을 끝내는 시점에서 왜 서경식 선생님과 노아가 겹쳐지는지 모르겠다. 더 써볼까.



내 위치에서 나를 보는 훈련. 페미니즘을 읽는 것은 지금까지 익히고 배워왔던 (남성) 언어와 내 존재가 얼마나 불화하는지를 굳이굳이 선사시대까지 꺼내와서 재독해 하는 일이었다. 어떤 남자 철학자(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까지 했는데.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언어로 나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그 은유마저 penis인 pen으로 자신을 규정해왔던 여성주의 언어의 역사를. 그들을 읽던 나는 나의 언어를 내가 만들어야 하는 까닭을.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힘들지만 보람있는 과정이었다.)



재일 조선인 노아는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1세계의 책을 열심히 읽었다. 아마 문학에서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내가 사랑한 언어(권력, 조직, 집단, 가족, 사람...)가 나를 살해해온 바로 그것일 때.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을 때. 아니. 도망쳤는데 결국은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휘몰아치는 낙담.을 어떤 경험에 기대어. 노아를 내 맘대로 해석했을 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때 그렇게 적었다. 노아가 썼다면 어땠을까? 일본어로 썼다면?



나는 서경식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은 없으며, 이제서야 막 그의 저서를 읽고 있었을 따름이다. 그런 선생이 어색한 한국어를 구사했으며 일본어로 사유했다는 이웃들의 댓글을 보면서 당연하다 느끼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번역된 책에서 느낀 그의 사유가 너무도 깊었기 때문이다.



어떤 삶이었을까.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삶.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일본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이니치. 그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마이너리티 지성. 그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 그 복잡함에 대해. 그 치열함에 대해.



이제서야 책을 읽는 재미를 알게된 나는 책에서 좋은 사람을 만날 때 정말 기쁜데.

아주아주 좋은 사람을 채 알기도 전에 떠나보낸 것만 같다.

몰랐던 것이 부끄럽다.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도, 바쁘다고만 생각했다.



그의 사유가 담긴 책을 읽으면서 그의 글에 빚을 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서경식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는 사유들이 페이지 마다 빼곡했다.  



읽는 것으로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젠 안다. 그래서 부단히 읽기 다짐해본다.

서경식 선생님. 영면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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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쟈   2018-02-04메뉴
2월의 읽을 만한 책  
막간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2월을 짧기도 하거니와 설연휴도 끼여 있어서(핑계야 언제든 있는 것이지만) 한껏 욕심을 부리기 어렵다. 한데 올겨울처럼 한파가 잦다면 외출을 자제하게 되니 유리한 조건이 될 수도. 여하튼 읽고 또 읽다 보면 봄꽃 소식이 들려올 터이다.    1. 문학예술 먼저 문학쪽으로는 황순원문상상과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으로 고른다. 이기호의 <한정희와 나>(다산책방)와 박상순의 <무궁무진궁한 떨림, 무궁무진한 포오>이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으로는 손홍규의 수상작을 담은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문학사상사)도 지난달에 나왔다. 한국문학의 동향을 일별해볼 수 있는 작품집들이다.    예술분야에서는 '그림 속에 숨은 인권 이야기 '를 다룬 김태권의 <불편한 미술관>(창비), 한국 동시대 미술을 일별한 반이정의 <한국 동시대 미술 1998-2009>(미메시스), 그리고 식민지 시대부터 분단시대까지 극장에술의 역사를 문화정치학적 관점에서 살펴본 이상우의 <극장, 정치를 꿈꾸다>(테오리아) 등을 고른다. 관심에 따라 한권만 골라 읽어도 되겠다.    2. 인문학 인문분야에서는 서경식의 <나의 이탈리아 인문기행>(반비)을 고른다. 저자에게 이탈리아는 무엇보다도 프리모 레비의 나라일 테니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창비, 2006)를 함께 손에 들어도 좋겠다. 지난해 나온 책으로는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나무연필)까지.   시간과 재정에 여유가 있는 독자라면 이정우의 <세계철학사>(길)와 프레더릭 바이저의 <이성의 운명>(도서출판b)을 독서 목록에 올려놓아도 좋겠다. 이달에 완독한다기보다는 이달부터 읽기 시작하는 책으로.    3. 사회과학 청소년 여학생이 우선 읽어볼 만한 책으로 '넬리 블라이 시리즈'가 있다. '여자 기자가 드문 시절 정신병원에 잠입 취재해 탐사보도의 새 장을 연 여기자, 넬리 블라이의 잠입 취재기를 담은 책',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 그리고 '여자 기자가 드문 시절 최단기간 세계 일주로 시대의 아이콘이 된 기자, 넬리 블라이의 세계 일주기를 담은 책'으로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72일>(모던아카이브), 두 권이다. 그리고 '가장 똑똑하고, 재미있고, 용감한 젊은 25명의 여성들'이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답한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부른다>(열린책들)도 젊은 세대 독자들이 읽어봄직하다.    <침묵의 봄> 리커버판이 화제가 되면서 급기야는 '레이첼 카슨 전집'까지도 나오고 있다(선집이 아니라 전집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에코리브르)가 지난 가을에 나온 데 이어서 <우리를 둘러싼 바다>가 지난달에 나왔는데, 전체 여섯 권 규모가 될 거라고 한다. 표지도 상당히 깔끔하다.    4. 과학  과학분야에서는 미생물에 관한 책을 고른다. 존 잉그럼의 <미생물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케이북)이 최근에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는데, 앞서 나온 책으론 <미생물군 유전체는 내 몸을 어떻게 바꾸는가>(갈매나무), <내 속엔 미생물이 너무도 많아>(어크로스) 등이 미생물에 대한 관심을 부추기는 데 일조했다.    그리고 지난주에 페이퍼에서 다루기도 했지만 에드워드 윌슨의 '인류세 3부작'도 이달에 읽어봄직하다. 앞서 나온 두 권과 구색을 맞추려면 나로선 <지구의 절반>도 원서를 구해야겠다.   5. 책읽기/글쓰기 바람구두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전성원 황해문화 편집장의 '인생 서평집'이 나왔다. <길위의 독서>(뜨란)를 고른다. '그가 그동안 써온 500편 이상의 서평들 가운데 자신의 삶에 대한 자전적 성찰이 담긴 글들을 골라 새롭게 고쳐 묶은 ‘인생 서평집’을 펴냈다. 여기에는 ‘개인사적 절망과 사회사적 절망이라는 두 겹의 절망’을 짊어진 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힘든 시기를 같이 버텨온 동시대인으로서 일독해볼 만하다.  '그림으로 고전 읽기, 문학으로 인생 읽기'를 부제로 한 문소영의 <명화독서>(은행나무)와 베스트셀러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의 저자 조선의 명저를 고르고 소개한 <조선 명저 기행>(김영사)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조선 명저 기행>은 신병주의 <책으로 읽는 조선의 역사>(휴머니스트)와 짝이 될 만하다.  18. 02. 04.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루쉰을 고른다. 루쉰의 소설과 산문은 전집을 포함해 다양한 판본이 나와 있는데, 최근에 조관희 교수의 평전과 번역 시리즈로 세 권이 나왔다. 평전 제목이 <청년들을 위한 사다리 루쉰>(마리북스)인데, 이 시리즈 전체가 청년들의 독서용으로 맞춤하게 여겨진다. 디자인도 깔끔해서 어제 구입한 책들이다(한데 꽂아둘 곳이 없구나). 봄방학 기간 동안 학생들이 일독해보면 좋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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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본색   2017-09-23메뉴

1. 유연함, 유연함으로부터 비롯되는 애매함은 정치인의 미덕일 수는 있어도 '지식인'의 미덕이 될 순 없다. 정치인이 현실적 상황에 맞춰 적당한 정도의 유연성을 발휘해, 여기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저기에서는 그 반대로 말하면서 생기는 모순과 애매함은 정치인에게는 문제될 것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란 타협의 기술이니까. 그렇게 보자면 정치인에게 부여되는 권력은 내 의견을 다른 의견과 ‘타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여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인의 애매함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식인에게 애매함이란 미덕이 될 수 없다. 그가 지식인이라면 일상에서의 다른 경우에서라면 몰라도, 대문자 '비판'을 자신의 임무로 삼는 지식인이 비판을 해야 하는 대상에 대해서 유연한, 혹은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는 없다. 니체에게 붙은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은 그가 비판의 명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니체에게 도대체 어떤 애매함이 있는가. 알만한 사람은 다 알테지만, 데리다의 해체 일반 전략도 비판을 위해 고안된 것이다. (번역상 야기되는 문제가 있을지언정) 데리다의 비판은 결코 난해하지 않고, 애매함과도 거리가 멀다. 데리다의 해체전략은 명료하다. 어쩌면 지식인들에게서 가끔 보이는 ‘전회’를 들어 발전하는 지식인이라면 유연성을 가졌다는 말을 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식인이라면 사유 자체가 유도하는 자기 전개로 인해 발생하는 사유의 전회는 있을지언정 '현실적' 이유로, '정략적' 이유로, 정치인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유연성을 갖게 되는 경우는 없다. 후기 하이데거의 전회는 사유의 도상에서 일어난 일이다. 발생적 현상학으로의 전회는 후설 자신에게는 발전이었고 사유 자체의 전회가 아니었다.

2. 지식인은 현실을 옹호하거나, 현실 자체의 불가피한 한계 때문에, 부당한 현실 자체를 당위로 삼는 사람이 아니다. 이청준은 <지배와 해방>(1977)이라는 작품에서 작가란 어떤 사람인가 에 대한 물음에 이정훈이라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조금 긴 인용이다.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을 소설로써 고발하는 것, 의롭지 못한 일을 증언하는 것, 우리의 삶을 부당하게 간섭해 오거나 병들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드는 모든 비인간적인 제도와 억압에 대항하여 싸우고 그것들을 이겨나갈 용기를 모색하는 것,소위 새로운 영혼의 영토를 획득해 나가고 획득된 영토를 수호해 나가려는 데 기여하는 모든 문학적 노력이 종국에는 다 우리의 삶을 보다 더 윤택하고 행복스럽고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려는 삶의 진실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과 관련하여 가장 깊고 큰 진실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 삶을 가장 삶다운 삶으로 돌아가 살게 하는 옳은 질서는 무엇입니까? 우리나라의 어떤 평론가 한 사람은 우리의 삶을 삶답지 못하게 하는 모든 비인간적인 풍습과제도와 문물과 사고를 통틀어 우리 삶을 ‘억압’하는 것들이라고 표현한 일이 있습니다만, 우리 삶이 그 억누름으로부터 벗어나서 온전한 삶, 본래의 자유롭고 화창한 삶으로 돌아가게 하는 질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유의 질서입니다. 이 자유의 질서야말로 우리의 가장 크고 깊은 삶의 진실이 아닐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식인의 역할은 의롭지 못한 현실을 불가피한 것이라며 사람들에게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건 정치인의 역할이다. 지식인이 그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은 정치인만큼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라 지식인의 역할은 현실을 비판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진리와 현실적 부당성을 적절히 타협해내는 정치인의 유연함과 애매함을 버리고 진리를 거울삼아 현실이라는 무게가 만들어내는 거짓된 당위를 철저히 비판하기로 한 자다. 그러니까, “당신이 현실적으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충분히 이해됩니다”라는 말 다음에 “그건 결론적으로 좋은 것이라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믿으세요”라고 말하는 자는 지식인이 아니다. 그런 듣기 좋은 말, 힐링을 위한 말은 정치인이나 종교인의 말일 수는 있어도 지식인의 말이 아니다. 지식인은 그보다 더 어려운 말을 꺼내는 사람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이 전제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옳은 일은 아니지요”라고 말이다. 이처럼 옳고 그름, 오래된 진리에 매달리는 사람은 보통 재미가 없다. 그래서 인기가 없고 외롭지만 지식인이 옳음, 진리, 진실, 자유의 자리에 서서, 손해를 보고 고립을 자초한다고 해도 권력에 대해 해야 할 말을 할 수 없다면 그는 좁은 전공분야에 자리한 전문가일 뿐이다.



3. 위안부 합의 문제를 생각해보려고 이런 긴 이야기를 썼다. 현실적으로 일본정부에게 법적 책임을 지게 하기는 힘들다, 현실적으로 이번 합의를 뒤집기는 힘들다, 현실적으로 일본 국민들의 정서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정치인이라면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늘 그런 ‘현실적으로’라는 식의 클리셰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는 지식인이 아니다. 운동을 해오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또 현실적인 이유로 이 문제가 안고 있는 물러설 수 없는 ‘진실’까지 양보했다면 그건 정치일 수는 있어도 결코 ‘비판’이 될 수는 없다.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2017)에서 서경식이 와다 하루키를 비판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런데 박유하는 와다 하루키에 대한 서경식의 옳지 않은 일을 두고 옳지 않은 일이라고 시종일관 말하는 것을 두고 사고의 경직이라고, 운동 논리라고 한다. 이런 폄훼하는 식의 이야기는 정치인이라면 지식인에게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지식인이 지식인에게 할 수 있는 비판으로서는 성립될 수 없다. 지식인이 지식인에게 비판하고자 한다면, 그 지식인이 받아들이는 옳음, 진리의 결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어야지 그 사고의 '시종일관'을 향한 것이어선 안된다. 지식인은 완고하다.







4. 박유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서경식 책의 출간 보도에 맞춰 이렇게 쓴다.

 “냉전붕괴이후 일본의 진보좌파들은, 곧바로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40년전 학생운동시절의 급진/온건파의 싸움이 있다. 90년대 이후에도, 급진파는 오래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일에만 집착해 왔고, 온건파는 눈앞에 놓인 새로운 정황을 정확히 이해하려고 애쓰면서 필요하면 그때까지의 생각을 수정했다. 와다 선생이나 우에노 선생과 서경식 교수의 차이는 바로 거기에 있고, 그런 식의 태도의 차이를 만든 건 내가 보기엔 사고의 유연성이다.” 

덧붙여 이런 말도 썼다.

 “와다 교수의 선택이 가장 옳았는지 여부는 얼마든지 검토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와다 교수는 늘 생각이 다른 이들의 말에 귀기울이면서, 위안부할머니와 모두를 위한 최선이 뭔지 늘 고민해 왔다는 점이다. 그런데, 와다 교수를 비난했던 이들은 이질적인 의견에는 귀를 닫았고, 조롱하거나 무시했다. 지금의 북한처럼. ” (강조는 인용자)


학생운동에서라면 온건파와 급진파로 얼마든지 나뉘어 싸울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도외시하는 급진파 운동권은 우리 주변에도 많다. 그리고 그런 식의 태도 때문에 언제나 온건파가 현실정치에 더 잘 적응했고, 더 쉽게 뿌리내렸다. 나는 와다 하루키나 우에노 치즈코를 지식인이 아니라 운동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로만 분류할 수 있다면 새로운 정황을 정확히 이해하면서 유연한 사고를 바탕으로 ‘정치인’과 같은 전략을 갖는 것을 얼마든지 칭찬할 수 있다고도 본다. 그런데 와다 하루키는 '지식인' 중의 '지식인'으로 존경 받는 학자가 아닌가. 지식인 와다는 비판해야 할 것에 대해 현실을 등지고 진리에 입각해 비판하고 있는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도대체 와다 하루키를 비롯한 일본에 있는 리버럴 지식인들이 모두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를 왜 고민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이들이 여기서 말하는 '모두'는 누구인가? 거기에는 일본정부도 포함된 것인가? 와다는 위안부할머니와 일본정부를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 늘 고민해왔던 것인가? 와다와 박유하는 이 문제 해결의 최선은 위안부할머니들의 시종일관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임을 모르는 것인가? 그것이 피해자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불가역적 합의 혹은 그저 돈이었던 것인가? 위안부할머니들에게 씻을 수 없는 모욕감을 준 자가 자신의 소송이 서경식, 정영환과 같은 이들이 구조적 폭력을 용인하는 사실 때문이라고 믿는 것을 ‘지적 퇴락’이라는 말 외에 다른 무엇으로 할 수 있단 말인가! 또 자신에 대한 비판을 자신에 대한 “제거욕망”으로 박유하는 생각한다고 썼는데, 여기에서 5공 시절 안기부가 즐겨 쓰던 방식의 지식인 죽이기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기묘한 도치, 해괴한 이어붙이기의 방식은 정치인의 것이라기보다 공안의 방식이 아니던가. 내가 가져온 인용구의 마지막 문구, '지금의 북한처럼'이라는 해괴하기 짝이 없는 말은 왜 붙여둔 것일까? 이런 식의 배치를 통해 어떤 의미 효과를 기대했던 것일까? 재일'교포'라는 말과 '북한'을 나란히 위치시켜, 보통의 사람들이 이를 보고 기묘하게 오해하도록 하기 위한 의도로, 그런 악마적인 방식으로 이어붙이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내가 너무 지나친 것일까? 공안은 우리 상상보다 언제나 더 지나쳤다는 사실도 상기해야 할 것이다. 



5. 오에 겐자부로는 “‘자기’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일본인을 ‘애매한’ 고립된 존재로 만들었고, 그러한 고립상황에서 아시아에 대한 침략이 행해졌다”고 썼다. 이런 말을 오에가 쓴 것을 보니 박유하는 오에에게도 퍽 사고가 유연하지 않다고 할 것 같다. 오에에게도 '지적퇴락'이라고 박유하는 쓸 것인가? 자기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자신의 소송 외에는 어떤 폭력도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참으로 사고가 '유연하신' 존재인지라 '당신은 애매한 존재'라고 밖에 돌려줄 말이 없다.



 "단언컨대, 이들은 서경식교수 정도나 그 주변 인물들에게 이런 식으로 가볍게 다루어져도 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 말도 박유하가 같은 글에서 한 말이다. 여기에 한 마디 덧붙이자면 박유하의 언설과 달리 서경식은 공개서한에서 와다를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 서경식이 일본의 리버럴 지식인을 비판할 때도 결코 가볍게 다룬 적이 없다. 그건 박유하가 재일조선인 지식인의 습관이라고 했던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며 확인 없이 옮겨 쓰는 P 본인의 오래된 습관'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왜 비판은 사랑과 존경으로 하는 것임을 그는 모르는 것일까?. 지식인이 공화국에 대한 존경이 없었다면 목숨을 걸고 국가와 정부를 비판하겠는가? 와다에 대한 존경이 없다면 비판이 있겠는가? 존경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대꾸할 가치가 없는 법이다. 지금 많은 사람이 박유하에 대해서 대꾸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나는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그녀에 대한 일말의 존경은 있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지식인이 현실을 이해하지 못해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당위로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현실을 당위로 받아들이는 것을 비판하는 것이다. 대문자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신성한 공간은 없다. 일본 리버럴을 비판했다고 가볍게 다뤘다고 한다면, 일본 리버럴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있는가. 하는 말마다 실수를 하는데, 그녀의 기사단은 그녀 역시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있어서 비판하면 몰아세우기 바쁜가보다.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을 두고 비판을 결의하기까지의 고뇌의 무게와 용기를 생각하기 전에 그 누군가를 ‘가볍게 대한다’고 생각했다면 비판이라는 것이 뭔지를 모르거나, 정치인이 경박스럽게 다른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 외에는 본 적이 없다는 증거다. 참으로 공안적 지식인다운 경박한 왜곡이라고 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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