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7

‘친미 사대’는 있어도 ‘친중 사대’는 없다 / 오정택 : 왜냐면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왜냐면] ‘친미 사대’는 있어도 ‘친중 사대’는 없다 / 오정택 : 왜냐면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

‘친미 사대’는 있어도 ‘친중 사대’는 없다 / 오정택

등록 :2016-08-22
오정택
한중친선협회 부회장

사드 배치 논란과 더불어 정부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친중 사대주의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사대(事大)가 한-중 간의 전통적 외교관계를 규정하는 용어인 만큼 이를 중국과 연결시키는 건 일면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이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현재 한국과 중국의 관계에 적용하는 것이 얼토당토않음을 잘 알 것이다. 사대주의란 약소국의 강대국에 대한 일방적 굴종이나 저자세만을 의미하는 용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대란 말은 그 대구로서 항상 자소(字小)란 말이 따라온다. 사대가 큰 나라를 섬긴다는 의미라면 자소는 작은 나라를 보살핀다는 의미로 새긴다. 결국 전통적 외교관계에서 사대자소란 원칙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면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보살펴준다’는 호혜적 의미를 지닌다.

역사적으로 사대자소가 큰 나라의 작은 나라 복속을 미화 또는 악용하는 데 쓰였다 해도 동아시아에서의 전통적인 사대관계란 기본적으로 소국이 대국을 섬기면서 그 반대급부를 요구할 수 있는 관계였다. 비록 강자와 약자의 관계이지만 일방적이지 않았다. 사대관계가 성립하려면 약자의 섬김에 대한 강자의 보살핌이 대응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중국과 비교해 작은 나라임이 분명하지만 과거처럼 중국의 보살핌을 받는 나라는 아니다.

현대의 국제정치는 주권국가 간의 우열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국가 간 힘의 우열은 존재한다. 이 때문에 사대란 용어의 공식적 사용은 사라졌어도 사대의 역학관계는 존재한다. ‘동맹’이란 용어를 쓰지만 강한 국가가 약한 국가를 군사적으로 보호해주는데 보호받는 국가가 보호하는 국가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렵다면 자연스레 실질적인 사대자소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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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과 한국의 관계다. 미국은 군대를 파견하여 한국을 보호한다. 대신 한국은 자국 군대의 전시작전권까지 미국에 상납한다. 이처럼 실질적인 사대관계는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성립할 수 있지만 중국이나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불가능하다.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으로부터 어떠한 보살핌도 받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저자세를 취한다면 그건 약자가 강자와의 관계에서 취하는 자기보호본능 같은 유일 뿐이다.

미국 편을 드는 친미파가 있다면 당연히 중국 입장을 이해하려는 친중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친미파들이 친중파를 사대주의로 손가락질하는 건 사대주의의 기본적 메커니즘도 이해하지 못한 채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역사에서의 사대주의 역할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서글픈 역사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칼럼에서 반미·진보좌파 세력의 친중 사대주의를 한껏 비난하던 보수언론의 한 논설위원은 “대한민국이 이만한 번영이라도 누리게 된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한 한-미 동맹에 힘입은 바 크다”고 친미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강대국의 시혜에 맹목적으로 감복하는 이런 인식과 자세야말로 일부 국수주의적 중국학자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꼽는 종주국과 속국 간의 관계, 즉 전형적인 사대관계를 뒷받침하는 사대주의적 사고다.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757853.html#csidx06d160a9b6de5e09d2101ed6f8c49e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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