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9

오구라 기조 교수의 리기론


임우근준
23 February 2018 ·



오구라 기조 교수의 리기론을 읽으면, 여태 이해가 가지 않던 한국 사회의 프로토콜을 새로운 각도에서 보게도 되지만, 역시 일본인이 1998년의 한국 사회를 어떻게 바라봤는가를 알 수 있어서 유익하다. 그가 혐한론에 왜 관심을 기울였겠는가. 일종의 자기 분석.

비고: 1995년의 과거사 사죄와 1996년의 월드컵 공동 개최 논의 등을 거치며, 비논리적 한국 사회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욕망을 키우고 키우다가... 결론은 문민정부 붕괴 이후에 냈다.

사실 책 자체는 일본 특유의 흔한 특질론을 한국 버전으로 번안-제시해본 정도에 불과.

하지만, 배울 점은 적잖다. 예컨대 나는, 한국인이 회식과 뒷풀이를 왜 그리 좋아하는지를 그의 '기의 공간론'으로 새롭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위계적 리에 집착하지만 리의 차원에서 마땅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이, 기의 공간에서 서로서로 기의 맑고 탁함을 확인하고 약점을 공유하며 정을 쌓음으로써, 그를 통해 리 차원의 상승을 기약하는 의례. (리의 가치를 구현하지 못한 이가 기마저 탁하다고 평가되면, 공동체 내에서 대놓고 업신여김을 당한다.)

예를 들어, 한국 미술계에서 오프닝은 리의 공간이고, 뒷풀이는 기의 공간이다. 그런데, 기의 공간에서 일어안 위계적 성추행을 리의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묵계를 깨는 일이기 때문에, 피해자는 리에 집착하는 동료들과 대중을 의식해, 가해자를 끝까지 '선생님'으로 부르게 된다고도 볼 수 있다.

나는 기의 공간엔 전혀 관심이 없다. 리 차원의 상승 지향 위계 질서에 동참하기를 거부해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리/기의 행위 방식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지 않아서, 기의 공간에서 기이한 친밀감을 교환하는 일에 영 익숙하지 않기도 하다.

북조선을, 억압된 기의 힘으로 새로운 리를 제시하고, 그를 통해 한반도 중남부의 리를 붕괴시켜 만든 나라로 이해해봐도 재밌다. 주체 예술의 리가 기의 표출에 중점을 두며 일상적 차원의 기의 교환을 금하는 이유도 다 설명 가능하다.




11Haeree Choi and 10 others








Suktae Oh
23 March 2015 ·



오구라 기조, '더 나은 한일 관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에서 좀 더.




46Jingoo Cho, Yong Kyun Kim and 44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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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 Shee 제가 못배운 놈이라 그런지 적반하장이란 느낌밖에 못받겠습니다.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은 가해자가 적극적으로 해야지 피해자가 하는게 아닌데 말이죠. 피해자가 가해자를 싫어한다고 이를 변명삼아 가해자가 되려 큰소리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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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akrho James Yi 어쩌면 중국이나 베트남, 필리핀, 한국의 피해자들이 힘이 없고, 미국이 자신들의 배후에 든든히 버티고 있으므로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둣 합니다..

언젠가는 '하늘의 그물이 천천히 돌아도 죄인들을 놓치지 않는다'라는 말이 무슨 내용인지 알게 해 줄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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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k Jung 구한말 고종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때.. 일본의 개방과 공업화라는 근대화 과정을 통해 강해진 힘을 바탕으로 대동아 공영을 외친다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

일본은 당시에도 수억달러에 해당하는 전쟁비용을 누구로부터 어떻게 마련했으며... 어떻게 상환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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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환 현지서 강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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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akrho James Yi 청일 전쟁의 경우 독일 출신의 유대계 미국인 제이콥 쉬프(Jacob Schiff)가 당시 일본의 전쟁채권을 사들여 줬고, 중일전쟁 이후에는 부족한 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사변국채事變國債’를 발행하다가 진주만 습격이후에는 '대동아전쟁국채'로 이름을 바꾸어 발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선에도 소화 할당액이 부과되어 돈을 가져갔지만, 상환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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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unggun Lee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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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ktae Oh 보충설명:

제가 알기로 식민 통치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사과한 나라는 일본밖에 없습니다. 프랑스 전 대통령 사르코지가 세네갈에서 한 '방자한' 연설을 제가 2월 말에 올린 적이 있죠. 식민지 얘기를 본격적으로 하면 특히 영국과 프랑스는 상당히 껄끄러워할 겁니다. 오구라 기조는 이 글에서 한일이 '식민지 문제'에서 제대로 된 화해를 한 뒤 서구 선진국의 식민지 문제를 제대로 한 번 뒤집어 놓자는 제안까지 합니다.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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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seop Lim "형식"의 측면에서 문명의 이기(스마트폰)를 활용한 재미있는 서평이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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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ktae Oh ㄴe북 이미지를 바로 올리면 더 멋있어 보일 텐데, 왠지 e북은 정이 안 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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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akrho James Yi 예, 유럽의 경우 그렇다 들었습니다.. 이집트, 그리스에서 훔쳐온 문화재들을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루브르나 대영제국 박물관에서 전시하며 스스로 문명국이라 부른다 들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오클라호마로 강제이주 시킨 수우족을 비롯하여 많은 인디언 부족들에게 클린턴 대통령이 과거사실에 대해서 사과한 일은 있지요 (물론 그렇다고 그들에게 땅을 돌려주거나 배상금을 지불하지는 않았습니다..=_=)

경제사학자들의 분석은 잘 모르겠지만도, 반도주민이며 독립운동을 한 불령선인이라고 해도 엄마와 아이를 포함하여 수많은 이들의 몸에 결핵균을 주입하고 죽어가는 과정을 기록하는 임무를 띤 731부대의 운용은 잘못이며, 상해에서 중국민간인들을 강간살해하기위한 군대에 한국젊은이들을 끌고간 것은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식민지 상황이건 전쟁상황이건 저는 그건 그리 중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바대로 두 활동이 혼재되어 있으며, 전쟁을 위한 식민착취활동과 식민지팽창을 목적으로한 전쟁이 계속 일어났으니까요..

일본이 진정으로 사과할 의도가 없으며 아베시키가 계속 염장을 지르며 피해자들을 능멸하여도 국력이 약해서 똑같이 갚아주지는 못할수는 있겠지요.. 문명국이신(?) 유럽제국들이 식민활동에 사과를 한적이 없을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정말 역사를 '객관적'으로 보려면 남의 나라를 무력으로 침공하여 인적/자연자원을 수탈하고 공업생산품의 시장으로 만드는 '식민지행위'는 도덕적으로 지탄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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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21 March 2018 ·


이럴 수가! 한국인들은 20년 동안 이 책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모든 한국인이 몰랐던 것도 아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주체사상 이론가 황장엽도 감명 깊게 읽었다고 했다. 그동안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한국은_하나의_철학이다 #오구라기조 #이기론 #님과_놈 #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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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찬의 書三讀] 오구라 기조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 도덕 지향 사회의 님과 놈
우리는 보편적으로 일본을 싫어한다. 세계 3대 경제 대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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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백승종, 권재원 and 248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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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관엽 탁상공론, 토론에 유익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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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후 「초긴급 청원 부탁」대통령님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도형을 해임시켜 주십시오.

강단식민사학자들이 장악한 동북아역사재단의 짓거리

-> 북한은 중국땅, 독도는 일본거, 만리장성은 평양까지, 조조의 위나라 강역은 경기도까지, 4세기에도 백제 가야 신라는 없었고, 고려강역은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그려준게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강변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5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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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hun Lee 이 책의 존재를 모르는 게 한국인의 잘못이란 말인가?
웃기는 서평이군...
아니 출판사의 책 선전이 자극적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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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서평 내용이, '한국인의 잘못'이라는 뜻은 아닌데요. .. 서평 본문을 한번 읽어 보시면 좋겠어요... 인용문은 서평 본문 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서평은 전문 서평가께서 임의로 쓰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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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희 그냥 읽어보면 되는 책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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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일본의 그것과 우리가 동남아 무시하고 중국 싫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지? 원칙없는 한국인의 이중성에 관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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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이 있지요. 그동안 우리는 우리/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누구든 그렇지요. 그러나 역사란 것도 언제나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나 자신에 대한 이해도 언제나 새롭게 개선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그러한 새로운 앎의 한 지평을 열어 보여준다고 봅니다. 또한 이 책에서 말하는 한국인의 모습이 한국인의 실상의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설령 지금 이 순간은 그렇다 하더라도, 내일에도 그러하리라고 단정할 수도/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일본이 우리에게 하는 것(에 대하여 우리가 일본에 대하여 갖는 감정)과 우리가 동남아 무시하고 중국 싫어하는 것(과 그에 따라 동남아 사람이나 중국인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와 감정)은 같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동남아 사람들이나 중국인의 심성은 우리와는 또 다른 측면이 많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짐작/예상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갖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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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e Lee 철학은 그냥 쓰레기 철학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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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조 읽어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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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형 외국인의 눈으로 봐서 우리역사를 더 객관적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퇴계 선생님 존경하는데 퇴계선생님 책 공부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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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객관'이 '반드시' 주관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객관적'인 눈으로 한국과 한국인, 한국사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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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식 저자라는 자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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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찬의 書三讀] 오구라 기조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 도덕 지향 사회의 님과 놈
발행일시 : 2018-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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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편적으로 일본을 싫어한다. 세계 3대 경제 대국으로 배울 점도 많은 그 나라는 우리의 자주적 근대화의 길을 폭력적으로 막아 버린 가깝고도 먼 나라다. 한반도 분열의 근본 원인도 일본 탓이며, 남북 갈등과 그 존속을 바라는 것도 일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독도와 위안부 문제는 물론 매사 그렇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본인들 중 일부가 혐한을 부르짖는 것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특히, 과거에 대한 책임이 없는 일본의 젊은이들은 우리를 편협하다고 비난한다. 도대체 일본인이 생각하는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한국의 학자들이 한국을 연구하지 않은지 이미 오래다. 때문에 일본뿐만이 아니라 여타 외국인들이 궁금해 하는 한국에 대한 연구 자료는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초고속으로 세계의 중심부로 진입한 한국에 대해 외국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 왔던가?

무례한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티호노프가 ‘박노자’란 필명으로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통해 마구잡이로 욕설을 퍼붓듯 우리의 치부를 들쑤시며 밥벌이 했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다니엘 튜더, 베르너 사세 등도 한국에 대한 논평을 책으로 엮었지만 어림없었다. 보다 진정성 있고 냉철한 분석이 필요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노골적으로 욕망(人欲)이 방치되어 있다. 자기 집 대문 앞에 더러운 쓰레기를 대놓고 버리는 것을 보라. 강렬하고 왕성한 욕망이 얼마나 적나라하게 방치되어 있는가! 그러나 이것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한국 사회에서 질서, 도덕, 규범이 없기 때문에 거리의 욕망이 강렬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리’가 강하기 때문에 욕망이 방치된다. 그렇기 때문에 거리는 더러워진다. ‘리’를 신봉하는 한국인은 보편을 신봉한다. 보편을 신봉하기 때문에 잡다한 것을 싫어한다. 잡다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무시한다. 그래서 거리는 점점 더 잡다해진다. 잡다한 것은 경멸할 만한 것이기 때문에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 66쪽


찬탄과 비판을 겸비한 오구라 기조(小倉紀藏)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지금껏 세상에 나온 그 어떤 외국인의 시선보다 날카롭고 예리했다. <韓國は一固の哲學である>라는 일본 서적을 원제 그대로 번역했는데, 찬탄은 철학(哲學)에, 비판은 하나(一固)에 담았다. 부제는 ‘理と氣の社會システム(리와 기의 사회 시스템)’으로 다양한 사회 현상을 주자학의 ‘리(理)’와 ‘기(氣)’로 철저하게 해석했다. 우리나라의 특성을 이렇게 체계적이고 철학적으로 잘 풀어낸 책은 일찍이 없었다. 저자가 일본인이라는 것도 귀를 쫑긋하게 한다.

형식은 1983년부터 무려 23년간 조선일보에 연재된 ‘이규태 코너’를 생각나게 하는 짧은 글의 모음이다. 타계하기 이틀 전까지 민족 예찬에 할애한 이규태 선생의 글과 달리 날카롭고 명쾌한 비판이 뼈대를 이루며, 모든 현상을 리(理)와 기(氣)로 설명한다. 대상 독자는 일본인이며, 핵심은 한국을 우습게보지 말라는 것이었다. 1988년부터 무려 8년간 서울대학교 철학과에 유학했던 일본인 대학원생이 본국으로 돌아가 어떤 잡지에 기고한 것을 한 출판사가 출간을 제안하며 시작된 2년의 역작이다.


“이방에서 온 이 탁기(濁氣)의 ‘놈’은 연구실 한쪽 구석에서 벌레처럼 몸을 웅크리면서 오로지 주자학에 침잠하고 있었다. 주자학은 책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 전체가 주자학이었다. 한국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주자학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주자학적 세계관에 의해 철저하게 하위(下位)로 폄하되는 탁하고(濁) 치우치고(偏) 막히고(塞) 비천하고(卑) 악한(惡) 일본인이었다.” - 252쪽


철저하게 친화적으로 접근했던 한국에서 몸소 겪은 경험은 쓰라렸다. 외국인들이 가장 쉽게 접하는 한국의 거리에서 마주치는 평범하고 정 깊은 문화는 주로 기(氣)의 세계다. 그 배후에 지극히 준엄한 리(理)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들은 한국의 만만함에 긴장을 풀어버린다. 눈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 ‘리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여행자나 단기 체류자가 ‘기의 세계’만을 엿보고서 “한국은 느슨하고 너그럽고 편하다”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한국인도 잘 모르는 한국의 특징은 그렇게 발견되었다.

조선시대의 통치이념 주자학은 성리학(性理學)과 동일한 말인데, 도덕적으로 완벽한 선이라는 성선설(性善說)의 철학이다. 인간은 본래 하늘로부터 100%의 도덕적이고 선한 ‘리(理)’를 부여 받았고,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기(氣)’의 탓이라고 본다. 사기에서 출발하고, 공자와 맹자가 계승한 유교 사상이 주자학으로 이어져 조선으로 건너와 600년간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었음을 발견했다. 서양의 세계관으로 도배질한 한일 아카데미즘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된 성찰이었다. 동양의 원형을 공부한 사람들이 현실에 관심이 없어서 안타까웠다고 했다.

원래는 찬연히 빛나는 일체화된 하나의 ‘리(理)’가 서구의 영향을 받아 진리·원리·윤리·논리·심리·생리·물리 등으로 분쇄되고 세분화된 것을 발견했다. 그 발견을 바탕으로 일반화의 오류에 함몰되지 않고 한국을 일격에 아웃시키겠다는 오만한 마음가짐으로 시작된 연구였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쓸 필요가 없는 그런 한국에 대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나이를 한 살이라도 더 먹어야 대접 받는 ‘어른 공경(理)’과 나이를 먹을수록 청춘에서 멀어지는 강한 아쉬움의 ‘젊음 예찬(氣)’이 공존하는 한국은 참으로 신기한 나라였던 것이다.


“사회적으로는 윗사람으로 힘이 있어도 도덕성이 결여된 ‘님’들은 국회의원놈, 사장놈, 부자놈, 검사놈, 교수놈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반미투쟁이 성행했던 때 미국은 ‘미국놈’이었다. 어디에선가 ‘님’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에 매료되어 다가가 본다. 그러자 거기에는 무서운 ‘놈’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179쪽


한국은 도덕 지향성 국가다. 가수가 노래만 잘하면 된다든가, 운동선수가 경기 성적만 좋으면 된다는 생각으로는 한국에 적응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납득할 수 있을 만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한 뒤에야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인 것이다. 한국에서 도덕의 최고 형태는 그것이 권력 및 부와 삼위일체 된 상태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현실에서 도덕이 권력이나 부와 결합되는 과정에서 거의 모든 도덕이 상처를 입는다. 욕망과 현실만을 강조했다가는 부도덕하고 비천한 존재로 분류될 수도 있다.

도덕 지향성 국가지만 모두가 도덕적으로 살고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권력 투쟁은 기득권 세력을 향한 부도덕성 폭로의 역사를 담고 있다. 영남학파 이퇴계는 마지막 사화에 휘말린 뒤 고향에 칩거하며 리의 철학을 건립했고, 기호학파 율곡 계와 쌍벽으로 조선 후기를 주도했다. 이러한 도덕지향성이 바로 유교의 역동성으로 축복이자 저주가 되기도 한다. 민족중흥, 정의 사회 구현, 국민 행복시대와 같은 실제와 무관하게 도덕성을 강조한 암투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야당인 사대부는 여당인 양반의 도덕을 공격한다. 그들의 도덕 내용 자체, 그리고 권력, 부와의 결합 관계에 비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공격이 멋지게 성공하면 양반 세력은 전복되고 사대부가 정권의 중추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핵심 권력과 부를 손에 넣은 사대부는 쉽게 귀족화, 보수화 되어버린다. 사대부의 양반화인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새롭게 등장한 사대부가 이번에는 신양반을 위와 같은 이유로 공격하게 된다. 그리고 공격이 성공하면 신양반 세력은 무너진다. 새로운 사대부가 또 신신양반이 된다. 유교 정치는 이것의 반복이다.” - 137쪽


조선시대로부터 이어진 유교적 전통에 의해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도덕쟁탈전은 현대 정치에 그대로 적용된다. 저자는 조선시대 리(理) 계층의 가치를 양반(=도덕+권력+부), 사대부(=도덕+권력), 선비(=도덕)로 구분했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선비는 항상 핵심권력의 밖에 몸을 두고, 양반과 사대부의 도덕을 싸잡아 공격한다. 그들은 정권을 잡을 생각이 없고 그 도덕이 상처와 흠집이 없다. 매월당 김시습이나 김삿갓에서 알 수 있듯이 선비 중에서 실패자와 좌절자들은 그 도덕성이 지나칠 정도로 찬사를 받기도 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고 적당히 체념하는 데 반해 한국인의 출세 지향은 끊임없는 인정욕구를 갈망한다. 한국의 급성장은 이런 열망 때문에 가능했지만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히며 살아가고, 열망이 좌절되고 리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기의 무대로 옮겨가 칠정의 카니발(喜怒哀樂愛惡欲) 속에서 독특한 정서 ‘한(恨)’을 품는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더라도 상대를 ‘님’과 ‘놈’으로 구분하고, 그에 맞는 대접을 하는 냉정한 사회다. 첫 만남에서 나이부터 묻고, 명함의 지위나 혈연·지연·학연에 의해 서열이 정해진다.

한국은 산자와 죽은 자의 공동체 즉, 혼의 공동체라는 주장도 통계청의 인구발표를 무색하게 한다. 대다수가 각자의 조상을 양반이었다고 주장하는 양반지향성도 그렇다. 조선왕조 이후 당파 싸움이나 동학의 기원 등 역사들의 서술과 구조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것도 짧고 깊다.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한국인 보다 더 잘 이해하고, 연암의 양반전과 같은 고전에 대한 지식도 해박하다. 영화 ‘서편제’의 본질을 한국인 보다 더 가슴 아프게 꿰뚫어 보고, “아이고!”라는 탄식에서 우리 고유의 한을 읽어내는 저자에게 경외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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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수가! 한국인들은 20년 동안 이 책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모든 한국인이 몰랐던 것도 아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주체사상 이론가 황장엽도 감명 깊게 읽었다고 했다. 그동안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일까? 민감한 한일 간의 정서 때문에 일본인이 쓴 한국의 비판 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까? 다른 한국에 관한 외국인과 비교했을 때 훨씬 깊이 있고 애정이 넘치는 글임에도 우리는 일본인의 시선을 늘 한수 아래로 보기 때문이었을까? 오죽하면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란 농담이 있을까.


“위대한 문자라는 의미의 한글이란 말은, 조선이 일본의 압박에 시달리던 근대시기에 민족주의의 고양과 보조를 같이하여 새롭게 만들어진 명칭으로, 그 이전까지는 ‘언문(諺文. 천한 백성의 문자)’이나 ‘암글(암컷의 문자, 여성 문자)’ 등으로 불리면서 비하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본이라는 타자에 의해 민족이 억압받자, 한글 보급 운동이 마른 벌판에 불 붙듯이 전개되었다. 즉, 조선시대에는 ‘중화리(理)의 문자’인 한자(眞書)에 대해 ‘기의 문자’로 멸시되던 한글이, 일본이라는 탁기에 대항하기 위한 민족주의의 고양과 함께 재발견되어, 찬란한 ‘민족리(理)의 문자’로 승격된 것이다.” - 104


한글의 오염도 리기적 역사관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비단 한글뿐이던가. 원래 일제와는 전혀 무관했던 생활의 고통을 읊조리거나 잔치를 흥겹게 하던 소박한 민중의 민요로 조선인들의 정이 결집된 ‘기(氣)의 아리랑’도 마찬가지다. 일제 강점기 관통하면서 고난의 민족사를 상징하는 노래가 되어, 독립운동가들의 저항의 노래이자 ‘민족리(理)의 아리랑’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은 뼈아픈 지적이다. 저자의 유학시절 한국의 상아탑에서 출처도 불분명한 외래어가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했다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약관의 정현이 2018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에서 4강에 오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불필요한 이념대립으로 갈라선 나라를 다시 하나로 똘똘 뭉치게 한 아름다운 사건이었다. 비인기 종목이면서도 사치스러운 취미 생활 정도로 평가받던 테니스는 이제 더 이상 기(氣)의 스포츠가 아닌 리(理)의 스포츠로 민족의 중심부에 우뚝 섰다. 박찬호, 박세리, 김연아의 뒤를 잇는 스포츠 영웅의 탄생도 이 훌륭한 지침서를 통해 해석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책이 모든 것을 설명하는 나침반이 아니라는 것도 인식해야 한다.

오구라 기조는 이 훌륭한 책을 통해 한국을 하나의 철학이라고 규정했고, 등잔 밑이 어두운 한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지만 결코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었다. 주자학과 대립했던 양명학파의 후예 서여 민영규 선생은 진정한 지식인의 자세를 떨리는 지남철에 빗대지 않았던가? 북극을 가리키는 지남철이 떨림을 멈추는 순간 그 쓰임이 다하듯이 우리의 존재와 관계에 대해서 끊임없이 성찰하는 역동성의 바늘 끝을 오구라 기조가 아직 ‘모를 리(理)’도 없다. 우리가 오로지 하나의 철학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은 우리들 스스로가 증명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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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찬 ahn0312@gmail.com 블라디팜 총괄이사 / 컴퓨터그래픽과 프로그래밍 분야 11권의 저서와 더불어 IT칼럼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했던 엔지니어 출신으로 한 권의 책에서 텍스트, 필자, 독자 자신을 읽어내는 서삼독의 실천가이다.

(*이 칼럼은 Nextdaily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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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
27 February 2018 ·



오구라 기조, "모든 사람을 도덕으로 평가하는 나라 그곳은 대한민국." 정확한 진단. 한국사회의 공통이념은 조선시대에 정립된 주자학이며 '리(理)'에 대한 경쟁적 쟁탈전이 단지 리의 구체적인 내용물만을 바꿔가면서 반복되고 있다는 인식.

"오직 하나의 완전무결한 이(理)만이 대접받는 사회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소리 높여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곳에서 권력 투쟁이란 곧 “도덕을 내세워 권력을 잡는 세력이 얼마나 도덕적이니 않은가를 폭로하는 싸움”이 된다. 상대의 도덕을 싸잡아 비난할수록 ‘훌륭한 선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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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을 도덕으로 평가하는 나라, 그곳은 대한민국"
지한파 지식인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지한파 지식인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에서 '한국, 한국인론' 선보여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발간
도덕적 완벽 ‘理’에 대한 갈망에
다이내믹하면서도 투쟁적

지난 10월 28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1주기 집회. 정치적 변곡점을 상징하는 촛불시위는 한국의 강렬한 도덕적 열정을 보여주는 시위로 평가받는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스릴과 흥분은 항상 여기에서 유래한다.

오구라 기조(58) 교토대 교수가 최근 발간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모시는사람들)에서 내놓은 진단이다. 조선시대 형성돼 지금까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교적 전통에 대한 해석은 늘 ‘제 논에 물대기’였다. ‘유교 자본주의’가 한 예다. ‘동아시아 4마리 용’ 시절에는 한국인의 저력, 단합된 힘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자랑스러움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스탠더드 시절엔 혈연ㆍ지연ㆍ학연으로 짜고 치는 적폐가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 좋을 때는 ‘덕분’이고, 나쁠 때는 ‘탓’이다. 오구라 교수는 8년 동안 서울대에 머물면서 한국철학을 공부한 지한파 지식인. 이 책에는 오랜 공부와 관찰 끝에 그가 정리한 ‘한국, 한국인론’이 오롯이 담겨 있다. 명과 암, 두 개의 얼굴이다.

오구라 교수가 보기에 한국에서 성리학, 주자학은 그냥 옛 이론이 아니다. 한국은 “사회 전체가 주자학”이고 “한국인의 일거수 일투족이 주자학”인 곳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오직 하나의 완전 무결한 도덕, ‘이(理)’로 모든 것이 수렴된다는 원칙이 여전히 작동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외교관 출신 그레고리 헨더슨이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한국사회를 두고 자율적 부문 없이 그저 중앙정치권력으로 모든 게 휘감겨 돌아가는 소용돌이 사회라 평했다면, 오구라 교수는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이(理)가 있다고 말하는 셈이다.
한국철학을 공부하고 관찰한 끝에 한국인의 특성을 '하나의 철학'으로 요약 제시한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뉴스1

한국 사회는 모든 사람을 그 사람의 이(理) 함유량, 곧 ‘도덕 함유량’에 따라 평가한다. 도덕의 영역과 무관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예외 없다. 뛰어난 운동선수나 가수라 해도 “경기 성적이나 노래 실력만으로는 평가받지 못하고,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국민들에게 납득시킨 후에야 비로소 스타가 될 수 있는” 사회다. 누가 먼저 더 높은 도덕적인 위치를 차지하느냐의 싸움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에 “올바르다ㆍ제대로ㆍ바람직하다와 같은 질서를 지향하는 말들이 난무하고 대량으로 소비”되는 사회다. 이런 이(理)의 사회는 이(理)의 함유량으로 1등에서 꼴찌까지 한 줄로 사람들을 쭉 늘어 세울 수 있는, 철저하게 위계적인 사회다. 첫 만남 등에서 나이ㆍ지위ㆍ학력ㆍ가문ㆍ고향ㆍ부(富) 등 상대방의 이(理)가 드러나는 지표를 단번에 파악하고 그에 맞게 잘 모시는 게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된다.

동시에 극도로 반항적이며 혁명적인 사회이기도 하다. 오직 하나의 완전무결한 이(理)만이 대접받는 사회이기 때문에 “자신의 삶이 얼마나 도덕적인가를 소리 높여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곳에서 권력 투쟁이란 곧 “도덕을 내세워 권력을 잡는 세력이 얼마나 도덕적이니 않은가를 폭로하는 싸움”이 된다. 상대의 도덕을 싸잡아 비난할수록 ‘훌륭한 선비’가 된다. 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ㆍ김영삼ㆍ김대중 등 그간 정권교체 때마다 ‘민족중흥’ ‘정의사회구현’ ‘보통사람의 시대’ ‘신한국 창조’ ‘제2건국’처럼 우리 정권이야 말로 이전 정권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도덕적 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연속성이 아니라 단절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슬로건들이 연달아 태어나는 이유다.

오구라 교수가 보기에 이런 기질은 한국인에게 축복이자 저주다. 자신의 이(理) 함유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끊임없는 경쟁 속으로 스스로를 던져 넣는다. 자신의 출신 성분, 학력 등을 감안해 이 정도면 괜찮다며 적당히 체념하고 만족하고 사는 일본인, 혹은 서구인과 다르다. 한국인들은 나의 이(理) 함유량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굳게 믿는다. 단적으로 일본의 천민집단 ‘부라쿠민’은 지금도 가끔 사회문제화되지만, 한국의 천민집단 ‘백정’은 이런 강렬한 상승욕구에 힘입어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국의 급성장은 이런 열망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한국인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괴롭히며 살아가는 존재다. 한국인만의 독특한 정서라는 ‘한(恨)’이란 이 열망이 좌절됐을 때 생겨난다.


오구라 교수는 이런 한국의 특성을 냉정하게 본다. 그의 시각은 제목 ‘하나의 철학’에 응축되어 있다. 강렬한 도덕적 열망으로 들끓기에 한국인은 모두 철학자다. 세세한 속세의 그 무엇보다 이 세상이,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들을 뜨겁게 쏟아낸다. 반면 그 철학은 ‘하나’이기에 격렬한 투쟁을 피할 수 없다. 한국의 가치관, 이념, 이데올로기, 종교 같은 것이 하나 밖에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겉으로는 아무리 다양해 보여도 도덕적 완벽성에 대한 강박, 그 강박 간의 투쟁이라는 기본구조는 똑같기 때문이다.


첨단이라는 21세기 한국 사회도 변하지 않았을까. 탈민족주의, 세계화, 다문화주의에다 최근의 페미니즘까지, 다양한 가치가 비록 조금씩이라 해도 퍼져나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오구라 교수는 단호하다. “한국 사회의 근본적 구조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이(理)’의 내용이 바뀌었을 뿐이다.” 누가 더 탈민족적이냐, 누가 더 다문화적이냐를 두고 경쟁을 벌일 뿐 경쟁 자체는 변함이 없다. 한국사회는 좋게 말해 다이내믹하고, 나쁘게 말해 투쟁적이다.

조태성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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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 Wonsik 2017.12.26 신고하기

오랫만에 보는 예리한 통찰입니다. 한국사회를 하나의 키워드로 관통하는듯 합니다. 많은 질문을 낳을 수 있는 통찰력있는 논제입니다.답글수정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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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동주 2017.12.26 신고하기

흥미로운 주장이다.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다 일까? 근본적인 자아 성찰을 통한 발전지향적인 한국인상을 만들어 나갈 때 임은 확실하다. 도덕적 결함과 이기적인 모습에서 탈피하고 공익에 우선하고 가치를 중시하는 책임 중심의 사회로의 변화가 절실하다답글
좋아요 0싫어요 1


Naya Tipani 2017.12.25 신고하기

지방대 나왔으면 상대방을 깔보고 무시하는 겁니다. 비싼 차 타면 .... 똥차타면 ....... 무당이 하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무당은 자신의 머리속에 여러신을 섬기는데, 고객속에 들어간 귀신이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보다 세면은, 아주 성대하게 차린 음식으로 대접하여 달래고, 약하면 삼지창, 긴창, 작두(소여물이나 가벼운 나무를 자르는 칼)로 겁을 주는 것과 같은 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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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m Choi
21 August 2016 ·



오구라 기조 교수와의 만남

"가해자인 일본인은 역사에 관해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데, 피해자인 한국인이 자유롭게 사고할 수 없다면, 이건 정말 슬픈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덧붙여 말하자면, 한국인이 늘 '우리야말로 정의 편에 있는 인간이다'라고 인식하는 것도 저는 슬프게 느껴집니다. 동시에 정말 죄송스러운 기분입니다.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항상 정의라는 관념에 비추면서 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한국인에게 강요하는 것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책임의 무게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제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의 목소리' 주최로 열린 <조일수교 140주년, 만남과 현재를 생각한다> 심포지엄에서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토대 교수가 발표한 '일본인은 한국인을 만날 수 있는가'의 한 부분이다. 근대의 개막부터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날 수밖에 없었던 일본인과 한국인이 어떻게 역사의 상처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사유의 깊이를 보여준 발표였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오구라 교수와 구면이다. 이 날 행사에 참석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안지 오래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1990년 초반 <월간 디자인> 지면에서 그와 좌담을 한 적이 있으니, 그와의 인연은 무려 20여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오구라 교수는 서울대에서 한국 철학으로 박사를 받은 한국 전문가이다.

당시 그와의 만남에서 내가 느낀 것은 그가 포스트모더니스트라는 것, 그리고 한국인을 보는 일본인의 시각이 무척 재미 있다는 것이었다. 세월을 건너 뛰어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한국을 잘 아는 그의 시각에서 깊은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지만 또 그런 만큼 뭐라 말할 수 없는 쓰라림이 밀려왔다.




77Park Yuha, 이소 and 75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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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Sun Kim 좋은 말씀이십니다. 저는 확 그냥 이제 쫌 과거사라고 말하면서 알차게 이용해 먹는 짓 그만하라고 소리 지르고 싶지만 에둘러 표현하느라 속이 타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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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Sun Kim 이건 또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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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빈 우리는 베트남에 어떤식의 사과와 반성을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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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Sun Kim 민간 차원에서 ㅠㅠ 거기 따이한도 많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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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빈 우리당한거만 원망하고 우리가 한짓은 모르쇠한다는게 저울에 올려보면 똑같아서 하는말입니다
아전인수! 후안무치! 남탓만 하지말고 내가 먼저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는것이 꼭 시대순이어야할까요? 써글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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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Sun Kim 저는 식민지때의 일을 사과하라고 하는 것보다 (사과한 나라가 없음) 자국민들한테 저지른 일들이나 사과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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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ungGoo Cøsmic Bøhemian Hong 진홍빈 대한민국이 베트남과 풀어야 할 것은 대한민국이 일본과 풀어야 할 것과 별개의 사항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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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효 포스트모더니스트라는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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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m Choi 지금이야 그렇지만 1990년대 초만 해도 포스트모더니즘을 상당히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던 때였죠. 그런 점에서 약간 당황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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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충효 오구라 교수의 심포 논문 23페이지를 보시면 '나', '주체'의 아이덴티티가 타자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예전 같으면 엉뚱한 소리 같은..^^

다중주체주의, 지각상, 지각상의 다발..
그 분의 독특한 개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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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March at 14:37 ·





어제밤엔 참 재미있는 책을 한권 읽었습니다. 교토대의 오구라 기조 교수가 쓴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란 책인데요, 읽으면서 저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한국사회와 한국인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주자학의 이기론으로 우리사회의 특성과 본질을 분석한 것인데 저자의 새로운 시각과 통찰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습니다. 얼마전에 읽은 함재봉 교수의 "한국인 만들기"에서 느꼈던 것과는 또다른 차원의 통찰력이었지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 철학이란 '리'를 말한다. 주자학에 의한 국가통치 이후 이 반도를 지배해 온 것은 오로지 ''리'였다. 오늘날의 한국인의 도덕 지향성은 이 전통적인 '리' 지향성의 연장이다. 한국사회는 사람들이 화려한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거대한 극장이다. 한국은 도덕지향성 국가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한국이 언제나 모두 도덕적으로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도덕지향성은 사람들의 모든 언동을 도덕으로 환원하여 평가한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구절이 한두군데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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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나는 저자에게서 일본어원서 받았는데 어려워보여(내일본에 한계도 있고) 목차만 보고 설명만 들었는데 챙피하게도ㅋㅋ. 번역본 사서 봐야겠네. 매우 날카로운 지적 관찰이라고는 느꼈지요. 일본인의 일반적인 한국관과는 좀 다른 (비판)수준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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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열 replied · 1 reply







남석포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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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주최 조태열 UN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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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 Kyo Suh 대사님
저도 지난 겨울에 흥미있게 읽었는데 설명이 난해한 한국의 특징을 잘 설명하고 있더라구요 일본인의 시각도 느낄 수 있었고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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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chelle Lee Share합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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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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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e Chun Won 책추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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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성제 화이팅 하세요 ... 힘차게 응원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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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l Huh 안 읽어 봐서 잘 모르겠지만, 그 도덕지향성에 있어서 손가락이 어느 쪽을 가리키는지가 중요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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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열 Chul Huh '리=도덕'을 지향한다는 건데 문제는 그 '리'가 항상 보편성을 갖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그게 항상 '하나'만을 지향한다는데서 끊임없는 갈등을 생산하는 '구조'라는 거에요. 한국사회나 한국인이 '도덕적'이라는 게 아니라 한국사회와 한국인의 의식 '구조'가 지나치게 도덕 '지향'적이라는 거죠. 그것이 또 한편으로는 한국사회를 역동적으로 진전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기도 하구요. 그래서 저자는 한국에 대한 찬탄('철학')과 비판('하나')의 시각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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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l Huh 조태열 고맙습니다. 기회 되면 읽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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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na Park 개개인이 도덕적이진 않은데 집단적 기준은 도덕이라는게 참 아이러니이고 상대를 지탄하는 도구(내로남불)로 쉽게 변질하여 사회의 합리적 유연성에 큰 위해가 되어왔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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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청훤


6 April 2018 ·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오구라 기조) - 한국인들은 여전히 성리학적 질서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책에는 성리학에 대한 짧은 설명도 나온다. 내가 이 짧은 설명에서 피상적으로 이해한 내용은 대충 다음과 같다. 리는 우주의 법칙이고 기는 우주의 재료다. 그래서 기는 리에 의해 통제되고 지배 받는다. 이게 우주적 질서다. 그런데 우주 법칙으로써의 리는 서구 과학에서 이야기하는 물리법칙과는 상당히 다르다. 성리학에서 말하는 리는 물론 물리 법칙도 포괄하지만 그 보다는 윤리적 법칙의 성격을 더 강하게 띄고 있다. 즉 있는 그대로의 법칙의 성격 뿐 아니라 마땅히 있어야 하는 법칙의 성격 까지 가지고 있다. 이런 윤리적 원리의 리는 존재하는 만물에 모두 담겨 있다. 당연히 인간도 모두 평등하게 리를 갖고 태어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에는 리가 있지만 물질의 재료에 해당하는 기가 리의 발현 정도를 결정 짓는다. 기가 맑은 정도에 따라 리의 구현 정도가 결정 된다. 모든 인간은 동일한 리를 가지고 있어서 리를 완벽하게 발휘하여 성인군자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부단한 도덕적 수양을 통해 탁한 기를 맑은 기로 바꾸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성리학에서 최고의 가치는 기를 맑게 하여 자기 안의 리를 완전히 발현 시켜 우주의 궁극적 원리에 부합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성리학에서는 기의 맑음 정도에 따라 발휘되는 리의 구현 단계에 따라 가치의 서열을 매긴다. 하지만 대신 윤리적 수양을 통해 최고의 리 구현 단계로 올라갈 길을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그래서 성리학은 결과에 대해서는 매우 차별적이면서 동시에 기회에 대해서는 대단히 개방적이고 평등적이다. 이러한 성리학의 기회에 대한 개방적 평등주의는 인도의 힌두교 세계관과 극명히 대비된다. 힌두교는 태어나면서 각자가 서로 다른 서열의 가치를 갖고 태어나는 데 그건 전생에 업에 따라 이미 숙명적으로 결정 되었기 때문에 뒤집을 수가 없다. 오로지 현세에 자기가 갖고 태어난 서열을 받아들이고 덕을 많이 쌓아서 죽고 나서 다음 생애에나 상승을 노릴 수 있다. 그래서 힌두교가 염세적 비관적 세계관이라면 성리학은 긍정적 낙관적 세계관이다.


성리학의 이런 양면성, 즉 결과에 대한 서열성, 차별성와 기회에 대한 평등성. 개방성은 저자가 보기에 현재 대한민국의 문화와 사회를 이해하는 키 포인트다. 사실 따지고 보면 500년 간 한국인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았던 가치관과 세계관이 아무리 초단기간에 혁명적 근현대사를 겪었다 하더라도 깨끗이 일소된 되었다는 게 굉장히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물론 정치와 사회에 대한 관점과 운영원리로 써 성리학적 세계관은 서구에서 온 근대적 가치관과 세계관으로 완전히 대체되었다. 하지만 현대 한국인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결정하는 기질과 습성에는 아직도 성리학이 여전히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아니 한국인들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잠재의식 차원에서 결정 짓는 차원에서는 여전히 성리학이 한국인들을 지배하고 있다!


성리학이 통치 이념으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던 조선시대에는 리를 구현한 도덕군자가 모든 권력과 부를 독점하는 시스템이었다. 과거제도는 유교 경전에 대한 소양을 테스트 하여 우주만물의 질서인 리를 얼마나 내면화 했는지 공식적으로 측정하여 국가가 인증해 주는 조선의 대표적 정치 제도였다. 조선을 이끈 엘리트인 양반은 공식적으로는 타고난 혈통이 아니라 후천적 노력과 수양을 통해 국가 통치를 할 자격이 있다는 걸 증명해야 될 수 있는 신분이었다. 그리고 그 양반이 되는 길은 실제 현실과는 별개로 법적 공식적으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이렇게 후천적 노력에 의해 서열이 정해지고 이렇게 정해진 서열에 의한 차별도 대단했기 때문에 과거에 급제하여 양반이 되기 위한 경쟁은 조선 시대 내내 매우 치열했다.


우주적 원리인 리의 구현은 오로지 유교적 도덕 가치관에 대한 소양이라는 하나의 획일적 가치에 의해서만 가능했기 때문에 조선 정치 이념 체계와 사회는 대단히 경직되었지만 동시에 매우 유동적이고 유연했다. 왜냐하면 과거에 급제하여 양반이 될 수 있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고 권력은 누가 더 합당한 리를 가지고 있냐, 즉 성리학적 도덕의 명분을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 굉장히 유동적이었기 때문이다. 초기에는 엘리트 지배 계층 안에서만 한정된 수의 공인된 양반이 되기 위해 경쟁이 치열했지만 후기로 갈 수록 이 노력은 조선의 전 구성원을 상대로 벌어지게 된다. 상업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한 신분이 낮은 계층은 문서 위조 등을 통해 양반이 되었고 여러 가지 사회적 혼란을 거친 후 조선 후기의 양반은 인구의 과반수를 넘어 절대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그리고 조정의 권력도 항상 유동적이었다. 권력의 향배는 누가 도덕적 권위와 명분을 쥐고 있느냐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기존 권력집단은 끊임없이 신흥집단의 도전을 받았으며 새로운 도전세력들에 의해 대체되었다.


성리학은 리의 구현 정도에 따라 엄격히 서열을 구분하고 이를 우주적 질서로 간주하였기 때문에 누구든 사람 대접을 받고 삶의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가장 상위에 있는 중심에 올라서기 위해 경쟁에 참여해야 했다. 이 경쟁에 밀려나면 사람대접을 받기 힘들었고 경쟁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기 때문에 신분이동은 역동적이었으나 스트레스는 심각했을 것이다. 조선시대 내내 일어난 유동적 신분 이동과 역동적인 정치적 권력 교체는 조선이라는 국가가 성리학 이념을 깊이 내면화한 결과였다. 일찍이 그레고리 헨더슨이 대단히 중앙지향적 상향운동적 성향이 강한 한국 사회를 보고 지칭한 나선형 소용돌이 사회의 원형과 기원이 바로 이 것이었다. 하지만 세계관과 이념으로써 성리학의 독점적 위치는 사람들의 사고를 경직화 교조화 시켰고 이는 변화하는 세계 정세에 조선이 뒤쳐지는 결과 초래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이 망하고 식민지와 내전을 거쳐 등장한 신생국 한국의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표면적으로 성리학을 완전히 버리고 폐기한다. 하지만 성리학은 한국인들 심층심리에 여전히 살아있다. 한국인들은 세계관과 가치관으로써 성리학을 완전히 버렸지만 성향과 기질, 관습과 습성에서 여전히 대단히 성리학적으로 살고 있다. 성리학이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 즉 특정한 기준에 의해 획일적으로 서열 짓고 그 서열에 따라 대단히 다른 대접을 하되 대신 그 서열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개방적 경쟁과 그 결과를 통해 결정 되는 사회 구성 원리는 신생국 한국의 국가적 대성공과 개개 한국인들의 불행에 밑바탕이었다. 한국이 국가 정체성과 체제 운영 원리로 근대적 자유시장경제 체제와 민주주의를 도입하자 성리학적 사회구성원리와 문화는 그 전근대 사회 기간 동안 쌓여온 포텐셜을 터뜨린다.


과거에는 오로지 중앙정부 유교적 관료로 올라가는 상향지향적 서열 조직만이 존재하여 심각한 병목현상과 사회 경직성을 불러일으켰지만 시장경제로 인하여 수 많은 기업들이 등장하고 또한 다양한 사회 문화적 조직과 단체들이 나타나면서 서열을 둘러싼 경쟁을 할 조직이 다원화 되어 적체와 병목 현상을 해결하며 사회 발전의 역동성을 부여하게 되었다. 또한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심리 깊숙이 자리잡은 개방적이고 수평적 기회를 토대로 한 상향지향적 경쟁 문화는 한국 사회의 정부, 기업, 각종 사회 조직들이 내부 구성원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할 역동성과 추진력을 가져다 주었다. 조선에 모두가 경쟁하여 수직적 서열로 구분할 리가 하나 뿐이 없었다면 현대 한국에서는 이제 수 많은 리가 존재하며 각 리의 최고 구현자가 되기 위한 경쟁도 다양화 세분화 다층화 되었다. 그러한 경쟁의 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기 때문에 개방적이고 수평적이지만 일단 서열이 정해지면 차별과 구분도 심하게 때문에 또 대단히 서열적이고 수직적이다.


조선시대가 조정이라는 중앙권력의 자리를 차지 하기 위한 오직 하나의 획일적 나선형 소용돌이에 모두가 빨려 가는 구조 였다면 현대 한국은 다양한 종류의 나선형 소용돌이가 병존하며 그 곳 모두에서 치열한 경쟁과 그에 따른 다양한 서열이 자리잡는 구조다. 이는 사회 발전에는 굉장히 유리하지만 동시에 구성원들에게 막대한 스트레스를 준다. 아무도 포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만약 일정 정도 서열에 올라서지 못하면 좌절감과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끼고 살아야 한다. 성리학은 기의 탁함과 맑음에 따라 리의 구현 정도가 다르고 그에 따라 대접받고 누려야 할 가치도 다른 것을 당연시 하는 세계관이기 때문에 보통의 한국인들이 중산층 기준의 기준이 지나치게 높고 또 그 기준에 못 미친다고 했을 때 남들과 비교하여 지나치게 박탈감과 소외감 열등감을 느끼며 불행을 자주 느끼는 게 너무 자연스런 일인 것이다. 성리학이 현대 한국인에게 남긴 습속과 사회운영 원리가 축복이자 저주라는 저자의 설명이 바로 이 때문이다.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와 그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을 때 느끼는 고통과 불행은 헬조선이라는 유행을 낳았고 그런 면에서 헬조선은 정말 조선에서 기원한 것이 맞는 것이다. 모두의 눈은 가장 성공한 맨 위에 가있고 거기에 미치지 못한 나는 실패자이며 한국 경제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극단적인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율과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은 성리학에 뿌리를 둔 한국 심층 문화의 배경을 놓고 보면 상당히 설명이 된다.


한청훤


정치적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역동성과 한국 정치 사회에 만연한 <지나친 도덕지향성>을 저자는 성리학에서 배경을 찾는다. 정치 권력의 근거는 성리학적 도덕 이념과 명분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달렸기 때문에 기존 기득권 세력이나 권력자위치는 언제든지 신흥 세력의 도전을 받아야 하는 불안정한 위치에 있었다. 한국인들은 <도덕 가치에 입각한 명분에 대한 추구>가 대단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신흥세력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기존 세력의 리와 명분이 신흥 세력이 내세우는 리와 명분에 미치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권력이 옮겨져야 하는 걸 너무 당연하다고 여겼다. 한국 현대사의 정치적 격변과 정권교체, 세력이동 등의 역동성은 이런 성리학적 정치 원리와 때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우연히도 이런 성리학적 정치 원리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빠르게 자리잡는 데 대단히 유리한 환경을 제공했다. 예전의 이념은 새롭게 더 설득력 있다는 이념으로 금세 대체가 되었고 과거 세력이 내세운 정치적 주장과 이념이 세월이 흘러 그 효력이 떨어지고 설득력과 생명력이 잃었다고 생각하면 한국인들은 금세 새로운 정치적 주장과 이념에 관심을 두게 된다. 더 새롭고 더 설득력 있는 리가 과거의 흘러가고 탁해진 리를 대체해 나가는 것이다. <서구에서 가장 큰 유행을 하고 있는 새로운 이념과 정치적 주장을 비서구 사회 중 한국이 가장 민감하고 빨리 받아 들이는 데>는 저자는 성리학의 남긴 심리적 요인에서 찾는다.


대신 한국인들은 정치와 사회에서 지나치게 도덕적 순결의 강박을 가지고 있다. 어떤 분야에서 아무리 성공해도 도덕적 타락은 용납을 못한다. 어떤 분야든 최고의 자리에 올라도 인격적 결함이 있으면 그 자리에 있을 가치가 없다고 단죄한다. 최고에 자리에 오른 사람은 실력 뿐 아니라 말이나 행동 하나하나 조심해야 하고 극도의 인격적 수양을 갖추거나 최소한 갖춘 것처럼 흉내내야 한다. 그리고 지나친 도덕적 순결주의는 정책에서 필요한 실용적 접근과 민주정치에 필요한 상대편과의 타협, 절충, 양보에 걸림돌이 된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와 낭만주의에 빠지기 쉽고 상대를 쉽게 악으로 상정하고 극단적 대결도 불사하는 이분법적 진영론에 쉽게 빠지게 한다. 이런 교조적 이상주의와 이분법적 진영론, 대결주의는 한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요소이기 때문에 성리학은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서도 빛과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할 수 있다.


내가 그 동안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대한 배경과 원인에 대한 고민에 대해 이 책은 여러 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물론 동의하지 못하거나 지나치게 자의적인 해석도 상당히 있지만 한국 사회가 왜 오늘날 이와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 굉장히 흥미 있는 문화적 심리적 단서들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의 민주주의 기원을 조선 유교 성리학에서 찾았던 김상준의 맹자의 땀 성왕의 피의 내용과 상당히 접점이 찾아지고 보완 되는 부분이 많았던 것도 재미있었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인도 간과한 여러 가지 흥미 있는 단서와 해석을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을 쓰신 오구라 기조 교수께 감사하다는 생각까지 들며 이 책이 20년 전에 쓰인 만큼 2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후속작을 써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29Okjin Park, Wonkhap Kim and 127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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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m Choi 동의합니다. 성리학은 일종의 현능주의(Meritocracy), 즉 현자에 의한 지배를 정당화해주는 논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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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청훤 만민들 중에 경쟁을 통해 현인으로 입증된 사람이 지배 정당성을 확보하기 때문에 민주주의적 성격도 가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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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m Choi 사실 그것은 좀 눈 가리고 아옹하는 격 아니었을까요. 실제로는 매우 제한적인 사람들에게만 허용된 것이죠.







한청훤 과거 실제모습이 어떠했냐가 중요한게 아니리 이념체계가 내세우는 원리가 중요하죠. 기독교나 이슬람이 과거 자신들이 실제 어떠했냐 보다 그들의 이념체계가 지금 현실에 어떻게 현대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는게 중요하듯이요.





Sangwon Kim 요새 제 자신과 주변사람의 인정욕구가 어디서 오는지 궁금했었습니다. 뭔가 진화생물학의 설명 조금 보긴했는데 납득이 완전히 가기엔 애매하드라구요^^ 고급진 서평을 보니 제 궁금증에 대한 설명도 상당부분 해줄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한청훤 앞부분 원리적 설명은 재미있는데 뒷 부분 예시들며 하는 이야기는 20년전 쓰인책인지 좀 공감도 안되고 식상한 부분이 꽤 있습니다.






양승필 "사람 대접"이라는 말이 눈에 밟히네요.
한국인이 사람 대접 받기 위해 쏟는 피눈물나는 노력들을 떠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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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청훤 저도 왜 이렇게 평등적이면서 동시에 차별적인지 궁금해 하다가 책 보면서 무릎을 쳤습니다. 사람대접 받기 위해 미친듯이 노력해야 하는 사회의 기원이 헬조선이 맞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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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m Choi 사람 대접 받기 위해 사람답지 않게 노력해야 하는 사회





양승필 Bum Choi 책상 벽에 붙여둘만한 절묘한 문장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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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 Yi 올해 읽은 책 중에 아직까지 탑 3에 드는 책입니다. 임건순씨의 해설에 의하면 사실 20년 전에 쓴 책이지만 최근 사회가 정체되면서 우리사회의 조선성이 더 강해지면서 역설적으로 더 relevant해 진 책이라고 합니다.





한청훤 저도 읽고 나서 왜 그렇게 교수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왜 극찬하고 화제되었는지 알았습니다






SeongJun Kim 처음 나왔을 때 읽어 봤는데 아직도 그 때의 느낌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것은 오히려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더 잘 쓸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위의 잘 정리된 글에서 작가적 소질을 엿봅니다 ^^






한청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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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 Sok Kim 재미있고 유익한 해제에 이 책에 더욱 관심이 갑니다.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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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Gon You 작년에 읽다가 박수치며 재밌게 봤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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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청훤 후반부 20년전 한국사회 문화현상 예시로 든게 좀 진부하고 낡은 느낌 주는게 흠이었습니다. 20년 전 나온 책이라 어쩔 수 없었겠지만...




임명묵 그런 건 20년의 관찰을 더해 업데이트 개정판 내주면 좋겠는데 ㅋㅋ





한청훤 이 책이 작년 연말 올초 화제가 되면서 꽤 떳으니 저자께서 업데이트 고려를 할 수도 있다 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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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ju Cho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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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매우 좋은 책입니다... 한국정치현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이정도의 사회문화적 탐독은 아직 보지 못한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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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청훤 주변 지인과 대화하다 이 양반이 나에 대해 나보다 더 잘아네 하고 충격받은 느낌입니다.





자유 오히려 제3자의 입장에서 상황이 더 객관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급해주신대로, 조금 옛날 책이긴하나 그레고리 핸더슨의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란 책도 날카롭게 한국의 중앙집중화 현성을 논평한적있지요. 두 책을 같이 읽어 보는것도 충분히 의미있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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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is with Sunghwan Jo.


3 February 2018 ·


도서출판 모시는사람들과 조성환 선생님이 함께하는 프로젝트 "청년한국학" 제1차 모임이 2월 2일, 신촌의 한 카페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모시는사람들에서 발행된 오구라 기조 작, 조성환 역,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었습니다.

참여하신 분들의 소감은 "오늘 배운 것이 많았습니다." "오늘 사이다 같은 모임이었습니다." "저도 속 시원했습니다. 사진에 채광이 환한 게 꼭 지금의 제 영혼의 상태 같네요" 등입니다. 앞으로 월1회, '책'을 중심으로, 한국학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모임으로 지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모시는사람들/조성환 선생님의 꿈이 함께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사진은 자칫 창이 좀 넓은 '창고' 안 같지만, 실내 인테리어가 독특한, 고급진(?) 카페 룸입니다. ^^)

#조성환 #모시는사람들 #한국학 #청년










도서출판모시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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