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6

[한국의 파워라이터]‘평전 작가’ 김삼웅 - 경향신문

[한국의 파워라이터]‘평전 작가’ 김삼웅 - 경향신문
[한국의 파워라이터]‘평전 작가’ 김삼웅 - 경향신문

입력 : 2012.05.04 21:10:03인쇄글자 작게글자 크게


ㆍ수십년 모은 자료와 증언, 포도주처럼 숙성시켜 집필




봄이 실종되고 바로 여름으로 직행한 듯한 지난달 24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덕소에 있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69·사진)의 집을 찾았다. 그는 4년 전 이곳에 터를 잡았다. 집은 작은 도서관이었다. 58평짜리 아파트는 부엌과 화장실을 빼고는 안방과 침실까지 책으로 가득했다. 신발장이 있어야 할 곳에도 책장이 들어차 있다. 책으로 장식된 서재에서 바퀴가 달린 서가를 밀면 또 다른 서가가 나오고 이게 끝이려니 했더니 또 서가가 놓여 있다.


답답하진 않다. 거실과 서재의 창밖으로 남한강이 한눈에 굽어보이고 그가 옛 정릉 집 주변에서 옮겨온 대나무 몇 그루가 시원함을 더한다. 그는 “중국 말에 선비는 집에 대나무를 못 키우면 수묵화라도 그려서 선비의 올곧음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의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다산의 생가가 있다. 다산의 혼을 이어받고 싶은 이유에서 그리고 조용하고 산책하기 좋은 곳이라는 주변의 추천에 옮겨왔는데 ‘예상외로 살기 좋다’고 했다.


김삼웅은 기자와 교수, 공직자 등 여러 이력을 가졌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평전 작가이기도 하다. 1996년 <박열 평전>(가람기획)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5권의 평전을 냈다. 신채호, 김구처럼 익히 알려진 인물만이 아니라 김원봉, 김상덕, 김창숙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도 다뤘다. 그가 펴낸 평전은 주로 ‘존재는 낯익지만 실체는 낯선 독립지사’의 삶을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근현대사의 굴곡이 만든 역사의 빈칸을 메우려는 작업이다.


그가 평전에 관심을 두게 된 때는 30대 초반 유신체제에서 ‘민주전선’이라는 야당지의 편집장을 할 때였다. 정치계와 학계, 언론에서 친일 인맥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데 반해 독립운동가들은 거의 묻혀져 있다는 문제의식에서다. 그는 “약산 김원봉 선생 같은 경우 가장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했고 일제가 가장 무서워했던 독립운동가인데도 월북했다는 이유로 인물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잊혀진 인물들에 대한 관심에서 평전을 쓰기 시작했고 그 첫 번째는 박열(1902~1974)이었다. 박열은 1923년 일본 왕자를 폭탄으로 암살하려다 발각되어 22년2개월간 복역하다 해방을 맞아 석방된 인물이다. 그는 박열의 기개에 매료됐다. 박열은 일본 법정에서 ‘난 조선 대표로서 조선말로 할 테니 통역을 대라, 재판장은 일본의 대표고 나는 조선의 대표이니 피고석과 재판장석을 똑같이 해라, 죄인대우를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김삼웅은 “1923년은 관동대지진으로 조선인에 대한 테러가 자행되고 총독부가 극악스러울 때인데 그런 속에서 어떻게 저런 청년이 나올 수 있었는가. 감동스러웠다”고 말했다.



반민특위 위원장을 지냈던 김상덕(1892~1956)의 평전을 쓸 땐 안타까움이 컸다. 김상덕은 일본 유학 중 2·8독립선언(1919)에 참여했고 중국으로 건너가 임시정부, 의열단, 민족혁명당 등에서 민족해방운동을 펼쳤다. 그 와중에 생활고로 부인과 막내딸을 잃기도 했다. 김삼웅은 “반민특위를 이끌면서 이를 와해시키려 한 이승만의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았던 인물인데 한국전쟁 중 납북됐다는 이유로 후손들은 취업도 하지 못하고 막노동으로 어렵게 살거나 몸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김상덕 평전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면 한국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인데 이런 분에 대한 평가가 이렇게 소홀할 수 있는 것인지, 논문 딱 두 편. 그것도 근래의 것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는 중국을 찾아 자료를 수집하고 후손의 증언을 들어 책을 썼다.


그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증언을 들을 수도 없는 경우 ‘빈 공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참 힘든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김구가 그랬다.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일본 군경에 쫓겨 피난생활을 하던 5년간의 기록이 거의 없다. 그는 이 공백을 김구와 그의 도피생활을 도운 중국여성 주아이바오(朱愛寶)와의 사랑을 다룬 중국 소설 <선월(船月)>을 인용해 메웠다. 물론 픽션임을 밝혔다.


평전은 자료와의 싸움이다. 그가 매주 한두 차례 고서점과 헌책방을 돌면서 책을 사모으는 것도 평전을 위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선정한 ‘2011 모범 장서가’인 그가 책을 수집한 것은 10대 후반 ‘사상계’를 정기구독하면서부터이다. 평전을 쓰려면 인물이 살던 당시의 사상, 경제, 국제정치사를 알아야 한다. 자연히 그의 자료 수집 범위도 인문학 전체로 넓어졌다. 그렇게 모인 책이 현재 2만8000여권이나 된다.


그는 “낚시꾼이 만날 월척을 낚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주 다니면 의외의 책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보자기 두 개를 풀어 고서 여러 권과 희귀 자료들을 보여줬다. 일본 도쿄의 헌책방에서 입수한 박열의 옥중 친필원고와 중국에서 구한 신채호의 <천고> 2집, 일본인 중개상에 넘어가려던 것을 때마침 구했던 정약용의 <여유당전서> 활판인쇄본, 신채호의 <을지문덕>, 박지원의 ‘도강록’ 등이다. 1975년쯤 한 출판사 주인이 “좋은 ‘산삼’이 있는데 구경 안 할 거냐”며 보여준 게 신채호의 <조선사론>이었는데 ‘진짜 심봤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당시 15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샀다. 하지만 돈이 더 없어 신채호의 또 다른 책들을 사지 못한 게 지금도 “참 통한스럽다”고 했다.


그가 가장 아끼는 저서는 <곡필로 본 해방 50년>(1995·한울)이다. 그는 “조선이나 동아에서 명사설 100선이니, 명논설집 100선이니 하면서 자기들이 어쩌다 쓴 자랑스러운 부분은 내세우고, 부끄러운 부분은 거의 발표를 하지 않는다”며 “시대상황이라고 하지만 차라리 펜을 꺾는 게 낫지 민족을 배반하고, 정의에 어긋나는 곡필을 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인의 곡필 문제를 다룬 책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초보적이지만 연구를 하고 기록으로 남긴 것에 자부심을 갖는다고 했다. 내년에는 이명박 정권 시대의 곡필사에 대한 글을 쓸 계획이다.


이달 중순 노무현 평전의 출간을 앞둔 그는 이승만 평전과 민족주의 경제학자인 박현채의 평전도 올해 안에 출간할 계획이다. 다작의 비결에 대해 그는 “포도주를 생산하는 사람이 20~30년 묵혀서 때에 따라 몇 병씩 내는 것이지 그때 다 내는 건 아니다”라면서 “평전을 쓰기 위해 수십년 동안 모든 자료를 모으고 증언을 듣고 그렇게 숙성을 거쳐 한 권씩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산 정약용 평전을 마지막 목표로 하고 있다. 근대 민족저항사의 근원지를 다산으로 보고 그에 대한 실증적인 자료를 찾을 계획이다.




김삼웅의 대표저서




김삼웅은 지금까지 35권의 책을 냈다. 그는 주로 독립운동가의 생애를 정리하는 평전 작업을 진행했다. 독립운동사와 떼어놓을 수 없는 친일문제도 함께 다뤘다. 또 친일언론과 해방 이후 족벌언론들의 곡필사 연구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평전 중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책은 <리영희 평전>(2010·책보세)이다. 주 2회씩 6개월에 걸쳐 150시간에 이르는 인터뷰를 진행해 ‘사상의 은사’로 불리는 리영희의 생애와 사상을 짚어냈다. 1만2000부가 팔렸다. <백범 김구 평전>(2004·시대의창)과 개정판 <단재 신채호 평전>(2011·시대의창)도 비슷한 부수로 꾸준히 나가고 있다. <김상덕 평전>(2011·책보세)은 그에 대한 최초의 연구서이다. 이 밖에 김대중, 조봉암, 장준하, 전봉준, 송건호 등의 평전도 냈다. 지난달 나온 <진보와 저항의 세계사>(2012·철수와영희)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민중저항의 사상과 역사를 보여준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발전시킨 동서양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한 서술로 민중의 저항이 역사를 진보시켜 왔음을 보여준다. 불의에 저항하지 않으면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는 주제를 담았다. 20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위서와 금서, 곡필사 연구도 깊이 했다. <한국사를 뒤흔든 위서>(2004·인물과사상사)는 문자의 탄생과 함께 시작한 위서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05042110035#csidx345d42fc99333be9c2d209dc7575a7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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