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0

구로다 후쿠미 “한일 교류, 여행만큼 좋은게 없죠”



구로다 후쿠미 “한일 교류, 여행만큼 좋은게 없죠”




구로다 후쿠미 “한일 교류, 여행만큼 좋은게 없죠”
장원재 특파원입력 2017-09-07 03:00수정 2017-09-07 10:15

지한파 日여배우 구로다 씨
“2008년 ‘조선인 가미카제’ 위령비 건립 추진하다 친일 논란에 철거… 순수한 마음으로 했는데 아쉬워”
지난 달 31일 일본 도쿄 한국문화원에서 만난 구로다 후쿠미 씨는 “9년 전 위령비 건립이 좌절된 후 탈모와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불교에서 위안을 얻었다”고 말했다. 아래쪽은 구로다 씨가 2014년 8월 눕혀 있는 위령비 옆에서 지인들과 찍은 사진이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구로다 후쿠미 씨 제공
“일본이 아무리 노력해도 못 따라가는 한국 문화가 세 가지 있습니다. 불교, 유교, 한방입니다. 그걸 한꺼번에 느낄 수 있는 곳이 대구입니다.”

지난달 31일 일본 도쿄(東京)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대구 관광사진전 개막식에 참석한 한 일본 여성이 마이크를 들고 열변을 토했다. 옥색 저고리에 청록색 치마를 입은 지한파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黑田福美·61) 씨였다. 사회자로부터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다”고 소개받은 그는 34년 동안 일본에서 한국 알리기에 앞장서 왔다. 한국에 300번 이상 다녀왔다는 그는 한국 관광 명예 홍보대사이면서 경기 대구 포항 합천 홍보대사도 맡고 있다. 관광가이드북도 여러 권 썼다. 구로다 씨는 “한일 양국민이 교류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행만큼 좋은 게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내 숙명”이라고 말하는 그도 과거에 사회적 논란 한가운데 선 적이 있었다. 2008년 가미카제(神風) 자살특공대원으로 숨진 탁경현 씨의 위령비 건립을 추진하면서였다. 구로다 씨는 지난달 10여 년 전 소동의 전말을 정리해 ‘꿈의 전후’라는 책을 발간했다.

그는 이날 행사 후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순수한 마음으로 위령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민감한 일인 걸 알기에 신중하게 추진했지만 일이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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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다 씨는 1991년 꿈속에서 낯선 조선인 청년을 만났었다고 했다. 그는 “조선인인데 일본인의 이름으로 죽은 것이 유감”이라고 말했다. 수소문 끝에 그가 1945년 5월 출격했다가 오키나와 해상에서 숨진 탁 씨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탁 씨가 출격 전날 단골 식당을 찾아 눈물을 흘리며 큰 목소리로 아리랑을 불렀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구로다 씨는 탁 씨의 고향 경남 사천에 위령비를 세우겠다고 마음먹고 시장의 협조를 받아 부지를 확보했다. 처음에는 한국 내 여론도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막판에 시민단체가 “친일파 위령비는 안 된다”고 반발해 당일 행사가 취소됐다. 비석도 철거됐다.


구로다 씨는 “탁 씨도 자신의 조국이 일본이고 일본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것이 분했을 것이다. 그의 영혼이 고향으로 돌아갈 장소를 만들어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듬해 경기 용인 법륜사로 옮겨 비석을 세웠다. 하지만 3년 후 지상파 방송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 논란이 돼 결국 비석을 눕혀야 했다. 이후 매년 중양절(重陽節)인 음력 9월 9일 법륜사를 찾고 있다. 구로다 씨는 지방 촬영을 가면 조선인이 강제징용 등으로 희생된 장소를 찾아 조약돌을 주워 온다. 법륜사에 가져가 함께 위령하기 위해서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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