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21

알라딘: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한 NL 운동가의 회고와 성찰 이명준 2012

알라딘: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한 NL 운동가의 회고와 성찰
이명준 (지은이) 바오 2012-06-25


9.3
100자평 8편
리뷰 1편
세일즈포인트 279
248쪽

주제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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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 > 사회운동 > 사회운동 일반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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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미시적인 분석과 저자 특유의 섬세한 통찰을 통해 전투적 학생운동이 끝나가던 시기였던 90년대 중후반 학생운동의 모습을 진지하게 복원하고 있다. 이 시기 학생운동에 몸을 담았던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관찰, 전언을 바탕으로 ‘정의로운 마음으로 학생운동을 시작했던 운동가들이 주사파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평소 이 부분에 관심이 없었던 독자들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점이다. 저자는 특유의 간결하고도 날카로운 필체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흡입력 있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쉽게 읽히는 것과는 별개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고민의 무게는 결코 만만치가 않다.

그동안 보수와 진보에서는 진보운동과 주사파 문제를 ‘악마화’ 혹은 거대담론 위주로만 접근해왔다. 저자는 그런 접근이 실제 진보진영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데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보수나 진보나 그러한 접근에는 ‘인간의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가치를 발하는 지점은 다양한 각도에서의 접근을 통해 90년대 학생운동가들의 모습과 내면을 기계나 부속물이 아닌 살아 있고 고민하는 인간으로 복원했다는 점이다.




목차


프롤로그/들어가기 전에

제1부
1장 운동인자의 재생산

재생산/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과 두 가지 핵심 사업/정파의 결정과 5·18에 대한 두 개의 관점/어떤 책들을 읽는가 커리(커리큘럼)/한총련 출범식/어떤 이들이 NL 운동가가 되는가/대학생활의 꽃, 농활(농민학생연대활동)/8·15 범민족대회(통일대축전)/11월 학생회 선거/학생회 선거 이후
2장 패배의 시절, 잊혀진 세대
90년대, 패배의 기억/관료화된 학생운동/운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이유
3장 낮은 단계의 목표
NL과 주사파/품성론·이상적 인간형/
주체사상의 핵심은 무엇인가/시집과 관련한 에피소드
4장 신입생, 갈등과 선택
운동의 중요한 통로, 동아리/어떤 공부를 하는가-세미나/집회와 시위 참여/연대를 구하되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제2부
5장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NLPDR)

NL은 한국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자주·민주·통일 /내재적 접근론/민족주의
6장 정파
정파의 발생과 분열/정파 투쟁/정파 선택/정파 갈등의 순기능/운동의 쇠퇴와 정파의 소멸/다른 생각, 다른 문화
7장 겨울방학
총학생회 선거 이후/과 학생회/NLPDR 학습/신입생 OT, 기획과 준비/운동에도 돈이 필요하다

제3부
8장 초보 운동가의 삶과 고민

선배의 역할/과부하.상실감과 욕망의 괴리/자주적이지 못한 자주적 학생회/고립의 심화
9장 ‘불패의 애국대오’ 한총련
중앙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자주성을 억압하는 조직문화/‘의장님’이라는 존재/공개적인 비밀조직/정해진 결론과 형식적인 토론/내부비판의 부재/전북총련의 전향
10장 선배 운동가의 삶과 고민
대중사업에 대한 스트레스/모든 혁명가의 고민거리, 집안 문제/연애는 운동의 적!/군대, 갈 것인가 말 것인가
11장 총학생회를 장악하라!
어떤 인물이 총학생장이 되는가/이상과 현실의 괴리/비운동권 총학생회의 출현

제4부
12장 운명공동체

탄압과 투쟁이 만들어낸 운명공동체/집단주의의 함정/강요된 침묵/주체사상 학습
13장 혁명의 문턱
주체사상에 대한 의문들/혁명의 문턱-혁명은 반드시 이 길로만 가야 하는가
14장 애국적 사회진출
애국적 사회진출론/정리의 조건/살아남은 자들의 정신적 상처
15장 주사파는 어떻게 다수가 되었는가
미국과 북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억압적인 사회/사상적 이유/탄압만이 문제였는가/침묵의 카르텔/국가보안법은 철폐되어야

에필로그
이 책은 쓴 이유/보다 나은 진보를 위하여/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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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이명준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 총 2종 (모두보기)
한반도 남쪽의 한 항구도시에서 태어났다. 90년대 중반 서울에 있는 한 대학에 입학해 정해진 길을 걷듯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인생의 가장 빛나던 한때를 NL의 활동가로 살며 최선을 다했지만, 그 시절의 오류와 상처의 기억들은 여전히 반성과 성찰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운동을 정리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민주노동당에 몇 년 동안 적을 두었다. 2008년 분당 국면을 거치며 탈당했고, 진보신당에서 잠시 당원 생활을 했다. 지금은 어느 곳에도 소속돼 있지 않으며 진보정당의 한 정치인과 두 곳의 시민단체에 매달 후원을 하는 평범한 시민으로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 여전히 진보의 가치가 이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진영논리에 매몰되지 않는 진솔한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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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정의감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든 운동가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어떤 과정을 통해 주체사상을 학습하고, 그 핵심적인 내용은 무엇인가?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NL(민족해방) 세력은 어떻게 다수파가 될 수 있었는가?
-진보언론과 진보 지식인들의 ‘침묵의 카르텔’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이제 NL과 주사파는 자신들의 이념을 밝히고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1.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소개와 특징

―평범한 학생운동가는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한 NL 운동가의 성찰과 고백’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미시적인 분석과 저자 특유의 섬세한 통찰을 통해 전투적 학생운동이 끝나가던 시기였던 90년대 중후반 학생운동의 모습을 진지하게 복원하고 있다. 이 시기 학생운동에 몸을 담았던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관찰, 전언을 바탕으로 ‘정의로운 마음으로 학생운동을 시작했던 운동가들이 주사파가 되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평소 이 부분에 관심이 없었던 독자들에게는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점이다. 저자는 특유의 간결하고도 날카로운 필체를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흡입력 있는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쉽게 읽히는 것과는 별개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과 고민의 무게는 결코 만만치가 않다. 그동안 보수와 진보에서는 진보운동과 주사파 문제를 ‘악마화’ 혹은 거대담론 위주로만 접근해왔다. 저자는 그런 접근이 실제 진보진영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데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보수나 진보나 그러한 접근에는 ‘인간의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이 가치를 발하는 지점은 다양한 각도에서의 접근을 통해 90년대 학생운동가들의 모습과 내면을 기계나 부속물이 아닌 살아 있고 고민하는 인간으로 복원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주사파에 경도되어 가는 학생운동가들을 악마로도, 영웅으로도 그리지 않는다. 정의를 추구했지만, 그러면서도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평범한 운동가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구성함으로써 학생운동의 문제점들을 설득력 있게 짚고 있다. 동시에 조직과 권력, 진보진영의 전반적 조직문화 등에 대한 저자 특유의 감수성이 녹아 있는 성찰의 문장들은 보수와 진보를 넘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보편적 공감대의 영역으로 이끌고 있다.

―90년대 학생운동사의 복원-“운동권판 건축학개론”
또한 이 책은 역사에 공백으로 남아 있는 90년대 학생운동을 미시사적으로 정리했다. 90년대 학생운동과 학생회의 모습을 이토록 세밀하고 설득력 있게 재구성해낸 책은 지금까지 없었다.
이 책에는 신입생이 운동에 투신하는 과정에서부터 ‘애국적 사회진출’(졸업)에 이르는 전 과정을 대단히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무슨 책을 읽고(커리큘럼), 어떤 시위와 집회에 참여하며, 또 주체사상 학습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지, 운동가들의 고민은 무엇인지, 군대문제와 연애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저자는 서두에서 이 책은 운동권 백서가 아니고, 모든 것을 말하고 있지 않다며 책 내용의 한계를 분명히 그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는 당시 학생운동의 모습은 그 시절 같은 경험을 했던 많은 이들로부터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운동권판 건축학개론”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80년대와 2000년대의 학생운동을 경험했던 이들에게도 마찬가지의 반응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특수한 시기와 공간이라는 제한된 배경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한국 학생운동의 핵심적인 모습들을 짚어내고 있음을 말해준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글을 통해 잠시나마 90년대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각에도 불구하고, 애초의 목표였던 “그들이 주사파가 되어가는 과정” 역시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오류들을 냉정하게 고백하고 있다. 이런 특징들을 통해, 진보진영의 자기반성에 가까운 글임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에 몸담고 있는 이들에게도 반성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진보진영을 마냥 이상하게만 바라보던 이들에게는 ‘왜 그렇게 되었는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답을 던져주고 있다.

―통진당 사태의 배경과 진보의 조직문화
2012년 봄에 벌어진 통합진보당 사태는 한국 사회에 큰 파장은 낳았다. 통진당 사태는 한 진보정당 내의 주도권 싸움을 넘어서 ‘주사파’의 실체 여부에 대한 논란으로 번졌고, 급기야는 한국 사회 전반에 이념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사태는 국민들로 하여금 통진당만이 아니라 한국의 진보진영 전반에 적지 않은 물음표를 던지게 만들었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진보정당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는 물론, 온갖 부정과 비리는 그동안 진보정당을 지지해왔던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 책에는 진보진영의 폐쇄적인 조직문화와 내부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오래된 관습’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담겨 있다. 통진당 사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외에도 이 책에는 그런 사태가 벌어진 배경과 조직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충실한 답변이 담겨 있다.

2. 이 책의 내용

―학생운동이 주사파에 포섭된 이유

저자는 90년대 학생운동가들 중 많은 이들이 주사파가 되었던 이유를 ‘시스템의 문제’로 짚고 있다. 90년대 들어서면서 학생운동가들은 학생회 활동에 매몰되기 시작한다. 더불어 90년대 중반으로 들어가며 학생운동 전반은 쇠퇴기로 접어들지만, 정작 주체사상을 이념으로 하는 ‘한총련’을 중심으로 전국적 학생회 조직은 더욱 정교해져 간다. 학생회 업무들이 모두 학생운동가들의 일이 되면서 점점 일에 치이고 관료화가 되어가면서 고민할 수 있는 여유가 사라져간다. 그 안에서 이미 주체사상이라는 거대이론이 한총련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개인의 운동가들에게는 대안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90년대 학생운동은 여전히 정권의 탄압 속에 놓여 있었다. 조직 내에서 설사 이견이 있다 할지라도 탄압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만약 이견을 내면 “동지의 등에 칼을 꼽을 수 있는가”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서 문제의식을 가진 운동가들도 운동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결국에는 주사파가 장악한 조직을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억압적인 사회가 이들을 극단으로 몰고 간 셈이다.

―주사파가 성장할 수 있는 토양과 조직문화
다른 한편으로는 저자는 학생운동, 주사파에 나타난 조직문화가 결코 특수한 게 아님을 여러 사례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 부분을 가지고 두 가지 상반된 측면을 동시에 비판하고 있다. 하나는 우리 사회 자체가 주사파의 성장에 좋은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판을 억압하고, 내부 고발자를 응징하는 조직문화는 우리 사회에서 주사파들 특유의 것이 아니다. 반대로 진보진영은 스스로를 보수와는 다른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고 착각을 하다 보니 반성과 성찰 그리고 혁신에 둔감하다. 자정능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거나 혁신하기보다는 아예 없었던 일로 덮고 넘어가거나 내부 고발자를 ‘종파주의자’나 ‘분열주의자’ 심지어는 ‘세작’으로까지 매도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NL이 진보진영의 다수파가 된 이유
진보진영의 가장 큰 세력인 NL의 이념이 김일성이 창시했다는 ‘주체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큰 비밀이 아니다. 혹자는 주사파와 비주사파 NL을 구분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구분은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운동에 조금이라도 몸을 담아본 사람이라면 NL의 ‘윗선’이 주사파라는 것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대착오적’이라고 그토록 비판받는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NL이 진보진영에서 다수파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분단과 외세로 대변되는 시대 상황과 NL 특유의 조직문화에서 찾고 있다. ‘항일투쟁의 역사’를 가진 북한이 ‘미제’와 싸우고 있고, 한국 내부의 억압적인 정치적, 문화적 환경은 주체사상이 제시하는 ‘유토피아’로 경도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PD를 비롯한 다른 변혁 세력과의 경쟁에서도 수적 우위를 점한 데다가 외부의 탄압과 투쟁으로 하나의 운명공동체를 이룸으로써 진보진영의 다수파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혁신을 막는 진보진영의 ‘침묵의 카르텔’
저자는 주체사상으로 나아갔던 운동가들의 오류를 분명하게 짚고 있다. 분단이나 군사독재 같은 시대 배경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스스로의 오류가 있었음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동시에 그동안 내부 문제에 침묵하고 무관심했던 진보언론과 지식인들이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것을 ‘침묵의 카르텔’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진보진영과 그 주변인들 모두가 내부의 문제점들에 대해 침묵해왔기 때문에 문제점들이 악화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2012년 통진당 사태가 벌어졌을 때 진보진영의 많은 언론과 지식인들이 “올 게 왔다”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고 탄식했던 것은 이런 사정을 반영하는 것이다.
저자는 진보진영은 오류에 대한 비판을 곧 인간에 대한 부정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나친 엄숙주의가 내부 비판을 막고 그렇기에 내부의 혁신을 막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이 책이 진보진영 내부에서 건강한 목소리들이 나올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돌아보면 결국 내부의 모든 문제들은 공개적으로 드러낼 때만이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이 책 역시 “그때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던 내용들의 뒤늦은 고백인 셈이다. 그리고 그것만이 조직과 집단이 건강해지는 유일한 길이며 논란이 될 수 있는 이 책의 출간은 그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동시에 저자는 말한다. 조직에 대한 비판에 있어 가장 적당한 시기는 언제나 “지금”이라고. 그리고 이제라도 과거의 오류들을 반성하고 반복하지 않는 것만이 역사적 책임을 지는 길이라 주장한다.

―사상의 자유시장에서 떳떳하게 경쟁하라!
저자는 건강한 진보가 있어야 카운터 파트너로 건강한 보수가 있을 수 있으며, 그 길이 우리 사회 전반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보정당과 학생운동은 여전히 이 사회에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진보진영 스스로 건강하고 투명한 진보의 모습을 시민들 앞에 보여줘야 한다.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를 숨기고, 비민주적이기까지 한 진보정당과 학생운동에 표를 던지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결국 시민들에게 바보가 되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보진영이 국민들이 가진 사상적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떳떳하게 자신의 사상을 밝히고 사상의 자유시장으로 나와서 여타의 이념들과 경쟁을 하라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국가보안법을 방패막이로 삼아 자신의 사상을 숨기고 내부 혁신을 방기한다면 진보의 미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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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분포

9.3

구매자 (6)
전체 (8)

극강테란 201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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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척하며 사람 짜증나게 하던PD... 
사람좋고 술잘사주면서 뭔가 북한관련 이상하고, 결정적 순간에 비합리적인 NL선배들... 갈등의 기원, 학생운동권의 성장... 술술 읽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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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yadic1 2012-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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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의 학생운동과 작금의 통합진보당 사태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 왜 그들이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하는 집단주의에 매몰되어 갔었는지, 자기합리화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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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onchase 2021-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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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당시보다 지금 정치상황에서 더 큰 울림을 주는 책입니다. 모 정치세력의 변질이 도무지 이해가 안되시는 분들에게 일독하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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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닉막시민 201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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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는 NL계열의 실체를 아주 쉽게 설명해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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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wife 2014-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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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보이는 권력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논의가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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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 2017-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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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균형 감각을 위해 이런 책도 읽어보는 것이 필요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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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sungil 201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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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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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젊음 2014-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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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그들만의 권력 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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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의정부짱짱맨 201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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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내의 종북 논란과, 통합진보당 부정 경선 논란, 내란음모사건과 정당 해산까지 한때 진보정당으로서 큰 기대를 모았던 민노당-통진당이 추락하게 된 가장 큰 원인에는 '종북' 세력이라 불리는 NL, 그 중에서도 주사파가 있다. 사상의 자유를 인정하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폭압적인 북한 체제와 김씨 왕조를 옹호, 찬양하는 주사파의 존재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이 책은 90년대 중반 서울 소재 대학에서 NL 운동권으로 활동했던 저자가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쓴 논픽션이다. 평이한 문장으로 알기 쉽게 쓰여 있어 이해 불가능한 괴물로 그려지던 NL 주사파의 실체를 이해하는 좋은 교재다.
저자가 대학을 다닌 90년대는 민주화가 정착해 가는 과정에서 학생운동이 점차 쇠퇴해 가는 기미를 보였지만, 한총련을 중심으로 하여 학생운동의 조직과 운영 등이 체계화되던 시기였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NL이 학생운동의 다수파가 되고 한총련을 비롯한 학생운동 조직들을 장악하게 되었다고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 좌파는 민족해방을 중심에 둔 NL과 민중민주를 중심에 둔 PD로 양분되는데, 학생운동에 있어서는 NL이 다수파였다고 한다. 민족해방을 중심에 둔 NL은 반미와 통일을 운동의 핵심적인 테제로 내세운다. NL 중에서도 주사파와 비주사파가 있지만, NL의 상층부로 갈 수록 주사파가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주사파 NL 역시 알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는 NL 주사파와 비주사파를 구분하는 의미는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입생은 본인의 정치의식에 따라 NL과 PD 중 정파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배와의 관계에 따라 정해진다고 한다. 이 책의 제목은 "왜"가 아니라 "어떻게"를 묻고 있는데 본인의 주체적 선택에 따른 것이 아니라 주변 상황에 따라 주사파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NL이 다수파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신입생 역시 자연스럽게 NL에 감화되는 경우가 많고, 결과적으로 학생운동 전체를 NL 세력이 좌지우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조직의 문화에서 두 정파는 차이가 나는데 NL이 집단주의적이고 행동을 강조하는 반면, PD는 개인주의적이고 현학적이라고 한다. NL은 특히 품성, 예의, 의리 등을 강조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일반적으로 유포되는 NL, PD에 대한 인상과도 일치한다. 그렇지만 학생운동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개개인에 초점을 두고 대학생활과 운동의 양면을 생생하게 묘사한 점은 이 책만의 장점이다.
저자는 학생운동 경험을 통해 NL에 대한 몇 가지 비판과 반성을 제시한다. 하나는 북한에 대한 다분히 비현실적인 인식이고, 또 하나는 조직 내의 비판이나 자성 자체를 금지하는 독선이다. 주체사상이나 조직 상부의 규칙을 절대시하며 그에 대한 다른 의견을 억압하는 모습은 NL이 내세우는 민주나 자주와 같은 가치와 정면에서 배치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PD나 다른 정파들에 대한 배타적 태도와 정파 갈등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학생운동의 다양성을 없애고 쇠퇴로 이어진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경직된 조직 문화 또한 저자가 비판하는 대목이다. 상당히 흥미롭기도 하고 수긍이 가는 고찰이다. 좋든 싫든 한때 운동권의 주축을 담당했던 NL을 이해하기에 좋은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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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90년대 사회적 청춘에 대한 기록
평점4점 | a*****o | 2012-07-15 | 신고
원문주소 : https://sarak.yes24.com/review/6610078

아마 그 때쯤이었을 것이다. 



숨쉴틈 없이 달려온 봄 학기의 마지막 고비를 넘던 지난 5월, 



캘리포니아의 어느 한적한 카페에서 푸코와 벤야민의 역사 인식 대한 두 개의 논문을 마치고 있을 무렵, 



유출된 건축학개론을 유튜브로 보면서, 잊혀진 줄 알았던 내 청춘의 기억들이 되살아옴을 느끼고 있던 때,  



이 책의 원문이 된 Matti(저자 이명준씨의 온라인 필명)의 글을 읽으며, 

벌써 오래 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잊고 지낸 내 청춘의 한 페이지를 만났던 것은.  



당시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사태로 진보의 해묵은 숙제가 전면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라 대중적 공론화되고 있을 무렵,  



저자 이명준씨는 이러한 진보의 치부가 우리들의 90년대 대학과 학생운동의 경험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었는지에 주목하면서, 우리들의 말할 수 없던 바로 그 문제의 기원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이 책의 중요한 미덕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첫째로 우리의 진보는 왜 어떻게 정체되었고 여러 청산 못한 과거를 짊어지게 되었는가 하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질문을, 90년대라는 역사적 환절을 온 몸으로 겪어내던 한 이름 없는 대학생의 기억에서 끄집어내 내부로부터의 시각으로부터 해명함으로써, 기존의 이론적 설명에서 찾아볼 수 없던 "생생한 그 때 그 사람들의 기억과 목소리"를 복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증언들은 미래에 90년대 사회 연구를 위한 사회과학적 연구에서 1차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점은 저자가 90년대 중반이라는, 아직 본격적인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그리고 운동의 기억에서는 승리보다 패배의 기억으로 더 많이 남아 있는, 바로 그 시절을 복원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다.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인문사회과학의 연구에서는 자칫 폄하되기 쉬운,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강렬한 진실을 체현하고 있는 구술적, 증언적 1차 사료에 대한 관심과 반영은 그 중요성을 이루 다 설명할 수 없다. 

이 책이 90년대 학생운동의 기억에 대한 전부를 복원했는가 하고 묻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저자가 그 기억의 편린들의 하나를 재생했다는 사실이고, 이것이 앞으로 많은 기억들의 재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이 책의 미덕은 지금 우리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우리가 겪어온 과거의 무게,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우리의 소소한 잘못들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가를 통찰력 있게 동시에 따뜻한 마음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찾아질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의 목소리를 새로 구성해내기 위해서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 중의 하나는, 민주화라는 승리의 기억을 환기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더 나은 정치 사회적 조건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과거의 보수적 망령을 되살려 냄으로써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믿게 된 이 기형적인 현실을 가능하게 만든 우리 스스로에 대한 진지하고 깊이 있는 반성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만들어 온 또는 경험한 90년대라는 중요한 역사의 고리에서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묻는 진지한 도전의 책이다. 



자칫 80년대를 추억하는 후일담 문학의 테제나 최근 한국 극우파들의 종북주의 공격 논리를 닮아 있다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한 이 책의 타이틀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은 이런 점에서 다분히 아쉬운 제목 선택이다. 저자의 시각은 많은 부분 자신이 속해 있던 NL 그룹에 대한 성찰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것이 특정 집단의 "그들"이 아닌, 90년대를 살아갔던 저자와 나를 포함한 "우리들"의 문제였다는 사실을 여러 차례 적시한다. 그렇더라면 책의 타이틀이 드러내는 "그들"이라는 타자화는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있고 부적절하다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억과 우리가 살아온 역사에 대한 공감적이고 용기 있는 반성을 이끌어 냄으로써 우리가 문제와 앞으로에 대한 과제를 제시하는 저자의 탁월한 안목과 통찰은 그것대로의 가치를 충분히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부연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인문학자이면서 책임과 양심이 있는 리뷰어로 이 책이 지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지적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이 책의 원 소스가 되었던 Matti의 글이 온라인 게시판에 게시된 시점은, 앞서 언급했듯 5월 경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7월이 되자마자 책으로 급속히 출판되었다. 어떤 글도 이렇게 빨리 출판될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이렇게 빨리 출판된다는 것은 그만큼 실수와 하자를 많이 포함한 출판물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좋은 글을 더 다듬고 보완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당장 출판해서 상업적으로 이용만 하고 싶어한 출판사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예를 들어, 원문의 자기 고백적 성격의 정갈하고 깔끔한 문체가 답답한 형식적 종결어미를 가진 문체로 편집되어, 본래 글쓴이의 고백적 성격을 제거해버린 것은, 이명준 씨 글의 장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바오 출판사 편집인의 중요한 실수이다. 



이 책이 좀 더 인내심을 가지고 만들어졌다면 이명준씨의 책과 글은 앞으로도 수 많은 사람들에게 훨씬 더 가치 있게 활용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너무나 성급하게 만들어져서 이 중요한 증언들이 좀 더 다듬어지고 날카롭고 통찰력 있으면서 정련될 기회를 잃어버린 것은, 정말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자유게시판에 연재시리즈로 올리던 글을 모으기만 한다고 곧바로 하나의 완결된 책이 될 수는 없다. 나는 그의 글을 게시판에서 매일 새로 읽을 때는 그의 글이 참 신선하고 깔끔하고 느꼈는데, 막상 이렇게 책이 되어 하나로 묶여서 나오니, 그의 글이 가지는 신선함 같은 것이 크게 반감되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이런 점들이 책으로 묶일 때 반드시 시간을 두고 고치고 생각하고 또 고치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 수정되었어야 하는 부분이다. 어떻게 도입을 하고 다듬고 결론을 낼 것인지 하는 디테일한 부분들이 너무나 가볍게 무시되었다는 데서, 아직 한국 출판계의 편집 수준의 열악함을 엿본다.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바오출판사에 대한 비판과 아쉬움이 멈추지 않는다. 



익명의 게시물이 아닌 하나의 정식 책으로 출판되면서 전체적인 내용에서도 보완되어야 할 것들이 적지 않았다. 저자 이명준씨가 돌아본 90년대 학생운동의 미시적인 흐름과 경험들을 보다 객관화해줄 수 있는 다양한 실제적 자료, 다른 비슷한 사람들의 증언들이 있었더라면 이 책이 미래의 연구 자료로서 가지는 학술적 가치가 훨씬 더 높았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 것도 언급해야만 하는 부분이다. 저자 자신만의 경험에 대한 술회와 회상이 개인의 증언록으로 가지는 의미는 충분히 있지만, 그것이 그 자신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는 근거들을 가지고 있었다면 얼마나 글이 더 생동감 있고 역동적이며 다차원적으로 읽힐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이 모든 것은 이명준(Matti)라는 창의적 작가의 원석을 그냥 시장에 내보내려는 욕심만 앞서서 편집과 구성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출판사와 편집인에 마땅히 돌아가야 하는 비판이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 한국의 사회과학 출판계가 지속적으로 개선해야 할 점이라는 것도 언급하고자 한다. 



나는 지난 5월 Matti의 글을 읽으면서 머나먼 미국 땅에서 잊고 지낸 내 청춘에 대한 매우 소중한 기억을 회상할 기회를 얻었다.  이 리뷰로서 그의 글에 대한 독후감을 마치고자 한다.        



버클리, 캘리포니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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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사파의 회고록
평점10점 | a******2 | 2018-03-30 | 신고
원문주소 : https://sarak.yes24.com/review/10263006

운동권에 대한 환멸
 구체적으로 말은 하지 않지만, 요즘 20대들은 진보·보수 성향을 막론하고 대체로 운동권 세력에 환멸감을 갖고 있다. 나 역시도 다르지 않다. 우리학교는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NL 세력이 학생회에서 영향력을 차지하고 있는 편이었는데, 내가 졸업하기 직전 선거 때 총학에서 빠져나온 신입생이 용감하게 총학 내부의 비리와 문제점을 밝힘으로써 그 모든게 끝나게 되었던게 기억난다. 마지막 선거에서 나는 그 기존의 총학 세력이 아닌 다른 후보에 투표했고, 졸업 전에 내가 뽑은 후보가 선출되어 올라가는 걸 보고 가게 되었다. 

 무엇이 운동권을 괴물로 만들었을까. 사실 운동권이 한국 현대사의 주역이던 시기엔 그리 도드라지지 않았다. 80년대 운동권은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주역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 시절부터 지독한 군사정권과 맞서 싸우며 조금씩 군사정권의 폭력과 닮아가고 있다는 비판은 존재했었다. 더욱이, 정보가 제한된 상황에서 북한의 주체사상은 일부 운동권 세력에게 특히나 매력적인 것으로 비추어졌다. 주체사상 내부에 권위주의와 폭력의 씨앗이 잠재해 있었기에, 이를 본받은 사람들이 점차 권위적으로 변해가는 건 피할 수 없었겠다.

 본격적으로 운동권이 문제시된 건 90년대부터였다. 맞서 싸울 거대한 괴물이 사라진 시기, 갈 길을 잃고 해매던 운동권은 본격적으로 극단화되기 시작한다. 어쩌면 맞서 싸울 괴물이 없었기에, 그래서 더욱 본인들의 존재이유를 찾아야만 했기에 현실을 억압적이고 비극적인 것으로 그리게 되고, 그런 자기기만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더욱더 기괴하고 권위적인 모습이 되어갈 수 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이 책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는 바로 그 시절 운동권의 속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90년대에 대학시절을 보내며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던 운동권이지만, 현재는 그 지난 시절을 회환에 찬 시선으로 되돌아보고 있다.

 물론 저자가 NL(민족 해방 중심 계열)이었기 때문에 반대편 정파인 PD(노동자 해방 중심 계열)에 대해서는 서술이 빈약한 감이 있다. 하지만 애초에 주사파 같은 문제가 NL측에서 불거진 데다, (PD측도 나름 고유한 문제거리가 있지만) 아무래도 NL측이 운동권 문제의 본질을 더 잘 보여주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운동권에 대해 이해하는 것도 무리는 없을 듯 싶다.

NL 운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놀랍게도 일반인들의 생각과 달리 NL계열 운동권은 정치의식이 높고 자기 주장이 강한 신입생을 경계한다고 한다. 똑똑하다고 평가하기보다 품성이 좋지 않고, 쓸데없는 의문을 많이 가진다고 판단한다. 애초에 조직이란 권위주의 문화에 순응하는 사람을 높게 평가해주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 수록 이에 걸맞은 사람들만 남게 된다. 기업체에서 요구하는 고분고분한 인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학생들이 읽게 되는 책들 역시 일정하게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다. 사실 이렇게 정해진 책들만 읽어도 이후 훌륭한 운동가로 성장하는데 무리가 없으며, 오히려 다른 관점의 책을 읽고 와서 의문을 제기하면 선배들에게 요주의 대상이 된다. 특히나 박세길의 『한국경제의 뿌리와 열매』라는 책은 운동권들의 경제 교본인데, 내용들은 반미와 통일로 관통한다. 이 땅에 존재하는 악의 근원은 미국이고, 통일만이 사회 근본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식으로 세계관이 너무 단순하게 구성되고, 선과 악의 구분이 명확해진다. 이런 세계관을 벗어나는 관점은 용납되지 않는다.

 NL 운동가들은 스스로 학습량이 굉장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들이 공부하고 배운 내용은 다른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가 없는, 반증이 부재하는 공부일 뿐이다. 공부하고  지식 수준이 질적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반증을 통한 변증법적 공부가 이뤄져야 하는데, 같은 관점의 비슷한 내용들만 계속 반복해서 학습한다.언제나 과학적 사고를 강조하면서도 실제로는 과학적 사고와는 거리가 멀다. 반증이 없는 학습이란 종국에는 신앙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조직에서 인정받는 운동가일수록 외부의 일반인들과는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NL은 똑똑한 운동가의 모습으로 학우들을 가르치려 들기 보다, 바보처럼 헌신하는 모습을 강권한다. 그래서 NL은 집단주의가 강하고 내부비판의 문화가 거의 없다. 

 NL운동권에게는 학자투라는 게 있다. 학교 내부 문제에 대한 투쟁인데, 등록금 투쟁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실 등록금 문제야 운동권이 아닌 평범한 학생들도 공감할만한 주제이지만, 이들은 여기에 "학생들 등록금 줄 돈은 없으면서 주한미군에게 줄 돈은 있단 말인가" 식의 별 상관도 없는 반미 메시지를 은연 중에 껴넣는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런 내용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운동권이 그에 대해 접근하는 태도가 문제다. 학교와 정부에 문제가 있어서 투쟁하는 측면도 존재하지만, 투쟁하기 위해 투쟁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투쟁을 하기 위한 차원에서 등록금 문제에 접근하기 때문에, 매년 등록금 투쟁이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과의 협상 노하우나 관련 제도가 축적되지 않는다.

 사실 이뿐 아니라 다른 운동들 역시 형식적으로 관료화되어 있다. 90년대 학생운동은 학생회 사업에 매몰되어 있고, 학생회 사업은 매년 똑같은 사업들로 반복된다. 학생운동이 쇠퇴기에 접어들지만, 역설적으로 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 시스템은 한층 정교해지고, 한총련 역시 상당히 체계적인 조직으로 규모가 커진다. 그런 관료화가 결국 90년대 후반 한총련을 중심으로 한 학생운동을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몰고 간다.

 여기서 저자는 '달력식 투쟁'을 지적한다. 어떤 시기엔 무슨 운동을 하고, 어떤 시기엔 무슨 운동을 하게 되어 있는데, 사실 노동탄압, 빈민촌 등의 사회문제는 달력에 맞춰 터지지 않는다. 기간도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학생운동이 일정과 이벤트에 따른 제약을 받게 되면서 어느 순간 관료화되고, 그 무게에 짓눌려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반미, 통일 등의 간단하지만 거대한 구호만 읊조리게 되는 것이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이 봄날 쓸쓸한 우리의 책 읽기여.
우리나라 아이들의 목청이여.

불현듯 떠오를 수 밖에 없는 시.

세미나와 토론
 운동권은 책 읽고 토론회도 벌이며, 상부의 지시에 대한 토론 역시 자주 벌인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책으로 하던 학기 초 세미나의 분위기는 비슷하다. 책을 읽고 토론을 하지만 모든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다. 사회에는 이런저런 모순들이 있다, 그렇지만 그 모순들은 저절로 해결되지 않고 실천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참여가 필요한 것이고 지성인이라는 대학생이라면 그에 대해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 

신입생들이 꺼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전형적 질문들에 대한 답들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다. 과정과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는 틀 안에서, 선배들은 신입생들을 반드시 제압해야 한다. 쉽사리 제압되지 않는 신입생은 실천보다 말싸움만 즐긴다는 식으로 비판을 받는다. 처음에는 다양한 스타일의 신입생들이 들어왔더라도, 결국 유사한 이들만 남거나, 유사하게 다듬어지는 게 이 때문이다. 

 한편 토론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기존 논리에 벗어난다 싶은 상대방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저자는 학생운동에서 괴로운 기억 중 하나가 비판이라는 외피를 쓰고 날아오는 모욕들이라고 한다. NL이나 PD나 마찬가지인데,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이들에게 모욕을 주는 게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누가 봐도 모욕인데 자신들은 그걸 올바른 비판 자세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토론의 달인이라고 착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은 곧 죽어도 동지애적 비판이라고 하니 발끈하면 그 사람만 바보가 되는 것이다. 상대방이 분노하면, 자신이 그만큼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비판을 했기 때문에 불쾌해하는 것이라고 판단하며 뿌듯해한다. 사실 이는 인간에 대한 예의의 부재,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운동권들은 매일처럼 토론이란 이름의 행위를 했지만, 정작 올바른 토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다. 

NL과 주사파
 견실한 NL 운동가라면 '윗선'이 주사파라는 것을 모를 수 없다. 나아가 한총련 의장단이나 중앙집행부 이상의 윗선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이에대해 진보진영이 그간 침묵해왔다고 저자는 비판하고 있다.

 물론 NL운동권 모두가 주사파인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 내부의 주사파 동지들을 묵인하고, 감정적으로는 낮은 수준의 주체사상에는 동의하는 정도에 머물며 그 곁을 지키는 이들이 상당하다. 대체로 북한을 우상화하고 추종하는 정도까진 아니라도 온정적이면서 애착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이런 쪽이다.

 그런데 주체사상이란 과연 무엇일까.
 세상의 중심이 사람이라는 것이고, 이른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명제가 이 사상의 핵심이다. 세계관 자체가 사람 중심이기 때문에 '주체'사상이라고 자칭한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그 '사람'은 대체 무엇인가, 사람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며, '자주성·의식성·창조성을 가진 존재'라고 한다.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 물질로 이뤄진 구조적 여건도 물론 중요하지만,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주체사상이란 "하면 된다!"라는 시시한 의지론으로 귀결된다. 결국 사회를 변혁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인 사람의 신념과 의지"라는 것이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유독 개인의 신념과 의지를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각 개인은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위에서 내려준 시스템 하에서 지도부를 믿고 최선을 다 하면 되는 것이다. 이 당시 학생운동가들이 자랑스레 외치는 구호가 있었다. "(한총련) 중앙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그들의 사고에 심각한 결함이 있었음을 증명해주는 모습이다.

사람이라는 '주체'에 모든 것의 성패가 달려 있고,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의 품성은 사회적 관계에 걸맞도록 길러져야 한다. 그리고 이 '사회적 존재'에서부터 집단주의가 합리화된다. 혁명은 조직을 통해야 하고, 조직은 집단주의로 유지되어야 한다. 

 주체사상은 이처럼 뭔가 무시무시한 것 같은데, 사실 알고 보면 별것 아니다. 사실 '하면된다!'식의 학교 급훈들은 알고 보면 주체사상의 핵심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개인들이 정교한 시스템 속의 부속품으로 파편화되면 전체주의 사회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더욱 큰 문제는 '수령론'이다. 주체사상의 허울 좋은 이야기들은 결국에는 수령론은 목적으로 한 경전들일 뿐이다. 지금까지의 내용들은 모두 수령론을 통해 일인 독재의 전체주의 사회를 지탱해나가는 받침대와 지주가 된다. 수많은 NL들이 속으로 주체사상을 거부하고 선을 긋게 되는 순간이 바로 수령론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수령론에 따르면 김일성과 김정일을 유일신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수령론은 믿음의 영역이다. 믿는 자만이 뛰어오르고, 그럼으로써 유일신 신앙으로이 세례를 받는다. 
 
선거와 한총련
 운동권들에게 학생회란 정말 중요한 문제다. 11월이 되면 NL, PD 가릴 것 없이 모든 역량들이 선거에 집중된다. 학생회를 잡아야 모든 사업을 편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학생회를 잡았을 때의 이점은 정해진 학생회비 말고도 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졸업 앨범 업체 선정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리베이트를 받거나, 교내 행사에서 기업 협찬을 과도하게 받는 방법들이 있다. 자본주의에 반대한다는 운동권 총학생회가 축제를 비롯한 교내 행사에서 오히려 비운동권 총학생회보다도 기업 협찬이나 자료집 광고를 많이 받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 때문이다.

 NL들은 자신들이 총학생회를 잡으면 "학생회로 대동단결"을 주장하지만, 자신들이 떨어지면 '조국통일위원회'라는 조직을 별도로 만들어 (대체로 PD일) 총학생회를 비토한다. 물론 PD들도 자신들이 떨어지면 따로 조직을 만든다.

 NL의 중추가 되는 조직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인데, 이를 줄여서 '한총련'이라고 부른다. 한총련은 구국, 민족을 강조하는 NL 중심의 조직으로, 90년대 NL 학생운동 그 자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총련은 대표자인 의장부터 과 학생회까지 수직으로 뻗어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NL이 한총련을 장악하고 있어 갖는 이점들은 엄청나다. 무엇보다 돈과 조직을 확보하게 된다. 전국 대학의 총학생회는 정치노선과 관계없이 한총련 분담금을 내야한다. 그렇게 모인 조직운영비를 통해 많은 돈이 들어가는 거대 규모의 정치집회가 가능해진다. 게다가 지도부를 정점으로 과 학생회까지 수직으로 뻗어있는 구조이기에, 중앙의 지침이 말단 활동가들에게까지 빛의 속도로 전파된다. 

 한총련에서 '의장님'의 존재는 엄청난 상징성을 갖는다. '의장님'이라는 극존칭은 물론이며 출범식 때는 엄청난 규모의 '옹립식'을 거해한다. NL 운동가들이 '의장님'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과도한 예의는 언어의 제한을 가져오고, 언어의 제한은 사고의 제한으로 이어진다. 동지에 대한 예의라는 미명 하에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체계는 필연적으로 위로부터의 통제는 용이하지만, 아래로부터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내포한다.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적 견해가 있어도 그런 문제의식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해버린다. 

 이런 한총련이란 조직에서 1~2년 운동하다 보면 자주적으로 사고하는 자세가 사라져버린다. 본인들 운동 안에 무슨 문제가 생겨도 위에서 공식적인 입장이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주체사상은 인간을 자주성을 가진 존재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운동가가 자주성을 가지고 활동하면 그것을 억압하기에 바쁘다. 자주성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덕목인 것일까. 

 한총련의 문제점은 곧 학생운동의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운동이 곧 학생회가 되는 구조다 보니 운동가들은 공식적이어야 할 기구를 비공식적긱구로 인식하게 된다. 학우들에게 한총련은 본인들이 뽑은 학생회의 연합체에 불과하며, 그렇기에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하지만, NL 운동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한총련은 운동 조직이고 정권의 탄압을 받고 있기 때문에 비밀스럽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투명성이나 민주주의 같은 접근은 굉장히 비현실적인 태도라고 비판 받는다. 그래서 책임과 의사결정의 분리라는 NL 특유의 고질적인 문제가 생긴다. 한총련 의장은 '상징성'이 큰 존재고 말 그대로 '상징성'에 머문다. 실제 모든 결정들은 그 주변의 중집이나 '비선' 조직에서 이뤄진다. 이건 학우들이 던진 표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다. 

미숙했던 민주주의
 운동권은 누구보다 민주주의를 소리쳐 부르짖었지만, 누구보다 민주주의 훈련이 턱없이 부족했다. 약자가 강자에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훈련이 아니다. 그것은 처지에 따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강자가 되었을 때의 올바른 태도를 기르는 것이 민주주의 훈련이다.

 진보진영에는 이게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민주주의란 남에게만 요구하는 것이지 우리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의 집단이든, 운동가들의 집단이든 진보 진영이 권력을 잡으면 돌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단 한 번도 강자가 되었을 때의 처신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저자는 진보진영이 오른손으로는 저항의 팔뚝질을 하면서, 왼손으로는 소수파를 억눌러왔던 불편한 진실을 이제는 솔직하게 마주할 때가 되지 않았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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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이명준]내부비판에 있어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나 '지금'
평점7점 | YES마니아 : 플래티넘 s*******1 | 2017-07-23 | 신고
원문주소 : https://sarak.yes24.com/review/9765362

 책 제목을 나에게 적용하여 바꿔본다면, <나는 왜 학생회에 참가했는가.> 내지는 <나는 왜 학생회 활동에 참여 했는가.> 정도로 바꿀 수 있겠다. 그리고 그 이유는 송곳의 구고신 소장의 말과 같다. "밥부터 같이 먹어요. 사람들은 옳은 사람 말 안들어. 좋은 사람 말을 듣지." 그렇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고, 다소간 동아리 활동 등 대외활동을 하기에는 사회성이 부족했기에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가장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자 했을 뿐이었다. 누군가는 학생회 패권주의(?)라고 비난했고, 주류로 자칭하는 그들만의 리그라고도 했고, 우리는 니들은 그럼 무엇을 하느냐라고 비난했다. 서로 암묵적인 그룹이 만들어졌고, 투쟁아닌 투쟁이 있었다. 그러다 문제가 터졌다. 누군가가 학생회비를 유용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의 진위는 알수없지만 유용한 학생회비의 출처는 정확히 알 수 없었고, 나 역시도 그 돈으로 술을 얻어 먹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채워넣고, 그 사안에 대해서는 입닫고 있을 수 밖에. 그렇게 나는 졸업을 했고, 겨우 밥벌이를 하고 있으며, 그때 그 사람들과 이따금씩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 그때 그 옛날 이야기들을.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는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받아들이면 될까 싶다. 서문에서 밝힌대로 과거에 대한 회상이자 반성이다. 나아가 진보 진영에 대한 용기다. 사실 내가 학생시설 학생회는 거의 정치색이 무너져버린 상황이었다. 이전부터 지속되어오던 사업들 조차도 참여를 바라기 어려웠다. 농활은 소수의 인원만이 가는 것으로 전락했고 (지금은 거의 안가는 곳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학생총회는 성사조차 어려웠다. 애초에 살아남기 바쁜 학우들이 가봐야 아무것도 없고 형식적인 절차 후 뒤풀이에서 술만먹는 꼰대(?)들만 있는 곳에 오고 싶지 않겠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그래서 고민도 많았고, 어떻게 해야 우리 학과가 잘 단합할까 고민도 많았다. 본 책도 마찬가지의 흐름을 따른다. 진보주의에 대한 반성, 주사파에대한 변명(?)일 수 있지만, 90년대를 관통했던 학생회 운동의 흐름을 보면서 내가 있던 시대의 학생회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었다. 선배들 역시 우리와 비슷한 정파니 주류니 누가 옳으니의 문제로 다퉜고 (정치적 영역이 아닌, 현재는 정치적 영역이 거의 퇴색했기 때문에) 그것은 어쩌면 보편적인 사회의 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다만 그 때와 우리가 달랐던 것은 무엇일까 늘 생각했다. 나 때와는 다른 혹은 지금 학생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을까. 그렇기에 참여라는 것에 있어서 이다지도 차이가 날까.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의문이었던 것은 진보진영 내의 주사파 문제였다. 사실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10여년의 간극 전에는 어떻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혹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들이 공공연하게 오고 갔을까. 왜 저런 생각을 가지고 운동을 하게 되었을까. 하지만 깊은 물음은 아니었기에 묵혀두었던 이야기들을 오늘에서야 읽게 되었다. 저자의 말대로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1990년대 학생운동에 대해서 잘모는 사람이면, 혹은 주사파의 탄생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편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지금의 학생회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보면서 한 번 고민해 봄직한 이야기들도 많다. 

 책이 처음 나온 시기가 통합진보당 사태 시기 인듯 하다. 저자 역시 이런 시기에 큰 부담을 안고 이 책을 냈던것 같다. "내부비판에 있어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나 '지금'(p.11~12)"이기에 용기를 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 저자의 말대로 책이 보편성을 가지기 위해 일부 각색되고 축약된 이야기지만, 그 시대를 관통해온 사람들에게는 위로가, 겪어보지 못한 우리에게는 이해를 위한 토대가, 진보진영에게는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이 거기에 남아 있(p.11)"을 잊지 않는 계기가 될만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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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인간이 자꾸 과거를 되돌아보고 거기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제들이 거기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p.11

내부비판에 있어 가장 적절한 시기는 언제나 '지금'이다. p.11~12

반증이 없는 학습이란 종국에는 신앙이 될 수 밖에 없다. p.37

모순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 다만 언론에 나오지 않을 뿐이다. 그렇지만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내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누군가는 내가 있던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p.68

거대 정파들은 끝없이 희망을 독점하고 싶어 한다. p.126

운동가의 성장은 깨달음이 쌓이면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고뇌와 두려움을 억누르며 이상적인 인간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운동가들도 인간이다. 자신들에게 향하는 싸늘한 시선들을 모르지 않는다. 그 고통 구조는 중고등학교에서의 '왕따'와 유사하다. 그렇지만 그 고통을 누르고 이겨내지 않으면 운동가의 길을 걸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 자신들의 사고체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주체사상으로의 진입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된다. 스스로 고민하고 성찰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렵기 때문이다. p.138

어느 사회, 어느 조직을 가더라도 너와 나를 구분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성이 아닌 감정이다. 생각이 다른 '분'과는 함께할 수 있지만, 미운 '놈'과는 함께할 수 없는 법이다. p.182

공개적 토론이 이뤄지지 않고, 다양한 견해가 없는 곳에서는 언제나 가장 극단적인 수준의 해석이 힘을 얻게 마련이다. 이렇듯 이해되지 않는 일들을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이해되는 지점들을 만나게 된다. 괴물처럼 보이는 사회 현상의 밑바탕에는 괴물이 만들어지게끔 하는 사회적 토대가 존재한다. p.191

반성과 성찰도 뭔가 머리속에 많은 것이 들어 있고,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p.206

우리의 문제는 '반성을 늘 부정이라고 생각'하는 점이다. p. 208

약자가 강자에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것은 훈련이 아니다. 그것은 처지에 따라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강자가 되었을 때의 올바른 태도를 기르는 것이 민주주의 훈련이다. 진보진영에는 이게 전반적으로 부족하다. p.240

여론이라는 심판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의 싸움은 무조건 조직력이 우세한 쪽의 승리로 끝난다. NL과 주사가 진보진영을 장악한 것도 그래서 가능했다. 진보진영 내부의 모두의 무관심 속에 정글의 법칙대로 돌아간다. 우리 안의 정의란 강자의 이익일 뿐이다. p.274

사실 그 운동가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 조직의 죄를 개인이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p.276

내부에서의 조용한 해결이란 결국 가장 힘 센 자들의 의지에 불과할 뿐이다. p.287

유토피아는 존재하기 때문에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기 때문에 창조하는 것이다. p.330

메시아가 사라지고 나면 사람들은 이제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금송아지를 가져다놓는다. p.333

진보가 진보인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아직까지 굳게 믿고 있다. 진보가 보수에게 늘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르게 바라보는 것이다. 거기에서 진보가 출발한다. 그렇기에 진보에게 역사적 책무가 있다면 그건 남에게 세상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용기를 발휘하는 것, 바로 그게 아닐까. p.348

선한 의도가 의도지 않는 압박이 되는 경우는 어디에나 있다.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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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학생운동 경험자의 '개인적이고 솔직한' 소회
평점6점 | r****h | 2012-10-21 | 신고
원문주소 : https://sarak.yes24.com/review/6845118

이 책의 장점은 자신의 감정과 느낌, 경험에 솔직하게 써 내려갔다는 점이다.

물론 그 감정, 느낌, 경험은 솔직한만큼이나 지극히 개인적일 수밖에 없다.

저자 자신도 그런 부분에 대해 책의 서두 및 곳곳에 언급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내용에 담긴 저자 개인의 경험과 느낌을 일반화할 필요는 없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본다면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다.

물론 나도 '개인적으로' 이 책의 내용에 동의되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

운동권도 좀 더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환골탈태해야

어쨌든 변하는 세상에서 유의미한 세력으로 생존 및 발전할 수 있다고 본다.

당연히 그것은 나 자신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이고...

진보진영의 현재모습이 너무나 초라하기 때문에 참으로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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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 이명준 / 바오
이웃추가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 이명준
여행하면서 만났던 지인이 선물한 책이다.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책 제목을 읽으면서 술을 많이 먹었으니 주사파가 되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주사파의 뜻을 알고 나니 나의 무식이 얼마나 민망하던지.. ㅍㅎㅎ
90년대 중후반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며 학생운동을 했던 운동가의 회고와 성찰이 담긴 책이다.
2012년 통합진보당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한 안타까움이 커 이 책을 쓴것 같다. 덮고 묻고 했던 것들이 결국은 곪아서 터진 사건이었다. 진보 정당의 열린 자율성과 개방성의 필요에 대해 구구절절이 이야기했다.
NL(National Liberation)은 반미와 통일을 주장하고 민족 해방을 목표로 삼고 있는 대한민국의 운동권이고,
PD(People's Democratic)은 노동해방과 반자본주의를 주장하고 계급해방을 목표로 삼고 있는 운동권이다.
NL은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는 미제(미국 제국주의)가 그 원인이라 생각하고 이 땅에서 미제를 몰아내지 않고서는 그 어떤
문제점들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자주적 민주 정부 수립을 목표로 하고 있는 북한은 미제에 맞서 60년 동안 결연히 투쟁하고 있는 우수한 나라라고 생각하고
있다.
NL 운동가들은 통일 운동에 신경 쓰지 않는 PD 계열의 운동가들을 민중의 적이라고 여긴다.
80년 대에 시민들에게 친미와 반북의 사고만이 허용되었던 시기에 반미와 통일을 외치는 주사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자주 국가를 이루고 민주 사회를 만들며 통일조국을 꿈꾸는 것을 목표로.
NL의 주체사상은 세상의 중심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러면 '사람'은 무엇인가.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고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존재이며 사회를 변혁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의 신념
과 의지'라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주체'에 모든 것의 성패가 달려있고 사람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개인의 품성은 사회적 관계에 맞도록 길
러져야 한다.
'사회적 존재'에서부터 집단주의가 합리화된다.
(NL의 사상이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는 것 같은..) 신입생 시절 동아리 선택을 통해 시작된 학생운동.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뒤풀이를 하면서 친해지고, 자발적 사회참여로 집회를 참여하게 되면서 지성인이라는 대학생이
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의무감을 가지고 학생운동을 시작하지만 발을 들여놓기는 쉬워도 나오기는 쉽지 않은 것이 학생 운동
을 하는 운동가들이다. 운동권을 보는 주위의 냉소적인 시선들을 받으며 느끼는 '고립'감은 신념을 함께 하는 동지애로 극복해 나가고 조직이라는
중요성을 함께 느끼며 조직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절대적인 존재인 한총련의 조직이라는 곳은 문제의식이나 개인적인 생각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모든 것은 윗선에서 결정
하고 지시로 내려진다. 스스로 고민하면서 주장을 내세우면 비판받고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면 칭찬을 받는 곳이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지시가 내려와도 무조건 따라야 한다. 토론이라는 것은 상부의 지침을 어떻게 하면 잘 소화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이지 그것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것이 아니다. 토론과 민주주의가 부재한 내부 조직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조직은 개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집단의 의지로 돌아가고 진실보다는 조직이 중요하고 비민주성과 폭력성에 무감각해진
다. 결국 집단주의 성격을 띠게 되는데 이는 결국 북한의 정권을 옹호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시작된 집단주의가 끝내는 같은 얼굴로 돌아오는 아이러니한 과정이다. 전 세계 독재정권들이 알고 보면 과거에는 혁명세력이었다는 사실을 돌아봐야 한다. 결국! 조직은 네 편 내 편이 정해져 있기에 옳고 그름을 떠나 선후배 관계에 따라 흘러가고 가재는 게 편이 된다는 말이다.
20대 혈기왕성할 때 했던 학생운동이 결국은 운동가들에게 '정신적인 상처'들을 남겼고 평생 마음에 안고 살아야 했다.
2012년에 일어난 통합진보당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조직의 변화와 성찰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
며 회고록을 통해 안타까움을 이야기하고 있다.
'언론과 시민들 앞에서 감추려 드는 진보운동이 아니라 투명하고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그런 운동이 되었으면 한다.'
-작가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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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24, 9:04 PM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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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준, <엔엘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최대호 2012. 11. 14. 19:21
딴지일보 등의 인터넷 매체에서 연재물의 형태로 접했었는데, 도서관에서 다른 책을 찾으러 갔다가 찾는 책 근
처에 꽂혀있는 것을 보고서야 책으로 묶여 출간된 사실을 알게 됐다. 인터넷의 연재물과 제목이 똑같지 않았더
라면 조갑제 선생의 또 하나의 역작 쯤으로 생각하고 굳이 꺼내들지 않았을 터이다. 부제는 '한 NL 운동가의 회
고와 성찰'.
반독재와 민주화 시기를 걸쳐 96년 연대 사태까지, 개별 사건에 대한 평가는 입장에 따라 갈릴 수는 있으나 적어
도 학생운동사에서 연세대는 분명히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신입생으로 입학하던 2001 년에는, 연대의 학생운동사라는 분명한 주제를 가지고 탐구하지 않는 이상 평범한 학생으로 'NL'이나 'PD'등의
약어를 듣는 일은 흔치 않았다. 청소년기에 IMF를 겪었고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지도 4년이나 지난 후에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들에게는 민족 통일이나 자주 국방을 외치는 학생회보다는 시험기간 야식판매나 도서관 내 휴식
공간 증설을 제안하는 학생회 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학생들 간의 학점 경쟁을 부추기고 관계망을 파편화시키
는 한편 세미나나 동아리 활동의 과외 시간을 앗아가는 부수적 효과까지 노렸던 학부제는 몇 년 간의 시행 끝에
이미 착실하게 뿌리를 내린 뒤였다. NL이나 PD가 학생운동 내의 정파를 가리키는 약칭이며, 나와 사랑하고 미워
하고 술을 먹고 노래방을 가는 90년대 초중반 학번의 선배들 중 대부분이 그 어느 쪽엔가 속해 있다는, 혹은 있
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당선을 바라며 처음으로 사회 공부를 시작한 때부터였
다. 입학하고도 2년여 후의 일이다.
하지만 책이나 기사들을 통해 부분적으로 얻게 되는 지식은 있어도 바로 그 때 바로 거기에 서 있었던 그 선배들
의 입으로부터 NL이나 PD의 이름과 얽힌 이야기를 듣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만취한 선배들에게 학생운동이 무엇
이냐, NL은 무엇이냐, 물어보면 돌아오는 것은 몇 개의 감정이 뒤섞인 긴 응시, 눈물, 알 수 없는 웅얼거림, 노수
석과 같은 몇 개의 이름들 뿐이었다.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이야기와 태도에 일종의 공포감과 외경감을 가
졌고, 그 이후로는 누구에게도 섣불리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이런저런 공부를 한 뒤에는 전대
협이니 한총련이니 하는 단어들도,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라면 떠듬떠듬 대강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지만
그래도 선배들의 응시에 들어있던 감정이 무엇이고 몇 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책은 아마도 나의 그 선배들과 어딘가에서의 시위 현장에서 반드시 한 번은 스쳤을 법한, 90년대 중반 학번
인 어떤 형이 쓴 책이다. 한 명의 신입생이 입학하여 졸업 때까지 겪게 되는 일련의 이벤트를 따라가는 방식을
취하면서, 그 때마다 오고가는 감정들, 고민들을 정리해 놓은 일종의 체험담이다. 하지만 주인공이 특정되어 있
지 않고, 감정이나 고민이 일어나는 인과 관계에 대해 설득력 있게 해설하고 있으며 그 결과 또한 상식적이고 보
편적이라 볼 수 있으므로, 단지 한 명의 회고록일 뿐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오독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제목에서 NL이라는 호칭이 먼저 보이듯, 이 책의 주인공과 주된 세력은 NL이다. PD도 이따금 등장하기는 하지
만 NL과의 비교라는 기능적 목적에 한정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라는 부분이
의미심장하다. 작가 스스로도 그 부분에 대해 시간을 들여 설명하고 있다. 작가는 NL이 무엇인지 PD가 무엇인
지, NL이 맞았는지 PD가 맞았는지를 '분석'하는 것보다는 평범한 신입생이 어떻게 운동권이 되고 또 어떻게 주
사파가 되는지에 대해 '술회'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그래서 '왜 주사파가 되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주사파
가 되었는가'이다.
시간의 순서에 따라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책의 주된 내용을 모두 이곳에 요약하는 것은 무리이다. 단
이 긴 내용을 전달하려 했던 작가의 의도는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NL이든 PD이든, 정파를 창출하고 조직을 구획
하고 정책을 설립하였던 이들이 다 있겠지만, 90년대 중후반에 막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에게는 고마운 선배이고
농활의 추억이고 사랑스러운 후배였을 것이다. 투쟁의 역사이기 이전에 개인의 삶이었다는 것이다. NL이라는 이
름의 공과를 논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사회적 숙제이나, 거대한 담론을 구성하고 있었던 것은 실은 수
많은 평범한 이들의 일상이고 관계였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려 했던 것 같다. '술회', '회고'의 형식도 아마 그래
서 선택되었을 것이다.
저자의 의도가 어쨌든, 이 책의 내용은 복잡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보수 언론이나 보수적인 성향의 댓글에서
는 '전향을 선언한 빨갱이는 받아주자'나 '빨갱이도 인간이라는 심정적 호소를 하려는 수작'등의 의견을 읽을 수
있었다. 진보 진영에서는 진진한 술회라는 공감 외에도 올해 있었던 통합진보당 사태와 관련해 '하필 이렇게 여
론이 좋지 않을 때 동지의 등에 칼을 꽂나'라는 의견도 분명히 있었다. 말하자면, 역사란 중립적인 것이고 접근
은 균형잡힌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 분이시라면 이러한 논쟁적 저작을 굳이 읽으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 의견 수준의 내용을 '이것이 가치중립적인 팩트다'라고 주장하는 한편에서, '이건
내 이야기이고 추억입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하는 이 책의 목소리에 체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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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24, 9:04 PM 이명준, <엔엘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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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에 있었던 지난 시간을 정리하며 저자가 떠올린 감정은 '고독'이다. 사회를 위해 헌신한다는 소명감이 있
었고 주위의 사람들도 그 가치에는 공감하였던 80년대 학번들, 자기 인생을 찾아 사회에 관심을 끊거나 혹은 정
치 참여, 시민운동 참여라는 보다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낸 2000년대 학번들의 사이에서, 90년대의 운동권 학생
들이 느꼈던 것은 고독이었다고 한다. 이해받지 못하고, 공감받지 못하고, 어떤 때는 스스로를 설득할 수조차 없
어 동지와의 온정만으로 버텨야 하는 순간도 있었던, 고독의 한 때. 나를 쳐다보던 내 선배들의 눈빛 중 한 가지
는 고독이었을까. 찬찬히 생각해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남의 속이야 어찌 다 알 수 있을
까마는, 나는 이따금 술을 먹고 '그래도 90년대 선배들은 사회를 위해 뭘 한다는 만족감은 있었을 거 아냐'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적어도 그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최영호의 독후감 –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이명준 지음)
 전주일보 승인 2019.11.03

"변절한 운동권이 자율과 경쟁 조차 없이
전북 정치에 빌붙어 지역낙후를 부추겼나?"
최영호 변호사- 법무법인 모악

뒤늦게 전북대 대학원을 다니게 된 2010년경. 전북대의 학내 게시판은 필자가 보았던 것과는 다른 이색적인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북한 인권’.

필자가 대학을 다닌 2000년. 각 대학은 탈 운동권 바람이 불었고, 비운동권이 학생회장에 당선됐다. IMF 이후 대학생은 졸업하면 취업은 할 수 있는 건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 반복해야 했다.


학교 곳곳에 반미, 자주, 통일, 노동 등의 구호를 내건 대자보가 붙어 있었지만, 대부분의 학생은 ‘취업’을 고민했다. 누군가는 대학생이 사회에 대한 ‘깊이’와 ‘고민’이 없다고 한탄했지만, 누군가에겐 사회에 대한 ‘깊이’와 ‘고민’이 사치로 여겨졌다.

대학생은 취업을 매개로 고시, 공무원 시험, 토론, 영어 회화, 면접 준비 등을 위해 모였다. IMF가 지나면 나아질 줄 알았던 취업난은 더 심해졌다. 2000년대 초에는 반미 등의 구호를 볼 수 있었지만, 2000년대 후반에는 구호는 사라지고, 운동권은 고대 유물이 되었다.

그런데 전북대에는 등록금도 반미도 아닌 ‘북한 인권’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내 고향 전북은 진보 민주당 텃밭이라고 알았는데, 보수와 자유한국당 계열의 정당이 주장하는 북한 인권을 대학에서 얘기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한 형은, '전북대는 다 뉴라이트야'라고 했고, '전북의 민주당 정치인 중에 뉴라이트가 있다'고도 했다. 전북대에서 학부를 다녔던 한 친구는 푸른공동체라는 단어도 알려주었다. 도대체 전북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전북의 뉴라이트를 알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전북대 뉴라이트라고 하면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행정관 20대 새누리당 여성 국회의원이 가장 유명했다. 그것만 가지고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란 책을 접하게 됐다.
90년대 중반 대학에서 운동권이 주류에서 밀려나기 시작할 즈음 입학한 저자가 NL 운동권에 입문하고 주체사상을 접하는 경험을 기록한 책이다. 그리고 2012년 통진당 사태와 함께 왜 운동권이 시대를 벗어난 채 국민의 지탄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필자의 관심사는 ‘전북’의 운동권이었다. 이 책에서 ‘한총련’의 폐쇄성과 비민주성을 지적하는 부분에서 ‘전북총련의 전향’이라는 소제목이 있다. ‘90년대 후반 전북지역 주사파들이 일시에 전향을 했던 사건이 있다. 그 결과 한총련 바로 아래 단위인 전북총련이 순식간에 해체되었다. 뉴라이트로의 전향을 변절이라고 단정하고 비난만 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한총련의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로 상층에서 전향을 결정하자 전북총련 전체가 전향한 점을 비판했다.

그리고 저자는 인터뷰에서 전향의 이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밝히고 있다. “슬픈 이야긴데. 이분들이 전북총련이니까 전라북도 쪽이잖아요. 전북대는 국립대니 그나마 그렇다 쳐요. 원광대 우석대 이 출신들의 30, 40대 운동가들은 먹고살 수가 없는 거죠. 서울대나 명문대 나오면 학원강사 하면 돼요. 이분들의 고민은 어느 길로 가느냐. 보수단체에서 만들어주는 북한 라디오 방송, 북한 민주화 네트워크 이런 곳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죠. 실제로도 그 사람들 받아 줄 수 있는 곳이 그런 곳밖에 없어요. 민주당이 받아주는 것도 아니고. 민주당은 전대협 전 의장이라던가,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처럼 상품 가치가 있어야 영입이 되지. 이 분들을 어디에 씁니까. 이 사람들이 결국 극우로 ‘변절’한 것처럼 보이는 거죠. 어렵게 사는 거에요. 불편한 진실인 거죠.”


정리하면 전북대의 서울로 간 뉴라이트는 제자리를 찾은 것처럼 보인다. 북한 인권 운동을 하거나 보수당으로 가 청와대 또는 국회로 갔다. 그런데 전북에 남은 그 많은 뉴라이트는 모두 뭘 하고 있을까?

뉴라이트를 비판하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김정은은 협상의 파트너이기도 하지만, 세습과 폐쇄로 북한 인민을 개돼지 정도로 여기는 김일성 삼대는 민족의 적이라는 모순은 분명히 존재한다. 둘 중의 어느 하나만 옳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전북은 진보도 보수도, 친북도 뉴라이트도 비빔밥같이 한 개의 정당에 어울려 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지방행정, 지방정치도 시민단체도 혼돈의 8~90년대를 뒤로 한 채 어울렁더울렁 지내고 있다. 정치도, 정의도, 운동도 밥벌이가 되었고 가면을 쓴 채 속내를 숨겼다. 안 되는 건 있어도 되는 건 없고, 자율과 경쟁 없이 정치와 행정에 빌붙어 쇠퇴와 퇴보를 반복한 전북.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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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파
최근 수정 시각: 2024-07-28 02:4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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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역사


분류운동권
학생회의 계파 분류




운동권의 계파 역사







1. 개요
2. 특징
3. 관련 자료
1. 개요[편집]
주체사상파(主體思想派), 약칭 주사파는 1980~90년대에 대학가에서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추종하던 NL세력을 일컫는 말이다. 주사파라고 줄여 부르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강력한 반공주의 정책으로 사회주의가 씨가 말라 있던 시절인 1986년 김영환이 쓴 <강철서신>을 시초로 주체사상이 남한으로 암암리에 전파되었고 당시 좌파 진영에 팽배하던 좌익 민족주의와 뒤섞여서 운동권[1]에 퍼진 것이 주사파의 기원이다. 당시 주류였던 PD세력을 정파투쟁을 통해 몰아내고 빠른 시간에 운동권을 장악하였다. 이들은 운동가의 품성을 강조한 '품성론'과[2] '자주적 학생회론[3]'등을 도입해 당시 비판 의식과 논쟁이 치열하던 학생운동권을 장악하였다. 주체사상의 내용 중 '수령론' 같은 경우 NL 성향의 학생운동 활동가 내부에서도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들은 졸업 후 기성정치권에도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어느 정당이든 분포해 있다. 주사파에게 밀려난 PD세력[4]은 주사파를 종북주의자로 규정하기도 했다.[5]
2. 특징[편집]
이들은 1980~90년대 PD와 함께 NL이 학생운동권의 양대산맥을 형성할 때 NL의 핵심지도부를 장악했으며 학생회장 선거를 통해 학생회를 장악하면 학생회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학생회장 선거에서 PD나 비운동권파에게 패했을 경우에는 자기들 멋대로 조국통일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서 학생회와는 별개로 활동하면서 학생회비 집행의 지분을 요구하곤 했다. 단파라디오로 '구국의 소리'를 듣는 방송팀을 두었고 품성론에 따라 총화시간마다 연애담까지 전부 털어놔야 했으며 수령론을 도입해 전대협-한총련 의장과 그 밑에 있는 지역별 조직 의장들을 옹립하여 지도자 원리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체계를 갖추었다.

하지만 1989년부터 동유럽 혁명으로 소련과 동구권의 공산주의 정권들이 서서히 붕괴되면서 진보 진영이 개량주의로 나아가기 시작했고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민주화된 남한과 달리 북한의 실체가 까발려지고 민주화 이후 학생 운동도 퇴조하면서 이들은 서서히 잊혀갔다. 1990년 안기부가 발표한 '자주민주통일그룹(자민통) 사건'을 비롯해 1994년 서강대학교 전 총장 박홍 루카 신부의 주사파 발언(1994년 주사파 파동) 때문에 잠깐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지만 얼마 안 가 잊혔다.

1996년 연세대 사태, 1997년 한총련 5기 출범식 사태, 1999년 민주민족혁명당 사건 등으로 세력이 깎여나가고 사회도 개방되면서 현재 남아있는 주사파는 소수로 추정되며 남은 사람들도 직접적으로 주체사상을 떠들거나 선전하진 않고 있다. 즉, '주체사상을 추종하고 이를 전파하는' 실질적인 의미의 주사파는 극소수로 사실상 지금은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에 따라 주사파라는 단어는 그 외연이 넓어져 현재에 이르러선 꼭 주체사상을 말하고 다니지 않더라도 종북적이거나 종북적인 성향이라고 낙인찍고 싶은 사람을 부르는 말로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1994년 주사파 파동 이후 대중들의 인식은 'NL=주사파'로 고착화되었다.

한편, 1980년대 학생운동 시절 주체사상을 학습하고 골수 주사파로 활동했던 이들은 감옥에 다녀오고 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연스레 학생운동을 정리하고 여러 곳으로 흩어졌는데 일부는 전향했고 일부는 주체사상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여전히 주사파 조직의 일원으로 공개적인 통일운동, 노동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들 중 일부가 만든 지하당 조직이 북한과 연계하다 적발된 게 바로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민주민족혁명당 사건 등이다.

계속 주체사상을 고수하던 이들은 특히 공개적인 통일운동 조직인 범민련과 재야연합체였던 전국연합을 장악해서 자신들의 근거지로 활용했으며 노동운동에서도 민주노총 내의 국민파 계열 중의 일부로 '통일노동자회' 같은 간판을 달고 활동하였다. 특히 한국 노동운동의 중심지인 울산에서 활동하던 울산연합과 인천 지역 노동운동을 조직하면서 성장한 인천연합은 이런 노동운동에 침투한 주사파들의 근거지가 되었다.

학교를 떠나서도 계속 주사파로 활동했던 이들 중 일부는 1990년대 중후반 이후 일명 주사파 대부라는 김영환을 시작으로 극적인 변화를 했는데 공개적으로 전향을 선언하고 반북/반주체사상의 기치를 내걸고 북한 민주화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6] 이들 중 가장 큰 무리를 이룬 단체는 스스로를 뉴라이트라고 칭했으며 2000년대 들어 주사파 이탈자들이 쏟아지면서 그들을 흡수해서 계속 세를 불려나갔고 일부는 한나라당을 통해 정계에도 진출하면서 이명박근혜 정권의 버팀목(?)이 되었다.

하지만 이들도 이름만 뉴라이트지 실상은 극우적인 냉전 논리에 함몰된 올드라이트와 다를게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과거의 극단적인 반미 친북 노선에서 현재는 극단적인 친미 반북 노선 혹은 북쪽 독재자 만세에서 남쪽 독재자 만세로 편만 바꾼 것 아니냐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은 뉴라이트에도 실망하고 떠난 구 주사파, 구 뉴라이트 출신들이 제법 있다. 자세한 내용은 뉴라이트(대한민국) 항목 참조.

21세기 들어 남은 주사파 중 일부는 진보정당에도 진출하였다. 이들과 주도권을 두고 경쟁하던 PD계가 진보신당으로 분당해 나간 후 민주노동당의 당권을 장악했으며 국민참여당 및 진보신당 탈당파와 통합하여 탄생한 통합진보당 중 최대 계파가 되면서 일시적으로 인기를 얻기도 했으나 북한의 핵개발 옹호나 같은 진보 진영 내, 심지어 공산주의자[7]로부터도 비판받는 종북[8] 사상 등이 문제가 되었고 결정적으로 NL계의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건 이후 인천연합 세력은 정의당으로 합류했다.[9] 통합진보당에 남은 경기동부연합 등은 세가 많이 위축되었다가 결국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일시 해산하였다가 2017년 경기동부연합+광주전남연합 성향의 민중연합당과 울산연합 성향의 새민중정당이 통합하여 민중당을 창당하고 다시 진보당으로 당명을 바꾸어 2022년 제20대 대선에 김재연 상임대표를 출마시켰다.

한편, 주사파에 남지도 뉴라이트에 가지도 않은 다수의 사람들은 자연스레 주체사상에서 이탈하였는데 평범한 소시민으로 돌아가거나 일부는 해외유학을 마치고 학계에 진출해서 진보적인 학자로 성장하기도 하고나 진보좌파 노선의 시민운동(ex. 참여연대, 환경운동연합 등)이나 리버럴 성향을 띄면서 기성정치권에 투신하였다. 정치권에서 PD나 NL이나 이탈자의 상당수는 결국 민주당계 정당으로 수렴되는 경향을 보였지만 2020년대 들어 한국에서 진보계 NL정당은 원내정당으로는 인천연합 계열이 과거 민주노총 중앙파 출신 등과 연합한 정의당과 경기동부+광주전남+울산연합 성향의 진보당이 존재한다.

학생운동권의 주체사상파도 1990년대 중반 소위 자주단결과 사람사랑으로 사상적 분화가 이루어졌고 이후 각자의 노선과 활동 근거지 등에 따라서 여러 정파로 분리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울산연합, 인천연합이나 경기동부연합의 대립구도도 이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3. 관련 자료[편집]
한겨레 <박찬수의 NL현대사> 2016년 7월 8일 ~ 22일 연재분
제6화 - NL과 주사파 1: 극우 총장이 불지핀 주사파 성격 논쟁
제7화 - NL과 주사파 2: 민족주의, 거대한 블랙홀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한 NL 운동가의 회고와 성찰 - 이명준 저. 바오. 2012.
[1] 당연하지만 운동권도 다양한 분파가 있다. PD와 NL이 그 중에서 제일 유명할 뿐이다. 자세한 건 운동권 문서 참조.
[2] 김영환 자신은 당시 운동권이 마르크스-레닌주의적인 비판적 분위기가 주조였는데 '강철서신'의 따뜻하고 정중한 말투가 호감을 얻은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3] 학문, 생활, 투쟁의 공동체
[4] PD세력도 좌익이지만 주사파와 다른 계파다.
[5] 심지어 사회변혁노동자당 등지에 몸담은 정통 공산주의자들도 주사파를 종북세력으로 보고 있다.
[6] 김영환 자신은 민혁당을 개조해서 유럽식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정당으로 바꾸려는 생각도 했다고 한다. 사실 김영환이 전향했다고 보기도 애매한데 스스로는 주체사상의 토대가 되는 주체철학을 버린 적이 없다고 말하며 도리어 자신이 계승/발전시켜야 한다고 보는 듯하다. 즉, 지금의 북한은 그냥 독재국가일 뿐 전혀 주체스러운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 당의 자주는 몰라도 개인의 자주가 없으니 뭔가 주체스럽다고 보기 힘들긴 하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극우로 전향했다는 말에 학을 띈다.
[7] 여기서는 마르크스 - 레닌주의의 정통 공산주의를 말한다.
[8] 종북이란 말의 시초 자체가 21세기 들어 PD 계열에서 주사파 계열을 까면서 나온 발언이다. 이전엔 좌우 가리지 않고 친북이라는 말이 더 많이 쓰였다.
[9] 당시 민노당을 탈당하여 진보정의당 창당에 참여했다가 정의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는 강은미 같은 경우가 인천연합 계열로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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