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1

한청훤 160713 · 반일감정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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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감정의 기원
제목 까지 써놓고 보니 거창한데 그냥 평소 생각하던 잡상에 불과하니 그리 거창한 글은 아니다. 어제 자위대 행사 논란 관련 포스팅을 올렸더니 어느 페친 분께서 페메로 장문의 항의의 반론이 담긴 메시지를 보내주셨고 그걸 보고 곰곰히 생각 걸 써보려고 한다.
이 분의 반론은 한마디로 일본은 36년간 역사상 유례가 없는 극악무도한(위안부나 생체실험 처럼) 식민 통치를 조선에 가했기 때문에 독불 관계 정상화와 직접 비교가 안된 다는 것이며 또한 현재 일본의 행태가 과거의 잘못을 미화하고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으며 그럼으로써 실질적으로 과거 군국주의 시대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반일적 포지션은 마땅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다 한국은 친일파의 후손들이 장악한 나라이므로 국민들이 자위대 행사 같은 것에 민감한 건 당연한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나도 단기간에 그리고 비교적 간접적 방식이었던 독일의 프랑스 점령과 일본의 조선 식민 통치는 직접 비교 대상으로 삼기에 적절하지 못하다고는 생각한다. 다만 어제 링크된 뉴스에 어느 분이 댓글로 독불 관계를 예로 들길래 사실관계가 틀리다는 걸 지적하기 위해 언급했었다고 할 수 있다.
일단 일본이 조선에 대해 역사상 유례가 없는 잔악무도한 식민통치를 했는지 비슷한 사례랑 비교 해보는 게 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일단 식민통치의 기간을 대부분 반세기 이상, 심지어 100년 가까운 식민 통치를 했던 유럽의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영국의 인도 통치에 비하면 아주 긴 시간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통치의 폭력성과 잔혹성을 따지자면 대부분의 피지배 민중을 말 그대로 노예로 취급하고 툭하면 대량 학살을 저질렀던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지배에 비해 일본의 조선 지배가 전 세계에서 가장 악랄했는지 단언하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특히 벨기에의 콩고 지배와 독일의 나미비아 등 서아프리카 식민 지배가 악랄하기로 명성이 자자한데, 만약 벨기에의 콩고 지배 시 했던 짓을 보면 일본 총독부가 전 세계에서 가장 사악한 악마인가 라고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고 느낄 것이다. (http://namu.mirror.wiki/.../%EB%A0%88%EC%98%A4%ED%8F%B4...)
위안부와 생체실험을 언급하셨는데 위안부 제도 같은 악랄한 짓은 프랑스도 알제리 같은 자신들 식민지 국가에도 시행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은 위안부에 자신들 본국인들도 조선인들과 끼어 넣었지만 프랑스는 순수 알제리 여성들만으로 조직했었다는 것이다. 생체실험은 나치의 생체실험과 더불어 일본제국의 극악한 전쟁범죄 임이 틀림 없지만 실험 대상은 당시 교전지역인 중국에서 전쟁포로와 현지인들을(물론 현지의 조선 출신들이 일부 포함 되었을 것이다.)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그것이 일본의 조선 통치의 악행으로 분류하긴 힘들어 보인다.
물론 내가 이렇게 다른 사례와 비교하는 건 일본의 죄악을 정당화 하는 게 당연히 아니고 일본이 조선에게 사상 최악의 식민 통치를 했다고 단언하기 쉽겠냐는 것이다. 우리끼리야 일본은 세상에서 제일 나쁜 악마다라고 떠들어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해외에서 외국인들에게 일본의 죄악과 만행을 어필하거나 일본사람들과 토론할 때는 팩트상에 실수나 표현이나 레토릭의 오버는 치명적인 좌충수가 될 것이다. 비판을 하더라도 객관적 사실에 부합하여 적절한 수위의 표현으로 하는 것이 진정한 극일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한다.
더더욱 우리가 해외에서 일본인들과 토론할 때 말문이 막히는 지점은, 전 세계 거의 모든 식민지를 거느렸던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식민지 국가들에 대해 공식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본이 진심으로 사죄를 하지 않았다고 욕하지만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은 거짓된 마음에서라도 사죄도 배상도 하지 않았다. 일본은 실질적인 배상은 물론이요 전두환 정권 때부터 시작하여 유감에서 출발해 표현 수위를 높여가며 거의 매 정권마다 한국에 공식 사죄를 하였다. 해외에서 제3자 외국인들 앞에서 일본과 토론 할 때 일본은 유럽 등 다른 제국주의 국가와 달리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한국에 여러 차례 공식 사과와 배상을 했으며 그래서 한국의 맹목적 반일은 지나친 것 아니냐고 한다면 나는 사실 머라고 딱히 반론을 찾지 못해 입을 다물 것 같다는 생각이다.
사실 우리가 그렇게 욕하는 식민지 말기의 일본의 민족 말살 정책은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지 말고 전 세계의 식민지 통치 사례로 보자면 대단히 파격적이고 전향적인 정책으로 볼 수 도 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식민지 정부는 현지 피지배층을 자신들의 지배국 국민들과 동일한 국민으로 간주하여 동일한 대우를 하는 걸 단호하게 끝까지 거부했었다. 본국인들과 식민국인들은 반드시 구별되어 차별적인 대우와 취급을 받는 건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런 면에서 일본의 동화정책은 지배국인 일본인들과 식민국인들의 차별을 없애고 완전히 동등하게 대우하고 취급하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문화적인 차별이야 계속되었겠지만 다른 식민지 사례를 보면 분명 파격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당시 하층 일본인들은 제국정부의 조선인 동화정책에 굉장한 불만을 가지고 반발 했었다. 왜냐면 조선인이 완전히 일본인이 된다면 자신들이 누리는 약간의 기득권도 사라질 것이라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 독립운동가였다가 변절했다는 조선의 지식인들도 태평양 전쟁 때 전 세계를 지배할 것 처럼 기세 등등한 일제의 모습을 보고 수 많은 피지배층 민족들이 존재하는 일본 제국 내에서 조선인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것이 조선 민족을 위한 길이라고 현실론에 빠져 민족말살 정책을 옹호하고 친일로 변절했던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당연히 일제의 민족말살정책과 친일파들의 변절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고 이러한 측면도 있으니 마냥 욕하는 것 보다는 여러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심층적으로 살펴보고 욕하자는 것이다.
이제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반일 감정의 기원을 말해야 겠다. 일본의 악랄한 통치와 일본의 과거 잘못에 대한 거짓된 이중적 행태도 분명 반일 감정의 원인일 것이다. 하지만 타 식민지 국가들의 자신들의 식민모국에 대한 태도 보다 도 더 강렬한 감정은 단지 악랄한 통치만이 반일 감정의 원인인지 더 따져보게 만든다. 내가 생각하는 첫 번째 다른 원인은, 아마도 역사상 자신들의 아래로 보았던 나라한테 지배를 당했다는 수치심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는 나에게 페메로 반론을 보내신 분이 언급한 것 처럼, 해방 후 반민특위가 실패하면서 불철저하게 이루어진 친일파 청산 실패일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로 내가 추측하는 것은 해방 후 느꼈던 한국인들의 심리적 트라우마라 생각한다.
세번째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면, 많은 자료들을 살펴 보았을 때 최소한 만주 사변 이후 일본 제국의 대외 침략이 가속화 되고 나서부터 조선인들의 처지가 상당히 변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는 일본인들에게 차별만 받고 갑질 당하는 일방적 피해자 였다면, 일본 제국의 확대 이후에는 일본 제국의 2등 국민으로써 새롭게 일본 제국의 3등 국민, 4등 국민으로 편입된 피지배층에 대해 갑질을 할 수 있었던 제국의 가해자 신분이 추가가 된 것이다. 실제로 만주사변 이후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군과 관동군을 따라 만주와 중국에 들어가서 일본군을 등에 업고 마약이나 매춘 등 각종 불법 사업을 하고 이권에 개입하여 큰 돈을 벌었다. 그리고 현지의 만주인과 중국인들에게도 일본인 행세를 하며 각종 갑질과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태평양 전쟁 후 일본제국이 동남아시아로 까지 확대되자, 현실주의적 조선 지식인들은 조선 민중이 일본 제국에 더욱더 협력하여 일본 제국안에서 2등 국민의 지위를 확고히 하여 기득권을 더욱 누리자고 부추겼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황군 입대를 총독부에 요청하고 조선인의 황군 입대가 결정 된 후에는 조선민중들의 자발적인 입대 러쉬가 이루어 지기도 했다. 물론 초기에 일본군이 잘 나갈 때 이고 나중에 일본의 패전 기색이 짙어지자 그 때부터는 입대를 어떻게든 피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2차대전 종전 후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인들과 함께 전범으로 체포되어 연합군이 주최한 재판을 받고 사형 같은 처벌을 받았다. 일본인들은 제국 통치의 동반자이자 부하로써 조선인들을 선택하였고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신분으로 장교에서 사병 까지 동아시아 침략과 지배에 복무하였다. 흡사 독일에 점령당한 오스트리아와 스칸디나비아 출신 젊은이들이 자신들 민족을 구하겠다는 이유로 자발적으로 나찌 군복을 입고 러시아에서 붉은 군대와 맞서 싸웠듯이 말이다.
아마도 해방 후 조선인들은 기쁘면서도 당혹감에 빠졌을 것이다.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며 을질 당하는 입장과 갑질을 한 입장이 모두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마도 조선인들은 가해자와 갑질 한 기억은 모두 잊기로 전 민족이 암묵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선택을 한 것 같다. 남이든 북이든 조선인들의 자랑스런 항일 독립 투쟁만 기억에 남기고 일본인과 함께 동아시아를 침략하고 통치한 수 많은 황군 조선인들은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마치 전후 프랑스가 나치 점령 시절을 레지스탕스가 활약했던 것 만 남기고 적극적으로 나치에 협력했던 흑역사는 공식 역사에서 지워버렸듯이 말이다.
이러한 민족의 집단 망각은 일본인들은 완전한 가해자, 조선인들은 완전한 피해자라는 서사에서만 가능했다. 그래서 일본인들의 사과는 무시하고 일본인들의 망언과 과거서 미화만을 바라보며 일본이 뉘우치지 않고 저렇게 여전히 사악하니 한국의 반일 감정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라 의문을 품지 않았다. 일본인이 완전한 가해자이며 조선인이 그 가해자에 조금이라도 자발적으로 협력한 것을 완전히 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래서 이러한 역사 망각의 트라우마가 현재 한국의 반일 감정 중 일부이지 않아 생각한다. 물론 결정적인 원인이 아니라 여러 이유 중 하나라는 이야기다. 나는 우리가 일본의 식민 통치와 당시 조선인들의 처지에 대해 보다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바라봐야만 진정한 극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한국에 보편적으로 퍼져있는 단편적 편파적 반일 감정에 딴지를 걸고 싶어서 이런 다수에게 불편을 한 글을 써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한국인은 순수한 피해자라는 맹목적 민족주의 신화와 서사는 한국 사회가 보다 성숙해지고 발전하는 데 별로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Soon Ae Choi, Okjin Park and 18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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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뭐 저런 감정론 제기하는 분들의 주장대로라면 국교 단절 루트로 가는 게 맞는 건데, 그럼 국교 단절하자는 거냐고 반문하면 그건 또 아니라고들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냥 감정이 그러한 것이구나 하고 더 이상의 토론이나 설득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분 나빠서 죽겠다는 데 뭐 별 도리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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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앞으로 더 심하게 갑질할 중국만 없었다면 지금 처럼 한일관계 골때리게 유지하고 살아도 별 문제 없다 봅니다
  • 좋은 글입니다. 그런데, 건들지 말아야 할 부분을 건들인거 같다는 느낌이. 저의 의견에서는 현재의 반일 감정은 신앙적 기반을 가진 해방이후의 민족주의적 스토리 라인에서 시작한거 같은데. 이거는 신앙적인지라, 건설적인 방향으로 가기가 어려운 부분인데, 위 글에서 저자분께서 잘 건들이신거 같지만 동시에 어떠한 반발을 받으셔야 할지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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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가 셀럽도 아니고 듣보잡 장삼이사라 딱히 손해볼 것도 없고 별 걱정 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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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보다 더하죠. 중국과 외교적으로 충돌하지만 경제적으로는 협력을 유지하는게 현명한 전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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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대한민국 외교적 상황이 약간 프랑스랑 비슷합니다. 독일이 부상하기 전까지 프랑스 백년 숙적은 영국이었으나 독일이 떠오르니 원수였던 영국과 손잡고 동맹맺고 1, 2차 대전 대응하고, 다시 2차 대전 끝나니 미국, 소련대응한다고 묶은 감정 털어나고 원수인 독일과 손잡았죠. 한국은 갑질하는 슈퍼 강대국 중국 바로 앞에서 외교적으로는 일본과 손잡는게 맞는데 국민정서가 허용을 안해서 그냥 한미동맹만 의존하며 멀뚱히 있는 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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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일본에 대한 반감은 정부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전임 통치자를 철저히 왜곡하고 부정하는 전술을 썼던 이승만 정부와, 정권 정통성을 지키기 위한 반일 민족주의 사관 교육을 펼쳤던 박정희 정부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봅니다. 덕분에 실제 그 시절을 살아보지도 않은 후세대들이 일본을 허구의 거대한 악자로 인식하게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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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각 플러스 교육이라 봐야겠네요. 직접 겪은 세대는 고의적 망각, 후세대들은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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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40분 남은 할머니들을 생각하면 통탄스러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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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세요? 할머니분들과 우리가 우리 역사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자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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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고싶은말은 생각안해봤어요..
    • 읽고 느낀점을 적은건데 혹시 언짢으시면 죄송합니다
  • 가장 큰 원인은 1965년 한일협정을 졸속으로 추진하고-일제 징용 및 그 당시 피해자들에게 지급했어야 할 보상금을 제대로 전하지 않은 당시 정부의 문제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졸속이든 아니든 별개로 65년의 협정으로 일본은 식민지배에 대한 경제적 및 법적인 책임을 모두 끝냈는데 이 사실을 그 이후로도 제대로 알리지 않는것 같습니다. 최근 몇년의 언론을 보면 이런 기조에 편승해서 더더욱 반일감정을 부추기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사과도 배상도 하지 않는 파렴치한 국가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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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의 말대로 일본의 식민통치가 '유례없이 가혹했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없다고 봄. 다만 '반일의식'이 '민족주의' 차원에서 형성된 이유가 (상당 부분 그렇겠지만 100%) 이승만/박정희 독재정부의 상징조작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음.
    '반일의식'과 '민족주의'가 강렬하게 링크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유례없이 가혹하지 않았던 전향적인 식민통치'의 방식 때문이었다고 생각. 식민모국 중에 식민지를 '내선일체'식으로 동화시키려고 한 경우는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없었다고 생각. 즉, 한국인들의 입장에선 식민지 자체만이 문제가 아니었고 민족 정체성이 완전히 소멸되고 일본인으로 편입될 뻔한 순간을 지나쳐 온 것임. 한국 민족주의의 기원을 식민통치에서부터 잡느냐 개화기에서부터 잡느냐로 본다면 후자라고 보는 편인데, 어쨌든 막 생겨난 민족 정체성이 빈사 직전까지 갔다가 죽지 않고 살아난 상황에서의 정서적 쏠림은 어쩔 수 없이 강렬했을 것이라고 생각.
    전근대 시대부터 서로 잘 안다고 생각했고 혈연적으로도 상당히 유사했던 한일간의 특수관계가 근대적 식민모국-식민지 관계로 전환되면서 생겨난 상당히 특수한 양상의 변태적인 치정극이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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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렇지, 만약 일본이 미국과 적당한 시기에 쇼부보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조선은 일본안에 완전히 녹아들었겠지, 그 상황에서 아무리 선방해서 정체성 잘 보존해 봐야 대브리튼 안에 잘해야 스코틀랜드 정도, 그리고 그렇게 녹아들뻔한것도 강압 보다는 일제의 유혹과 회유측면이 더 컷으니 민족 정체성에 대한 집착이 강한 쪽에서는 굉장히 그 당시를 위험했던 상황으로 기억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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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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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시대때 조선인은 말하자면 합스부르크 제국의 헝가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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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넵, 2차 대전 때 나치제국 내부 스칸디나비아인 처지하고도 비슷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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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이 지옥인 것은 자기 눈에 자신만 커 보여서라는데, 모든 사태를 한 발자국 떨어져 바라봤을 때 일본의 식민통치가 타국과 비교해봤을 때 유래없을 정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니 더욱 착잡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제국주의 시대엔 우리가 당한 것 못지않게 세계적으로 처참한 일들이 많이 발생했다는 것을 새롭게 배우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 죽일넘들이고 반성해야되는 건 맞지만, 한둘이 아니니 더욱 막막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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