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20

알라딘: 일본적 마음 - 김응교 인문여행에세이



알라딘: 일본적 마음 - 김응교 인문여행에세이

[eBook] 일본적 마음 - 김응교 인문여행에세이

김응교 (지은이) | 책읽는고양이 | 2018-07-22



종이책정가 14,000원
전자책정가 9,800원
판매가 9,800원 (0%, 0원 할인, 종이책 정가 대비 30%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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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수 240쪽 (종이책 기준) | ISBN : 9791186274415
제공 파일 ePub(33.23 MB)

7.8

eBook > 인문학 > 인문 에세이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응교 교수의 일본 인문여행에세이. ‘예술’, ‘독서’, ‘사무라이’, ‘야스쿠니’ 총 4장 속에서 와비사비, 하이쿠, 우키요에, 마쓰리, 무라카미 하루키, 사쿠라, 사무라이, 야스쿠니 신사 등 한국인이 가장 궁금해 하는 일본인의 마음을 섬세하게 소개한다. 일본 어디를 가더라도 보다 깊게 보고 느끼고 분석할 수 있도록 돕는다.




1부. 예술

▲와비사비 미학
그윽한 집과 초가지붕
다도의 은근한 멋
하이쿠, 생략의 멋
영화, 침묵과 정지의 아름다움
와비사비와 동양문화

▲근대의 첫장, 풍속화 우키요에
근대사회의 첫 장, 풍속화
성의 자유화 혹은 상품화
카츠시카 호쿠사이
일본 만화의 시초, 호쿠사이 만화
호쿠사이와 자포니즘

▲거대한 소리의 물결, 산쟈 마쓰리
도쿄의 여름은 소리로 온다
마쓰리로 가는 길
아사쿠사는 쉬지 않고 말한다
아사쿠사에는 복이 떠돈다
사람도 신이 된다
일본의 3대 축제 축제는 어디에 있는가

▲일본 축구 대표팀의 상징, 까마귀
숙명 혹은 괴기담의 미학
어디에도 까마귀
기적의 까마귀


2부. 독서

▲일본 시의 비밀, 마쓰오 바쇼
일본 시의 비밀:7·5조와 암시의 힘
하이쿠, 암시의 힘
쓸모 있는 과거, 7·5조

▲오스기 사카에
놀면서 '일범일어(一犯一語)'

▲아시아적 신체, 양석일
모든 차별은 신체에 대한 표현에서
아시아적 신체
용산적 신체
다시 미친개 이야기

▲치유와 단독자의 하루키 놀이공원
하루키와 여행하기
하루키 시뮬라크르
완전한 가공, 라이팅 전체주의
엄마 이미지
혼자말, 무의식의 세계를 쓴다
하루키 문학의 장치들
하루키 문학의 음악들
가장 일본적인 문학
치유와 단독자, 힐링의 문학

▲그로테스크 리얼리스트, 메도루마 슌
그로테스크 리얼리즘

▲『만엽집』과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만엽집』과 일본 현대문학
만엽집의 연시


3부. 사무라이(侍)

▲사쿠라에 대한 명상
죽음의 문화에 대한 메모
눈부신 죽음의 꽃, 사쿠라
명예에 죽고 사는 사무라이 문화
사요나라 '그렇다면'의 철학
일본 문화의 한 원점, 죽음

▲수치의 문화
부끄러움보다는 죽음을 택한다
죄의식과 부끄러움
수치심을 잃어버렸을 때
부끄러움을 찾는 사람들

▲사무라이의 자손
칼에 숨겨진 일상용어
사무라이의 역사
츄신구라, 사무라이의 이념
의리와 긴장의 사회

▲가부키, 츄신구라
가부키로 보는 복수 사건
츄신구라의 매력


4부. 야스쿠니(靖國)

▲정로환의 정체
정로환의 역사
야스쿠니 신사에 진열된 정로환

▲야스쿠니를 아세요?
246만 5,000명의 신
윤봉길이 죽인 일본의 신
가미카제 인간어뢰, 소년특공대
야스쿠니(靖國), 평화의 나라?
끓는 마그마는 보이지 않는다
▲야스쿠니 신사와 사카모토 료마
박물관 이야기 사카모토 료마와 야스쿠니 신사
시바 료타로의 일본판 오리엔탈리즘
사실과 공생의 자존심

▲야스쿠니 신사, 해결될 수 있는가
야스쿠니의 단일 민족주의

고맙습니다 / 매혹에 대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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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김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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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세계문학은 한국문학의 거울인가>,<권력과 교회>,<부러진 나무에 귀를 대면> … 총 54종 (모두보기)
SNS : http://twitter.com/Sinenmul
소개 :
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대 교수.

연세대 신학과 졸업, 연세대 국문과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7년 『분단시대』에 시를 발표하고, 1990년 『한길문학』 신인상을 받았다. 1991년 「풍자시, 약자의 리얼리즘」을 『실천문학』에 발표하면서 평론 활동도 시작했다. 1996년 도쿄외국어대학을 거쳐, 도쿄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했고, 1998년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로 임용되어 10년간 강의했다. 2014년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기초교양대학 교수로 있으며,
.
시집 『씨앗/통조림』,『부러진 나무에 귀를 대면』과 평론집 『처럼-시로 ...






이 책은 아시아적 관점에서 일본 문화와 그들의 정체성을 관찰하고 연구한 인문에세이다.
지진이 난무하는 섬나라 일본, 폐쇄된 곳에서 그저 숙명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민초들과 막강한 무사의 나라. 이 속에서 깊게 뿌리 내린 ‘체념’, ‘집단주의’, ‘부끄러움과 수치’, ‘죽음’의 문화를 통해 문학평론가인 저자는 오늘의 일본을 읽고, 비평의 글을 써내려간다.
일찍이 미국인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적국인 일본의 이중성에 대해 《국화와 칼》로서 비판했다면, 이 책은 한국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더 나아가 제국주의 일본으로부터의 반성을 요구하는 아시아인이라면 짚고 넘어가야 할 일본의 민낯을 찾아가는 안내서이다.

왜 일본사람은 찬란한 벚꽃을 보며 죽음을 떠올리는가.
왜 단순하고 밋밋한 내용의 영화 '철도원'을 보며 한없이 눈물흘리나.
"잇쇼켄메이" 왜 일본사람들은 사소한 일조차 목숨걸고 하겠다고 습관처럼 말하며,
어째서 대를 잇는 장인이 많을까.
하루키는 일본인의 무엇을 대변하는가
야스쿠니 신사, 그들은 어떻게 신을 만들었고, 왜 반성을 모르는가.


체념의 문화
피할 수 없을 때, 단 하나의 선택은 받아들임 뿐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상이 자기 문화 속에 들어왔을 때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일본인의 생활방식 중 하나다. 지진 같은 재해의 비극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폐쇄된 좁은 공간에서 어떤 숙명도 피할 수 없을 때, 단 하나의 선택은 ‘받아들임’인 것이다. 어느 나라보다 많이 발달되어 있는 괴기담 시리즈도 일본의 이런 특성에 기반한다. ‘무섭다’는 호기심이 일상에 스며든 결과이다. 헤어질 때 쓰는 인사말인 ‘사요나라〔左?なら〕’라는 말 속에도 체념의 철학이 깔려 있다. ‘사요’는 즉 ‘그렇다면’ 일 뿐이다. ‘현실이 그렇다면 그대로 이 사실을 솔직히 받아들여 헤어집시다’ 라는 의미인 것이다.
에도 시대의 화가 호쿠사이가 그린 「후카쿠 36경」을 보면, 후지산도 삼킬 듯이 덤벼드는 파도에 마구 흔들리는 세 척의 생선잡이 배가 있다. 배에 탄 사공들은 피할 수 없는 거센 파도 앞에 납작 엎드려 있다.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을 대하는 자세다. 이런 풍경은 자연과 재해에 맞대응하는 일본인의 집단심리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오늘날 이들의 집단정신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마을축제인 마쓰리(祭り)다. 일본인 스스로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이 흥분의 공통분모는 하나의 제의가 주는 동질성의 힘, 피의 힘이다. 1억의 수다스러움은 미코시〔神輿 : 가마, 수레〕로 상징되는 집단정신으로 모아진다. 한편, 집단적인 힘이 자신들의 울타리를 벗어났던 지난 날, 무시무시한 이기와 차별의 결과를 낳았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죽음의 문화
목숨 걸고 일하고 죽음은 가볍게

지진이 빈번한 일본이란 땅은 죽음과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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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다.
시험안끝났다 ㅣ 2018-02-07 l 공감(1) ㅣ 댓글(0)



생각보다 책의 밀도가 높아서 놀랐다. 보통 이런 류의 책이라면 감상젖은 여행잡지 수준으로 빠지기 쉬운데, 저자의 내공 덕분인지 비판과 성찰이 곳곳에서 묻어나와 (제목 그대로)'일본적 마음'에 대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저자의 주관도 많이 드러나지만 그것은 고개가 끄덕여지는 귀결이다.
Foucault0114 ㅣ 2018-01-02 l 공감(2) ㅣ 댓글(0)








총 : 12편




겉으로는 매우 자유로운 것 같지만 실제로는 책임을 지지 않고 늘 희생양이 된 것처럼 카이지 ㅣ 2018-06-19 ㅣ 공감(0) ㅣ 댓글 (0)


한 나라를 뭐라고 정의하는 것은 내 죽음의 순간을 예측하는 것만큼 무모한 짓이다. 민족주의 정서야 말로 지배세력이 동원하는 뻔한 레토릭이다. 그럼에도 국가가 존재하고 서로 싸우고 으르렁대는 것은 인간 심리에 뿌리내린 집단주의 때문일까? 곧 어딘가에 속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생명체의 본능같은 것이다.


<일본적 마음>은 잘 쓴 책이다. 일본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내세워 억지춘향식으로 꿰어맞춘게 아니라 단편적인 감정을 조각조작 이어붙이고 있다. 도리어 통일성이 없어 보이는 이런 편집이 일본을 보다 다채롭게 바라보게 한다.


특히 하루키에 대한 평가는 독특한다. 일본에서 무라카미는 탈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알려져있는데 지은이는 하루키야 말로 전형적인 일본 작가라고 평가하고 있다. 겉으로는 매우 자유롭게 개인주의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책임을 지지 않고 늘 희생양이 된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루키 소설의 주인공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멋대로 떠돌면서도 자신이야말로 가장 큰 피해자라고 강조한다. <해변의 카프카>를 보라.

이밖에도 다양한 일본 군상을 재미있게 보여주고 있다. 일본 문화 더 나아가 일본 사회에 관심있는 분들을 읽어볼 만핟.

...<일본적 마음, 그 안의 한국적 마음은>... 한사람 ㅣ 2018-01-18 ㅣ 공감(10) ㅣ 댓글 (2)


<일본적 마음, 그 안의 한국적 마음은>

2018년도 보름이 지났다. 이맘때가 되면 모두들 신년의 마케팅 트렌드들을 이미 꾀고 있어 올해 유행할 아이템들에 관한 기사가 쏟아진다. 그중에 많이 노출된 단어는 단연 ‘워라벨’이다. ‘워라벨(Work-life Balance)’이란 일에만 치중하지 않고, 일과 생활에서 균형을 잡는 것을 뜻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워라벨을 원한다고 한다. 아니 어느 세대나 워라벨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없을 듯하다. 그런데 솔직히 이미 허구헌날 밤새고 야근을 밥먹다시피 한 청춘을 지나와서 그런지 이런 단어를 접하면 어쩐지 일안하겠다는 소리로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인문책이야기 하면서 비즈니스 트렌드를 언급하는 이유는 이 책에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이 바로 하루끼에 대한 저자의 평가, 그리고 일본 문학에 대한 견해였기 때문이다. 하루끼는 올해 빈번하게 트렌드로 회자되고 있는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인물이다. 작은 행복이 목표로 착각될 만큼 평범을 향한 열망, 보통으로서의 존재의식, 작은 만족에 대한 단상들이 유행처럼 쏟아지고 있다. ‘소확행’은 하루키의 수필 『랑겔한스섬의 오후』에서 처음 쓴 신조어로, 갓 구워낸 빵을 손으로 찢어 먹거나, 고양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 빈둥거리는 것처럼 일상의 사소한 행복이 인생을 값지게 만든다는 의미다. 사실 부자나라 선진국 일본에서 지하철을 오가는 소시민과 참 어울리는 모습이다. 일본은 작지만 확실하고 일본인은 작아도 확실하다.




그동안 하루끼 소설은 내게 회피나 유행, 힐링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책 읽는 재미였다. 저자는 하루끼 문학이 일본인들에게 치유와 힐링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장 일본적 문학이라 말한다. 저자는 일본문학에서의 자살적 자아, 벚꽃과 사무라이 정신,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 등을 언급하며 우리에게 호감을 주기 충분한 하루끼라는 문화예술인을 이들 정서의 정가운데 관통시키고 있다. 책을 덮고 나면 이상하게도 모든 면에서 크게 와닿지 않는 일본적 마음이 하루끼로 인해 이해가 갈 것도 같은 느낌이 든다.




그중 일본인에게 벚꽃은 ‘죽음’의 의미이지만 한국인에게는 ‘꿈’이라는 표현이 기억난다. 벚꽃은 어쩐지 핀다기 보다 지는 꽃이며 흐드러지게 만개한 순간에도 곧 물안개처럼 부서지고 말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일본은 죽음이고 한국은 꿈이니 반대의 의미일까? 죽음이나 꿈이나 사라지고 말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아쉬움이 내포되어 있긴 마찬가지 아닐까. 결국 인간이나 인간과의 사랑이나 언젠가는 사라지고 마는 유한한 것들이다. 특히, 하루끼의 <상실의 시대>는 과거와 자신과 주변인에 대한 상실, 그리고 나아가 그들과 나눈 꿈, 그리고 희망에 대한 상실을 의미한다 할 수 있다. 요즘 상영되고 있는 영화 <1987>을 보면서 새삼 우리가 왜 그토록 <상실의 시대>에 공감했는지 이해가 가기도 한다. 세월이 지나온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것들은 얻어온 것들만큼이나 많다. 신기한건 잃어버린 것들을 잊고 살면서 우리는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과 일본인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그들은 쉽게 잊지 않는다.




이 책은 예술과 독서 사무라이와 야스쿠니를 소주제로 일본인의 정서를 정리하고 있지만 이들의 정서를 확인하면서 느끼는 건 일본은 우리처럼 쉽게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쉽게 잊고 잊어야 할 것들은 쓸데없이 잊지 못하는 건 아닐까. 매년 10월이 되면 노벨문학상 후보로 하루끼는 자연스럽게 거론이 되곤한다. 신간을 내면 이미 확보된 독자들로 인해 예약만 몇 십만인 작가이다. 이런 하루끼라는 문학현상은 일본인에 대한 반감이나 우리가 가져야 할 역사의식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문학을 통한 공감대 형성, 인간이라는 보편성을 주제로 한 그의 치유메세지가 잘못되었다거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독자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우리는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일본을 향한 양가적 감정은 일본의 문화예술적 요소를 좋아하고 즐기고 지향하고 숭상하거나 모방하고 우대시 하는 문화지향성이 뒷면이라면 위안부나 독도, 야스쿠니 신사참배등과 같은 역사적인 무례함에 분노를 느끼는 민족적 거부감은 마치 동전의 앞면처럼 한 몸이 되어 버린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일본을 알려하고 이해하고 살펴볼수록 돌아오는 자기이해는 한국인의 모순된 심리인 듯하다.




허나 <일본적 마음>은 저자 자신의 일본을 향한 감정의 연결없이,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하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호불호를 표하고 시비심을 표현하는 것이 꼭 나쁜 것인가. 좀 더 저자의 솔직한 평가, 견해, 개인적인 심정들이 더 드러나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왜 우리는 일본에 대해서는 호불호를 이야기하면 안되는 것인가. 왜 사실만 이야기 하고 편견을 남기면 안되는 것인가. 왜, 일본적 마음을 한국적으로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인가.








일본에 다가서기 Foucault0114 ㅣ 2018-01-07 ㅣ 공감(3) ㅣ 댓글 (0)
이 책으로 도쿄 신주쿠에 사는 25세 청년의 마음을 알 수 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오‘다. 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책의 의의는 어디에 있을까. 일단 책의 제목은 일본적 마음이다. 일본인의 마음이 아닌 일본‘적‘ 마음이다. 저자가 말미에 말한대로 ‘~적‘이란 표현에는 모호한 확장성이 들어있다. 저자가 의도한 바는 일본인 개인의 심리구조를 들여다보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루고 이뤄나가고 있는, 민족서사의 근간이 되는 그 정신들에 대해 다가서고자 하는 것이다.

책은 와비사비로 시작해 야스쿠니로 끝난다. 저자는 어떤 일관된 일본론을 펼치지 않는다. 파편적이고 선택적이다. 정확한 통계를 제시한 것이 아니니 가끔은 정말 그런가하는 의문도 든다. 또 사토리 세대로 대변되는 최근의 모습도 나오지 않는다. 저자가 선택한 각각의 주제들에 해당하는 내용과 함의를 파헤칠 뿐이다. 그럼에도 그렇게하는 이유는 이 방식만이 일본적 마음이라는 실체없는 공백에 다가서는 유의미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 역시 언제나 실패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이 일본적 마음이기 때문이다.

책에는 인상적인 내용들이 많다. 산쟈 마쓰리에서 보이는 일본인들의 열기라던가 하루키에 대한 비판, 죄의식 보다는 수치심이라는 일본인, 사카모토 료마에서 야스쿠니로 이어지는 고리 등등. 이 작은 책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더 깊은 논의로 확장시킬 수도 있다. 밀도는 높지만 가볍게 쓰여 일본에 대한 흥미를 돋우기에도 훌륭하다. 책을 다 읽을 즈음이면 일본을 다룬 다른 책을 찾아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공은 모두 저자의 오랜 내공 덕분이다. 작지만 묵직한 책이란 이런 것이다.

일본의 속살을 보여주다 소근이님 ㅣ 2017-12-31 ㅣ 공감(1) ㅣ 댓글 (0)


오디오 클립 한 주 한 책 서평단 김마리아



일본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이 있는 구세대로 이 책의 제목이 호감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1부의 첫 장을 읽고 나서 처음의 생각을 까마득히 잊게 되었다. 일본의 정원, 예술 등의 설명을 볼수록 내 생활 속의 많은 부분이 일본의 문화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본정원의 초가지붕과 와비사비의 미학이 우리나라의 전통 정원과 다르면서도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풍속화인 우끼요에는 일본 서민들이 누릴 수 있었던 예술작품이었다. 소바 한 그릇 정도의 가격으로 살 수 있던 미술작품은 ‘겐또’를 맞추다라고 우리말에 남아 있는 일본어의 흔적이 되었다.



일본인들의 독서에 대한 열정은 많이 알려져 있다. 무사들도 전쟁에 나가기 전에는 혼자 독서를 하며 침묵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오사카에 여행을 갔을 때 그곳의 서점에서 정신없이 구경한 기억이 있다. 수도도 아닌 곳의 서점이 우리나라 서울 도심 서점의 장서들 보다 훨씬 다양해 보였다. “영어로 번역 되지 않은 책은 있어도 일어로 번역되지 않은 책은 없다”는 말을 과거에 들은 적이 있다. 읽지도 못하는 책을 구경하는 일이 정말 즐거웠다. 그래서 그들의 독서에 대한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의 일본인들이 전통적으로 좋아하는 시와 문학에 대한 안내가 있다.



무사들은 체면과 명예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음식을 훔쳐 먹었다는 오해를 풀기 위해 아들의 배를 가르고 음식점 주인도 죽이고 자신도 할복했다는 기록은 충격이면서도 그들의 정신세계를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언어는 정신을 지배한다. 일본어 속에는 사무라이 정신이 들어 있다. 진지하다 신켄(眞檢)은 진검 앞에서는 진지하다는 의미. 배신 ‘우라기리’는 뒤에서 찌르다. 잇쇼켄메이(一生縣命) 열심히는 목숨을 건다는 뜻이다. 이런 언어를 사용하는 일본 사람들의 겉모습이 조용하고 소심해 보이는 것은 착가일까???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소개는 막연하게 알고 있던 그곳의 모습을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다. 왠지 그들의 광적인 신사참배가 이해되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라를 위해 죽은 사람들이 신이 된다는 설정은 일제시대 이후 독립 운동가들의 홀대받음에 분개했던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주는 아이러니이다.



막연하게 알던 일본의 속살을 보여준 <일본적 마음>은 주변국가의 일인으로 한 번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책의 사이즈도 크지 않아 한 손에 들어오기 때문에 들고 다니며 읽기에 편리하다. 그런데 사진이 들어 있는 쪽에서는 작은 크기 때문에 사진의 맛을 제대로 보기다 어려운 점이 아쉽다.

일본 문화의 핵심을 짚다 라떼 ㅣ 2017-12-26 ㅣ 공감(3) ㅣ 댓글 (0)


일본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는 이가 있다면 단연코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진짜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삐딱한 생각이 들었다. 위안부, 신사참배 등 되풀이되는 역사 반성 문제나 정치인들의 극우발언과 자국이익에만 급급한 모습을 볼 때, 또는 한일전을 할 때는 반일적인 관점에서 일본을 염두에 두지만, 실제로 일본에 대해 알고자 하는지 의문이 든다. 감정만 있고, 이성과 논리가 없는 비판을 해오지 않았던가 하는 자성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런 나의 상태에 물음표를 던져주었고, 생각의 타래를 풀어주었다. 지진이 난무하는 섬나라 일본, 자연적인 태생에서부터 우리는 일본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일본은 사무라이의 나라다. 영주에게 지어올린 밥에서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나오면 목에 베어지는 공포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폭정이다. 표지의 호쿠사이의 그림에도 나타나듯 민초들은 그저 거대한 파도 앞에 납작 엎드리는 체념의 삶을 사는 수밖에...

오늘날 일본인들도 잘 알지 못한다는 사무라이 문화의 잔재는 곧 일본 문화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명예가 아니면 수치, 수치를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는 사무라이 문화. 이것은 역사적인 반성을 모르는 일본을 다시 읽어낼 수 있는 키워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 속에 묻어있는 일본의 정서를 읽는 재미도 읽는 맛을 더한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저자의 표현과 밀도있는 구성도 좋았다. 정로환의 실체나 료마 이야기로 풀어주는 일본의 역사관도 쉽게 일본을 읽을 수 있는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생략 속에 더 많은 것을 말한다는 일본의 정서, 와비사비 문화, 전통적인 멋을 중시하는 것 등등 보다 배우고 싶은, 아름다운 정서도 접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우리 나라도 민중의 삶이 녹록치 않았지만, 일본 민초의 삶은 더욱 비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년 전쯤인가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표절의 문제는 제쳐두고,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읽었지만, 정작 일본에 대한 인식에는 그저 반일감정을 고착화 시키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점에서 오래간만에 일본에 대해 읽기 쉽게 써진(물론 내용은 깊다) 이 책이 일본을 대하는 우리의 사고에 대중적인 터닝포인트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싣게 된다. 보다 성숙하게 일본을 보고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웃 나라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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