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2

백낙청 “진보 앞장선 한겨레, 기후·적정성장 담론 이끌기를” : 문화일반 : 문화 : 뉴스 : 한겨레

백낙청 “진보 앞장선 한겨레, 기후·적정성장 담론 이끌기를” : 문화일반 : 문화 : 뉴스 : 한겨레


백낙청 “진보 앞장선 한겨레, 기후·적정성장 담론 이끌기를”

등록 :2020-05-15 05:00수정 :2020-05-15 08:11
고명섭 기자 사진
고명섭 기자

[한겨레 32년과 한국사회] 백낙청에게 듣는다
“민족·민주·민중 표방…‘진실과 평화’로 창간 이념 다듬어
분단극복과 재벌개혁 노력 돋보이지만 더 정교한 비판 필요”

”4·15 총선, 반촛불세력 거점에 타격…입법부 개혁 쇄신 해야
기본소득과 기후문제와 거시적인 담론도 외면 말길 바란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겨레>는 18일로 지령 1만호를 맞는다. 창간 이래 <한겨레> 32년은 한국 사회를 바꾸고 전진시키기 위한 ‘담론 투쟁’의 한길이었다. 그 사이 한국 사회는 군사독재의 그림자가 가시지 않은 권위주의 체제에서 몇 차례 정권교체를 거쳐 사회 곳곳에 인권의식과 민주의식이 뿌리내린 열린 사회로 진화했다.




지령 1만호를 맞아 32년 전 <한겨레> 창간 발기인으로 참여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에게서 <한겨레> 담론투쟁의 성과와 과제에 대해 들어보았다. 백 교수는 “창간 당시에 ‘민족, 민주, 민중’이란 이념을 표방했다는 것 자체가 독보적인 일이었다”면서 “<한겨레>가 창간되지 않았다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됐을까”라는 말로 창간의 의의를 요약했다. 또 사회 전반의 민주화,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재벌 개혁에 들인 <한겨레>의 노력에도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백 교수는 창간 정신이 온전히 구현될 때까지 <한겨레>가 더 많은 투혼을 발휘해 달라는 당부와 함께 애정 어린 충고를 내놓았다. 대담은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5층 스튜디오에서 했으며, 진행은 고명섭 문화부 책지성팀 선임기자가 맡았다.







―지난 32년 동안 <한겨레>가 한국사회 진보를 위해 실천해온 담론 투쟁이랄까, 진보 담론의 거점으로서 해온 역할에 대해 먼저 간략히 평가해주신다면….







“먼저 <한겨레>가 지령 1만호를 맞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한겨레>에 대해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 시절에 한겨레가 창간이 안 됐다면 한국 사회가 어떻게 됐을까’, ‘한겨레가 있으니 다행이지. 그마저 없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988년 창간 당시 <한겨레>가 표방한 가치는 창간 발기인 선언문에 나오는 대로 민족, 민주, 민중으로 압축됩니다. 창간 30돌에 맞춰 지난 2018년에는 <한겨레>의 가치 지향을 ‘진실과 평화’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진실’이라는 건 언론이라면 마땅히 실천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겠고요. 창간 30돌을 맞아 ‘평화’를 가치 지향의 핵심으로 제시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민족, 민주, 민중의 창간 이념이 평화 담론으로 집결됐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창간 당시에 ‘민족, 민주, 민중’이란 걸 표방했다는 것 자체가 당시로서는 독보적이었다고 봅니다. ‘국민주 신문’이라는 것도 형식상 또는 구성상 탁월한 것이었는데. 그때는 그런 신문이 없었죠. 또 창간 30주년을 맞아서 ‘진실과 평화’를 내걸었는데 물론 창간 표어를 부정한 게 아니고 그걸 새롭게 정리한 셈인데요.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취지였던 거 같아요. 진실이라는 건 민족을 이야기하든 민중을 이야기 하든 뭘 이야기하든 언론으로서는 기본적인 것이고 또 기본이 계속 안 지켜지니 기본으로 돌아가서 진실에서 출발하자, 그런 취지라고 이해합니다. 평화를 이야기한 것도 기본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편적 가치로서는 사실 평화가 민족, 민주, 민중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화평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민주주의도 필요하고 민중도 챙겨야 하고 민족 문제도 다뤄야 하지요. 그러니 그것도 역시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고요. 그런데 2018년 그 시점에서 평화 담론으로 집결할 때 그것은 또 여러 다른 의미도 있다고 봐요. 우리가 2017년까지 내내 전쟁 위협에 시달렸잖아요. 그래서 평화가 더 절실하게 다가왔어요. 반면에 2018년부터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평화의 전망이 확 열렸거든요. <한겨레>는 통일이나 민족 문제를 붙들고 있으면서 평화 담론으로 갔는데 그 당시에 퍼져 있던 평화 담론에는 다른 흐름도 있었어요. 평화는 거의 되어가는 것 같고 우리가 살 만해졌으니 이제 갈라져서 평화롭게 살면 되지 뭐 분단체제 극복이니 남북연합이니 하고 떠드느냐 하는 그런 흐름이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우리 상황에서 통일을 이야기할수록 평화가 위협받는다는 건 일리 있는 말이에요. 그러나 통일을 제쳐버렸을 때 평화가 정착되느냐, 그건 아니거든요. 통일이라든가 민주화 문제를 계속 붙들고 가면서 평화 담론을 이야기하는 게 중요한데, <한겨레>가 그런 문제를 얼마나 깊이 생각하고 정리했는지 오히려 저는 궁금한 사항입니다.”







―제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겨레>는 창간 때부터 남북의 화해와 평화, 그리고 통일을 핵심 가치로 삼아왔습니다. 또 남북의 화해와 평화는 ‘분단체제 극복’이라는 화두로 집약됐습니다. 사실 분단체제라는 말은 백 선생님이 제창한 담론이기도 합니다. <한겨레>의 분단 극복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한겨레>가 분단 극복을 위해서 끈질기게 노력해왔고, 또 평화 담론을 앞세운 이후에도 그 점을 포기하지 않은 점이 (요즘) 유행하는 평화 담론하고 차별화되는 점입니다. 그 점 높이 평가합니다. 그런데 저의 분단체제론을 <한겨레>가 얼마나 활용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분단체제 자체는 ‘분단 극복’만 이야기해서는 한반도 문제가 해결이 안 된다는 거거든요. (분단체제에는) 남북 대결이라는 문제도 있지만 강대국과의 관계, 국내 민주주의 문제, 이런 게 다 얽혀 있기 때문에 정말 공부하는 자세로 이걸 고찰하고 풀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시기를 보면 또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에도 ‘빨갱이 담론’이나 ‘종북 담론’이 기승을 부렸습니다. ‘흡수통일론’도 틈만 나면 불거졌고요. 이런 담론들이 남북의 화해와 한반도의 평화 진전에 얼마나 해가 되는지, <한겨레>는 쉬지 않고 지적해 왔습니다.







“친북 좌파, 빨갱이 담론이 가장 기승을 부린 건 오히려 최근이 아닌가, 특히 탄핵 이후로 그러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과거 6·25 전쟁 때에는 빨갱이로 찍으면 죽였어요. 그 이후에는 죽이는 건 덜 했지만 빨갱이라 하면 잡아가서 고문하고 형무소 보내고 했어요. 그게 불가능해지니 한편으로는 더 악이 나서 아무나 보고 빨갱이라 하고, 또 한편으로는 자기들이 아무리 빨갱이라 불러봤자 저 사람들이 죽거나 잡혀가는 게 아니니 부담 없이 떠들어대는 면도 있고요.”







―남북 관계나 한반도 상황에서 직접적 영향을 준 사건은 역시, 김대중 정부 이래 다섯 차례에 걸친 남북 정상 회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70년 동안 적대하던 북-미 정상이 만났다는 것입니다. 이런 만남들이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됐으리라고 봅니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은 큰 사건들이죠. 하지만 국내 민주화 문제도 남북관계와 밀접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표면상 남북관계가 직접 관련이 없는 큰 사건들도 분단체제 극복 과정에서는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으로 인해 분단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최근의 촛불혁명도 그렇습니다. 촛불시위 과정에서는 남북관계가 중요시되지 않았지만 그 시위의 결과로, 남북관계를 악화시킴으로써 이득을 보는 세력이 권좌에서 물러났습니다. 또 21대 총선을 통해서 의회에서 이 세력이 약화됐는데, 나는 이런 것도 분단체제 극복에 결정적인 사건으로 봅니다. 물론 최근의 남북 정상회담이나 북-미 정상회담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촛불이 그걸 연 거죠. 어쨌든 <한겨레>에서 애쓰시고 국민 모두가 나서서 그동안 기복은 많았지만 꽤 발전해왔다고 봅니다.”







―국내 정치를 보면 지난 몇 년 사이 가장 큰 사건이라면 역시 ‘촛불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최순실 국정농단’을 파헤쳐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성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데 <한겨레>가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백 선생님도 이 일련의 사건을 ‘촛불혁명’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해 담론화하셨는데요.







“박근혜 퇴진을 이끄는 데 <한겨레> 공로가 컸는데 ‘최순실 태블릿피시’가 더 부각된 면이 있죠.”







―<한겨레>로서는 상당히 억울한 일입니다.







“2016년부터 2017년에 걸친 촛불시위, 그 결과로 이뤄진 정권교체, 문재인 정부 출범, 이것만 가지고는 혁명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있는데,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걸 계기로 해서 우리 사회와 한반도 전체에 걸쳐서 혁명이 시작됐고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뜻에서 촛불혁명이라고 한 겁니다. 물론 그 용어에 동의 안 하는 분들이 많죠. 그래서 지난해 말 <한겨레> 지면에 실린 신년 칼럼에서는 ‘이게 혁명이냐 아니냐는 개념 논쟁에 빠지기보다는 일종의 화두로 붙들고 연마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느냐’ 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 사회의 큰 문제 가운데 하나가 ‘재벌 중심 경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겨레>는 창간 이래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의 행태를 감시하고 재벌 중심 경제를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때문에 최대 재벌인 삼성으로부터 광고 탄압을 받기도 했고, 현재도 이 문제는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진보 언론 매체 중에서 <한겨레>가 가장 돋보이는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겨레>가 삼성으로부터 불이익을 많이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점에 대해 전적으로 응원의 박수 보내고 싶습니다. 재벌 개혁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서울대 교수를 오래 했지만, 서울대 문제가 많다고 해서 갑자기 없앨 수는 없잖아요. 재벌 개혁도 그런 것 같아요. 재벌 개혁을 어떤 방법으로, 어떤 수순을 따라서 얼마만큼 할지 많은 지혜가 모여야 합니다. 앞으로 <한겨레>가 할 게 그런 거라 생각합니다. 계속 삼성으로부터 불이익을 받더라도 버티되 더 정교한 비판과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왼쪽)가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고명섭 선임기자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최근 들어 ‘기본소득’ 문제가 전 세계의 관심사가 됐고,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과 맞물려 한국에서도 기본소득이 주요 담론으로 올라섰습니다.







“기본소득이 코로나19를 계기로 공론화된 담론이죠. 그것은 공론화되기 전부터 꾸준히 제기한 분들의 노력의 성과라고 봅니다. 밀턴 프리드먼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대부인데, 이 사람이 ‘진짜 위기가 왔을 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그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느냐는 그 시점에 어떤 아이디어가 나와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어요. 기본소득을 포함해 기후문제에 대한 대안적 담론이 꽤 나왔는데, 결국엔 누가 어느 것을 활용하느냐의 싸움입니다. 기본소득을 깊이 연구하진 않았지만 지금 나온 기본소득은 엄밀한 의미에서 기본소득은 아닙니다. 기본소득은 보편적 기본소득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모든 사람에게 아무 조건 없이 나눠주는 것입니다. 어쨌든 모든 사람에게 같은 금액을 나눠준다는 그 발상 자체가 새로운 것이고 조금이라도 실행되는 것도 처음이고요. 앞으로 기본 소득 문제가 활발히 논의될 겁니다. 우파 쪽에서도 자본주의를 원활하게 돌리는 윤활유로 기본소득을 줘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자본주의의 근본적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쪽에서 주장하는 기본소득은 정말 급진적이고 발본적인 아이디어죠. 그걸 실현하려면 자본주의 자체가 바뀌어야 하니까요. 장기적이고 어려운 과제입니다. 하지만 이걸 이분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파도 좋아하는 기본소득을 해나가면서 활용하면 됩니다. 그러려면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문제부터 정교하게 수순을 잡아나가는 게 필요하겠죠. <한겨레>가 새롭게 벌일 담론 투쟁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한겨레>는 창간 이래 인권을 주요한 가치 지향으로 삼았습니다. 인권 문제는 그 폭이 넓은데, 근년에 들어서는 ‘페미니즘과 소수자(장애인, 이주노동자, 난민)의 인권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 담론의 확산과 여성 인권 신장에는 우선 여성과 여성운동가들의 노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겠지만, <한겨레>의 노력도 적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자에는 성소수자도 있죠. 성소수자 이슈는 첨예한 문제인데 <한겨레> 지면에서 다루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제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인데, 그걸 얘기하는 건 어떨지 모르겠어요. 80대의 기득권자 남성이 섣불리 이야기하다가 꼰대 취급당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웃음) 간단히 말씀드리면 페미니즘 역시 이제까지 많은 진전을 이뤘지만 더 깊이 들어가고 열린 마음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저 자신은 성차별 철폐라는 게 굉장히 시급한 단기적 현안이고 중기적으로도 추구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하지만, 그것 자체를 장기적 목표로 삼을 때 과연 성차별 문제가 해결될까 그런 생각을 여기저기서 내비친 바 있습니다. 그때마다 반응이 안 좋아요,(웃음) 일부러 옛날식, 동양적 표현을 써보자면 음양의 조화를 장기적 목표로 삼고, 그 수단으로 성차별도 철폐해야 하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여성혐오와 성범죄가 만연하다 보면 음양조화가 있을 수 없잖아요? 그런 얘기를 하면 현장의 절박성을 느끼는 분들은 ‘선생이 아쉬운 게 없으니까 운동하는 사람 김 빼는 얘기 한다’고 하는데, 나는 단기적, 중기적, 장기적 과제가 한꺼번에 해결될 수 없지만 생각은 동시에 해야 한다고 믿거든요.”







―생태환경 문제랄까 지구 환경위기 문제도 심각합니다. 올해 지구촌에 창궐한 코로나19도 이런 생태환경의 악화와 인간의 자연 수탈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겨레>는 국내 생태환경 문제만이 아니라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환경위기에 적지 않은 ‘담론 투자’를 해왔습니다.







“생태 환경 문제는 저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연구를 많이 하신 분들이 계시죠. 그분들이 이제까지 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으면서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사실 큰 성과는 못 봤어요. 프리드먼 이야기를 되새기면, 지금 진짜 위기가 왔으니까 이제야말로 진짜 변화를 이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코로나 위기를 계기로 해서, 질병 문제 같은 급한 불을 어느 정도 끄고 나면 생태계 전체 문제와 기후위기 문제를 붙들고 다뤄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진 듯합니다. 기회가 온 거죠. 기후위기 문제를 다루기에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아주 거대한 전 지구적 문제와, 다른 한편 굉장히 일상적인 작은 생활 속의 문제가 함께 있다는 데 있습니다. 큰 문제를 생각하면 ‘작은 행동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무력감이 들 테고, 작은 행동을 열심히 하다보면 ‘나만 해서 뭐가 되겠나’ 하는 생각이 들 텐데, 이 두 가지를 연결해주는 여러 중간단계 차원의 문제를 함께 생각하고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지금 ‘그린 뉴딜’이란 말도 나옵니다만, 저는 그린 뉴딜도 크게 보면 두 가지로 나뉜다고 봐요.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는 그린 뉴딜과 자본주의 틀 안에서 새 기술을 개발하고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기후위기의 극복을 결합할 수 있는 케인스주의적인 뉴딜, 이 두 가지인데, 저는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자본주의가 무서운 건, 이렇게 가면 다 망한다는 걸 알면서도 발을 빼지 못하게 하는 것이거든요. 발을 빼다가는 굶어 죽든가 빚을 못 갚아서 길거리에 나앉게 되니까요. 이를 감안한 전략이 나와야 할 것 같아요.



코로나 위기가 한편으로는 기회입니다. 탈성장이 아니더라도 제로성장에 가까운 쪽으로 가야지 성장 경쟁만 해서는 지구위기를 해결할 수 없거든요. 코로나 때문에 세계성장 멈춰 있잖습니까. 예단할 순 없지만, (코로나 위기가 극복된 뒤에도) 다시 옛날식 그대로 성장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성장이 멈춘 상태에서, 우리도 덜 성장하더라도 기후 환경문제 신경 쓰는 새로운 ‘그린 뉴딜’을 해볼 기회가 생기는 거죠. 내가 분단체제론 외에 이 문제와 관련해서도 ‘적정성장’이라는 아이디어 내놓은 게 있어요. 적당한 수준의 돈벌이를 하면서도 ‘돈벌이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다른 것을 추구하겠다’는 이들이 많거든요. 국민경제도 목표를 적어도 그렇게 잡자는 거죠. ‘이대로 가다가는 다 망하니까 우리는 다른 길,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라도 살아남기 위해 꼭 해야 할 정도의 성장은 하자’ 이렇게 하면 저는 결과도 다를 것이고 전체 사고방식도 달라질 것이라 봅니다.”







―지난해 조국 장관 임명과 퇴임을 전후로 해 ‘검찰개혁’이 화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이 문제로 진보개혁 진영이 양분되다시피 했습니다. 결국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이 통과되고 검경수사권조정 법안도 국회를 통과했는데요. 이걸로 검찰개혁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국 사태’ 대해선 임명과 퇴임 외에 ‘지명’이라는 또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고 봅니다. 저는 조국 장관을 내정할 때 잘못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사태가 이렇게 크게 번질 줄은 몰랐지만 어쨌든 이건 별로 이롭지 않고 검찰개혁 제대로 할지 의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내정이 발표된 순간 완전히 전쟁으로 바뀌었잖아요. 당시 자유한국당에서도 전면전으로 나왔던 거고, 언론과 검찰까지 가세해서 임명에 반대했는데, 그 마당에 대통령이 과연 임명 안 하고 넘어가서 자기 권위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에요. 그렇게 했다면 야당은 기고만장해지고 정부는 레임덕으로 들어가는 상태가 됐을 거예요. 임명은 불가피했다 보는데, 그 뒤 검찰뿐 아니라 민심도 들끓고 진보진영도 분열되고 하니까 대통령이 진퇴양난 딜레마 빠졌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살려준 게 촛불시민이에요. 검찰개혁 주장하고 조국 수호도 있었는데 내용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조국 수호’ 하자는 사람들도 있고 지금 밀려서 안 된다는 뜻에서의 조국 수호도 있었고요. 서초동 집회도 조국 장관 사퇴 이전과 이후로 구별해서 봐야 합니다. 앞단계는 2016~17년의 시민들만큼 광범하거나 다양하지 못했지만 조국 지지자들만의 모임은 아니었어요. 100만이 넘었죠. 그들이 나옴으로써 조국이 빨리 사퇴하고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고 그때쯤 이미 검찰개혁 명분도 충분히 축적됐거든요. 조국이 혹시 잘못한 게 많고 불법행위까지 있다 하더라도 검찰이 이래선 안 된다는 것을 공유했죠. 퇴임을 가능하게 한 게 촛불시민이었다 봐요. 다만 퇴임 뒤에도 서초동 시위가 계속되면서 촛불의 성격이 좀 바뀌었다고 봐요. 퇴임 후에도 계속 조국 수호를 외치는 건 큰 도움이 안 됐다고 봅니다.”







―‘정치개혁’이라는 문제와 관련지어, 이번 4.15총선을 앞두고, 수구적폐세력을 심판해 청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쪽과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정신을 살려 대안세력이 진출할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진보개혁 세력 안에서 경합을 벌였는데요. 선생님도 이 문제에 의견을 제출하신 바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적폐 청산과 응징은 많은 국민들이 동의하는 의제였어요. 우선 과제임엔 틀림없는데, 그걸 하려면 연동형 비례대표를 무기력화해야 한다고 계산하는 쪽이 있었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로도 얼마든지 적폐 청산을 할 수 있다 보는 쪽이 있었죠. 결과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 입장이 승리했죠.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했는데, 과정이 어찌 됐든 미래통합당이 참패한 건 너무나 속 시원한 일이고 국민들도 그 점에서는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돌이켜 생각하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력화해야만 이런 성과가 가능했을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더 정당하게 했더라도 180석 정도를 범여권세력이 확보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을 거 같아요. 그런데 마치 미래통합당이 제1당이 되는 게 거의 불가피한 것처럼 공포 마케팅해서 한 건 상도의에 어긋나는 일이었습니다.(웃음) 나는 촛불정부에 이어 촛불국회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촛불국회는 두 가지 여건을 충족해야 된다고 봅니다. 하나는 반촛불세력의 최대 거점에 큰 타격 줘야 한다, 그런데 이건 이번에 달성했어요. 두 번째는 입법부 자체도 개혁하고 쇄신해서 촛불국회란 이름에 값하는 그런 국회가 돼야 한다는 건데, 민주당이 180석이라고 해서 저절로 되는 건 아니고 더 어려워진 면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앞으로 봐야겠지만, 그걸 여당에만 맡겨놓지 말고 국민들이 끊임없이 챙겨야 합니다. 거기에 또 <한겨레> 담론 투쟁의 현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겨레>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은 거시적 관점에서 근대의 적응과 극복이라는 ‘이중과제론’이라든가 자본주의 문명을 바꿔 후천개벽을 준비하자는 ‘문명전환론’을 설파하시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신문이란 게 워낙 그날그날 일어나는 사태에 맞추어 보도하고 논평하다 보니 이런 거시 담론은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올바른 거시적 방향이 구축돼 있지 않으면 미시적인 실천도 흔들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일관성을 확보해 나가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요.







“올바른 거시적 방향이 구축돼있지 않으면 미시적 실천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말은 아주 좋은 지적입니다. 흔히 거시적 담론은 추상적이고 미시적 담론이 구체적이라지만, 거시적 담론도 구체적 현실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 기초해서 진행하면서 실천과 결부하려는 거시담론이 있고요, 미시담론도 편의상 미시적 문제를 다룰 뿐 올바른 거시적 방향을 전제하고 그 일부로서 제기하는 미시적 담론이 있습니다. 그저 미시담론에 매몰돼 ‘우리는 구체적 얘기하는데 너희는 추상적인 얘기 한다’고만 하면, 사실은 자기도 모르게 남들이 이미 구축해온 거시담론을 그냥 충실히 이행하는, 응용하는 결과가 된다고 봐요. 이 점에서 <한겨레> 동지들도 ‘창비’가 개발한 담론들을 신문과는 무관한 거시담론이라고 외면하지 말고 어떻게 활용할지 더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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