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30

이 풍진 세상에 :: 황석영 <오래된 정원>



이 풍진 세상에 :: 황석영 <오래된 정원>
황석영 <오래된 정원>

행복한 책읽기 2007/02/09 13:45 돛과닻

우리는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


인터넷을 가까이 하면서 얻는 소득은 쏠쏠하다. 그 중에서 온라인 서점을 발견하고 종종 그 서점을 이용하면서 얻는 성취감은 두 가진데, 하나는 지속적으로 서점에 가지 않고도 신간들을 검색해 볼 수 있는 파한(破閑)에 있고, 또 하나는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엄두도 못 낼 가격으로 그걸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이다.

황석영의 장편 소설 "오래된 정원"을 다시 읽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사람일뿐더러 스무 살을 전후해 세상을 읽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 따위에서 내게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이다.

이 소설은 저 파란과 격동의 20세기의 마지막 20년을 다룬 문학적 연대기다. 작가는 저 80년대의 벽두를 피로 장식한 '광주에서의 학살'을 보고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기록자였고, 80년대 후반에 북한을 극적으로 방문했으며, 덕분에 90년대의 초중반을 감옥에서 보낸 이다. 따라서 그는 저 지난 20년에 대해서 충분히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 셈이다.


이 소설은 광주의 학살로 문을 연 이래, '군사독재 권력과 민족민주 운동과 피어린 대결이 숨막히게 진행된 80년대와 자본주의의 전지구적 승리라는 휘황한 조명 앞에 꿈도 열정도 덧없이 사위어 버린 듯한 90년대'(염무웅 서평)를 살아온 한 연인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세상을 사랑하고 그것을 위해 죽어갔던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남자는 0.75평의 독방 안에서, 그리고 여자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낸다. 20여 년만에 출감한 남자(오현우)는 이미 병사한 그의 연인(한윤희)이 남긴 노트와 스케치북 속에 남긴 80년대의 삶과 투쟁을 회상하고 추적해 간다.

반 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사랑의 시간 동안 그들이 낳은, 이제 열여덟 살이 된 은결이라는 딸과의 만남을 앞두고 소설은 끝을 맺는다.

후기에서 작가가 밝힌 대로 '아직도 희망은 있는 건가'고 우리는 되물어야 한다. 작가에게 '오래된 정원'은 무릉도원이거나 유토피아이며, 그것은 '더 나은 삶에 대한 꿈을 추구한 세대의 초상'이다.

그것은 남자에게 남긴 노트에서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어 왔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 가운데서 빛나고 있'다고 말하며, '당신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냐고,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냐는 여자의 물음과 잇닿아 있는 것이다.




▲ 영화 <오래된 정원>의 홍보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은 포스터다. 이 영화의 홍보 구호는 <아픈 시대, 빛나는사랑의 기억>이다. 그러나 거기에선 내내 허스키한 음색의 여가수가 부르는 <사노라면>이 우울하게 흘러나왔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동시인으로 더 유명한 한 운동가가 스스로를 스타의 반열에 올리며, '돈이 되는 운동'을 주장하는 이념의 왜곡과 혼돈 속에 비록 우리가 서 있다 하더라도, 그 시절의 이념이 다만 설익은 관념과 추상적 구호였다 하더라도, 우리는 아무도 저 고통과 절망의 시대에 연출된 모든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의미들을 결코 가벼이 바라볼 수 없다. 문제는 그들 세대의 '무거움'이 아니라, 변화는 있되, 변화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이 날라리 시대의 '가벼움'일 터이다.

두 권의 책으로 다시 만난 '정원', 합법화 또는 민주화의 변화된 공간 앞에서 더러는 주저앉고 더러는 비켜선 우리들의 나태와 타협에 그들의 사랑과 삶은 날카로운 송곳처럼 되물어 온다.

'당신들은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 이제 우리가 대답할 차례다. 우리는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

아직도 희망은 있는가. 작가는 대답한다.

'질문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다시 출발할 것이다.'



*<밝은구름>님의 영화평에 엮었다.
영화 <오래된 정원>을 오래 기다렸다. 그러나 이 소도시의 영화관에서는 그것을 상영하지 않는다. 아마 별 재미를 볼 수 없는 영화로 판단한 모양이다. 대단한 마니아는 아니어서 이웃에 있는 대도시로 원정 구경을 떠나는 건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
두고두고 소설의 장면과 이미지를 제멋대로 조합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이 글은 영화 '오래된 정원'에서 느껴진 시대상 에 엮인 글입니다.


태그 : 문학적 연대기, 오래된 정원,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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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느 2007/02/10 10:11

'질문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다시 출발할 것이다.'

영화를 보지 않는 한, 돛과닻님의 상상은 계속 될 것이다. ^^
돛과닻 2007/02/10 13:04

시간을 멈추지 못하는 한,
내 상상은 졸아붙고 왜소해질 것이다....
해를그리며 2007/02/10 11:24

요 몇일 황석영에 대한 이런 저런 말이 많습니다.
말과 글이 흘러 넘쳐나는 세상에 또 덭칠을 하는 것이겠지요. 갈수록 사람이 어떤 말을 하면 그 사람의 말은 별로 듣지 않습니다. 먼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나를 먼저 보게 됩니다. 그러고나면 그 이후에 그 사람의 말은 들어도 그만 듣지 않아도 그만인 경우가 많습니다. 귀에 거스리지만 새겨 들을 말이 있고 듣기에는 멋져 보이지만 들으나 마나한 말들이 너무 너무 많습니다.
저는 그가 걸어온 길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봅니다.
돛과닻 2007/02/10 13:09

황석영에 대해서는 해님과 생각이 같습니다. 그를 통해서(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세상을 읽는 눈을 배웠다 해도 지나치지 않으니 말이지요.
최근 그의 발언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반대편의 비난보다는 훨씬 더 진정성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법은 여럿이고, 역사가 그것을 선택하게 되겠지요...

굴렁쇠 2007/02/11 01:49

어렵습니다. 책 <오래된 정원>에서의 이해가
영화 <오래된 정원>에서 혼돈을 느낍니다.

...그 외롭고 캄캄한 벽 속에서 무엇을 찾았나?
...질문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다시 출발할 것이다?

돛과닻 2007/02/11 08:33

유감스럽게도 영화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한겨레의 영화평에 따르면 이 영화는 원작과 달리 <1980년대 ‘운동권’의 이야기인데 이들을 향한 비판을 매섭게 담았>고, <밥 먹고 사랑하는, 사람다운 일상이 늘 뒷전이어야 했던 사람들에게 ‘이 바보 고집불통아’라고 질책 어린 애정을 보>내는 이야기라는군요.
영화는 늘 원작을 배반하기 마련이니 원작과 얼마간 거리가 있다는 걸 접어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시대가 있었다는 걸 새삼 확인하고 싶다. 이게 제 심정이었지요...
<당신들이 보기에는 바보 같은 짓이었겠지만, 그것을 위해 젊음과 열정을 모두 걸고 바쳤던 그런, 진정성의 시대가 있었다...>하고 말이지요...
필터 2007/02/11 13:14

온라인....확장도서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습니다.
전에는 책 속 글중에 만나는 책, 미주나 각주에서 만나는 책, 책표지 등에서 만나는 책이
그나마 연결지어 책을 만날 수 있는, 그마저도 서점에서 못만나면 그만...이 식이었는데
지금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공부할 수 있는 고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이 온라인이죠.

지난번에 영화를 보러 갈일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나는 오래된 정원을 보자..아이들은 박물관이 살아있다를 보자.
또 한번은 나는 오래된 정원이나 허브를 보자...아이들은 헐리우드 액션 ..제목이 뭔가?
암튼 그래서, 그 헐리우드 액션은 보기 싫고 해서 허브도 양보하면서
내가 그럼 묵공 보자...그래서 두 번 이나 양보하고야 말았다는 것...

사람마다 반응이 당연히 엇갈리는 것 같습니다.^^
돛과닻 2007/02/12 12:52

온라인은 편리하긴 한데, 결국은 영세 오프라인 서점을 도산하게 하고, 할인경쟁의 부작용으로 말미암은 전반적인 책값의 거품 등 부정적인 측면도 아주 많지요. 동네책방을 이용하면서,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게 아니라 그런 책방을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 당위는 여전히 유효하지요...
그러나 그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팬다 2007/02/12 13:34

영화라면 옆지기랑 한달 한편 조조나 심야로 보는 편입니다.

읽은 책입니다.
느낌이 각별하였지요.
영화는 어떨까 궁금하긴한데 선택권가진 옆지기가 별로인 스탈이라...
돛과닻 2007/02/12 16:27

역사 팬다님은 뭔가 남다릅니다그려. 한 달에 한 편. 그게 말이야 쉽지, 만만한 일이 아니니 말입니다. 영화보기를 매우 즐기는 나는 아직도 <괴물>을 못 보았습니다. 차일피일하다가.
심야영화를 보고 있는 팬다님 내외를 상상해 봅니다. ^_^
▦ 밝은 구름 2007/02/13 03:10

돛과 닻님.. ^^
글을 엮어주셔서 감사해요.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돛과 닻님의 예리한 시선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영화 속 행간에서는 미처 보이지 않던 부분이 소설에서는 좀 더 긴밀히 연결되었겠지요.. 평을 읽으니 영화의 내용이 더욱 환히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 노동운동가는 박노해님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그 분도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고 고민했던 사람으로서 할말이 많을거란 생각을 합니다. 단지 표현방식이 다를 뿐이겠지요-

나중에 비디오로 보셨으면 해요.... ^^
돛과닻 2007/02/13 16:48

내 강파른 심정을 다독여 주시니 고맙습니다.
세월이 모난 부분을 풍화해 줄 줄 알았는데, 그게 쉽지 않은 듯합니다.
비디오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소설의 이미지를 곱게 간직하든가...
각골명심 2007/02/13 14:02

▦ 밝은 구름님의 영화평론에 이어 연작으로 두편을 보게 되는군요(옛날 동시상영 보는 기분 같네요 ㅎㅎ)

'질문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다시 출발할 것이다.'
정말 다시 출발한 걸까요? 그럴까요?
저는 오히려 점점 잊혀져가는게 더 안타까울때가 많던데요 ㅠ

돛과닻 2007/02/13 16:50

7, 8년 전에 쓴 글이지요. 그때만 해도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믿었지요. 지금도 그 당위는 유효합니다만...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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