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2

알라딘: 서교동에서 죽다 고영범 2021

알라딘: 서교동에서 죽다

서교동에서 죽다
고영범 (지은이)가쎄(GASSE)2021-10-31


































미리보기


448쪽

책소개
장르를 넘나들며 존재와 관계에 대해 성찰해 온 고영범 작가의 자전적 장편소설. 1974년 8월 중순에 시작된 소설의 내적 시간은 1975년 3월 초까지 이어지고, 서교동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진영네 집이 이사 가는 화곡동을 비롯, 진영이 아버지 심부름으로 다녀오게 되는 효자동을 통해 광화문과 신촌 일대까지로 확장된다. 특히 진영의 생활 반경과 동선에 바탕한 서울의 지리지는 기억의 순금 지대를 이루는데, 『서교동에서 죽다』는 소년의 작은 몸과 좁은 시야에 와닿은 1974년 서울의 공기와 풍경을 두텁게 떠메고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서교동에서 죽다』는 단 한 번 왔다가 사라져버린 그 시간에 바쳐지는 이야기이며, 그런 의미에서 통상의 성장소설과 결을 달리한다. 아이는 자랄 것이다. 그러나 어둠과 집 잃음은 아버지가 바라보아야 했던 무한 무늬처럼 아이의 세상 앞에 반복 도착하리라. 이 예감이 『서교동에서 죽다』에는 떨치지 못하는 멜랑콜리의 어조로 스며 있다. 손안의 기계체조 인형이 물구나무선 채 소년을 응시하고 있는 세계. 1974년 서교동 골목골목의 흙과 크리스마스이브 광화문의 공기가 기억과 언어의 힘으로 섬세하게 물질화될수록 그 시간은 까마득히 먼 곳으로 밀려난다.


목차


서교동에서 죽다 /413

발문 /418
작가의 말 /438


책속에서


첫문장
그해 여름 내게 가장 소중한 물건은 자전거였다.




저자 및 역자소개
고영범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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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북도 출신 실향민 부모님 밑에서, 1962년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에서는 신학을, 
미국에서 다닌 대학원에서는 영상 제작을 전공했다.

이런저런 다큐멘터리와 광고,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1, 2』,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 『불안』, 『스웨트』, 『예술하는 습관』, 『오슬로』 등을 번역했다. 쓴 것으로는 단행본 『레이먼드 카버』(아르테)와 희곡 『태수는 왜?』, 『이인실>, 『방문』, 『에어콘 없는 방』, 『서교동에서 죽다』 등이 있다.

현재 미국에 살면서 집안의 실향민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접기


최근작 : <서교동에서 죽다>,<여기서 끝나야 시작되는 여행인지 몰라>,<레이먼드 카버> … 총 21종 (모두보기)

고영범(지은이)의 말

내가 처음으로 무언가를 썼을 때 그건 시의 형태였다. 최소한 겉모습은 시란 이런 것이라고 그때까지 알고 있던 것들과 닮아 있었다. 그러다가 <세일즈맨의 죽음>이라는 연극을 보고 나서는 희곡을 쓰고 싶어졌고, 모두 세 편을 써서 그중 두 편은 당시에 다니던 교회에서 또래 아이들과 함께 공연으로 만들어 올렸다. 그리고, 무언가를 쓴다는 건, 당연히,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전제로 하는 것이었는데, 당시는 하나의 군사독재 정권이 다른 군사독재 정권으로 넘어가던 무렵이었고, 따라서 내 생각의 상당 부분은 당연히, 그 문제들에 대한 걸로 채워졌다. 이 생각들은 시나 희곡 속에 스며들기도 했지만, 당시에 발생한 이란의 미 대사관 점거 사태를 직접적으로 다룬 ‘이란의 미 대사관 점거 사태와 미국의 제국주의’라는 소논문 비슷한 형태의 글로 나타나기도 했다.(이 소논문은 교지의 인문사회과학 논단에 싣기 위해 쓴 것이었다. 학교 측에서 이 글을 게재하지 못하게 막은 것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는데, 교지의 당시 편집장이었던 친구는 학교와 맞서서 결국 게재했다고, 자기 집 어딘가에 그 책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 들어가서 시와 희곡, 사회과학에 몰두하게 된 건 당연한 귀결이었고, 문학회와 연극반, 그리고 사회과학 서클에 동시에 가입한 것도, 따라서,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세 가지 영역 모두에서, 전공 공부를 포함한다면 네 가지 영역 모두에서 실패했다. 전적으로 겉멋과 불성실, 비윤리적인 태도 때문이었다. 이 세 가지는 서로에게 원인이 되고 서로를 부추기면서 같이 움직이게 마련인데, 따라서 각자 맡은 역할을 시간표에 따라 수행해야만 하는 곳인 연극반이나 사회과학 서클과는 늘 문제가 많았고, 몇 달 만에 상당한 수준에 오른 불성실과 무책임성에 대해 어느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유일한 모임인 문학회에서 입대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보냈다.

나이가 들면서 이 문제 많은 존재와 가족, 동료들, 그들의 가족들에 대해 이런저런 각도에서, 틈틈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한 번 들여다보자 싶어졌다. 형식은 이 존재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혹은 그동안 선택해왔던 방식들을 모두 동원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몇몇 에피소드는 오래전에 시나리오 형식으로 써본 적이 있었으니 그 형식은 제쳐두고, 이번에는 여러 에피소드들을 각 에피소드의 성격에 적합한 형식들—시와 희곡, 인문학과 사회과학적 접근이 뒤엉킨 소논문, 인터뷰, 기사, 에세이, 심지어 성명서 등 한 번이라도 다뤄본 형식은 모두 동원해서—로 써보자는 생각이었다. 내부에서 다투면서 밖으로 말하는 책을 만들어보자, 이를테면 그런 생각이었다.

가쎄의 김남지 대표와는 페이스북 친구로 처음 만났는데, 농담처럼 꺼낸 이 이상한 몽상에 대해 “마음대로 해보세요”라고 대답해 줬다. 그게 벌써 4년 전의 여름이었다.

이런 무계획에 가까운 계획은 얼마 되지 않아 난관에 봉착했다. 인터뷰 형식의 글은 겉돌았고, 논문 형식의 글은 깊이가 없었고, 에세이는 감상적이었고, 시는 그냥 그랬고, 기사는… 이것까지 들어가자 전체적으로 어린애 장난처럼 보였다. 기중 마음이 가는 게 이사 가는 날을 다룬 희곡 형태의 장과 개에 물리는 장면을 다룬, 이전에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소설 형태의 글이었다.

시력에 문제가 생기면서 한동안 밀어두고 있다가 조금 나아진다 싶어져서, 일단 희곡 형태로 되어 있던 장을 붙들고 공연이 가능한 길이로 키워봤다. 너무나 설명적인 내용이 많아서 희곡은 포기하고 차라리 소설로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일단 별개의 작품으로 키워보기로 했다.

희곡은 다행히도 2021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에 선정되었고, 얼마 전에 국립극단의 예술감독직을 마치고 나온 이성열 연출이 해보겠다고 나서줬다. 이성열 연출은 공연으로 올리기 난감한 면이 있는 대본을 노련하게 다듬어서 올려줬고, 코로나와 기타 등등의 이유로 나는 가보지 못했지만, 관객의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고 들었다. 고맙다. 이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를 한동안 안고 살아준 배우들과 스태프진에게도 고마울 따름이고.

그리고 이제 이 책이다. 희곡과는 별개로, 다른 조각들을 해체한 뒤 ‘장편소설’이라는 형태로 재구성해서 다시 쓴 것이다. 이야기가 꽤 오랜 기간 동안 난삽한 변신 과정을 거쳐 비로소 소설의 형태로 정착된 셈인데,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김남지 대표가 건네줬던 그 넉넉한 제안에 대해서는 지금도 고맙고, 결과물을 내어놓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린 건 몹시 민망하고 죄송스럽다.

대학 생활이 실패였다고 썼는데, 희곡 <서교동에서 죽다>를 연출해준 이성열은 대학 연극반에서 만난 친구고, 문학회에서 만난 선후배와 친구들은 그때 이후 여태까지 내게 마음속의 닻이고 돛이고 갑판 같은 존재들이다. 그러니 아주 실패하지는 않은 셈인가.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의 이름을 속으로 불러본다. 모두 고맙다. 혹시라도 누구 하나 빼놓을까 봐 두려워서 이름을 일일이 적지는 않겠다. 다만 먼저 이곳을 떠난 성원근, 기형도, 이주원 형들의 이름은 다시 한번 마음을 모아 불러보고 그 얼굴을 떠올려본다.
이 이야기 속에서 가족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물론 소설 속의 인물들일 뿐이다. 내 실제의 형제들(누나가 둘이 더 있다)은 이들보다 훨씬 더 다정다감한 사람들이고 동생은 직장생활 잘하고 일찌감치 은퇴해서 여유 있는 은퇴자 생활을 즐기고 있다. 이야기 속에서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어떤 순간 서로를 희생시킬 수밖에 없었던 칠십 년대의 야만성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허구적 요소들과 함께 희생자로 동원되었을 뿐이다.

글을 쓰는 건 철저하게 사적인 일이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애정과 이해심으로 무장하고 있다 해도, 몇 시간이고 한쪽 구석에 혼자 틀어박혀 있는 사람을 견디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애도 아니고 그 집에서 제일 덩치 큰 남자 어른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한 여자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그 관계를 감당하기 위해, 또 집안을 함께 꾸려가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꽤 있는데, 글을 쓴다는 건 그 일들의 상당 부분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최소한 뒤로 미루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한마디로 민폐다. 그 답답함과 괴로움을 견뎌주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오마니가 이 책을 보셨으면 분명히 잊기 어려울 농담을 한 마디 하셨을 텐데(나는, 불행하게도, 약한 치아는 그대로 물려받은 반면에 그 은근한 유머감각은 반도 닮지 못했다), 오마니는 당신을 오랫동안 한결같이 편안하게 모시고 있던 형 집에서, 올해 초에 먼저 떠나셨다. 나는 늘 늦게 귀가하고 늦게 도착하는 자식이었는데, 이번에도 늦었다. 늘 용서하셨으니 이번에도 용서해 주시겠지. 이 말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마음이 따뜻한 걸 보면 이미 그러신 것 같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장르를 넘나들며 ‘존재’와 ‘관계’에 대해 성찰해 온
고영범 작가의 자전적 장편소설”

『서교동에서 죽다』는 단 한 번 왔다가 사라져버린
그 시간에 바쳐지는 이야기이며, 그런 의미에서
통상의 성장소설과 궤를 달리한다

1974년 8월 중순에 시작된 소설의 내적 시간은 1975년 3월 초까지 이어지고, 서교동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진영네 집이 이사 가는 화곡동을 비롯, 진영이 아버지 심부름으로 다녀오게 되는 효자동을 통해 광화문과 신촌 일대까지로 확장된다. 특히 진영의 생활 반경과 동선에 바탕한 서울의 지리지는 기억의 순금 지대를 이루는데, 『서교동에서 죽다』는 소년의 작은 몸과 좁은 시야에 와닿은 1974년 서울의 공기와 풍경을 두텁게 떠메고 온 듯한 느낌을 준다.
- 발문(정홍수 문학평론가) 중에서

“나이가 들면서 이 문제 많은 존재와 가족, 동료들에 대해 이런저런 각도에서, 틈틈이, 많은 생각을 하게 됐고, 한 번 들여다보자 싶었다. 몇몇 에피소드는 오래전에 시나리오 형식으로 써본 적이 있었고, 이번에는 나머지 에피소드들을 각 에피소드의 성격에 적합한 형식들—시와 희곡, 인문학과 사회과학적 접근이 뒤엉킨 소논문, 인터뷰, 기사, 에세이, 심지어 성명서 등, 내가 여태 살아오면서 한 번이라도 다뤄본 형식은 모두 동원해서—로 써보자는 생각이었다.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기중 마음이 간 게 이사 가는 날을 다룬 희곡 형태의 장과, 진영이 개에 물리는 장면을 다룬 소설 형태의 글이었다. 희곡 형태로 쓴 글은 공연이 가능한 길이로 키워서 2021년 6월에 이성열 연출이 동명의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을 올렸고, 나머지 부분들은 모두 해체-재구성해서 장편소설의 형태로 다시 썼다. 그게 이 소설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발문: 정홍수 (문학평론가)

지하실의 어둠, 혹은 기계체조 인형과 함께 남은 시간


1
2000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근무하던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도서전 참관을 명목으로 한 미국 여행 기회가 주어졌고, 시카고와 보스턴을 거쳐 마지막 여정으로 도착한 곳이 뉴욕이었다. 여행길을 같이했던 소설가 성석제 형은 아는 후배가 뉴욕에 산다며 북디자이너와 나를 어퍼맨해튼이란 곳으로 데려갔고, 거기서 만나 우리의 한나절 뉴욕 구경을 책임져준 이가 고영범 형이었다. 그러니까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는 인연의 고리는 ‘연세문학회’였던 것 같다. 내 첫 직장 민음사의 편집장 이영준 형은(우리의 미국 여행 때 하버드대 동아시아학과 대학원에서 공부 중이었고, 보스턴이 우리 여정의 중간에 들어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금은 경희대 휴머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있다) ‘연세문학회’의 좌장 격이었던 것 같고, 이영준 형의 너른 품을 좇던 나는 성석제, 원재길, 김진해, 배효룡, 이성겸, 성원근, 기형도(뒤의 두 사람은 이곳에 없다) 등 ‘연세문학회’의 또 다른 맹장들을 우러를 행운을 누렸다. 이이들은 그 당시 세상만 모를 뿐 이미 각자의 시 세계(대부분 시를 썼던 것 같다) 및 문학적(그리고 아마도 철학적) 우주의 도상적 설계를 거의 마쳤다고 믿는 호기롭지만 불우한 문사들이었고, 서로 남의 말 따위는 들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삐 자신들만의 우주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한마디로 이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자유의 기운이었다. 지식은 체계가 없는 대로 잡다한 채 독학자들의 힘을 갖고 있었고, 주로는 음악이나 바둑, 술, 허세와 같은 무용한 놀이 쪽으로 가기 위한 부실한 사다리 구실을 하고는 금방 담배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뉴욕에서 처음 만난 고영범 형은 나이로는 문학회의 막내쯤이었는데, 벌써 얼마간 추레해진 선배들과는 달리 여전히 생생한 자유의 기운으로 충만한, 집안의 총명하고 귀티 나는 막내 같았다. 내가 만난 ‘연세문학회’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말들을 너무 잘한다는 것이었는데, 고영범 형은 그 재능들을 한데 모아 욕심 사납게 한 사람이 가진 것 같았다(그는 이 특별한 재능이 말이 많은 것과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것도 증명해주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어떤 주제든 막힘이 없었고, 대개는 오래 자기만의 생각과 공부로 얻은 논리와 말들로 이야기를 주도했다. 그때야 지금 같은 SNS의 세상이 오리라고는 짐작도 할 수 없었지만, 근자에 페이스북에서 많은 이들을 애독자로 만든 고영범 계정의 현하지변을 그렇게 처음 접했다.
그 인연이 띄엄띄엄 20년이 넘었다. 돌아보면, 나는 처음 그의 명석함에 매혹되었지만 점차 인간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말이나 글에서 그의 예각이 두드러져 보인다면, 그의 사람됨은 둔각 쪽으로 따뜻하고 속 깊다. 그의 유다르고 세련된 지성은(나는 그 뿌리에 ‘신학’이 있지 않나 짐작한다) 늘 인간적 배려와 관용에 감싸여 있다. 그는 언제나 무언가를 쓰고, 만들고(고영범 형은 맥가이버 수준의 수공업 장인이기도 하다), 작업하고 있었지만 그것들은 그가 늘 생각하는 ‘더 나은 인간’ ‘더 나은 세상’과 분리된 것이 아니었다. 남들이 표나게 무언가를 성취하고, 이런저런 방식으로 이름을 알리는 동안에도 그가 상대적으로 덜 드러났다면, 그것이 그의 방식이자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었을 테다. 본인이야 게을러서 그랬겠지, 라는 한마디로 퉁치고 말겠지만.
처음부터 ‘작가’인 사람이 있다. 고영범 형이 딱 그랬는데, 내가 처음 만났을 무렵 그의 관심은 영화 쪽에 있는 것 같았다. 몇 년 뒤 영화 일들이 구체화되면서 아예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그때 몇몇 국내 대학의 영화과에서 강의를 하는 한편, 시나리오를 쓰고, 각색을 하고, 편집을 하면서 감독 데뷔를 준비했다. 영화계 일이 원래 그렇다고 하는데, 여러 차례 ‘엎어졌던’ 걸로 안다. 그는 미국 영화과 대학원에서 다큐멘터리를 공부했고, 직접 만든 영화로 세계적 권위의 오버하우젠 국제단편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다. 홍상수 영화를 컷 단위로 분석해가며 이야기할 때는 혼이 쏙 빠지기도 했는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클로즈업>을 다룬 글은(물론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그 무렵 읽은 최고 수준의 영화 평론 중 하나였다. 희곡은 그가 대학 때부터 가장 꾸준히 해온 작업이었고, 시 역시 ‘문학회’의 전통을 충실히 이으며 발표와는 전혀 무관하게 쓰고 있었다. 한두 편 내게 보여준 기억도 있다. 번역은 생계를 위해 틈틈이 해왔고 강출판사에도 그의 이름으로 된 두 권의 역서가 있다. 그중 『레이먼드 카버: 어느 작가의 생』(캐롤 스클레니카 지음)은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에다 인용 시의 번역을 비롯해서 난처가 많은 텍스트였는데 고생만 잔뜩 시키고 살림에도 거의 도움을 못 드려 지금도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다만 그 번역이 계기가 되어 카버와 카버 문학에 대한 뛰어난 안내서인 『레이먼드 카버: 삶의 세밀화로 그린 아메리칸 체호프』(아르테, 2019)를 저서로 갖게 되었으니 조금 빚을 던 느낌도 없지 않다. 이 책은 얼치기 문학평론을 하는 처지에서는 문장이며 문학 이해의 깊이에서 읽는 내내 질투심을 억누르기 힘들었다는 걸 고백해둔다. 10여 년 전 서울에 있을 때 소설을 써볼까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적극 권하면서 막연히 머리에 떠올려본 게 최인훈, 이승우 같은 지적이고 관념적인 소설 계보였던 것 같다. 역시 돈은 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그러다 그는 다시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2021년 가을, 한 편의 멋진 소설이 도착했다. 소설의 모습과 관련된 내 막연한 짐작은 보기 좋게 틀렸지만, 책의 판매와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더 많은 독자들이 이 근사한 소설을 만남으로써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2
『서교동에서 죽다』는 이진영이라는 소년이 국민학교 6학년 여름방학부터 이듬해 봄 중학교 입학 무렵까지 반년 남짓한 시간을 통과한 기록이다. 소설은 방학 중 새 자전거가 생긴 진영이 8월 15일 광복절 날 서교동 집을 나와 홍대 앞, 상수동과 마포를 거쳐 서울대교(현재의 마포대교)를 건너고, 여의도를 지나 제2한강교(현재의 양화대교)를 통해 합정동 쪽으로 다시 돌아오는 첫 자전거 질주를 이야기하는 가운데 ‘5.16 광장’의 ‘빌 브라이트 목사 초청 엑스폴로 74’ 플래카드를 언급하는 방식으로 이 여름에 1974년과 서교동을 중심으로 하는 서울 서남부라는 특정한 시간과 장소의 좌표를 부여한다.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이 좌표가 통상적인 ‘소설의 시대성’과는 좀 다른 지점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드러난다. 그것은 훨씬 좁고 촘촘하고 밀도 높은 시간의 대역(帶域)을 지시하면서, 한 소년이 몸으로 통과하는 세상, 그의 의식에 현상하는 세계의 물리적 조각을 향하고 있다. 이 문제는 진영을 일인칭 화자로 하는 소설의 서술 장치와도 연계되는데, 기본적으로 회상의 방식으로 기술되는 일인칭 소설에서 화자가 (그 자신이기도 한) 인물에 대해 갖는 거리는 삼인칭 소설과는 다른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일인칭 화자는 회상하는 서술자로서의 우월적 지위와 인물의 제한적인 시야 사이를 오가며 이야기의 어조와 흐름을 구축하게 되는데, 『서교동에서 죽다』는 그 균형의 통제에서 특별한 소설의 목소리를 얻어내고 있는 것 같다.

광복절에도 나는 아침부터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날은 무더웠고, 골목엔 아무도 없었다. 늘 하던 대로 홍익대학교의 정문 앞 공터—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색하지만,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까지 올라갔다.(19쪽)

여기서 ‘공터’가 열세 살 진영의 언어라면 삽입된 부연 설명은 화자의 언어일 텐데, 대개는 경계 표지 없이 두 개의 언어 층위는 섞여 있다. 친구들을 기다리다가 혼자 자전거를 타게 된 진영이 홍대 정문에서 극동방송국을 지나 상수동 쪽으로 언덕길을 내려가는 장면에서 소설은 아스팔트 위 왕모래의 위험을 피하는 소년의 질주를 극사실주의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언어를 인물에게 한껏 양도한다(이 양도는 당연히 화자의 적극적 협력을 포함한다). 그러나 화자와 인물의 이러한 밀착은 고정되지 않고, 여의도에 운집한 ‘엑스폴로 74’의 군중들이나 그날 자전거 타기의 마지막 여정이 된 성미산 언덕에서 집으로 돌아오다 보게 된 전파상 앞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소년의 관심을 더 이상 이끌고 나가지 않는 방식으로 인물과 거리를 둔다. 그렇게 해서, 복음주의 반공 기독교와 당시 유신 독재정권의 유착을 보여주는 ‘엑스폴로 74’나 바로 그날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일어난 육영수 여사의 피살 사건과 같은 시대의 큼직한 풍경은 이야기의 배경으로 멀찍이 물러난다. 이는 열세 살 소년의 실제 의식에 근접하기 위한 회상형 소설의 일반적인 전략일 수도 있으나, 『서교동에서 죽다』가 화자와 인물 사이의 거리를 의식하고 조율하는 소설적 노력에는 좀 더 특별한 긴장이 있는 것 같다. 일단 여기에는 회상형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화자의 ‘현재’가 없다(『서교동에서 죽다』를 각색하여 이성열이 연출한 연극에서는 미국에서 귀국한 중년이 된 현재의 ‘나’가 나온다). 이 경우 회상의 주체로서 화자의 현재는 원리적으로 ‘글을 쓰고 있는 익명의 나’가 된다. 회상의 장치로 현재의 ‘나’가 제한되면서 열세 살 진영은 좀 더 ‘순수한’ 상태로 1974년의 시간 속에 던져진다. 허구적이든 텍스트 외적 참조의 차원이든 형성의 도달점은 가려진 채 한 소년이 통과하는 반년 남짓의 짧은, 특정한 시간의 구획이 주어져 있을 뿐이다.

이 시간의 구획을 소년의 자리에서 생성되는 의식, 생성되는 ‘세계 그 자체’로 마주할 방법이 있을까. 『서교동에서 죽다』는 이 질문에서 시작된 소설처럼 보인다. 작가의 자리에서 화자에게 양도된 언어는 ‘그 자신’이기도 한 열세 살 소년의 언어를 분절하고 들어올리는 데에만 사용될 뿐, 그 언어를 포획하려 하지 않는다. 작가—화자의 개입은 언제나 건너갈 수 없는 강 앞에서 안타깝게, 아슬아슬하게 멈추어 있다. 그렇게 해서 화자와 인물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는 이미 통과해왔지만 지금 처음 통과하는 시간의 현상학에 바쳐진다(6장 진영이 개에게 물리는 삽화에서만 유일하게 소설은 진영을 ‘너’라고 호명하며 화자의 자리를 전경화하는데, 반드시 이 이야기만 이인칭 서술을 취할 필연성은 없다는 점에서도 소설 전체적으로 부각되는 것은 화자와 인물 사이의 안타까운 거리다).
그렇게 1974년 8월 중순에 시작된 소설의 내적 시간은 1975년 3월 초까지 이어지고, 서교동을 중심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진영네 집이 이사 가는 화곡동을 비롯, 진영이 아버지 심부름으로 다녀오게 되는 효자동을 통해 광화문과 신촌 일대까지로 확장된다. 특히 진영의 생활 반경과 동선에 바탕한 서울의 지리지는 기억의 순금 지대를 이루는데, 『서교동에서 죽다』는 소년의 작은 몸과 좁은 시야에 와닿은 1974년 서울의 공기와 풍경을 두텁게 떠메고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버스의 종점에서 내려서 향한 곳은 시장으로 통하는 길목에 있는 상가였다. 상가라고는 하지만 제각각의 모양으로 납작하게 엎드려서 나란히 늘어서 있는 건물들에 허름한 문방구와 약국, 철물점, 이발소, 전파상 따위의 업소들이 계통 없이 들어서 있었고, 그 끄트머리에 약간의 사과와 귤 따위 과일을 얹은 좌대를 앞에 내놓은 식품점이 하나 있고 그 뒤로는 본격적으로 시장 골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시장을 지나면 주택가가 펼쳐졌다. 그러니까 크고 작은 차들이 빠르게 다니는 도시의 길과 안온하게 엎드려 있는 집들 사이의 완충지대로 시장이 있었고, 그 허름하고 짧은 상가는 큰길을 달리는 금속성의 차갑고 사납고 빠른 것들과 한자리에 쪼그려 앉아 있는 상인들, 그들이 다루는 생선이며 야채, 과일 같은 부드러운 질감의 물건들, 여기저기서 흐르는 물 때문에 항상 질척한 바닥, 그리고 그 사이를 돌아다니며 장을 보는 사람들 같은 느리고 부드러운 존재들로 채워진 시장통 사이의 기압 차를 해소해주는 역할을 하는 셈이었다. 사람들은 아침이면 이 짧은 상가 골목을 지나 세상으로 나가고, 저녁이면 그보다 조금 느려진 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것이었다. 그러니 이 상가에 있는 상점들은 좋게 말하면 통행인이 많은, 소위 ‘목’이 좋은 자리에 위치한 셈이었지만, 달리 보자면 주택가로부터 시장을 사이에 두고 격리돼 있어서 단골보다는 지나는 길에 들르는 뜨내기손님들을 주로 상대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었다.(168〜164쪽)

그해 여름에는 새 자전거라는 선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바로 다음 날 아버지의 갑작스런 입원이 있었고, 아버지는 이후 입퇴원을 반복하며 기약 없는 자리보전을 하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가 운영하던 버스가 빗길에 사고를 내면서 집안은 급속도로 기울고, 서교동의 집을 내주고 낯선 화곡동 가파른 언덕바지로의 이사가 결정된다. 인용한 대목은 학교를 파한 뒤 형과 누나의 인도로 동생과 함께 진영이 서교동에서 버스를 타고 화곡동에 내려 처음으로 이사한 집을 찾아가는 장면이다. 저기 시장통 끄트머리에는 어머니가 아버지와 함께 떠나온 평안북도 고향의 이름을 따서 붙인 자그마한 잡화가게 ‘정주상회’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이제는 집안의 유일한 생계의 원천이 된. 딱히 서울 변두리 동네만은 아닌, 1970년대 한국의 웬만한 도시의 서민 동네에서라면 낯설지 않은 사람살이의 풍경이 손에 잡힐 듯 펼쳐져 있다.
회상의 주체는 그 기억의 풍경에 작게나마 구도와 질서를 부여하며 그것을 정돈하고 의미화하려 하지만, 사실 여기서 일어나는 기억의 화학 작용은 그 시간과 장소의 질료에 더 많이 빚진 것이며 우리가 어떤 ‘아득함’을 느끼게 된다면 그 때문이리라.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가깝게 이곳으로 끌어오고 싶어도 끝내 먼 곳에 남는 것이며, 단 한 번의 시간과 장소로만 주어지는 것이다. 『서교동에서 죽다』의 회상과 묘사는 이 일회성과의 가망 없는 싸움 끝에 조금씩 풀려나오고 있다. 모르긴 해도, 소설에서 거듭 이야기되는 소년의 알지 못할 ‘서러움’과 정체 모를 ‘그리움’의 실을 따라가면 그 끝에는 회상하는 ‘나’의 이 가망 없는 싸움이 있지 않을까. 그 실패의 잔해들이 만들어내는 막막한 울림이 이 소설을 아리게 따라가게 만드는 힘의 정체인지도 모른다.
‘식모’인 구희 누나는 진영에게 가족 밖 ‘이성’의 존재에 대한 희미한 눈뜸과 함께(‘차별’이라는 문제에 대한 옅은 도덕적 각성도 일어난다), 늘 앞치마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고무줄로 상자 배터리를 동여맨” 소니 트랜지스터라디오와 자신의 한 달 월급을 바쳐 장만한 금성사 카세트 레코더를 통해 ‘음악’이라는 세상을 열어준다. 트윈폴리오, 한대수, 송창식에서 시작된 목록은 화곡동 가게의 심야 라디오 청취 시기를 거치며 존 덴버, 비틀즈, 사이먼 앤 가펑클까지 제법 풍성해진다. 말고도 <쇼쇼쇼> <주말의 명화>를 보는 시간이 이야기되고, 단란했던 가족 시절의 영화 관람 목록으로 <겟어웨이> <포세이돈 어드벤처>가 추억되는 방식으로 1974년 진영을 감싸고 있던 ‘문화’의 명세서가 추가된다. ‘음악’이 우연찮게 조금은 이른 시기에 진영의 세계에 도착했던 것처럼, ‘전집류’의 형식으로 집의 서가를 채우고 있던 이런저런 ‘문학’에의 맛보기식 입문도 가겟방 시기의 남아도는 시간과 함께 진영의 조숙에 얼마간 기여했던 것 같다. 화곡동 친구 병식의 안내는 그 시절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놀이터인 만화방을 단번에 성(性)과 죄의식의 공간으로 바꾸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가운데 ‘채변봉투’의 악몽과 ‘땡땡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국민학교 마지막 학기는, 당시 군사문화의 판박이처럼 획일과 강압, 폭력으로 문을 여는 중학교 입학 에피소드와 함께 진영이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 벗어나고 부정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형성해야 할 세상의 얼굴이 될 테다. 소년이 마주했던 그 세상의 공기는 가옥 구조, 연탄, 만원버스, 우표책, 크리스마스이브 풍경 같은 미시적 생활사의 꼼꼼한 세목들과 어우러지면서 1970년대의 성공적인 소설적 재현에 이르는데, 비슷한 시기에 성장기를 보낸 이들이라면 디테일 하나하나에서 잠시 독서를 멈출 법하다. 그 시간의 표지들은 진영이라는 소년의 단내 나는 숨결에 싸인 채 이곳으로 건너온다.
자전거와 버스가 소년을 바깥 세계로 잇고 확장하는 하나의 축이라면, 세 개의 연탄 화덕이 있는 화곡동 집의 지하실의 ‘어둠’이나 심야방송 라디오와 함께하는 가게의 ‘고요’는 소년의 ‘내면’으로 하강하는 공간이 되는데, 거기서 소년은 정체 모를 ‘서러움’과 ‘그리움’을 만들며 자라난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이 느꺼움의 정서에 얼마간 형태를 부여한다. 그런가 하면 아버지의 ‘초라함’에 ‘은밀한 공범자’로 참여하게 되는 크리스마스이브의 심부름 길, 신촌 버스 정류장 노점에서 동생 진수의 선물로 사는 ‘U자형 기계체조 인형’은 이 소년들의 시간을 세상의 무심과 침묵 쪽에서 응시하는 사물처럼 툭 던져져 있다. 카프카의 「가장의 근심」에 나오는 ‘오드라덱’처럼 이 작은 관절인형은 소년들이 다 자라 세상 저편으로 떠난 뒤에도 여전히 망각되지 않은 채 거기, 그대로 남아 있을 것만 같다. 연탄가스 사건 이후 진영과 진수가 만드는 ‘개미집’의 부서진 잔해와 함께. 그렇게 사물들만이 시간의 증거로 일회성에 저항하며 남아 있으려 한다. 그 사물들의 잡히지 않는 아우라,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이 소설의 뒤에 있는 회상하는 ‘나’가 싸우고 있는 실체일지도 모른다.
늘 벽을 향해 돌아누워 있는 아버지의 뒷모습. 갑자기 백발에 가까울 정도로 세어버린 머리. 소설에는 언젠가 소년이 아버지와 같은 자세로 누워, 아버지가 들여다보고 있던 벽지를 들여다보는 장면이 나온다. 별 의미 없는 장식 패턴의 연속. 얼핏 같아 보이지만 하나하나 다른 점들. 그러나 그 불완전한 점들은 또한 대칭을 이루며 거대한 반복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지 않겠는가.

아버지 역시 이런 걸 읽어내고 있었던 걸까? 읽어내는 행위 이상의 의미는 전혀 없는걸? 공간만 충분하다면 무한히 이어질 장식적인 마름모들의 연쇄로 이어진 우주에서 단 몇 개, 아버지는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서 지냈다. 그것들은 어쩌면 아버지를 기억 속으로 이끌어 갈 아버지만의 마들렌이었을 수도 있고, 아버지가 가보고 싶었으나 일찌감치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느라 그럴 기회가 없었던 토끼굴로 들어가는 입구였을 수도 있겠다. 당신을 가둬놓고 있는 수많은 창살들이었을 수도 있겠고. 그러나 그걸 누가 알겠는가.(250쪽)

아마도 이것은 지금 이 소설이 씌어지고 있는 어떤 자세이면서, 지금 회상하는 ‘나’가 수행하고 있는 일이 또 하나의 마들렌의 이야기를 찾는 것임을 알려주는 듯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저 무늬들 너머로 더 나아가는 것은 위험하다. 멈추어야 하며, 『서교동에서 죽다』는 지하실 연탄 화덕의 어둠 앞에서 멈춘다. 그리고 아버지의 뒷모습과 어머니의 오랜 울음을 기억하려 한다. 그이들의 평안도 말들과 함께. ‘하잖넌’, ‘아넌’, ‘있으라우’. 실향의 말들. 화곡동으로 옮긴 뒤 식사며 생활이 모두 ‘임시방편’처럼 되었다고 소설은 쓰고 있는데, 아버지와 어머니가 겪은 실향의 삶이란 그 전체가 ‘임시방편’이 아니었을까. 『서교동에서 죽다』 는 눈 내리는 겨울밤, 소년이 화곡동 가게에 앉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 장면에서 끝난다. “까마득히 먼 데서 눈 맞는 소리”.(송창식 「밤눈」) 이때 이 아이는 저 ‘까마득히 먼 데’가 자신의 옛이야기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을까. 『서교동에서 죽다』는 단 한 번 왔다가 사라져버린 그 시간에 바쳐지는 이야기이며, 그런 의미에서 통상의 성장소설과 결을 달리한다.
아이는 자랄 것이다. 그러나 어둠과 집 잃음은 아버지가 바라보아야 했던 무한 무늬처럼 아이의 세상 앞에 반복 도착하리라. 이 예감이 『서교동에서 죽다』에는 떨치지 못하는 멜랑콜리의 어조로 스며 있다. 손안의 기계체조 인형이 물구나무선 채 소년을 응시하고 있는 세계. 1974년 서교동 골목골목의 흙과 크리스마스이브 광화문의 공기가 기억과 언어의 힘으로 섬세하게 물질화될수록 그 시간은 까마득히 먼 곳으로 밀려난다. 그 아득함의 환각이 세이렌의 노래처럼 소설을 감싸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은 많다. 그러나 발문의 이름을 빌린 서툰 소개는 이 소설을 읽게 될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이만 그쳐야 할 듯싶다. 소설은 훨씬 풍부하다. 소설 곳곳에 한참을 머물고 싶은 생의 아름답고 슬픈 미로가 정확하고 세련된 한국어에 실려 읽는 이를 기다리고 있다. 좀 더 많은 이들이 이 섬세한 시간 여행에, 실향과 귀향의 긴 항해에 같이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해 서교동에 ‘죽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건’이 아니라 대상 없는 ‘서러움’과 ‘그리움’의 얼굴로 도착했다. 안타까운 역설을 견디며 먼 곳에서 먼 곳의 이야기를 완성한 작가에게 축하와 경의의 마음을 전한다. 적어도 이 이야기가 씌어지는 동안은 저 ‘낯선’ 소년은 조금은 덜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읽는 우리도 그러했으리라.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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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하고 아름다운 소설. 과연 명불허전
앤천이 2021-11-29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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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을 만나면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어요

페이스북 친구로 알고 지낸 고영범 작가님이 희곡이 아닌 소설을 내셨다는 소식에 망설임 없이 바로 구매했다. 고 작가님은 몇년전 페북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전기 '레이먼드 카버 : 어느 작가의 생'을 번역하신 뒤 아르테 클래식 시리즈인 '레이먼드 카버'를 쓰신 저자로 알게 됐다. 너무나 즐겁게 읽던 고 작가님이 1년여전 돌연 페북을 접으셔서 매우 아쉬워하다가 최근에 다시 재개하신 것을 우연히 알게 되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고 작가님이 페북을 접는 동안 '나는 다시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와 '별빛이 떠난 거리'를 번역하신 것도 모자라 생애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쓰신 걸 알게 돼 3권을 모두 함께 구매했다.

이 소설은 1975년 광복절 아침 새로운 사이클 자전거를 선물받은 국민학교 6학년생 진영이 서교동에서 살다 갑작스럽게 가세가 몰락하면서 낯선 화곡동으로 이사하고 겪어보지 못한 경제적 궁핍과 아버지의 투병, 어머니의 상점운영 등을 겪으며 고통스럽지만 본인을 지켜가며 성장해가는 모습을 줄거리로 하고 있다. 70년생인 나로서는 다소 낯설기도 하지만 그래도 매우 친숙한 당시의 시대상을 놀랍도록 섬세하게 복원하고 있다. 또 당시 그 또래 남자아이가 지닐 법한 성인으로 대접받고 싶어 허세를 부리거나 아버지, 친구, 동생과의 비밀을 지키려다 어려움을 자초하는 일들이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함께 극사실적인 묘사로 다뤄진다.

76년 중학교에 입학한 진영이 겪은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의 어려움과 부당한 대우에 제대로 항의조차 못하는 상황은 82년에 강원도의 국경 접경지역에서 자라면서 겪은 나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아 공감을 하면서도 섬뜩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책장을 덮으면서 진영이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지 않고 주변의 유혹에 쉽게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꿋꿋하게 자라나길 기원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 시절의 진영을 어른이 된 내가 지금 만나게 된다면 '너의 잘못이 아니다'며 따뜻하게 안아주고(물론 진영은 질겁할 것이겠지만) 짜장면에 탕수육까지 맘껏 사주고 싶다.

그리고 평소 페북에서 보이는 고 작가님의 매우 쿨해 보이는 태도는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작가의 분신인 진영이 어릴 때부터 지니고 있었던 것이라는 점을 알고 '사람 참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그날바람 2021-11-16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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