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2-27

내가 만난 신은미, 그녀는 종북이 아닙니다



내가 만난 신은미, 그녀는 종북이 아닙니다

내가 만난 신은미, 그녀는 종북이 아닙니다
[기고] 출국 직전 신은미씨 만난 한겨레 허재현 기자…3대 세습 비판하는 그가 왜 종북?
허재현 한겨레 기자 ssain@mediatoday.co.kr 2015년 01월 20일 화요일


재미교포 신은미씨를 둘러싼 논란으로 지난 두어 달 동안 한국 사회는 뜨거웠다. 그가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황선씨와 연 콘서트 자체도 논란이었지만 우익 누리꾼이 벌인 폭탄 투척 사건, 그리고 엉뚱하게도 테러의 피해자인 신씨가 국가보안법 수사를 받고 강제출국 당하기까지. 그야 말로 엄혹한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아니, 뒤이어 황선씨가 구속 되고 신은미씨의 책이 문광부 우수도서에서 취소되는 등 아직도 그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이제 신씨는 한국을 떠났다. 이제 그가 떠난 마당이니 좀 차분하게 되짚어 봐야 한다. 신씨를 둘러싼 언론의 보도는 과연 옳았는가. 그는 정말 ‘종북 콘서트’를 열었는가.

지금도 연합뉴스 등 언론들은 관련 속보를 내보낼 때 ‘종북 콘서트’라고 제목을 달아 기사를 내보내고 있다. 정확한 이름은 ‘통일 콘서트’였는데 언론은 그러한 제목을 달지 않는다. 이미 그날의 콘서트에 대해 사법부의 판단이 나온 것처럼 보도하고 있다.

▲ 지난 12월 11일 오후 3시, 황선·신은미씨의 기자회견을 무산시키기 위해 어버이연합 회원 50여명이 서울 경향신문 별관을 막아섰다. 사진=장슬기 기자

신은미씨를 출국 직전인 1월8일에 만났다. 그가 쓴 책(재미교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과 콘서트 대담집을 꼼꼼하게 읽었다. 나의 취재결과는 말한다. 단언컨대, 신씨는 마녀사냥을 당했다고. (관련 기사 : <신은미 “어머니조차 ‘얼굴 보지 말고 살자’고 문자”>

신씨를 만난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당신은 북한 3대 세습 체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신씨는 남한에서 공직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일반인을 상대로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이 무척 결례이고, 사상검증 하는 행위에 가까운 폭력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물어봤다. 요즘 우리 사회의 분위기상, 슬프게도, 이것을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신씨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저는 당연히 독재나 세습 이런 것을 반대합니다. 저 역시 자유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사람이니까요. 북한 인권 결의안도 찬성해요. 인권을 향상시킬 수 있는 그런 결의안이나 법 등에 대해서는 모두 찬성해요.”


북한 체제에 대한 자신의 비판적 견해를 숨기지 않는 점에서 신씨는 황선씨와 다르다. 우리가 누군가를 종북이라고 비난하려면 최소한 그가 북한에 대해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퍼뜨리거나 일방적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하거나 또는 그들과 내통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최소한 북한 체제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 자신의 입장을 숨긴다거나 하는 식의 대중의 의심을 받을만한 어떤 행동이라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신씨에게는 그런 점을 발견할 수 없다. 아마 보수 언론들도 북한 체제에 대한 신씨의 입장을 과거 그의 여러 발언과 보수적 성장 환경 등을 통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종북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떠한 이유로 그를 계속 종북이라 몰아갔을 가능성이 크기에 신은미씨가 마녀사냥 당했다고 표현할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조선일보(2014년 11월21일 ‘서울 한복판 종북 토크쇼’)가 애초에 문제 삼은 콘서트의 내용은 어떻게 된 것일까. 천천히 뜯어보자.

▲ 11월 21일자 TV조선 뉴스9 갈무리.




물론 조선일보 표현대로 이날 콘서트 때 북한 세습 체제 등을 비판하는 내용은 없는 게 맞다. 하지만 그 날 행사의 취지는 ‘통일 콘서트’다. ‘북한 규탄 콘서트’ 자리가 아니란 말이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통일의 상대자인 북한을 모욕하고 비난하는 그런 행사를 통일 콘서트라고 부를 수 있을까. 통일을 이야기하려면 일단 북한을 비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적화통일 저지 결의대회’가 아닌 이상 그렇게 행사를 열수는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가 이날 행사에서 북한 체제 규탄 발언이 없었다는 것을 문제 삼는 것 자체가 몰상식하다고 봐야 한다.

조선일보가 이날 콘서트와 관련해 문제 삼은 발언들을 살펴보자.

(1)북한 주민들이 김정일 사망 뒤에 ‘저희는 장군님께 해드린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2)북한 주민들이 젊은 지도자(김정은)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에 차 있는 게 보였다. (3)김정은이 (북한 주민들에게) 친근한 지도자 같았다. (4)(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한국 사회의 양심수와 똑같은 반열에 두고 이야기하는 건 무리가 있다. (5)초등학생도 휴대전화를 보며 평양 거리를 걸어 다닌다. (6)평양 맥줏집엔 미남미녀가 잘 차려입고 드나든다.(7)북한은 강이 엄청 깨끗하다. 4대강 사업을 안 해서. (8)탈북자 80~90%는 조국 북녘 땅이 받아준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들이 어떻게 ‘종북’일까. 신은미씨는 수차례 평양 여행을 다녀왔다. 평양 사람들은 기타 다른 지역에 비해 중산층 이상이 거주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곳이라면 김정일 정권에 우호적인 주민들이 많은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평양 거리에 (비록 국내 통화만 가능하더라도) 휴대폰이 실제로 있을 수 있고, 맥줏집에 미남미녀가 있을 수 있는 것 아닐까. 북한이 미개발 된 상태여서 강이 남한보다 더 깨끗한 것은 실제로 사실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또 신은미씨를 찾아온 탈북자들 상당수가 북녘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탈북자들이 늘 북한을 증오하며 살고 있다고, 과연 어느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신씨가 쓴 책도 꼼꼼하게 읽었다. 솔직히 눈에 불을 켜고 꼬투리 잡을만한 것을 찾아보려 노력했다. 그래도 조선일보와 보수 종편 매체들이 아무런 근거 없이 신 교수를 이렇게까지 종북으로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나름의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은 뒤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이것 하나뿐이었다. ‘이렇게 마녀사냥 당해도 되는 걸까.’ 그 어떤 구절에서도 북한 체제를 찬양하거나 그곳을 미화하는 내용이 없었다.

‘재미 교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책 내용을 요약하면 ‘평양을 중심으로 살펴본 북한 방문기’ 정도다. 북한의 평범한 주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살펴본 목격담이다. 뿔 달린 괴물들이 살거나, 군인들만 살고 있을 것 같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더라는 얘기를 담은 수필이다.

혹자는 북한을 미화하기 위해 신 교수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줬다고 비난할 수 있겠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 책은 여행기일 뿐이다. 신 교수는 르포 작가도 아니고, 북한 인권 보고서를 쓰러 간 게 아니다.

신은미씨는 미국인이기에 북한 관광 회사를 통해 비자를 발급 받고 그냥 여행을 했을 뿐이다. 우리가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것과 똑같은 과정일 뿐이다. 미국과 북한이 적대적 관계에 있기는 하지만 여행 자체가 금지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 관광 회사가 여행객들에게 자신들의 제일 발전된 지역과 좋은 모습만 보여주는 건 당연하다. 아오지 탄광이나 정치범 수용소, 꽃거지들의 삶을 관광 상품으로 기획할 리가 없다. 남한의 관광 회사들이 ‘영등포 쪽방촌 투어’ 상품을 개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 신은미씨는 지난 2012년부터 50회에 걸쳐 북한 방문기를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다. 사진=오마이뉴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평양의 모습이 북한의 전부가 아닌데 당신의 책에는 그 점이 너무 부각 되어 있다” 이런 비판은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비판의 대상이지 종북으로 몰릴 일은 아니다. 또 여행객에게 북한이 보여주지 않는 북한 체제의 비참한 현실을 함께 보고 오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외국인들이 한국의 빈민가를 살펴보지 않고 서울만 살펴보고 갔다고 비판하는 것이 엉터리인 것과 마찬가지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신은미 교수에게 ‘북한에서도 콘서트를 열어보라’고 비판한 적 있다. 과연 신씨가 그러한 콘서트를 열 수 있을까. 내가 아는 탈북자 여럿에게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물었다. 탈북자들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답했다. 그렇게 하면 신씨는 추방당할 것이라고 답했다.

아마도 신씨는 북한에서는 불가능한 그러한 콘서트가 민주주의 사회인 남한에서는 가능할 것이라 봤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순진하게도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말이다. 남한 사회는 신씨를 잡아다 조사하고 강제 출국시켜버렸다. 신씨는 아마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북한이나 남한이나 무엇이 다를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남한이 과연 북한보다 더 우월한 민주주의 체제를 갖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사실 신씨는 내게 ‘북한에서 허락 한다면 통일 콘서트를 얼마든지 열고 싶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들에게 ‘여러분이 아는 것처럼 남한 사람들이 미제에 억압당하면서 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시골에 가도 집집마다 차가 한 대씩 있을 정도로 남한 경제는 부유하다’는 점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서로의 안좋은 모습만 부각하면 남북한 주민들은 영영 대화하고 살수 없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사실 신씨의 이러한 주장은 수년 전과 지금 전혀 달라진 게 없다. 황석영 소설가가 1989년 북한을 다녀와서 쓴 <그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 방문기 수준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이 정도의 주장을 하는 것이 이상할 게 전혀 없던 시대가 있었다. 문화부가 그의 책을 우수도서로 선정한 건 어렵지 않게 수긍이 간다. 우리는 분명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고 믿었다.

▲ 허재현 한겨레 기자



그런데 이제는 이런 주장을 하면 종북으로 몰린다. 신 교수는 변하지 않았는데 우리 한국 사회가 최근 몇 년 사이 변한 탓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조선일보와 종편매체의 악영향이 크다. 과거에는 ‘종북 몰이’ 보도가 나오면 ‘이 정도 내용을 갖고 무슨 종북이냐’고 코웃음 쳤던 대중들이 이제는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게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증되지도 않은 조선일보 보도를 두고 마녀사냥에 동참했다.

‘대중은 처음에는 거짓말을 믿지 않지만 거짓말을 계속 들려주면 그것을 믿게 된다’. 나치 선동가 괴벨스가 한 말이다. 종편들의 거짓 보도에 대중은 처음에는 코웃음 쳤지만 이제는 그들의 보도를 너무 많이 보다보니 이것이 진실인지 과장인지 헷갈리는 지경에 달한 것 같다.

‘신은미 종북 몰이 사건’은 우리 사회 민주주의가 벼랑 끝 위기에 놓였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언젠가는 신 교수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언론인들이 노력해야 한다.


원문보기: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21312#csidx315961416e2d3fd923ca503f3d0d249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