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26

‘깨모도 못 붓고 뻐꾹새 울뻔했네’



‘깨모도 못 붓고 뻐꾹새 울뻔했네’



양양(송천리) 이옥남 할머니 산골농사 일기책 펴내
20년간 고이 써온 일기 정리





양양 서면 떡마을에 살고 있는 이옥남 할머니가 20년간 고이 써온 자신의 일기를 모아 만든 이야기책을 펴내 화제다.
올해 88세로 고령인 이 할머니(본보 841호 2008년 1월22일자 보도)는 지난달 ‘깨모도 못 붓고 뻐꾹새 울뻔했네’라는 산골농사 일기를 책으로 펴냈다.
이 할머니는 머리글에서 “내가 쓴 것도 없는데 무슨 책을 다 낸다고 하네. 벌써 나와 동갑은 간 사람도 몇 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오래 사는 건지 걱정이 된다”고 소회했다.
할머니의 산골농사 일기는 지난 20년간 1년 365일 생활 속에서 겪은 이야기들을 짧은 글로 수록한 것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인생 역정을 순수하게 담아내고 있다.
또 손자들에게 들려주던 재미난 옛날이야기와 농촌에 살면서 주변의 자연과 동물을 의인화해 때론 친구처럼, 때론 자식처럼 주고받는 이야기는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여유를 느끼게 한다.
이 할머니는 7월의 일기, ‘깨는 줄어들고 풀은 크고’에서 ‘깨밭매기를 하면서 한 달 동안 비가 와서 못 가 봤더니 깨는 줄어들고 풀은 크고, 얼마나 잡초가 무성했는지 깨가 안 뵈킨다’며 ‘땀에 옷이 젖고 짜게 됐지만 다 매고 나니 맘이 시원하고 깨가 좋아하는 게 완연하다’고 농사 일 뒤의 기쁨을 전했다.
평생을 농사를 짓고 집안일을 하면서 아이들과 손자들을 돌봤던 이옥남 할머니의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지난해 1월부터 손자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일기를 정리해 이야기책으로 펴낸 이 할머니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송천리 떡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연 속에서 살고 있다.
아직도 시집오면서 꽂았다는 은비녀를 머리에 곱게 꽂고 있는 이 할머니는 9살 때부터 화전 밭을 매기 위해 잡기 시작한 호미를 언제나 들고 들녘 깨밭의 김을 맨다. 이 할머니는 호미와 볼펜이 함께 늙어가는 평생 동무라며 주름진 웃음을 짓고 있다.
오빠의 어깨 너머로 배운 글자를 부엌 아궁이 앞에서 군불을 때며 탄 재에다 써보고 또 쓰면서 어렵게 글을 깨우친 이옥남 할머니는 20년간 간직한 이야기보따리를 이번에 책으로 내놓으며 자연과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인지를 일깨우고 있다. 

 김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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