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27

알라딘: 근대 일본 여성 분투기

알라딘: 근대 일본 여성 분투기

이은경 (지은이)한울(한울아카데미)2021-02-19


양장본416쪽

책소개

"그 때, 일본의 여자들은 뭘 했지?" 근현대 일본의 역사에 관한 이야기다. 
동시에 근대 일본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본의 근현대사를 다룬 책은 많이 있으나, 그곳에서 여성의 존재감은 희박하다. 비록 시대별·사안별로 여성 관련 항목을 만든 책이 늘어났다 하더라도, 여성 항목을 따로 정했다는 것 자체가 여전히 여성의 존재가 역사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근대 일본 여성 분투기>는 이러한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여성'과 '역사'를 두 축으로 삼음으로써 근대 일본 사회와 여성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메이지시대, 다이쇼시대, 쇼와시대를 걸쳐 일어난 일본의 크고 작은 사건들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문제를 인식하고, 또한 해결해 나가는지에 대해 적어나간 이 책은 일본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물론 여성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게도 역사와 인물의 관계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통로가 될 것이다.


목차
제1부 메이지시대: 배경과 전사
제1장 여자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도전: 쓰다 우메코와 그의 학교

제2부 다이쇼시대 1: 탐색과 방향
제2장 여성 해방의 사상과 논쟁, 1918~1919: ‘모성보호 논쟁’을 다시 읽다
제3장 여성운동의 조직화와 노선 갈등, 1919~1922: 신부인협회의 역사와 그 의의

제3부 다이쇼시대 2: 재편
제4장 여성과 ‘제도부흥’, 1923~1924: 재해인식, 도시건설 그리고 연대의 움직임

제4부 쇼와시대_전전(戰前): 참정권운동과 전쟁
제5장 여성참정권 운동과 정당정치, 1924~1932: 초기 전략과 특징
제6장 여성참정권 운동의 딜레마, 1932~1945: 운동의 지속과 전략의 변화

제5부 쇼와시대_전후(戰後): 패전과 모색
제7장 ‘여성 해방’의 현실과 이상, 1946~1950: 점령기 여성참정권과 가사 해방의 담론
제8장 전후 일본의 각성하는 모성과 평화: 일본모친대회(1955~)의 태동과 초기 활동을 중심으로

책속에서
P. 75~77 남녀의 역할을 확실히 구분해 여성에게 ‘양처현모’의 덕목을 요구하는 근대 일본의 풍조에 동의할 수 없었던 우메코는 사회에서 남자와 동등하게 활약할 수 있는 여성을 배출하고 싶어 했고, 이를 위해서는 여자를 위한 높은 수준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 남다른 경험과 개인적 신념, 선구적 안목 등이 더해졌던 쓰다 우메코라는 인물... 더보기
P. 119 (모성보호) ‘논쟁’은 출산하는 성(性)인 여성이 직업을 가지고 일한다는 문제, 즉 생명의 재생산과 생활 수단인 직업과의 양립이라는 오늘날의 문제를 가지고, 지금보다 약 한 세기 앞선 시기의 일본 여성들이 근대 일본 사회의 커다란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잡지 저널리즘을 통해 벌인 대표적 논쟁이었다. 이것은 어리석은 여성이라는 전근... 더보기
P. 174 ‘협회’가 이루어낸 ‘치경법 개정’이라는 결과는 1924년부터 본격화하는 여성참정권 획득을 위한 여성운동의 정치적 토대가 되었다. 정치 집회에 참석조차 불가했던 여성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모을 수 있게 되었고, 제한적이기는 하나 의회 청원 성공의 경험은 여성참정권 획득이라는 보다 큰 꿈을 가능하게 했다. 무엇보다 ‘협회’가 여성참정권 운동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라이초의 제안을 받고 ‘협회’에 합류해 여성운동에 첫발을 내디뎠던 이치카와 후사에의 존재 자체였다. 1923년 9월 간토대진재를 계기로 연대의 필요성에 공감한 여성들이 1924년 말 부인참정권획득기성동맹회를 발족시키는 등 여성참정권 운동을 향해 나아가는 중심에, 미국 체류 중 대진재의 소식을 듣고 귀국을 서둘렀던 후사에가 있었던 것이다. _ “제3장 여성운동의 조직화와 노선 갈등, 1919~1922”  접기
P. 207~208 아마도 여성들에게 ‘제도부흥’은 더 이상 공간적인 의미에서의 도시 재건만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자 여성으로서 품고 있던 이상적 생활의 기대를 가능하게 하는 희망이 되었던 듯하다. 그들은 제도부흥에 대한 여성으로의 요구를 확실히 함으로써, 종래의 불합리한 모든 조건을 제거하려는 바람을 드러냈다. 따라서 ‘대진재’ 직후 제도부흥을 향해 여성들이 쏟아내는 주장을 통해, 1910년대에 등장한 신여성뿐 아니라 그리스도교계, 나아가 사회주의계와 보수 중류 계층 여성들이 품고 있던 구체적인 요구와 욕망의 내용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즉, 본격적인 여성 연대가 시작되기 직전인 1923년 시점에서 다양한 입장을 대표하는 여성 지도자들이 가지고 있던 궁극적 바람이 무엇이었는지, 그들이 지향하는 방향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의미에서 제도부흥에 대한 여성들의 요구란 사실상 당시까지 여성계가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던 각종 문제의 총결산인 셈이었다. _ “제4장 여성과 ‘제도부흥’, 1923~1924”  접기
P. 231 근대 일본에서 ‘생활’은 그 자체가 여성과 정부, 혹은 지자체 등 공적 기관이 연결될 수 있는 현안이 될 수 있었다. 주부들이 자신이 책임진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을 더 나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생활 개선에 매달릴 때, ― 간토대진재 이후 도쿄의 사례에서 보듯 ― 지자체는 도시의 구획과 유통, 환경 등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생활공간을 만들기 위해 부심했다. 여성들이 소비자로서 생활의 문제에 착목할 때, 이를 수용해 시정에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진 지자체에 접근해 관계를 만들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편으로 정부는 부국강병을 달성하고 가장 중심의 가정을 단위로 삼아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 나아가 그 가정의 가장과 자녀를 효율적으로 전시에 동원하기 위해서라도 가정의 생활과 경제를 책임진 주부의 존재에 관심을 가졌다. _ “제5장 여성참정권 운동과 정당정치, 1924~1932”  접기
P. 305~306 근대 일본 여성참정권 운동의 역사란, 당시 정계의 변화 특히 주요한 대화 상대였던 정당정치의 와해·붕괴에 이은 총동원 체제에 대응해 전략을 수정해 가는 가운데 일종의 자기모순 혹은 딜레마에 빠져갔던 것처럼 보인다. 본래 부선운동이란 정당과 의회, 혹은 정당내각과 의회 정치가 이루어지던 시대를 배경으로 해 여성의 의회 진출을 목표로 했던 것이었다. …… 후사에를 비롯한 ‘동맹’의 여성들은 참정권 획득을 통해 자신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 공헌할 것을 희망하며 부선을 위한 활동을 지속했지만, 정치 체제의 변화와 전시 비상시국이라는 상황 속에 ― 의회 민주주의의 일익을 담당하려던 ― 본래의 목표와는 점점 멀어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그들에게 허용된 ‘참정’이란 자신들이 나아갈 바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수반하지 않는 것, 즉 ‘참정권’이 아닌 ‘참정’만이 제한적으로 허용된 결과였다. 그러나 설령 ‘무권자’로서 참가한 참정이었다고 해도 전후 그 책임에 대해 추궁당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_ “제6장 여성참정권 운동의 딜레마, 1932~1945”  접기
P. 328 여성들의 갑작스러운 정치 참여에 대한 우려는 ≪부인공론≫의 필자로 나선 이른바 ‘진보적인’ 남성 지식인들도 마찬가지였다. …… 예를 들어 법제사학자 후지타 쓰구오는 신헌법 제정에 따른 여성 해방의 의미를 긍정하면서도, 이것이 “[일본] 부인의 노력에 의해 얻어진 것이 아니라 인류의 다년에 걸친 자유 획득[을 위한] 노력의 성과”라고 지적하고 있었다. 일본의 여성 해방에는 ‘취약성이 내포’되어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당분간 여성의 지위 향상에 적지 않은 장애가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_ “제7장 ‘여성 해방’의 현실과 이상, 1946~1950”  접기
P. 386~387 전후 일본 여성들의 평화운동은 1954년의 비키니사건 발생 이전부터, 즉 패전 직후부터 이미 여성운동가들에 의해 시작되어 평화를 위한 여성들의 국제적 연대를 시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 전전의 여성운동이 대부분 엘리트 여성에 의해 주도되었던 것과 달리, 전후의 모친운동은 ‘지극히 보통’의 ‘모친’들이 중추가 되었다. 전쟁을 반대한다는 좁은 의미에서의 ‘평화’가 ‘모친운동’의 최우선 순위는 아니었지만, ‘아이’와 ‘생활’과 더불어 모친운동의 주된 목표의 하나이자 바로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의 위치를 점했다. 즉, ‘아이’와 ‘생활’을 위협하는 문제는 ‘평화수호’의 차원에서 단호하게 대응하지만, 평소의 주된 관심은 오히려 소소하고 또 피부에 와닿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와 실천에 놓이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_ “제8장 전후 일본의 각성하는 모성과 평화”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이은경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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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조교수(HK).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의 주된 연구 관심은 일본 근현대사 중에서도 여성의 운동과 생활, 현대 일본 사회의 기원으로서의 근대 문화의 형성 등이며, 근현대 일본 역사와 문화에 대한 대중적 이해를 돕기 위한 글쓰기를 위해서도 노력 중이다. 연구 성과로는 『일본사의 변혁기를 본다』(공저, 2010), 『젠더와 일본 사회』(공저, 2016), 『난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 가지 시선』(공저, 2018) 등의 책과, 약 20여 편의 학술 논문이 있다. 접기
최근작 : <근대 일본 여성 분투기>,<난감한 이웃 일본을 이해하는 여섯 가지 시선>,<젠더와 일본 사회 (반양장)> … 총 7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잊힌’ 절반, 근대 일본 여성의 역사

여성과 근대 일본 역사의 ‘관계’에 집중하기

일본 역사에서 여성은 잊히기 쉬운 존재였다. 1953년 일본의 개항과 1968년 메이지유신이라는 거대한 변화 이후, 일본은 부국강병·문명개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지만, 이는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존재는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것이었다. 『근대 일본 여성 분투기』는 바로 일본 근현대사에 가려져 있는 여성의 존재를 끌어내어 급변하던 역사 속에서 그들이 어떤 것을 요구했고, 또 어떤 것을 해내고자 했는지 다양한 인물, 사건, 여성운동 등을 통해 파악한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일본 역사를 이야기할 때 잊히기 쉬운 존재인 여성을 애써 무대 위로 끌어올리면서도 역사적 사건들을 ‘함께’ 파악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인구의 절반이었다고는 믿기 어려운 희박한 존재감을 지닌 여성들의 꺼내면서도 ‘여성’에만 주목하고 그들의 생애에만 귀를 기울이면 역사적 맥락은 사라지고, 시대와는 유리되어 선택된 주장만 떠돌기 쉬워지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근대 일본 여성들이 겪은 불이익에 대한 고발이나 여성운동에 대한 칭찬을 하기보다는 급격한 사회적·정치적 변화가 일어나던 당시 일본에서 일본 여성들이 사회에 대해 무엇을 문제로 삼았는지, 어떤 필요를 느끼고 무엇을 요구했는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등과 같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살펴본다. 그러니까, 이는 여성에 주목하고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되, 꼭 일본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다룸으로써 근대 일본 사회와 일본 여성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메이지시대: 쓰다 우메코의 일본 여자 고등교육 도전기

1장에서는 메이지시대 일본의 여자교육에 대해 알아보면서, 최연소·최초 여자 유학생인 쓰다 우메코를 중심으로 근대 일본을 향한 그의 문제의식, 그리고 여자교육을 위한 활동에 투영되는 일본 여성과 사회에 대해 탐구한다.
근대적인 여자교육의 세례를 받은 세대가 출현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기까지는, 여자 고등교육을 위해 그리고 전문직 직업여성의 양성을 위해 설립한 쓰다주쿠의 영향이 컸다. 미국 유학 후 마주한 일본 사회 속 여성들의 현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 하지 않는 여성들의 모습은 우메코로 하여금 여자를 위한 높은 수준의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게 만든다. 이것은 곧 쓰다주쿠 설립의 밑바탕이 된다.
우메코의 선구적인 안목은 이른바 신여성 등장 이전의 일본 여성들이 처한 현실과 문제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단서가 된다. 그는 일본 여성에 대한 입체적 접근은 물론, 근현대에 걸쳐 활동하는 여성운동가에 관한 논의에서도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다이쇼시대: 여성운동을 둘러싼 논쟁과 갈등, 그리고 연대

여자교육이 정착한 이후 다이쇼시대라는 사회적 풍조를 배경삼아 ‘부인문제’를 둘러싼 문제 제기가 활발해진다. 또, 여러 여성운동가 사이에서 ‘여권’(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모권’(모성의 보호)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논쟁이 이어진 이른바 ‘모성보호 논쟁’이 일어난다.
2장에서는 요사노 아키코, 히라쓰카 라이초, 아마카와 기쿠에, 야마다 와카, 하니 모토코 등 근대 일본 여성운동의 주요 논객들을 다수 등장시켜 여성을 둘러싼 각종 문제와 관점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했다. 여권에 대해, 그리고 모성에 대한 각 논객들의 주장을 제시하며 당시 일본의 사회적 배경 위에서 여성 문제에 대해 균형 있게 파악한다.
3장에서는 ‘여성의 입장으로부터의 사회 개조’를 지향하고 여성의 정치 참여를 시도한 단체인 신부인협회의 역사와 함께, 그 안에서 일어난 각종 갈등과 논쟁을 여성운동의 ‘노선투쟁’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한다. 또, 여성의 정치 활동 참여를 위한 의회 청원운동을 둘러싼 찬반논쟁을 소개함으로써 일본 여성운동 초기의 문제들을 파악할 수 있게 했다.
4장에서는 간토대진재(관동대지진) 이후 구호 활동을 거치며 연대의 필요성에 공감하게 된 여성들에 대해 다루면서, 대지진 이후 새로 건설될 도쿄를 향한 여성들의 정치, 사회, 제도, 사상을 아우르는 기대와 요구가 담긴 외침에 대해 써내려간다.

쇼와시대: 제2차 세계대전과 여성참정권, 그리고 모성과 평화에 관한 이야기

5장과 6장에서는 각각 정당정치 시대의 여성참정권 운동(부선운동)과 파시즘 정권 시대의 총동원 체제, 익찬 체제에 협력하게 된 여성참정권 운동에 대해 다룬다. 여성참정권 운동, 즉 부선운동을 위해 여성운동가들은 불안정한 일본 내 정치 상황과 지속적인 참정권을 위한 법안 제출 무산 속에서 각기 다른 전략을 모색해야 했다. 파시즘 정권 아래 몇 여성운동가들은 각종 어용기관의 부름을 받아 활동하는 것이 장래 참정권 획득에 도움이 되는 넓은 의미에서의 부선운동으로 여기며 협력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오히려 의회 민주주의의 이념으로부터 멀어질 뿐이었다.
7장에서는 일본의 패전 직후 참정권을 비롯한 각종 여성 해방 정책이 한꺼번에 실행되었을 때 일본의 사회 분위기에 대해 다룬다. 오랫동안 많은 여성운동가들이 참정권을 위해 활동해 왔으나, 막상 그것이 ‘선물처럼’ 주어졌을 때는 오히려 그에 대한 냉소와 우려들은 물론이고 당사자인 여성들마저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패전 후 각종 이념과 가치관이 충돌하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이른바 ‘여성 해방’ 정책이 어떻게 정착해 가는지 관찰한다.
8장에서는 ‘일본모친대회’를 중심으로 패전 후 여성들의 평화를 위한 운동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지극히 보통의 모친들이 중추가 된 이 운동을 다루면서 대해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보편적인 모성, 평화를 위한 모성을 지향하고, 소소하고 피부에 와 닿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들이 어떠한 활동을 해왔는지 이야기한다. 또 한편, ‘모성’이 언제든 신성화되고 희생을 강요하기 쉬운 성격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반성과 경계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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